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에 핵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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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생각.
작품등록일 :
2020.05.16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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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28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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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27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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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2)

DUMMY

‘네가 어디를 가든, 너와 함께하마.’



“헉!”


잠에서 깨어났다. 벌떡, 의자를 내팽개치듯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니, 모두가 날 바라보고 있었다.


“······.”


그제야 이곳이 학교이고, 때는 쉬는 시간이었으며, 나는 잠시 책상에 엎드려 낮잠을 자는 중이었음을 깨달았다···.

여긴 그곳이 아니었다. 나는 또다시, 그 빌어먹게도 아련한 꿈을 꾸고 만 것이다.


애들한테 아무 일 아니라는 제스쳐로 손을 저으며 다시 앉았다. 흐르는 식은땀을,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는다.


젠장, 이제는 학교에서마저. 게다가 낮인데. 이제는 낮잠도 마음대로 못 자게 생겼다.


“하아···.”


점심시간 때의 일을 떠올렸다. 나는, 결국 그 남자를 찾지 못했다.


교정까지 달려 나갔을 때엔 이미 아무도 없었고, 나는 그대로 멍하니 서 있다 갈비탕도 못 먹고 돌아왔다.

배고파 돌아가시겠네. 매점에서 빵으로나마 배 안 채웠다면 아사했을지도 모른다.


“무슨 일 있어? 설마 또 그 꿈 꾼 거야?”


친구 녀석이 내 책상 위에 걸터앉으며 말을 걸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기가 막힌 타이밍이다.


“···내가 너한테 꿈에 대해서 말했던가?”

“지난번에 말했잖아. 매일 밤마다 자세히 기억은 안 나는데 몹시 괴상한 꿈을 꾼다며? 그래도 나름 재밌는 꿈이라더니.”


내가 그런 것까지 다 말했던가. 아무리 친하다고는 해도, 이런 사적인 것까지? 의외로 이 녀석한테 많이 의지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요즘은 좀 그래. 재밌다기보단 뭔가 슬프고 답답한 그런 기분이 든달까.”



‘기다리고 있어라. 내가 찾아가마.’



또다시, 가슴이 콱 막히는 기분. 이유 모를 감정이 신체를 지배했다. 또다시 뭔가가 떠오를 듯 말듯 뇌리를 스친다.


“흐음···이제 슬슬 막바지에 다다랐나 본데.”

“막바지라고? 뭐가?”


영문 모를 소리를 하는 친구 녀석에게 묻자, 턱짓으로 벽에 걸린 시계를 가리킨다.


“쉬는 시간. 거의 끝나가잖아.”

“아.”


확실히, 곧 수업이었다. 오늘 마지막 수업···방과후도 있고 하니 바로 집에 가진 못하겠지만.


‘그나마 아직 고3은 아니라 야자가 자율이라서 다행이지.’


3학년부터는 강제로 야자를 해야 한다고 들었다. 특히 성적 좋은 학생들은 더더욱···.

친구 녀석이라면 몰라도, 우등생인 나는 빠져나갈 수가 없는 구조라 이 말씀이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종이 울렸다. 친구 녀석이 손 흔들며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책상 서랍에서 교과서를 꺼냈다.


이대로 눈 깜빡이면 시간이 휙 지나가서, 하교할 때가 되어있으면 참 좋을 텐데.


하품하며 눈을 깜빡였다.



깜빡.




* * *




“야, 야!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어? 어. 아니, 그냥.”


뭐지?


하교···길이었다. 친구 녀석은 내 눈 앞에 손을 흔들고 있었고.


학교가 언제 끝났지? 눈살을 찌푸리며 기억을 더듬자, 뭔가 흐릿한 기억들이 지나가기는 했다.

마지막 수업을 들었고, 종례를 했고, 방과후 수업을 끝낸 다음 친구 녀석과 만나서 교문 밖으로 나왔고, 지금은 학교 앞 내리막길을 걸어가는 중이고···.


다 기억나는데. 기억은 나는데, 왜 직접 겪은 것 같지가 않지?

게임에서 컷씬을 스킵한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잠을 자려고 침대에 누워서 눈을 감았는데, 그러고 눈을 뜨자마자 다음날 아침이 되어버린 것 같다고나 할까.


“너 오늘 진짜 이상하네.”

“어···뭐가.”

“오늘 아침부터 지금까지, 계속 정신이 다른 데에 가 있잖아. 너 스스로가 제일 잘 알 텐데? 아까 방과후 시간만 해도 쌤이 너 지목해서 물어보는데도 멍 때리고 있다가 대답 못 할 뻔했고.”

“···.”


그런 일이 있었던가. 솔직히 잘 기억도 안 난다. 무어라 변명할 수도 있겠지만···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했다.


“모르겠어.”


정말 모르겠다.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내가 왜 이러는지. 이 나이에 벌써 치매가 온 것도 아닐 테고.


“그 꿈 때문에 계속 그러는 거야? 신경 쓰여서? 아니면···그 남자 때문에? 점심시간에 교정에 있던 건 나도 얼핏 보긴 했는데. 어디까지나 얼핏이지만.”

“그것도, 모르겠다.”


걱정스러워하는 친구의 모습. 한숨을 푹 쉬었다. 이게 도대체 뭐 하는 짓인지.

이제 학교 끝났으니 학원에 가야 하는데, 이 정신머리로 학원 수업은 제대로 들을 수 있으려나.


그나저나···.


내가 어디 학원을 다녔더라?


“···.”


머리가 깨질 것만 같았다.

이제껏 쌓아 온 기억들이 물살처럼 빠져나가는데, 붙잡을 수가 없어 손만 허우적대는 그런 상황.


제자리에 서서 주먹만 쥔 채 침묵하던 나를 향해, 친구가 말했다.


“그런데, 어쩌면 둘 다 아닐까.”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꿈과 남자, 남자와 꿈. 둘 중 하나가 문제여서 네가 이렇게 된 게 아니라, 어쩌면 둘 다 문제인 거 아닐까. 어쩌면 그 둘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하나의 무언가···네가 잊어버린 것, 동시에 꼭 기억해내야만 하는 그것 아닐까?”


그게 뭔데. 내가 뭘 잊어버렸는데. 내가 뭘 기억해야 하는 건데.

내가 뭘 잘못했다고. 난 그저.


머리를 부여잡으며 혼란스러워 하던 도중 떠올랐다. 저 녀석이 이런 말을?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수상했었다.

저 말투는 내가 아는 내 친구가 아니다. 다른 무언가였다. 내가 모르는 존재였다.


“너···누구야.”


친구가 웃는다.


“스스로 생각하기 싫으니까, 이제는 문제의 책임을 나한테 돌리는 거야? 내가 누군지 몰라?”

“시발, 장난치지 마! 안 웃겨!”

“나도 웃기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장난치고 있는 건 네가 아닐까? 솔직히 말해봐. 너, 정말 내가 누군지도 모르지?”

“그게 무슨 개소리···!”

“내 이름이 뭐였는지, 기억하기나 해?”


내 이름이 뭐였는지, 기억하기나 해?


그 질문이 메아리처럼 머릿속을 울렸다.

고등학교 들어와서부터 곧바로 친해진 내 친구···그 이름···.


머릿속을 지우개가 스윽 긋고 지나가면 이럴까. 그 부분이 백지가 된 것처럼, 친구와의 추억은 전부 떠오르는데 이름만은 기억나지 않았다.

보통 기억나지 않는 것들은 그와 연관된 경험, 추억, 이야기들을 떠올리다 보면 그물을 끌어올리듯 확 생각이 나기 마련인데, 이건 그런 건덕지조차 없었다.

애초부터 나한테 없는 지식이었던 것마냥, 머릿속이 텅 비어버린다.


멘붕에 빠진 내게 친구가 말했다.


“기억 못하는구나.”

“아니, 그게 아니라─.”

“널 보내줄 때가 되었다는 이야기겠지.”


보내긴 뭘 보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오늘은 몸 상태가 안 좋아 보이니까, 학원은 쉬어. 학원 쌤한텐 내가 말해 놓을게. 너 아파서 못 쉰다고.”

“무슨, 애초에 너 나랑 다른 학원 다니지···.”

“쉿. 이제 집에 돌아가 쉬어. 다음에 보자, 시드야.”


친구는 그렇게 부드럽게 내 등을 떠밀었다. 어째선지 저항할 수 없었다.


다음 순간, 나는 내 방 침대 위에 엎어져 있었다. 어떻게 집까지 오게 된 건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냥 그대로 온몸의 기운이 쭉 빠져서, 교복만 대충 벗어던지고는 쓰러지다시피 누워 버렸다.


왜 이렇게 졸리지.


하품과 함께 몰려오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그대로 초저녁부터 까무룩 눈을 감았다···.


오늘은 제발 좀, 꿈 안 꾸고 편히 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 * *




‘네 운명을 받아들여 세상을 구할 것인지, 아니면 이곳에 홀로 남아 죽을 것인지.’



“······.”


깨어났을 땐 이미 아침이었다.

거울을 보니 내 눈가엔 말라붙은 눈물 자국이 있었다. 붉어진 눈시울이 이젠 익숙하다.


늦잠을 자버리는 바람에 조금 늦었다고 생각하며 바닥에 널브러진 교복을 입으려다─문득 생각났다.


“오늘 토요일이구나.”


그래···. 어제가 금요일이었지.


어제가 금요일이니, 자고 일어난 오늘은 토요일이다. 그리고 토요일은 학교를 가지 않는 날이다.

한국에서는 적어도 2012년에 주 5일 수업제가 실시된 이후부터는 쭉 그래왔다. 아이 좋아라.


그대로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어쩐지 힘이 없었다.


학교를 가지 않아도 여전히, 토요일 아침부터 학원을 가야 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학원을 가야 하는데, 정작 내가 어디 학원을 다녔는지, 어떻게 가야 하는지가 기억나지 않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머릿속이 뿌연 안개에 잠긴 것만 같았다. 어제 그대로 쓰러져서 열몇시간을 자 버린 것도 그렇고, 아무래도 몸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았다.

큰 병이라도 걸린 걸까. 병원을 가봐야 할지도.


학원 선생님한테 오늘 아파서 못 갈 거 같다고 문자를 보내려다가, 주소록에서 도저히 학원 선생님의 번호를 찾지 못해서 그만뒀다.

수업 시작할 때 되면 선생님한테서 알아서 전화가 오겠지. 난 모르겠다.


처음 보는 이름과 처음 보는 번호들로 가득한 주소록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속이 메스꺼웠다. 토할 것 같아.


“···바람 좀 쐐야겠는데.”


밖에 나가서 뭐라도 먹고 배를 채워야겠다. 아침 국밥이라도···.


그대로 대충 외투를 걸치고 밖으로 나가려다가 멈칫, 혹여나 집 주소를 까먹을까봐 휴대폰에 주소를 메모해놓고 집을 나갔다.


진짜 치매환자도 아니고, 이게 뭐 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밥 다 먹고 나면 정말 큰 병원 정신과라도 가봐야 하나.




* * *




국밥은 맛있었다. 그리고 국밥 한 그릇에 밥 말아 든든하게 비울 때까지 학원 선생님한테서 전화는 오지 않았다.

온 세상이 나를 깜빡 잊어먹은 듯한 기분. 그리고 또 내가 세상을 잊어버린 기분. 여태껏 살아온 인생의 궤도에서 갑자기 툭 떨어져 나간 듯한 불안한 심정이다.


길거리 벤치에 앉아 멍하니 낙엽 떨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쌀쌀해지는 날씨, 나뭇가지에 붙어 팔랑이는 갈색 나뭇잎이 내 처지 같아 보였다.


그러고 보면, 병원에 가야 했다. 귀찮은데. 이 근처에 큰 병원이 어디에 있더라···.


정신과 들렀다고 기록 남아서 불이익이 있다거나 하진 않겠지. 찝찝한 기분으로 인터넷에서 근처 병원을 찾아보던 때였다.


문득 느껴지는 기시감에 고개를 들어올렸다.


휴대폰 너머, 저기 길가 건너편에.


한 남자가 이쪽을 지켜보고 있었다.


“···또?”


인상이 확 구겨진다. 저도 모르게 썅 소리가 튀어나왔다. 이번엔 또 뭔데. 나한테 왜 그러는데.


이쪽이 무슨 반응을 하든 묵묵히 바라보는 사내. 그 심유한 검은 눈동자. 흑요석을 마주하는 듯한 심연의 눈.


어쩐지 오기가 생겨서 그 방향으로 중지를 치켜들었다. 나보고 어쩌라고. 뭘 원하는데.

어차피 또 일어나서 따라가 봤자, 사라질 거잖아. 바람처럼 사라져서, 또 나를 정신병자로 만들 거잖아. 또 내 기억을 뺏어갈 거잖아!


고개를 거세게 휘저으며 눈을 감았다.

이번엔 절대로 안 쫓아간다. 환각이건, 실제건 할 말이 있으면 자기가 찾아오라 해. 난 안 가! 절대로 안 가!


그렇게 한참을, 아주 한참 동안을 눈을 콱 감고 있었다. 세찬 바람이 볼을 발갛게 물들이고, 움켜쥔 두 손이 부들부들 떨릴 때까지 그러고 가만히 있었다.


다시 두 눈을 떴을 때,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환상 따위가 인간의 의지를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지.


흡족해하며 고개를 돌리자, 남자는 내 바로 옆 자리에 앉아 있었다.


“···!”


얼타는 나를 향해 그가 입을 열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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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 스승과 제자(4) +6 22.03.23 218 12 15쪽
269 스승과 제자(3) 22.03.23 190 1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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