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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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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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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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남조선 항공륙전 3

DUMMY

섬뜩했다. 남조선 포로는 하사와 어느 틈엔가 눈을 응시하게 되었고, 둘은 눈을 거두지 않고 맹렬하게 눈싸움을 지속했다. 포로 눈에는 공포 위축 반항 당당 그 모든 게 담겨 있다.


심각했다. 하사가 운전병을 조준하고 있는 하급병사를 보니 역시 당황한 기색 역역하다. 그러자 군관과, 심지어 운전병도 점차 기세가 등등해지기 시작한다. 특히나 뒷좌석 오른쪽에 앉은 사관장은 전사 하전사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실질적으로 전사들을 죽이고 살리는 존재. 왼쪽 사람을 때린 게 오른쪽 사관장 같다. 깡깡 마른 매서운 얼굴의 사관장이 말은 안 하지만 자세를 고쳐 앉는다.


“보자보자하니 썅...”


사관장이란 단어부터 공포다.

사관장 옆 문짝에 기댄 보총이 눈에 들어온다. 하급병사가 턱으로 그 총 조심하라 했다. 하사는 포로 옷을 본다. 북조선 군복 보위색이 아니고 이상한 문양이 얼키설키한 옷, 처음 보지만 군복은 군복 같다. 얼룩덜룩한 게 피를 많이 흘린 모양이다.


“하사! 기다리는 것도 인내가 이서.”

“찡을 보여주시라요. 군인증이라도.”

“참, 거. 내래 그까지 보여줘야 하네?”

하사도 불안해졌다.

“아이 남조선 항공륙전이 밤에 심각하잖습니까....”


둘은 위기였다. 보고되면 이 죽일내기 난리 통에 즉결처형을 당할 수도 있다. 사람 하나 죽는 거 일도 아니다. 하사는 하급병사에게 눈빛을 줬고, 그러자 하급병사가 어떤 의미로 턱을 위로 툭 쳤으며, 둘은 서서히 물러나기 시작했다. 하급병사는 뒤쪽 사관장 쪽으로 이동했고, 하사는 군관과 운전병 일직선으로 발을 물린다. 하사는 포로를 다시 한 번 보면서 고개를 까딱했다. 뭔가 좀 이상하다. 어디서 본 것도 같고. 차에 탄 전체가 좀 수상하다.


선탑자가 나직한 말투로 종용한다.


"거 총부터 일단 내리고 좀..."


총 든 둘의 눈빛이 변하고 있다. 위장한 항공륙전? 검색소 두 전사가 관심을 보인 건, 때가 묻어 남루한 군복과 탑승자들이 면도를 하지 않아 턱이 덥수룩하다는 점. 총참모부 특수작전대대에서 쓰는 것과 비슷하다는 얼룩덜룩한 조끼는 입고 있지 않았다. 하여간 냄새도 좀 나고 좀 남루했다. 보위부가 왜 이런가 기분이 이상하다.


“행색이 와 이럽네까? 털도 깍디 않고.”

“우리, 남조선 빨치 잡는 특무 중이야.”

사관장도 무서운 입을 연다.

"산에서 뒹굴다 온 거이 안 보이니..."


그러나 전사 둘은 의심을 풀지도 않고 총구도 내리지도 않았다. 둘이 심상치 않자 군관은 얼핏 살기를 느꼈다. 둘이 문책을 피하려 어떤 짓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물러서지만 둘은 여전히 겨눔자세를 하고 있었고, 그걸 떠나 두 검색병의 분위기, 공기가 이상하다. 말투가 밑으로 깔리고 소리가 작아졌다. 여기서 탑승자들을 쏴죽이고 게릴라로 오인했다 하면 그만이다. 흔적 치우면 누가 모른다. 어디 죽어 널부러져 있으면 으레 남조선 항공륙전이 그랬거니 생각한다.


아니다 싶은 군관이 분위기를 낮추려 한다.

“하사, 조멘조멘 하라. 어? 보고 안 한다.”


하사는 불안한 표정으로 눈을 가늘게 떴다. 군관, 보위부 높은 계급! 화가 공포로 변하면서 자세히 보니 계급 중좌... 숨이 턱 끊어지고 말문이 막힌다.


이걸 다 쏴버리고 없던 일로 해? 시체는 수풀에 넣고 차는 어디 밀어버려? 보고 안 한다는 군관 말을 믿을 수 없다. 백주대낮에 봤다면 군복이 파르르 떨릴 보위부 중좌. 사민들도 꺼려하고 어려워하는 보위부. 중대장 대대장도 이걸 막아줄 수 없다. 련대장도 똑같을 거라 생각했다.


“리봐 하사.... 하사.... 찡을 준다. 잠시만...”


군관이 손을 들어 보이며 천천히 이동시킨다. 그때 하사는 문득 깨달았다. 보총 자물쇠를 풀지 않았다는 걸. 군관은 경험 많은 사람 같고 뒤의 사관장도 마른 몸에 날카로운 눈, 여간내기가 아니다. 군관의 허리 권총집, 탄창 꼽힌 것이 보인다. 여차하면 권총 뽑는다. 검색병들은 저 보위군관이 자신들을 쏘고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덜컥 들었다. 보위군관이 자신들을 쐈다 해도 보고서 한 장으로 끝이다.


혹시나, 자물쇠 푸는 그 짧은 순간 어떻게 반응할지 고민된다. 그러나 미루어서 될 일. 하사는 용기를 내 순간 틱! 자물쇠를 자동으로 돌렸다.


군관 눈이 엄청나게 커지며 손을 든 채로 멈췄고, 뒷좌석 사관장이 몸을 일으켰으며, 반대편 하급병사조차 놀랐다. 하급병사는 적어도 하사가 자물쇠는 푼 줄 알았다. 자물쇠를 사격으로 돌려 모두 움찔 했지만 더 이상 움직이진 않는다. 총. 장전된 총.


하지만 불리한 마음에도 그들은 보위부라는 태도, 니가 어쩔 거냐? 넌 우리에게 어차피 굽혀야 한다는 몸에 배인 태도가 있다. 두 전사가 보기에 그게 좀 거북할 정도로 과장되어 보인다. 필요 이상으로 당당하다. 그 눈빛과 태도는 총에도 굴하지 않을 그들의 오래된 습관 같다. 군관이 낮고 편안한 목소리로 하사를 누르려 한다.


“거 하사... 내가 정말 약속한다. 보고 안 해!”


하사는 요동도 없다. 자칫 눌리려던 하사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하급병사를 포함한 탑승자 네 명. 모두 하사의 입에서 나올 말을 기다린다.

하사는 조금 전과 다른 냉정한 눈에 온화한 말투로 나지막이 속삭였다.


“재밌냐?...”


포로가 앞으로 확 숙였고, 하사는 압철을 당겼다. 탕! 타다다당! 역동적으로 반응하는 7.62밀리 강철 피스톤과 배기로 토하는 하얀색 섬광! 탕! 탕! 탕! 군관의 머리통이 터졌고 이어 운전병을 향해 총알이 날아갔다. 동시에 하급병사는 뒷좌석 사관장 가슴에 총구를 대고 탕탕탕 당겼고, 둘의 사격은 근 3초 만에 모두 끝...


덜덜덜덜~피익~덜덜덜덜덜덜덜.... 고요와 함께 새롭게 들리는 갱생호 엔진소리. 그리고 두두두두 엔진 후드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


말로 못할 잔유물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전사들 군복에 얼굴에 손에 얼굴에. 귀가 멍하고 화약연기가 흐르는 가운데 하사가 먼 곳을 본다. 항공! 경보 없고 불빛 없으면 이 근처에 아무도 없는 거다. 아무도 못 본 거다. 그리고 총소리는 요즘 흔한 거다.


하사가 땅에 침을 칵 뱉었다. 하얀 화약연기가 낮게 깔린다.


뒷좌석 남조선 포로가 힘겹게 상체를 일으켰고, 헐떡이며 하사를 본다.


하사가 아차! 이 사람, 표정을 짓다... 씨익 웃는다. 포로는 아직도 긴장이 가시지 않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2대대?”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어? 나 아셔?”

“봤어. 어디지?”

“6지역대.”

“맞았어...”

“난 기억에 없는데?”

“중대장 유영한 대위?”

“엄마......”

“내가 후배요. 내무반 갔었는데?”

“그랬어요? 우와 신기해.”

“고마워.”

“고생 많았쓰요.”

“죽을 거 살았다. 이거 어떻게 갚어?”


하급병사는 반대편에서 몸에 묻은 걸 털어내고 있다. “이, 뭐꼬... 이.” AK 자물쇠를 다시 안전으로 돌린다. “니미 보위부는 좆까구, 일마 와 이리 삐대한데!?” 하급병사는 자신도 모르게 손바닥을 들어 피떡이 된 군관의 뒤통수를 후려치려다 멈췄다. “호로짜쓱이 마 놀아주이까네... 가오 조온나 잡구로.”


"호랑이 가죽을 입었다는 보위부 아니네."

"얌마. 북한말 연습 고만 해. 알았네? 흐흐."


그때였다. 산에서 그림자 두 개가 튀어나왔다.

“야! 뭐야? 뭐길래 그랬어!!!”

“담당관님, 아군포로요! 대위래! 다른 대대 같은데 내는 얼굴 몰라!”


그러자 살집 두툼한 그림자가 빠르게 뛰어와 뒷좌석 포로 머리를 잡고 얼굴을 디밀어 살핀다. 몇 초가 지나 어둠 속에서 하얀 치아가 빛난다.


“어! 1대대. 뭐 선수 했었는데...”

포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팀이 어찌 됐길래 중대장이...”

“나 대위 아녜요. 중위. 대리팀장요.”

“뭐 그러거나 말거나 살았음 됐지!”


담당관이 산에 대고 소리쳤다.

“작전 종료! 식량 군장에 담고, 퇴출~~!”


또 다른 두 명이 빈 군장을 지고 뛰어내려온다.

담당관이 하사와 하급병사를 번갈아 본다.

“너희 둘은 이 사람 손 풀어주고 부축해 올라가!”

“아 보위부 군관복 벗김 안 되나? 귀한데...”

“야야야, 보총 권총만 회수하고 빨리 올라가!”


대원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담당관이 다른 대원에게 또 소리친다.

“야, 까칠(K-7)! 저 전신주, 전력선인지 전화선인지 맞출 수 있어?”

“예, 가능해요.”

“끊어!”


대원이 곧바로 전봇대에 의탁해 무성 K-7을 상공 윗부분을 조준해 탁 탁탁 쏘기 시작한다. 곧 선들이 끊어져 밑으로 스윙한다.


하급병사가 대검으로 손 묶인 걸 자르고 남조선 포로를 차 밖으로 끌어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북한군복 하사에게 일갈을 한다.


“마 새키 안 온나?”

“행님, 좆도 여기선 여기 군복 계급대로 합시다.”

“점마 저 까분다 또. 니 농담할 때가? 확.”

“많이 다쳤스요?”

“온나 빨리 새키야. 이 양반 들카내 업어야 한데...”


하급병사가 중위 부축을 시작했고, 담당관이 붙잡아주자 북한군복 하사는 차 안에서 보총과 실탄, 군관 몸에서 권총과 실탄을 회수하고, 앞으로 고개를 박고 죽은 보위부 군관 등을 퍽 쳤다.


“어이 보위부. 걍 보내줄라 캤데, 으디 남조선 항공륙전한테 반말 찍찍 싸... 짜증나구로. 중사님이 쏘라고 캐 쏜 거니까 나 원망 말고, 인민공화국에서 제일 편한 자세로 푸욱 쉬시오.”


합해서 일곱 명의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전사한 중대장을 아는 사람이 갑자기 나타났기 때문이다.

사무치는 감정을 되새기고 싶지 않았었다.


하급병사가 담당관에게 소리친다.

“오늘 야포부대 기다린 거 아임까?”

“마! 벌써 총소리 났다.”

“게릴라 잔칫날 요매~~하고 걍 올라가?”

“야이 씨... 보급투쟁이 문제냐, 사람부터 돌봐야지.”


마지막으로 떠나는 디지털 픽셀 하나가

본넷을 열어 수류탄 넣고 쿵 닫은 다음 뛴다.

“차 안에 수류타~~~안!!!”


하급병사가 중위를 부축하고 올라가면서 흥얼거린다.

“오 오오오오오 오오 오 롯데 이대호~ 롯데 이대호~ 롯데 이대호~..”


뒤에서 박자를 맞추듯이 수류탄이 꽈릉~!!!!


첨병조인 둘은 오늘 북한말 연습하며 올라가지 못할 거 같다.


죽음. 살인. 후회. 희망. 이상. 철학. 증오. 악몽.

그런 복잡한 거 없다. 그냥 가는 거다. 하루 하루...

죽은 자는 굶고, 산 자는 배를 채우고 또 내려온다.

곧 사령부에서 마지막 죽음의 전문이 오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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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 게릴라의 길 1 +2 20.12.09 479 17 13쪽
» 남조선 항공륙전 3 +3 20.12.08 475 26 12쪽
155 남조선 항공륙전 2 20.12.07 409 24 11쪽
154 남조선 항공륙전 1 +1 20.12.04 483 26 11쪽
153 격납고 2 20.12.03 418 19 12쪽
152 격납고 1 20.12.02 434 20 11쪽
151 마지막 가을비 5 20.12.01 365 23 10쪽
150 마지막 가을비 4 20.11.30 371 19 14쪽
149 마지막 가을비 3 20.11.27 367 20 16쪽
148 마지막 가을비 2 20.11.26 446 22 11쪽
147 마지막 가을비 1 20.11.25 448 24 11쪽
146 분주한 여명 속으로 2 20.11.24 413 23 15쪽
145 분주한 여명 속으로 1 20.11.23 387 23 15쪽
144 히포크라테스의 백로 2 20.11.21 411 22 11쪽
143 히포크라테스의 백로 1 +1 20.11.20 413 21 11쪽
142 횃불처럼 3 20.11.19 391 23 15쪽
141 횃불처럼 2 20.11.18 403 2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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