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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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부정
작품등록일 :
2012.02.07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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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07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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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2.12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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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의 이야기 3

DUMMY

건달패들의 아지트는 ‘해와 달’이라는 술집이다. 그럴듯한 이름과 달리 빈민가 초입에 위치해있다. 하지만 제법 되는 규모로 늘 사람들이 북적인다. 그곳에서 그들은 동이 트기 전까지 술을 마시곤 한다. 거나하게 취해서야 그들의 거처로 돌아갈 것이다. 나는 근처 모퉁이에 몸을 숨기고 폴이 나오길 기다렸다. 기다림은 이제 익숙하다.

한참을 기다려서야 그가 나온다. 동료 셋과 어깨동무를 하고 크게 노래를 부른다. 아니 고래고래 괴성을 지른다. 비틀거리는 발걸음. 안도감이 든다. 난 아직 그가 무섭다. 언제나 날 내려 보던 눈빛. 내게 가해지던 폭력. 그것이 내 몸과 마음에 각인되어 있다. 그러나 오늘 그 각인을 끊겠다. 그리고 그의 죄를 물을 것이다.

폴의 뒤를 밟는다. 동료들과 헤어진 그는 판자촌으로 간다. 빈민가 중에서도 나름 깔끔한 곳이다. 더러운 놈. 빈대 같은 놈. 아이들의 고혈을 빨아 저런 곳에 몸을 뉘이는 것인가. 뭔가 억울했다. 약자는 서럽다.

문을 여는 순간 그의 등 뒤를 밀치며 방 안으로 엉켜들어갔다. 짧은 비명과 함께 그가 나뒹군다.

“뭐야. 어떤 자식이야!”

폴의 모습이 자연스럽다. 당황하지 않다니. 기습에 익숙해 보인다. 그것에 난 위축이 되는 것 같았다.

내 모습을 확인한 폴이 허탈하게 웃는다. 그리곤 표정이 일그러진다.

“뭐야. 존이잖아. 이 새끼가 겁 대가리를 상실했나. 감히 나를 쳐?”

그가 눈에 불을 키며 허리춤의 대거(dagger : 날이 양쪽으로 서 있는 단검)를 꺼내들었다.

“죽었다고 복창해 이 새끼야.”

폴이 칼을 휘두른다. 그 순간 몸 안의 무언가가 꿈틀거린다. 그러자 그의 동작이 점점 느려진다. 마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것처럼. 나는 그 틈을 타 몸을 숙인다. 나는 느리지 않다. 그렇다. 나는 빠르다.

“어쭈. 피해?”

그의 공격이 계속된다. 그러나 내 눈엔 다 느리게 보였다. 나는 빠르다. 강하다.

자신감이 샘솟는다.

그의 공격은 숙련되었지만 정교하진 않다. 틈이 보인다. 나는 득달같이 달려들어 그를 넘어뜨렸다. 그리곤 그의 빗장뼈를 움켜쥐었다.

“이 벌레 같은 자식. 네가 사람이냐? 아이들을 때리고, 돈을 빼앗고. 심지어 매춘까지. 그래, 그것까지 그렇다고 쳐. 어린애 이를 뽑아? 너 같은 놈은 살아있으면 안 돼.”

놈에 대해 말할 때 마다 울화가 더 치민다. 분노가 분노를 부른다. 난 참을 수가 없다.

손에 힘을 준다.

뿌득.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쉽게 그의 빗장뼈가 딸려 나왔다.

어라?

이게 가능한 일인가? 아무리 그래도 사람의 뼈가.

힘이다. 이것이 힘이다. 나는 강하다. 벌레 같은 놈. 나의 작은 체구에 깔려 비틀대는 구나. 고통 받아라. 이제 내가 가해자다.

손아귀에 힘을 줘 그의 양 어깨를 마구 비튼다.

“아악! 살려줘!”

놈의 어깨가 망가진다. 재밌다. 어릴 때가 생각난다. 잠자리의 날개를 하나하나 뜯으면 몸부림친다. 그렇구나. 너는 잠자리구나. 날개가 떨어진 너는 이제 그럼 무엇이냐.

극심한 고통 때문인지 폴의 안색이 하얗게 질린다. 그리고 뿜어져 나오는 피.

피. 그렇다 피다. 검붉은 피가 솟아져 나온다.

피를 보면 의당 겁을 먹어야 할 나였다. 그러나 왠지 기분이 좋다. 피다. 피는 좋은 것이다.

나도 모르게 그의 목에 내 입을 가져간다. 이가 간질거리더니 뭔가 길어지는 느낌이다.

혀를 굴려보았다. 송곳니다. 송곳지가 길어졌다. 그의 공포가 내게 전해진다. 좋다. 좋은 느낌이다.

으득.

그의 목을 물어뜯는다. 입안 가득히 그의 피가 들어온다. 좋다. 이것이다. 요 며칠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 느껴졌다. 생동감. 살아있다. 내가 살아있는 느낌이다.

이제야 알았다. 내게 일어난 변화들을 알았다. 나는 흡혈귀다. 흡혈귀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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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이 죽음은 정말 별것이 아니었다. 나는 피를 빨았고, 그는 금세 죽어버렸다. 전설의 그것처럼 다시 되살아나는 것이 아닐까 걱정이 되어 우선 그의 시신을 거적 등으로 감싸 하수구로 끌고 왔었다. 하지만 기우였다. 되살아나기는커녕 잘만 썩어갔다. 결국 난 냄새를 참지 못하고 그 아이를 묻으려던 뒷산으로 가 파묻었다. 근력이 증가해서 그런지 그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내 흔적을 모두 지웠음에도 한 동안 밖을 나가지 못했다. 크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폴의 죽음이 내겐 큰 부담이었기 때문이다. 그를 죽였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 따윈 아니었다. 그가 죽음으로 인해 생길 폭력배들의 폐해에 휩쓸릴 것 같아서다. 그들은 타인의 공격에 잔인하도록 반응한다. 무리의 일부가 죽거나 다치면 그들은 자신의 내부를 다지고, 외부에 결속을 과시하려는 듯 더욱 강력한 폭력을 행사하고 다녔다. 이젠 힘을 가진 이상 그들의 폭력쯤은 우습게 느껴지지만 정확히 내 상태를 파악하기 전까진 경거망동 할 순 없었다.

더구나 나는 흡혈귀다. 그것이 드러난다면 나는 신전의 사제들과 사람에게 표적이 될 것이다.


하수도의 생활은 사색의 연속이다. 굶어도 해가 되지 않는 다는 사실 때문인지 내 안에 있던 치열한 마음이 없어지는 느낌이다. 어떻게든 되겠지. 어떻게든 되겠지.

사람들은 말할지도 모른다. 강한 힘. 그리고 이제 배고픔이란 큰 두려움이 없어졌으니 좋은 것이 아닌가?

나 또한 한동안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내겐 또 다른 저주가 생겼던 것이다. 이게 바로 두 번째 이유이다. 망각하지 못 함. 바로 그것이다.

내가 이곳에서 깨어나 제이콥을 만나고 폴을 죽일 때 까지, 그리고 지금 이 순간순간 모든 일어났던 일들과 그 때 느꼈던 감정들이 방금 일어나고 느꼈던 것처럼 생생하다. 잊히지 않는다. 나는 지금도 슬퍼하고, 희열을 느끼며, 광기에 빠진다. 뒤죽박죽이다. 미칠 것 같은데 한 편으론 이성이 차갑게 유지되고 있다. 너무 혼란스럽다. 내가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가 이것이다.

“제법 잘 적응하는가 보구나.”

갑작스레 뒤에서 음성이 들렸다. 나는 놀랐다. 내 향상된 감각을 뚫고 누군가가 접근하다니.

반사적으로 방어 자세를 취하며 뒤를 돌아봤다.

나는 놀라 벌떡 일어났다. 그다. 그 아이다. 내 헝클어진 내 머릿속이 순식간에 정돈된다.

“이제 저는 무엇이 된 건가요?”

아이가 미소 짓는다.

“역시 넌 조금 다른 것 같아. 보통 내가 누구인지 묻는데 말이야.”

그가 하수구에 있는 계단 한켠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지금쯤이면 너도 알 텐데. 네가 누구인지.”

“흡혈귀가 맞다는 건가요?”

그의 미소가 씁쓸하게 바뀌었다.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말하곤 하지. 글쎄. 반은 맞고, 반은 틀려.”

“그게 무슨 소리에요?”

“일단 앉지. 짧은 이야기는 아니니까.”

그래. 시간은 많다. 나는 그의 맞은편 바닥에 쭈그리고 앉았다.

“그 뒤로 널 지켜봤지. 제법 신중하더군. 아직 성년이 아니기에 불 맞은 멧돼지처럼 날뛸 줄 알았는데.”

“이곳의 생활은 녹록치 않거든요. 눈치가 없으면 반년도 버틸 수 없어요.”

아이의 표정이 어두워진다.

“슬픈 이야기지.”

“그러는 그쪽은요. 저보단 훨씬 어려 보이는데요? 이곳 사람도 아닌 것 같고요.”

그가 어깨를 으쓱거린다.

“뭐 그런 이야기 까진 하고 싶지 않아. 개인사니. 하지만 네게 보이는 것 보다 오래 살았어. 네가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그럼 저도 그렇게 된다는 건가요?”

“그래. 넌 더 이상 늙지 않아.”

“어떻게 그런 일이. 피로 생명을 흡수하는 건가요? 사람을 죽여가면서?”

그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조금 달라. 내가, 그리고 네가 늙지 않는 건 이제 우린 죽은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지. 죽음과 삶의 경계에 걸침으로서 반불멸자가 된 것이다.”

“우리도 죽을 수 있단 말인가요?”

“네가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알겠어. 그렇다면 대충 맞아. 의미는 다르지만. 우린 이미 죽은 것과 다름이 없어. 정확히 말하면 죽음이 아니라 소멸이겠지.”

말을 마친 그는 턱을 괴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나는 그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용히 기다렸다.

꽤 시간이 지나서야 그가 입을 열었다.

“기다릴 줄 아는 군. 참을성이 많은 아이야. 제법 똑똑하고.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많은 것이 궁금하겠지. 좋아. 내가 설명해 줄 테니 일단 모두 들어봐. 중간 중간 궁금한 것이 생기면 바로 질문하도록.”

“예.”

“나는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흡혈귀와는 조금 달라. 정확히 말하면 그의 할아버지쯤 된다고 할 수 있지. 나는 나를, 아니 나를 포한한 내 세대의 일족들을 첫 번째 인간의 아들이라고 부른다. 나도 너처럼 첫 번째 인간이라 불리는 그 사람에게서 변하게 된 것이지. 하지만 그를 변하게 한 사람은 없어. 그렇기에 우린 그를 첫 번째 인간이라 한다. 즉 난 2세대인거지. 넌 내게서 만들어진 3세대이고.”

“그럼 그가 원천이란 이야기군요. 그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그는 회상에 젖는 듯 눈빛이 아련해졌다.

“그, 첫 번째 인간은 나완 달랐다. 정확히 말하면 그는 완벽하다. 하지만 난 그에 비해선 흠이 있다.”

“흠이라니요? 그 사람과 당신은 다르다는 건가요?”

그가 고개를 무겁게 끄덕인다.

“우린 시간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세대가 내려갈수록 좀 더 흠이 생긴다는 것을. 약해진다고 해야 하나? 예를 들어 난 낮에 다녀도 상관없다.”

“정말요? 저는 해에 닿으면 아프던데요?”

“심한 감기에 걸린 것처럼 조금 몽롱한 느낌에 쌓이긴 하지만 너처럼 고통을 느끼거나 하진 않지. 네 다음 세대, 4세대들은 더 불완전하다. 그들은 실제 태양아래 있으면 고통을 느낄 뿐 아니라 상처도 입는다. 사람들이 우리를 흡혈귀라 부르는 이유, 그에 대한 전설이 생긴 이유가 그 때문이다. 4세대들 때문이지. 심지어 5세대들은 주기적으로 피를 섭취하지 않으면 점점 늙어가지. 그걸로 소멸까진 안 되지만 쪼글쪼글 미라처럼 변해버려. 6세대는 늙지 않는 다는 것과 완력이 강하다는 것을 빼곤 별 볼일 없는 놈들이지. 그들은 7세대를 만들지도 못 해. 즉, 6세대가 마지막이야.”

“그럼 저는요? 저도 피를 빨며 살아야만 하나요? 아직까진 피에 대한 욕망이나 필요를 딱히 느끼진 못 했습니다. 저번 한 번을 제외하곤 말이에요.”

“3세대까지는 피가 생존의 필수 조건은 아니다. 다만 큰 힘을 사용한다거나 몸에 물리적 피해가 왔다거나 하는 경우에는 피가 필요하지.”

그가 손을 들어 나를 가리켰다.

“이렇듯 높은 세대에 편입되었다는 것은 큰 영광이다. 우리 세계에서 그것은 큰 권력과도 같지. 신분이라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하려나.”

“우리 세계라니요. 우리 같은 이들의 모임이 따로 있는 것입니까?”

“물론. 우린 남들과 다르다. 그래서 배척받지. 그렇기에 우린 뭉칠 수밖에 없다. 우린 우리만의 사회가 있지. 모두 모여 사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 저도 그 사회에 편입이 되어야 하는 건가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렇기에 내가 온 것이다. 나는 너의 창조자. 나는 너에 대한 일정한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일족을 늘리진 않는 건가요? 피가 꼭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첫 번째 사람이란 분이나 당신 같은 2세대가 일족을 마구 늘리면 되는 것 아닌가요?”

“그럴 순 없다. 동족을 만드는 데는 많은 힘의 소모가 필요하다. 나도 한 동안 피를 모으며 손상된 힘을 보충해야 한다. 제법 긴 시간이 될 것이다.”

“하지만 불멸자인 당신에게 시간은 고려대상이 아니지 않나요?”

그가 자조적으로 웃는다.

“우리 사회가 평화롭지만은 않아서. 몸이 약화된 채 있는 것 자체도 큰 모험이 될 수 있거든.”

그의 말에 나는 걱정이 밀려왔다.

“그곳도 배척과 힘의 논리가 통용되는 곳이군요.”

그가 힘없이 대답했다.

“그래. 전엔 안 그랬는데. 어느새 그렇게 되어있더군.”

그가 두리번거린다.

“이곳 조용하고 좋군. 당분간 숨어있긴 좋겠어. 여기서 힘을 회복해야겠다.”

“그럼 앞으로 같이 지내는 건가요?”

“당분간은. 그 동안 네 녀석이 갖고 있는 힘을 활용하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당분간이란 소리는……?”

“네 녀석이 힘을 찾고 난 뒤엔 네가 가야할 곳이 있다.”

이제 혼자가 아닌가? 왠지 기쁘다. 외로움은 언제나 함께하지만 익숙해지지 않았다.

“혹시 우리들의 사회라는 곳입니까?”

“응.”

사회라니. 설렌다. 그동안 나는 배척받던 존재. 주변인일 뿐이었다. 어디에 소속된다니. 그곳이 평화스럽지 않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이곳 보단 나을 것 같다.

그러고 보니 난 그의 이름도 모른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네놈들 식으로 따지면 킴. 킴이라고 불러라.”

“전 존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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