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가지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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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과을
작품등록일 :
2014.06.09 15:11
최근연재일 :
2021.08.24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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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6.30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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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쪽

운터 브룩과 무르짐 산맥 - 02

DUMMY

Channel 1. 로키


비평이 끝나고 나는 지부장의 명령에 따라 세미나실을 나온다. 이제 세 사람은 내 처분에 대해서 긴긴 토론을 벌일 것이다. 공은 이미 던져졌고 그것이 어디로 날아갈 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 내 소관이 아니다.


응접실에 앉아있기도 답답해 나는 아예 세이프 하우스 밖으로 나가버린다. 밖에는 황금빛 혹은 붉은 빛으로 물이 들은 가로수 아래 수많은 인파들이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해 거리를 나아가고 있었다. 나는 핫도그 점포로 가서, 핫도그 하나를 산 뒤에 벤치에 앉아 사람들을 관찰하기로 한다. 사실, 이건 내 오랜 취미중에 하나다.


시간이 비어 할 일이 없을 때면 난 이렇게 거리에 나가 목좋은 곳에 앉아서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하곤 했다. 사람 구경같은게 뭐가 즐겁냐고? 글세, 가끔 그런류의 비아냥을 종종 듣긴 했지만 그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의 경우 그런 사람들은 사람구경이 주는 즐거움과 효용성에 대해서 관심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물고기에게 창공을 나는 즐거움을 설명하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듯이, 나도 그들에게는 애써 설득을 하기 보단 관심을 끄는 편이다.


거릿 속 군상을 지켜보는 것에 대해서 내가 생각하는 효용성을 이야기 해 볼 생각인데, 당신도 여느 사람들처럼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생각이라면 이 다음부분에 대해서 귀를 막아도 좋다. 거리의 사람들이 짓는 표정을 지켜보다보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심리적인 상태를 예상해 본다. 때로는 두 사람의 사람이 걷는 걸 관찰해보면서 두 사람이 가진 인간적인 관계를 관찰할 수도 있었다. 또한, 세 사람이상의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걸 지켜보면서 나는 그들이 이루는 사회적인 위계에 대해서 추리할 수도 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사람들이 짓는 사회적인 표정과, 언어적 · 비언어적 표현을 연습해 봄으로써, 의뢰주나 동료 요원들과의 매끄러운 관계를 유지할 수도 있었다. 나는 인간을 관찰함으로써, 결국은 ‘우리’와 뗄레야 뗄 수 없는 존재인 인간에 대해서 이해를 하는데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모든 것에는 배움의 여지가 있다. 다만 그걸 깨닫느냐, 깨닫지 못하느냐에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머릿속의 수다쟁이가 마음껏 입을 놀리도록 내버려 두는 동안, 누군가가 내 옆에 와서 걸터앉는다. 나는 누군가 싶어 옆을 본다. 아, 펜릴이다.


“비평은 다 끝났냐?”

“응 그렇지 뭐. 너는 어땠냐?”


펜릴은 입꼬리를 내리면서 순중을 들어올리는 표정을 지어보이면서, 어께를 올렸다 내린다. 이제까지의 경험상, 그런 비언어적인 표현은 결과가 ‘썩 마음에 들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불빨래 마냥 탈탈 털렸지 뭐. 도중에 실수를 저질렀었거든. 하이에나같은 인종들에게는 좋은 개껌을 하나 던저준 셈이지 뭐.”


펜릴은 가볍게 자신의 심사에 대해 자평을 하면서 껄껄 웃는다. 확실히 감정처리를 잘 하는 녀석이다. 녀석처럼만 할 수 있다면, 아마 나도 감정을 가져도 의뢰를 하는데 큰 이상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녀석에 대한 평가를 하고 있는데, 펜릴이 나를 바라본다.


“로키, 그건 괜찮냐?”

“응? 아 그거?”


나는 그가 묻는 것인지 무엇인지 알아채고, 그에게 백마디 말로 하는 것 보다 한번 보여주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에, 가슴팍을 내려 ‘비정한 마음’을 보여준다. 펜릴은 그것을 신기하단 듯이 살펴본다.


“으음........ 그냥 볼때도 그닥 유쾌하지 않은데, 이래놓으니 더욱 거북해 지는구먼....... 넌 참 이런걸 잘도 달고 다닌다?”

“애초에 감정이란게 없었으니, 거북해지고 말고 할 것도 없더라.”

“듣자하니 부작용이 생길거라는데...... 뭐 좀 달라진 것이 체감되는 게 있어?”

“일단은....... 잘 모르겠다. 그냥 그러려니 하는거지 뭐.”


그는 나를 위 아래로 훑어본다. 그러다가도 결국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하긴, 부작용이 없는게 좋은거지뭐.”


가볍지 않은 화두를 나누어서일까? 잠깐 우리 사이에 침묵과 같은 것이 감돈다. 우리는 말없이 거리의 사람들을 지켜본다.


“95점.”

“응?”


펜릴은 내 말에 대꾸를 하는 대신 턱으로 어딘가를 가리킨다. 그의 턱이 지시한 곳에는 요즘 세태에 ‘섹시하다.’라고 평가 받을 만한 여성이 아이스크림을 햘짝거리며 먹고 있었다.


“너는?”

“사람이 자고로 외면보다는 그 속에 담긴 인간성을 봐야 하거늘........ 난 73점.”

“미친년...... 근데 의외로 점수가 꽤 박하다?”

“상반신에 비해 다리가 두꺼워. 저러면 비율이 무너지게 마련이지.”

“야, 요즘은 저런식으로 찰찰한게 트랜드야.”

“트랜드고 나발이고, 저렇게 아동용품 전문점에 걸려있는걸 추구하느니 무소의 뿔처럼 내 길을 가련다.”

“아동용품?”

“그래, 진열대에 많이 있잖아........오뚝이라고.”

“푸핫!”


펜릴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표상을 접한 것이 퍽 우스웠는지 정신없이 웃음을 터뜨린다.


“와....... 저기서 오뚝이가 튀어나와? 육색 사고모라도 뒤집어썻냐? 니가 그냥 창의력 대장해라!”


나는 펜릴의 찬사에 손가락으로 수줍게 브이자를 그리는 것으로 답한다.


“.......나야.”

“나기는 뭐가 나야? 뭔 소리를 하나 했더니 이런 저질스러운 이야기나 하고 있었어?”

“이게 우리의 미래라...... 아무리 생각해봐도 멸망이라는 결론밖에 떠오르질 않는구먼.”


둘이서 하이파이브를 하는 동안, 누군가가 뒤에서 핀잔을 준다. 뒤를 돌아보니 스벤과 토라였다.


“결과가 나왔어. 지부장님이 찾으시더라.”








Channel 2. 아이리스


수사님의 마지막 말씀을 듣고 난 뒤에, 저는 잠깐 동안이나마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수사님은 제가 걱정스러우셨던지, 몇 번이고 제게 말을 걸어오셨지만, 제 입은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답니다.


제 머릿속은 정말...... 엉망진창으로 꼬여버렸답니다. 전 솔직히 제가 제법 담백한 사람인 줄로 알고 있었는데요. 이번 사건을 통해 제 자신에 대해 다시 보게 되었답니다. 제 머릿속에는 그렇게 수많은 화자들이 숨어있는지 몰랐거든요. 게다가 그 화자들 하나 하나가 고집이 센 수다쟁이들이라. 자기 할 말만 떠들어댔지요.


하기사, 사람에겐 여러 가지 면모가 있으니, 그럴 수 밖에요. 다만 평소처럼 소화 가능한 정보가 주어질 때에는 개성을 죽이고 하나의 자아로 녹아들었을 뿐인 거였을 거에요. 이번의 경우에는....... 소화하기 힘든 정보가 제 머릿속을 혼란스럽게 휘저어버렸고, 그 난장판 속에서 용해되었던 자아의 파편들이 석출된 것이겠죠.


이렇게 간신히 메타인지를 발휘하는 와중에도 자아의 파편들은 여전히 목청을 줄이지 않고 떠들어 대고 있습니다.


‘들었어? 원장 수녀님의 이름이 나왓잖아!’

‘와........ 나란 여자는 어디까지 엄청나지는거야?’

‘야 그게 대수냐? 끽 해야 의미없는 문양이 몸에 새겨진거 가지고 호들갑이란 호들갑은 쥐어짜서 떠들고 있구먼. 품격좀 지킵시다.’

‘그래, 같은걸 받긴 했어도 원장 수녀님은 원장수녀님이고, 너는 너지 어디서 동일시하려고 포장지를 깔고 있냐?’

‘근데, 백도는 일단 아버님의 표지란건 확실하지 않아? 포장을 하든 하지 않든 사실만 놓고 본다면, 나는 원장 수녀님과 같은 경험을 했다는게 중요한거야.’


그나마 사리분별을 할 줄 아는 파편의 지적에 조금은 머리가 맑아진 것 같습니다.


“괜찮느냐?”


이번에는 수사님이 던지는 질문에 간신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습니다. 이건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라, 이때도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면 수사님은 의무관을 불렀을 거에요. 저는 가슴에 손을 얹고 숨을 고르면서 의식의 파편을 잠재웁니다. 이대로 놔두었다간 마지막 숨을 내쉬는 그 순간까지도 한 마디의 말도 못 내뱉었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수사님은 제가 서서히 평정심을 찾아가는걸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쉽니다.


“죄송해요.......”

“아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너니까 머리가 꽤나 혼란스러웠을 거다. 다 이해하고 말고.”

“원장 수녀님은........ 백도를 사사받고나서 어떻게 되셨나요?”


수사님은 수염을 어루만지면서 다시한번 추억에 빠져듭니다.


“음..... ‘뭔가 바뀌었냐.’는 의미의 질문이라면, 그렇지 않았단다. 그녀는 ‘백도를 받은게 뭔 대수냐?’라는 식이었어. 그냥 하던대로 살았지. 하지만, 네가 한 질문의 의미가 ‘더하게 되었나?’라는 의미를 가지게 된다면...... 그렇단다. 그녀는 더욱 맹렬해졌었지.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치면 부딪칠수록 그녀는 자신의 신념을 강하게 밀어붙혔단다. 이쯤되면 ‘무언가를 이루고자 신념을 고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이 얼마나 대단한지 확인하기 위해’ 사람들과 대립하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지........한마디로 꼴불견이었단다.”

“........”

“수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곁을 떠났단다. 지켜보는 사람의 입장으로선, 놀랄 노자였지. 나조차도 그녀가 그렇게 많은 동조자를 가지고 있었는지 몰랐거든. 행복은 가지고 있을 때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상실했을 때 알게되는 것이다라는 옛 말이 딱 들어맞더구나.”


저는 그때 당시의 원장수녀님이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었을지 상상해보았습니다. 자신의 신념을 고수하느라 모든 동조자를 잃은 외로운 여자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얼마나....... 외롭고 고통스러웠을까요?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도 그녀에게 크게 힘이 되어줄 수 가 없었단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기껏해야 가끔씩 도시락이나 싸기조 가서 같이 밥이라도 먹어주는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단다. 그때 그녀석의 몰골은........말이 아니었단다. 피골이 상접하고 눈가에는 그늘이 져서 턱에 마스크를 한 것이 아닐까 착각할 정도였지. 손은 또 어찌나 덜덜 떨던지, 난 그녀에게 우스갯소리로 ‘약하냐?’라고 놀리곤 했단다. 그때 테펠린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묵묵히 밥을 먹더구나. 아니, 영양분을 ‘섭취’한다고 해야겠구나. 그녀는 도통 맛을 느끼는 것 같지 않아보였거든.”

“원장 수녀님이.......그런 시절을 지낸 적이 있었군요.”

“나도 나중에 그녀에게 들었단다. 그때 나와 식사를 하는게 그녀가 일주일 동안 하는 식사의 전부였었다고 하더구나.”


수사님의 목소리가 떨리면서, 당신의 눈시울이 붉게 열이 올랐습니다.


“지금도 시간이 남을때면 수도없이 그런 생각을 해본단다. 그 사실을 누군가가 귀뜸해주었다면........ 아니, 내가 눈치껏 알아차렸다면......그녀를 더 찾아와주고, 더 많이 위로를 하고, 고통을 나눠지었을 텐데....... 사실은 나도 본질적으론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던거야. 아니, 오히려 더 했을지도 모르겠구나. 사실 난 그녀가 그런 꼴을 당하게 된걸 보며 ‘사필귀정’이라고 생각했었거든. 세상의 소문에 귀를 가려, 그녀의 말을 직접 들을 생각을 하지도 않았었단다.”

“수사님 그건........”


원장 수녀님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수사님의 말씀을 듣다보니, 제 마음속에 뜨거운 뭔가가 올라오면서, 그분께 무언가를 말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그 당시의 상황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주제넘게 나서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지금 이 말을 하지 않으면, 먼 훗날에 후회를 하며 지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저는 용기를 내기로 했습니다. 저는, 수사님께 천사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보다 더 많은 고뇌와 연습을 거친 뒤에 수사님의 손을 잡습니다.


“수사님의 잘못이 아니에요.”


수사님은 당신의 손을 움켜쥔 제 손을 한참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셨습니다. 저는 그분의 얼굴을 지켜보면서, 놀라운 것을 보았습니다. 그분의 붉은 눈시울이 찡그려지더니 뜨겁고 투명한 눈물이 주르륵 하고 흘러내렸습니다. 그분의 입가는 바르르 떨리면서 목울대를 울리고, 어께는 진폭을 키우며 부들부들 떨렸습니다. 이게......... 남자의 눈물인 것 같습니다.


저는 흐느끼는 수사님의 어께에 손을 얹어 토닥여드렸습니다. 지금 당장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것 밖에 없었거든요.








Channel 1. 로키


나와 펜릴은 지부장실의 문앞에 멈춰서 서로를 바라본다. 평소엔 느긋한 태도를 견지하는 펜릴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긴장할 수 밖에 없었는지, 녀석의 미소가 조금은 굳어있다.


“쫄았냐?”

“쫄기는, 너야말로 입꼬리 관리좀 받아야겠다? 안그래도 못생긴 얼굴이 화룡점정을 찍으려는 차니까.”

“단어 선택이 여전히 맥락이 없구만.”

“뭐래? 이정도 위트면 달변가의 반열에 들기엔 손색이 없지않냐?”


몇 번 농담을 주고받고나니, 펜릴은 어느정도 긴장이 완화되었는지 그 입꼬리가 조금은 풀려나가는 것 같았다. 나는 녀석보다 조금 앞서서 문을 열고 지부장실로 들어간다.

지부장을 비롯한 세 사람이 우리를 맞아준다. 찰리는 우리를 향해 대놓고 알은체는 하지 못하고, ‘반갑다.’라는 의미가 담긴 눈빛을 보낸다. 그리고 우리의 산타클로스는....... 별다른 말 없이 책상에 놓아둔 서류철을 뒤적거린다.


“우리는 너희들의 성적을 각각의 기준에 따라 100점 만점으로 채점했다. 우선 나부터 심사평을 하도록 하지.”


지부장은 자신의 서류철에서 할 말을 찾아 읽어내려간다.


“저는 크로스로서 갖춰야할 소양이라고 생각하는 ‘문제 해결능력’ 및 ‘의사결정능력’, ‘기능 숙달성’, ‘암살자의 3대 규약의 준수’를 평가 준거로 삼았습니다. 그 결과 펜릴 요원의 점수를 96점, 로키 요원의 점수를 ‘92점으로 매기는 바입니다.”


첫 심사가 끝났다. 펜릴은 안심이 되는지 한숨을 내쉰다. 일대 영이다. 하지만 점수차이가 5점 이내라, 충분히 역전을 기대할 수가 있다. 그 다음 차례는 찰리였다.


“저는 선요원 대표 대행으로서, ‘인적 · 물적 자원 활용능력’, ‘요원의 안전 확보 여부’를 평가준거로 삼았습니다. 그 결과 펜릴 요원의 점수는 77점, 로키요원의 점수를 70점으로 매겼습니다.”


찰리의 짠물같은 점수에 숨이 턱하고 막히지만, 일단 과락점수를 면했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으니....... 4점뿐이던 점수 차이가 찰리의 채점 이후로 11점으로 벌어져 버린 것이다. 점수차가 이정도로까지 벌어지면 사실상 역전을 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아니, 역전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상당히 양심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해야겠군. 나는 펜릴에게 ‘축하한다.’라는 의미의 눈짓을 보낸다.

그래, 한 가을밤의 꿈도 여기에서 끝이났고, 억지춘향 노릇도 이젠 끝이 다가왔다. 이젠 나를 어떻게든 거물로 만들려는 토라의 간섭에서 벗어나, 내가 도리라고 생각하는 것을 하면 그만이다.


이제, 마지막 채점관 만이 남았다. 그 사람은, 우리를 쓱 하고 훑어본 뒤에야 입을 연다.


“저는 의뢰주로서, 의뢰가 끝난 뒤에 얻게 될 직접적인 이익과 파급 이익을 평가 준거로 삼았습니다. 그 결과....... 펜릴군은 점수를 87점, 로키군의 점수는....... 99점을 드리겠습니다.”


어안이 벙벙해 나도 모르게 몸을 벌떡 일읔다. 11점차로 뒤지고 있었는데, 순식간에 역전을 해버렸다. 그것도...... 얄밉게 1점 차이로 말이다. 잠깐만....... 내가 이긴건가? 내가 크로스가 된건가? 이제껏 나는 크로스라는 것을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그냥 남의 이야기일 뿐이고, 나와는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난 그냥 주어진 의뢰만 충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내 본분이라고 생각해온 사람이다. 만약 내가 토라에게 등을 떠밀리지 않았다면...... 이런 기적을 맛보지 못했을 것이다.


처음의 충격이 지나가고, 조금 여유가 찾아온 뒤에 나는 비로소 펜릴의 눈치를 살폈다. 녀석도 날 보더니 미소를 던진다......만,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우선 든 생각은 녀석에게 미안하다는 것이었다. 그는 크로스가 되기를 간절히 바래왔었다. 집안이 많은 크로스를 배출해왔고, 그들은 ‘우리’의 존속에 기여를 해왔다. 그는 자신도 선조가 걸어왔던 길을 걸을 것이라고 믿어왔었다. 내가 아는한 그것은 이 실없는 녀석이 유일하게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녀석의 존재이유였으니까.


간절하게 소원하던 사람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정작 아무런 생각 없이 등 떠밀린 이가 성취를 이룬다......... 삶이란 이렇게 얄궂은 것일까? 난 항의의 의미로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는데, 오히려 펜릴이 내 무릎을 잡고 나를 말린다.


“왜 그래?”

“왜 그러냐고?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무슨 짓을 하려는 참인거야?”


나는 펜릴의 손을 뿌리치고 세 사람의 심사관을 똑바로 바라본다.


“무슨 할 말이라도 있는가?”

“심사의 과정과 그 결과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습니다. 두 사람의 심사관이 제가 아닌 펜릴의 손을 들어주었는데 단 한사람의 손에 의해 결과가 뒤집히는건 합리적인 심사라고 할 수 없습니다.”


나는 감정이 고양되, 의뢰주를 손가락질하기까지 한다.


“의뢰주는 비록 심사관으로 선정되긴 했으나, 그는 이 분야에 있어서 비전문가입니다. 비전문가에게 심사를 맡긴다면 배점을 낮추는 식으로 조정 장치를 마련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여태껏 흥분이란걸 몰랐고, 분노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모르고 살아왔는데, 이제는 그 감정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 것 같다. 그리고 또 한가지 확실한 점을 짚자면, 지금이 바로 그러한 감정을 분출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나는 지부장을 보고, 시선을 돌려 찰리를 본다. 분명 그들도 내 말에 대해서는 어느정도 동의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도 내 생각을 따라서 심사를 재고하지 않을까?


“........”

“........”


긴 침묵이 흐른다. 나는 그들과 어떻게든 눈을 맞춰보려고 했지만, 그들은 서류에 써있는 글자들만 쳐다볼 뿐, 나에게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눈길을 주지 않는 대신에, 안면의 근육이 긴장과 이완을 거치면서 나타내는 문양으로서 내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한다. 그들이 내게 말한 것은 ‘이제 그만 입을 다물어라.’라는 것이었다. 왜.......왜? 왜 내 말에 그들은 호응을 하지 않는 것일까? 그들도 분명 이 심사가 가진 비합리성을 알고 있다. 그런데 왜 내 주장에 힘을 싣어주지 않는 것일까? 왜 문제 삼지 않는거지? 답답해 미칠 노릇이다. 사람을 떠나고, 그 더러운 유기체가 가진 악습을 경멸하며 단절하기로 결의한 것이 ‘우리’라는 집단인데, 지금 이 상황은 ‘우리’가 인류라는 시행착오 투성이의 생물종이 가진 악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나는 그들을 다시 한 번 조장할 셈으로 목청을 높이려는 찰나에, 내 옆구리로 강한 타격이 가해진다. 예상치 못한 공격에, 나는 저절로 무릎이 풀려 자리에서 주저앉아 버렸다.


“아이고, 이친구가 자리에 오랫동안 누워있다가 갑자기 일어났더니 다리가 풀려버린 모양입니다.”


내 등뒤에 맴도는 소리는 펜릴의 것이었다. 설마 그녀석이 나를 말린 것일까? 왜........왜? 나는 녀석을 위해 이렇게 나서는데, 고마워 하지는 못할망정 왜 나를 방해하고 있는 것일까? 세상에 이보다 더한 아이러니함이 어디있다는 말인가?


“네 놈의 일장연설은 아주 잘 들었어. 귀에 착착 감기고 감동적이더라. 하지만 네가 잊고있는게 있는데........ 우린 영리조직이야.”


그 잔인하게 명료한 설명에, 나는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Channel 2. 아이리스


수사님은 한참을 운 뒤에, 피곤하셨는지 발개진 눈을 비비면서 방으로 들어가시고 저는 그릇을 챙겨 취사실로 갔습니다. 취사를 맡으신 수사님들도 각자의 방으로 가시는 바람에 텅 비어있었습니다. 차라리 잘 되었지요. 휴식을 취하고 계신 수사님들께 굳이 일거리를 떠맡기지 않아도 되고, 제가 고집을 부려 설거지를 한다고 해도 수사님들이나 저나 서로 불편했었을 테니까요.


수도꼭지를 돌리니 시원한 물이 쏟아져 제 팔뚝을 적십니다. 전 설거지 대야에 물을 받아서 그릇들을 담습니다. 그릇들은 이내 차오르는 물속에 잠겨듭니다.


저는 세제를 수세미에 묻힌뒤, 그릇을 닦기 시작합니다. 그릇에 묻은 소스들이 거품과 함께 사그라듭니다. 그바람에 그것들이 제 손에 묻기는 했지만, 불쾌하단 생각이 들지 않아요. 이들이 운이 좋았다면 제 입속으로 들어갔을 수도 있겠지요. 손보다 더욱 중요한 입과 만나야할 운명이었던 것이 제 손에 묻는다고 불쾌감을 느끼는건 매우 어리석은 생각일 것입니다.


음식물을 그릇에서 닦아낸 뒤에 그릇을 대야에 담급니다. 소스가 잔뜩 묻었던 그릇들은 물에 씻기면서 본래의 빛을 되찾습니다. 저는 대야를 조금 기울여 그릇들을 씻어냅니다. 한때 소스를 그릇에서 닦아내는데 도움을 주었던 세제들도 자신의 사명을 다하고, 그릇에서 미련없이 떠나갑니다.


완전히 깨끗해진 그릇을 제 손가락으로 문지르니 기분좋게 뽀드득 하는 소리를 냅니다. 이런 말을 하자면 유난스럽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설거지를 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소리를 듣는건 꽤나 즐거운 일이 분명합니다.


상쾌한 기분을 느끼며 저는 취사대에 남은 음식물 찌꺼기를 모아 수거함에 가져다 놓습니........


“야옹!”


음식물들이 수거함으로 쏟아지려는 찰나에, 위에서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옵니다. 고개를 들어보니, 고양이가 창틀에 앉아서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거 버릴거면 날 줘.’라고 하는 걸까요? 고양이의 철저한 절약정신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옵니다. 동물의 본능이란 참 대단한 것 같아요. 이 넓은 숲에서 음식이 있을 만한 곳을 어떻게 저렇게 귀신같이 알아내서 찾아오는 걸까요?


저는 고양이에게 미소를 지으며, 녀석이 원하는 음식물을 건넵니다........응? 요것 보라지요? 아까참에는 달라고 할때는 언제고, 음식이 정작 자신의 눈앞에 주어지니 그것을 멀뚱이 바라보고만 있습니다. 저는 음식을 그 아이에게 좀 더 가져다 대어보았지만, 이 친구는 자로 잰 듯이 정확하게 손이 다가온 만큼 뒷걸음질을 쳐 달아납니다. 몇 번이고 더 시도를 해보았지만, 변함이 없었습니다. 한숨이 저절로 나옵니다.


저는 녀석에게 음식을 가져다주는 걸 그만두기로 하고, 그 아이를 살펴보기로 합니다. 무언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을 때는 성급하게 나서는 게 아니라, 조금 멀리서 지켜보면서 왜 그런 걸까라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게 더욱 효과적이라는 말이 떠올랐거든요........아아! 드디어 알았습니다. 그동안 끼니를 제대로 챙겨먹지 못했는지, 이 친구는 딱하다 싶을 정도로 털이 빠져있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니에요. 어디에서 얻었는지, 입가엔 가느다랗게 상처도 나 있었구요....... 저런, 다리도 살짝 저는 것 같습니다. 사실이 아니라 한낱 추측에 불과했으면 좋겠지만, 이 아이는 그동안 사람들로부터 제법 괴롭힘을 당한 모양입니다.


생태적으로 포식관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다른 종의 생물에게 해를 끼치는 동물은 인간이 유일하거든요. 제가 알기론 이 숲에선 고양이를 포식하는 동물은 없거든요. 저는 성급하게 아이에게 접근하는 대신에 음식물을 빈깡통에 담아서 취사관 밖으로 나섭니다.


고양이는 제 행동이 이해가 되질 않았는지 한참을 물끄러미 보다가 저를 따라갑니다. 역시 책에서 본 내용이 맞네요. ‘누군가를 유혹하기 위해서 유혹의 대상에게 무언갈 주는건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숙련된 유혹자는 그냥 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감추려고 들고, 그것이 유혹의 대상에게 주어지기 직전에 빼앗아 버린다. 그런 행위는 유혹의 대상이 그것을 욕망하도록 만든다........ 그것이 바로 욕망의 핵심인 것이다. 그것은 효과가 제법 탁월해서, 심지어 유혹의 대상이 그것을 실질적으로 원하지 않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유혹의 대상은 자신의 눈앞에서 그것이 사라졌다는 생각에 소유욕을 불태우게 된다.’


저는 음식물 캔을 가지고 밖으로 향합니다. 고양이는 어느새 제 뒤를 졸졸 따라오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몰래 지켜보면서 저는 콧노래를 부릅니다. 마치 피리부는 남자가 된 느낌이에요.


저는 한참을 걸은 끝에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공터에 다다르고 나서야 발걸음을 멈춥니다. 뒤를 돌아보니, 이태까지 따라온 고양이가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귀엽고 어리석습니까? 만약 영리한 친구였다면, 제가 취사실을 나서자마자 저를 따라나서는 대신에 음식물 수거함을 뒤졌을 텐데 말이에요.


어쨌거나, 저는 고양이가 지켜보는 앞에서 음식물 캔을 내려놓고 뒷걸음질을 칩니다. 제가 한 걸음 뒤로 갈 때마다, 고양이는 그만큼 앞으로 걸어옵니다. 이런 식으로 밀당이 이어진 끝에, 고양이는 마침내 음식물 캔에 다다를 수 있었습니다.








Channel 1. 로키


지부장 역시 이런 식으로 사태가 급변할 것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그의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잠깐 어렸지만..... 이내 그것은 수면아래로 가라앉아버린다. 그는 미리 준비해둔 축하의 말을 나에게, 그리고 위로의 말은 펜릴에게 건넨다.

나는 의미없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그의 말을 경청하는 척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생각만이 가득 차 있었다.


‘나를 합격시킴으로서, 의뢰주가 얻게 될 이익은 무엇일까?’


“어쨌거나, 로키 너의 삶에 있어서 새로운 지평이 열린 것이다. 너는 크로스가 됨으로써, 더 높은 시야와 권리를 누리게 될 것이고 그와 동시에 네가 이제까지 졌던 것보다 더 무거운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그러니 그에 맞는 처신을 하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나는 의뢰주를 흘끗 본다. 네 사람을 벙찌게 만든 파란의 한가운데에 있었던 사람치고는 태연하다. 아니, 천연덕스럽다고 해야 할까? 할 수만 있다면, 그의 머릿속에 들어가서 그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을 따름이다. 참 나도 별일이다. 주어진 일만 하는 것이 내 도리이자 한계라고 그 외에 것에 대해 궁금함을 가질 필요가 없거니와,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내가 가진 지론이었는데, 그걸 내 손으로 깨고 있지 않은가......... 이런 현상 역시 ‘비정한 마음’에 손상이 갔기 때문인 걸까?








Channel 2. 아이리스


길고양이는 음식을 앞두고서도 제 눈치를 한참동안 살피다가......... 제가 녀석을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한 뒤에서야 비로소 음식물에 입을 댑니다. 그래도 완전히 경계가 가신 것은 아니라서 처음엔, 한입을 베어물면 어김없이 고개를 들어 제 동태를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처음에는’에 불과하기 때문에 어느정도 먹이를 먹고나니 음식맛에 완전히 정신이 팔려 고개를 들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먹이통에 고개를 쳐박고 허겁지겁 먹어댑니다.


그 모습이 귀엽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으론 짠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생활습관이 하루아침에 몸에 밴 것이 아니겠지요. 녀석의 몸에 상처가 하나씩 생길 때 마다 이 아이는 사람이라는 종에 대해 불신을 하나 새겨왔을 것이 분명합니다.


생각 같아서는 녀석에게 다가가 머리라도 쓰담쓰담을 해주고 싶은데 이 아이가 그동안 사람에게 받았을 상처를 생각하니, 이 작은 생명에게 다가가는 것조차도 죄스럽게 느껴집니다. 아울러 이 힘없는 생명을 괴롭히면서 즐거워했을(물론 이건 한낱 추측일 뿐이지만) 사람들에 대해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사람은 도대체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는 걸까요?


길고양이는 깨끗이 그릇을 비우고도 조금 아쉬웠는지, 혀로 통조림에 방울방울 묻은 소스까지 싹싹 햝아먹고나서야 저를 바라봅니다. 아이는 절 바라보며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제가 한 처신이 이 아이에겐 새로운 경험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도움을 주고서도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어쩌면 이 아이에게 사람이란 자신에게 패악을 끼치면서 즐거워하고, 도움을 주면서도 일정의 대가를 바라는(예컨대, 머리를 쓰담쓰담 한다거나, 생색을 잔뜩 낸다거나)식으로 자신과 관계를 맺어왔을 것입니다. 그러니....... 제가 하는 행동을 이해하기 어려웠을지도 모르겠어요.


고양이는 저라는 사람을 이해하고 싶은지 저를 향해 다가옵니다. 저는 고양이가 다가온 만큼 뒷걸음질을 칩니다. 아까 취사실에서의 상황은 완전히 역전이 된 셈이지요. 이런 면에서, 참으로 삶이란게 우스운 것이 아닙니까? 어쨌건, 녀석은 저보다 발걸음이 좀 더 빨라서, 이내 제가 있는 곳으로 쪼르르 오더니, 이젠 벌러덩 엎드립니다.


나를 올려다보는 고양이의 도도한 얼굴에는 ‘내 특별히 네가 나를 만지는걸 윤허하노라.’하는 느낌이 들어있었습니다.








Channel 1. 로키


“로키형의 승진을 위하여!”


스벤의 선창과 함께 우리 모두 잔을 부딪친다. 토라와 스벤은 결과의 여부를 떠나서 즐겁게 웃는다. 일단 나는 잔을 부딪친다만...... 펜릴의 얼굴을 살펴본다. 일단은 녀석도 웃고 있긴 했다. 그 모습을 뵈니 마음 한복판에 자리한 근심이 녹아내려갔지만, 한 구석에 새로운 생각이 용천마냥 새어나왔다. 내가 아는 그는 크로스가 되는 걸 간절하게 바라왔었다. 분명 지금 그는 마음이 결코 편치 않을 것이다......... 녀석의 웃음은 진실일까?


“형은 진짜 대단한........ 뭐랄까. 미친놈인거 같아. 어떻게 그 상황에 니트로를 터뜨릴 생각을 하다니 말이야. 근데..... 더 대단한건, 사실 나지. 내가 만약 형한테 그걸 건네지 않았다면 그 희대의 명장면이 나오지 않았을 거 아니야?”

“그럼 그럼. 우리 스벤이 진짜 대단했지.”

“진짜 나란 남자는........ 내가 생각해도 두렵다 두려워. 어디까지 어마어마해지는 거야?”


스벤은 토라에게 눈을 찡긋하고, 토라는 ‘으이구 하며’ 녀석의 등을 친다. 내가 다쳐서 밤을 샜다고 하더니 일이 잘 풀리는 바람에 마음의 짐을 벗어던졌는지, 지금의 녀석은 평소의 모습보다 더욱 격양되어있었다. 문득 녀석의 야코를 죽여버릴 만할 말이 떠올랐지만....... 그만 두기로 한다. 사실, 저 친구가 이 말을 하기 까지 얼마나 마음을 졸이며 고생을 했었겠는가? 그리고, 응당 내가 누려야 하지만 내가 느끼지 못하는 ‘즐거움’이라는 걸 이 두 사람이 대신 느껴주는 건 사실 고맙다라고 생각해야 하는 일이 분명하다........ 덕분에 내가 마음 놓고 펜릴을 걱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좌절당하는 심정....... 솔직히, 나로선 그의 감정을 100% 공감할 수 없다. 나는 ‘공감’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없으니까. 하지만 그간의 경험으로 ‘동료애’라는 감정은 안다. 나는 그가 걱정스럽다.


펜릴은 술잔을 기울이며 스벤과 토라가 만담하는 모습을 즐겁게 바라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친다. 나는 마음이 불편해져, 잠시 셋에게 양해를 구하고 밖으로 바람을 쐬러 나간다. 이젠, 완연한 가을이라 가로수의 단풍이 떨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떨어지는 낙엽 사이로 지나다니고, 길고양이는 가로수 아래에 자리를 깔고 앉아 졸고 있었다. 나는 거리를 바라보면서 또 다시 작은 즐거움에 빠져들었다.


“또, 또, 또 멍을 때리고 있냐? 그만 좀 봐라 이 관음증 환자야.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걸 지켜보다보면 성적인 즐거움이라도 느껴지나 봐?”


펜릴이다. 녀석의 손에는 술잔이 두 개 들려있었다.


“그거 가지고 나와도 되는 거야?”

“안될 건 또 뭐냐? 우리가 이집에서 가져다 바친 돈이 얼만데.”


그의 말이 맞기도 하고, 그가 잔을 건네기도 해서 나는 별 말없이 그의 손에 들린 잔을 받는다.


“우리 핏덩이의 무궁한 발전을 위해 이 형이 한잔 올리겠습니다.”

“뭐래? 누가 들으면 나이가 열 댓살 차이가 나는 형이라도 되는 줄 알겠어?”

“마, 사회적인 경험이 그래.”


녀석은 낄낄대면서 술잔을 채워준다. 녀석의 웃음에는 시큼한 술 냄새가 질펀하게 풍겨 나온다. 나는 조그만 술잔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본다.


“미안하다.”

“뭐가?”

“그거........”


녀석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본다. 그리곤 술잔을 다시 비워낸다.


“미안하다?”

“그래.”

“음....... 미안하면 말이야, 한잔해.”


나는 술잔을 비운 뒤, 다시 잔을 채운다.


“술은 줫도 못마시는 년이. 오늘따라 제법 무리한다? 괜찮겠어? 너 기절해버리면 니 돈으로 계산할 건데?”

“그래, 맘대로 해라이 새끼야.”


펜릴은 내가 단념해서 고개를 흔드는 게 우스운지 앞머리를 잡아 뜯으면서 낄낄대면서 어께동무를 한다.


“야.......시팔년아.”

“왜?”

“미안하긴 뭐가 미안하냐?”

“아무래도........ 이건 네가 원하는 거였고, 내가 봐도 난 이번에 붙는 게 말이 안됐어. 사실상...... 실력으론 내가 네게 뒤쳐진 거야.”

“.........”


펜릴은 나를 빤히 보다가 한마디를 툭 던진다.


“지랄 똥싸네.”

“뭐 임마?”

“지부장이랑 찰리는 그 사람들의 입장에서 자신들이 줄 수 있는 점수를 준거여. 그리고 의뢰주 그 양반도, 자신의 입장에 따라 점수를 준거고. 그걸 왜 니가 미안해하냐?”

“........”

“그리고 이번 심사 한번 미끄러진 걸로 인생이 조진 것도 아니고, 떨어지면 또 보면 되는 거여.”

“........그래, 니가 옳다.”

“그런 의미에서 한잔?”


이놈의 새끼는........ 아주 작정을 한 모양이다. 그만 좀 먹여라. 지금 머리가 깨질 지경이다.


“야 근데.”

“어.”

“니가 미안한 것도 느끼고 별일이다? 근데 그 말을 들어줄 때 진짜 내가 어색했던거 알어? 표정변화 하나 없이 그런 말을 하는데, 진짜 하나도 미안해 보이지가 않더라.”

“........”








Channel 2. 아이리스


고양이의 윤허를 따라, 저는 냥이 곁에 걸터앉아 녀석의 배를 쓱쓱 문질러 줍니다. 그것이 퍽 기분이 좋았는지, 이 아이는 눈을 감고 낮게 그르렁거리는 소리를 냅니다. 그 모습을 지켜보노라니....... 뭐랄까요? 솜씨 좋은 세신사에게 몸을 맡긴 사장님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장님, 여기가 결리십니까?”

“갸르릉.......”

“여긴 다 밀었고, 이번엔 여기를 한번 공략해 보겠습니다. 어떠세요? 시원하셔요?”

“그릉.......”


고양이의 표정을 보니 ‘이곳이 가히 천국이구나.’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상황극을 이어가다보니, 재미있는 노릇입니다. 만물의 영장이 한낱 네발 짐승의 시중을 들고 있다는게 우습지요. 하지만, 이런 묘한 상황의 재미를 극대화 하는 것은 바로, 이 모든걸 당연하게 여기는 고양이의 태도입니다. 마치 동화속의 한 장면에 출연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당신도 잘 알텐데요, 한 소녀가 연미복을 입고 시계를 쳐다보며 바쁘게 어디론가로 뛰어가는 토끼를 쫓아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 말이에요. 어쨌거나, 저 역시 세신사의 노릇에 완전히 몰입해있었습니다.


“사장님 이번에는.......”


저는 고양이의 털을 문지르면서, 녀석의 몰골을 살펴봅니다. 마치, 땜통이 난 것처럼 녀석의 털은 군데군데 벗겨져있었고, 입가엔 상처가 길쭉하게 패여있었습니다. 살은 바싹 말라 엉치뼈와 갈비뼈가 훤하게 드러났구요...... 누가 보더라도, 이녀석은 그다지 순탄하지 않은 삶을 산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생각이 여기에 이르니, 마음이 짠해집니다. 아버님은 왜 이 아이에게 고통스러운 삶을 안겨준 것일까요?


“그르릉......컁! 캬오!!”


이런이런, 제가 마사지를 하면서 다른 생각을 한 것이 불만이었는지, 고양이 사장님께서는 두 눈을 부릅뜨고 추상같이 소리를 지릅니다. 저는 놀라서 손을 치웠다가, 사장님이 노여워하지 않도록 처음의 부위를 문지릅니다. 사장님은 이내 노여움을 가라앉히시고 다시 눈을 감습니다. 하하, 자기 앞에서 딴 생각을 하지 말란 모양입니다. 우리 냥사장님은 아무래도 질투심의 화신인 듯 해요.

하지만, 한번 시작된 생각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쉽사리 멈추지 않고 그대로 흘러가버리기 시작합니다. 아버님은 왜 이 아이에게 고통이 가득한 삶을 준 것일까요? 이런 질문은 꽤나 많은 사람이 했었는지, 성경에는 아드님이 직접 아버님의 뜻에 해명을 하는 일화가 수록되어 있어요.


‘먹을 것이 걱정이 된다면, 하늘을 보고, 그곳에 있는 새를 보라. 그들은 자신이 먹을 것을 심지도, 거두지도 않으며 하물며 창고에 모아두지도 않는다. 하지만 아버님께서는 이들을 거두어 기르시는데 그들보다 존귀한 너희는 어쩌겠느냐. 그러니 걱정하지 말거라. 또한 입을 것이 걱정이 된다면 들판의 백합을 생각해라. 그들은 일하지 않고, 그들이 입을 옷을 짓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지닌 아름다움은 솔론왕의 영광을 빛이 바래게 만든다.’


아드님의 해명이 옳다면...... 이 아이가 삐쩍 마르고 상처입은채 이곳 숲을 기웃거리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생각 할수록 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이런 일이 비단 고양이에게만 해당되는게 아니잖아요. 17세기인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타인의 무관심속에 행려병자로 떠돌다가 죽음을 맞이합니다. 그런데 그들을 기도로서 치유하는 것이 법으로 금지되어있지요. ‘합리성이 결여된 비과학적인 방법으로 치유하는 행위는 사람들을 미신에 혹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그들이 말하는 합리성이 무엇일까요? 사람의 목숨을 건지는 대신에 그에 합당한 경제적인 댓가를 치르는 것? 사람의 목숨을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사고야 말로 합리성이 결여된 것이 아닐까요?

저는 고양이의 머리에 손을 얹고 눈을 감습니다. 그리고 당장 머리에 떠오르는 성경 구절 하나를 읊조립니다.


“아버님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분은 나를 푸른 초장에 눕히시고 쉴만한 물가로 이끌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고 생각했었는데, 제 손에는 성화가 피어오르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저는 이 아이의 상처를 아물게 해주고 싶은데...... 왜 성화가 응답하지 않는 걸까요? 저는 다시 한번 눈을 감고 기도문을 읊조립니다.


“아버님은 나의 목자이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분은 나를 푸른 초장에 눕히시고, 쉴만한 물가로 이끌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손에는 성화의 뜨거운 기운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마음이 급해져 두 번 세 번 더 기도문을 읊조려도 마찬가지입니다. 고양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저를 쳐다봅니다. 고양이와 눈이 마주치다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기도로 사람을 치료하는게 금지된 이 사회에 불만을 가지고 있지만, 저란 사람은 결국 그것에 동화되어, ‘기도로서 사람을 치유를 행하면 안된다.’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닐까요? 사람의 가치관을 형성하는건 매우 간단합니다. 장기간의 가시적인 교육과, 그리고 상과 벌이라는 잠재적인 교육 이 두가지만 있으면 충분합니다. 사회라는 틀에 갇힌 제 자신이 매우 답답하게 느껴지고 화가 납니다.


‘아직도 제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네요. 인간이 만든 도덕적인 잣대를 넘어서서 생각해보세요. 그래야 당신이 가진 고민을 해결 할 수 있을 겁니다.’


이제야 천사님이 한 말씀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다시한번 힘을 내 기도문을 읊조립니다. 아니, 외칩니다.


“아버님은 내 목자라, 내게 부족함 따윈 없어요. 그분은 나를 푸른 초원에 눕히고, 쉴만한 물가로 나를 데리고 가주기 때문이에요!”


그 마음이 닿은 걸까요? 양 손이 뜨끈뜨끈해지는 기분이 들기 시작하면서, 제 손아귀에 푸른빛 성화가 조금씩 빛을 발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상처입은 고양이의 몸이 빠르게 아물기 시작합니다.

저는 고양이의 옆에서 숫제 울부짖습니다.


“아버님, 당신은 내 목자라고요! 당신은 날 푸른 초원에 눕히고, 쉴만한 물가로 날 이끌어주잖아요! 그러니까 제발 이 아이의 상처를 당신의 피묻은 오른손으로 어루만져 주시라고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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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구름의 아이들 - 09 18.02.21 131 0 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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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당랑포선 황작재후 - 08 17.05.06 226 0 21쪽
42 당랑포선 황작재후 - 07 17.03.22 299 0 25쪽
41 당랑포선 황작재후 - 06 17.01.29 377 0 25쪽
40 당랑포선 황작재후 - 05 16.11.24 380 0 27쪽
39 당랑포선 황작재후 - 04 +2 16.11.07 615 1 22쪽
38 당랑포선 황작재후 - 03 16.10.18 546 1 25쪽
37 당랑포선 황작재후 - 02 16.09.26 565 1 25쪽
36 당랑포선 황작재후 - 01 16.09.11 499 0 30쪽
35 실마리 - 06 16.08.11 520 0 35쪽
34 실마리 - 05 16.07.21 580 0 30쪽
33 실마리 - 04 16.06.27 402 0 23쪽
32 실마리 - 03 16.06.09 396 0 28쪽
31 실마리 - 02 16.05.29 322 0 19쪽
30 실마리 - 01 16.05.23 470 0 13쪽
29 운터 브룩에서 - 04 16.05.22 303 0 12쪽
28 운터 브룩에서 - 03 16.05.08 465 0 28쪽
27 운터 브룩에서 - 02 15.11.04 531 0 21쪽
26 운터 브룩에서 - 01 15.10.10 480 0 11쪽
25 운터 브룩으로 가는 길 - 03 15.04.30 429 0 24쪽
24 운터 브룩으로 가는 길 - 02 14.07.18 625 0 19쪽
23 운터 브룩으로 가는 길 - 01 14.07.10 435 0 25쪽
22 뉴 빌리지와 뉴 빌리지 - 07 14.07.09 422 0 14쪽
21 뉴 빌리지와 뉴 빌리지 - 06 14.07.08 541 1 22쪽
20 뉴 빌리지와 뉴 빌리지 - 05 14.07.07 475 0 24쪽
19 뉴 빌리지와 뉴 빌리지 - 04 14.07.06 680 1 17쪽
18 뉴 빌리지와 뉴 빌리지 - 03 14.07.05 604 0 17쪽
17 뉴 빌리지와 뉴 빌리지 - 02 14.07.04 563 0 32쪽
16 뉴 빌리지와 뉴 빌리지 - 01 14.07.02 841 0 21쪽
» 운터 브룩과 무르짐 산맥 - 02 14.06.30 721 1 40쪽
14 운터 브룩과 무르짐 산맥 - 01 14.06.29 630 0 36쪽
13 이븐타운과 무르짐 산맥 - 03 14.06.28 576 2 43쪽
12 이븐타운과 무르짐 산맥 - 02 14.06.27 773 0 30쪽
11 이븐타운과 무르짐 산맥 - 01 14.06.26 522 0 14쪽
10 피아제와 비고츠키 14.06.25 572 0 13쪽
9 이스트 민스터와 이스트 민스터 - 05 14.06.24 704 1 45쪽
8 이스트 민스터와 이스트 민스터 - 04 14.06.23 352 0 37쪽
7 이스트 민스터와 이스트 민스터 - 03 14.06.20 516 0 32쪽
6 이스트 민스터와 이스트 민스터 - 02 14.06.19 389 1 10쪽
5 이스트 민스터와 이스트 민스터 - 01 14.06.14 597 3 23쪽
4 운터 브룩과 이스트 민스터 - 02 14.06.13 409 2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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