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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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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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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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1.15 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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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화. 몰라 뭐야 이거 무서워!!

DUMMY

당신은 홀로 떨어진 자의 고독을 아는가. 마을과 마을을 떠도는 여행자에게 육체적인 고통보다 더욱 큰 것은 아마 혼자 여행한다는 정신적인 고통이리라. 다른 마을에서 아무 연고도 없이 이사 온 사람 역시 마찬가지이리라. 어떤 공동체에서 사는데 그 공동체에 소속되지 못한 고통은, 아마 겪어보지 못한 사람이면 알지 못할 것이다. 설령 바깥에서 그 광경을 구경만 한다 해도, 눈물이 날 정도로 서글플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서글픈, 당당한 남자 정웅도. 어째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심각하게 왕따가 돼 버린 것 같다──────





이건 어찌된 일일까. 하루아침에 따돌림이라니. 우선 객관적으로 사태를 파악해보자. 아침에 학교에 왔을 때, 굉장한 당혹스러움. 늦잠을 자버려서, 평소보다 조금 늦은 등교. 황급히 나와 학교로 오니 이미 교실엔 애들이 바글바글하다. 드르륵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애들은 다 나를 쳐다본다. 아, 이 시선 받기 싫어서 그렇게 일찍 등교했던 거였는데.

어째 느낌이 쌔하다. 뭐, 여자애들이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건 충분히 그럴만하다고 인지하고 있기에 이상할 것도 없겠지만. 입학한 지 일주일이 넘었으니 적응될 만도 하겠지만, 확실히 뭔가 이상하다. 같은 ‘이상한 눈빛’이지만, 묘하게 다른 느낌.

처음엔 여자애들도 나를 경계하며 내가 교실에 들어서면 하던 얘기를 멈추고 멀찍이 나를 쳐다보곤 했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사흘이나 나흘째 되는 날부터는 내가 들어와도 그리 경계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계속 얘기를 했다. 상식적으로, 아무리 남자애라도 마주칠 때마다 계속 경계하는 건 아마 본인들도 피곤할 거다. 게다가 내가 아무런 행동도, 아무 피해가 될 짓도 하지 않으니까 어느 정도 경계심이 누그러진 영향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명백한 경계의 눈. 거기다, 반 모든 여자애들이 통일한 듯한, 한 가지 감정의 눈빛이다. 적대감.

심히 당황스러울 따름이다. 처음 학교를 들어 왔을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 때는 그냥 ‘경계’ 수준이었다면 지금은 명백하게 ‘적대’하는 성향을 나타내는 것 같은 여자애들의 표정이다. 자연스럽게 ‘안녕’ 하고 말하려던 게 목구멍 속으로 쏙 들어간다. 여자애들의 심각한 표정에 나는 심각하게 위축돼서 몸까지 살짝 움츠리고 자리로 갔다. 오늘따라 앞문에서 창가 구석 내 자리까지의 거리가 왜 이렇게 먼 지. 내가 걷는 소리가 뚜벅뚜벅 다 날 정도로 교실은 조용하다. 조용하다 못해 냉기가 감도는 것 같다. 으으. 잘못 다른 여자애 책상에라도 부딪히면 전쟁이라도 날 기세다. 뭐야 이거 무서워! 왜 이래, 얘네들!! 난 겨우 자리에 앉았다. 헉, 근데 이건 또 뭐야.


내 책상은 어째 바닥에 내동댕이 쳐 있다. 어?! 책상이란 게 바닥에 저렇게 널부러질 수 있는 물건이었어?! 그러니까, 똑바로 말하자면 책상이랑 의자랑 같이 쓰러져 있다. 덕분에 책상 서랍 안에 있던 참고서와 교과서는 마찬가지로 바닥에 널부러져 있고. 누가 실수로 그런 게 아니라 고의로 그랬다는 게 분명한 게, 원래 자리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서 내동댕이 쳐 있다. 거기다 아무리 여자애들끼리 있다 하더라도 남자애들만큼 험하게 놀지 않는 여자애들 특성상 장난치다 실수로 책상을 넘어뜨릴 일은 거의 없다. 그것도 아침부터. 설령 실수로 그랬다면, 제대로 제자리에 세워 놓았겠지. 굉장히 당황스러워서 일단 책상을 일으켰다.

“…….”


「변태새끼」

「꺼져!!」

「더러워」

「죽어버려」


하나 같이 무서운 내용의 글씨들이 무서운 기세로 책상에 써있다. 심지어 「죽어버려」는 날카로운 글씨체로 칼로 책상에 새기고 그 안을 정성스럽게 빨간 볼펜으로 칠해 놓았다. 정말 보자마자 섬뜩하다. 뭐, 뭐야 이게. 거기다 내 책에조차 비슷한 내용들의 글귀들이 잔뜩 적혀 있다. 여자애들은 글씨도 예쁘지, 하고 생각하고 있던 나의 선입견을 완전히 날려준다. 전혀 동글동글 귀엽지도 않고 오히려 날카롭고 매서워서 무섭다. 나는 표정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져서 책상을 일으키고 책을 서랍으로 정리했다. 고개를 들고 앞을 보니 몇몇 여자애들이 힐끔 나를 보다가 다시 고개를 앞으로 한다. 몰라 뭐야 이거 진짜 무서워.

책상을 정리한 뒤 앞쪽을 살펴봤다. 자리가 하나로 떨어진 성빈이와, 그 앞 두 자리의 성미와 지선이. 셋 다 앞을 보고 있다. 성미랑 지선이는 그렇다 쳐도 성빈이는 너무한데. 쓰러진 책상을 일으켜주고 도와줄 법도 한데. 약간 서운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드르르르륵.’

“…….”

책상을 질질 끌어서 성빈이 옆자리까지 옮겼다. 바닥에 책상이 끌려 요란한 소리가 난다. 순식간에 다시금 집중되는 이목. 여자애들은 여전히 적개심 가득한 눈빛으로 내 쪽을 쳐다본다. 어이쿠, 무서워서 이거 살 수가 있나. 조금만 소리 더 크게 내면 날 잡아 잡술 것 같은 눈빛들이다.

“저기.”

“……어?”

어찌됐든 그런 눈총을 버티며 책상을 질질 끌어 성빈이 옆자리로 붙였다. 의자를 가져와 막 앉으려는 찰나, 성미가 뒤돌아 나를 보고 말한다. 난 약간 긴장한 채 대답했다. 성미의 눈빛이 보통이 아니었기 때문에. 뭔가 작정하고 한 마디 할 것 같은, 진지한 눈빛.

“웬만하면 성빈이랑 떨어져 앉아.”

“어??”

“성빈이 곤란해 하는 거 안 보여? 솔직히…… 같이 앉기도 싫을 텐데.”

“…….”

성미의 가시돋힌 말투에 나는 눈이 크게 떠졌다. 같이 앉기도 싫을 텐데… 라니. 세상이 순간 얼어 버린 것 같은 느낌이다. 성미도 말해 놓고 조금은 미안하고 겸연쩍은지 내 반응을 살피곤 내 눈을 피한다. 그러다 내뱉듯 ‘어쨌든, 좀 떨어져.’ 하고는 나를 지켜본다. 그래도 차마 내 눈을 마주보진 못한다. 여전히 나는 얼어붙어 버린 것 같은 느낌 그대로, 성미를 보던 각도에서 얼굴이 움직여지질 않는다.

무슨 말인데, 그거. 무슨 의미로 하는 건데, 그 말. 확실히, 친구가 됐다고 여기진 않았지만 틀림없이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성빈이가 억지로 시킨 거긴 하지만 틀림없이 두 사람 다 사과도 했고. 이런 식으로 하나하나 해결해 나가면 되겠구나 했는데. 어디서부터 꼬인 거지.

“……아, 알았어.”

“……칫.”

조심스럽게 대답한 뒤, 난 창가 쪽으로 바짝 책상을 붙였다. 성미는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빛과 태도로 내 쪽을 보다 고개를 앞으로 돌린다. 심장이 쿵쾅거린다. 상황을 파악할 수가 없다. 싸늘하고 적대적인 여자애들의 눈빛, 친밀감이 생겼던 성미의 격한 반응, 그리고 책과 책상에 적혀진 날카로운 글자들. 하지만 더욱 두려운 건, 다른 어떤 것보다도 무서운 건, 바로 성빈이.

성빈이만은 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 하, 모를 리가 없잖아.

처음으로 말 걸어주고, 처음으로 따뜻하게 대해주고, 처음으로 날 좋게 봐 주고, 처음으로 친구…… ─처음 친구는 리유한테 뺏겼구나. 어찌됐든 그 누구보다 날 배려해주고 알아주려 하고 챙겨주고 도와준 성빈이. 그 성빈이마저 나를 저런 눈초리로 본다면, 저런 태도로 본다면 정말.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기분이지 않을까.



한숨이 절로 나온다. 사나이 정웅도, 어찌 이리 마음이 약해졌을까. 사람 한 명에 이렇게 매달릴 정도가 되다니. 하지만 정말 어쩔 수가 없다. 보기 싫지만, 정말 싫지만 궁금증은 그 싫음을 이기고 내 목을 움직였다.

“…….”

“…안녕.”

“…응.”

돌처럼 굳은 얼굴로 겨우, 고개를 돌려 성빈이를 쳐다봤다. 평소 보던 자리보다 조금 떨어진 성빈이. 내가 고개를 돌리자, 정면을 보고 있던 성빈이도 고개를 돌린다. 그러더니 약간 착찹한 듯, 아니 어색하다고 해야 하나. 묘한 느낌으로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찬가지로 작게 대답했다. 떨떠름한 반응이지만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색해하고 있지만 그래도 적어도 성빈이는 다른 여자애들처럼 나를 적대시하거나 경멸하는 듯한 눈빛으로 보지는 않는다. 다만 뭔가 다가오기 힘들어 하는, 그런 느낌만이 들 뿐. 대체 뭐지, 이 상황. 이 위화감. 어째서 한순간에 이렇게 반에서 동떨어지게 된 걸까, 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담임선생님이 들어오신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모두 안녕하셨어요~ 첫 주말 어땠어요!”

“네~ 재밌었어요!”

“깔깔 까르르”

“아하하하하”

조회시간이라고 해야 할까, 물 건너 말로는 ‘홈룸’이라고 하던데. 담임선생님 자치 시간. 학급회의? 시간은 아니고. 어쨌든 담임선생님이 주도하는 그 애매한 시간. 선생님은 밝게 웃으며 말씀하신다. 특유의 높은 톤의 밝고 활기찬 목소리는 여전하다. 여자애들은 과연 가랑잎만 굴러가도 까르르 웃는 소녀 감성이라 그런가 선생님의 물음에 즐겁게 대답하며 깔깔 웃는다. 대체 어느 대목에서 우스워 웃는 거지. 알 도리가 없다. 방금 전까지 그렇게 싸늘하던 여자애들이 지금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깔깔대며 웃는 모습이 난 도리어 더욱 소름 돋는다.

“음─ 웅도 군은 어떻게 지냈어요─? 여고에서의 일주일은─?”

“네? 아.”

“…….”

나는 멍하니 선생님을 보는데 담임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선생님은 눈웃음을 짓더니 나에게 질문한다. 그와 동시에 화기애애하던 분위기를 진공청소기로 순식간에 빨아들려 없애버린 듯, 순식간에 반의 분위기는 동결됐다. 질문한 선생님이 다 당황할 정도로. 나조차 긴장돼서 뭐라 답할 수가 없는, 그런 분위기다.

“아앙─ 다들 왜 그래요, 웅도 착한 애인데, 좀 잘 해줘요─ 남자애가 저렇게 기죽어 있잖아요!!”

“…….”

선생님은 어린애가 징징대듯 말했다. 나는 더욱 돌처럼 딱딱한 마음이 됐다. 와, 무섭다 여고생들. 이런 반응이라니. 선생님의 말에 여자애들은 여전히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묵언의 수행을 한다. 일부 내 주위 여자애들은 나를 노려보기도 한다. 한 여자애가 불통한 목소리로 ‘아닌데요.’ 하고 선생님에게 말한다. 선생님은 마치 리유가 나한테 징징대듯 어린이가 말하는 것처럼 ‘후에엥~ 왜, 웅도가 뭐 잘못이라도 했어~?’ 하며 말씀하신다. 하지만 여자애들은 다시금 묵묵부답이다. 담임선생님이 별 생각 없이 한 그 질문 덕분에, 교실의 분위기는 더욱 싸늘해졌다. 그리고 나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여자애들이 나를 엄청 싫어하게 됐다는 것 정도는.

“…….”

정말 지옥 같은 아침조회시간이었다. 도저히 어색한 공기를 바꾸지 못해서 선생님도 난감해하다가 겨우 선생님이 다른 화제로 이야기를 돌려서 다시금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돌아갔다. 나는 그저 묵묵히 혼자 멍하니 여자애들을 쳐다볼 따름이다.

뭔가 정말, 반전인데. 저렇게 귀엽게 웃고, 저렇게 예쁜 표정 짓는 여자애들이 그렇게까지 잔인하게 싸늘해질 수 있다니. 그게 더 소름 돋고 무서운 일이다. 지옥 같은 아침조회시간이 끝나고, 난 약속이라도 한 듯 교실에서 나왔다. 더 이상 아무렇지도 않게 이 교실에 있을 수가 없기에. 다시금 찾아온 꽃샘추위가 오늘따라 왜 이리 매섭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하아.”

반에서 조금 떨어진 복도. 우리 반은 1반이니까, 다른 반하고도 많이 떨어진 구석진 곳이다. 계단 바로 옆이라고 해야 할까. 해서 사람이 그나마 별로 없는 곳이다. 이 쪽은 구석 쪽이라 잘 쓰이지 않는 계단이고, 실제 애들이 많이 쓰는 계단은 중앙 계단 쪽이니까. 일부러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 곳으로 온 것이다. 창가에 기대 한숨을 푹 내쉰다. 담배가 있다면 정말 진심으로 피우고 싶구나. 담배 연기는 아니지만 답답한 내 숨결이 뿌옇게 연기처럼 나온다.

“저, 저기.”

“……?”

“웅이야! 뭔가 이상하지 않아?”

“리, 리유야.”

옆쪽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난다. 힐끔 돌아보니 키도 덩치도 한참 작은 리유. 쭈볏거리며 고개를 갸웃 거리더니 귀엽게 말한다. 평소와 전허 다름이 없는 태도. 나는 그런 리유를 보고 큰 감동을 느꼈다. 나도 모르게 앞, 뒤, 오른쪽, 왼쪽 사방을 살폈다. 그리고 위쪽 계단과 아래쪽 계단도 꼼꼼히 살폈다. 아무도 없다. 그래도 혹시 모르기에, 나는 리유의 팔목을 잡았다.

“잠깐만.”

“어, 왜, 왜!”

팔목을 잡고 리유를 계단으로 데려온 나는 와락 리유를 껴안아버렸다.

“아아~ 역시 리유 너만큼은 변하지 않았구나~ 얼마나 무서웠는데, 내가~ 아아, 작고 따듯해, 향기로워, 부드러워~”

“으아아아아아! 꺄아아아아아─!!! 변태야──!!! 떨어져!!!”

그대로 리유를 껴안고, 그 작은 몸에서 느껴지는 보드라움과 따듯함, 묘한 달달한 향기와 내음을 그대로 느꼈다. 리유는 움찔 놀라며 잠시 멍하니 있다 깜짝 놀라 괴성을 지르며 나를 그대로 밀친다. 허나 리유는 일반적인 여학생보다 한참 덩치도 작고 힘도 약한 가녀린 학생. 순수 힘만으로 나를 밀칠 순 없다. 후후, 이런 일을 할 때 남자는 평소보다 7배는 힘이 강해진다구, Girl♀

‘퍽!’

“끄악!”

“씨…… 바보멍청이변태가!!”

“으으, 죄송합니다, 제가…… 조금 미쳤었던 것 같아요…… 실은 그렇긴 한데…… 정신적으로나, 지금은 육체적으로…… 으아아아아!”

리유는 그대로 시원스럽게 내 낭심을 차 버렸다. 끄악! 내가, 내가……! 아무리 작고 귀여운 리유라지만, 그 약한 힘이라도 발차기로 중요 부위를 냅다 차버린다면, 그 타격은 상당할 수밖에 없다. 이 고통은, 아니, 이 정도는 충분히 버틸 수 있다……!

예전 중학교 때, 축구하다가 친구가 차라는 공은 안 차고 작은 내 공 2개(!!)를 있는 힘껏 싸커킥으로 차서, 정말 정신이 승천하고 진심 병원까지 실려갈 뻔 했지만 그것도 버텨낸 내가 아닌가. 그 뒤로 나의 중심은 어지간한 타격으론 꿈쩍도 안 하는 방어력을 지니게 됐……

─을 리가 없잖아! 아파!! 아파 죽겠어!! 정신이 쏙 빠져나왔다가 다시 들어온 기분이야!! 아아아아악! 이 은은하게 하복부 전체로 천천히 퍼지는 고통! 내가, 내가 곶……! 내가 고자라니!

나는 절로 몸을 숙이고 엎드린 자세가 돼서 리유에게 굴복하고 말았다. 사실 잘못했다는 건 충분히 알고 있다. 경우에 따라 성희롱에 해당돼서 형사적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너무 반가워서. 성빈이마저 나를 대하는 게 어색하게 바뀌었는데, 적어도 리유 만큼은 나를 그대로 대해주는 게 너무 기쁘고 기특하고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그만. 그만큼 며칠 만에 격의 없을 만큼 친해진 리유다. 과연 지금 반응도 그렇게 과민하게 반응하진 않고 씩씩대며 나를 쳐다볼 뿐이다.

“변태다 변태다 했는데 이 정도일 줄이야! 나 같이 귀여운 애한테까지! 변태!”

“나를 변태라고 하는 건 인정하지. 사실이니까. 하지만 날 변태라고 부르는 건 인정할 수 없어!!”

“뭐, 뭐라는 거야! 왜 이렇게 뻔뻔한데! 바보바보멍청이웅이!! 변태새끼야!”

“으아아아! 다른 애들은 몰라도, 너만은 제발!”

“꺄앗, 뭐하는 거야앗!!”

나는 다시금 정신을 차리고 리유의 양 어깨를 부여잡고 진지하게 말했다. 너만은, 너만은 변하면 안 돼 리유야 너만은 나한테 변태라고 하면 안 돼 리유야 너만은……! 너만은 나의 안에서 순수한 여동생 같은 아이로 남아줘~~!

리유는 오늘따라 땍땍거리는 말투가 더욱 심해져서 어린아이 같지 않게 말한다. 그러더니 다시금 발차기를 장전하려 오른발을 뒤로 확 뺀다. 나는 다시금 공손해져서 다리를 곧게 펴고 모은 상태로 ‘미안.’ 하고 리유에게 말했습니다. 리유는 그런 내 반응에 ‘흥!’ 하고 다시금 자세를 바로 한다.

“애들 반응, 이상하지 않았어? 아침에.”

“어. 바보라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얼어 죽는 줄 알았어. 아이스 에이지인가.”

“음……”

리유는 아무래도 아침의 그 분위기를 말하려고 저를 찾아온 모양이다. 누가 아니래, 나도 그 분위기가 질려서 도망치듯 교실에서 나온 건데. 리유는 흡사 추리라도 할 것처럼 턱을 검지손가락으로 받히곤 진지한 눈빛으로 창밖을 쳐다본다. 추리하는 모습도 귀엽구나, 리유는─

“아침에, 애들이 네 욕 하면서 책상 발로 차고 책에 낙서하고 책상에 칼로 뭐 파는 거 봤어.”

“좀 말리지 그랬냐! 그걸 그냥 보고만 있었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어! 나도 무서웠다구!”

“아, 그래. 미안.”

하긴, 솔직히 좋게 말해도 리유도 친구가 있는 건 아니니까. 참 미스테리한 일이지만, 리유처럼 귀엽고 붙임성 있는 애가 왜 친구가 없는 건지. 나야 남자애니까 근본적인 거리낌 같은 게 있으니 그렇다고 할 수도 있을 텐데. 저번에도 생각이 들었던 문제지만 지금은 내 코가 석자인지라. 적어도 애들이 리유에게 나한테 하는 것만큼 적대적인 시선을 보내는 건 아니잖아. 리유도 그렇게 생각하는지 내 얘기를 우선적으로 하고 있다.

“잘은 모르겠는데, 너보고 변태래.”

“……그건 그냥 하는 말 아니었어? 여자애들이라면 그냥 애칭처럼, 나한테 하는 말 아니었냐구. 진심을 담아서 하는 거였어?”

“몰라, 나도. 애들하고 안 친하니까.”

“크윽.”

리유의 말에 나는 울상이 돼서 말했다. 아니, ‘변태’ 라는 말은 늘 너희들이 나한테 하던 말이잖아!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정말 날 변태로 본다는 거야?! 애초에 내 성욕은 정상이야! 변태는 ‘이상성욕자’를 뜻하는 말이라고! 내 성욕이 뭐 어디가 어떻게 잘못된 건데! 남학생이 여학생 보고 성욕을 느끼는 게 당연한 현상 아니면 뭔데! 너희들이 너무 예쁘고 귀엽고 야한 게 잘못이야! 너희들이 치마를 짧게 입어서! 너희들이 교복을 줄여서 가슴이 강조돼 보여서!

아아, 이런이런. 머릿속으로 분노가 들끓어 이성적 판단을 마비시킨다. 이거 완전 강간범들이 변명하는 거랑 똑같잖아. 어쨌든, 리유의 말에 난 더욱 이 상황을 해쳐나갈 자신이 없게 됐다.

“도대체 뭣 때문에 갑자기 날 변태로 보는 거지. 단지 남자애라는 이유는 아닌 것 같은데.”

“몰라. 오늘 아침에 갑자기 그랬으니까.”

“음……”

리유는 주말에 봤던 어린아이 같은 모습과는 정반대로 약간 진지한 말투로 말한다. 그도 그럴게, 지금 상황은 장난으로 넘어갈만한 상황이 아니니까. 여자애들 반응은 정말 심각했다. 이대로 계속 진행되면 정말 왕따가 될 지도. 아니, 이미 진행형인가?!

머리를 굴리고 굴려 봐도 그리 짚이는 일은 없다. 애초에 내가 여자애들하고 부딪힐만한 일이 있어야 변태짓으로 오해 받을 짓이 있지. 접촉조차 전혀 없었는데도 여자애들은 날 이미 변태로 생각하고 있었잖아. 그런건가. 해결책을 내지 못하는데 쉬는 시간이 끝나는 걸 알리는 종이 울린다. 나와 리유는 낭패인 표정을 짓고 황급히 뛰었다. 아 씨, 도리어 더 애매하게 됐네. 머릿속만 더 정신없어졌다. 교실로 들어가니 여전히 도끼눈을 뜨고 적개심 가득하게 날 쳐다보는 여자애들 시선이 신경 쓰이지만 그런 걸 일일이 속으로 세기도 전에 수업이 시작된다.


작가의말

새벽에 과자를 먹으면 안 되는데, 살 뺀다는 사람이 요즘 새벽에 계속 과자를 하나씩 먹습니다. 나 참, 이 나태한 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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