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찍는 게 남는거 (1)
“이 할미 돈 잘 버니께 걱정 마. 어제 할미가 월급도 많이 받아왔어. 이래 뵈도 이 할미가 큰 식당 주방장이여, 주방장. 주방장이 얼매나 돈 많이 버는지 아냐?”
“······.”
도리도리 고갯짓으로 모른다는 것을 말하는 애들을 보고 순덕이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할미 손이 그냥 손이 아니여. 이거 금 손이여. 응? 주방장 월급 받은 거에서 쪼-끔 떼서 기념으루다가 선물도 산 거여. 걱정마. 너그는 그냥 공부만 열심히 허고, 잘 먹고, 잘 놀면 되는 거여. 할미 믿지?”
“네···.”
“네···.”
“어허, 목소리가 작구먼. 그럼 뭐라고 혀야 되겄어?”
“감사합니다···.”
“어후, 내가 벌써 귀가 안 들리나 벼.”
귀를 후비며 익살을 떠는 순덕을 보던 인한과 인희가 서로를 보고 빙긋 미소를 짓더니 순덕에게 고개를 돌려 큰 소리로 답했다.
“할머니, 감사합니다!”
“할머니, 고맙습니다!”
“그려, 그려, 내 새끼들, 잘 당겨 와-.”
“할머니, 다녀올게요.”
“다녀오겠습니다.”
둘이 사이좋게 손잡고 가는 모습을 본 순덕이 뒷짐을 쥔 채 하염없이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제 순덕도 출근 준비를 할 시간이었다.
***
순덕이 61세라는 나이에 안정된 일자리를 잡으면서 집안도 안정을 찾아갔다.
인희는 학교에서도 말을 하기 시작했고, 본래 명랑하고 사교적이었던 아이라 금세 다른 아이들과도 잘 어울렸다.
순덕은 담임교사에게 전화해서 인희가 했던 말과 상황을 전해주고 거듭 잘 좀 부탁드린다며 인사했다.
인희는 하루가 다르게 밝은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가끔은 친구들과 노느라 인한과 따로 오는 날도 있었다.
인한도 처음 얼마간은 인희와 떨어져 오는 것을 불안해했지만 이내 적응했다.
순덕도 안정을 찾아가는 아이들 덕분에 식당에서 주방장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순덕은 악착같이 월급의 상당량을 저축했다.
자신을 위해서는 옷 한 가지, 화장품 하나도 거의 사는 일이 없었다.
순덕이 식당일에 몰두하게 되면서 아들과 며느리의 뺑소니 사고는 거의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한참 일하고 있을 때에는 잊고 있다가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내가 이러다 아들의 억울한 죽음을 잊는 것은 아닐까 싶어 마음이 답답해졌다.
때론 혼자 가슴 치며 숨 죽여 울기도 했지만 아이들 앞에서는 절대 내색하지 않았다.
시간은 순덕의 그런 사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무심하게 흘러갔다.
덕유식당 공 사장은 4년이 지나자 분점을 하나 더 늘렸다.
공 사장은 뼈해장국 장사가 오로지 순덕의 힘으로 일어섰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때문에 순덕에게 아주 좋은 조건으로 분점을 낼 수 있게 도와주었다.
몇 년간 공 사장과 쌓은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그 신뢰의 밑바탕에 뼈해장국 노하우가 있었다.
덕유식당 첫 분점은 순덕에게 새로운 삶의 시작이 되었다.
다시 3년이 지난 올해, 공 사장 입에서 벌써 다른 지역에 분점을 하나 더 만든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공 사장 입장에서는 대박 또 대박이었다.
***
2016년은 뼈해장국 일을 시작한 지 7년째 되는 해였다.
그동안 순덕은 뼈해장국 집 근처에 작은 단독주택을 구입할 생각이었다.
마침 인한과 인희가 방학 중이라 순덕은 셋이서 같이 집을 보기로 했다.
몇 군데 부동산을 돌고 점심은 인한과 인희의 의견대로 중국집으로 들어갔다.
짜장면을 다 먹고 의자에 등을 기댄 채 자스민차를 마시던 인한이 순덕의 핸드폰을 보더니 슬쩍 인희에게 눈신호를 보내고는 입을 뗐다.
“할머니, 핸드폰이 많이 낡았잖아요. 저희하고 핸드폰 보러 가요.”
작년에 인한과 인희는 순덕이 데리고 가 스마트폰으로 바꿔준 터였다.
도대체 언제적 폴더폰이던가?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여태껏 핸드폰을 바꾸지 않은 순덕이었다.
“뭐땀시? 이거면 돼. 다 쓰잘데기 없어.”
인희가 끼어들었다.
“그 쓰잘데기 없는 걸 저희한테는 왜 사주셨어요? 할머니도 안 쓰시면서.”
“아, 너희는 젊잖어. 나는 지금 이거가 편혀. 너그 쓰는 거 복잡혀. 그냥 이거 쓸 겨.”
“할머니, 그럼 구경이라도 가요. 네?”
“아니, 사지도 않을 거 구경은 뭐하러? 됐어.”
“그러지 마시고요. 나온 김에 구경이나 가요. 할머니. 요즘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아셔야 남들한테 안 속죠.”
“아, 됐다니까···.”
인희가 얼른 제 스마트폰을 열더니 사진을 열어 순덕에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할머니, 이거 제가 지난여름 하고 겨울에 찍은 사진들이예요. 완전 예쁘죠? 할머니 사진 찍는 거 좋아하시잖아요? 이거만 있음 카메라 없어도 돼요.”
“나도 찍혀. 봐, 나도 찍었어.”
순덕이 제 핸드폰을 열어 보여주자 인희가 냉큼 제 스마트폰과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여주었다.
“할머니, 할머니 사진 찍는 거 좋아하시잖아요. 그런데 이 핸드폰은 낡아서 사진이 뭉개져요. 자, 보세요. 그리고 요즘 스마트폰은 지금 내는 할머니 전화요금이면 충분히 사요. 안 비싸요. 그러니 일단 가서 구경해요. 네?”
같은 돈으로 더 좋은 핸드폰 구입이 된다는 말에 솔깃한 순덕이 인한과 인희가 계속 졸라대자 결국 못 이기는 체 중국집을 나왔다.
순덕네는 멀지 않은 곳에 ‘완전 공짜’라고 스마트폰 광고를 크게 올린 LT핸드폰 가게로 들어갔다.
진열대에 나란히 놓인 핸드폰들을 보았지만 순덕 눈에는 그게 그거였고, 다 좋고 비싸게만 보였다.
점원은 경계막부터 치고 멀찌감치 떨어져 스마트폰을 구경하는 순덕을 노련한 눈빛으로 스캔하기 시작했다.
순덕의 레이저빔 같은 눈빛은 ‘난 무조건 안 사거나, 제일 싼 거면 되오.’하는 굳은 의지를 보이고 있었다.
이 가게에는 나이 드신 고객이 많이 찾아왔다.
거기서 점원에게 쌓인 노하루가 바로 ‘나이 많은 고객은 대부분 무조건 값 싸고, 화면 크고, 사진 잘 찍히고, 통화만 잘 되면 된다.’는 것이었다.
넉살 좋은 점원이 마치 한 땀 한 땀 장인이 고급 비단에 수놓는 심정으로 인내심을 발휘할 시간이었다.
핸드폰 3종을 진열대 위에 꺼내어 보기 좋게 늘어놓고 설명을 시작했다.
“사모님, 이 스마트폰은 가격이 저렴한 것에 비해 화면이 크고, 해상도도 높아서···.”
“해상도?”
“네, 해상도.”
“그게 뭐유?”
“아, 사진이 아주 잘- 찍힙니다. 네, 사진이요. 방금 전에도 사진 잘 찍는 사모님께서 요걸 사 가셨어요. 사진을 찍어보시더니 홀딱 반하셔서 가격이 싼데도 아주 잘 찍힌다고 좋아하셨습니다.”
“사진?”
“제가 보여드릴게요.”
점원은 역시 눈치 백단이었다.
재빠른 손놀림으로 순덕 옆으로 와서 능숙하게 셀카 자세로 스마트폰을 들어올렸다.
“자, 여기를 보세요. 치-즈! 손을 요렇게 하시고, 아휴, 자세 좋-습니다. 다시 치-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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