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도의 별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8.12 12:00
연재수 :
379 회
조회수 :
231,851
추천수 :
6,987
글자수 :
2,076,964

작성
20.08.07 12:00
조회
1,056
추천
28
글자
9쪽

함경도의 별 6

DUMMY

사지를 펴주고,

군복을 가지런히 해주고,


풀로 덮고, 넷은 누운 자를 둘러섰다. 문중사는 하늘을 본다. 수많은 별들. 무수한 밤... 방향도 알려주고 굳은 마음을 풀어주었던 별. 딱딱해진 군인을 잠시 매만져주는 별. 저건 타향의 별. 고향에서도 볼 수는 있으나, 같은 별을 보면서 멀리 떠나와 있는 타향의 별.


누구는 아버지를 원망했고 누구는 어머니를 원망했으며 파산과 가난을 저주했고, 받은 것 없는 인생을 토로했다. 부질없다. 언젠가 멀지 않아 홀로 세상을 뜰 거란 생각에, 그 모든 사소한 것들이 마음에서 떠나지 않고 낭만으로 아련함으로 남는다. 별을 보면 더욱 그렇다...


“알아는 둬라. 이름 박기수다. 스물 둘. 부후 000기 통신주특기. 고향 합천. 어머니 없이 자란 놈이다. 먼저 떠나는 전우에게 경례. 단결.”


“가매장도 못하고, 기수야... 미안하다. 단결.”


사방이 검은 가운데 위로 솟은 검은 물체 넷. 나머지 하나는 대지 수풀 속에 누웠다. 이렇게 보내는 일은 무수했다고 말할 수 없으나 적지 않았다. 더 구슬픈 경우는 작전 후 퇴출할 때까지는 온전한 모습으로 목격되었는데, 나타나지 않은 경우다.


사라진 사람이 어느 땅 어느 풀 속에 아무도 모르게 죽어갔다면 얼마나 아스라한 기분이 들지 않겠는가. 세월이 지나 거기서 그 사람이 왜 죽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전장은 이것이 지천에 널리게 되니까. 모두에게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들은 누운 자의 입이 굳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


오중사는 박하사에게서 떼어낸 군번줄을 상의 호주머니에 넣었다.


“우리 넷 중에 누가 산다면, 그 아버지에게 이걸 설명하자.”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천마 잘 해라. 전쟁 이기고 통일되면 꼭 귀성 와서 날 찾아.”


“통일되면 압록강에 주둔해야지. 쩌그 아래 있음 쓰겄습니까.”


서 있는 넷은 서로 악수했다. 그리고 돌아섰다. 문중사는 최하사와 출발하면서 뒤를 돌아본다. 반대편으로 멀어지는 동행 한 명의 어깨가 들썩이고 김중사가 어깨를 끌어안아 위로하는 모습이 보인다. 최하사도 돌아보고 표정이 무거워진다. 문중사가 가자고 최하사의 등을 툭 친다.


몇 보나 갔을까? 갑자기 뒤에서 “천마!”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어깨를 들썩이던 하사였다. 손으로 무언가 건넨다.


“오중사님이 드리라고 합니다. 탄포에 한 2/3 정도 차 있을 겁니다. 야간작전 할 때 이거라도 써서, 파내서 잠시라도 (조준경 달린) 총 쓰랍니다.”


“고맙다. 성이 뭐지?”

“고.”

“고하사. 우리 피양 승전기념일에 보자. 아니면 연옥에서.”

“단결.”

“날래날래 가라우. 단결.”


내일은 어떤 일이 일어날까. 조용할까 또 폭풍이 몰아칠까. 또 누군가 떠나는가. 그것이 나 인가 너 인가 아니면 다른 누구인가.


전쟁은 언제 끝나는 것인가. 모두 죽어야 진정 끝나는가. 모든 것이 소모되고 닳아 없어지는 이 전쟁이란 것. 전쟁이 끝나면 과거의 자신으로 어느 정도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손에 피를 묻히고 나서, 어느 순간, 내 피 역시 남의 손에 더럽혀지는 것도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안다. 후회하고 고뇌해도 내일 당장 상황이 닥치면 총과 칼을 들고 잠시의 망설임도 없어야 한다. 우리도 상대도 부모 손에서 심연처럼 깊은 애정의 손길을 받은 사람들이다.


누운 박기수에게 경례하고 돌아서는 순간, 한 개인 종말의 시간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피부처럼 붙어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문중사 마음을 스쳤다. 사람은 언제라도 죽는 거다. 고참 김중사의 마지막 말에 문중사는 망각의 늪 속에 사라졌던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어머니? 가족?


그에게는 그런 단어들이 무의미했다. 세상에는 이런 걸 결코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누구에게 설명도 할 수 없다. 어려서부터 버려진 것과 다름없이 살아야 했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겨울, 쌓였던 것이 무너졌다. 운동화 하나 변변히 사 신지 못했던 ‘가난’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오랫동안 따돌리고 괴롭혔던 아이들 서넛을 찾아가 죽지 않을 만큼 해쳤다. 그리고 그것이 시작되기 전까지 주변 모두에게 순둥이로 불렸었다. 덩치 큰 바보. 자신도 그런 줄 알았다.


사실 그 대상들이 무한한 죄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나, 통제할 수 없는 분노는 무분별한 피를 막을 수 없었다. 그 다음부터는 돈을 받고 그렇게 계속 살았다.


그 직업 같지 않은 직업은 다행히 아무도 모르고 추측조차 할 수 없었다. 일을 주는 사람들도 얼굴을 보지 않고 접촉했다. 일을 끝낸 날은 몸이 덜덜 떨리는 공포의 시간을 체험한다. 이런 것들이 쌓이면서 밤이면 악몽과 공포에 시달렸고, 방문에 자물쇠를 여러 개 달고 소주 두 병 정도 불어야 잠을 잘 수 있었다.


그 이후로 거울의 자기 눈을 단 2초도 볼 수 없었다. 그의 일이 위험에 빠질 때는 두 대상이 화해할 때였다. 다 좋게 푸는데 나를 해친 놈은 알려 달라... 항상 그 위험성에 불안한 나날을 보냈다. 양쪽에서 다 공격을 받을 가능성도 있었다. 길을 걸을 때 누구나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고 자신 역시 언제나 공격할 준비를 하고 다녔다. 어느 순간 자신도 자신이 무서워 도피처를 찾았다.


자신이 선택한 군대에 들어와 문중사는 오히려 감정의 역차별을 받았다. 힘든 훈련이 자신을 강하고 날카롭게 냉혹하게 만들 줄 알았다. 더욱 얼음처럼 감정 차가운 인간이 되고 싶었다. 그래야 일말의 죄책감과 후회가 떠오르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군대는 냉혹이 아니라... 참는 것을 가르쳐주는 곳이었다. 계속 참는 것. 참고 참다보니, 전에 자신이 참지 못했던 것에 대해 더욱 고통이 밀려왔다. 그리고 결심했었다. 다시는 사바세계로 돌아오지 않겠다고. 남들은 천리를 걸어 퇴출하는 것 아니냐고 농담을 했지만, 문중사는 사람들과 반대편으로 만리, 억리, 경리라도 걸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지옥을 향해 가리라고...


하사 시절 전술종합 때, 팀이 행군하다 산중의 작은 절에서 쉬게 되었고, 그때 스님으로부터 시원한 물과 다과를 대접받고 덕담도 들었다. 긴 야외생활로 모두 초췌하고 산중 야수 같은 상태였지만 스님은 전혀 괘념치 않았다. 당신들 부대가 여기 많이 지나갔다고도 했다. 스님은 문하사를 유심히 보았다. 문하사는 자신의 눈동자를 그렇게 똑바로 응시하는 사람을 처음 보았다.


“당신은 사바세계에 살 사람이 아니구만.”

“......”


“거기 있으면 당신도 당신 주변도 해칠 뿐이야.”

“저보고 무슨 말씀이십니까?”

“평생 에베레스트 같은 데 오르던가... 아니면 중 될 상이지...”


문하사는 그때 처음으로 거울을 봤다고 생각했다.


“그 게릴라 부대도 어울리는 편이야...”


시간은 흐르고, 이 모든 싸움에서 살아남는 것은 자연이며 나무는 사람 목숨보다 훨씬 질기고 평화롭다. 누가 이곳의 주인인가 묻는다면, 그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존재임은 분명하며, 인간의 월등함은 자신들 믿음에서만 존재한다. 사소한 것으로 인간이라는 동물끼리 중오하고 살상하는 것을 자연은 항상 보았고, 사소한 것이 절대 아니라고 인간들은 독에 찬 항변을 하겠으나, 인간이 상상 가능한 고조선 시대부터 현재까지 자연은 사지가 달린 동물들의 과도한 욕망과 증오와 학살을 무수히 보았다.


그리고 잔인한 인간들은 안다. 그 욕망과 증오를 깨닫고 참회하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벗어날 수 없는 그 감정의 구렁텅이로 그냥 살던가, 알아도 모른 척 무시하고 삶을 살아야 자기가 최소한 배 곪지 않고 가진 걸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을. 자연은 어느 편도 들지 않고 그걸 그저 바라만 본다.


천마가 떠나고, 문중사와 최하사는 고개를 돌려 저 멀리 산을 본다. 작은 안도가 온다. 그들에게 산은 무생물이 아니다. 살아 숨 쉬는 유기적인 생명체 그 무엇이다. 그 품에 자신을 맡기면 어머니처럼 안아준다.


그걸 무시한 사람은 죽거나 곤경에 처한다. 남쪽에 있었을 때는 돌아갈 곳이 막사였으나, 이제 모든 회귀는 산으로 향한다. 저 멀리서 말없이 꿈틀거리는 산과 능선들. 높은 곳이 부른다. 숨 쉬며 손짓한다. 숨기 위해 오르는 것이 아니다. 살아있음을 항상 깨닫게 해준다. 내린 비를 품어 어머니의 모유와 같은 물을 준다. 산은 동물의 뼈를 먹고 살지 않는다.


문중사는 5.56mm 탄을 최하사 특전조끼 등 낭에 넣고 손바닥으로 툭툭 친다.


“가자. 산으로...”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함경도의 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0 선처럼 가만히 누워 5 +3 20.08.28 817 24 12쪽
59 선처럼 가만히 누워 4 20.08.27 751 24 11쪽
58 선처럼 가만히 누워 3 20.08.26 754 24 11쪽
57 선처럼 가만히 누워 2 20.08.25 817 20 12쪽
56 선처럼 가만히 누워 1 20.08.24 901 27 11쪽
55 Rain 6 20.08.21 835 24 14쪽
54 Rain 5 20.08.20 776 24 11쪽
53 Rain 4 20.08.19 779 25 12쪽
52 Rain 3 +3 20.08.18 830 26 14쪽
51 Rain 2 20.08.17 890 24 14쪽
50 Rain 1 20.08.14 1,090 20 15쪽
49 덤블링 나이프 4 20.08.13 857 24 10쪽
48 덤블링 나이프 3 +2 20.08.12 839 21 8쪽
47 덤블링 나이프 2 +1 20.08.11 877 23 11쪽
46 덤블링 나이프 1 20.08.10 1,006 27 12쪽
» 함경도의 별 6 +1 20.08.07 1,057 28 9쪽
44 함경도의 별 5 20.08.06 1,031 27 11쪽
43 함경도의 별 4 20.08.05 1,038 24 9쪽
42 함경도의 별 3 20.08.04 1,115 30 13쪽
41 함경도의 별 2 +1 20.08.03 1,192 24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