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순덕, 저승에서 돌아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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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명안
작품등록일 :
2021.05.12 12:39
최근연재일 :
2021.08.0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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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15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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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11화. 자칫하면 큰 일 나겠어.

DUMMY

인희가 흰둥이를 타이르면 그때는 못이기는 척 받아먹고는 입을 싹 씻었다.


“무슨 노무 개새끼가 요따구로 사람을 차별 혀. 아주 저가 상전이여, 상전. 에잉”


그러면 인희가 양손으로 흰둥이 얼굴을 잡고 말했다.


“흰둥아, 우리 할머니 좋은 분이야. 너 키우게 해주신 것도 할머니고. 할머니한테 그러면 안 돼. 가서 할머니 위로해드려.”


그렇게 인희가 말하면 신기하게도 흰둥이가 슬며시 순덕 옆으로 다가와 앉고는 슬쩍 순덕의 손에 제 앞발을 잠시 얹어놓고 꼬리를 설레설레 두세 번 흔들어 대면서 인희의 눈치를 본다.


순덕이 몇 차례 흰둥이를 쓰다듬고 ‘손’하면 그제야 슬그머니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앞발을 순덕의 손바닥에 쓱 내주었다가 훅 뺐다.


‘옛다, 내가 인심 썼다.’하는 식의 반응이었다.


순덕의 배알이 뒤틀릴 수밖에 없었다.


“에잉, 망할 놈.”


“할머니, 할머니가 그러시면 흰둥이도 알아요. 예뻐하셔야 애교도 부리죠.”


“애교를 떨어야 예뻐하지. 개새끼가 내 상전이냐?”


“아휴, 할머니···.”


옆에서 그 장면을 보는 인한이 쿡쿡 대며 웃었지만, 정작 순덕과 흰둥이에겐 하루하루가 인희를 사이에 둔 치열한 신경전의 연속이었다.


***


11월이 되면서 뼈해장국을 찾는 손님들이 더 늘었다.


점심시간을 어떻게 넘겼는지도 모를 만큼 손님들이 왔다 갔다.


오후 3시가 넘고서야 식당 안에 손님이 줄면서 조금 한산해졌다.


식당 안은 한 차례 폭풍이 쓸고 간 것처럼 정신 사나운 모습이었다.


마침내 식당 종업원들도 모여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잠시 후 식사를 끝낸 직원들이 각자의 위치로 흩어졌다.


주방에서는 설거지 하는 소리와 쏟아지는 물소리가 한창이었다.


그때였다.


중절모를 쓴 노인 한 분이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어세 오세요.”


종업원의 인사를 받은 노인이 미소를 띈 채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온통 하얗게 변한 머리는 단정하게 이발이 되어 있었고, 수염 역시 말끔히 면도한 노인이었다.


차림뿐 아니라 걷는 자세까지 누가 봐도 깔끔하고 기품 있어 보였다.


연한 회색 두루마기를 곱게 차려 입은 노인은 창가 테이블에 앉아 뼈해장국을 시켰다.


갸름한 얼굴에 떠오른 미소는 세상을 달관한 자의 그것을 닮았다.


순덕이 익히 아는 단골이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오던 분이 몇 달째 걸음을 안 하더니 오랜만에 온 것이다.


순덕은 반가운 마음에 잰 걸음으로 그의 앞으로 가 아는 체를 했다.


“아휴, 왜 이렇게 안 왔슈? 사람 궁금하게.”


“허허허. 여기 저기 좀 돌아다녔지.”


서로 두 손을 잡고 가볍게 손등을 두들기며 인사를 하던 노인이 순덕의 기색을 살폈다.


사람을 보면 기색부터 살피는 것은 그의 오래된 직업병이라 할 수 있었다.


그가 순덕의 얼굴에서 심상치 않은 기색을 읽고는 슬쩍 얼굴이 굳었다.



이윽고 뼈해장국이 나왔다.


한술 떠서 맛을 보던 그가 말했다.


“역시 이 맛이야. 이 맛이 그리워 다시 왔네.”


“그럼 언제나 그 맛이쥬. 뭐 변할 일이 있남유? 이번에 또 어디 해외여행이라도 댕기 오셨슈?”


“그건 아니고, 어디 나 들어갈 묘 자리라도 있나 그냥 이곳저곳 다녔지.”


“그런 것도 보셔유?”


“허허허 뭐 제대로 알아서 보겠나? 그냥 보는 거지.”


마치 오랜 친구를 앞에 둔 사람처럼 맞은편에 앉아서 이것저것 묻고 챙기는 순덕이었다.


“요즘도 장사 잘 되지?”


“그럼유. 애들 공부 마치고 시집 장가 보낼라면 더 벌어야겄지만 자리는 잡았슈.”


차분하게 뼈해장국을 다 먹은 노인이 순덕을 보며 말했다.


“자네 사주가 어떻게 되지?”


“갑자기 사주는 왜유?”


“어서 불러봐.”


어리둥절해 하면서도 방순덕이 제 사주를 대어주자 한참 눈을 감고 뭔가를 생각하던 노인의 얼굴이 조금 심각해졌다.


“애들은 별 일 없고?”


“없어야쥬. 호호호”


얌전한 척 얄궂게 웃던 그녀가 노인에게 인한과 인희에 대한 자랑을 한 보따리 늘어놓았다.


그 눈빛에서 노인은 그녀가 살아가는 힘이 애들이었음을 여실히 알 수 있었다.


사실 왜 아니겠는가?


몇 년이 지나도 찾아볼 일이 없는 남편의 먼 친척을 제외하고, 그녀에게 남은 가족이란 오직 인한과 인희뿐이었다.


순덕에게 가장 소중한 보물들, 자신의 목숨도 애들보다 귀하지는 않았다.


노인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순덕이 노인을 만날 때마다 이야기 주제는 손주들로 시작해서 손주들로 끝났다.


노인은 잠시 고민을 했다.


알려주는 것이 좋을지, 참견하지 않는 것이 좋을지 말이다.


이윽고 노인이 말문을 열었다.


“자네 지금부터 내년 말까지는 좀 많이 조심해야겠네.”


“예?”


“자칫하면 큰 일 나겠어.”


“아니, 이렇게나 튼튼한디? 아직도 쌀 포대 우습게 들어유. 아픈 데도 없구유. 하다못해 무릎도 멀쩡 해유.”


“애들 것도 말해봐.”


얼떨결에 애들 사주까지 내어놓은 순덕의 마음이 살짝 불편해졌다.


점쟁이라는 사실은 진작 알았지만 본래 자신은 특별히 점을 믿는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노인이 이런 말을 할 때에는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순덕이 노인을 만난 것은 공 사장네 덕유식당에서 주방장을 한지 얼마 안 되었을 때였다.


그때도 식당에 들어온 노인은 마침 주방에서 나오던 순덕의 얼굴과 공 사장의 얼굴을 번갈아 보더니 대뜸 공 사장에게 거창한 덕담을 했다.


“자네, 운 폈네. 아주 복이 넝쿨째 굴러왔군.”


그때 입이 귀까지 걸렸던 공 사장이었다.


그리고 그 말대로 공 사장네 식당은 대박이 났다.


나중에 공 사장에게 들은 바로는 이전부터 시장을 지나다니는 노인을 알고는 있었으나 말을 섞은 적은 없었다고 했다.


노인은 그저 지나다니다 그의 눈에 띄는 사람을 보면 한 마디씩 툭툭 던져주곤 했는데, 그가 하는 말은 다 맞았다는 것이었다.


순덕은 아직까지도 이 노인의 이름자도 몰랐다.


굳이 먼저 말하지 않는 것을 애써 묻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아주 모르는 사람도 아닌 것이다.


어쨌든 그 후로 그녀의 단골이 된 고마운 사람이었으니까.


그러니 입 찬 소리 안 하는 이 양반에게서 어떤 꺼림직한 말이 나올까 싶어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을 수밖에 없었다.


한참 후 노인이 혀를 찼다.


“허참, 쯧쯧쯧”


“뭔데 그래유?”


“······.”


“······.”


“셋이 다 살이 끼었구먼. 내년 넘어갈 때까지 아주 많이 조심해야 돼.”


“뭐 다 죽는다구유?”


“허, 그렇게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지. 그러나 언제 어떻게 잘못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안 좋아.”


“그럼···. 부적이라도 써 주시려구유?”


“내가 무당이야? 부적을 쓰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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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31화. 승하의 신고(1) +6 21.05.25 244 8 7쪽
30 30화. 너 이년 딱 걸렸어(2) +2 21.05.25 223 7 7쪽
29 29화. 너 이년 딱 걸렸어(1) +6 21.05.24 228 9 7쪽
28 28화. 네 꺼에 침바른 적 없어 +2 21.05.24 229 7 7쪽
27 27화. 개구멍을 뚫자 +4 21.05.23 239 9 7쪽
26 26화. 할머니가 이상해 +2 21.05.23 256 8 7쪽
25 25화. 흰둥이 몸속으로(2) +7 21.05.22 250 9 7쪽
24 24화. 흰둥이 몸속으로(1) +5 21.05.22 244 9 7쪽
23 23화. 다시 이승으로 +7 21.05.21 271 9 7쪽
22 22화. 염라대왕과 마주하다 (2) +2 21.05.21 251 7 7쪽
21 21화. 염라대왕과 마주하다 (1) +10 21.05.20 254 11 7쪽
20 20화. 저승으로 (3) +1 21.05.20 261 10 7쪽
19 19화. 저승으로 (2) +8 21.05.19 249 10 7쪽
18 18화. 저승으로 (1) +2 21.05.19 255 9 7쪽
17 17화. 순덕의 사고(2) +3 21.05.18 252 10 7쪽
16 16화. 순덕의 사고(1) +1 21.05.18 246 9 7쪽
15 15화. 악연의 시작 (3) +2 21.05.17 260 7 7쪽
14 14화. 악연의 시작 (2) +3 21.05.17 275 7 7쪽
13 13화. 악연의 시작 (1) +4 21.05.16 285 9 7쪽
12 12화. 볼 때마다 눈빛이 별루야. +2 21.05.16 285 7 7쪽
» 11화. 자칫하면 큰 일 나겠어. +1 21.05.15 304 9 7쪽
10 10화. 이건 뭐 개가 상전이여! (2) +2 21.05.15 319 11 7쪽
9 9화. 이건 뭐 개가 상전이여! (1) +2 21.05.14 320 13 7쪽
8 8화. 찍는 게 남는거 (2) +4 21.05.14 332 13 7쪽
7 7화. 찍는 게 남는거 (1) +3 21.05.13 342 13 7쪽
6 6화. 인희가 말을 안 한 이유 +2 21.05.13 349 14 7쪽
5 5화. 굴러온 복덩이 +1 21.05.12 376 14 7쪽
4 4화. 일자리를 찾아야 해. +2 21.05.12 410 13 7쪽
3 3화. 우리 애들헌테 또 한 번만 거지 어쩌구 해봐 +2 21.05.12 409 12 7쪽
2 2화. 방순덕이 인천으로 온 이유 +2 21.05.12 474 15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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