존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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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부정
작품등록일 :
2012.02.07 07:33
최근연재일 :
2012.02.07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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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26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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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존의 이야기 7

DUMMY

끌고 가는 동안 필립은 계속 팔다리를 휘적거렸다. 끌려가지 않겠다는 의지가 여실히 보이는 행동이다.

역시나 앙헬은 사자 같은 분노를 보여주었다. 자신의 책임 하에 있는 자가 벌인 일이기에 자존심이 상한 모양이다. 그러나 그는 이성을 지켜냈다. 사무실의 집기를 때려 부수던 그는 이내 감정을 수습한 듯 담담한 신색을 찾으며 내게 심문을 맡겼다. 본인이 직접 하기엔 너무 감정이 억양이 되었기 때문이다.

싸늘해진 분위기 때문에 이곳에 기거하는 모든 이들이 불안에 가득 찬 얼굴을 하고 있다. 나는 그들의 면면을 보았다. 우려, 공포, 연민. 잘 모르겠다. 긴 세월을 사는데다 망각까지 하지 않는 그들이기에 단편적인 모습에서 감정을 읽기란 요원한 일이다.

나는 필립을 지하의 고문실에 묶었다. 고문실의 한쪽 벽엔 사지를 결박할 수 있는 금속 틀이 있었다. 일족의 완력을 의식한 듯 무척이나 두꺼웠다.

그는 아까완 다르게 체념한 듯 늘어져있었다. 심지어 표정까지 덤덤하다. 그의 눈동자는 공허함만이 자리 잡고 있다.

이상하다. 일족의 생명에 대한 집착은 광적이다. 사지가 잘리면 이로 기어나간다. 어떻게든 기회를 노린다. 킴은 이것이 영생이 주는 힘에 중독되었기 때문이라 했다. 심지어 몇 년 안 된 나 또한 그 기분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그는 체념한 모습이다. 더 큰 무언가가 그의 본능을 덮었다.

“필립. 말을 해라. 난 네가 범인이라 생각지 않는다. 너의 모습이 그걸 말해주고 있다.”

필립의 얼굴에 당혹스러움이 비친다. 이를 앙다문다.

“죽여라. 내가 할 말은 그것뿐이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가? 억울하지 않은가? 너는 영생의 권능을 포기하고 소멸의 길에 들어갈 것인가?”

그의 눈빛이 흔들린다. 하지만 잠깐 뿐이다. 그의 표정은 다시 편안해진다.

“두 번 말하게 하지 마라.”

막막하다. 분명 나의 육감은 그가 범인이 아니라고 말한다.

나는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일족에게 있어 죽음을 피하려는 본능은 제1의 본능이다. 인간은 자신의 신념과 가치관을 위해 쉽게 목숨을 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일족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모여 사회를 이룬 것도 고독감이나 사회성, 권력의 탐구 등을 위한 것이 아니다. 좀 더 쉽게 살기 위해 모인 것이다.(그 후에 무언가 변질이 되었다 하더라도) 일족의 조직이 점 조직화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자신이 죽을 위기에 처해있으면 너무나 쉽게 타인의 비밀 정도는 쉽게 털어놓기 때문이다.

이 때 킴이 내게 해준 말이 떠올랐다.


‘네가 오래 살고 싶으면 절대 해선 안 되는 게 있어.’

‘그게 무엇인가요?’

‘사랑을 하지 마.’

‘왜 인가요?’

‘일족의 기억력은 너도 알고 있을 거야. 망각의 축복이 피해갔다고 표현할 정도란 걸. 사건을 기억하는 것은 물론이요, 그 당시 느꼈던 감정들 까지 기억하지. 다행히 육체가 변하면서 감정의 변화에 대해 무감해지는 일종의 방어기제가 생기게 되지만 그렇다고 그게 철벽같은 것은 아니야. 격렬한 감정들은 여전히 너의 이성을 불태우지.’

‘그런데 그게 왜 사랑과 관계가 있나요?’

‘인간들을 살펴보면 말이다. 사랑 때문에 눈이 멀어 전 재산을 잃기도 하고, 자식과도 나누지 않는 다는 권력을 던져버리기도 하고, 자신의 생명을 먼지 털 듯 버리기도 한단다. 이성과 본성을 모두 가리는 것 그게 사랑이다.’

‘무슨 소린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나중에는 알게 될 거다.’


나는 필립의 눈을 응시했다. 그는 여전히 편안해 보인다.

본능을 덮는 것이 사랑이라……. 사건을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이제 알겠다.


우선 앙헬에게 부탁해 은밀히 말을 흘렸다. 필립이 입을 굳게 다물고 있으나 슬슬 겁을 먹어가는 눈치라고. 소멸의 공포가 두 눈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고. 불안에 떨며 계속 눈물을 흘리고 있다고.

미끼는 던져졌다. 이젠 내가 낚을 차례다.


-------------------


고문실의 그늘진 구석에 앉아 진범을 기다린다. 필립은 그런 나를 보곤 불안한지 안절부절 못하고 있다.

끼익. 마찰음과 함께 문이 열린다. 누군가 조심스레 들어온다. 그 때 필립이 그를 확인했다.

“도망쳐!”

젠장. 입을 가려 놓을 걸. 의심할까 막지 못한 것이 실수다. 나는 재빨리 손에 쥐고 있던 도끼를 집어던졌다. 묵직한 파육음(破肉音). 명중이다.

급히 다가갔다. 그러나 그곳엔 대거 한 자루만이 남아있었다. 재빨리 몸을 돌려 나갔나보다. 바닥엔 피가 떨어져있다. 하지만 많지는 않았다. 분명 상처를 입었을 테지만, 이정도면 내가 찾아냈을 때쯤엔 복구가 되었을 테다. 떨어진 칼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 이거면 되겠다.

나는 칼을 집어 들고 필립에게 다가갔다.

“보이나?”

한 뼘 정도 되는 날이 경면(鏡面)연마 되어있다. 거기에 흑단 손잡이. 흔히 볼 수 있는 제품은 아니다. 역시나 필립도 알아보는 눈치다.

“왜 이걸 들고 왔을까? 나는 앙헬을 통해 거짓 소문을 흘렸다. 네가 곧 진범이 누군지 자백할 것이라고.”

그가 눈을 감는다. 얼굴이 일그러진다.

“너의 침묵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나? 네가 누군가에게 보여준 신뢰는 칼이 되어 돌아왔다.”

나는 필립의 어깨에 손을 얹어 다독였다.

“사랑인가?”

필립의 몸이 떨린다.

“너는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그의 눈에 눈물이 맺힌다.

“말라버린 너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일족도 눈물을 흘리는가?”

눈물이 붉다.

“이미 너의 눈엔 눈물이 말라버렸구나. 피, 이것은 피다. 너의 사랑은 너에게 상처만을 주었다.”

눈물이 가슴을 적신다.

“다시 묻겠다. 침묵이 아직도 너에게 가치가 있는가?”

필립이 무겁게 입을 연다.

“진실을 이야기해도 전 처벌받지요?”

“그래.”

진범이 아니더라도 현장에서 잡힌 것은 사실이다. 정황상 그는 범인을 도운 것이다. 형을 면할 수 없다.

“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거기 까진 나도 모른다. 어딘가로 옮겨진다는 것 밖에는…….”

“그렇군요.”

필립이 고개를 아래로 떨군다. 표정이 계속 변한다.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무엇인가?”

“이대로 자백할 순 없습니다.”

필립의 표정이 슬퍼보인다. 피로 얼룩진 그의 두 눈엔 공허함만이 가득하다. 그러나 나는 보았다. 그 속에 숨겨진 비틀린 욕망을.

“내 마음이 어떤지. 그 사람에게 전해야합니다. 죽어서도 잊지 못하도록.”

킴의 말이 또 생각난다.

‘사랑은 자신의 모든 걸 버릴 수 있게 만들지. 그러나 상대의 모든 걸 망치기도 하지. 올바른 사랑은 헌신과도 같지만 삐뚤어진 사랑은 광기와도 같지. 우리 일족은 세상의 질서에서 벗어난 그릇된 존재. 그러기에 우리가 하는 사랑은 올바를 수 없다. 결국 상처와 파괴만이 남을 뿐.’


작가의말

자꾸 지웠다 썼다 하느라 생각보다 진도가 나가지 않네요. 그냥 글자 고치는게 퇴고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네요.
그래도 꼭 여기서 완결을 볼 생각입니다. 연중이나 리메이크 이런 건 없으니 안심하고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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