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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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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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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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1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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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gin again. (3)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5월은 영어로 May다.

봄 그리고 성장의 여신 마이아(Maia)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5월은 신록이 푸르러 생명이 약동하는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등이 있고, 결혼식이 가장 많이 치러지는 달이기도 해 가정의 달이라 한다.

그런 5월 둘째 주 일요일.

가온웨딩 일행이 부평에 위치한 행복예식장으로 향했다.

부평역에서 가까운 행복예식장은 6층으로 된 건물에서 동시에 3쌍의 결혼식을 올릴 수 있도록 모두 3개의 예식홀을 갖추고 있다.

물론 폐백실, 드레스실, 미용실 등도 마련되어 있어 그야말로 결혼식에 관한한 모든 것이 한군데에서 해결이 된다.

이 당시는 동인천의 신신예식장, 주안의 고려예식장, 부평의 행복예식장이 많은 예비부부들이 선호하던 예식장이다.

가온웨딩 멤버들이 건물 앞에 도착하자, 결혼식을 끝내고 나가는 사람들과 새로운 결혼식에 참석하는 하객들로 분주했다.

일행은 그런 하객 사이를 헤쳐 가며 3층으로 올라갔다.

비교적 널찍한 로비에는 12시 타임의 신랑과 양가 부모들이 하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가온웨딩에 예약한 고객은 그 다음 타임인 1시 예식이다.

하재근이 8mm 캠코더를 챙겨 미용실로 향했다.

김준우가 보조로 따라갔다.

류지호는 웨딩촬영을 하기로 예정 된 홀로 들어갔다.


“화려하기는 한데 어쩐지 싼 태가 나네.”


미래의 휘황찬란한 호텔 예식홀과 강남의 웨딩홀을 경험했기에 할 수 있는 평가다.

미간에 깊은 골을 만들고 있는 류지호의 곁으로 황재정이 다가왔다.


“무슨 고민 있어?”

“전체적으로 좀 어두워서.”

“이게 어두워?”

“예식장 입장에서 최대한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조명이라고 생각했을 테지만, 비디오 촬영을 해야 하는 우리 입장에서는 골치가 아파. 원래 예식장마다 조명과 분위기가 다르고, 신랑·신부의 이목구비가 다 달라서 한동안 시행착오 좀 겪을 거 같다.”


디지털 영상에서는 후보정으로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현재는 원판이 곧 편집된 상품의 화질과 색감이다.

물론 마음만 먹으면 높은 퀄리티를 못 뽑아낼 것도 없다.

그렇게 되면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니 하지 않는 것 뿐.

가온웨딩 멤버들은 모두가 간편한 낚시조끼를 입고 있었다.

조끼 등판에 PAN & GAON이란 로고가 떡하니 오바로크 되어있다.

촬영기사들에게 소속감을 심어주고, 홍보효과도 노린 가온웨딩 유니폼이다.

웨딩촬영을 해야 할 신랑·신부의 차례는 세 번째.

결혼식이 다가올수록 류지호와 일행들이 분주해졌다.

신랑·신부도 예복으로 갈아입고,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을 손봤다.

먼저 예식을 마친 가족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홀에 예약 고객의 부모님과 신랑이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류지호가 얼른 카메라를 어깨에 걸치고, 신랑과 부모님에게 다가갔다.

옆에서 황재정이 스케치북에 써진 글을 신랑에게 보여줬다.


- 지금 기분이.

“...떨리네요.”

- 신부님께 한 마디.

“사랑한다. 윤주야. 앞으로 잘 살자.”

- 부모님께 한 마디.

“아버지, 어머니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결혼해서 잘 살게요.”


류지호 본인의 오디오가 물리지 않게 하기 위해 스케치북을 이용했다.

물론 미리 신랑·신부에게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찍을 것이라고 알려줬다.

이어 양가 부모님의 덕담도 카메라에 담았다.

똑같은 방식으로 신부대기실로 들어가 신부도 인터뷰 영상을 찍었다.

이들은 R타입을 계약했다.

따라서 디테일한 인터뷰가 아니라 스케치를 하는 느낌으로 찍었다.

과하게 올린 앞머리, 굵은 웨이브 그리고 과장되고 볼륨감 있는 헤어스타일과 부담스럽게 두꺼운 신부화장.

80년대 전형적인 신부화장이다.

참고로 90년대로 넘어가 스튜디오 연출사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야 신부 헤어·메이크업의 키워드가 ‘내추럴’로 바뀐다.

물론 부분 가발을 이용한 볼륨 있는 헤어스타일이 그때도 강세를 보이기는 하지만.


“어디 방송국에서 나왔나?”


시골에서 온 할아버지가 방송국에서 나왔냐는 소리를 한다.

비디오 촬영을 한다는 건 고가의 비디오 데크가 있다는 말이고, 어느 정도 소득이 있다는 말과 다름없다.

가온웨딩 조끼를 입은 류지호가 캠코더를 어깨에 걸치고 홍길동처럼 이곳저곳에 출몰하자 하객들이 신기해했다.


“우리 아가들 출세한 갑네.”


부럽다는 하객들의 시선을 즐기는 신랑신부 가족들.

그들은 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동선 겹치지 않게 해주세요. 카메라 화각에 들어오지 않게 조심하시고요. 줌 땡길 때 확확 들어가지 마시고요. 예식이 짧으니까 가능하면 카메라 끄지 마시고, 이동할 때도 한 커트라도 찍으려고 노력해 주세요. 틈틈이 인서트도 많이 따 놓으세요. 재정이하고 우찬이는 배터리 충전 확인 잘해. 질문 있어요?”

“없어.”

“나도.”

“나도 마찬가지야.”

“네, 네.”


류지호의 당부에 저마다의 방식으로 대답하는 가온웨딩 멤버들.

벌써 몇 번째 같은 당부의 반복이다.

류지호가 이번 촬영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려주는 대목이다.

이번 촬영에서 어떤 촬영 소스를 얻고, 사람들에게 어떤 인상을 남기는가에 따라 앞으로 웨딩비디오의 향방이 달라진다.

또한 모두가 이번 촬영에서 웨딩비디오의 감을 잡는 다면 이들은 조금 더 자신감을 얻을 것이고, 우왕좌왕 헤매게 된다면 일이 조금 더뎌지게 될 터.


“지호 쟤는 카메라만 잡으면 애가 완전 딴 사람이 되냐?”

“더 심해졌어요. 돈이 걸려 있어 그런가?”

“취미가 아니라 생업이라서 그런가봐.”


하재근과 한수호 두 사람은 조금 긴장한 모양이다.

취미생활이 아니라 돈과 신용이 걸려있는 실전이다.

보다 못한 류지호가 선배들을 격려했다.


“형들,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요.”

“티 났냐?”

“많이 나요. 형들은 학교 행사 많이 찍어 봤잖아요. 그것과 다를 것 없어요.”

“그렇긴 한데... 돈 받고 찍어주는 거라 실수하면 안 되잖아.”

“한번 해보면 알아요. 별거 없어요.”


한수호가 천하태평인 고우찬과 황재정에게 물었다.


“니들은 긴장 안 되냐?”

“우리가 찍는 것도 아닌데요, 뭘.”


고우찬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황재정이 고우찬의 등을 떠밀며 류지호에게 말했다.


“우리는 방해만 될 뿐이야. 우리는 밖에 있을게 비디오촬영을 위해 온 거지 예식을 방해하려고 온 건 아니니까.”

“로비로 나가지 말고, 입구 쪽에서 구경해도 돼.”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예식장의 배치는 극장과 비슷하다.

출입문에서 가장 먼 쪽에 무대가 있고 그 앞으로 하객들의 의자가 줄지어 놓여있다.

그런데 예식장과 극장 무대가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예식의 주인공인 신랑, 신부가 결혼식의 시작부터 끝까지 줄곤 하객을 등지고 서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조연격인 주례가 하객과 마주보고 있다.

서양의 결혼식을 그대로 본 따서 그렇다.

서양에서는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서구권 신랑, 신부는 교회 제단에 계시는 하느님을 향해 서서 엄숙히 서로 사랑하며 살 것을 서약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신랑 신부는 기독교 신자가 아닌데도, 그저 서양식으로 하다 보니 이렇게 묘한 포지션으로 예식을 치른다.

그러니까 예식장 단상 너머에 십자가 걸려있지도 않고, 주례가 성직자도 아닌데, 많은 한국 사람은 종교와 상관없이 이렇게 혼례를 치른다는 것이다.

전통혼례는 다르다.

마당에 멍석을 깔고 한쪽에 병풍을 치는 것으로 식장을 만들고, 혼례가 시작되어 끝날 때까지 신랑과 신부는 마주보고 있다.

앞으로 죽을 때까지 울고 웃을 평생의 동반자의 얼굴을 은근슬쩍 훔쳐보며 반려가 될 상대를 서로의 눈에 가득 담으며 혼례를 치른다.

따라서 두 방식의 웨딩촬영은 조금 달라진다.

실내와 야외라는 차이부터 예식 순서와 배치가 다르기 때문이다.

가온웨딩의 멤버들도 아는 것들이지만, 류지호는 다시 한 번 이런 것들을 설명했다.


“준우야, 틈틈이 사진 찍어두고 기록해. 사회자, 하객들, 양가 부모님, 내가 놓치는 신랑신부 모습. 쓰든 안 쓰든 소스는 많을수록 좋으니까.”


류지호는 김준우에게 스냅사진을 찍으라고 주문하다.


“걱정 마.”


김준우는 자신만 믿으라는 듯 자신 있게 말했다.

주례의 주례사가 계속 이어졌다.


“신랑 이주경군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영재로서....”


주례사와 신랑, 신부에게 집중하고 있는 하객은 양가 부모, 형제 등 아주 가까운 형제들이다.

모처럼 모인 먼 일가친척과 지인들은 주례사에는 관심이 없고, 오랜 만에 만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기 바빴다.

사실 이들은 결혼식이 아니면 좀처럼 서로 만날 기회가 없기도 했다.

경건하고 엄숙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축제처럼 흥겹지도 않은.

판에 박힌 결혼식.

그 가운데 가장 부지런히 움직이는 사람은 비디오를 촬영하는 류지호와 하재근이다.

류지호는 주례 뒤로 가서 카메라에 달려있는 환한 조명을 비추며 신랑 신부를 촬영하다가 이내 다시 돌아 나와 이번에는 양가 부모를 찍었다.

원래 단상에는 주례와 신랑 신부만이 올라가 있어서 식장에 모인 사람들의 시선이 모아져야 하는데, 비디오를 찍는 류지호가 오히려 더 많은 눈길을 받았다.

사람의 눈은 움직이는 물체를 더 잘 인식하고, 밝은 조명을 비추는 데에 시선이 더 잘 가기 때문이다.

신부를 보조하는 이모도 식이 진행되는 동안 여기저기 거리낌 없이 움직이고 있다.

최대한 예식에 방해를 하지 않는 선에서 움직인다고 하지만, 류지호로서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류지호는 틈틈이 하재근과 한수호를 확인했다.


‘처음에는 재미있을 거예요. 하지만 일이 되는 순간 과연 즐길 수 있을지는 장담 못해요.’


둘 모두 학교행사에서 비디오 촬영한 경험이 있다.

단순히 기록용 영상을 촬영하는 것은 두 사람에게 껌을 씹는 것처럼 쉬웠다.

다만 상품이 되는 순간 부담감이 생긴다.


“......”


능숙하게 비디오 촬영을 하는 류지호를 황재정이 기묘한 시선으로 지켜봤다.

황재정은 결혼식 녹화 현장을 지켜보면서 가장 크게 느낀 게 있었다.

그건 쉴 새 없이 자리를 옮겨 다니며 촬영하는 웨딩녹화 시스템이 사람을 엄청 혼란스럽게 한다는 것도, 주변에서 카메라를 들이대며 촬영하는 촬영기사가 굉장히 신경 쓰이는 존재라는 것도 아니다.

촬영기사의 존재가 부자와 사회적 지위를 은연중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카메라를 어깨에 멘 류지호와 하재근이 돌아다니는 것만으로 지루하고 요식행위 같은 결혼식이 뭔가 행사 같은 느낌이 든 달까.

90년대 중반에만 가도 하객 중 누구하나 비디오 촬영기사를 신경 쓰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현재는 달랐다.

마치 텔레비전이 처음 나왔을 때 온 동네 주민들이 모여 함께 시청하던 모습.

현재는 비디오촬영이 그런 식으로 비춰지는 시절이다.


“신랑, 신부 행진이 있겠습니다. 박수로 축복해 주시기 바랍니다.”


어느덧 정해진 식순이 모두 끝이 났다.

이제 신랑과 신부는 결혼행진곡에 맞춰 버진 로드를 걷는다.

버진 로드는 순결을 뜻하는 ‘virgin‘과 길을 뜻하는 ’road‘의 합성어로 결혼식장 중앙통로에 나있는 융단이 깔린 길을 일컫는다.

류지호는 출입문 쪽에 자리를 잡고 풀샷(Full Shot)을 찍고, 하재근이 8mm 캠코더로 15초에서 20초가량 버진 로드를 걸어가는 신랑과 신부의 근접 샷(Medium Shot)들을 찍었다.


‘마음 같아서는 한 번 만 더 걸어달라고 하고 싶지만.....‘


류지호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일생에서 가장 멋진 순간이자 모든 하객들에게 축복을 받는 시간.

이 아름다운 순간이 카메라에 담긴 순간은 겨우 20초가 안 된다.


“......!“


황재정은 착 가라앉은 눈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예식을 지켜봤다.

세상을 보는 삐딱한 시선이 발동 됐다.

왜 저들은 일생에 한 번 뿐인 결혼을 이렇게 밖에 할 수 없는 걸까.

이건 신혼부부를 찍어내는 공장 같지 않은가.

일생의 중대사를 치르는데 겨우 1~2시간을 머물다가 떠나면 끝인 공간.

그런데 부부에게는 이 추억이 죽을 때까지 남는 장소.

문득 황재정은 의문이 들었다.


“결혼식이 그저 요식행위일 뿐일까? 좀 더 뜻 깊고 낭만적인 백년가약이 이루어질 수 있는 장소는 없는 것일까?”


황재정을 머리를 몇 번 흔들어 쓸데없는 생각을 털어냈다.

이제 막 첫 번째 고객의 웨딩비디오를 찍었을 뿐이다.

거창하게 한국의 결혼문화를 선도하겠다는 야심 따위 가져봐야 우물가에서 숭늉 찾는 꼴이다.

이후로도 류지호는 신랑, 신부를 따라다니며 스케치 영상을 찍었다.

폐백 까지 찍고 나서 촬영을 모두 마칠 수 있었다.


“지호야?”

“왜?”

“내가 궁금한 게 생겼는데...아니다. 나중에 말할게.”


패스트 서치로 무사히 녹화된 것까지 확인하고서야 가온웨딩 멤버들이 안심했다.

웨딩촬영의 소문이 퍼졌는지 다른 예식에 참석한 하객들이 홀을 기웃거리기도 하고, 비용이 얼마냐고 물어보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황재정은 일일이 친절하게 대답해줬다.

그들의 손에 명함도 한 장씩 쥐어줬다.

가온웨딩 멤버들은 피로연장에서 갈비탕을 한 그릇씩 깨끗하게 비우고, 사진관으로 철수했다.

기진맥진해서 널브러져 있으면서도 촬영은 잘 된 것 같다고 두런거리는 선배들 사이에서 황재정이 축 늘어진 채 엎드려 있다.

류지호가 말을 걸었다.


“물어볼 거 있다고 하지 않았어?”

“아, 그거?”


이제 기억났다는 듯 황재정이 묘한 표정으로 류지호를 봤다.


“왜? 내 얼굴에 뭐 묻었냐?”

“됐어, 아무것도 아냐.”

“야, 나 편집해야 돼. 궁금해서 집중 못 해. 뭔데?”

“별거 아니었어. 신경 쓰지 마.”

“아까 꽤 진지하던데... 신경이 안 쓰이겠냐?”

“진짜 별거 아니야.”


본인이 별거 아니라는데 계속 해서 추궁할 수도 없고, 때가 되면 말하겠거니, 류지호는 더는 묻지 않고 편집실로 들어갔다.

황재정은 가만히 소파에 늘어져 오늘 예식을 반추했다.

하객의 입장이 아닌 비디오촬영을 하는 업체의 입장에서.


위잉. 딸깍.


편집실의 데크가 돌아가다 멈추는 걸 반복했다.

류지호는 편집 데스크에 앉아 촬영본을 모니터링 하면서 원하는 샷들을 골라 녹화하는 작업을 했다.

VHS 편집의 기본 준비 작업은 간단했다.

촬영본의 원하는 장면들을 인 포인트와 아웃 포인트를 지정하고, 그 부분을 새로운 테이프로 녹화하는 하는 것.


위잉.


테이프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인 점을 잡은 곳에서부터 플레이가 시작된다.


딸깍. 딸깍.


테이프 걸리고 다시 돌아가는 소리들이 정겹게 느껴졌다.

아날로그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성이다.

사실 웨딩 비디오는 OK컷이랄 것이 따로 없다.

스토리가 있는 영상을 찍은 것이 아니고, 기록영상이기 때문에 필요한 샷, 포커스 아웃되거나 노출이 나간 샷을 걸러내면 그것으로 끝이다.

일단 쓸 만한 샷들을 추리고 NG 샷들 중에서도 짧게라도 쓸 수 있는 것들을 골라 가편집본을 완성하는 것이 1차 목표다.

사실 가편집본은 촬영본이 많을수록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어간다.

웨딩비디오의 경우, 길어야 30분 예식을 촬영하기 때문에 무척 수월했다.

류지호는 정말 중요한 부분 혹은 여러 부분에서 다양하게 쓸 수 있는 것은 따로 타임코드로 기록해 두었다.


“으아! 단순 노가다.”


오랜만 하는 작업이라 약간 설레는 마음이 있었던 것도 사실.

그런데 막상 단순작업을 하다 보니 지루한 감도 없지 않았다.


“집중하자. 취미가 아니야. 일이다 일!”


류지호는 지루함을 털어내고 다시 작업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편집 데크 혹은 컨트롤러에는 많은 버튼이 달려있다.

메이커 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인 역할은 비슷하다.

인(In) 점, 아웃(Out) 점 버튼과 조그셔틀을 가장 많이 쓰게 된다.

다이얼 모양의 조그셔틀을 돌려 프레임 단위의 세밀한 모니터링을 할 수 있다.

류지호는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하고, 조그셔틀을 조작했다.


위이잉. 딸깍. 위이잉. 딸깍.


빠르게 돌리고, 되감기도 하고 정지시키기도 했다.

조그셔틀을 탁탁 치기도 하고 누르기고 하고 돌리기도 하면서 분주히 손을 놀렸다.


“크. 이 맛이지.”


조그셔틀을 손끝으로 느끼며 편집을 하는 것.

아날로그 편집은 소위 손맛이 있다.

조그셔틀을 손끝으로 느끼면서 하는 편집과 마우스를 손가락으로 클릭하는 느낌은 다르다.

필름을 스틴백에 걸어 편집하는 손맛은 또 다르다.

아날로그 편집은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끼면서, 손끝의 터치로 마무리 된다.

촬영분에 사운드가 물려 있으면 조그셔틀을 돌릴 때마다 사운드가 같이 감겼다 풀리는 소리가 난다.

노이로제가 걸릴 것처럼 짜증나는 소리다.

그것도 오래 듣다보면 의식하지 않게 된다.

모니터에서는 볼터치 때문인지 아니면 부끄럼 때문인지 볼에 홍조가 핀 신부의 인터뷰 모습이 보였다.

신혼이 아무리 달콤해도 3년이면 그때부터는 가족에 대한 의무와 정으로 살아가는 것이 보통 사람이다.

그때 다시 웨딩 비디오 같은 신혼을 떠올릴 수 있는 영상을 보게 되면 어떻게 될까.

서로의 사랑을 다시금 확인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건 마법이지.”


기록영화가 아니라 아예 영화를 찍으면 가능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50만 원짜리 웨딩비디오 예산으로 그런 마법을 부리는 게 가능할 리가 없다.


일주일이 지났다.


제주도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신혼부부가 판사진관을 방문했다.

류지호는 그들을 위해 편집실에서 웨딩비디오의 일부를 재생시켜 확인을 시켜줬다.

비발디의 사계 중 ‘봄’이 배경음악으로 깔렸다.

때론 생동감 있게.

때론 우아하고 엄숙하게.

전체적으로 결혼식의 분위기가 밝게 느껴졌다.

중간에 삽입한 친구들과 일가친척들의 축전에 신혼부부가 빵 터졌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다 보면, 갑자기 화면의 때깔이 화사해지면서 여주인공이 굉장히 예뻐 보일 때가 있다.

감독이 힘을 주려고 비장의 필터를 장착하거나 보정을 때려 넣은 화면.

지금 신부의 눈앞에 그런 화면이 보였다.

류지호가 후보정을 했다거나 필터를 썼거나 특별히 조명을 친 것은 아니다.

초심자의 행운 같은.

한수호가 찍은 8mm 테이프에 들어있던 보물 같은 샷이었다.

아무생각 없이 촬영했는데, 우연히 역광이 신부에게 닿으면서 소위 ‘뽀샤시’ 하게 잡힌 화면.

자동초점의 캠코더가 노출 계산을 하지 못할 때 어쩌다 얻게 되는 묘한 영상이었다.


“.....!”


신랑은 매우 만족한 눈으로, 신부는 부끄러우면서도 어딘지 뿌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나머지 풀 영상은 두 분이 댁으로 돌아가셔서 오붓하게 감상하세요.”


류지호의 음성이 웨딩비디오에 푹 빠져 있던 신혼부부를 일깨웠다.


“그리고 이건 집안의 어르신 것까지 포함한 테이프입니다.”


류지호가 본판을 제외하고, VHS 테이프 세 개를 내놓았다.


“비디오를 본 소감이 어떠셨어요?”


사인방이 숨을 고르며 신랑신부의 평가를 기다렸다.

친구들이야 당연히 떨리겠지만, 류지호 역시 만만치 않게 긴장됐다.


“정말 좋았어요.”


신부가 만족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사실 기대를 별로 안 했는데, 신기하네요.”


기대를 뛰어넘는 극찬에 평가를 기다리던 친구들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어려보이는 외모에 처음에는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어요. 그런데 막상 식장에서 기사님들을 보니까 촬영하는 폼이 능숙하고 자연스럽더군요.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구나를 그때 알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생이라는 실장과 대학생이라는 촬영기사들의 실력에 의구심을 가지기에 충분했다.

막상 웨딩비디오를 보자 그런 우려는 싹 날려버린 부부다.

겉보기만 어리고 혹시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인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고객이 만족한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인방은 없었다.

류지호만이 자신의 눈높이에 맞지 않아 아쉬워할 뿐.

신혼부부가 잔금을 지불하고 밝은 표정으로 사진관을 떠났다.


“좋을 때다.”


황재정이 노인네 같은 말을 했다.


“다음 촬영은 전통혼례라고 했지?”


김준우가 황재정에게 물었다.


“응, 송도의 가든에서 야외 결혼식 한데.”

“요즘도 옛날식으로 결혼 하는 사람이 있구나.”

“그날 막 비바람 몰아치고 비가 쏟아지면 하객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류지호가 툭하고 질문을 던졌다.


“야! 재수 없는 소리 하지 마!”

“결혼식 깽판 나는 거고, 우리도 비 맞으면서 개고생 해야 돼.”


김준우가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진저리를 쳤다.


[결혼식 날 비가 오면 잘산다더라]


어른들이 하는 말이다.

아마도 비 오는 날 결혼하면, 오고 가는 하객들도 불편하고 결혼하는 당사자들은 속상할 터라 덕담으로 하던 말일 것이다.

팀 레이크...

류지호 본인의 처지와 비슷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영화 주인공 이름이다.

영국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주인공 가족의 남자들은 놀라운 비밀을 가지고 있다.

바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것.

이 영화의 결혼식 장면은 결혼을 하는 예비부부들과 가족들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준다.

영화에서 결혼식 날, 마을의 하늘에는 먹구름이 몰려온다.

관객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결혼식은 망했구나.”


교회에서 벌어지는 결혼식도 관습을 따르지 않는다.

주인공은 신부 입장곡으로 지미 폰타나의 ‘il mondo(한없는 세계)’를 튼다.

시아버지라는 어른은 이 음악에 맞춰 슬쩍 춤까지 춘다.

자유분방하고 흥겨운 결혼식 분위기다.

하객들이 야외에 마련된 피로연장으로 향한다.

난데없이 비가 쏟아지고, 바람이 심하게 불어 식탁은 넘어지고, 우산이 접히고, 치마는 뒤집어 지고,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헌데 주인공과 친구들은 심지어 하객들까지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지 않는다.

오히려 깔깔대고 웃으면서 그 상황을 즐긴다.

만약 이런 에피소드가 실제 현실에 벌어지고, 하객들의 반응도 똑같다면?

이 날의 결혼식은 부부뿐만 아니라 참석한 하객들의 뇌리에 평생 남을 것이다.

그들이 이런 난장판조차 충분히 즐거웠다면 좋은 추억으로 기억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결혼문화에서도 과연 그럴까.


“얘들아, 결혼식 날 비가오고 폭풍우가 몰아쳐도 우리는 웃으면 일하자. 남들은 다 짜증내고 성을 내더라도 우리만은 그렇게 하지 말자.”


결혼식이라는 축제 날, 쏟아지는 비바람을 맞으며 짜증을 낼지 슬퍼할지 아니면 그것을 즐길지도 결국 본인의 선택이다.

그게 인생이라고 다를까.

<어바웃 타임> 속의 주인공과 류지호처럼 인생은 몇 번을 반복하든 몇 번을 다시 살든지 복이 될지 불행이 될지는 그 순간 자신의 선택에 달렸다.


“그날 우비 준비할까?”


잡무를 책임지는 고우찬이 친구들에게 진지하게 물었다.


“시끄러워. 부정 타!”

“아주 비 오라고 고사를 지내라!”

“괜찮아. 일기예보에 맑다고 했어.”

“이 새끼들이... 언제는 미리미리 준비하라고 했다가 또 가만 놔두라고 했다가. 확 다 때려치운다?”


하하하.


고우찬의 협박성 투정에 사인방이 시원하게 웃어재꼈다.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힘들 때 웃는 자가 일류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웃으면 복이 온다.


작가의말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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