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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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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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1.2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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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1.19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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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06화 - 2

DUMMY

“…….”

“…….”


김밥지옥에 도착한 우리. 네 명 앉을 수 있는 테이블에서, 나와 리유가 함께 앉고 반대편에 성빈이가 혼자 앉았다. 성빈이와 리유가 서로 마주보게 앉았다. 하지만 어째 냉랭한 분위기는 그대로다. 도리어 아까보다 더 싸늘하다. 아직 메뉴 선택도 안 했고, 두 사람은 여전히 냉랭한 상태 그대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책상을 본다거나 벽을 본다거나 하고 있다. 마치 싸운 것처럼. 나만 가운데서 쩔쩔매고 있다. 제 3자의 입장에서 잘 못 본다면 마치 내연관계로 인해 파국으로 치닫고 있는 세 사람을 보는 것 같을 것이다. 그럼, 내가 바람을 피운 건가? 능력도 좋네! 그거 괜찮네, 뭇 영웅이라면 열 여자를 거느려야 하지 않겠는가! 하하하하! ……근데 난 영웅도 아니고, 지금 세상은 난세도 아니니까, 아마 안 될 거야.


“자, 자! 일단은 뭐라도 시키고 얘기하자! 밥 먹으려고 온 거니까. 성빈이 넌 뭐 먹…”

“치즈라면.”

“아… 그래. 그럼 리유 ㄴ…”

“오므라이스.”

“아… 알았어. 그럼 나는~”


두 사람은 마치 미리 준비해두기라도 한 듯 내 질문이 떨어지자마자 말을 끊으며 바로바로 대답한다. 나는 이러한 무서운 분위기를 타파하고자 괜히 콧소리를 내며 음식을 주문했지만 여자애 두 명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평소 상냥하고 천사 같은 미소를 보이는 성빈이, 평소 아이처럼 귀엽고 깜찍한 리유. 두 사람 다 마치 동상이라도 된 양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런 무뚝뚝한 표정으로 있으니까 정말 무섭다. 이 상황에서 어찌해야 될지 모르는 나의 처지가 더욱 무섭고.


“그, 그럼… 이제 말할 수 있…”

“…….”

“힉! 죄, 죄송합니다! 그냥 짜져 있겠습니다!”

“…뭐야, 그 반응. 내가 뭐 잡아먹어?”

“아, 아니, 그냥… 장난이지… 미안.”


나는 분위기를 환기시키며 또한 아까 했던 리유와 성빈이 둘 사이의 어색함 해소에 대한 얘기를 하려고 말을 꺼냈는데 성빈이가 무서운 기세로 고개를 확 돌려 나를 째려본다. 너무도 빠르고 날카로운 그 시선에 나는 흡사 사감 선생님이라도 재림한 줄 알고 빠른 죄송함을 표했다. 이에 성빈이는 약간 피식 웃으며 대답한다. 그래도 살짝 웃으니까 굳은 분위기가 조금은 풀리는 기분이다. 물론 리유는 전혀 요지부동이지만.


“그러니까 이건… 좀 복잡하다구.”

“그러니까 그냥… 대충 말해주라. 복잡하게 말해도 난 모르니까.”

“…정말. 에휴.”


드디어 성빈이가 무언가 말하려고 한다. 하지만 어째 빙빙 돌려 말하지 않으려 해서 그 말 그대로 돌려주었다. 성빈이는 여전히 피식 하고 웃는다. 리유는 여전히 묵묵부답.


“…여자애들 사이에 암묵적으로 퍼져 있는 그런 거야. 남자인 너한테 말하긴 좀 그렇지만…”

“말해주면 안될까. 이런 거 말해도 될까 싶지만, 나, 리유 이런 상태인 거 꼭 풀어주기로 약속했거든.”

“…….”


성빈이의 말에는 조금 감정이 들어 있다. 말하지 않고자 하는 의지. 나는 조금 떨리는 마음으로 간절하게 말했다. 누군가에게 이런 식으로 부탁한 적이 살면서 몇 번이나 있을까. 하지만 생각했다. 진심을 가지고 말하면 조금은 들어주지 않을까, 하고. 무엇보다 이 얘기는 조금, 리유의 허락이 필요하기에 나는 말하다 말고 리유를 힐끔 봤다. 리유는 나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상 바닥의 무늬를 보고 있다. 툭툭 리유를 쳐서 시선을 나와 마주하게 했다. 나는 강렬한 눈빛으로 ‘말해도 될까?’ 하는 내 의견을 피력했다. 리유는 이해했는지 어쩐지 모르겠지만 한동안 멍한 눈으로 나를 보더니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미동도 없어 보이지만 분명 끄덕였다. 내가 환히 웃으니 다시금 시선을 돌린다.


“처음 봤을 때부터 솔직히 조금 의문이었어. 리유, 정말정말 귀엽고, 착하고, 애교도 많고. 그런 좋은 애인데 어째서 여자애들이 그렇게 리유를 개무시 하는 지. 마치 무슨 금기라도 되는 양, 아예 없는 사람처럼 공기 취급을 하고. 난 그게 이해가 안 가서, 정말 어떻게 생각해도 원인을 모르겠어. 나처럼 직접적인 사건의 원인이 표면에 있던 것도 아니고.”

“……사실은 나도, 리유가 싫진 않아.”

“!”


성빈이는 내 말을 곰곰이 듣더니 가만히 내 눈치를 살핀다. 그리곤 시선을 옮겨 리유를 쳐다본다. 다른 데를 보고 있던 리유. 성빈이의 시선이 느껴지자 조금 볼이 발그레 해진다. 성빈이도 조금은 부끄러워하는 눈치이다. 뭐야 이 여자애들, 서로 눈빛교환하고 부끄러워하고 있어.


“그건 좀 비겁한 일이지만… 웅도, 너 때랑 비슷하게… 다른 여자애들이 그렇게 하니까, 나도 불문율처럼 따르는 이유가 상당히 커. 음… 응. 그래.”

“…….”


성빈이는 볼이 약간 빨개져서 말한다. 그건 그러니까, 다른 애들이 그렇게 하는 걸 묵인하고 본인도 그것에 어느 정도 동조하는, 그런 소시민적 자세 말하는 거지? 그렇다면 결코 둘이 사이가 안 좋은 건 아니잖아! 다른 애들에게 매장(?)당할 확률은 있겠지만, 성빈이는 그걸 감안하고 나에게 말을 걸었던 천사 같은 애잖아. 희세와 말다툼을 해서 오해를 풀기 전 나에게. 리유 역시 말할 것도 없고. 그러니까, 이 얘기를 잘만 끝내면 둘이 얼마든지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결정적 계기 같은 건 없었어? 나처럼, 뭐 사소한 오해가 있었다거나.”

“…내가 아는 건 단편적인 정보밖에 없어. ……사실 리유가 듣고 있어서, 좀 말하기 거북한데.”

“아… 그렇겠네. 그럼, 리유…야.”


성빈이는 머뭇거리며 말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그 ‘단편적인 정보’ 라고 해도, 그건 리유의 치부를 들추는 내용일 테니까. 그것도 내가 알기 전, 중학교 시절의 리유에 대한 걸. 솔직히 욕하는 본인이 앞에 있는데 대놓고 욕을 하는 건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짓이다. 미안하잖아! 게다가 리유는 그걸 바라지 않을 확률이 높다. 리유에게 난, 고등학교 들어와서 처음 사귄 친구니까, 과거에 전혀 연연하지 않고 지금 귀엽고 착한 리유의 모습만을 보고 사귀고 있는 친구인데. 그 과거를 듣고 다시 싫어하게 될 지도 몰라 하는 마음을 리유가 가지고 있지 않을 리가 없다. 나라도 그렇게 생각하겠어. 그래서 리유에게 차마, ‘들어봐도 되?’ 하고 물어보기가 그렇다. 리유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도 차마 입이 떨어지질 않는다. 리유는 여전히 상 바닥을 보면서 손을 꼼지락 거리고 있다. 그러다 고개를 들곤 나를 쳐다본다.


“상관 없어. 말해도 되.”

“아, 그래! 그럼 된다네! 말해줘.”

“…그렇다고 그렇게 기쁘게 들을 건 아니고.”

“아, 미안. 진지하게 들을게.”


조금 퉁명스런 목소리로 대답하는 리유. 나는 절로 기쁜 마음에 나도 모르게 굉장히 명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리유의 눈총을 받게 됐다. 다시금 표정을 근엄하게 바꾸고 말했다. 성빈이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 답을 요구하는 얼굴로 성빈이를 보자 성빈이는 약간 주저하며 말을 시작한다.


“리유… 중학교 때도 그리 다르지 않았어. 지금처럼 귀엽고 활발한 이미지였어. 애들하고도 잘 어울렸었는데… 어느 날인가부터, 몇몇 애들 중심으로 ‘조금 재수 없지 않아?’ 이런 말 나돌고, 또 어느 날부터 조금씩 배척하는 분위기가 되고, 어느 날부터는 ‘말도 하지 마’ 란 말까지 나돌고… 그런 식으로 점진적으로 소문이 커져서, 나, 나도 조금은! 리유한테 서운했던 일도 있고, 해서… 그런 거야. 대부분 애들 다, 그런 식일 거야.”

“역시, 그 일에도 주동자가 있구나. 누군지 명확하게 알 순 없는데.”

“…….”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치 추리하는 탐정이라도 된 양 말했다. 그래, 결국 이런 일이라는 게 누군가 사건을 만든 사람이 꼭 있다니까. 물론 그런 사건에 공감하는 소시민들이 있기에 소문이란 게 성립하는 것이겠지만. 리유는 얼굴이 완연히 빨개져서 손을 꼼지락대며 나와 성빈이의 시선을 피한다. 부끄럽겠지, 아무래도. 중학교 시절 자기의 과거를 객관적으로 제 3자에게 듣는다면, 그것만큼 부끄러운 것도 없겠지. 게다가 이건 좋지도 않은 과거인걸. 치부라고 해도 딱히 손색이 없는 부분이니까. 괜한 짓을 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 그럼 이번 사건처럼 주동자를 만나서 잘 얘기하면…”

“그건 아마 안 될 거야.”

“에? 왜?”


성빈이는 내 말에 어두운 얼굴로 말을 잘라먹으며 말한다. 의외라는 내 표정에 성빈이는 이어 말한다.


“너 같은 경우는 얼마 지나지 않고 나서 바로 말싸움을 한 거잖아. 리유 같은 경우엔… 이제 와선 누가 그랬는지 알 수도 없어. 너무 뿌리 깊게 소문이 퍼져 버린 것도 있고.”

“아… 그런가.”

“…….”


성빈이의 그 말에 어째 리유는 더욱 표정이 어두워진 것 같다. 성빈이도 씁쓸한 표정으로 미안한 눈이 돼 리유를 쳐다본다. 자기 잘못도 아닌데 미안해하는 건 성빈이의 착한 마음씨다. 그래도 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리유를 다그쳤다.


“혹시 누군지 알아? 우리 고등학교로 왔을 수도 있잖아.”

“……아니야.”

“어? 기억 안 나? 아니, 잘 기억하면 기억 날 지도─”

“모른다구!!!!”


리유는 순간적으로 소리 쳤다. 꽤나 크게 소리쳐서, 가게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 쪽을 본다. 나는 리유의 큰 소리에 당황해서 멈칫 했다. 리유는 얼굴이 빨개져서 말한다.


“나도, 노력해보려고 했어. 말해보려고 열심히 노력했어, 그치만! 안 되는 걸 어떡해… 그 일 있은 뒤로는… 아무 말도 못 하겠는데…”

“…….”

“바보야, 상처인데.”

“…….”


리유는 거의 울 것 같은 기세로 말한다. 아닌 게 아니라 눈가에 눈물이 고여 있다. 성빈이는 나에게 작은 목소리로 화를 내며 말한다. 나는 굉장히 난감해서 등줄기에서 식은 땀이 흐르는 것 같다. 부끄럽기도 하고 얼굴이 화악 달아오르기도 한다. 나, 난 리유 왕따 당하는 걸 없애주려고, 열심히 하려고 한 건데… 너무 지나쳤나. 이런 거 생각해서 조금씩 천천히 접근했던 건데. 정작 나 본인이 리유의 상처라는 걸 까먹고 성급히 접근했다. 성빈이는 ‘괜찮아, 괜찮아. 리유는 잘못 없어.’ 하면서 다정하게 말한다. 꼭 엄마가 아이 달래는 것처럼 능숙한 성빈이다. 그럼, 리유는 딸? 내가 아빠? …참, 이런 상황에서 실없는 상상도 잘 한다.


“미안해, 리유야. 내가 잘못 했어.”

“……흥!”

“미안…”


잘못을 했으니 빠른 사과가 무조건적인 답이다. 리유에게 사과하지만 리유는 삐친 티를 팍 내며 고개를 홱 돌린다. 이런 상황에선 또 ‘귀엽다 귀엽다’ 해서 풀기엔 상황이 너무 진지하니까, 그냥 진실되게 사과만으로 풀어줘야 겠다. 징징대듯이 계속 미안하다고 하지만 리유는 여전히 삐쳐 있는 상태이다. 그러다 고개를 다시 원래대로 바르게 한다. 오, 드디어 사과를 받아줄 생각이 생긴건가.


“성빈아.”

“응?”

“나랑… 다시 친구가 돼 줘.”

“…….”


리유는 뜻밖에 나한테 얘기하는 게 아니라 마주보고 있는 성빈이에게 말한다. 조금 머뭇거리며, 하지만 확실하게 말한다. 굉장히 부끄러워하는 걸 보니 마음 속에서 많이 고민하고 생각하고 한 말이겠지. 성빈이는 떨떠름한 표정이 돼서 리유를 쳐다본다. 리유는 고백이라도 하듯 수줍은 소녀처럼 계속해서 이어 말한다.


“예전엔, 성빈이랑도 친했는데, 성빈이는 착해서, 숙제도 자주 빌려주고, 공부도 알려주고 그랬는데… 다시, 다시 친해지고 싶어. 성빈아.”

“…….”


리유는 참 진솔한 말투로 말한다. 약간 어린애가 징징대는 것 같은 어린 목소리라 더 정감이 가는 느낌이랄까. 확실히 진심이 담겨 있다는 느낌은 든다. 하지만 성빈이의 표정은 그리 시원치가 않다. 성빈이는 잠시 심호흡을 하고 한 마디 꺼낸다.


“네가 말 해서 기억났는데, 서운했던 거, 기억 났어.”

“응? 어어… 사과할게! 나, 나도 뭐였는지는 기억 안 나지만…!”

“공책 빌려줬던 거. 네가 잃어버렸거든. 엄청 열심히 정리했던 건데. 다들 예쁘게 정리했다고 그랬었는데. 그거 잃어버리고 울었거든.”

“아아… 기억나. 미안. 진짜진짜 미안…!”


성빈이는 무심한 표정으로 말한다. 약간 화가 난 것 같기도 하고, 조금 냉랭해 보이는 표정이다. 리유는 바로 자기 죄를 시인하며 고개를 푹 숙인다. 불쌍할 정도로 서글퍼 보이는 리유의 표정이다. 그래도 성빈이의 표정은 그리 변하지 않는다. 저렇게 냉정해 보이는 성빈이는 처음 본다. 오늘따라 의외의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 성빈이구나. 내가 모르던 과거 얘기니까, 내가 모르는 성빈이의 모습이 나오는 것일수도 있겠다.


“…됐어, 다 잊어버렸어. 괜찮아. 그렇게까지 사과할 거 없어. 응, 알았어. 다시 친구, 받을게. 나도, 친구 하자고 부탁해도 될까?”

“……서, 성빈아…”


성빈이는 금세 냉랭했던 표정을 밝게 웃는 표정으로 바꾸며 원래의 맑은 톤의 목소리로 말한다. 방금 전까지는 리유의 반응이 재밌어서 놀린 거란 말인가. 리유 역시 금세 표정이 밝아져선 감격한 표정이다. 그러더니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다. 쪼르르 성빈이 옆으로 가더니, 갑자기 성빈이를 꼬옥 껴안는다. 성빈이는 앉아 있었기에, 리유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성빈이를 안는다.


“뭐, 뭐여. 갑자기.”

“워, 원래 이랬어. 중학교 때도.”


갑작스런 리유의 행동에도 성빈이는 그리 놀라지 않으며 말한다. 나는 감탄스런 눈초리로 두 여자애를 쳐다본다. 참, 리유도 속도 좋지, 1년 간이나 애매한 사이로 지냈는데 화해했다고 금세 저렇게 가서 껴안다니. 뭐, 딱 리유 같은 행동이라고 해야 할까. 성빈이도 그리 싫지는 않은 표정이다. 리유는 성빈이의 얼굴에 볼을 부비며 말한다.


“후으응─ 성빈이 피부 부드러워─”

“우왓, 그거 되게 위험한 발언인데. 흰 어떤 꽃이 떠오르는 단어야.”

“무, 무슨 생각 하는 거야 너?! 여, 역시 웅도 넌…”

“아, 아니야! 너야말로 무슨 생각 하는 건데! 난 그냥 백합과의 다년생 풀쪼가리를 말한 거야! 백합! 백합이라고!!”


나는 여자애 둘이 저렇게 끈적하게 스킨십 하는 걸 정면에서 보는 건 처음이기에 무심결에 한 마디 했다. 이에 성빈이는 얼굴을 왈칵 붉히며 흠칫 놀라양 팔을 엇갈려 가슴을 가리며 말한다. 의자까지 조금 뒤로 빼는 걸 보니 완연히 나를 경계하는 모습이다. 아니야, 아니라고! 너무도 억울해 원래 생각하던 것을 다 말해 버렸다. 그 말을 해도 성빈이는 아예 ‘백합’ 이라는 단어의 속뜻을 모르는 것 같지만. 아아, 그나저나 저 방어자세, 역시 성빈이가 최초 시전자일까. 저 자세, 이제 여자애들이 취할 때마다 노이로제 걸릴 것 같다. 어느 정도 수라장이 정리 되고, 마침 때 좋게 음식이 나왔다.


“한입만 주라.”

“흐흥─ 싫어!”

“이따 가면서 아이스크림 사 줄게.”

“우왕, 진짜! 알았어, 여기!”

“아, 초콜릿 없는 부분으로 줘.”


나는 장난스럽게 리유에게 말했다. 리유는 싫다고 하면서 고개를 돌린다. 아까 삐쳤던 건 금세 풀렸다. 하긴, 그거 다 성빈이랑 관계 회복 때문에 얽힌 건데 성빈이가 쿨하게 다시 친구가 돼 주기로 했으니. 리유는 정말 기분 좋아 보이는 표정으로 방긋방긋 웃으며 밥을 먹는다. 리유가 웃으니 나부터도 기분이 좋다. 그래, 역시 리유는 웃는 게 좋아. 울적하거나 돌처럼 굳은 표정 보면 나부터 마음이 답답해지잖아. 그래서 리유한테 ‘네 왕따를 해제해 주겠어!’ 하고 큰소리 친 거지만. 성빈이도 그런 리유를 귀여운 듯 흐뭇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사실 그거 엄청 참기 힘들었는데.”

“응? 뭐?”


성빈이는 생각난 듯 박수를 작게 치고 나를 보며 말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되물었다.


“리유 귀여운 짓 하는 거 보면. 진짜진짜 귀여워서 껴안아주고 싶을 만큼 귀여운데, 그렇게 못 하잖아.”

“그치그치? 엄청 귀엽지?! 역시,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게 아니구나.”

“……저질. 변태.”

“아니 왜?! 네가 그 공감 유도한 거 아니야!? 그렇게 정색하지 마, 무섭다구!!”

“…헤헤, 장난이야 장난. 변태라는 말 진짜 노이로제 걸렸나보구나?”

“아 진짜! 놀랐잖아! 아아, 진짜.”


나는 글로벌 호구인걸까. 사감 선생님한테 놀림 받는 것도 모자라 이젠 성빈이한테까지 농락당하고 있다. 성빈이는 딱히 이런 것까지 의도하고 한 건 아니고, 정말 장난삼아 한 번 해본 것 같지만. 그래도, 여자애가 그렇게 정색하면서 냉정한 말투로 ‘저질, 변태’ 하고 말하면 정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라구. 맛나게 점심을 먹곤 김밥지옥을 나섰다.


“아, 잠깐 서점 좀 들리자.”

“응? 왜?”

“오늘 선생님이 뭐 이상한 거 한데서… 어휴.”

“아~ 맞다. 신고식 하신댔지?”

“…무섭다야.”


가게를 나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나는 성빈이에게 말했다. 리유에게 말했듯 아이스크림을 사주고 같이 먹으며 길을 가고 있다. 성빈이는 의문인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날 보다가 금세 이해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인다. 사감 선생님이, 오늘 저녁에 이상한 신고식을 하겠다고 하셔서… 어휴. 서점까지 들리고, 용무를 다 마치고 학교로 돌아간다.


“있잖아, 웅도야.”

“응?”


거의 학교에 도착했을 무렵. 나와 성빈이는 아이스크림을 다 먹고 홀가분하게 걷고 있는데 리유는 아직도 먹고 있다. 덩치도 작아서 아이스크림도 작게 먹나. 아직도 반 조금 안 되게 남아있다. 다 녹고 있는데, 아이스크림. 성빈이는 나에게 작게 말한다.


“리유 오해 풀어주는 거, 나도 같이 해도 될까?”

“오… 그래주면 나야 좋지! 오오, 고마워.”

“어차피 나도 이러면 다른 애들한테 찍혔고. 찍힌다는 표현은 좀 그렇지만… 아무래도 다들 리유 배척하는 상황인데 나 먼저 리유한테 친하게 대하면 그 쪽 애들이 조금… 안 좋게 보거든. 그래서, 같은 배를 탄 심정으로 도와주고 싶어, 리유.”

“고마워, 성빈아! 아, 예전에 불렀던 것처럼 불러도 되?”

“에, 그, 그건 좀 창피한데…”

“에에에~ 부탁할게~”


성빈이는 눈을 찡긋 하며 말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고맙다고 말한다. 성빈이는 이어서 나에게 이유를 말해주는데, 리유가 손을 파닥거리며 말한다. 성빈이랑 리유는 손을 잡고 걷고 있어서, 성빈이 손까지 같이 까딱거려진다. 리유의 말에 성빈이는 약간 부끄러워하면서 망설인다. ‘예전에 불렀던 것’이라니. 아, 그건가. 나를 ‘웅’ 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성빈이도 무슨 애칭 같은 게 있었나.


“응, 그럼… 둘만 있을 때에만 해야 되?”

“응! 비찡!”

“뭐야 그게!! 엄연히 한국말 쓰는 대한민국에서!!”

“어? 뭐가??”

“아, 아니야, 나도 모르게…”


나는 무심한 듯 시크하게 관심 없는 척 하며 둘의 얘기를 듣다가 리유가 ‘비찡’ 이라고 말하는 순간 바로 끼어들어 큰 소리로 말했다. 말해놓고 무안해서 다시금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그거 혹시… 일본식 조어법 아닌가요… 쨩의 변형인 찡에다가, 성빈+찡에서 빈찡으로, 거기서 ‘응’ 탈락시켜서 ‘비찡’ 으로… 아니면 내가 너무 과민반응 하는 걸까. 모르겠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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