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의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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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8.1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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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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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함경도의 별 3

DUMMY

지역대 강하는 팀별 강하가 아닌 지역대 통합 강하로 결정되었다. 수송기 모는 미군이 강력하게 주장한 것이다. 여러 DZ를 돌며 목숨 걸 수 없다. 한 번에 털어야 한다. 위험하다...


비행기에 이상이 생긴 것이 분명했다. 모두가 긴장해 주시하는 가운데 점프마스터인 7중대장이 ‘내측 일어섯!’ 구령을 내리기 직전 갑자기 비행기가 덜거럭 쿵쿵 거리면서 흔들렸고 밖에서는 섬광이 일었다. 지역대원들은 전에 한 번도 보지 못한 기내등이 점멸하는 것을 봤다. 조종실에서 누른 내부 비상-신호등이 분명했다. 비행기 이상이 생겼다.


이때 7중대장은 전에 훈련에서 들어본 적도 없는 공포의 강하구령을 내렸다.


“내측, 외측 모두! 일어섯! 외측은 바깥쪽 정박줄! 내측은 안쪽 정박줄! 내측 외측 모두 고리 걸어!!!”


7중대장의 강하구령은 악에 가까웠다.


“어떻게든 일어나! 빨리 일어나! 일으켜줘!”


원래 강하지역 4분 정도 되고, 군장이 가장 무거운 전술종합훈련이라면 먼저 일어난 사람이 좌우 힘든 사람 잡아서 일으켜준다. 그러나 50명 넘는 사람들이 그런 과부하 군장 상태로 동시에 일어나는 것은 너무 힘들고 시간이 걸리는 문제였다.


비상 상황을 인지한 대원들은 몸부림치며 손톱으로 벽을 긁으면서라도 일어섰다. 지역대원들은 안간힘을 썼다. 못 일어서는 사람을 지시하며 옆 사람에게 당기라고 고함치고, 일어나는 사람을 앉은 사람이 밀어주고, 지역대장이건 담당관이건 하사건 중사건 누구의 경험도 능력도 필요 없었다.


만약 중간 열에서 무너지면 길이 막히고 생명줄이 막히면서 자칫 그 뒤가 못 나간다. 그러면 쓰러진 병사를 밟고라도 먼저 나가야 한다. 공수교육에서 수송기 피탄 시 행동요령은 배우지만 그걸 떠올릴 여유가 없다. 이번에는 수송기 조종실 후문이 열리면서 한 미군이 로드마스터를 향해 마구 고함을 지른다.


체구 크고 힘 좋은 문중사도 일어나기 힘들었지만, 성공한 후에 양 옆 대원을 어깻죽지와 상박을 잡고 일으켰다. 7중대장은 계속해서 고함을 질렀다.


“외측 바깥 정박줄에 고리! 내측 안쪽 정박줄에 고리!”


대원들은 목숨 걸고 일어나 생명고리를 걸었다. 그러면서 의문이 들었다. 내측 외측이 동시에 나간다는 건 생명줄 엉킬 수 있으니까 말도 안 되고, 어떻게 한다는 거지? 내측 나가고 외측이 나간다는 건가? 아님 반대야?


7중대장은 경력 많은 점프마스터로, 지역대 정기강하는 무조건 7중대장 유대위였다. 7중대장은 대원들이 하는 고민을 이미 결정짓고 있었다.


“잘 들어! 비상이아! 외측이 먼저 나가고 나서 내측이 이어 나가! 양쪽문 동시에 GO야! 외측 끝번이 나가면 내측 1번이 따라 나간다. 생명고리 안 밀어준다! 정확히 최대한 후미로 던지고 나간다!!!”


지역대원들이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강하 형태였다. 그도 그럴 것이 DZ는 항상 1개 팀이 안착할 곳을 정하고 (훈련상) 반복해서 뿌리는 것만 경험했다. 내측과 외측 합하면 한 점프열에 25명이 넘어 가게 생겼다. 그런 긴 DZ가 밑에 있다는 것이 분명 아니다. 일단 살려고, 수송기가 위험하니까 밑에가 어디건 시도하는 거다. 밑에 좆같은 무엇이 있는지 모른다.


내측 중간에 서 있던 문중사는 결과적으로 메인패스트 18번 정도가 됐다.


‘와, 이런 메인패스트 길이로 나간다고?!’


그런데 그때였다.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기대도 상상도 못했던 장면. 그러면서 어떤 순간이면 지역대원들이 습관적으로 하던 장면. 체육대회나 측정에서 나타나던 장면.


대열이 어느 정도 서고 생명고리를 다 걸고, 절대절명의 GO! 구령을 기다리는 순간. 대열에서 고함이 터져 나왔다. 가자! 가자! 나가자! 환호성이 터졌다. 작은 곳에서 시작되어 급속하게 전파된다.


아싸 가오리!

가자! 별의별 욕설과 함께, 가자! 나가자!!! 소리를 지른다. 습관인지도 모른다. 지역대 대표로 구보 측정 같은 거 나가면 출발 전에 반드시 이런 장면 나온다. 체육대회에 우리 권투선수가 링에 오르면 모두 주먹을 휘두르며 온몸을 짜내 고함을 지른다. 죽여! 죽여! 죽여버려! 다 죽여버려!


순간 어느 지역대원 한 명에서 시작한 이 고함과 환호성은 전파되어 수송기 안을 울렸다. 위급한 순간이지만 미군 승무원들은 깜짝 놀랐다. 한국군 죄다 미쳤다! 반 미치광이들이다!


동체는 더욱 전율하고 좌로 우로 밀리다가 밑으로 푹 꺼지고 난리가 아니다. 문이 열린다. 알아서 1-2-3번 강하자가 문으로 밀착하면서 여전히 고함을 지른다. 문 앞의 강하자가 생명줄 잡고 소리친다.


“그린 라이트! 그린 라이트! 그린 라이트 넣으라고 새끼들아!”


7중대장은 밖을 본다.... 아무 것도 없다..... 더할 나위 없이 컴컴하다.... 물리적인 공간이라는 기분이 안 든다. 3차원이 아니라 1차원 암흑이다. 정확히 여기가 어딘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걸 항상 상상해왔었다. 그리고 여긴 진짜다. 훈련 아니다. 뒈지든 살던 나간다. 그래, 멋있다. 미지! 고립무원! 짧은 인생 영원한 조국에?... 우린 간다. 존나게 멋있다! 쩐다! 끝내준다! 우린 이런 거 하고 싶었다! 좋아 이거야! 우리 이럴려구 베레모 썼다 오케이! GO! GO! GO!


그렇다. 우주 유영처럼. 깊은 해면의 잠수사처럼, 꿈처럼, 기적처럼, 바람 따라 날아간다. 아무리 짧은 순간이었지만, 문중사는 반복해서 느끼던 컴컴한 공중의 순수한 외로움을 맛보았다. 그 짧고 지독히 순수한 외로움은 마약처럼 짜릿하다. 외면에서 허둥대던 자신이 자신 그 자체로 실존하며 감각으로 자유롭다.


신도 자신에게 손을 뗀 듯한 기분이다. 바람소리와... 굉음을 챙겨 순간 사라져 간 문명의 이기 수송기. 캐노피를 스치는 펄럭이는 바람. 기공 부근에서 더욱 개지랄 퍼덕이는 바람 파르르르르르르. 오줌 눌 때 자기 손도 안 보일 암흑. 그리고 철저히 혼자. 라이자에서 조종줄 나무토막 꺼내 잡고, 한 바퀴 돌면서 풍향과 점프열 확인하고. 밑을 보니 이건 DZ가 아니다. 그냥 울퉁불퉁한 산과 능선들이 아무런 규칙 없이 뒤엉킨 지형. 지형은 공포 그 자체였다.


‘이게 뭐야? 고공이야? 아니 왜 이렇게 높아......’


아무리 기다려도 DZ에 지역대원 6명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건 시작이었다.


“자, 여기서 출발해 저 능선 8부를 타고 정찰 목표로 간다. 한 20분 편하게 내려가면 그때부터 산길 못 탄다. 우리 지역대 섹터 끝이지? 오늘은 목표 경계 상태만 확인하고, 3번 루트로 복귀한다. 내려가서 활동은 안 할 거다.”


“네, 중사임.”


오후 햇살이 천천히 하강국면으로 꺾이는 시점. 둘은 산길을 벗어나 길 없는 응달과 수목을 뚫으며 천천히 내려간다. 지역대 타격에서 침투 루트가 될 수도 있다. 밤에도 인식할 확인점을 기억하거나 부러진 Y자 나뭇가지를 생가지에 걸어 표기한다. 산이란 이상해서, 어째 이 길이 어제와 다르지?... 갑자기 마을이 나타난다.


특히 야간은 많은 시각적 왜곡을 불러오고, 낮에 본 루트에서 벗어나는 건 순간이다. 훈련 때는 능선 따라 걷다가 가까운 읍이나 도시 불빛으로 지도 안 봐도 걷다가 방향과 위치를 대충 알게 된다. 항상 출발 전에 지도를 자세히 보며 암기하고, 어떨 때는 밤에 지도 한번 안 보고 도착하기도 한다.


여기는 불빛이 없고, 수목도 풍부하지 않아 불안하며, 가옥들이 밀집한 구역 산악 하단은 더욱 헐벗었다. 모르는 길을 내려가다 수목이 사라지면 민가가 근처에 있다는 직감이 온다. 여전히 화목으로 취사와 난방을 하기 때문이다.


어둠이 내리고 목표 근처에 도달한 둘은 목표 관측을 시작했다. 둘이 교대로 20분 씩 적외선 투시 쌍안경을 보면서 모든 활동을 관측하고 까먹을 경우에 대비해 기록한다. 통신에게서 얻은 종이에 인류 최고 저가 발명품 검정색 모나미 볼펜.


목표는 한 번 타격했던 열차역과 유류창이다. 타격작전 효과는 있었지만 복구해서 여전히 사용한다. 대공포가 깔려 아주 가까이 다가서지는 못한다. 다른 많은 곳들처럼 이곳도 주간에는 웬만하면 활동 징후를 안 보인다. 폭격에 때려맞기 때문이며, 어떤 곳은 아예 상공에서 보라고 일부러 복구도 안 한다.


그러다 밤이 되면 최소한의 등만 켜고 매우 활동적으로 트럭들이 드나들며 움직인다. 지역대장은 사령부에서 온 전문을 받고 이틀 후 밤에 여길 다시 때리기로 결심했다. 문중사와 최하사가 가장 중점적으로 봐야할 것은 목표 자체가 아니라, 어디로 접근해야 적과 접촉이 최소한인가, 그것이다.


열차역은 겉으로 봐서 2개 소대 정도 되는 근무자와 경계병이 있으며, 지난 번 타격 이후 경계는 강화되어 준군사조직이 100명 정도 추가로 보강되었다. 지역대는 이 준군사조직을 가볍게 보지 않는다. 무장은 허술하지만 이들 중에는 군대에서 10년 정규군으로 복무한 사람들이 많아서 가볍지가 않음을 여러 번 느꼈다.


밤 8시.

관측을 하던 문중사는 좀 아쉬운 점이 있었다. 한쪽 방향에서만 관측을 하다 보니 측면, 특히나 공격 주방향이 될 것이 유력한, 열차역 건너편 섹터가 잘 안 보였다. 이런 사소한 것이 실제 작전하면 사람 목숨과 맞바꾸는 함정이 되곤 한다. 찜찜한 기분은 최하사도 느끼고 있었다.


그냥 이대로 올라간다고 누가 뭐랄 사람 없지만, 그래도 이틀 뒤에 전 지역대 18명이 목숨을 걸고 때려야 한다. 모든 작전에서 작게는 한두 명, 많게는 대여섯 명 씩 사라져갔다. 이제는 누가 차례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죽음에 담담해졌으나, 딱 하나, 죽더라도 오지게 뭔가 박살 - 때려 부수고 가고 싶다는 생각들을 한다. 죽더라도 자기가 살았던 이유를 적에게 큰 피해를 입히는 것으로 자랑스럽게 가고 싶다. 그냥 올라가기 찜찜했던 문중사가 속삭인다.


“어떠냐? 좀 그러지 않냐?”

“네, 좀 애매하죠.”

“살짝 돌아서 접근해 잠깐만 보고 갈까?”

“이대로 올라갔다가, 지역대가 이상해지는 것보다는 그렇습니다.”

“뭐 먹을 거 구하려고 내려가는 거 아니다!”

“민가 뒤져봤자 아무 것도 없습니다.”

“대검 끝 살짝 빼놔라...무협지 소리 안 나게.”

“챙!”


도망갈 때는 대검부터 밑으로 철컥 누르고 뛰기 시작한다.


둘은 숨을 정리했다. 이미 북한 군복에 북한제 군장과 총으로 무장한 상태지만, 말이 안 된다. 북한 사투리가. 옛날 영화처럼 북한 말 흉내 내다가 곧바로 총 맞는다. 그들도 일대에 남조선 게릴라들이 있다는 걸 안다.


남조선 게릴라 때문에 잠도 많이 설쳤을 거다. 둘은 농구화 비슷한 북한 전투화 끈을 조이고, 소리가 안 나도록 군장 끈들 일일이 조이고 복장을 단정히 했다. 몇 시간을 엎드려 있었기에 몸도 돌리고 풀면서 혈액순관 하고 숨 정리한다.


스위치를 돌려 자기 군복에 달린 계급장에 맞는 행동을 준비했다. 북한은 엄격한 계급 사회이며 계급장이 높으면 상대가 말없이 움찔하고, 기관의 서열과 부대 별 서열로도 움찔한다. 남한보다 훨씬 기관 계급에 위압적인 사회이며, 입은 군복 계급장에 걸맞는 행동으로 위압적으로 나갈 줄 알아야 한다.


어차피 죽은 자의 군복을 취득한 것이지만, 한국 계급으로 치면 중사와 일등병(하급병사)을 달고 있다. 그래도 문중사는 중사 계급장이 편했다. 중사니까. 계급체계는 남한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한 달 넘게 비정규전을 수행하면서 느낀 것은 그렇다. 당당하게 행동하면 오히려 위장에 편하다. 겁먹거나 위축되면 오히려 수상하게 본다...

‘이런 거 편하게, 보위부 군복 하나 손에 좀 넣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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