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의 군대
저녁 9시 모스크바, 소련군 공병들은 두 개의 원반형 대전차 지뢰를 들고 어둠 속으로 전진했다. 독일군 기갑 부대가 전진해올 것으로 예상되는 대로변에 도착한 공병들은, 잔해 더미 밑에 조심스럽게 대전차 지뢰를 넣었다.
소련군 공병들은 그 위에 다시 잔해 더미를 올려놓은 다음, 신속히 진지로 돌아왔다. 공병들은 쉬지 않고 다시 두 개의 대전차 지뢰를 들고 어둠 속으로 나아갔다. 이 광경을 보고 전차병 글리에르가 중얼거렸다.
"정예 공병들은 5시간 만에 대전차 지뢰 수십개를 매설한다고 합니다!"
표도르가 말했다.
"용감한 친구들이지!"
전차병 파벨이 말했다.
"포병들도 대단합니다!!"
독일군 전차부대가 진격해올거라고 예상되는 길목마다 무수히 많은 잔해 더미가 있었고, 그 잔해 더미에 대전차포와 포병들이 숨어 있었다. 소련군 전차 부대는 이러한 대전차 부대와 긴밀하게 협동하고 있었다.
"전차병이 가장 강하지만 포병도 제법 강하지!"
드미트리가 말했다.
"제가 볼때는 시베리아 저격수가 전차병 다음으로 최고입니다! 승냥이라고 불리는 녀석이 있는데 놈이 며칠 만에 파시스트 포병 관측 장교를 잡을 수 있을지 내기 중 입니다!"
"삼일은 걸리지 않을까?"
"저는 이틀에 걸었습니다!"
얼굴에 수염이 가득한 시베리아 저격수, 일명 승냥이는 가방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자신의 저격총에 장착했다. 파벨이 수근거렸다.
"직접 만든 소염기랍니다! 저걸로 야간에 파시스트 놈들을 몇 놈이나 사냥했을지!"
얼굴에 검댕을 칠한 시베리아 저격수들은 야음을 틈타 은밀하게 시가지를 이동했다. 시베리아 저격수들이 숨지 못하는 곳은 없었다. 그들은 평범한 경로를 이용하지 않았다. 지붕에서 지붕으로 건너 뛴다던지, 냄새가 고약한 하수구로 이동하여 독일군이 예상하지 못하는 곳에 자리를 잡고 저격을 했다.
그리고 이 중에서 가장 실력이 좋은 저격수, 승냥이는 6층 건물 지붕 아래 자리를 잡았다. 승냥이는 5시간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자리에서 그대로 오줌을 싸며 버텼다. 그리고 새벽 여명이 트기 전, 어디선가 총성이 울렸다.
타앙!!
다음 날, 독일군은 아군 포병 관측 장교의 시신을 발견했다. 단 한 방에 즉사한 것으로 보아 꽤나 솜씨가 좋은 저격수임이 분명했다. 페도로가 중얼거렸다.
"저런 실력 있는 저격수는 굳이 나 같은 이등병은 안 쏘겠지?"
파울이 말했다.
"포병 관측 장교가 1타겟이지! 그 저격수는 아마 며칠에 걸쳐서 관측 장교의 동선을 추적했을거야!"
올라프가 말했다.
"우리도 한 방 먹여줘야지."
잠시 뒤 오토 소대의 한 티거와 지크프리트 일행은 대로변을 따라 앞으로 전진했다. 지크프리트 일행이 인근을 정찰하고 전차에 따라오라고 수신호를 보냈다. 티거의 궤도가 잔해 더미를 짓밟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잔해 더미 밑에 깔려있던 대전차 지뢰가 폭발했다.
쿠과과광!!
파편들이 높이 솟구쳤고 지크프리트 일행은 모두 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그렇게 오토 소대의 티거 한 대가 기동불가가 되었다. 오토는 자신의 티거에 와이어를 연결해서 기동불가된 티거를 진지로 끌고 왔다. 정비병들이 예비 궤도를 이용해서 수리는 했지만 문제는 포탑 구동 장치까지 고장나서 포탑 선회가 안되는 상태였다. 에밀이 말했다.
"시가전에서 포탑 선회가 안되는 티거라니 큰일입니다!"
현재 오토 소대에 다른 티거들도 죄다 부품이 없어서 수리를 못 받아서 언제 퍼질지 모르는 상태였다. 그리고 오토의 군사 학교 동기이자 1호 전차로 이루어진 소대의 소대장인 헤르베르트가 와서 외쳤다.
"포탑 선회가 안 되는 전차는 더 이상 전차라고 부를 수 없지!"
헤르베르트는 일부러 자신의 1호 전차의 포탑을 선회시켰다.
트으으으으으
헤르베르트의 전차병들도 티거 전차병들을 보며 의기양양한 웃음을 지었다. 오토가 헤르베르트의 도발에 응했다.
"주포가 없는 전차도 전차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1호 전차는 주포가 없고 두 정의 기관총이 전부라는 것을 비꼰 것 이었다. 이것은 1호 전차병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 이었다. 1호 전차병들이 분노했다.
'이건 못 참는다!!'
헤르베르트가 1호 전차에서 내려와서 오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주먹이 날아가기 일보 직전인 상황이었다. 1호 전차병들과 티거 전차병들은 과연 누가 이길지 수근거렸다. 마티아스가 외쳤다.
"우리 소대장님이 이길거야! 복싱을 배웠다고!!"
1호 전차병이 외쳤다.
"우리 소대장님의 전투는 복싱 같은 스포츠가 아니지! 그야말로 상대를 죽이는 실전 기술이지!"
에밀이 외쳤다.
"우리 소대장님은 실전 격투 경험이 많다고!"
얼굴에 흉터가 있는 1호 전차병이 외쳤다.
"우린 전선에서 찬밥 신세였기 때문에 전차가 퍼져도 부품도 공급 못 받았어! 덕분에 전차전 경험보다 백병전 경험이 더 많지!"
오토가 헤르베르트에게 말했다.
"급소 공격은 네 놈만 할 수 있는게 아니라고."
헤르베르트 녀석은 군사학교에서 대인격투를 훈련받을 때부터 틈만 나면 상대방의 불알, 목, 턱 같은 급소를 노렸다. 오토는 헤르베르트 녀석의 수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 순간 그라들 소대장이 이 광경을 매우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과연 어떤 기술을 쓰는지 눈여겨봐야겠군!'
헤르베르트가 주먹을 날리기 직전, 누군가 외쳤다.
"중대장님이다!!"
슐레프 중대장이 와서 말했다.
"현재 지휘소와 연결되는 통신 수단이 두절되었다!"
오토가 물었다.
"인근 포병대와는 어떻습니까?"
"포병대와도 연락이 끊겼네! 통신병들이 통신선을 재가설 중이지만 당분간은 따로 싸워야 해!"
잠시 뒤, 오토는 아직 멀쩡한 티거를 이끌고 대로변을 따라 전진했다. 언제 어디서 공병들이 튀어나와서 대전차 지뢰를 올려놓고 튈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오토의 티거는 계속해서 고폭탄을 발사했다.
트엉!! 트엉!!
10시 방향 건물이 무너지며 무수한 잔해 파편이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 잔해 더미 뒤에서 왼쪽 팔이 부러진 소련군 공병은 엄청난 고통을 견디며 티거 전차가 앞으로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트드등 트드드드등 트드드드등
오토의 티거는 포탑을 선회시키며 인근을 살피며 계속해서 대로변을 따라 전진했다. 그리고 마침내 소련군 공병은 오른쪽 팔만을 이용해서 대전차 지뢰를 티거를 향해 던졌다.
쿠과광!!!
티거의 우측 궤도에서 불꽃이 튀겼고 궤도 한 칸이 튕겨져 나왔다. 오토가 외쳤다.
"고폭탄 3연속 발사!! 기관총 자유 사격!!"
하지만 오토의 티거 궤도는 파손되었고, 두 개의 티거를 이용하여 오토의 티거를 겨우겨우 시가지에서 회수해야 했다. 오토의 티거를 격파하는데 성공한 소련군 공병은 무사히 소련군 점령 구역으로 돌아온 다음, 치료를 받고 영웅 대접을 받았다. 소련군 점령 구역의 지하에 만들어둔 취사장에서 그 공병은 특식을 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정치 장교 블라슈크는 현재 소련군의 포탄이 부족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주코프가 올때까지 포탄을 아끼고 최대한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 부대 위치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필요하다.'
블라슈크는 소련군 정찰 중대 병사들을 이용해서 독일군을 최대한 많이 포로로 잡아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들을 심문해서 독일군의 부대 위치, 앞으로 공격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어내야 했다. 정찰 중대원들은 독일군 점령 구역에 갔다가 걸리면 죽을 수도 있었지만, 자신들의 임무에 기대하고 있었다.
전차병 글리에르가 자신과 친한 정찰 중대원에게 외쳤다.
"혀(심문하기 위해서 포로로 잡는 적군 병사)를 꼭 잡아오라고!"
그렇게 야음을 틈타 모스크바 곳곳에서 정찰 중대원들이 5~6명씩 조를 짜서 앞으로 전진했다. 블라슈크는 이들이 쓸만한 혀를 잡아오기를 기다렸다. 모스크바 도심 곳곳에서 총성이 울려퍼졌다.
탕! 타앙! 탕!!
다들 초조해하며 총성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새벽, 정찰 부대원들은 의기양양하게 독일군 보초병을 잡아왔다. 블라슈크는 겁에 질린 독일군 보초병을 직접 심문했다.
한편, 중부집단군 사령부에서 한스 파이퍼는 주코프의 공격에 대비하여 모스크바를 포위하는 독일군의 포위망을 최대한 종심이 깊게 방어할 수 있도록 진지를 구축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주코프가 올때까지 현재 포위망을 최대한 두텁게 해야 합니다. 소련군의 움직임은 어떻습니까?"
"소련 공군의 공중 정찰이 강화되었습니다."
현재 독일군의 모스크바 포위망에서 두 부대 사이에 거대한 간격이 있었다. 현재 모스크바 인근에 소련 부대 만으로도 이걸 제대로 이용하면 포위망이 뚫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한스는 소련군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신속하게 이 간격을 없애라고 명령을 내렸다. 한스를 포함한 중부집단군 참모들은 전부 전화벨 앞에서 대기했다. 한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소련군이라면 이 틈을 놓치지 않았을 것 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소련군은 독일군 포위망의 간격을 이용하여 공세를 하지 않았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소련군은 독일군의 포위망에 대한 공격을 일시적으로 중단하였다. 대신에 공중 정찰이 엄청나게 강화되었다. 중부집단군 회의에서 한 참모가 현 상황을 브리핑했다.
"확실한 정보에 의하면 소련군은 현재 부대를 재편성하고 있습니다. 14일 내에 소련군은 공격을 하지 않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주코프가 도착하면 그 때 제대로 된 한 방으로 포위망을 뚫겠다는 것이군."
주코프가 올때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그 때까지 모스크바에 있는 10군을 궤멸시키고 방어선을 두텁게 해야했다. 무엇보다도 티거, 판터 등으로 이루어진 중전차 부대를 이용해서 주코프의 공격에 반격을 해야 했다.
한스가 물었다.
"현재 중전차 부대의 상황은 어떠한가?"
"부품과 연료 수급이 어려워 가용 가능한 중전차 비율이 감소했습니다."
한스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주코프의 군대를 상대하려면 반드시 티거와 판터가 필요했다. 하지만 모스크바 공방전에서 중전차들이 소모되고 있었다. 그리고 모스크바 최전선에 중전차 부대와 돌격포 부대, 포병대들은 소련군의 방해 때문에 계속해서 통신이 끊어지고 있었다.
잠시 뒤, 한스는 여태까지 주코프가 썼던 전술에 대한 보고서를 읽어 보았다.
'전쟁을 아는 자로군...'
보고서를 읽고 잠시 눈을 붙였는데, 한스의 꿈 속에서 해골만 남은 나폴레옹의 군대들이 나왔다. 해골만 남은 나폴레옹의 군대는 갈기갈기 찢겨진 깃발을 들고 있었다. 한스는 이들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로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 현재 독일 육군은 인류 역사상 가장 강했던 군대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리고 독일군과 가장 비슷한 평가를 받았던 군대가 나폴레옹의 군대였고, 이들이 어떻게 모스크바에서 퇴각했는지 한스는 잘 알고 있었다.
한쪽 팔을 잃은 해골, 눈에 붕대를 감고 있는 해골, 수레바퀴에 묶여있는 해골 등 그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공포 그 자체였다. 러시아 농민들에게 잡힌 해골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더 처참했다. 그 중 한 해골의 턱이 아래 위로 움직이며 한스에게 말했다.
"우리의 후손들이 네 놈의 군대를 몰락시킬 것 이다."
Comment '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