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이건 뭐 개가 상전이여! (2)
“쟤가, 쟤가···. 도대체 잠은 어디서 잔댜?”
순덕이 그러거나 말거나 인희가 행복해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내 새끼가 마음에 든다니 순덕은 더 이상 쥐소리도 안 하고, 하고 싶은 대로 두었다.
흰둥이라는 놈이 아주 어린 새끼일 때는 순덕에게 와서 애교도 부렸다.
그 짧은 꼬리를 흔들며 와서 순덕의 손가락을 핥기도 했다.
그러던 것이 몇 달이 지나면서 자꾸 순덕의 눈에 거슬리는 일들이 일어났다.
순덕은 마당 한쪽에 만들어진 화단을 보는 것이 바쁜 생활 속 큰 즐거움의 하나였다.
순덕은 이사 온 이후로 시간이 나면 화단 앞쪽에 부지런히 꽃을 심었다.
그 결과 백일홍, 분꽃, 금송화가 화단 앞을 꽉 채웠고, 순덕은 부지런히 사진을 찍어댔다.
그런데 흰둥이가 커가면서 거실에서 더 이상 변을 보게 할 수가 없었던 탓에 바로 화단 한 구석이 흰둥이 화장실이 되었다.
흰둥이가 정해진 화장실만 잘 썼으면 순덕도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그런데 자꾸 화단의 꽃들을 마치 쥐가 파먹은 양으로 군데군데 물어뜯어댔다.
몇 송이 되지도 않는 꽃을 물어뜯어놓으니 순덕 마음이 좋을 리 없었다.
새벽같이 식당에 나가는 때를 제외하고는 아침마다 밥 먹고 난 후, 따끈한 커피를 숭늉처럼 마시면서 화단의 꽃을 즐기던 순덕이었다.
몇 차례나 ‘그러면 안 돼’하고 주의를 주었지만 흰둥이의 만행은 끝이 나질 않았다.
날이 갈수록, 아니 흰둥이의 몸이 커갈수록 분명 슬금슬금 순덕의 눈치를 보면서도 순덕이 안 보는 순간이면 화단은 흰둥이의 이빨에 쑥대밭이 되어갔다.
결국 순덕의 인내심이 폭발했다.
마당 구석에 놓인 빗자루가 들림과 동시에 순덕의 고함과 흰둥이의 깨갱 소리가 오고 갔다.
“이노무 개새끼가 왜 자꾸 꽃을 물어뜯어, 엉? 하지 말라고 혔어, 안 혔어!”
“깨앵- 깽 깽 깽!”
흰둥이의 깨갱거리는 비명소리와 순덕의 고함소리에 놀란 인희가 맨발로 마당으로 뛰어나왔다.
순덕이 들어 올린 빗자루를 보고는 황급히 잡고 말렸다.
“할머니, 그렇다고 때리시면 어떡해요, 할머니! 참으세요, 제가 잘 가르칠게요.”
순덕은 기가 차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때리긴 누가 때려! 난 빗자루만 들었어. 저노무 개-새끼, 야 이놈아, 내가 너 때렸어? 엉? 말해봐! 이 나-쁜 시키!”
그러나 인희는 ‘정말 할머니가 안 때렸을까? 그런데 왜 흰둥이가 꼬리까지 감추고 저만큼 멀리 피했지?’하는 눈초리로 순덕을 쳐다봤고, 순덕이 그 눈치를 모를 리 없었다.
순간 이미 붉어진 순덕의 얼굴이 화로처럼 타올랐다.
인희는 순덕의 머리 꼭대기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환상을 본 듯 했다.
마침 인한은 이 사건의 전말을 거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잔뜩 독이 오른 순덕 앞에서 소리 내어 웃었다간 괜한 화살을 맞을까 싶어 슬그머니 일어나 까치발을 하고는 제 방으로 들어갔다.
나중에 인희에게 전말을 알려주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일단 소란은 피하고 볼 일이었다.
순덕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하자 순덕의 눈치를 살핀 인희가 흰둥이 머리를 잡고 훈계를 시작했다.
“흰둥아, 너 자꾸 꽃 씹으면 안 돼! 또 그러면 간식 안 줄 거야!”
그날 저녁 인희는 개껌을 몇 가지 사왔다.
그러자 거짓말 같이 흰둥이는 화단의 꽃을 더 이상 씹지 않았다.
꽃 사건 이후 흰둥이 역시 순덕이 확실히 못마땅한 눈으로 자신을 본다는 것을 알았다.
이유는 몰랐지만 자신에게 상냥한 개 집사 인희와 순덕이 풍기는 기운은 분명 달랐다.
그날 이후 순덕만 보면 눈을 피하더니 이제는 소 닭 보듯 했다.
그런데 순덕이 기가 막혀 할 일이 더 생겼다.
그녀의 상식으로는 개는 마당에 묶어놓고 집 지키라 키우는 동물이었다.
집안에 들여놓고 바람 불면 날라 갈까, 비가 오면 감기 들까 조심하면서 모시는 상전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냥 개인데?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씩 목욕시켜주고, 추울까 옷 입혀 주는 동물이 아니었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고 있었다.
집 안에서 키우는 것은 새로운 상식처럼 되었고, 남은 밥 먹이는 일도 없었다.
인희만 하더라도 제 몸이 아플 때는 병원 갈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흰둥이가 조금만 아파도 바로 병원을 찾았다.
순덕은 기가 찼다.
그렇다고 인희에게 뭐라고 하는 것이 혹여 인희를 예전처럼 아프게 하는 일이 될까 제대로 말도 꺼내지 못하고 혼자 끙끙댔다.
TV에서 그런 장면이 나오면 순덕은 혼잣말로 ‘말세여, 말세.’하고 혀를 차며 채널을 홱 돌렸다.
꼴도 보기 싫었다.
“흰둥아, 엄마 왔다!”
“끼잉, 끼잉··· 월월월.”
“엄마는 무신···. 인희 너는 개 엄마 되야서 좋-겄다.”
“에이, 할머니, 또 왜 그러세요.”
“저놈 저거 꼬리 붙어 있는 게 신기한 거여. 저렇게 흔들어 대고 멀쩡하니 참 용타.”
“아하하 흰둥아, 그만해, 간지러워. 으헤헤헤헤.”
“아주 좋아 죽네, 죽어. 으이유.”
순덕이 그러거나 말거나 인희가 들어오면 꼬리가 떨어지게 흔들어대며 온 몸으로 디스코 춤을 추듯 격렬하게 반기는 흰둥이였다.
인희 손과 얼굴을 핥아대고 올라타며 갖은 애교를 다 부리는 놈이었다.
인한에게도 인희만큼은 아니라도 역시나 반기는 기색이 확실했다.
순덕만 덩그러니 예외였다.
오도방정을 떨다가도 순덕이 들어오면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인희 방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뿐만 아니다.
언제 훈련을 시켰는지 인희가 ‘손’하고 손바닥을 내밀면 척하니 앞발을 내주었고, ‘앉아’하면 앉고, ‘엎드려’하면 엎드렸고, ‘굴러’하면 굴렀다.
‘조용히 해’하면 조용히 했고, 사료도 ‘먹어’하면 먹었다.
인한이 명령해도 말을 잘 들었다.
흰둥이가 사람 말귀를 제법 알아듣고 명령을 따르는 모습이 순덕 눈에도 신기했다.
순덕은 저도 흰둥이에게 인희처럼 해보고 싶었지만, 순덕이 그런 행동을 하려는 눈치라도 보이면 흰둥이는 귀신 같이 눈치를 채고 멀찌감치 피해버렸다.
순덕이 ‘얼럴럴럴 흰둥아.’하고 부르면 어디서 개가 짖냐는 식으로 딴 짓만 하는 것이 드러나게 보였다.
그런 흰둥이가 순덕 눈에 고울 리 없었다.
‘저노무 개새끼, 정말 눈꼴셔서 못 봐 주겄네.’하고 속으로 궁시렁대면 그걸 마치 들은 것 마냥 슬금슬금 순덕 근처에서 멀어졌다.
“할머니, 그러지 마시고 흰둥이에게 간식 주면서 친해져보세요.”
인희가 순덕과 흰둥이를 친해지게 하려고 순덕을 달랬다.
순덕이 못 이기는 체 하고 간식을 흰둥이 앞에 들이밀면 혀로 입을 핥으면서도 슬그머니 눈을 딴 곳으로 돌리고 딴청을 하는 것이 확연하게 눈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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