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에 핵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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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생각.
작품등록일 :
2020.05.16 10:33
최근연재일 :
2022.03.28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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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8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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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불쾌한 골짜기(3)

DUMMY

“맞아, 이곳 독기의 골짜기야.”


귓가에 소름이 돋는다.

피오네는 이를 악물며 주먹을 휘둘렀지만, 그대로 붙잡혀 바위에 처박히고 말았다.


“정화교는 독기의 골짜기에 오염된 마력을 살포했어. 그것도 골짜기 전체가 뒤덮일 만큼의 방대한 양을. 아주 조금만 있어도 전염성 있게 퍼져 나가는 것들인데, 그게 무더기로 쏟아지니 골짜기 전체가 병들고 독기로 가득 차 버렸지. 사람들은 독기를 이기지 못하고 죽어나가거나, 아니면 그 독기와 완전히 한 몸이 되어 변종 독인이라는 명칭을 가지게 되었고.”


도플갱어의 끈적한 혀가 피오네의 볼을 핥았다.


“이곳은 처음부터 지옥이 아니었어. 너희 정화교단이 이곳을 독기의 골짜기로 만든 거야. 정화교가 지옥을 만들어낸 거라고.”

“······.”


피오네는 두 눈을 감았다.

여전히 반응하지 않고 묵묵부답이자 도플갱어는 숨넘어갈 듯 낄낄거린다.


“그래도 실험의 성과 하나는 확실한 것 같더군. 골짜기 전체를 제물로 바친 결과 만들어진 것이 그 유명한 정화코인과 교단 비법의 대지 정화 기술이니 말이야. 원하던 것을 모두 얻은 교단은 그 이후로 가파르게 세력을 키워 거대 세력의 한 자리까지 차지했다지. 정화교에서 참 대단한 일을 해냈어. 짝짝짝!”


이번에는 괴물의 혀가 귀에서 깔짝댔다.


“내가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알고 있는지 궁금하지? 내가 또 한동안 이곳 골짜기의 독인들과 함께 지냈거든. 개미잡이 마을의 장로와 벌잡이 마을의 장로, 그 둘 모두가 오랜 반목을 잊고 서로 힘을 합칠 정도로 정화교를 증오하더라고.

한때 풍요롭고 평화롭게 살던 그들을 이렇게 만들어놓고, 감히 ‘정화’의 이름을 붙이는 가증스러운 것들이라고. 그 위선자들을 박살낼 수만 있다면 어떤 대가라도 지불하겠다고. 지불했을 거 같아?”


대답을 바라고 한 질문이 아니었다. 도플갱어는 엄숙한 자태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지불했지. 이곳 골짜기의 독인들 전부와 한때는 평범한 곤충들이었던, 그러나 마찬가지로 오염된 마력에 의해 변이된 변종 괴수들 전부를 나에게 선물했어. 보다시피, 지금은 충성스러운 내 병사들이 되었지. 나는 그들의 유언을 받들어 정화교 쉘터를 기꺼이 부술 작정이야.”


피오네는 기진맥진한 채 그대로 바위에 파묻혔다. 질식할 것처럼 깊게, 아주 깊게···.

도플갱어는 두 손으로 그녀를 짓누르며 스스로의 논리에 취해 열변을 토했다.


“그런데 그런 나를, 독기의 골짜기 속 모든 독인들의 원한과 염원을 짊어지고 수행하는 나를 네가 가로막는다고? 이곳을 지옥으로 만든 정화교의 주구인 너 따위가? 도대체 무슨 자격과 명분으로 그리하겠다는 거냐?”


뭔가 이상했다. 아무리 치열한 격전을 치룬 뒤라지만, 그녀의 체력은 이리 쉽게 고갈될 만큼 약하지 않았다. 그 정도로 단련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너희 위선자들이 늘 그러하듯, 몰랐다고 주장하겠지. 그것은 교단이 과거에 저지른 일일 뿐, 쉘터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말이야. 하지만 과연 그럴까? 쉘터와 그곳의 사람들은 아무런 죄도 없을까?”


도플갱어의 숨결이 차갑게 닿았다.

그 속에서 느껴지는 묘한 악취와 함께 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이거다.

피오네는 전신에서 느껴지는 탈력감과 불쾌감, 이질감의 근원을 느끼고 그곳에 모든 신경을 집중했다.


“쉘터가 왜 하필이면 이곳, 독기의 골짜기 바로 위에 지어졌는지 아나? 정화교 쉘터는 태생부터가 자기네들이 저지른 골짜기의 악덕을 가리기 위한 곳이야. 뽑아먹을 만큼 다 뽑아먹고 나니, 이제는 부끄러워져서 자기네들의 치부를 감추고 싶었다 이 말이지.

골짜기를 탈출하는 길이 쉘터로 통하는 쓰레기 통로밖에 없는 게 우연일 것 같나? 교단이 그렇게 만들어놓은 거야. 독인들이 골짜기에서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평생 거기서 썩으라고 막아놓은 거지. 혹여나 끈질기게 쓰레기 통로를 따라서 기어 올라온다?

그럼 뭐해. 푹-하고 찔러 죽여 버리면 그만인걸. 이게 정화교 쉘터야. 아래로는 혹여나 골짜기를 탈출할지 모를 독인들과 괴수들을 막는 역할을 하고, 위로는 다른 세력들이 골짜기에 관심을 두지 않도록 시선 끄는 역할을 하는 정화교의 더러운 실체.”


무언가 느껴질 듯 말듯 간질거렸다.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덤으로 자기네들 사이에서 나온 각종 쓰레기들도 독기의 골짜기에, 마치 쓰레기장이라도 된 것 마냥 아무렇게나 쏟아버리고 말이야. 그렇게 버린 쓰레기들이 골짜기에서는 독인들 사회의 부자들이나 먹는 귀한 음식들로 취급된다는 사실, 알고 있지? 골짜기에서는 쓰레기장이 가장 풍족한 곳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이 때문에 생겨났지.”


도플갱어는 어느새 바위 속으로 전신이 말려들어가다시피 해 얼굴만 빠져나온 피오네의 턱을 거칠게 잡아챘다.


“이래도 쉘터가 죄가 없다고, 네가 죄가 없다고 할 셈이냐? 역겹고 위선적인 쉘터와 정화교.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을 지은 인간들.”


도플갱어의 두 눈에서 어둑한 푸른빛이 불길하게 일렁였다.


“나는 그 모든 것들을 무너뜨릴 거다. 이대로 쉘터를 무너뜨리고 바깥세상에 나가, 나의 군단으로 역겨운 정화교와, 역겨운 인간들에게 종말과 지옥을 선사해주마. 너희가 골짜기에 사는 이들에게 그리했듯이.”


마침내,


찾았다.


도플갱어가 긴 연설의 클라이맥스에 다다라 자아도취에 빠져 있을 때였다.

피오네는 마침내 자신의 몸 곳곳에 연결되어있는 미약한 촉수 가닥들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도플갱어의 몸에서 뻗어 나온 그 검은색 은밀한 가지들은 그녀의 피부 밑으로 스며들어 기력을 빨아먹고 있었다.

도플갱어와 싸울수록 이쪽은 점점 지쳐가기만 하는 반면, 놈은 쌩쌩하다 못해 힘이 넘쳐나 저리 날뛰어대던 이유였다.


“핵이 떨어지고 마력이 오염되었어도, 너희 바퀴벌레 같은 족속들은 절반 정도밖에 죽지 않았다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야. 하지만 동시에 다행인 일이기도 하지. 그때 전부 다 죽었다면, 지금 내가 할 일이 없어졌을 테니까···.”


도플갱어의 말소리가 점차 흐릿해졌다.

피오네는 스스로에게 자문했다.


방금 알아차린 사실을 어떻게든 이용할 수 없을까?

놈이 칠칠치 못하게 흘리고 다닌 저 촉수들을 통해 놈을 공격할 수 있을까?


“알아들었나? 내가 나머지 절반을 죽일 거라고! 내가 너희들의 절망이요, 종말이요, 종막이다. 내가 네놈들을 심판할 것이다! 할 말이 있다면 해 봐라, 죄인아! 너는, 정화교와 인류의 죄 앞에서 떳떳할 수 있느냐? 네 그 잘난 신념으로 내 앞에서 아직까지 맞설 수 있겠냔 말이다!”


모른다.

어쩌면 어떤 짓을 시도하더라도 저 괴물에게 상처 하나 입히지 못할지도 몰랐다. 화만 돋우고 그대로 끝날지도 몰랐다.

성공하더라도 그것은 단 한 번의 기적에 불과할 뿐, 이미 체력을 많이 소모한 그녀는 모든 힘을 소진해 쓰러져 일어나지도 못하게 될지도 몰랐다.

하지만 결국 모든 일은 해보기 전에는 모르는 법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은 성공과 실패의 확률을 따지기보다는 우선 자신의 얼굴로 잔뜩 침 튀기며 일장연설을 벌이는 저 괴물에게 한 방 먹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다.


피오네는 입을 열었다.


“상관없다.”


괴물이 흠칫 놀라며 반문한다.


“···뭐라고?”


피오네는 핏물을 토하며 다시 한 번 말했다.


“상관없다고 말했다, 괴물아. 뚫린 입만큼이나 그 막힌 귀에도 좀 신경을 써야겠구나.”


도플갱어는 어이가 없다는 듯 크게 웃었다.

이내 피오네의 머리채를 붙잡고 입을 크게 벌린다.

벌어진 입의 이빨들이 상어의 그것처럼 사납게 돋아있었다.


“아니, 괴물은 너희겠지. 멀쩡하던 사람과 벌레들마저 괴물로 만들어버리고, 이 세상을 멸망시킨 진정한 괴물들! 그런 괴물들에게 어울리는 결말이 무엇인지 아나? 더 큰 괴물에게 잡아먹히는 거지! 이렇게 머리부터 집어삼켜지는 거···!”

“그래. 네 말이 맞다, 괴물아.”


피오네는 담담히 말했다.


“정화교는 어쩌면 거대한 괴물일지 모른다. 나 또한 그런 정화교의 사제로서 괴물 같은 일을 저질렀을 지도 모르고. 정화교도, 나도 죄인이겠지, 네 말대로.”


순순히 인정하는 모습에 다가오던 입이 멈춘다. 그러나 피오네의 말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그러나 정화교가 괴물이라 해서 네가 괴물이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다. 정화교가 범죄의 집단이라 해서 네가 죄인이 아니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하여 네가 저지른 일들-그들을 군대로 부리고자 골짜기의 독인들을 몰살시키고 이제는 정화교 쉘터까지 무너뜨려 네 군단의 일원으로 삼고자 하는 것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도플갱어는 움찔했다.

정화교 쉘터를 무너뜨리고자 하는 것이 크나큰 대의명분에 의해서가 아니라 군대의 수를 늘리고자 함이었음을 간파당한 까닭이었을까.

놈은 피오네의 머리채를 끊어질 듯 잡아당기며 소리쳤다.


“그들이 원한 일이었다! 나는 그들의 울부짖음을 들었어. 그들은 정화교를 증오했다! 그리고 마침내 무너뜨릴 수 있게 되었지!”

“증오했겠지. 그러나 죽어서까지 무너뜨리고자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살고 싶었을 거야. 네 뜻에 동조한 몇몇 독인들은 몰라도, 다른 독인들은 네 언데드가 되고 싶어 하지 않았을 거다. 네가 한 짓은 아무리 포장해도 골짜기의 모든 생명체를 말살하고 시체의 군단으로, 네 무기로 탈바꿈시켰다고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그 냉철한 말에 반박당한 도플갱어는 분개하며 펄펄 뛰었다. 그 뜀박질에 맞춰 푸른 머리카락들이 뜯겨나갔다.

피오네는 머리가죽이 뜯겨지는 고통에도 신음 하나 흘리지 않고 똑바로 노려보았다.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뭐가 어쨌다는 거냐. 어차피 나도, 너희들도 똑같은 괴물이다! 내가 내 목적을 위해 골짜기의 생명들을 말살했다고? 너희도 너희의 목적을 위해 골짜기에 방사능을 살포했잖아! 그저 괴물이 괴물을 잡아먹을 뿐이다. 너도 결국은 나와 같다! 하등 다를 것이 없어!”

“아니, 다르다.”


피오네는 도플갱어의 안면, 원형은 자신의 것과 같으나 흉측하게 일그러져 더는 똑같은 얼굴이라 보기 힘든 그 위에 피 섞인 침을 뱉었다.


“같은 괴물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너는 네가 저지른 일을 후회하거나, 바꿀 줄 모른다.”

“그러는 네놈은 다르다는 거냐? 네놈은 무엇을 바꿀 수 있다고!”


피오네는 도플갱어의 이빨 들이미는 모습에도 전혀 주눅들지 않은 채 말했다.


“나는 여기서 네놈을 막을 거다. 네놈과 네놈의 군단이 세상으로 나가 더 끔찍한 일을 저지르지 않도록 막을 거다.”

“무슨 재주로? 네깟 것이 어떻게···.”

“그리고 그리한 뒤에는 정화교의 죄를 책임질 것이다. 네 말대로, 나 또한 결국은 교단의 일원이니 몰랐다는 비겁한 변명은 하지 않으마. 알아야 할 것을 몰랐다는 것 또한 원죄이니. 네놈과는 달리, 나는 우리의 죄를 마주보고 그 값을 이행하려 노력하겠다.”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하는 하늘빛 눈에서 성운처럼 반짝이는 미증유의 무언가.

어느 굳건한 의지, 휘거나 구부러지는 한이 있어도 결코 부러지지는 않는 고결한 신념이 그 속에 있었다.


이해할 수도 없고, 비웃을 수도 없는 것.


어쩌면 이 순간 그가 본 것은 성인이 탄생하는 순간의 후광Halo일지도 몰랐다.


도플갱어는 저도 모르게 겁을 먹어 뒤로 물러났다가, 그 사실에 자존심이 상했는지 정체 모를 괴물의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나는 정화교를 바꿀 거다. 다시는 교단에게 불합리하게 상처받는 이들이 없도록 내 평생을 바칠 거다. 교단이 본래의 목적대로 삿된 것들과 사람을 괴롭히는 것들의 정화를 위해서만 움직이게끔 할 거다.”

“······.”

“혹여나 너에게 죽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은 독인이 있다면, 그들이 고통 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모든 지원을 다 할 것이며, 독기의 골짜기를 원상태인 풍요의 골짜기로 되돌리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할 거다. 그리하더라도 죗값을 전부 갚을 수는 없겠지만···."


피오네는 말을 끝맺었다.

그 목소리는 가벼우면서도 무거웠고, 후련하면서도 미련했다.


"그것이 설사 영원히 다 갚을 수 없을 무기의 징역이라 해도, 역을 행해야만 하겠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겠지. 그게 죄를 마주보는 죄인의 올바른 자세일 테니까.”


그것이 피오네가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설사 그것이 자기가 모르던 교단의 죄일지라도, 나는 정화교의 사제이므로 그것을 짊어지고 살아가겠다.


죗값을 치루기 위해서 무엇이든지 하겠다.

설사 교단의 썩은 살과 괴물 같은 속을 도려내야 할지라도, 그리 하겠다.

죄인으로서, 죄인답게 세상을 살아가겠다.


괴물이 어이없다는 듯 내뱉는 소리가 있었다.


“네가 뭔데 정화교를 바꾸겠다는 거냐?”


피오네는 웃었다.


“너는 역시 내가 아니다. 나에 대해서 조금도 모르는군.”


정곡을 찔린 듯, 도플갱어의 얼굴이 악귀의 형상으로 험악하게 굳었다.


피오네는 말했다.


“내 이름은 피오네 갈란. 정화교의 전 수석 이단심문관이자 다음 대 이단심판관장의 자리가 예정되어 있었던 자.”


정화교의 이단심판관장.

정화교의 주축이라 불리는 대주교들조차 함부로 할 수 없는 지위이다. 교단의 모든 비밀과 허물을 파헤치고, 또 고칠 수 있는 자리.

그녀는 지금 당장에라도 복직하면 언젠가는 정화교의 차기 권력자가 될 수 있는 신분이었다.


그녀는 얼마든지 정화교를 바꿀 수 있었다.

그 과정이 지나치게 힘들고 고난스러우며, 어쩌면 죽기보다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그녀에게는 그것을 해낼 수 있을만한 잠재력이 있었다.


피오네의 기억을 불완전하게나마 복사해서 제 두뇌에 집어넣은 도플갱어였다. 저 말이 뜻하는 바를 모를 리가 없었다.

괴물의 눈알이 얼어붙으며 여사제를 노려보았다.


저 인간.

아무리 부서지기 직전까지 몰아붙여도 고무처럼 다시금 튀어 오르는 저 강철 같은 의지의 여인.


그녀는 정화교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동시에 품고 있는 존재였다.

교단의 찬란한 샛별. 정화교의 죄인이자 성인, 지휘자이자 행동자가 될 수 있을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영웅英雄.


그 사실을 눈치 채자마자 몸이 움직였다.

명확한 의도를 지니고 움직였다기보다는, 두려움의 떠밀려 움직이듯 어설픈 공격이었다.


“오냐, 네가 그리 대단한 존재라면, 어디 내 뱃속으로 들어가고도 멀쩡할 수 있을지, 그러고도 정화교를 바꿀 수 있을지 보자!”


피오네의 그것과 한때는 닮았던 입이 쩍 벌어지고 검은 속을 드러냈다.

위에서부터 덥석 잡아채 삼키려던 찰나.


피오네는 준비해두었던 비장의 무기를 펼쳤다.


그녀의 타고난 능력.

이 세상 모든 물리적 에너지를 흡수하고 또 방출하는 역전逆轉의 묘리.

피오네가 인지하기만 했다면, 그 어떤 기상천외한 공격수단이나 특수능력도 이 역전의 세계를 빠져나오지 못한다.


당연히 도플갱어가 게걸스럽게 그녀의 전신에 박아 넣은 미세한 촉수 가닥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와중에조차 기력을 쪽쪽 빨아대던 그것이 극성으로 발휘한 변이 능력의 영역에 들어온다.


촉수가 힘을 빨아들이는 방향이 역전되었다.

피오네에게서 도플갱어로, 도플갱어의 힘을 역으로 빨아 피오네에게로 옮긴다.


도플갱어도 피오네의 몸을 훔쳐온 만큼 똑같은 능력을 지니고 있는 바, 금방 어찌 된 일인지 알아차릴 테니 두 번 다시 있을 기회는 아니겠지만 상관없었다.


이 한 번이면 충분했다.


순간 급속도로 빠져나가는 기력에 기세 좋게 아가리 내밀던 도플갱어가 휘청거렸다.

균형을 잃고 무너지는 괴물을 향해 정화교의 딸이 뛰어오른다.

피오네는 순간 급증한 힘으로 바위 속에서 솟아오르며 도플갱어의 면상을 쥐었다.


“내가 말했지, 널 막겠다고.”


그대로 놈의 몸을 꺾고, 뒤집어 떨군다.


한때 피오네가 처박혀 있던 바위 위에 도플갱어가 대자로 엎어졌다.


쾅!


우습게도 도플갱어는 피오네가 놈과 싸우는 내내 경험하던 진기의 손실을 잠깐조차 버티지 못했다.


바위더미에 가라앉은 채 움직이지 못하는 괴물과 인간의 형체가 혼재된 검은색 그림자.

괴성 지르는 그것을 향해 달려든다.


갑작스럽게 머리에 가해진 충격에 정신 차리지 못하는 도플갱어를 향해, 그 탐욕스럽게 벌어진 괴물의 아가리를 향해.


피오네는 오직 이 순간만을 위해 준비한 일권을 뻗었다.



─────────────────!



바위를 깨부수고, 죄인의 주먹이 꽂혔다.


작가의말

오랜만에 복귀하기도 했고, 또 내용이 이어지는 거여서 끊기 묘한 부분이 있다보니 연참했습니다. 정말 간만의 연참이네요. 

참, 시험은 어떻게든 끝났습니다. 사실 중간에, 수요일 즈음에 한 편쯤을 어떻게든 써서 올릴 생각이었는데 마음처럼 되지 않더군요. 그래도 이렇게 돌아왔습니다. 생각보다 빨리 돌아오지 않았나요? 다 제가 좀 마음을 굳게 먹은 덕입니다. 시험이 끝났다고 마구 놀지 말고 남은 과제들도 해치우고, 소설 연재도 성실하게 해서 완결까지 달리고...그럴 생각입니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한 분들께 읽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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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흑색마나(2) +21 20.12.20 870 46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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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불쾌한 골짜기(1) +22 20.12.13 846 47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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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톱니바퀴가 돌아갔기에(4) +11 20.12.11 807 41 15쪽
92 톱니바퀴가 돌아갔기에(3) +11 20.12.10 828 39 14쪽
91 톱니바퀴가 돌아갔기에(2) +18 20.12.09 873 4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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