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한계를 보는 눈
'결함을 볼 수 있다고..?'
운동선수가 자신의 컨디션을 체크하는 일은 기본중에 기본, 거기에 최고조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만의 루틴까지 만들정도니 어느 스포츠를 막론하고
'한계를 보는 눈'은 운동선수에게 가장 필요한 스킬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과거에도 시합을 포기하며 스스로 물러나는 경우가 허다했었던 선덕이 왜 지금이 되어서야 특별미션이 발동한 것일까? 이유는 간단했다.
체력에 한계까지 단 한번도 던져본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 한번 보자'
현재 '한계를 보는 눈'으로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은 바로 자신! 도대체 어느정도 이길래 모든 스탯이 20%나 감소 할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아..이건 좀..'
거울에 비친 선덕의 몸은 말그대로 적신호처럼 붉은 점 투성이었다.
그 모든 통증을 망각시켜주는 엔도르핀의 흐름이 점점 엷어지자,
"으으윽!!!"
까먹었던 원래의 통각들이 되 살아나 선덕의 몸을 사정없이 난타하기 시작했다.
"괜찮아!??"
"아윽!! 긴장이 풀려서 그런가 몸이.."
"안되겠다. 슌스케 넌 왼팔을 난 오른팔을..!!"
-주물주물주물~
무리한 동료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토도가 슌스케와 함께 선덕의 온 몸을 마사지 해주었지만, 어디서 곁눈질로 살짝 본 모양인지 무식한 야구부의 악력은 선덕에게 고문일 뿐이었다.
"ㅎㅈ마.. ㅎ지마..!"
"어? 뭐라고? 너무 좋다고!?"
너무 아파서 제대로 소리도 못 지르는 선덕이 신음을 내자 좋다는 신호로 착각한 토도가 더 열심히 주물러댔다.
"하지마 이 새끼들아!! 으아아악!!"
***
1학년들이 벤치에서 선덕을 케어(?)하고 있는 사이, 오랜만에 등판한 료헤이를 보며 히가시 고등학교 벤치는 그의 무뎌진 실전감각을 이용하기로 했다.
"이거 히가시 고교 1루 주자 리드 폭이 심상치 않거든요? 아웃 카운트 하나만 남은 상황에서 히트 앤 런 작전이 나올 가능성도 고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맞는 말씀입니다. 그치만 테이쿄 배터리는 주자보다는 타자에 더 집중할 생각인가 봅니다."
-스으윽! 투욱!
"스트라이크!"
료헤이가 와인드업 자세를 하자마자 2루로 달리는 주자, 그럼에도 료헤이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아무리 타자와의 승부도 좋지만,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거 아닐까요!? 벌써 2루 주자는 3루로 뛸 생각인 것 같아요!"
"원래 견제구를 잘 안 던지기로 유명한 선수이기도 합니다만은 이건 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후훗! 고맙다. 덕분에 3루까지..!'
-투욱!
"아웃!!!"
단 한번도 주자를 체크하지 않았던 료헤이가 전광석화로 2루에 견제구를 날렸다.
"아!! 전부 페이크 였습니까!!"
"2루 주자의 리드폭이 너무 하기는 했습니다. 아무래도 포수에게 사인을 받은 듯 보이는데 아주 현명한 판단입니다."
-짝짝짝!!
-나이스 견제!
선덕이 남겨놓았던 책임주자를 간단하게 제압하면서 7회초 히가시 고등학교의 공격이 마무리 되었다.
"자! 다들 알다시피 지금 상대 투수의 약점이 다 들어났다. 이번 공격.."
다카무라 주장에 말을 들은 모두가 입을 틀어막았다.
"아..그게 될까요?"
"왜 자신 없어? 1번 타자인 너가 못 하겠다고 하면 이번 작전은 없는 걸로.."
"아아.. 할게요 할게!"
후쿠야가 다급한듯 손을 저으며 불편한 얼굴로 승낙하자 모두가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좋아 그러면 작전대로 진행한다. 가자!!"
-오!!!
"자 7회말 테이쿄의 공격이 시작 되었습니다. 앞선 하위타선에서 아쉽게도 찬스를 날렸었는데요. 이번 공격은 어떨지!"
"아무래도 히가시 고교 마츠시타가 많이 지쳐있는 상태거든요? 슬슬 그의 이퓨스 피칭 스타일에 적응해갈 타이밍이기도 하구요. 지금이 고비입니다.!"
마츠시타 역시 앞선 투구에서 자신의 문제점을 체크해나갔지만, 결국 알아내지 못했다.
'던질때 뭔가 불편하단 말이야..도대체 어디가 문제인거야?'
자신의 컨디션을 체크하면서 허리를 이리저리 돌려봤지만, 선덕의 눈에는 그의 문제점이 바로 보였다.
"전완근, 전완신전근, 전완굴곡근, 이두근, 삼두근 전부 과부하가 걸렸어 더 던지면 팔꿈치 부상이야"
"뭐? 누가 마츠시타가?"
니시무라 코치가 선덕의 혼잣말을 듣고 되묻자 걱정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아직 투구수가 100개도 안 넘었는데.."
그리고 거짓말처럼 초구를 날린 뒤 마츠시타는 선덕의 예언대로 오른 쪽 팔꿈치를 잡고 쓰러졌다.
갑작스러운 투수의 부상 결국 다카무라가 지시했던 무한 파울놀이 작전은 시작도 못해보고 끝이났다.
"마츠시타 선수 설마 부상인가요?!"
"아무래도 그런 것 같습니다. 아.. 마운드에 결국 준타 선수가 올라 옵니다."
오른 팔을 감싸 안고 퇴장하는 팀의 에이스가 걱정도 되지 않는 모양인지 해맑게 웃는 준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선배.."
이를 꽉 깨물고 죽일 듯 노려보는 마츠시타가 공을 건네며 인사했지만, 준타는 싱글벙글 웃으며 작년 마지막 고시엔 8강에서 했던 말을 똑같이 했다.
"올해는 여기까지만 하자"
2학년 마츠시타만 있는 자리가 아니라 코치와 포수까지 다 있는 자리에서 당당하게 시합 포기 선언을 하는 준타의 멱살을 포수가 움켜쥐었다.
"야 너 필요없어 꺼져! 코치님 차라리 와타나베로 던지게 하시죠!"
코치 또한 감독의 선택을 거절하고 싶었지만, 모든 결정권을 쥐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아니였다.
"그만해라 알잖아..."
입술을 깨물고 다들 제 자리로 돌아가게 되자 그 뒤로 약속이라도 한 듯 연습경기처럼 테이쿄의 타선이 폭발했다.
***
"준타 선수의 피칭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요! 실투만 벌써 몇번쨉니까?"
"히가시 고등학교 도대체 뭘 위해서 지금까지 이렇게 열심히 했던겁니까!"
"아..그렇게 팽팽했던 경기가 이번 7회말에서만 7점을 허용하고 맙니다. "
마치 승부조작에라도 가담한 것처럼 노골적인 준타의 실투는 테이쿄 타자들의 공분을 사기에도 충분했고, 결국 참지 못한 다케노조 감독이 상대 벤치까지 직접 항의했다.
"지금 장난 하자는 거야!? 시합이 장난같아!? 당신 같이 무능한 늙은이 때문에 에이스 투수는 팔이 떨어져 나갈때까지 던지다 망가지고, 팀이 무너지는거야!!"
"감독님! 진정하세요. "
다케노조 감독이 직접 히가시 고등학교 벤치로 뛰어와 소란을 피웠지만, 히가시 감독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공수가 교체되어야 하는 시기에 일어난 소란은 심판들에게 전해졌고, 결국 다케노조 감독은 퇴장명령을 받는걸로 일단락 되었다.
"이런 젠장할 저것도 감독이라고 에라이 병신같은 허수아비 새끼야!"
경기장을 벗어날 때까지 욕설을 뱉어내며 쫓겨나는 다케노조 감독을 보며 선덕 또한 울화가 치밀었다. 그리고,
"저기요."
"오~ 안녕 괴물 신인, 지역대표 축하한다."
그 스승에 그 제자라고 선덕 역시 마찬가지로 준타에게 따졌다.
"아직 게임 끝나지 않았는데요."
공격적인 선덕의 눈매에 재밌다는 듯 미소짓는 준타가 선덕을 한 바퀴 돌며 관찰했다.
"내가 끝났다고 하면 끝난거야 걱정마 따로 사례는 안해줘도 되니까 푸하하"
"이유가 뭡니까?"
"이유? 무슨 이유?"
"당신이 고의로 지려는 이유 말입니다!!"
참다 못한 선덕이 준타의 멱살을 쥐자, 뒤늦게 선덕을 발견한 마츠시타가 다급히 말렸다.
"하지마! 준타 선배 잠시 저와.."
"꺼져봐 얘 하는 꼴이 재밌잖아"
깁스를 하고 있는 마츠시타를 거칠게 밀어내는 준타의 돌발 행동에 놀란 선덕이 바닥에 쓰러진 마츠시타를 부축했다.
"이유라.. 간단해 얘! 얘가!! 마음에 안 들었거든~ 근데!"
발로 마츠시타를 걷어 차던 준타가 다시 선덕을 한번 더 응시하고선 돌아섰다.
"너도 마음에 안 들게 생겼다? 크흐흐 다음에 또 보자 1학년 꼬맹이"
***
"료헤이 선수 정말 완벽한 피칭이네요! 마지막 9회초를 남겨두고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는 모습입니다."
료헤이의 사이드암 자세는 정석 그 자체였다.
던질 때 중심이 뜨지 않게 잘 고정한 뒤 하체를 닫고 뒷꿈치를 타자에게 내밀듯이 스트라이드 그리고 이어지는 매끈한 중심이동! 그 끝에는 변화구처럼 휘는
"뱀 직구! 마무리는 뱀직구였습니다!!"
"테이쿄 고등학교! 길고 험난했던 더블헤더의 시련을 극복합니다.!"
"작년 히가시 고등학교와는 대조적으로 힘든 여정이 아닐 수 없었네요!"
-수고하셨습니다!!
마지막 선수 정렬인사까지 선덕을 향해 재수없는 얼굴로 쳐다보던 준타가 떠올라 저절로 인상이 구겨져 바닥에 신경질 적으로 침을 뱉었다.
-에라이 퉤!!
이겨서 당연히 기분이 좋았어야 했지만, 불쾌해도 이렇게 불쾌할 수가 없었다.
'지 까짓 게 뭐라고 함부로..'
"선덕 왜그래? 아까부터 얼굴이 안 좋아 혹시 인터뷰 못해서 그래?"
니시무라 코치는 경기가 끝나고 선덕에게 쇄도하는 기자들의 인터뷰 요청을 하나같이 거절했다.
"어쩔 수 없잖아 감독님 퇴장 당하셨는데, 거기서 한가롭게 인터뷰나 붙잡고 있을수가.."
"음? 뭐라고?"
준타 생각에 머리가 가득찼었던 선덕의 정신이 슌스케 덕분에 돌아왔다.
"인터뷰? 아아.. 그거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니야 늦겠다. 얼른 버스타자!"
***
-다들 오늘도 고생 많았다! 쉽지 않은 더블헤더 씩씩하게 잘 이겨내준 것도 고맙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준 것도 고맙다! 너희들이 만든 승리 마음껏 자축해라!
오늘의 회식장소도 역시 에히매의 얼굴 토도의 스시광이었다.
"저기 선덕아.."
"왜?"
"이것도 먹을래?"
조심스럽게 1인 2피스 밖에 주지 않는 참치 대뱃살을 전부 선덕에 앞으로 찔러넣는 슌스케가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왠지 이유를 듣고 먹어야 할것 같은데..?"
"그게.. 실은 부탁이 있어.."
소심한 성격에 부탁을 직설적으로 하지 못하고, 30분이나 돌려가며 말을 끌어대자 답답했던 선덕이 슌스케의 말을 짤랐다.
"그래서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냐고~!"
"너클볼 그거.. 배..배우고싶어"
우물쭈물 대던 슌스케가 저도 모르게 소리치며 말하자, 토도와 에이시가 선덕을 보며 손 사래를 쳤다.
어딘가 간절한 두 포수들의 눈에 장난을 쳐볼까도 생각했지만, 너무 진지하게 묻는 슌스케에게 그건 실례가 될것 같았다.
"미안 안될 것 같아"
"그..그렇겠지? 아무한테나 필살구를 알려주기가.."
"그게 아니야 지금 내 너클볼은 나도 컨트롤이 미숙해서 포수의 리드를 못 따라가"
선덕에 말에 더 큰 실망을 하게 된 슌스케를 에이시가 토닥였다.
"우리도 창피한 말이지만, 선덕이 던질 수 있는 곳에만 미트를 대고 있는 실정이야,
물론 한 학교에 너클볼 투수가 둘이나 있으면 그거야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너클볼이라는 건 던지는 투수와 포수가 하나되어야 가능하기 때문에 지역 예선 2경기를 남겨논 지금 상황에 당장 써먹기가.."
에이시의 회유에도 슌스케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전 올해가 아닌 내년까지를 보고 말한거에요."
자신의 입지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슌스케는 더 넓게 자신이 활약할 수 있는 무기를 만드려고 했던 것이다.
"좋아 그럼 내일 던지는 법을 알려줄테니까 나머지는 독학으로 한번 파고 들어봐"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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