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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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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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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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26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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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마지막 가을비 2

DUMMY

늦은 오후, 점차 검어지는 하늘을 보며 셋은 하산을 시작했다. 불자리와 취사 자국 전장정리를 하지 않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제부터 담배꽁초도 분해하지 않고 그대로 버린다. 그렇게 한 시간을 내려가 어느 능선 돌기에 도착했을 대, 중위가 손으로 먼 곳을 지시했다. 저 도시. 셋은 로또에 맞은 것처럼 흥분했다. 그러나 차분함도 필요했다. 서로 굳이 물어볼 필요도 없이, 공격은 자정 정각이다.


“우리 팀은 보위부로 합시다.”

“거 좋네요.”

“열차역에서 공격이 일어나면 동참합니다.”


“비 옵니다. 비.”

"앗, 차거..."

“갑자기 즐거워지네 씨발.”

“개 적같은 날 개 적같게 응?”

“이하사, 일회용 라이터 완빵 하나 있지?”

“예.”

“오늘은 피하지 말고 탈 만한 거 다 질러.”

“여기 엔간한 거 다 목재로 지었지...”

“볼 만 하겠다. 소돔과 고모라여?”

“그게 뭡니까?”

“태울만한 도시라는 거!”


그들에게 전쟁은 다소 예상못한 형태로 흐르고 있었고 내심 그 이유를 상상한다. 아군 올라오는 것이 이렇게 늦어지는 건 최전선에서 혈전을 치른다는 의미. 엄청난 포격과 대포병 사격과 공격 방어 기동. 보전기동. 대전차사격과 탱크포. 그 모든 일들이 엄청난 희생을 치르며 남쪽에서 벌어지고 있다. 자신들이 산에서 가만히 있다면 최전선 아군 병사들 희생을 방관하는 꼴이다.


조금 떨어져 현실은 양쪽에서 진행되고 있다. 보지 않아도 선하다. 아군과 미군 전폭기들이 저 멀리 북으로 날아가지만 아직 이곳은 직접 폭격이 별로 없다. 어쩌면 두 공군은 중국 개입을 경계하고 있다. 왜 자꾸 전투기들이 저 위로 올라가고, B-52 같은 폭격은 이곳에서 일어나지 않을까. 오키나와에서 이륙하면 그리 어려울 일도 아니다. 영변 핵 시설 근처는 아마도 가루가 되었을 것 같다.


이러한 길어지는 전시에 대한 불안은 북한의 핵무기 사용이란 함정에 있었다. 북한은 ICBM이 완성되었다고 해도 미국을 향해 쏠 수 없다. 그 즉시 미 해군 잠수함 SLBM 수십 기가 북한 땅으로 날아와 석기시대된다. 북한 핵탄두가 멀쩡하게 보존되어 서울을 향해 마지막 발악으로 쏠 가능성이 더 현실적이다. 그럴 경우도 미 잠수함은 반드시 핵탄두로 북한에 응사한다. 북한의 초토화란 결과는, 그들이 어디에 쏘나 같다. 항상 봐왔던 그 (지독히 자기중심적인) 비논리적 태도 때문에 전쟁 길어지는 것이 불안하다. 강하게 나가다가도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꼬리를 내리고 화제를 바꾸는 것도 그들 주특기.


개전과 동시에 미군은 영변과 핵/미슬 시설에 대한 엄청난 폭격을 감행했다. 그들에게 최후의 카드가 살아남으면 전쟁은 어정쩡하게 회담으로 끝날 수 있다. 그러면 피해는 한국이 모두 고스란히 입고 휴전선 위치만 달라진다. 빨리 끝나야 한다. 지역대장이 말한 마지막 선택도 그 기본적인 불안감에 기초하고 있다. 그런 정전협상이 다시 이뤄진다면 북으로 올라온 이 대원들은 모두 공중에 뜬다. 북한이 이들을 공정하게 포로로 대우해 남으로 보내줄 가능성은 매우 불투명, 혹은 없다고 본다. 대원들도 안 믿는다. 여러 지역에 분포되어 침투된 여단들이 자진해서 대다수 항복할 가능성도 낮다. 믿지 않기 때문이다. 과거 지리산 빨치산과 같은 일이 북한에서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


가장 좋은 방법, 현대 특수전에서 가장 훌륭한 방법은 대원들의 직접타격이 아니다. 첩보보고와 항폭유도가 최선책. 그런 항폭유도팀은 지역마다 들어가 임무를 수행하지만, 그것도 전쟁이 짧아야 일정하게 가능하다. 길어지면 전폭기 배정이 어려워진다. 모든 곳에서 항폭을 요청하고 애타게 기다린다. 그 갭이 생기자, 점차 정보관측보고를 올려도 전폭기가 바로 오지 않기 시작했다. 북한 반항공도 전술이 발전하며 적응한다. 남에서도 내용의 경중을 따지기 시작한 것. 좀 작다 싶으면 안 온다. 아무리 재래식이라고 해도 적 지역 폭격은 공군 역시 피해를 동반한다.


어느 순간, 넘어온 부대들은 일정한 승부를 봐야한다는 생각에 도달했다. 그때부터 지역대 단위 활동이 강력해졌다. 눈에 들어온 목표를 장거리교신으로 관측보고만 하고 있을 수 없었던 것. 시간은 흐르고 불안해진 대원들은 마냥 바라만 보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지역대는 하루 쉬면 곧바로 밤에 내려가 보급선 파괴 교란 저지작전을 펼쳤다. 굶주리고 힘겨운 상황에서 쉬운 일 아니었다. 먹을 것도 구해야하는 이중고가 겹쳤고, 적응한 적 때문에 작전은 험난해지고 병력은 조금씩 소모된다.


하루건너 산을 내려가 작전하고 또 산타기의 반복. 오를 때는 개땀에 다리가 후달거리도록 탈취한 탄약과 식량도 지고 올라와야 했다. 매일 그런 노획이 가능했던 것도 아니고, 사격하고 저지한 다음 수류탄 공격 후에 즉각 퇴출하는 경우도 많았다. 체중이 급격하게 빠지고 체력이 저하되고, 이어 적의 산중 추격이 점차 공격적이로 이어져 많은 고비를 넘겼다.


이중고 속에서 대원들은 옛날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곳은 60년도 넘은 과거에 치열한 전장이었다. 6.25 때 이 지역 전장은 그렇게 길지 않았다. 38선 이북은 인천상륙작전 이후 급격하게 치고 올라가는 북진이었고, 거의 다 왔을 무렵 고통은 시작되었다. 중공군의 기습에 가까운 참전으로, 퇴각하면서 많은 유엔군과 국군이 전사 실종되었다.


바로 이 땅인 것이다. 이런 곳에서 눈보라가 휘날리는 가운데 산타고 추격하는 중공군 공격을 받으며 무수한 인명이 이름 모를 곳에서 명을 달리하며 사라져갔다. 그 누가 정확히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모를 그 많은 역사들. 청운의 꿈을 품고 자라난 젊은이들이 그렇게 비참하게 스러져갔다. 미성년도 있었다. 어쩌면 전쟁은 인류 역사에서 그다지 새로운 것이 아니다. 항상 그것으로 인해 역사가 바뀌고 국토가 재조정되었다. 한 세대가 쉬면 그 다음 세대가 위험해진다. 이제 누가 6.25 참전용사들을 진심으로 존대한단 말인가. 젊은 세대에게 너무나도 먼 역사다.


진실은 각자에 있다. 그 진실들이 모여서 전투가 되고 역사가 된다. 그 모든 역사의 시작은 남들 보기에 이름 모를 사람이지만, 누구의 아들이었고 아버지였고 삼촌이었다. 그들은 무거운 M1을 어깨에 걸고 눈보라치는 이 땅을 등 뒤에서 날아오는 총알을 피하며 걸어서 퇴각했다. 그렇게 사라진 군인들은 변변히 위로도 받지 못했고 훈련도 충분히 못 받았다.


한국전쟁 중기까지 국군이 욕도 많이 먹었지만, 임금을 모시던 나라가 해방되어 신식군대로 창설되었다고 단 몇 년 만에 효과적인 전투력을 발휘한다는 것도 가능할 수 없는 현실이다. 열악한 병기 전술 속에서 젊은이들이 아버지들이 스러져갔다. 그 땅에 이들이 서 있다. 발 빝에 그들 할아버지 세대의 뼈가 묻혀 있다. 그들도 저 남쪽을 바라보며 추억과 안타까움을 뒤로 하고 저 세상으로 갔다. 그리고 이곳에 침투해서 스러져간 특전대원들의 시신과 뼈가 바로 그 위에 얹힌다.


님께서 가신 길은

영광에 길이 옵기에

이 몸은 돌아서서 눈물을 감추었소

바람 불고 비가 오는 어두운 밤길에도

홀로 가는 이 가슴에 즐거움이 넘칩니다


- 심연옥. 아내의 노래



김중위.

[무섭다. 그 마음을 나에게는 감출 수 없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다는 것도 안다. 진짜 무서운 건 나 자신이다. 죽어간 내 책임의 팀원들. 생도 출신으로 균형 무너진 생각을 하면 안 되지만, 그들을 생각하면 없애 버리고 싶다. 다 없애버리고 모든 걸 끝장냈으면 좋겠다. 지구가 파멸이 되더라도, 지옥의 구렁텅이로 떨어지더라도 복수해서 살을 난도질하고 피를 보고 싶다. 난 그런 사람 아니라고, 그런 사람 아닐 거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지켜온 명예와 자존심과 냉철한 지휘관으로써의 개념과 너무 멀다. 그러나 속에서 불쑥불쑥 치솟아 오르는 걸 막을 수가 없다. 감당하기 힘들다. 파멸의 피가 솟구쳐 오른다. 이러다 죽겠지? 그러나 내가 죽는 것도 크게 두렵지 않다. 이러는 내 자신이 두렵다. 난 이걸 통제해야 한다는 것도 안다. 내가 이렇다는 걸 바로 내가 들여다볼 수 없었다면 난 이미 모든 파멸을 만들었을 것이다. 난 보복을 위해 전투를 치러야하는 지휘관이 아니다. 냉정하게 현실을 보고 우리 대한민국 국군에게 도움이 되는 전투를 해야 한다. 그러나 폭력의 사심이 자꾸 솟구친다.


내가 이런 인간이란 것도 몰랐으며, 이토록 사람이라는 게 무서운 줄... 너무나 두렵다. 적을 죽이는 것도 올바른 전략과 전술로 효과적으로 수행해야 하는데, 이 마음 숨기기 고통스럽다. 아직 내 부하라고 할 수 있는 윤중사와 이하사. 이들을 위해 냉정을 되찾아야 한다. 될까? 가능할까? 그 모든 걸 떠나서 인간 본능. 두렵다. 어떤 폭력과 피가 나올지 내 자신이 두렵다. 난 중대원들을 보낸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게 누구 책임인지 공평한 답이 나올 수도 있지만, 그것마저 내 자신 치졸하다.


참자, 참자. 참자. 안 참아진다. 더럽다. 죽이고 싶다. 실제 하고 싶은 말은 깨끗하지 않다. 욕하고 싶고 적이란 이 개 아들놈들을 다 지워버리고 싶다. 방법은 하나. 참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것이 또 다른 구렁텅이로 빠져들지 않도록 나는 날 봐야 한다. 오, 하느님 내 속에서 올라오는 이 지옥 불 같은 감정을 자제시켜주소서.


부탁합니다. 단 두 명의 부하라도 내가 배운 대로 올바른 지휘관이 되도록 절 이끌어 주소서. 저의 이 참혹한 상상과 분노와 증오를 벌하여 주시고, 필요한 일만 올바르게 하다 죽도록 절 이끌어 주소서. 제가 죽는 건 아무 미련이 없도록 노력하겠사오나, 적어도 내가 이 두 명과 지역대원들을 위해 올바른 장교로 일을 끝낼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감정이 아닌 올바른 명예로 제 명이 다하는 날까지 이끌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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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 태운다 나의 거짓 2 20.12.16 390 1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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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 게릴라의 길 1 +2 20.12.09 479 17 13쪽
156 남조선 항공륙전 3 +3 20.12.08 475 26 12쪽
155 남조선 항공륙전 2 20.12.07 409 24 11쪽
154 남조선 항공륙전 1 +1 20.12.04 483 26 11쪽
153 격납고 2 20.12.03 418 19 12쪽
152 격납고 1 20.12.02 434 20 11쪽
151 마지막 가을비 5 20.12.01 365 23 10쪽
150 마지막 가을비 4 20.11.30 371 19 14쪽
149 마지막 가을비 3 20.11.27 367 20 16쪽
» 마지막 가을비 2 20.11.26 447 22 11쪽
147 마지막 가을비 1 20.11.25 448 24 11쪽
146 분주한 여명 속으로 2 20.11.24 413 23 15쪽
145 분주한 여명 속으로 1 20.11.23 387 23 15쪽
144 히포크라테스의 백로 2 20.11.21 411 22 11쪽
143 히포크라테스의 백로 1 +1 20.11.20 413 21 11쪽
142 횃불처럼 3 20.11.19 391 23 15쪽
141 횃불처럼 2 20.11.18 403 2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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