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순덕, 저승에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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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명안
작품등록일 :
2021.05.12 12:39
최근연재일 :
2021.08.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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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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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19화. 저승으로 (2)

DUMMY

물론 그래봤자 동네에서나 알아주던 바둑이지만 나름 자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말에 솔깃해진 순덕이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순덕의 마음에 염라대왕이 몇 년 전부터 바둑을 했다면 자신이 이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들어섰다.


“참말이유? 그럼 어여 가유.”


순덕이 발딱 일어서서는 기세등등하게 앞장을 섰다.


아버지가 성질머리 여전한 딸을 보고 뒤에서 슬그머니 미소 지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저 멀리 삼도천이 보였다.


삼도천 앞에는 부두가 있었고, 여러 대의 배가 줄지어 서있었다.


배를 타려고 귀신들이 조상과 함께 줄지어 서 있었다.


마치 커다란 뱀처럼 이어진 줄은 족히 수천 명은 되어 보였다.


뱃머리에는 남자나 여자가 한명씩, 짙은 회색 양복을 입고 서 있었다.


아버지는 그들 모두 차사들이라고 했다.


“아부지, 저승사자나 차사들은 검은 한복에 갓 쓰는 거 아녀유?”


“뭔 소리여, 지금이 조선시대여, 갓을 쓰게? 내가 갓 썼냐?”


배가 타는 사람들로 꽉 채워질 때마다 저절로 움직여 부두를 떠났다.


배 떠난 자리에는 자연스럽게 다음 배가 그 자리를 채웠다.


그런데 부두의 모양이 특이했다.


만다라 모양의 바닥이 부두 끝까지 100미터 쯤 길게 이어져 있었는데 사람들이 그곳을 지나갈 때마다 바닥이 온갖 색으로 변하곤 했다.


순덕도 만다라 앞에 섰다.


아름답지만 복잡한 기하학적인 무늬가 새겨져 있었다.


순덕도 다른 귀신들처럼 만다라 위에 발을 디뎠다.


황홀할 만큼 아름다운 색의 향연에 만다라 위에 발을 올린 순덕도 잠시 넋을 놓았다.


“아니 뭔 때깔이 이렇게 이쁘댜!”


“니 생전 업보를 계산하는 거여.”


“예? 그게 뭔 말이어유?”


“이 만다라가 니가 생전에 지은 좋은 업, 나쁜 업을 다 계산하고 있다구. 자, 봐라. 내 발밑이 변하나. 내 업은 이미 계산이 끝났으니 변할 일이 없구먼.”


아버지 말대로 다른 귀신들도 마찬가지였다.


같이 걸어가는 조상들의 발밑에 깔린 만다라는 색의 변화가 없는 본래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나 어떤 색깔이 좋은 업을 의미하는지, 어떤 색깔이 나쁜 업을 의미하는지 순덕이 알 길은 없었다.


순덕이 만다라 길의 끝에 이르자 차사가 배를 가리켰다.


지시대로 길을 따라 가자 커다란 배에 올라타는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순덕은 배가 버스 석 대는 붙여놓은 것만큼이나 크다고 생각했다.


줄 끝에 순덕과 아버지가 섰다.


순덕이 눈을 굴리며 아버지에게 물었다.


“저기···, 드라마에선 저승 갈 때 쪽배 타드만. 아녀유?”


“시방 뭔 소리여? 이승이나 저승이나 일을 시키려면 품삯이 얼매나 드는지 알고 하는 소리여?”


“아, 저승도 품삯 들어가유?”


순덕의 말을 듣던 아버지는 헛웃음을 웃으며 답했다.


“그럼 이 많은 귀신들을 다 실어 나르는데 귀신 한 명 당 저승사자를 한 명씩 쓰면, 그 품삯을 당해낼 수가 있겄냐? 이승이나 여기나 거기서 거기여.”


순덕이 아버지에게 바짝 기대며 속삭이듯 물었다.


“그럼 저승도 돈 필요해유? 가져온 게 없는디···.”


“이승같이 돈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살아생전에 사람답게 좋은 일을 많이 해서 덕을 쌓았던가, 아니면 저렇게 저승에서 오래 일을 하면 환생할 때 좀 좋은 자리로 가겄지?”


“아···.”


아버지가 순덕에게 물었다.


“너는 어쩔 것이여? 염라대왕하고 바둑 두면 이길 수는 있고?”


“참나, 바둑 내기하라고 부추긴 게 누군디 이제 와서 딴 소리래유!”


“잘 생각혀. 잘못하면 너도 저 꼴 날 수 있어. 저렇게 일하는 건 쉽간디? 저 차사 눈 밑에 꺼멓게 내려온 거 보이냐? 귀신도 피곤에 쩔면 저렇게 된다.”


“허, 참말 피곤한가 봐유. 안됐구먼. 그럼 아버지는 어떻게, 잘 계셨슈? 아님 아버지도 여기서 일해유?”


“참 빨리도 물어본다. 이승에서 제사 잘 올려주면 배고프지 않으니 아쉬울 게 없지. 아쉬울 게 없으니 안 해도 되겄지? 근데 네가 최근에 내 제삿밥은 제대로 올렸냐? 생각혀 봐.”


“아···. 지송해유···. 근디 제가 제사밥 올렸을 때 드시긴 했슈?”


“그땐 와서 흠향을 했지. 귀신 되고 보니 음식 향만 맡으면 배가 채워지더만. 흠흠···뭐 내가 생전에 쌓은 덕이 있으니 크게 배고프진 않았지만 가끔 품 팔러 갔어.”


“뭘로 품을 팔아유?


“차사들도 휴가가 있구먼. 그때 가서 대신 분류작업하면 흠향 값은 나와.”


“근디, 아부지, 아부지하고 산에 있을 적엔 가끔 귀신도 봤는디, 남편 따라 산을 내려간 뒤로는 잘 안보여유.”


“그기 당연한 거여. 산에서야 영기가 맑아지니 보이는 거지. 죽을 때 돼서 보는 건 헛 거가 보이는 게 많고.”


마침내 순덕과 아버지도 배에 올랐다.


아버지는 순덕에게 염라대왕 앞으로 가면 마음속으로라도 욕하지 말고 생각도 조심하라고 조언했다.


염라대왕은 귀신이 마음속으로 하는 이야기까지 온전히 다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속이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으니 진심을 내보이라 했다.


순덕은 과연 자신이 염라대왕 앞으로 가면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되기는 했지만 이미 죽었으니 또 죽기야 하겠나 싶었다.


그런데 아버지 말로는 죽을 수 있다고 했다.


보통 죽으면 혼이 남아 다시 환생을 하지만, 염라대왕의 진노를 사면 그 혼조차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배에서 바라보는 저승의 강은 어느 방향으로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하다못해 그들이 배에 올라탔던 곳조차 보이지 않았다.


무채색 같은 바다였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조차 모호했다.


두 남매 생각에 빠져있던 순덕이 물었다.


“아부지, 아까 내 새끼들 죽으면 저가 데려와야 한다고 하셨잖유? 그 애들 애미 애비가 오는 것이 아니구유?”


“보통은 애미 애비가 데리러 오지. 근디 말여. 니 아들 남호 말이여. 억울함이 아직 안 풀렸잖어. 그런 경우엔 아직 지 앞가림이 끝나지 않았으니 애들 데리러 가기 힘들어.”


아버지 말을 듣는 순간 순덕의 눈 주변이 붉게 변했다.


“저가 아직 그 애 뺑소니를 못 잡았구먼유···.”


순덕의 눈치를 보던 아버지가 얼른 말을 이었다.


“한 가지 더 있어. 새끼덜이 죽을 때가 되면 너를 먼저 생각할까, 아니면 애미 애비가 먼저 생각날까?”


“···힘든 시기를 저하고 넘겼으니 저가 먼저 생각날 거구먼유. 보고 싶기야 부모가 먼저 보고 싶어도 고생은 저랑 셋이서 같이 했슈. 인희는 지 애비 얼굴도 희미하다고 지난번 울더만유.”


“그려. 그거야. 내가 생각혀도 니가 데리러 올 거 같단 말이지. 가장 최근까지 동고동락 혔잖어. 그 집안 자손은 그 집안 조상이 데려와야 허는디, 매번 한 명만 가거든. 어쩌다 둘도 가지만 아주 드물어.”


순덕이 답답한 가슴 가득히 숨을 들이쉬고는 한숨 쉬듯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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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30화. 너 이년 딱 걸렸어(2) +2 21.05.25 221 7 7쪽
29 29화. 너 이년 딱 걸렸어(1) +6 21.05.24 228 9 7쪽
28 28화. 네 꺼에 침바른 적 없어 +2 21.05.24 229 7 7쪽
27 27화. 개구멍을 뚫자 +4 21.05.23 237 9 7쪽
26 26화. 할머니가 이상해 +2 21.05.23 255 8 7쪽
25 25화. 흰둥이 몸속으로(2) +7 21.05.22 250 9 7쪽
24 24화. 흰둥이 몸속으로(1) +5 21.05.22 244 9 7쪽
23 23화. 다시 이승으로 +7 21.05.21 270 9 7쪽
22 22화. 염라대왕과 마주하다 (2) +2 21.05.21 251 7 7쪽
21 21화. 염라대왕과 마주하다 (1) +10 21.05.20 254 11 7쪽
20 20화. 저승으로 (3) +1 21.05.20 259 10 7쪽
» 19화. 저승으로 (2) +8 21.05.19 249 10 7쪽
18 18화. 저승으로 (1) +2 21.05.19 254 9 7쪽
17 17화. 순덕의 사고(2) +3 21.05.18 252 10 7쪽
16 16화. 순덕의 사고(1) +1 21.05.18 246 9 7쪽
15 15화. 악연의 시작 (3) +2 21.05.17 258 7 7쪽
14 14화. 악연의 시작 (2) +3 21.05.17 273 7 7쪽
13 13화. 악연의 시작 (1) +4 21.05.16 284 9 7쪽
12 12화. 볼 때마다 눈빛이 별루야. +2 21.05.16 285 7 7쪽
11 11화. 자칫하면 큰 일 나겠어. +1 21.05.15 303 9 7쪽
10 10화. 이건 뭐 개가 상전이여! (2) +2 21.05.15 318 11 7쪽
9 9화. 이건 뭐 개가 상전이여! (1) +2 21.05.14 319 13 7쪽
8 8화. 찍는 게 남는거 (2) +4 21.05.14 332 13 7쪽
7 7화. 찍는 게 남는거 (1) +3 21.05.13 342 13 7쪽
6 6화. 인희가 말을 안 한 이유 +2 21.05.13 349 14 7쪽
5 5화. 굴러온 복덩이 +1 21.05.12 374 14 7쪽
4 4화. 일자리를 찾아야 해. +2 21.05.12 410 13 7쪽
3 3화. 우리 애들헌테 또 한 번만 거지 어쩌구 해봐 +2 21.05.12 409 12 7쪽
2 2화. 방순덕이 인천으로 온 이유 +2 21.05.12 472 15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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