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배우로 전직을 명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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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운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0.11.27 17:58
최근연재일 :
2021.01.19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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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9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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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쪽

Act 25. 연출 - (1)

DUMMY

드라마 작가 박혜숙.

여느 배우나 감독들보다 훨씬 인지도가 적은 직업임에도 불구하고, 대중들에게 탄탄한 인지도를 쌓을 정도로 그녀는 굉장히 성공한 작가였다.

입봉작인 <달의 방향>을 시작으로 연타석 시청률 홈런을 때린 장본인으로.

박혜숙 작가의 손이 닿은 작품은 못 해도 20%라는 신드롬까지 생길 정도였다.

스타 작가로 스타덤에 오르며 수많은 작품을 탄생시킨 그녀이지만, 그런 그녀에게도 고민은 있었다.


“감독님! 그 사람 섭외됐어요?”


씩씩거리며 들어오는 박혜숙에 의해, 분위기는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지명 당한 감독은 애써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어어, 박 작가 왔어?”

“그 사람 섭외 됐냐고요!”


보통 드라마 제작의 권력은 감독이 압도적으로 높고 작가의 입김은 많이 닿지 않는다.

하지만 박혜숙에게는 전혀 통용되지 않는 말이었다.

고압적인 박혜숙의 태도에도 감독은 식은땀까지 흘려가며 쩔쩔맸다.


“회, 회사에 일단 제의 넣었으니까. 곧 답 올 거야. 최대한 빨리 답변 달라고 했거든.”

“그 사람 캐스팅 실패하면 북한군은 빼고 진행할 거라. 섭외 가능 여부만 최대한 빨리 부탁드려요.”

“그런데 박 작가. 그 사람 꼭 캐스팅해야만 하는 거야? 아니 솔직히 박 작가 작품이라면 단역이라도 제발 시켜달라는 배우들 차고 넘치잖아. 안 그래?”


박혜숙의 성화를 진정시키는 것도 중요했지만, 감독은 당장 지금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박혜숙의 작품이라면 단역이나 엑스트라라도 좋으니 시켜만 달라는 배우들은 시쳇말로 한 트럭은 나올 정도였다.

굳이 그 한 명에게 이렇게 집착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당장 오늘까지 연락 없으면 차라리 다른 배우 섭외해서 그대로 가는 건 어때? 내가 실력 좋고 비주얼 괜찮은 배우들로 섭외해올 테니까.”

“안 돼요!”


박혜숙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결론은 언제나 한결같았다.


“리태홍은 그 사람을 보고 만든 캐릭터니까요.”


박혜숙은 도저히 잊을 수 없었다.

그를 처음 마주한 것은 이번 여명의 후예의 여주인공 역할을 맡은 연하윤의 추천으로부터였다.

이번에 대단한 배우를 만났다며 어떠냐고 보내준 영상.

그 영상을 본 직후, 박혜숙은 그의 모습에 매료되었다.


요새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는 작품인 드라마 카네이션.

원로 배우 한세강의 농도 깊은 감정선에도 흔들리지 않고 펼쳐지는 감정 연기.

보는 이로 하여금 심금을 울리는 연기는 그야말로 박혜숙의 눈에서 눈물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허나 최고라고 생각했던 감정 연기는 그의 장점 중 하나에 불과했다.


‘아직도 잊을 수가 없어.’


정지혁에 대해 조사하던 중 친한 후배인 심지은을 통해 얻은 또 다른 영상.

바로 그의 액션 연기를 담은 영상이었다.


‘세상에 그걸 원 테이크로 찍었다니.’


수십 명의 적과 난투전을 벌이며 조직을 홀로 토벌하는 초고난이도의 장면.

맨몸 격투 씬도 아닌 무기를 이용한, 굉장히 위험한 씬임에도 불구하고, 실수 하나 없이 완벽하게 롱 테이크를 끝낸 그 모습을.

박혜숙은 아직도 생생했다.

그 모습을 직접 눈으로 봤기 때문에 더욱, 박혜숙은 그를 포기할 수 없었다.


“이것만큼은 저도 절대로 양보 못 해요! 액션이면 액션, 연기면 연기, 그만한 비주얼에 실력도 출중한데 다른 배우요? 다른 배우 캐스팅하시는 순간, 이번 여명의 후예에서 리태홍 빼버릴 거예요.”

“으, 응?”

“정지혁. 그 사람 캐스팅 못 하면, 작품 퀄리티 저도 책임 못 져요. 그 사람 없으면 리태홍 빼고 시작해야 하는데, 리태홍 빼면 스토리 다시 짜야 하니까요. 무슨 말인지 아셨죠?”


감독의 목구멍을 타고 마른 침이 넘어갔다.

위에서도 한참 촬영 압박이 넘어오는 판국에, 박혜숙이 스토리까지 다시 짜서 퀄리티마저 떨어진다면?

그땐 감봉 정도로는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그, 그럼! 어떻게든 그 배우 섭외할 테니까······.”


띠리링!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 타이밍에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전화의 주인은 다름 아닌 감독이다.

살벌한 기세에서 풀려난 감독은 살았다는 표정으로 전화기를 쥐었다.


“여보세요? 아, 예!”


감독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진다.

무슨 좋은 소식이라도 있는 걸까?


“박 작가!”


이어지는 감독의 말을 듣는 순간.


“정 배우 섭외 성공했어!”


박혜숙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승전보를 획책한 지휘관과도 같은 미소가.


“포상금 받으면 뭐 할지 미리 생각해두세요. 이번 작품 최소한 30%는 넘길 테니까요.”


***


“경창철창살외철창살···.”

“다시.”


따사로운 햇볕이 쏟아지는 널찍한 마당

두꺼운 옷을 한 꺼풀 벗겨내는 초여름의 뙤약볕 아래.

나는 열심히 입을 움직였다.

그리고 그 모습을 한세강이 지켜보고 있다.


“발성에만 너무 신경 써서 발음이 뭉개진다. 아무리 발성이 좋아도 발음이 부정확하면 네가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전할 수 없대도.”

“다시 하겠습니다.”


한세강의 퇴원 후.

당분간은 보호자가 필요하다는 의사의 말에 그녀는 나를 보호자로 지목했다.

같은 여자가 더 낫지 않겠냔 우려도 들었지만.


“다른 사람은 되려 불편하기만 하다. 지혁이 네가 훨씬 낫지. 게다가 내가 연기 가르쳐 준다고 하지 않았니? 보호자로 우리 집에서 지내는 동안 계속 연기를 가르쳐주마.”


그 말에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나중에 김수아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지만 진소희도 한세강의 집에 머무르면서 연기를 배웠다고.

어차피 2층에 비는 방도 있겠다.

나는 그렇게 한세강의 집에 머무르게 되었다.


“다시, 이번엔 대사로 간다.”


한세강은 굉장히 엄했다.

평소에 정말 아들처럼 다정하고 상냥하게 대해주더라도 연기 지도 때만큼은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다.

기세도 기세지만, 티끌만 한 실수도 절대로 넘어가지 않았다.

한 번이라도 틀리면 처음부터 다시.

오늘로 ‘다시’라는 말을 몇 번째 들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거 하나 만큼은 확실했다.


“남조선 특전사 한수호 대위라, 반갑소. 나는 공화국의 리태홍 상위요.”


실력이 확실히 늘었다.

스스로가 직접 체감이 될 정도다.

어떻게 하면 더 소리를 잘 낼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더 정확하게 발음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목소리에 감정을 녹여낼 수 있는지 등등.

한세강의 가르침은 부족했던 나의 부분을 정확하게 채워주었다.

물론.


“아까보다 훨씬 낫구나. 하지만 억양을 신경 쓰느라 호흡이 무너졌다. 다시.”


한세강의 마음에 들려면 아직 멀었지만.


띠링!

열두 시!


다시라는 말이 몇 번 더 반복될 즈음.

스마트폰 알림음이 마당 가득히 울려 퍼졌다.


“어머,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오전은 이쯤 하자.”

“예, 선생님. 바로 식사 준비할게요.”


식사는 평화롭게 준비되었다.


“선생님 제가 한다니까요.”

“됐다. 오늘 너 촬영 있다고 하지 않았니. 잘 먹고 쉬어야, 촬영장 가서 힘내지.”


한세강은 한사코 만류하며 손수 요리를 만들었다

본래라면 내 담당이지만, 그것마저도 요새는 한세강이 직접 요리를 하고 빈도가 늘고 있다.

이래서야 누가 보호자인지 헷갈릴 정도다.

한세강이 식사를 준비하는 사이, 나는 냉장고에 있는 반찬과 식기를 세팅했다.


“앉아라, 어서 먹자.”

“네,”


식탁 앞에 앉기가 무섭게 밥그릇에 고기반찬이 수북이 쌓인다.


“서, 선생님 너무 많아요.”

“많이 먹어. 속이 든든해야지 늦게까지 촬영할 수 있는 거야.”


한세강이 피식 웃으며 반찬을 더 얹어준다.

마치 어린 시절에 같이 식사하시던 어머니를 보는 것 같다.

나는 숟가락을 들어 고기와 밥을 한 움큼 입으로 욱여넣었다.

고슬고슬한 흰쌀밥과 감칠맛 나는 고기의 육즙이 혀끝을 타고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번에 하윤이가 널 추천했다더구나.”


숟가락을 움직이던 한세강이 담담히 질문을 던졌다.

나는 입에 있는 음식물을 목구멍으로 넘기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 대표님 통해서 저도 그렇게 들었어요.”

“하여간. 정이 많은 아이다. 나를 구해준 보답 아닌 보답이겠지.”

“그런가요?”

“심지어 이번에 네가 맡은 드라마의 작가가 박혜숙 작가라며?”


하나 같이 술술 꿰고 있다.

퇴원 직전까지도 한세강을 자주 찾아갔다고 하더니, 그녀로부터 이야기를 전해 들은 모양이다.


“예, 그렇게 들었어요.”

“하윤이도, 박 작가도 실력도 없는 사람을 추천하고 캐스팅하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다 네가 그만한 실력이 있으니까 그리 한 게지. 그들에게 실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추천을 받았고, 캐스팅이 된 거란다.”


당연하다는 듯이 흘러나오는 말이 가슴 한편을 푹 찌른다.

좀 전에 먹은 따뜻한 밥 때문인지, 그녀의 말 때문이지.

가슴 한쪽에 온기가 더해진다.

한세강은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채로 말을 덧붙였다.


“박 작가라면 그동안 쌓아 올린 실적이 있으니 제작비도 두둑이 들어왔을 게다. 그만큼 인원도 장비도 많을 테고. 박혜숙 작가가 좀 꼬장꼬장한 성격이라 촬영에도 시간 좀 걸릴 텐데··· 심지어 야간 촬영이라 하지 않았니?”

“네. 강원도 인근에 세트장에서 저녁 7시부터 촬영한다고 해요.”


한참 숟가락을 들던 한세강의 손이 멈췄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녀의 눈동자가 다시 나를 향했다.


“강원도까지 가는 걸 보면 아마 산속에서 진행되나 보구나. 아무리 초여름 날씨라지만, 밤의 산은 좀 추울 텐데, 수아한테 말해서 옷 따뜻하게 챙겨가렴. 박 작가 성격이면 아마 새벽까지는 촬영할 텐데 가는 길에 미리 눈도 좀 붙이고.”

“네, 선생님.”


한세강의 눈에는 벌써 걱정이 태산이다.


“대본 보니까 액션 연기던데 조심해야 한다. 액션 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 배우와의 호흡이야. 네가 아무리 날고 긴다 하더라도 상대방과의 호흡이 무너지는 순간, 그대로 대형사고로 이어진다. 액션 연기할 땐 상대 배우에 주목하고, 호흡 맞추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네, 선생님 명심할게요.”

“그리고······.”


띵동!


때마침 초인종이 울렸다.


“선생님, 저 수아예요.”

“마침 팀장님도 오셨네요. 문 열어 드리고 올게요.”

“딱 좋게 왔구나. 수아도 데리고 오렴. 아마 수아 또 끼니도 거르고 왔을 게다.”

“네.”


한세강은 자리에서 일어나 곧바로 김수아의 몫까지 차리기 시작했다.

항상 자식 걱정으로 가득한 어머니의 모습.

오랜만에 가슴 한편이 따뜻하게 데워져 간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수아 왔니.”

“오셨습니까?”

“쓰읍!”


한세강이 눈썹을 모으며 낮게 혀를 찬다.

그제야 실수를 눈치챈 나는 황급히 말을 바꿨다.


“···오셨어요?”

“그래, 훨씬 낫구나. 한동안은 평상시 말투에도 신경 쓰렴. 경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계속 그렇게 군인처럼 딱딱한 말투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네가 맡게 될 배역도 그만큼 줄어든다.”


8년이나 사용한 말투이다 보니 바꾸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하지만 김수아나 진소희에게도 몇 번이나 지적받은 만큼 바꿔야만 했다.


“네, 선생님. 명심할게요.”

“그래, 다른 사람들 앞에선 경어도 좋지만, 적어도 나나 수아 앞에선 적당히 편하게 말하렴. 참 그러고 보니 소희한테도 경칭을 쓴다지? 소희한테도 말 편하게 하고.”

“그래요. 너무 그렇게 딱딱하게 말하면 괜히 더 거리감 느껴지니까. 좀 더 편하게 불러주세요.”


옆에서 키득거리던 김수아가 한 마디 거들었다.

입가에 고소가 번졌다.


“노력할게요.”


그제야 한세강의 입가에 다시금 미소가 번졌다.

평상시에 보이던 온화한 표정을 되찾고서 그녀는 김수아를 향해 입술을 떼었다.


“수아 너도 왔으니 밥이라도 먹고 가렴. 또 끼니도 거르고 왔을 텐데.”

“네? 선생님 저희 지금 가봐야······.”

“그럼 얼른 먹고 가면 되겠구나.”


결국 강원도로 출발한 것은, 괜찮다며 손사래 치던 김수아가 후식으로 숭늉까지 마시고 나서였다.


***


“헉, 헉. 촬영장까지 가는 것도 만만치 않네요.”


강원도의 어느 산.

세트장 근처에 주차장이 있긴 하지만, 세트장까지는 아직 멀었다.

결국 차량이 진입할 수 없기에, 배우들과 관계자는 물론 촬영 스태프들까지 모조리 산행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괜찮으세요?”

“지, 지혁 씨는 헉··· 멀쩡해 보이시네요.”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김수아가 나직하게 감탄을 흘렸다.


“저야 뭐. 이골이 나서요.”


군에 있던 시간만 자그마치 8년이다.

그렇게 가파른 경사도 아니고, 이 정도 산행이야 가벼운 산책 정도에 불과했다.

물론 그 가벼운 산책에 다른 이들은 죽어가고 있었지만.


“그, 그렇지만 지금 장비도 잔뜩 가지고 가시잖아요.”


별 건 아니었다.

중간에 퍼져 버린 촬영 스태프 대신 장비 몇 개를 옮겨주고 있을 뿐이다.

그래 봐야, 천리행군의 완전군장보다야 훨씬 가볍다.


“이거요? 생각보다 그렇게 안 무겁습니다.”

“저분 표정이 전혀 그렇지 않은데요?”


김수아의 손가락을 따라 뒤를 돌아보니, 뒤따라오던 스태프가 기겁하며 제자리에 멈춰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주변의 스태프들의 시선들이 유독 이쪽으로 쏠려 있다.

대부분이 여자 스태프들인 것 같은데, 게다가 어째서인지 다들 양 볼이 발갛게 물들어 있다.

날이 좀 춥나?


“혹시 제 얼굴에 뭐라도 묻었습니까?”

“네?”

“아니 다들 이쪽을 쳐다보고 계신 것 같아서요.”

“······군대가 사람을 망쳤네.”

“예?”

“아니에요. 얼른 올라가요.”


김수아는 홱하니 고개를 돌려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방금 뭔가 엄청난 말을 들은 것 같은데.

기분 탓인가?


그렇게 10분 정도 걸었을 무렵.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풍경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거기! 장비 조심히 안 다뤄? 부서지면 네가 물어낼 거야!”

“지금 들어오시는 분들 밑에 선 조심해 주세요. 선 고장 나면 오늘 촬영 날아가요!”

“조명 빨리 가 온나!”


얼마 전에 촬영했던 수라나 카네이션과 크게 다를 것은 없다.

굳이 다른 것이라 하면 한세강의 말대로 규모가 남달랐다.

카네이션도 충분히 많았다고 생각했는데, 여기는 언뜻 보이는 것만 해도 2배 이상 되는 인원에, 장비도 훨씬 많고 다양하다.

확실히 지원에서부터 그만큼 차이가 나나 보다.


“박혜숙 작가님이 쓴 시나리오라 그런지, 확실히 규모가 크네요.”


김수아에게서도 감탄이 흘러나온다.

촬영장에 익숙할 터인 김수아에게서 이런 말이 나오는 걸 보면, 확실히 규모가 남다른 모양이다.


“허억, 허억. 장비 옮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항상 이런 걸 들고 다니시고 정말 고생 많으셨어요.”

“다 제 일인 걸요.”


제법 몸집이 있던 촬영 스태프가 웃으며 몇 번이고 인사를 건넨다.

장비를 받은 스태프는 이윽고 전쟁과도 같은 촬영장에 합류한다.


“우리도 가서 감독님하고 작가님께 인사부터 드리죠.”

“네.”


김수아를 따라 나는 촬영자에 있는 지휘관을 찾았다.


“뭐라고! 지금 그게 말이 돼?”


허나 분위기는 생각보다도 훨씬 무거웠다.

촬영장의 중심, 다른 스태프들이 모여 있는 상황에서 감독은 전화기 너머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있었으니까.


“아니, 준비 거의 다 끝나 가는데 갑자기 무슨 소리냐고! 하··· 일단 끊어봐.”


결국 깊은 한숨을 끝으로 전화가 끊어졌다.

얼핏 보기에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데.


“무슨 일일까요?”

“사정은 모르겠지만 분위기가 보통 큰일은 아니네요.”

“일단 가서 이야기를 들어보죠.”


김수아는 거침이 없었다.

그녀는 곧바로 스태프 사이로 파고 들어갔다.


“최 감독님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어라 김 팀장? 여긴 어쩐 일이야.”


감독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이미 안면이 있는 사이였던가?

김수아의 넓은 발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저희 신인 배우 로드로 왔어요. 지혁 씨! 여기 이분이 메인 감독인 최성원 감독님이세요.”

“인사가 늦어 죄송합니다. 정지혁입니다.”

“아. 박 작가가 그렇게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던 그분? 반가워요. 최성원 감독입니다.”


김수아 덕분에 한결 분위기가 누그러졌다.

가벼운 인사가 서로를 향해 오갔다.

허나 그것도 오래 가진 못했다.


“그런데 표정이 어두워 보이시던데. 무슨 일 있으신가요?”

“그, 그게···”


최성원에게서 흘러나오는 이야기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무술 감독님이 오는 길에 사고를 당하셨다고요?”


드라마의 시작을 알리는 첫 촬영.

과감한 액션으로 이루어진 첫 장면 촬영을 눈앞에 두고 무술 감독이 사고가 났다.

그것도 하필 촬영장으로 오는 와중에.

다행히 큰 부상은 아니지만.

병원으로 후송된 탓에 오늘 촬영장에 참석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 되고 말았다.


“그, 그럼 오늘 촬영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항상 차분하며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이던 김수아마저 말을 더듬었다.


“오늘 찍을 씬의 8할이 액션 씬인데 무술 감독이 없으니··· 공친 거지.”


차성원의 입에서 담담한 사형선고가 흘러나왔다.

기껏 준비하고 왔는데 이대로 돌아가야 하나?

그때였다.


띠링.


침울한 분위기를 부수고 스마트폰의 알람이 울린 것은.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잠시만요!”


멀리서부터 누군가가 큰소리로 외치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눈을 끔뻑이던 최성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박 작가? 거기에 하윤 씨까지?”

“저분이 메인 작가이신 박혜숙 작가님이세요. 하윤 씨는 전에 만난 적 있다고 했죠?”


김수아가 조그만 목소리로 옆에서 속삭였다.

저 사람이 그 유명한 박혜숙 작가였구나.

하지만 박혜숙 보다 더욱 시선을 빼앗는 것은 그녀의 옆에 있는 조금 익숙한 얼굴이다.


“하윤 씨?”


연하윤은 오늘이 촬영일이 아닐 텐데?

은근한 미소를 띄운 그녀가 점차 가까워졌다.


“저, 박 작가 실은···”


최성원의 목소리가 기어들어 간다.

하지만 그마저도 박혜숙의 목소리가 그의 말꼬리를 잘랐다.


“사정은 저도 들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해결책도 가져왔고요.”

“해결책?”


최성원을 비롯한 인근 스태프의 눈동자가 화등잔만 하게 커졌다.

해결책이라니, 무술 감독 없이 오늘 촬영을 할 수 있는 건가?

의구심으로 가득한 눈동자가 연하윤에게로 향한 순간, 그녀가 돌연 한쪽 눈을 깜빡인다.


“여기요.”

“···예?”


갑작스러운 그녀의 한 마디에 주변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로 쏠렸다.

정작 당사자인 나는 전혀 듣지 못한 내용인데.

이윽고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토해내듯, 연하윤의 옆에 있던 박혜숙의 자신감 넘치는 미소가 나를 향해 피었다.


“지혁 씨.”

“네.”

“오늘 씬의 무술 연출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 해결책이······ 접니까?


작가의말

모바일 기준 오늘 베스트에 입성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항상 지켜봐주시고 재미있게 읽어주신 여러분이 계셨기에 나온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더 열심히 하라는 말로 이해하고, 앞으로 더욱 최선을 다하며 글을 쓰는 작가가 되도록 전력으로 노력하겠습니다.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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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Act 9. 첫 촬영 - (1) +20 20.12.03 17,140 318 17쪽
8 Act 8. 오디션 - (3) +12 20.12.02 17,118 320 11쪽
7 Act 7. 오디션 - (2) +19 20.12.01 17,351 332 14쪽
6 Act 6. 오디션 - (1) +13 20.11.30 17,841 330 11쪽
5 Act 5. 뉴스 - (2) +12 20.11.29 18,224 328 12쪽
4 Act 4. 뉴스 - (1) +21 20.11.28 19,282 345 15쪽
3 Act 3. 튜토리얼 - (3) +21 20.11.27 19,554 379 15쪽
2 Act 2. 튜토리얼 - (2) +26 20.11.27 21,580 351 16쪽
1 Act 1. 튜토리얼 - (1) +25 20.11.27 26,037 38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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