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나더 월드(Another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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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라더
작품등록일 :
2021.05.12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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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7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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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5.30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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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

DUMMY

마을을 나서기 전날, 부지런히 수련을 한 덕분에 천선비류창에 수록된 무공 전부를 2레벨로 올리는 데 성공할 수 있었다. 천성비류창의 무공이 낮은 등급의 무공이 아니라는 것은 천범신공을 운기 할 때마다 4시간 동안 상승하는 스텟 양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1레벨에는 신체 스텟 전부를 각각 5씩 상승시켜주더니, 2레벨에는 무려 신체 스텟을 각각 10씩 올려줘 놀라게 만들었다. 이 상태에서 바투아와 정령융합까지 해 스텟을 올리면 일시적으로 각각 20씩 상승하는 것이라, 빠르게 성장하는 스킬과 스텟에 적응하기 바쁠 정도였다.


난 프로이안 마을을 나온 이후부터 마주치는 몬스터를 웬만해서는 피해가지 않고 사냥하면서 이동했다.

사냥은 신체 능력을 압도할 정도로 강한 몬스터나 마력 스킬을 가진 몬스터가 아니라면.

투창용 창과 공아 스킬에 근접하기도 전에 맞아 죽거나 겨우겨우 근접했다 해도 바투아의 마법에 죽거나, 이 모든 공격에 살아남아 어떻게 어떻게 달려든다 해도 아직은 미숙한 보법과 창술에 죽고는 했다. 그렇게 소모한 마력은 바투아의 호위를 받아 채우든지 아니면 더 안전하게 정령융합을 한 상태로 호숫가나 강에 들어가 마력을 채우면 되어서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애초에 어디에 위험한 몬스터가 사는지를 숙지해두고 움직이는 것이라 가능했던 안전한 행군이었다.


프로이안 마을을 벗어나 하루를 꼬박 사냥과 행군, 휴식을 반복해 도달한 곳은 탁 트인 벌판이 지평선 끝까지 자리한 곳이었다.

피로도는 적절히 휴식을 취해 줄여놔서 아직 구비해둔 감소 알약 `레아탈`을 먹을 정도는 아니었다.

첫 번째로 쉬어가기로 정한 곳인 팔란투라 산맥 외곽에 있는 산성 메스포나는 지금 딛고선 니스 벌판만 지나면 도착할 수 있었다.

메스포나에 있는 특수 NPC를 통해 넘어갈 경로로 정한 산들에 대해 알아온 정보가 틀리지 않은 지.

혁신 이후에 그 주변에 어떤 사건사고가 일어나지는 않았는지 정보를 얻고 나서 움직일 계획으로 나아갔다.


가는 길 곳곳에는 제린이 대이동이라고 표현한 거 답게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지나다녀 시선을 끌었다.

밤낮 할 거 없이 이따금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은 복장만 봐서는 이계인인지 지구인인지 구별하기 힘들었다.

그렇다고는 하나 머리스타일과 행동까지 살펴보다보면 지구인이 아니라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판별이 가능했다.


저들이 레벨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대이동을 선택할 수 있었던 이유는 1레벨 때 아무 힘이 없었던 지구인들과 달리 힘이 있었기 때문.


길을 지나는 사람 전부는, 지구인이든 토란인이든 나스탈인이든 같은 세계의 사람을 만난다고 해도 경계를 하면서 각자 갈 길을 갔다. 사냥하던 중에 마주치면 근처에 다가오기만 해도 달아나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마을을 벗어난 하루의 시간 동안 내가 본 시체만 해도 열 네구나 되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대놓고 경계하는 행동들이 다른 곳도 이와 비슷한 형편이라는 추측에 확신을 심어주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그냥 옆을 지나쳐 가려는 행동에도 사람들은 최대한 거리를 벌려 지나가고는 했던 것이다.


물론 나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몬스터를 사냥하다 지나가는 사람을 발견하게 되면은 다른 쪽으로 유인해서 사냥을 이어가고는 했다.

지금 역시도 그랬다.

양처럼 생긴 복슬복슬한 몬스터 `가젭` 세 마리가 전방에서 달려오는 모습과 옆쪽에서 내가 있는 방향으로 다가오는 한 남성을 번갈아 보다가 이전과 같은 결정을 내렸다.


일단 린넬레스의 창과 탈로스의 창을 투창해 확실히 어그로를 끌고는, 창에 다친 가젭 두 마리와 다치지 않은 한 마리를 유인해 벌판을 달렸다. 그러면서 다가오는 사람이 내 행동에 어떤 행동을 취하는지 힐끔 쳐다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바투아도 지금 시국이 혼란스럽다는 것을 알기에, 매번 지나가는 사람의 마력을 체크해 알려주었다.


"저 남자 용왕보다 마력이 더 많아."


이런 사람은 한두 명이 아니라 이제는 놀랍지도 않다. 어제저녁에는 바투아가 마력량을 정확히 체크하지 못할 정도로 능력이 뛰어난 사람도 본적이 있다. 그래도 지금까지 본 사람 중에는 많은 사람보다는 적은 사람이 더 많았다.

이계인들을 보면서 확실하게 하나 깨달은 건, 무공이나 마법을 배웠다면 신체 스텟을 당장 높이기보다는 마력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시간 투자 대비 사냥 효율이나 전투 유지력은 신체 스텟이 마력 스텟을 따라가기 힘들었다.


바투아가 중급정령으로 승급하면서 이 정도까지 강해지지 않았다면 모를까.

무공의 효율이 생각보다 높지 않았다면 또 모를까.

레벨업하면 무조건 마력만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할 만큼 바투아의 마법과 천성비류창의 무공은 뛰어났다.


어느 정도로 뛰어나냐 하면.

솔직히 지금 마력만 받쳐주었다면 신법으로 도망 다니면서 바투아가 마법을 난사하는 단순한 방법으로 하루에 1레벨이 아니라 2레벨도 올릴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아직 레벨이 높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었고 높은 레벨의 사냥터가 아니라 가능한 사냥법이었다. 하지만 마력이 부족해서 쓸 수 없는 방법이기도 했다.

이처럼 안 그래도 마력이 부족한 상황에 혹시 모를 위협에 대비해 마력을 남겨놓다 보니 더 부족하게 느껴졌다.


잠시 멀어져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다 이내 뒤따라오는 세 마리의 가젤을 보며 창집에서 해왕의 창을 꺼내 들었다.

바투아에게만 의지하기에는 앞으로 어떤 변수가 생길지 알 수 없었다. 도움 없이 혼자서 사냥하는 전투경험도 키워놓을 필요성이 있었다.


"내가 도와달라고 할 때까지는 도와주면 안 돼 바투아."

"응."


바투아가 없다는 가정하에 하는 사냥은 다치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한 일. 다치면 몸이 불편한 걸 떠나서 주변에 있는 몬스터나 사람에게 타겟이 될 수도 있어 가장 조심해야 하는 부분이다. 천기환허보라면 충분히 가젭의 공격을 피하면서 반대로 공격을 성공시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천성비류창에 수록된 무공을 처음 보았을 때는 왜 순번이 매겨져 있나 궁금했었는데, 난 배우면서 그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첫 번째인 천범신공의 운기법과 정법停法이라는 중요 혈자리에 마력을 머물게 하는 법을 배워야만 두 번째인 천기환허보를 배우는 게 가능했고 천기환허보를 배워야만 세 번째인 천성비류창의 초식을 응용할 수 있었으며, 앞서 세 가지를 배워야만 천기신행과 회풍무류퇴를 쉽게 배울 수 있게 해놓은 무공이 천성비류창이라는 무공이었다.


높은 등급의 무공이 분명한 천선비류창을 빠르게 습득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준 건 다름 아닌 바투아다.

영상과 글을 보면서 이해하기 힘들었던 천범신공의 운용법을 바투아는 정령융합을 통해 운기하는 것을 도와주었었다. 바투아가 없었다면 아직 천범신공조차 2레벨을 찍지 못했을지 몰랐다. 그 정도로 지구의 인간에게는 생소하고 신기한 게 마력이라는 힘이다.


천기환허보는 하체에 얼마나 많은 혈자리에 정법을, 즉 궁宮을 만드느냐에 따라 그 속도와 행할 수 있는 능력이 달라졌다.


아직 2레벨에 지나지 않아 장황하게 나와 있는 설명대로 신선이 구름을 노닌다는 그런 신묘함은 1도 찾아볼 수 없으나, 정직하게 기본 진퇴로를 밟는 것만으로도 그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졌다. 일반인보다 더 뛰어난 신체능력으로 펼치는 보법이라 더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지금까지 마주친 몬스터 중에는 천기환허보를 따라잡고 공격을 성공시킨 몬스터가 없다는 것만 봐도 확실히 뛰어난 보법인 건 분명했다.


달리던 발을 멈춘 뒤 다가오는 가젤을 향해 해왕의 창을 앞으로 내밀고는 내재된 트라이던트를 활성화시켜본다.

해왕의 창은 창대에 새겨진 멋들어진 문양만 아니면 일반 창과는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창날은 똑같이 하나였다.

그런데 오러 트라이던트를 활성화시키는 순간 해왕의 창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뜻 그대로 삼지창처럼 마력 날 두 개를 생성해내면서 동시에 창대에 새겨진 문양은 은은한 빛을 머금어 존재감을 뽐냈다.

보통 이런 마력을 형상화하는 스킬은 마력소모가 심하다고 알려져 있는 데에 반해 해왕의 창은 심하지 않았다.


바투아는 이 현상을 보며 해왕의 창에 새겨진 문양이 만들어낸 효과 같다고 말했었다.


가젤들이 지척에 이르렀을 때, 난 보법을 활용해 오른쪽 대각선으로 돌아가면서 창을 휘둘러 갔다. 나란히 달리던 가젤 중 오른쪽에 있던 녀석의 목 부분부터 뒷다리 부분까지 긁은 뒤에 이어지는 한 동작처럼 끝에 찔러넣었다. 찔린 가젤이 맥없이 엎어져 달리던 힘 그대로 땅을 굴렀다.


가젤은 박치기와 발길질, 짧지만 채찍처럼 휘두르는 꼬리만 조심하면 되는 몬스터였다. 엎어지면서도 꼬리를 휘두르는 가젤을 피해 계속 돌면서 다른 두 마리의 뒤를 따라 달렸다. 그에 두 마리는 위협을 느끼곤 반대로 돌아 내가 오는 방향으로 머리를 들이밀려 했다. 당연하게도 사족보행을 하는 녀석들의 신체 특성상 제자리에서 도는 것은 빠르지 않았다.

엉거주춤 도는 모습에 넘어진 가젤의 몸을 타고 뛰어올라 한 마리의 가젤을 스쳐 지나가며 등짝을 베어냈다.

바닥에 착지하자마자 들려오는 괴성과 발소리에 황급히 고개를 돌려 소리를 쫓았다.

나머지 한 마리가 다가오는 것을 확인하고 내가 내린 선택은 아직 미숙한 보법보다는 안전하게 앞구르기로 굴러 박치기 공격을 피해내자는 쪽이었다.


상처 입고 흥분하기 시작한 몬스터들은 더 포악하게 달려들어 보지만 마음만 앞선다고 해서 격차를 좁힐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 점이 오히려 더 많은 빈틈을 생기게 해 사냥하는 일을 더 쉽게 만드는 경우가 많았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흥분하면서부터 좁혀진 시야는 어느 순간 파인 땅을 잘못 디뎌 엎어지기도, 계속 머리를 들이밀고 따라오다가 큰 돌멩이를 보지 못하고 밟아 엎어지기도 했다.

방심하지 않는 한, 무리하게 끝내려고 하지 않는 한 이 정도 수준의 몬스터를 처리하는 데는 이제 몇 분 걸리지 않았다.

[경험치+27]


니스 평원은 알려진 대로 총 7종의 몬스터가 분포해 한 번씩 앞을 막아서고는 했다. 방금 사냥한 몬스터 가젤을 포함해 마력을 1~5까지 타고나는 공작과 몬스터 `캐다`, 도롱뇽과 몬스터 `메칼`, 캥거루과 몬스터 `소자` 등 방심하지 않으면 전부 다 혼자 사냥 할 수 있는 녀석들이었다.

몬스터가 크게 위협이 되지 않다 보니 자연스레 길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시선은 더 오래 닿아 머물렀다.

니스 평원 곳곳에서 사냥을 이어가는 많은 사람의 능력은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다른 이계인들의 처지도 다를 것은 없었다.


카타나 같은 비주류 무기로 몬스터를 잔인하게 도륙하는 여성부터 시작해서, 샴쉬르와 비슷한 형태의 무기로 사냥하는 남성, 큰 동작 없이 간결한 주먹질과 발재간으로 몬스터를 때리고 있건만 북이 찢어지는 것 같은 소리를 내게 하는 남성, 마법을 사용해 누구보다 손쉽게 사냥을 이어가는 여성도 보여 많은 이들의 발길을 붙잡았다. 그냥 몸이 무기인 사람과 던지면 뭐든지 무기가 되는 사람도 몇몇 존재해 구경하면서 감탄하는 사람은 종종 있었다.


니스 평원의 끝자락에 가까워질수록 드문드문 보이던 이계인들의 숫자는 빠르게 늘어나 산성 메스포나가 자리한 산맥 팔란투라를 시야 끝자락에 두었을 때는 더는 몬스터를 찾아볼 수 없었다. 수십 명의 사람만이 주변을 돌아다니며 각자의 길을 가거나, 그 사이에서 자리를 잡고 앉아 무언갈 기다리는 사람들 말고는 보이지 않았다.

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아마 몬스터가 리젠되는 장소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예상대로 지나가던 중에 네 명의 사람이 리젠되는 몬스터를 사냥하며,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것을 보게 되었다.


들판에 들리는 소리라고는 신음과 괴성 그리고 몇 마디의 짧은 대화뿐.


분명 메스포나가 가까워질수록 사람의 숫자는 늘어나는데도 신기하게 말소리는 더 줄어들어 긴장감을 자아내게 한다. 먼저 겪은 지구인들이라면 이 분위기를 모를 수가 없다.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곳에서 활동하는 건 당연히 더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어나더 월드에 처음 접속할 때는 무조건 시작 지점을 정해야만 귀환이 가능해 친인척이 같은 지점에서 시작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산성 메스포나는 프로이안 마을처럼 허술한 목책으로 둘려있는 세이프티 존이 아니었다. 성이라는 명칭이 붙은 곳답게 일반 성과 비슷한 구조물의 세이프티 존이었다. 그래도 성안은 성 밖과 달리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은 꽤 많이 보였다. 성격이 소심한 사람이라고 해도 세이프티 존에서 같은 사람끼리 해를 입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8년 전에도 대화를 시도하는 사람은 많았었다.


성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들린 곳은 지도에 표시된 `붉은 곰 보금자리`라는 지구인만 들어갈 수 있는 여관이었다.


*


여관의 이름이 붉은 곰 보금자리라고 지어진 데는 모두 이유가 있었다.


여관의 주인이자 특수 NPC인 남성 퓨레스는 곰을 연상케 하는 큰 덩치의 사내였다. 퓨레스는 내가 주문한 냉국수와 만두를 주방에서 들고나와 바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는 말했다.


[처음 온 손님이라 내 특별히 만든 반죽을 활용해 면을 만들어 보았네. 자네 혹시 마타면이라고 들어보았나?]


수타면 족타면은 들어봤어도 마타면은 처음 들어 보았다. 들어보지 못했다는 짧은 답변에 솥뚜껑만 한 오른손을 들어 올리더니 푸른색 실 빛을 손에서 뽑아내며 말을 잇는 그다.


[마타면은 마력으로 반죽을 한 것이라 마력상승에도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다른 면보다 더 부드럽고 쫄깃쫄깃하다네. 어서 한 번 먹어보게.]


지금까지 만나본 특수 NPC인 제린과 루틴이랑은 다른 말투를 사용해서 잠시 신기하게 쳐다보다 젓가락을 들었다. 가게에 들어가자마자 딱 눈이 마주쳤던 퓨레스는 먼저다가 와 악수를 건하고 자기소개를 했었다.

면은 퓨레스가 말한 대로였다.

쫄깃한 면과 함께 처음 먹어보는 국물의 맛은 특수 NPC가 만들어주는 음식이 당연히 맛있을 거라는 걸 알았음에도 감탄하게 할 정도로 맛이 있었다.


감탄하는 내 모습에 퓨레스는 만족스러운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연스럽게 말을 걸었다.


[궁금한 거 있으면 물어봐도 되네. 보다시피 오늘은 좀 한가하다네.]

그 뒤 대답을 듣기도 전에 옆에 있던 500cc 맥주잔을 들어, 반이나 남은 맥주 전부를 단숨에 들이켰다. 여관의 규모는 제린이 운영하는 여관보다 더 커서 그런지, 제린처럼 다른 NPC에게 도움을 요청해 직원으로 쓰는 게 아닌 따로 상주하는 직원이 두 명이나 존재했다. 직원까지 따로 있는 가게에 손님이 3명밖에 없었으니 낮부터 느긋하게 맥주 한잔의 여유를 즐기던 중인 것 같았다.

[잔이 어디 깨지기라도 했나 몇 모금 마시지도 않았는데 또 맥주가 다 사라졌네. 잠시만 기다리게.]

아무래도 한 잔의 여유가 아니라 여러 잔의 여유인 거 같기도 하다.

이 말과 함께 빈 잔을 들고 주방을 들어갔던 퓨레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맥주를 채워 나와 다시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 퓨레스를 보며 물었다.

"전 팔란투라 산맥을 구룡사, 구곡산, 용천지봉, 사목령, 일월산을 통해 넘어갈 계획입니다. 최근 산성 주변이나 지나가기로 한 곳에 위험한 것이 있는지 아니면 혁신 이전과 바뀐 것이 있는지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위험한 것이라.....]

잠시 뜸 들이던 그는 내 몸 이곳저곳을 훑어보고 나서야 다시 입을 벙긋거리기 시작했다.


[자네가 착용한 장비와 거기 머리 위에 앉은 작은 친구라면 몬스터는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이네만. 위험한 것에 같은 인간도 포함된다면, 위험할 수도 있다고 보네. 최근 메스포나 인근에서 사망하는 인간들을 묻어주라는 퀘스트를 인간들에게 주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몬스터에게 죽은 게 아닌 거로 보이는 시체들이 한두 구가 아니었네. 그런 시체들을 살펴보면 같은 수법으로 죽은 시체가 대부분이더군. 시체에 남겨진 상처 중에는 마력을 능숙하게 다루는 자들이 남긴 상처가 많았으니 자네라 하더라도 조심해야 할 걸세.]


나무가 우거진 산을 넘어가는 일인만큼, 은폐 엄폐가 용이한 지대에서 몬스터를 일일이 사냥하면서 갈 생각은 없었다. 사람은 머리를 무식하게 공격하는 데만 쓰는 몬스터들과는 달랐다. 계획대로 사람이든 몬스터든 피해서 산을 넘어가기로 했다. 퓨레스는 더는 질문하지 않는 내게 산성 인근에서 벌어졌던 큰 싸움 몇 가지를 이야기해주며 관심을 끌었다.


지구인 유저 몇몇이 일부러 뭉쳐 다니면서 이계인들에게 시비를 걸고 화풀이 식으로 다구리를 놓은 이야기와 그들을 응징한 산왕이라 불리는 토란인, 나스탈인들끼리는 두 명의 남녀가 신분을 논하며 수십 명의 사람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내뱉다 맞아 죽은 일, 지구인의 짧은 현대 복장에 성적인 발언을 하던 토란인과 나스탈인들의 팔다리를 한 유명 스트리머 유저가 부러뜨려놓은 일 등.


크고 작은 다툼과 싸움은 다른 세계의 사람들끼리 갑자기 한 곳에서 생활하게 되면 안 생길 수 없는 문제였다. 에덴보다 혼란스러운 곳은 지금 나스탈 세계의 현실과 토란 세계의 현실일 것이다.


저들에게 어나더 월드가 자리를 잡을 때까지는 최대한 교류를 하지 않고 활동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일이 생각대로, 계획대로 되는 법은 없었다.


오후 1시에 산성 메스포나를 나선 뒤 오후 3시가 넘어갈 무렵에 구룡사 인근을 지나던 때에 병장기끼리 부딪치는 소리와 작은 신음에 걸음을 멈추었다.

구룡사 절터에 서식하는 몬스터는 `포파`라는 몬스터로 둥그런 머리에 코끼리 귀, 두 다리만 가진 몬스터였다.

발차기, 박치기, 물어뜯기가 공격패턴의 전부라 이런 병장기 소리가 요란히 울릴 일이 없는 사냥터였다.


소리에 이끌려간 구룡사 안 외곽 공터에는 남녀가 서로에게 칼을 휘두르고 있는 광경이 펼쳐져 혼란스럽게 했다.


둘 다 복장만 보면 지구인은 아니었다.

딱 봐도 토란인 같았다.


붉은 경장을 입은 젊은 여성은 여러 군데 옷이 베여 속살이 적나라하게 보일 정도였고 청색의 무복을 입은 남자 역시 여성과 비슷하게 옷이 베여 너덜너덜해진 모습이었다. 둘은 피를 꽤 흘렸음에도 조금도 물러섬 없이 서로를 죽이고자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뒤늦게 여성의 뒤편에 몸이 앙상하게 마른 남성 한 명이 꼬꾸라져 있는 것을 찾아보게 된 순간.

여성이 나를 발견했는지 다급한 목소리로 도움을 청해왔다.


"도와주세요! 이 남자가 제 남편도 죽이고 저까지 죽이려고 하고 있어요!"


놀란 청색 무복의 남성 역시 급하게 반박하는 말을 내뱉었다.


"속지 마시오! 이 여인은 본인이 사는 세상에서 백여 명이 넘는 사람을 죽인 마녀요!"


뛰어난 무공을 배운 사람들인지 두 사람 다 지금 천기환허보의 수준으로는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 움직임이 빨랐다.


두 사람의 말 중에 누구의 말이 진실인지 거짓인지 모르는 상황에 선뜻 누구를 돕겠다고 나서기는 꺼림칙했다.

둘의 말이 둘 다 진짜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그냥 지나쳐갈까 말까 고민하던 날 일깨워준 건 바투아였다.

머리 위에 앉아있던 바투아가 말했다.

"저 여자 나쁜 사람이 분명해. 몸에 쌓은 마력에 아주 불길한 기운이 뒤섞여있어. 영혼의 기운에도 악이 깃들어 있고. 그러니 저 남자 도와주는 게 좋은 거 같아 용왕."


바투아의 말에 제린이 했던 말이 퍼뜩 떠올랐다. 이제 바투아도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을 구별할 수 있다고 했던 것이 말이다.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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