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능빨 헌터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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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그몹
작품등록일 :
2020.09.11 20:51
최근연재일 :
2020.09.28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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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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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2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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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어딜 가나 파벌 싸움 (2)

DUMMY

“무슨 생각을 못하셨길래 그렇게 낙담하신 건지 궁금합니다.”


메이스를 휘두르던 헌터였다. 인규라 불린 남자.


나름 무시무시한 외관을 자랑하는 실버울프를 상대하면서도 웃어대는 게, 좀 특이한 성격 같긴 했지만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이럴 때면 꼭 발휘되곤 하는 관상 능력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게···”


얼떨결에 태하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던 나는 말끝을 흐렸다. 선량해보이는 눈빛에 하마터면 넘어갈 뻔한 것이다.


초면에 이런저런 사정을 늘어놓을 정도로 경계심을 늦추진 않았으니 망정이었다.


“본의 아니게 심기를 거슬렀다면 죄송합니다.”

“아, 그건 아닙니다.”


실버울프의 이빨에 스친 탓인지, 아까부터 팔이 욱신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건 말건, 그는 잠시 쓸쓸한 표정으로 창밖을 보더니 다시 나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러고보니 제 소개도 안 했군요. 저는 정인규라고 합니답!”


그 순간, 어쩐 일인지 또다시 버스가 흔들렸다. 다행히 이번엔 별일은 아니고, 급커브 구간에 급하게 들어섰기 때문이었다.


“아, 기사님 운전 진짜 좆같이 하네. 좀 편하게 갑시다!”


신경질적으로 울려퍼진 목소리에 순간 버스 안이 조용해졌다.


“뭘 봐요, 틀린 말도 아닌데.”


이번엔 다른 사람의 목소리였다.


동시에 정인규란 사람의 표정이 언제 그랬냐는 듯 딱딱하게 굳더니, 천천히 일어섰다. 나도 모르게 그를 따라 뒷좌석을 바라보니, 심재민이란 자와 그의 옆자리에 건너편에 앉은 헌터가 눈을 감고 짜증을 내고 있었다.


“아이씨, 처음부터 재수가 없으려니까.”

“죄송합니다.”


고민 끝에 읊조린 기사님의 목소리에 정인규란 사람의 얼굴이 울그락붉그락 해진 건 순간이었다. 그런 그의 반응을 예상한 듯, 어디선가 팀원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오빠, 참아요.”

“앉아라, 인규야. 조용히 가자.”

“하, 진짜···”


그러나 정인규의 분을 가라앉히는 건 동료들의 만류가 아니라 좀처럼 눈에 띄지 않던 여성의 목소리였다. 어느 새 나와 정인규가 앉아있는 자리로 걸어온 터프한 얼굴의 여자. 굴곡있는 몸매를 그대로 드러낸 한 여성 헌터가 진중한 얼굴로 사과를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미안합니다. 기사님께도 제가 사과드릴게요. ”

“사과는 저 사람이 해야 되는 것 아니···”

“크흠, 알겠습니다. 정연 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내 말을 자른 정인규는 어쩐지 얼굴이 벌게져서 말을 흐렸다.


“감사합니다. 그럼.”


좀처럼 여자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정인규의 모습이 어이없었다.


“저 분은 누구신데 이렇게 와서 부탁까지 하시는 거죠?”

“경수 같은 C급 헌터로 보기 드문 인재이십니다. 심재민 같은 사람도 포용할 줄 아는 리더···”

“그냥 2팀 팀장이에요. 이름은 이영현.”


듣다 못한 뒷좌석의 한 헌터가 대신 답했다. 실버울프와의 전투 때 정인규와 함께 서 있던 걸로 보아 꽤 친한 사이인 듯 했다.


“인규 형, 그 분 피곤하실 거 같은데. 이따 얘기하는 게 어때요.”

“아차, 제가 그 생각을!”


정인규는 동료의 심드렁한 목소리에 자세한 건 이따 말해주겠다며 자리를 떠버렸다. 대신 나는 그날 저녁 회식에서 정말로 그의 짝사랑 서사를 들어야만 했다.


*****


“그래서! 우리는 아름다운 공생과 경쟁을 반복하면서어··· 해와 달 같은 관계로!”

“2팀 팀장이 그렇게 좋은가···. 근데 이 형 많이 취했는데요.”

“들여보내.”


팀원들에 의해 정인규는 숙소로 끌려들어갔다. 오랜만에 왁자지껄한 회식이었다. 도심이라 몬스터의 습격을 받을 일도 없는 편한 회식.


정인규가 떠나고 난 뒤 사람들의 관심은 몇 안 되는 연합 비소속 멤버인 내게로 쏠렸다.


“경수 형한테 듣자하니 강남역 근처에 사신다던데, 원래 집은 어디셨어요?”

“아, 전 과천 쪽이요. 청계산 근처에 살았습니다.”

“아, 거기··· 애매한 위험지역이라 출몰하는 몬스터가 오히려 드문 곳이죠. 대신 엄청 강한 몬스터들이 많은 곳이라고.”


어쩐지 조용해진 분위기가 귀찮다.


“맞습니다. 잘 살아남았죠.”


곧바로 채혜진이란 여자 헌터가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청준 님 주력기는 뭐예요? 검 쓰시던데. 엄청 멋지게.”

“맞아. 폼이 예사롭지 않으시던데요. 즐겨 쓰시는 기술이···”


헌터에겐 주력기가 훈장과 같은 세상이었다. 실버울프에게 스친 팔이 또다시 욱신거리며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기술은 하나도 없는데요.”

“아···”


3팀 팀원들이 약간의 탄식과 함께 눈치를 보는 게 느껴졌다.


“아, 그럼 특성이 상당히 좋으신가보다. 왜, 기술보다 특성만 주로 노리는 전략이 있다던데···”

“특성은 하나예요. ‘바람을 즐기다’라고.”


갑작스런 정적에 나는 또다시 민망해졌다. 이런 반응 할 거면 왜 물어보는 건가?


“···에이, 그래도 D급인데. 농담이시죠?”


류세훈이라는 어린 팀원 하나가 정적을 깨자마자 옆에 앉은 팀장 박경수가 외쳤다.


“마시자!”

“마시자!”


그 말을 따라하며 잔을 모으는 3팀 팀원들이었다. 애써 분위기를 띄우려 노력하는 이들 중엔 3팀의 최고령인 마흔 여섯 최장원 씨도 있었다.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린 팀원들은 지난 추억을 공유하며 술잔을 돌렸고, 정말 오랜만에 술에 취해 쓰러진 사람들을 보았다. 썩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다.


그렇게 다음 날이 됐다.


“하아아암··· 윽.”


수면 무호흡증이라도 걸린 건지, 잠에서 깨어나 숨을 들이마시니 가슴이 찌르듯 아팠다.


“일어났구만.”

“아, 예.”


내게 말을 건 것은 막 씻고 돌아온 듯한 정인규였다. 숙취가 있는지 머리를 짚은 그는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그, 어제 저녁 먹으면서 말씀드렸던 거 너무 신경쓰진 마. 내가 경수랑 친하고 헌터 연합 소속인 거.”

“아, 별로 신경 안 썼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 말을 하면서부터, 그 사실이 미묘하게 신경쓰이기 시작했다.


어제 저녁, 술에 잔뜩 취하기 전 정인규는 자신의 일행들과 함께 여러가지 정보들을 알려주었는데, 대개는 몬스터나 대형 던전의 트랩 같은 이야기들이라 꽤 유익했다. 이번 임무뿐만이 아닌 다른 곳 어디에서나 써먹을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정보들도 있었던 것이다.


바로그게 문제였다.


줄곧 호의를 베풀다가 같은 방까지 쓰게 됐다?


‘이 사람들은 왜 나에게 친절한가?’


김원춘 일당의 일을 겪은 나로선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던 것이다. 대가 없는 호의는 경계해야 마땅하다.


“근데 정인규 님.”

“어제 형이라고 부르기로 했는데! 다 기억하는데!”

“아··· 인규 형.”

“응?”


그러고보니 어느 새 말을 놓고 있는 정인규였다. 여지껏 만난 사람 중 최고로 단순한 사람 같았다.


“원래 3팀은 비소속, 그러니까 임시 팀원한테도 다들 친절한가요?”

“친절하다는 의미가 뭐지?”

“외부인한테 진짜 팀원인 것처럼 다들 잘 대해주시더라고요.”

“같이 다니다 보면 알게 될 거야.”


그러나 다행히도, 난 그 말의 의미를 거의 바로 깨달았다.


첫 번째 프로젝트를 진행하자마자 두 팀은 노골적으로 경쟁했던 것이다.


“허, 실적 올린다고 앞서 나가는 것 봐.”

“너네 앞가림이나 잘 하쇼.”


헌터 연합 지역 경계 팀 중 2팀과 3팀은 평가 기간이었다. 모든 조직이 그렇듯 가장 중요한 건 성과였던 것이다.


던전과 간헐적 게이트 임무를 수행할 때는 물론, 밥을 먹을 때도, 씻을 때조차 2팀과 3팀의 노골적인 기싸움은 계속됐다.


학창 시절에도 파벌 싸움을 싫어하던 성격이었던 나다.


‘파벌? 전쟁 날 때 아니면 파벌이고 뭐고 다 쓰잘데기 없다! 너, 전쟁 나갈 거냐?’

‘아니요···’

‘그럼 괜히 이상한 데 껴들지 마라! 뭐든 득 될 거 하나 없다. 알았느냐?’


어쩌다 패싸움에 한 번 엮이고 나선 스승님의 가르침도 지긋지긋하게 들어온 나였고. 2주 째에 접어들면서는 3팀의 정식 팀원이 아니라 진심으로 다행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다 하루는 이런 사건까지 발생했다.


“싸움 났어요! 빨리 올라오세요!”

“뭐? 뭔 싸움. 알아서 정리 되겠지. 지금 막 먹기 시작한 거 안 보여?”

“아니, 2팀 사람이 혜진이 방에 몰래 들어갔다니까요?”

“뭐?”


숙소 1층에서 아침을 먹던 나는 일행들에 이끌려 위층으로 올라갔다.

복도엔 화를 내며 눈물을 글썽이는 채혜진과 3팀과 2팀 팀원들, 그리고 누군가의 채찍으로 포박된 여자 하나가 서 있었다. 무리 틈에서 박경수가 채혜진의 활을 들고 있었다.


“오빠, 이거 연합 측에 고발해요. 진짜 해도해도 그렇지, 어떻게 무기까지 훔칠 생각을 해?”

“정말로 고발하겠습니다. 그냥 넘어갈 수가 없네요.”


채혜진의 외침에 동의한 박경수가 2팀 팀장 이영현에게 말했다. 이영현은 박경수의 단호한 어투에 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팀원 관리를 잘 못한 제 탓이죠. 자세한 일은 재민이 통해서 전달 받겠습니다.”

“예?”


말을 마친 그녀는 포박되어 있는 여자를 한 번 쳐다보고는 자리를 떠났다. 미소를 짓고 있는 게, 화를 억누르는 것 같기도 예의상 지은 것 같기도 했다.


“그럼 푹 쉬세요.”

“팀장님! 팀장님···”


그리고 그런 이영현의 묘한 얼굴은 나만 이상하게 느낀 게 아닌 모양이었다.


“알고보면 독한 여자야. 일부러 심재민한테 전달받겠다는 거 보면 오빠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멋진 여성은 아니라고요.”


어느 새 활을 껴안고 있는 혜진이 인규의 어깨를 쳤다. 평소 같았으면 그렇지 않다느니, 건드리지 말라느니 우겨댔을 정인규가 왠일인지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그 모습을 놓치지 않는 3팀 막내 류세훈이었다.


“어, 동의하나 보네요. 형. 그래도 좋죠? 벌써 몇 년 짼데 한 번에 사그라들 리가 없지.”

“아냐···”

“그 음흉한 미소를 보고도 별 생각이 안 들면 호구인 거지, 그냥··· 그게 그냥 소문이일 리가 없다니까?”

“소문이라뇨?”

“아, 그게 말이죠···”


그렇게 놀랄 것까지야.

내 물음에 토끼눈을 뜬 채혜진과 팀원들이 말을 잇지 못했다. 단 한 명, 정인규를 제외하고는.


“혜진아, 그, 연개소문 말한 거지?”

“형, 연개소문이라니요···”

“오빠, 제발 좀 닥쳐요.”


가만 보면 순수하기 짝이 없는 사람들이다.


“별로 안 궁금하니까 안심하세요. 밥이나 드시죠.”


일행들은 그제야 안심한 듯 계단을 따라 내려왔다.


“맞아, 오늘부터 아주 빡시게 달려야하니까요.”

“빡시게라니, 세훈아··· 아씨, 오빠 땜에 세 훈이 말투가 아재 같아졌잖아요.”

“아재라니? 아직 서른 하나야. 너도 곧이다 이 아지매야.”

“뭐, 아지매요? 진짜 어이없어!”


언제 그랬냐는 듯 투닥거리기 시작하는 팀원들이었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조차 못한 채 말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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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히든 던전의 히든 던전 (2) 20.09.24 36 1 11쪽
13 히든 던전의 히든 던전 (1) +2 20.09.23 34 1 11쪽
12 어딜 가나 파벌 싸움 (3) +2 20.09.23 46 2 11쪽
» 어딜 가나 파벌 싸움 (2) 20.09.22 51 1 11쪽
10 어딜 가나 파벌 싸움 (1) +2 20.09.21 46 2 13쪽
9 헌터로 살아가는 법 (5) +2 20.09.20 54 3 14쪽
8 헌터로 살아가는 법 (4) +4 20.09.19 58 3 12쪽
7 헌터로 살아가는 법 (3) +2 20.09.18 63 3 12쪽
6 헌터로 살아가는 법 (2) +4 20.09.17 95 4 11쪽
5 헌터로 살아가는 법 (1) +4 20.09.16 115 4 13쪽
4 게이트 오픈 기념 악연 만들기 (4) +1 20.09.15 128 3 12쪽
3 게이트 오픈 기념 악연 만들기 (3) 20.09.14 143 2 13쪽
2 게이트 오픈 기념 악연 만들기 (2) +2 20.09.12 177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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