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종횡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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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새로
작품등록일 :
2012.09.06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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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2.1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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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태화산(太和山)

Copyright ⓒ 2010-2015 by 한새로




DUMMY

민혁이 되돌아왔을 때까지도 백영 도장은 아직 ‘수면’ 마법에 의한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백영 도장이 고수였음에도 마법의 위력이 조금도 감쇄하지 않은 것을 보고 민혁은 내심 흐뭇했다.

‘마법이 무공의 고하(高下)에 상관없이 잘 먹힌다면 나로서는 더없이 고마운 일이지.’

내공은 마치 도깨비 같아서 상상할 수 없는 현상을 일으킨다. 극독을 삼키고도 끄떡없는 것은 예사이고, 웬만한 타격으로는 고수를 상(傷)하게 할 수도 없었다.

그런 무공 고수들이 즐비한 무림에서 마법의 효력이 제대로 먹힌다면 설사 민혁의 실력이 조금 처진다 하더라도 얼마든지 부족함을 메울 수 있는 일이었기에 그로서는 내심 즐거울 수밖에 없었다.

“레스티튜오!”

그가 백영 도장에게 걸린 ‘수면’ 마법을 해제하자 도장은 “끙!”하는 신음과 함께 눈을 떴다.

눈앞에서 민혁이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자 벌떡 몸을 일으킨 백영 도장은 주위를 급히 둘러보았다. 주변 정황이 정신을 잃기 전의 상황과는 많이 다른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게……. 어찌된 일입니까?”

도장의 말에 민혁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도장께 잠시 무례를 범했습니다.”

민혁의 ‘무례’라는 말에 도장은 자신이 정신을 잃은 것이 민혁의 소행임을 깨닫고 얼굴을 굳혔다. 그런 도장의 변화를 본 민혁이 서둘러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몇 가지 번거로운 일들을 해결해야 했기에……. 소생의 무례를 사과드리겠습니다.”

그의 사과에 도장이 물었다.

“어찌한 것입니까?”

백영 도장은 궁금한 것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궁금한 것은 어떤 방법으로 자신을 잠들게 했냐는 것이었다. 서문 공자가 자신의 몸에 손을 댄 것도 아니었고, 특별한 약을 먹인 것도 아니었다. 자신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기억은 복수를 해 주고 싶다는 서문 공자의 말을 끝으로 세상이 아득해지며 정신을 잃은 것밖에 없었다.

하지만, 서문 공자는 미소만 지을 뿐 자신의 말에 일언반구 대꾸조차 없었다.

“보아하니 복수를 마치신 것 같은데……. 빈도(貧道)가 얼마나 정신을 잃고 있었습니까?”

“다섯 시진(열 시간)쯤 됩니다.”

도장 역시 밖이 이미 어두컴컴한 것으로 미루어 짐작해 그쯤 되었으리라 생각하던 참이었다.

“정말……. 마을 사람들의 복수를 하신 겁니까?”

도장이 믿지 못하겠다는 듯 묻자 서문 공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장의 입에서는 저절로 탄식이 나왔다.

“하아. 무사하니 다행이군요. 공자가 강호초출(江湖初出)이란 것이 믿기지 않는군요.”

무당파 이대 제자 중에서도 무공이 고강한 편에 속하는 백영 도장은 그 덕에 강호를 여러 차례 나다닐 기회가 있었다. 때문에 흉험하기 이를 데 없는 강호에서 무슨 일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인지 그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헌데 나이도 어린 데다가 강호 첫 출도인 서문 공자는 아무 관련도 없는 마을 사람들의 복수를 해 주겠다고 마음먹고, 자신까지 신비한 방법으로 잠재우고는 기어코 목적을 달성하고 돌아온 것이다. 거기다가 적들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털끝하나 다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적을 완벽하게 제압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민혁은 상투적인 말로 대꾸했다.

꼬르륵.

백영 도장이 시장기가 도는지 배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어색하던 분위기는 그 소리로 말미암아 단박에 깨져 버렸다.

“도장께서 시장하신가 보군요. 하기야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백영 도장은 민혁의 말에 겸연쩍은지 도호를 흘린다.

“무량수불.”

민혁은 도장을 부축해 일으키며 말했다.

“일단 뭐든 요기를 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 말에 도장은 사양치 않고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옆에 던져 놓은 바랑을 찾아 그 속에서 건량 주머니를 꺼내며 민혁을 향해 물었다.

“공자께서는?”

아직까지도 자신을 지켜보는 민혁의 눈길이 부담스러웠는지 도장은 건량을 꺼내어 먹으려다 그렇게 물은 것이다.

“드시지요. 저도 먹겠습니다.”

그러면서 민혁도 자신의 행낭에서 육포 몇 조각을 꺼내 질겅질겅 씹었다. 그렇게 서로 말없이 음식을 먹기를 한참, 백영 도장이 어느 정도 요기를 했는지 그를 향해 질문을 던져왔다.

“도적 무리의 수가 적지 않았지요?”

질긴 육포를 씹고 있던 민혁은 잠시 씹기를 멈추고 대답했다.

“예. 적은 수는 아니었습니다.”

“근데 어찌 상처 하나 없이…….”

백영 도장도 서문전 가주와 함께 서문 공자의 무위를 잠깐이나마 견식(見識)할 기회가 있었다. 불과 삼 개월 동안 익힌 무공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신위에 자신의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하지만, 무공과 싸움은 달랐다. 아무리 고강한 무공을 익히고 있어도 목숨을 건 싸움에서는 부족한 경험으로 말미암아 지닌 실력조차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패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래서 강호초출일 때가 무인으로서는 가장 위험한 때였다. 그랬기에 서문 가주 역시 무당에 연통을 넣어 서문장천을 무당까지 무사히 데려갈 도사를 보내달라고 청을 넣었던 것이었다.

백영 도장의 물음에 민혁은 가볍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칼과 창을 들었다 뿐이지 무인(武人)이 아니었습니다. 수를 믿고 횡포를 부리고 다닌 자들을 징계하는 데에 그리 많은 힘이 들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백영 도장은 장천의 말이 겸양에 불과한 말이란 것을 잘 알았다. 본인이 밝히기 싫어하는 이상 더 묻는 건 실례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말을 돌려 자신의 염려를 전했다.

“앞으로 그런 일이 생기면 빈도도 함께 했으면 좋겠습니다.”

강제로 잠재운 것에 대한 완곡한 질책에 민혁은 다시 한 번 사과를 했다.

“예, 죄송합니다. 꼭 그리하겠다고 약조를 하지요.”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자 민혁이 물었다.

“어떡하시겠습니까?”

날이 저물기는 했지만 다섯 시진이나 되는 긴 시간 동안 잠을 푹 잤으니 더 이상 잠이 올 리가 없다는 것을 아는 민혁이 백영 도장의 의견을 물은 것이다.

백영 도장도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날이 저물었으니 길을 가기도 그렇고……. 공자께서는 하루 종일 쉬지 못했을 테니 쉬도록 하시지요. 빈도가 번(番)을 서도록 하겠습니다.”

도장의 말에 민혁은 사양하지 않고 대답했다.

“그러면 염치불구하고 쉬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민혁은 제자리에 좌정하고는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았다. 백영 도장은 그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도 편한 자세를 잡고 눈을 감았다.

 


 

동이 터오자 민혁이 길게 숨을 내뱉으며 눈을 떴다. 민혁의 기척 때문인지 백영 도장도 마찬가지로 눈을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편히 쉬었습니까?”

“예. 덕분에. 간단히 요기하고 출발하도록 하지요.”

민혁의 말에 백영 도장도 시장기가 도는지 고개를 끄덕이고 건량을 꺼내 오물거리며 먹었다.

식사를 마친 두 사람은 하룻밤을 묵었던 집에서 나왔다. 백영 도장은 어제와 사뭇 달라진 마을의 광경에 의아한 눈빛으로 민혁에게 물었다.

“시신들이……. 혹 공자께서?”

“예. 어제 도적들을 잡으러 가기 전에 약식이나마 장례를 치러 주었습니다.”

“무량수불.”

백영 도장은 온 천하가 서문장천이란 사람에 대해 너무나도 크게 오해를 하고 있다고 느꼈다. 사람들은 ‘서문세가의 망나니’로만 알려진 눈앞의 이 공자가 실제로는 그 누구보다 광명정대하고 의협심 넘치는 협사(俠士)였음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서도 아니요, 자신의 행동을 드러내려 노력하지도 않았다. 세상이 알아주든 말든 상관없이 묵묵히 자신의 일을 행하는 서문 공자야말로 진정한 협사의 표상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때 민혁의 말이 백영 도장의 상념을 깼다.

“또 달릴까요?”

달리기에 꽤나 재미를 붙였는지 유쾌한 표정으로 묻는 서문 공자를 보며 백영 도장도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리하지요.”

그렇게 말한 백영 도장은 무당의 절학인 제운종을 써서 쏜살같이 앞으로 튀어 나갔다.

“열심히 따라 오십시오. 공자!”

그 말에 민혁도 빙그레 웃고는 발끝에 내공을 보내어 힘껏 앞으로 달려 나갔다.

 


 

우여곡절 끝에 열흘 만에 태화산에 당도했다. 비록 중원의 오악(五嶽: 숭산, 형산, 태산, 항산, 화산)에는 들지 못하지만 그 절경(絶景)만은 오악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백영 도장 역시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도감 때문인지 그 어느 때보다 푸근한 표정으로 걸음을 옮겼다.

“기분이 좋아 보이십니다.”

두 사람은 경쟁하듯 경공을 펼쳐 태화산까지 달려왔기에 이동하는 동안에는 서로 얼굴을 마주칠 일이 별로 없었다. 무당파를 목전에 둔 지금에 와서야 경치도 감상할 겸 발걸음을 늦추고서야 서로를 살필 기회가 생겼던 것이다.

“무량수불. 태사부님께 받았던 명을 무사히 완수했다고 생각하니 저절로 미소가 그려집니다.”

백영 도장은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그 말에 민혁이 물었다.

“태사부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백영 도장은 머릿속에 태사부님을 떠올리는지 아련한 표정이 되어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무척이나 인자하신 분이지요.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옆집 할아버지 같은, 그런 분입니다.”

그 말에 민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꾸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더더욱 뵙고 싶어지는군요.”

백영 도장도 민혁의 말에 공감하는지 마주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태사부님께서는 서문 공자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실 겁니다.”

“그건 또 무슨 말씀이십니까?”

민혁이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백영 도장이 그를 바라보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

“태사부님은 이미 경지에 오르신 분이지만, 무공에 대한 탐구열은 조금도 식지 않으셨거든요. 서문 공자가 익혔다는 그 심법과 검법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신다면 그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함께 연구를 하려 하실 겁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민혁은 자신이 익힌 무명(無名) 심법에 대해 알려 주어야 하는가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중국이란 나라에 결코 호의적인 입장이 아닌 민혁으로서는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자신이 가진 것을 이곳에 남겨 놓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

“태사부님처럼 태산북두로 존경받는 분이 이름도 모르는 심법과 검법에 관심을 두실 리가 있겠습니까?”

그 말에 백영 도장은 강하게 고개를 젓더니 미소 지으며 대꾸했다.

“제 말이 옳은지 틀린지는 곧 아시게 되겠죠.”

백영 도장의 말에는 확신이 서려 있었다. 그 모습에 민혁의 고민은 깊어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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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말

제 취미 중 하나가 스쿠바 다이빙입니다. 취미 생활을 하느라 한동안 자리를 비운 관계로 연재가 지연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재미있게 읽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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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제10화 무당행(武當行) +4 15.01.24 6,456 17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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