람티거
한스가 고함을 지르며 도망가려고 하다가 의자가 뒤로 자빠지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났다.
우당탕!!
"우아악!!"
한스의 집무실로 부관, 여자 비서들, 타자수, 심지어 장성들까지 들어왔다. 한스는 의자가 뒤로 자빠진 상태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여자 비서들이 이 광경을 보며 당황해했고 한스는 뒤통수에 난 상처를 치료 받았다. 치료를 받고, 한스는 모두 나가있으라 한 다음, 자신의 집무실에 걸려있는 힌덴부르크의 초상화를 바라보았다.
'노친네는 국가 존망의 위기가 걸린 세계대전때 어떻게 이겨냈을까?'
한스는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8년 힌덴부르크를 독대하며 벌벌 떨었던 시절을 떠올렸다. 세계대전이 끝나고 한스는 기술자로 근무하다가 대공황이 끝나고 독소전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한스는 구데리안 등 독일군 내부에서 가장 뛰어난 장성들과 함께 기동전에 대한 개념을 만들고 기갑 부대를 창설했다.
한스는 구데리안과 함께 힌덴부르크에게 기동전과 기갑부대의 필요성을 설명하며 정치적 지원을 요청했다. 그 때 힌덴부르크는 기동전에 있어서 상당히 열린 시각을 갖고 있었고, 한스 파이퍼와 구데리안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 후 몇 년 지나지 않아 힌덴부르크의 사망 소식이 들려왔다.
그리고 힌덴부르크의 사망 소식을 듣던 날, 한스는 전쟁의 역사를 바꾸는 역할이 자신과 만슈타인, 구데리안, 롬멜과 같은 젊은 장성들에게로 넘어갔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았다.
한스를 포함한 대다수의 장성들은 자기들끼리 이야기할때는 힌덴부르크를 노친네라고 부르곤 했다. 하지만 힌덴부르크가 사망할때 장성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독일 군인에게 힌덴부르크는 정신적 지주였던 것 이다.
히틀러가 정치적으로 고난을 겪을때마다 프리드리히 대왕의 초상화를 보았듯이, 한스 또한 힌덴부르크의 초상화를 보며 물었다.
'각하, 제가 진정 이 모든 것을 이겨내고 역사를 바꿀 수 있겠습니까? 이 역사적 과업이 저에게 주어진 것이 맞습니까?'
한스는 자신에게 주어진 역사적 과업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전쟁에 몰두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프랑스, 영국, 미국 등 전세계의 강대국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루스벨트, 달라디에, 처칠 등 수 많은 거물급 정치인들이 독일의 적으로 돌아서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국민들을 포함하여 전세계에 수많은 열강들이 독일이 중유럽과 동유럽의 패권을 쥐는 것에 반대하고 있었다.
한스는 정말로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을지, 서부전선이 형성된다면 서부전선에서도 독일 제국이 승리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나도 많이 나약해졌군...'
한스는 힌덴부르크의 초상화를 보며 강철같은 의지를 다졌다.
'노친네가 살아있었다면 분명히 나와 독일 국방군이 이루고 있는 역사적 과업을 격려해주었을 것 이다!'
"반드시 독일 제국의 염원을 이루고야 말겠습니다!"
한편, 오토 파이퍼는 진지로 쓰이는 건물 지하실에서 완전히 골아떨어진 상태였다. 오토는 꿈 속에서 한 묘비를 발견했다.
"루이스 파이퍼?"
1812년 작센군으로 모스크바에서 싸웠던 오토 파이퍼의 조상이었다. 오토는 군사 학교 시절 군인으로 싸웠던 조상을 연구하는 숙제를 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오토는 1812년 나폴레옹의 밑에서 작센군으로 싸웠던, 루이스 파이퍼라는 이름의 조상을 발견했었다.(외전 한스 파이퍼의 조상 루이스 파이퍼편 참고)
오토는 자신의 조상 루이스 파이퍼가 엄청난 전공을 세웠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와는 달리 루이스 파이퍼는 어떠한 전공도 세우지 못했다. 나폴레옹의 모스크바 원정 때 참전했다가 겨우 살아 돌아온 패잔병이자 역사 속에서 잊혀진 병사일 뿐이었던 것 이다.
이후 오토 파이퍼는 자신의 집 지하실에서 러시아제 금화, 은화, 장식품과 귀금속을 발견했다. 도대체 루이스 파이퍼는 어떻게 이 귀금속들을 노획했단 말인가?
그리고 현재 오토는 느닷없이 꿈 속에서 자신의 조상, 루이스 파이퍼의 묘비를 발견했다. 오토는 묘비에 쓰여있는 글을 읽기 위해 걸어갔다. 그 때, 무덤에서 해골이 튀어나왔다.
"수 많은 나폴레옹의 병사처럼 너 또한 러시아 땅에 묻힐 것 이다!!"
"으아악!!!"
오토 파이퍼는 양 팔을 휘저으며 꿈에서 깨어났다. 이 광경을 본 오토의 군사 학교 동기이자 1호 전차 부대를 이끄는 소대장 헤르베르트가 외쳤다.
"악몽이라도 꾼 거냐?"
그리고 지크프리트 4인조가 속한 보병 소대를 이끄는 그라들 소대장 또한 이 광경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베테랑이라더니 겁쟁이구만!'
오토는 애써 태연한척 하며 중얼거렸다.
"발에서 쥐가 났을 뿐이네."
오토는 현 상황을 정리해보았다. 현재 오토 소대 전차들 중에 멀쩡하게 굴러가는 것은 단 한 대 뿐이었다. 나머지 전차들은 부품이 수급되지 않아서 수리를 못하는 상황이었다.
'빨리 부품이 수급되어야 한다...'
그 때, 어디선가 엔진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엔진 소리는 분명히 티거였다! 에밀이 말했다.
"2소대인가?"
마티아스가 말했다.
"2소대, 3소대 모두 다른 구역에서 싸우는걸로 아는데?"
알프레트가 외쳤다.
"우리 소대를 위한 새 티거가 아닐까요?"
오토 일행은 부리나케 옥상으로 올라갔다. 티거만한 전차 한 대가 이 쪽으로 오고 있었다.
"티거다!!"
새로 오는 전차는 크기로 보면 분명 티거만했다. 하지만 앞부분이 뭔가 이상했다. 세계대전때 전차인 슈네데르 CA처럼 앞부분이 대단히 뾰족했다. 전면 장갑이 수평과 30도 정도의 각을 이루고 있는 이 전차는 그야말로 못생긴 강철 코끼리 같았다. 에밀이 중얼거렸다.
"경사 장갑을 극대화한걸까요?"
"전면 장갑 방호력이 중요하다지만 이 정도 경사 장갑은..."
조종수 마티아스가 말했다.
"저렇게 앞부분이 기울어져 있으면 어떻게 조종하라고..."
잠시 뒤, 오토와 전차병들은 새로 온 전차를 확인했다. 정비병이 신형 전차를 소개했다.
"람티거(Rammtiger)입니다!"
오토가 물었다.
"전차 앞부분을 이렇게 뾰족하게 만든 이유는 무엇입니까?"
조종수 마티아스가 불만스럽게 말했다.
"조종석이 너무 불편합니다!"
"이렇게 과도하게 각을 주면 하중이 지나치게 무거워져서 연료 소모량이 늘어나고 전차가 퍼지기 쉽습니다!"
기존 티거도 어마어마하게 연료를 잡아먹는데, 이 람티거라는 전차는 불필요하게 전차의 앞부분을 뾰족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하중이 무거워져서 엄청난 연료가 필요할 것 이었다.
"건물을 그대로 들이받아 파괴하기 위하여 앞부분을 이렇게 뾰족하게 만든 것 입니다! 세계대전때 슈네데르 CA와 비슷하죠! 무려 히틀러 총리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신형 전차입니다!"
전차병들은 경악해서 이 전차를 바라보았다. 1소대의 전차병들이 달려와서 전차를 보고 말했다.
"이 기괴한 전차는 뭐야?"
"포탑조차 없어!"
말 그대로 시가전에서 건물을 들이받아서 부수는 용도로 만들어졌기에 전차 본연의 기능이 없었던 것 이다.
오토가 물었다.
"이걸 몇 대나 양산했습니까?"
"아쉽게도 시제품으로 한 대 밖에 만들어지지 못했습니다!"
1호 전차병들이 람티거를 비웃었다.
"우하하하!! 우하하하!!!"
헤르베르트가 와서 말했다.
"이 람티거를 이용해서 건물을 들이받아서 우리 소대가 전진해야 할 경로를 만들어줄 수 있겠군! 그런데 전면 장갑 경사가 너무 심하지 않은가? 조종사는 누워서 조종해야겠군!"
오토가 말했다.
"이 람티거 한 대면 주포를 쓰지 않고도 자네의 1호 전차들은 그대로 짜부라트릴 수 있네!"
"이런 괴상한 전차는 프로그 놈들이나 쓰겠군!"
전선이 지지부진한 모스크바와는 달리 서방에서는 매우 급속도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현재 프랑스의 군 전체가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군인들에게 휴가를 허가하지 말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그리고 1941년 5월 초, 프랑스의 달라디에 총리는 마침내 예비군을 소집하였다. 중부집단군 사령부의 한스 파이퍼에게도 즉시 이 소식이 보고되었다. 한스가 참모에게 물었다.
"예비군을 소집했다고? 규모는?"
참모가 한스에게 보고서를 내밀었다. 프랑스가 예비군을 소집했지만 생각만큼 규모는 크지 않았다. 한스가 말했다.
"달라디에가 전쟁을 벌이려고 한다면 겨우 이 정도 규모로 예비군을 소집하지는 않을걸세. 지금 우리쪽 주요 병력이 모조리 동부로 가기는 했지만 우리와 전면전을 벌일 생각이면 더 큰 규모로 예비군을 소집했겠지. 외교적 교섭을 위해서 혹은 내부 정치를 안정화하기 위한 목적이 틀림없네."
그리고 현재 프랑스 대독 강경파 의원들 또한 달라디에에 분노하고 있었다. 한 의원이 외쳤다.
"달라디에는 알자스 로렌을 되찾을 생각이 없소!"
"이번 예비군 소집의 목적은 달라디에 자신의 내각을 유지하는 것 이오."
한 대독 강경파 의원이 식은 땀을 흘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달라디에는 쿠데타를 경계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쿠데타를 일으키면 성공할 확률이 몇 프로...확률이 절반이라도 된다면 나는 조국을 위해 싸우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굳이 내 정치 인생을 걸 필요는 없다.'
이 시각, 한 대독 강경파 의원은 호텔에서 비밀리에 프랑스 육군 장성을 만나고 있었다. 이 육군 장성은 현재 가장 급진적인 대독 강경파였으며 현 프랑스 육군 내에서 실권을 다져가고 있었다.
이들이 만나는 것이 발각되면 쿠데타를 모의한다는 혐의를 받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제각기 다른 시각에 호텔로 들어왔다.
대독 강경파 의원은 쿠데타가 성공하면 국방 예산을 대폭 증가하고 프랑스 육군을 최첨단 기갑군으로 강화할 것 이라고 이야기했다. 프랑스 육군 장성은 독일과의 전쟁에 찬성하고 있었지만 정치인들을 신뢰하지는 않았다.
'망할 놈의 정치인들 때문에 육군의 예산이 터무니없이 줄어들었다...자기 잇속만 챙기는 정치인들은 군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견제해왔지...'
대독 강경파 의원이 말을 이었다.
"저는 항상 군 예산을 증가시키고 프랑스 육군이 강력한 기갑 부대를 가져야 한다고 의회에서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여러 복잡한 정치적 상황으로 이러한 제안은 부결되었습니다. 이러한 의회 정치가 계속되면 프랑스 군이 강력해지는 것도, 알자스 로렌을 되찾는 것도 실패할 것 입니다."
육군 장성은 자신들을 부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쿠데타를 일으키는데 협조해달라는 말이군...그리고 자신들 세력의 독재를 원하고 있군.'
"내게 프랑스에 반기를 들라는 말이오?"
대독 강경파 의원이 말했다.
"알자스 로렌을 되찾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 당장 행동해야 합니다! 저는 제 사익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조국을 위해서라면 제 목숨은 아깝지 않습니다."
육군 장성은 머리 속으로 쿠데타의 성공 가능성을 계산해보았다.
'성공한다면 이는 프랑스를 넘어 전세계의 지도를 변화시킬 혁명이 될 것 이다! 하지만 성공 확률이 몇 프로나 될 것 인가? 성공 확률이 높지 않다면 조국의 미래를 위해 내 자신을 보전해야 한다...이 쿠데타가 실패하면 다시 육군의 힘이 강해질 일이 없을 것이니 신중해야 한다.'
대독 강경파 의원이 말을 이었다.
"지금 파리의 실세 정치인들 또한 이번 쿠데타에 참여할 것 입니다."
그는 누구나 알법한 이름 몇 개를 댔다.
"성공만 하면 알자스 로렌을 되찾는 것은 물론, 프랑스는 중유럽과 동유럽의 패권을 가지게 될 것 입니다! 또한 프랑스 육군은 영구히 프랑스의 초석으로 남게 될 것 입니다!"
한편 프랑스의 국민 여론 또한 점점 거세지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면 늘 전쟁에 대한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한 술집에서 젊은이들이 이야기했다.
"베르사유의 치욕을 갚아야 해!"
"지금 달라디에 내각은 7월의 범죄자들이나 다름없어!"
세계대전때 알자스 로렌을 되찾지 않고 독일과 휴전 협정을 체결한 세력에 대하여 프랑스 일부 국민들은 그들을 "7월의 범죄자들" 이라 불렀던 것 이다. 누군가 외쳤다.
"달라디에 또한 사정이 있겠지! 정치란건 여러 가지 요소들을 고려해야 하니 말일세!"
"알자스 로렌을 되찾을 용기가 없는거지! 역사 속에서 무능함과 비겁함은 용서받을 수 없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건 달라디에 같은 겁쟁이가 아니라 프랑스를 구원할 지도자일세!"
그 때, 한 청년이 신문을 들고 와서는 외쳤다.
"이걸 봐! 알자스 로렌을 되찾지 못하게 하려는 국제적인 음모가 있다고!"
그 신문에는 프랑스가 알자스 로렌을 되찾기를 원하지 않는 국제적인 세력이 있다고 적혀 있었다. 프랑스를 강대국의 지위에서 끌어내리고, 동부에서 독일의 위협에 시달리도록 방조하는 세력이 있다는 것 이었다.
"체임벌린은 프랑스가 다시 강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거야!"
"전쟁이 발발하는 것을 막고자 하는 금융 세력이 있다고 하더군!"
"영국이던 미국이던 프랑스가 자신의 영토를 되찾는 것을 막을 권리는 없어!"
그리고 프랑스 곳곳에서 이에 대해 분노를 표하는 세력들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한 프랑스 국민이 목에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국제 세력이 프랑스 육군에 묶어둔 수갑을 자르고 앞으로 전진하라! 독일과의 전쟁은 두렵지 않다! 프랑스는 다시 위대해질 것 이다!"
프랑스의 청년들은 광기에 찬 눈빛으로 길거리를 행진하며 반독 집회를 했다. 그리고 이들 중 일부는 곤봉을 들고 있었다. 파리에 주재하는 영국, 미국, 일본 외교관들은 현 상황에 대한 보고서를 자국에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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