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에 핵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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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작품등록일 :
2020.05.16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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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23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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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과 제자(2)

DUMMY

[그대는 제국을 세운 저 강대한 태양의 용이 두렵지도 않은가 보군?]

“예, 뭐. 너무 막연하게 느껴지니. 그리고 아까는, 제게 해를 끼칠 수 없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이 내가 개입하지 않는 경우에는 그러하겠지. 그러나 용은 용을 알아본다. 희박한 확률이지만 혹여나 태양룡이 잠시라도 지상의 일에 관심을 가진다면, 그리고 내가 제국의 문제에 개입하는 것을 눈치 챈다면, 곧바로 전쟁일세. 그대는 파리 목숨처럼 헛되이 죽게 될 것이고.]

“···.”

[북방의 용사에게 소원을 들어주는 북부의 수호신이기에 앞서, 나는 세계의 균형을 지키는 수호자다. 그대의 요구는 지나치게 위험하여, 잘못될 확률이 조금이라도 있는 이상 함부로 받아들일 수 없어.]


단호히 말하는 어투는 이미 모든 게 결정되었으므로, 다른 소원을 빌든가 돌아가라는 뜻이 느껴진다.

그러나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어차피 쉽게 되리라 여기지도 않았던 일이다.


소원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면, 거래를 하면 된다. 왜, 그런 말도 있지 않는가.


[세상에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 없다? 글쎄. 수백 년쯤 지나고 나면 그럴듯한 이야기로군. 그래서 제안할 거래 사항이라도 있는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거래의 기본, 상대방의 니즈를 파악하는 것.

확실히 불리한 협상이었다.


백룡은 그가 원하는 것을 이뤄줄 수 있다. 신과 같은 초월적 존재이므로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일개 필멸자, 인간이다. 백룡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고, 안다 한들 그것을 해낼 수 있으리라는 확신도 없다.


그러나 그런 그가 지닌 것이 하나쯤은 있었다. 그만이 지니는 특별한 무언가가 하나쯤은 있었다.


“이세계의 정보.”

[···흠.]


유논은 이 세계에 도착한 이래 단 한 번도 제 입으로 꺼낸 적 없었던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상대가 무려 북부의 백룡이고, 거래의 품목이 제국의 멸망쯤 되는 이상 할 수 있는 모든 수를 써먹어야만 했다.


“분명 알고 있으셨습니다. 제가 다른 세상에서 왔다는 것을. 제가 이곳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그러하다. 다만 세계 간의 계면이 약해지고 균열이 일던 순간을 관측하고, 그대가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보았기에, 그대의 신체 구성이 미묘하게 이곳의 인간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았기에 추측해낸 정보에 불과하다. 그대가 어찌하여 이곳에 왔는지, 본래 세상으로 돌아갈 방법이 무엇인지는 알지 못한다.]


그런가. 솔직히 실망했으나,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그런 쪽으로 기대하고 설산을 오른 것도 아니었으니.


다만 의아하기는 했다. 이쪽 세상의 신과 같은 용들조차 모르는 일이라면, 그는 어째서 이 세상에 떨어졌다는 말인가?

정말 그 모든 것이 단순한 우연이었다는 말인가? 아무런 이유 없이, 그냥 뚝 떨어지고 지금까지 흘러갔다고?


[물론. 순전히 우연이지. 그대가 고뇌한 것처럼 세계 신의 은밀한 안배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게 있었더라면 내가 가장 먼저 알았을 터.]

“···.”

[그대가 유일하지 않아. 이따금 그런 일들이 일어나지. 차원에 난 구멍을 뚫고 들어오는 괴물체, 혹은 괴생명체들. 대부분은 죽거나 망가지지만, 극히 일부는 살아남지. 그저, 그대도 그 일부일 뿐이야.]

“아.”

[그러나 이렇게 오랫동안 살아남아서, 심지어 설산을 올라 나의 앞에까지 도달한 경우는 처음 보는군. 이계인들 대부분은 마력을 받아들이길 힘겨워하는 것 같던데 말이야···. 그래, 여러모로 특이하지. 그대도, 그대가 자란 세상도. 관심이 가.]


그렇다면···!

그저 불운한 이계 출신 생명체의 사례 일부라 들었을 때의 암울한 감정도 잠시, 희망에 차 두 눈을 번뜩였다.


[그러나 관심은 어디까지나 관심일 뿐. 관심이나 흥미 하나만 보고 상품을 구매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아니네. 그 세상에 관한 정보가 거래의 대상이 되려면, 실용성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대는 그대가 지닌 정보가 이 용에게도 실용적일 것이라 자부하는가?]


지구에 관한 이야기, 이 세상 누구도 듣도 보도 하지 못했을 그 진귀한 이야기···그러나 백룡에게 도움이 될지는 의문인 이야기.


유논은 스스로 자신이 알고 있는 지구의 지식의 가치를 매겨보았다.


지구의 철학, 사상, 역사, 문학에 대한 지식들.

그곳의 수학, 과학, 의학, 발명품에 관한 기초적인 지식들, 그곳의 모습과 생활양식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


[전부 훌륭하나, 내게는 도움이 되기 힘들겠군.]


그랬다.


백룡이 전기를 알아서, 비행기를 알아서, 자동차를 알아서, 총을 알아서 무엇 하겠는가?

마법 하나면 현대 지구의 기술력으로 행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심지어 행할 수 없는 것까지 행할 수 있는 것이 저 초월적인 용일진대.


철학, 역사, 문학에 관한 이야기가 백룡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전부 관심은 가질 수 있어도, 정신적으로 풍요로움을 줄 수는 있어도, 실질적인 이득을 주지는 못하는 내용들이었다.


그가 백룡이라도, 겨우 이런 영양가 없는 정보들 때문에 위험을 자처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잘 알고 있군. 그래, 그럴 거라 예상했네. 도움을 줄 수 있을 만한 정보 혹은 기술이 있다면, 그대가 이쪽 세상의 오러를 배우기보단 그 능력을 활용했을 테니까. 그쪽 세상의 능력이 그대에게도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뜻인데, 하물며 나에게는···말할 것도 없겠지. 그래서 다른 거래 품목은 없는가?]


있을 리가 없었다. 있었다면 그것부터 꺼냈겠지.


유논은 한숨을 쉬었다. 하기야, 다른 존재의 힘을 빌려 제국을 무너뜨리는 게 쉬울 리가 없었다. 결국 이런 종류의 일은 혼자 해내야만 하는 법이었다.


결국 먼 길을 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오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과연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일일지 의심스럽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어떻게든 해내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소원을 적당히 다른 무엇으로 빌어야 할까 고민하던 도중.


[흠. 거래 품목이 없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

“예, 그렇습니다. 대신 다른 소원을 빌겠습니다. 잠시 고민할···.”

[사실 거래 품목이라고 볼 수는 없겠지만, 이계의 지식 외에 그대에게 흥미가 가는 부분이 존재는 하네.]


희망고문이라도 하려는 건가. 그래도 물어봐서 나쁠 것은 없었다. 그게 무엇이냐고 물으려던 순간, 백룡이 먼저 나서 입을 열었다.


[그대의 몸.]


순간 정적이 흘렀다.


유논은 저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부터 고민했다. 이계인의 육체라 특별한 구석이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인체실험이라도 하겠다고?


[아니, 아니. 신체 구조 자체는 평범하네. 이쪽 인간들과 미세한 차이는 있지만, 말 그대로 미세한 차이에 불과할 뿐이야. 내가 말하는 것은, 그대의 몸이 지닌 재능, 가능성이네. 느끼지 못했나?]

“···어떤 재능에 관해서 말씀하시는 것인지.”

[마법.]


마법의 시조는 단언했다.


[마법에 대한 재능. 내가 본 인간···아니, 내가 본 용을 제외한 모든 생명체 중 가장 마법에 적합해 보이는 신체로군. 두뇌에 관한 영역은 복잡하니 차치하고서도, 신체의 마력과 마나 적응도가 무시무시하리만치 높아. 그쪽 세상의 사람들은 전부 그러한가?]

“···!”


순간 혼란스러움에 안면을 찡그린다. 그럴 리가 없었다.

그라고 마법이 싫어서 배우지 않았겠는가? 편하게 손 하나만 까딱하고 주문 외우면 불덩이와 얼음 창을 쏘아낼 수 있는 신비스러운 능력인데.


이미 시도해 보았다.

스스로에게 차고 넘치는 마력에 관한 능력-흡수, 통제, 조작 등의 뛰어난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나름 큰 기대를 품고 황도의 마법 기관들을 찾아가 보았었다.


결과는 처참한 실패. 그에게는 마력에 대한 자질은 있을지 몰라도, 마나에 대한 자질이 없었다.

불의 적색마나, 땅의 황색마나, 숲의 녹색마나, 물의 청색마나···알려진 모든 빛깔의 원소들은 그에게 접근하지 않았다.

아무리 불러도 응답하지 않는 꼴이, 마치 무서워서 도망치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저 스스로가 다른 세상에서 왔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의심해볼 뿐이었다.

아무리 재능이 없는 사람이라도 최소한 하나 이상의 마나에 대한 적합성 정도는 보이는 법인데,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며 검사를 맡은 마법사도 놀라워했다.


[그런 사연이 있었군. 어쩐지 그리 찬란한 재능을 지니고 보다 뛰어난 효율의 마법을 익히지 않고, 비효율적인 지상의 검술만 단련했나 싶더라니. 오호 통재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대는 마법에 적합하네. 이미 말했듯이, 내가 본 지상의 그 어떤 생명체보다도 마법에 적합해 보이는군.]

“그 말은, 제게 있어 적합한 마나가 따로 존재한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런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세상에는 수십 까지 빛깔의 마나가 있고, 개중에는 분명 황도의 마법기관이 부리지 못하는 종류도 있을 테니까.

이를테면 저 백룡의 백색마나라던가, 전설상으로만 들려오던 미지의 흑색마나, 금색마나, 은색마나, 회색마나와 같은 태초의 신비들.


자신이 그런 마나를 다루는 전설적인 대마법사의 재목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결국은 망상에 그쳤을 뿐이었다.


동화책이나 소설에서나 일어날 법한 일.

실제로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고, 그런 기적을 기대할 바에는 조금이라도 스스로의 실력을 갈고닦는 편이 나았다.

마법이 없어도 검술 하나만으로도 먹고 사는 데에는 지장이 없었으니.


[그러나 검술만으로는 생존이 가능해도, 그대가 꿈꾸는 혁명은 불가능하겠지.]

“···.”


정곡이었다. 그렇기에 백룡을 찾아온 것이기도 했다. 무너져가는 제국이라고는 하나, 완전히 붕괴하려면 아직은 한참 멀었다.

단순히 두뇌, 그리고 검으로는 부족했다. 그 이상의 압도적이고 강력한 무력이 필요했다.


“제게 그런 마법을 부릴 자질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자세한 것은 확인해 봐야 알 일이지. 그대는 아직 원석에 불과하네. 덩치만 크고 알맹이가 작은 경우도 있으니. 다만, 개인적으로 상당한 기대를 품고 있다는 것은 알아두라.]

“그리 기대하시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으음···.]


별 생각 없이 던진 질문에 불과했는데, 백룡은 뜻밖에도 어찌 설명해야 할지 고민하는 모양새였다. 그리 의아하리만치 오래 침음하다, 이내 정신파를 쏘아 말한다.


[일단 그대가 품고 있는 한 가지 오해부터 정정해야 할 필요가 있겠군.]

“···?”

[그대에게 있어 적합한 마나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네. 그대는 웬만한 모든 종류의 마나들에 대해 뛰어난 적성을 지니고 있네.]

“그게 정말입니까?”


이건 또 이거대로 충격적이다. 귀를 의심하던 때, 백룡에게서 쏘아진 새하얀 빛줄기가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내 괜히 ‘가장 마법에 적합해 보이는 신체’라 말한 것이 아니지. 적색마나, 황색마나, 녹색마나, 청색마나···심지어는 내가 다루는 백색마나까지. 전부 그대의 곁으로 다가가고자 하는 성질을 지녔네.]


그렇게 품을 감싼 새하얀 장막이, 그의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보여주겠다는 듯 그에게로 가까워지는 자그마한 붉은색, 노란색, 녹색, 푸른색, 흰색 및 기타 등등의 원소들을 보여준다.


그가 그 작고 귀여운 원소들을 향해 손을 뻗으려던 순간, 그것들이 전부 허공에서 벽에 부딪히기라도 한 듯 소멸되어 버렸다.

포식자에게 겁에 질려 잡아먹히는 피식자의 모습이 이러할까. 저항하지도 못하고 순식간에 사그라진다. 일말의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이유는 잘 모르네. 다만 추측하건대···다른 속성의 원소보다 먼저, 훨씬 빨리 그대의 곁에 도달한 마나가, 다른 색상의 마나들을 전부 밀어내고 완전히 자기들만의 영역을 구축한 것으로 보이네. 특이한 현상이지. 완벽, 일체에 가까운 마나와의 적성이 아니고서야 일어나지 않을 일인데.]

“제게 그런 적성이 있단 말씀이십니까? 하지만, 어떤 마나와?”

[바로 그게 문제로다. 알아볼 수가 없어.]


이쯤 되면 놀랍기보단 당황스러웠다.


마법의 종주인 백룡조차 알아볼 수 없는 빛깔의 마나라고? 그런 게 가능한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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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1 흑과 백(Black & White)(1) +1 22.03.24 199 9 15쪽
270 스승과 제자(4) +6 22.03.23 218 12 15쪽
269 스승과 제자(3) 22.03.23 190 13 13쪽
» 스승과 제자(2) +3 22.03.23 193 1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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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 드래곤 사냥(5) 22.03.22 185 11 15쪽
263 드래곤 사냥(4) +2 22.03.22 191 1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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