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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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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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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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1.26 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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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09화 - 3

DUMMY

“……”

“……”


어색함이 하늘을 찌를 것 같다. 시내를 같이 걷고 있는 나와 희세. 이 조합, 꿈에서나 볼 수 있는 조합일까. 물론 서로 의식하고 서로 어색해서 세 걸음 정도 떨어져서 걷고 있지만.


“흠 흠! 흐흠!”

“크흠, 에헷!”


나는 공연히 어색하여 헛기침을 했다. 희세 역시 마찬가지로 기침을 한다. 힐끔 한 번 쳐다보기도 그렇다. 그도 그럴 게, 쳐다보면 변태라고 할 거잖아. 내가 음심을 가지고 쳐다보던, 정말 그럴 의도 없이 그냥 쳐다보던. 말을 걸어도, 틀림없이 퉁명스럽게 답할 테고. 이런 어색한 상황을 섞어주는 게 리유였는데, 그 리유가 없으니. 하긴, 생각해보니 리유 때문에 친구가 된 거니까, 그 리유가 없으니 절로 어색할 수밖에.

나는 계속 그런 입장이었으니까, 희세랑 친구가 되도 그만, 안 되도 그만이라는 입장.

솔직히 「이 정도면 충분 하겠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친한 친구는 리유와 성빈이 둘 뿐이지만 그것으로 충분하다. 반의 다른 애들하고 아예 교류를 안 하는 것도 아니고, 「변태 씨」라는 별칭도 처음엔 좀 언짢은 기분이었지만 조금 지내다보니 여자애들이 진심으로 나를 변태라 칭하는 게 아니라 그냥 별명의 하나로써 부르는 것이라는 걸 알아채고는 그냥 즐기고 있다.

…뭐, 일부 여자애들은 진심으로 변태 씨라고 외치는 것 같지만. 희세라든지, 희세 양이라든지, 나희세 씨라든지.


어쨌든 충분히 잘 적응한 나이기에, 희세와 친하게 지낼 필요성은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미 나만의 해처리를 잘 만들었는데, 구태여 확장을 할 필요가 있나. 우리 반 역시 여자애들이 자기 무리끼리 노는 경향이 강하지 반 전체가 하나로 똘똘 뭉쳐 노는 경향은 아니기에, 무리해서 확장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


힐끔 희세를 쳐다본다. 흰 피부에 오똑한 코. 맑게 치뜬 눈. 옆모습마저 굉장히 예쁘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힐끔 나를 보고 말한다.


“뭘 봐.”

“…그냥 본 거유.”

“풉.”


희세의 퉁명스런 말에 나 역시 그리 탐탁지 않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 쪽에서 먼저 퉁명스럽게 나오는데 나부터 살갑게 할 수가 있겠나. 내 심드렁한 사투리 섞인 말에 희세는 풉 하고 웃는다. 하지만 곧 다시금 무서운 표정으로 금세 표정을 바꾸고 묵묵히 걷는다. 0.5초 정도 보여준 웃는 얼굴은 굉장히 예뻤는데.


“저…뭐 먹을래.”

“……그건 보통 식당 앉아서 말하지 않아?”

“아, 그런가.”


걸어가며 할 말도 없어 나는 살며시 말을 걸었다. 희세는 여전히 퉁명스런 말투로 대답한다. 그렇긴 한데, 도저히 할 말이 없으니까. 친해져 보려 노력을 해 봐도 희세 측에서 애써 튕겨내는구나. 흐윽.

솔직히 난감하다. 이런 애한테는 무슨 말을 걸어야할지. 리유야 귀여워만 해주면 뭐든 좋아하는 편이고, 속을 알기 쉬운 솔직한 아이라 터놓고 얘기하면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다. 여자애랑 얘기하는 것인데도.

성빈이는 착한 편이라 내 말을 잘 들어 주는 타입이고, 또 잘 웃어주기까지 한다. 그렇다고 말없이 묵묵히 들어만 주는 스타일은 아니고, 자기 자신도 수다 떠는 걸 좋아하기에 얘기를 하면 마찬가지로 이야기가 꽃을 피운다. 다만 리유와는 다르게 조금은 서로가 조심하는, 그런 느낌.


하지만 희세는 답이 없다. 희세는 예쁘지, 나도 좋아해. 하지만 그 화려하고 당당한 면 때문에 오히려 나는 더욱 말을 잘 못 걸겠다. 섹드립 쳤다가는 그대로 발로 영 좋지 않은 곳을 차 버릴 것 같고. 그만큼 그 쪽 방면엔 엄청 민감한 애니까. 아니, 그건 이해한다. 말했었잖아, 중학교 때 남자들 시선이 너무너무 싫었다고. 그거 엄연히 성희롱 맞으니까. 나도 음란한 눈으로 보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지.

그렇다고 활달하고 적극적인 여자애인 희세에게 축구 얘기나 게임 얘기를 해봤자 씨알도 안 먹힐 테고. 그런 거 엄청 싫어할 것 같은 스타일이잖아, 희세. 오히려 그런 얘기는 정희가 좋아한다. 생긴 것도 쿨하게 남자 스타일인데 이야기 스타일도 그렇다. 그건 위에 형이 둘이나 있다는 정희 가정 스타일 덕분이겠지. 그 이전에, 정희는 솔직하고 담담한 타입이잖아. 희세랑 비교할 순 없지.

어쨌든 그런 사정들 덕분에 나는 희세에게 좀처럼 말을 못 붙이고 있다. 희세 님은 당연히, 나 ‘따위’에게 먼저 말을 걸 분이 아니시기에 고고하고 도도한 표정으로 묵묵히 걷기만 하신다. 결국 아무 말도 없이 김밥지옥까지 서로 남남처럼 걷기만 했다.




“저.”

“아.”


김밥지옥에 도착해서, 서로 시선을 외면하며 자리에 앉았다. 희세는 메뉴판을 보고 고르고 있고, 나는 하는 수 없이 멀리 벽 쪽을 보며 메뉴를 고르고 있다. 슬슬 다 골랐다고 생각이 됐을 때 말을 꺼냈는데 마침 딱 말을 꺼낸 희세와 동시에 말하게 됐다. 순간 눈이 마주치고 다시 시선을 피한다.


“…뭐 먹을래.”

“…이거.”


희세는 메뉴판을 내민다. 이미 체크를 해 놨구나. 나 역시 체크를 하고 잠시 멈칫 했다. 시켜야 하나, 말아야 하나?

리유와 성빈이 때문이다. 지금쯤 양호실에 도착해서 비명을 지르고 있겠지, 리유. 돌아온다고 했는데, 미리 시켜야 하나? 시키면 뭘로 시켜야 하지? 애들 오기 전에 미리 나와 버려서 식으면 어떡하지? 고민하고 있는 사이 희세가 ‘여기요─’ 하고 아줌마를 불러 버린다. 흠칫 놀라 희세를 보니 희세는 씨익 하고 웃으며 나를 쳐다본다.


“애들 것도 시켜야 하는데…”

“남자새끼가 뭘 그렇게 망설여, 돌아왔을 때 시켜도 되잖아.”

“그래도…!”

“됐네요, 이미 시켰으니까.”

“…….”


희세의 말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으으, 저 녀석… 남자애 자존심 건드리는 말을 너무 쉽게 한단 말이지. 이러니 내가 말을 하고 싶어질까. 희세는 여유롭게 미소 짓더니 다시금 싹 나에게서 시선을 땐다. 나 역시 휴대폰으로 시선을 옮겼다.


“…….”

“…….”


다시금 대화 없는 시간. 어색어색. 서로 휴대폰만 보고 있다. 우와, 남들이 보면 얼마나 웃길까.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는데 서로 아무 말도 안 하고 휴대폰만 쳐다보고 있다니. 부끄럼쟁이들도 아니고. 소개팅 나온 처음 만난 남녀도 이 정도는 아니겠다. 아니! 나랑 희세가 소개팅을 한다는 건 아니고!!


“뭐, 뭐라도 얘기를 하지 않을까.”

“……뭐래.”


힐끔 희세를 보고 말했다. 희고 깨끗한 피부에 갈색 웨이브 기운이 있는 머리칼. 어떻게 보면 탈색을 한 것처럼 정말 심한 갈색이다. 지적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은 수준인데. 좀 더 탈색 시켜서 노란색으로 만들면 어떨까.

!!!

금발거유 희세라니!! 이 무슨… 이 무슨 완벽한 조합이냐! 기왕이면 눈도 컬러 렌즈로 색깔 넣고! 하앍! 교복도 좀 더 야하게 줄이고! 치마도 팍팍! 블라우스도 팍팍 줄여서! 하하ㅎㆍㅎㅏ하ㅎ하하!! …그만 해야지.

희세는 내 말에 짧게 대답하고 다시 휴대폰으로 시선을 돌린다. 아, 진짜 어색하네! 뭐라도 얘기를 해야 하는데.


“책 보는 거 좋아하지 않아?”

“……응.”

“지금도 책 봐?”

“……뭐, 그렇지.”

“아 그래.”

“…….”


희세는 짧고 굵은 목소리로 단답형으로만 대답한다. 대화하고자 하는 의지가 전혀 없는 것 같다. 이럴 거면 차라리 날 매도해주는 상태가 더 나을 것 같다. 그럴 땐 드립이라도 쳐서 웃긴 분위기라도 낼 수 있으니까. 지금 이 상태는……


“…….”

“……그렇게 쳐다보지 말아줄래?”

“어?”


말을 걸어도 딱히 별 반응도, 내 말을 받아줄 의지도 없는 희세이기에 난 반쯤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물끄러미 희세를 쳐다봤다. 연한 갈색의 머리칼을 구경하다 그 머리카락을 따라 자연스럽게 시선이 가슴 쪽으로 간다. ……참, 볼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시각적으로도 참 풍족감을 안겨주는 가슴이군. 여자애들이 생각하겠지, 그거 본다고 뭐 하늘에서 떨어지냐고. 아니, 솔직히 아무 이득도 없는 거 알지만, 그냥 보는 것만으로 행복한 걸 어떡해. 하지만 그런 시선을 금세 눈치챈 희세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휴대폰을 식탁에 내려놓고 말한다. 나는 뜨끔 했지만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척 대답했다.


“보고 있었잖아. 변태새꺄.”

“아아니, 난 그냥 네 머리카락 보고 있었는데. 머리카락이 예뻐서.”

“닥쳐, 너도 결국엔 똑같은 남자새끼들이니까…… 진짜 짜증나.”

“…….”


희세는 경멸하는 눈초리로 나를 쳐다보며 말한다. 우와, 이런 식으로 매도당하는 건 좀 싫은데. 저 눈빛은 완전 사람 인간쓰레기로 보는 눈빛이잖아.


“아뇨, 난 정말 의도하고 그렇게 본 게 아닙니다. 제 시선에서 불쾌감을 느끼셨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앞으론 그렇게 보지 않도록 노력하도록 하겠습니다.”

“……다 변명.”


희세의 일방적인 매도에 기분이 나빠진 나는 정중한 말투로 존댓말까지 써 가며 사과했다. 약간은 비꼬는 뜻을 담아서. 희세는 그런 나를 외면하며 대답한다. 덕분에 가뜩이나 어색했던 분위기는 바닥을 모르고 추락하며 급격히 냉각된다. 이제는 거의 대치상태처럼 돼 버렸다.


‘띵동.’

“?”


문득 휴대폰에 문자 메시지가 오는 소리가 들린다. 누구지, 이 애매한 시간에 문자를 보내는 사람은. 나한테 문자를 보낼 만한 사람은 없는데.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본다.


『리유랑 나랑 그냥 여기서 도시락 시켜먹을게 미안해 ㅠㅠ 리유가 못 걷겠데. ─성빈』

‘띵동.’

『미안미안미안미안 미안염ㅠㅠㅠㅠㅠ미안미안ㅠㅠ』

“…….”


성빈이의 문자를 막 다 읽었을 때 새로 문자가 도착해 바로 화면에 뜬다. 아아. 기어이 이렇게 되나. 하긴, 그 정도로 무릎이 까졌는데 다시 걸어오긴 힘들다. 엄살이 심한 리유라면 특히. 굳이 그런 게 아니더라도, 까진 거 치료하고 나서도 얼마간은 잘 못 걸을 정도로 아픈데. 축구 하다 겪어본 적이 있기에, 「다리나 안 아프게 하고 있어. 괜찮지?」하고 최대한 다정한 척 문자를 보냈다. 금세 「응응! 고마워 ㅠㅠ 미안 ㅠㅠㅠ 괜히 다쳐서 ㅠㅠㅠㅠ」 하고 답장이 온다. 그래, 그러면.……

이 어색한 난관을 해결할 유일한 방도인 성빈이와 리유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는데. 원군은 오지 않는다. 아하. 그럼 밥 먹는 내내, 돌아가는 내내 이 냉랭한 분위기 그대로라는 건가. 그건 너무 싫은데.


“흠흠! 어흠! 에헴!”

“……?”


나는 일단 엄청 자연스럽게 헛기침을 해서 희세의 시선을 유도했다. 세 번째 기침을 하고 나서야 희세는 힐끔 나를 쳐다본다. 좋아, 이대로 성빈이랑 리유가 못 온다는 걸 말하면 되겠지.


“넌 왜 나를 싫어하는 거야.”

“…참 당당하게도 물어보네. 뻔뻔하게.”


아니, 나도 이렇게 당당하게 물어보려는 건 아니었어! 이건 혼선이야, 무의식 속에서 생각만 하고 있던 게 말로 튀어나와 버린 거! 아니 보통 안 그러는데 왜 이런데? 드디어 미쳐버린 건가, 내가!


“뭐 별달리 있겠어? 변태 같은 눈으로 쳐다보니까 그러지. 기분 나쁜 눈으로 만날 여자애들 힐끔힐끔 쳐다나 보고.”

“……그건!”


희세의 말에 나는 움찔 하며 몸을 꿈틀거렸다. 뭐라 반박할 말이 없다…! 하지만 이대로 무너질 수는 없지. 사나이 정웅도, 이렇게 무너지진 않는다!


“그건 너희들이 너무 귀여운 게 잘못이야!”

“…에엑. 재수 없어.”


어이어이, 보통 여기선 칭찬이니까 ‘데헷’ 하고 부끄러워하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좀 좋아하는 티는 내라구. 정말 아무 타격도 없는 것처럼 그런 표정 짓지 말고. 나희세, 만만치 않은 인물이로군. 좀 더 강한 타격이 필요하다, 그거지?


“애, 애초에 안 예쁘면 쳐다보지도 않아!”

“…그거 되게 기분 나쁜 말인 거 알아? 그럼 얼굴 안 예쁜 여자애는 여자애도 아니라는거야? 여자는 얼굴이 다다? 몸매 좋은 게 전부다? 그런 낡은 사상이 싫은거라고, 나는. 근데 넌 그대로 하고 있잖아. 왜? 어디 ‘계집이 어디 함부로 입을 놀리느냐! 썩 물럿거라!’ 해 보시지?”

“으으…….”


칭찬이라고 한 말이 오히려 역효과를 낸 것 같다. 희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비수가 되어 마음에 꽂히는 기분이다. 다 맞는 말이라 반박할 수 없는 것도 부끄럽고. 주위 사람들이 힐끔 희세와 내 쪽을 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그러거나 말거나 희세는 자기 할 말 다 하고 휴대폰으로 다시 시선을 옮긴다.


“알, 알았어. 안 그럴게. 솔직히 나도 여자애들, 얼굴하고 가슴으로만 평가하고 있는 게 사실이야. 앞으로는 안 그러도록 노력할게. 그러니까.”

“……너 되게 뻔뻔하게 잘도 말한다! 그러니까 변태새끼 소리 듣지!”

“아니, 왜 사과해도 뭐라 그래! 어떡하라는겨!!”

“그냥 싫어!! 진짜진짜 싫어!!”


나는 다시금 솔직하게 내 심경을 말했다. 하지만 희세의 반응은 싸늘하다. 결국 참지 못하고 나는 짜증스런 말투로 말했고, 희세 역시 마찬가지로 언성이 높아진다. 결국 이런 파국으로 가게 되는구나. 둘 다 씩씩대며 서로를 쳐다보다 동시에 ‘흥!’ 하고 고개를 돌렸다. 아오, 이게 뭐야.


“…성빈이랑 리유 안 온데.”

“…왜?”

“…리유 다리 아파서.”

“…아 그래.”


퉁명스런 말에 퉁명스런 대답. 냉랭한 기운만 감돈다. 서로 완전히 틀어져버린 느낌이다. 친해질 계기도 친해질 이유도 없다. 저 쪽은 나를 완전 쌩 변태 괴물로 취급하는데, 내가 뭐 다가갈 필요가 있나. 생긴 건 예쁜데, 그럼 뭐해! 개차반 같은 성격에 욕에 상대해주기도 힘들다. 긍정적으로 봐 주려고 해도 너무하잖아. 게다가 본인이 여자 얼굴로 판단하지 말랬으니까, 그렇게 해 줘야지.


“…미안.”

“응?”


먼저 미안하단 말이 나오는 희세. 정말 의외다. 나는 고개를 갸웃 하며 희세를 봤다.


“너무 내 생각대로만 생각한 것 같아서, 이러면 또 저번처럼 색안경 쓰고 널 보는 거랑 똑같으니까…… 미안해. 욕하고 때려서.”

“…어, 나도 너무 막 말해서 미안하네.”

“…….”


나는 살짝 볼을 붉히며 말하는 희세를 보고 귀엽다는 느낌을 받았다. 봐, 우악스런 표정 안 짓고 저렇게 얌전하게 약간 수줍은 표정 지으면 얼마나 예뻐. 참, 예쁘긴 예쁘다. 특히 가.


“또 봤지!”

“아, 안 봤!! 아니, 네, 봤습니다! 죄송합니다!”

“아 정말!! 안 그렇게 볼려고 해도! 변태 맞잖아!!”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이번 건 정말 저도 모르게 눈이 내려갔어요, 아 진짜! 보는 것도 잘못이야?! 내가 뭐 눈으로 강간했냐!! 보면 닳어?!”

“뭐?! 가, 가, 가… 뭐라는 거야, 변태새꺄!!”


희세의 말에 나는 다시 한 번 부정하려다 움찔 하고 사실대로 말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희세의 매도에 참지 못하고 속에 있던 말을 전부 해 버렸다. 희세는 잔뜩 당황해서 얼굴까지 빨갛게 됐다. 결국엔 다시 서로 으르렁대는 형국으로 바뀌었다. 어째 훈훈하게 가나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아까 같은 냉랭한 분위기는 아니라는 거지만.


“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진짜. 더 그러면 리유고 뭐고 안 놀 거야?!”

“넵. 최대한 눈만 볼 게요.”

“그래야지. 사람을 눈을 봐야지.”


희세는 결국 행동으로 나섰다. 자리에서 일어나 강한 주먹으로 내 팔과 옆구리를 퍽퍽 때린다. 리유와는 다르게 희세의 주먹은 정말 아프기에, 나는 반항도 하지 못하고 억억 하고 맞았다. 그래, 내 음탕한 눈길에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면 내가 어쩌겠냐, 자제해야지. 희세에게 다짐을 받아 내듯 맹세를 했다. 희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만족한 표정을 짓는다. 아아, 못 살겠네. 어디 서러워서 살겠냐, 가슴도 못 보게 하고.


“좀 그 변태성을 감출 순 없어? 너 남고 다니는 거 아니잖아? 여고라고?”

“아, 알아요! 나도 아는데! 그… 주체할 수가…”

“어어어! 또 시선 내려간다?”

“아니, 아니야! 난 네 눈을 보고 있어! 똑바로!”

“……!”

“……!”


희세의 말에 나는 눈알을 굴리며 말했다. 가슴, 가슴 보게 해 주세요…! 블라우스가 조여서 팽팽히 일어나는 그 주름, 교복 단추가 터질 듯한 그 팽팽함, 엄청난 볼륨과 그것을 나타내는 둥근 그림자. 아니 단순히 감상만 하겠다는데! 희세는 피식 웃으며 놀리듯 나를 말한다. 물론 팔로 자기 가슴을 가리긴 했다. 나는 억울해서 희세에게 말한 뒤 눈을 크게 뜨고 희세를 쳐다봤다. 희세도 나를 쳐다본다. 2초 정도 괜히 서로 눈이 마주쳤는데, 그 정도 시간동안 진지하게 여자애 눈을 뚫어져라 본 적이 한 번도 없기에, 나는 괜시리 창피해졌다. 얼굴이 왈칵 달아 오르는 게 느껴진다. 희세도 살짝 당황해서 고개를 돌린다. 우으… 괜한 이유로 또 어색해지려 하네. 적당한 타이밍에 밥이 온다. 이거 또 밥만 묵묵히 먹게 생겼네.


작가의말

양이 적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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