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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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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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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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성을 다 하겠슴다! (3)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지이잉.


프린터에서 깔끔하게 작성된 문서를 토해냈다.


“뭐야 이건?”


황재정이 인쇄된 문서를 한 장 집어 눈으로 훑었다.


“소주방?”

“새로운 사업 아이템.”


갑작스런 류지호의 말에 친구들이 눈을 크게 떴다.


“서울에 다녀왔다더니, 또 뭔가 있구나?”


김준우가 문서를 보며 물었다.


“지난주에 아네모네 아줌마를 만나고 왔어.”

“의리 없게 혼자 술 마시러 갔냐?”

“내가 아줌마하고 이야기를 좀 나눠봤어.”


친구들은 아네모네 아줌마와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까 궁금해 하기 시작했다.


“내가 예전에 레몬소주 알려준 건 다들 기억하지? 그게 통하는 모양이야. 그걸 좀 발전시켜보려고.”


류지호는 친구들에게 아네모네를 소주방으로 변신시켜 궁극적으로 소규모 소주방 프랜차이즈로 나갈 계획을 설명했다.

진지하게 듣고 있던 황재정이 입을 열었다.


“로바다야끼 짝퉁이냐?”

“아류지. 일종의 하위 버전.”

“상류층 소비문화에 대한 중산층의 모방욕구를 자극하는... 뭐 그런 거냐?”

“대학생이나 용돈이 넉넉한 젊은 직장인들은 무엇을 먹느냐보다 어디서 먹느냐에 더 신경을 쓰잖아. 강남의 비싼 술집에서 마시는 걸 약간 저렴한 가격으로 즐길 수 있게 하는 거지.”

“오~ 쫌 그럴듯한데?“


김준우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미국부자가 주식 사줬다며? 왜 돈에 집착해하냐?”


김준우의 말을 듣고 류지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돈에 집착한다고?”

“그럼 아니야? 공부에 집중하면 서울대 갈 수 있잖아.”


류지호는 가만히 김준우의 말을 곱씹었다.

부모님도 그렇고 친구들도 그렇고.

돈을 따라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돈을 벌고 싶어 하는 건 잘못도 아니고, 죄를 짓는 것도 아니다.

돈을 버는 방법이 문제지, 돈은 많을수록 좋다.

류지호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친구들에게 말했다.


“애들아, 난 말이야. 앞으로 영화를 할 거야.”

“뭘 새삼스럽게....”


황재정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새삼스러운 거냐?”

“틈만 나면 공책에 시나리오 끼적거리고, 영화도 많이 보고, 토익하고 토플 시험 준비도 하고 있는 주제에. 미국으로 영화 배우러 갈 거 아니었어?”

“.....그랬냐?”


류지호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검지로 볼을 긁었다.

눈치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고우찬을 빼고, 두 친구는 어느 정도 예상을 했다.

김준우가 입을 열었다.


“근데 지호야.”

“응?”

“네 꿈이 방송국 PD가 아니고 영화감독이었어?“

“영화를 하기 위해 다시 태어난 몸이시다.”

“헛소리 하지 말고. 그거 해서 밥 먹고 살 수 있냐? 돈도 쥐꼬리만큼 주고, 일은 엄청 힘들다던데?”

“그래서 남들 고등학교 다닐 때 이렇게 돈 벌고 있잖아.”

“결혼비디오로 돈 벌어서 영화하게?”

“영화산업은 돈이 많이 들어.”

“영화감독은 영화사에서 돈 받고 영화 찍어주는 거 아냐?”

“제작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지.”

“영화는 남의 돈으로 찍는 거 아니었냐? 한두 푼 드는 것도 아니고 누가 자기 돈 가지고 영화 찍냐?”


황재정이 정곡을 찔렀다.


“할리우드의 스튜디오 시스템이라고 있어.”

“겨우 비디오 찍어서 30만원 버는 주제에 너무 멀리 가는 거 아냐?”


황재정이 단박에 현실을 지적했다.

그는 지독하게 발을 땅바닥에 붙이고 있다.

희망찬 미래를 꿈꾸기에 황재정은 매사 비관적이다.

김준우가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재정이는 넌 가만히 좀 있어봐. 그래서?”

“한두 푼 가지고는 어림도 없다는 거야. 그러니까 돈을 벌 수 있는 건 뭐든지 하려고. 물론 법을 어긴다던가, 인성이 영 아닌 사람과 함께 하지는 않겠지만.”

“소주방이라는 게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거야? 술집해서 벌면 얼마나 번다고.”

“당장은 웨딩비디오처럼 크게 수익이 들어오지는 않을 거야. 하지만 일이년이 지나고, 프랜차이즈로 나가면 제법 수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

“웨딩비디오 하기도 벅찰 텐데....”


김준우가 우려를 드러냈다.


“내가 하겠다는 게 아냐. 난 컨설팅만 해주고 빠질 거야.”


류지호의 말에 황재정이 궁금한 점을 물었다.


“너는 창업만 도와주고, 이후에는 경영자문만 해준다는 거지?”

“거창하게 경영자문 씩이나....”

“소주방이라는 게 카페나 일식집 같이 깨끗한 분위기의 주점이고, 고급안주를 과일소주 같은 도수가 낮은 술하고 곁들여서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그런 컨셉인거지?”

“응.”

“자세하게 설명해봐.”


류지호는 황재정에게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소주방에 대해 설명했다.

가만히 설명을 듣던 황재정이 출력된 사업계획서를 챙겼다.


“확신해?”

“세상일에 백퍼센트가 어디 있겠어.”

“그럼 성공 가능성은?”

“먹는장사는 웬만해서 망하지 않아.”


90년대까지는 대체로 그랬다.

외환위기 전까지 대한민국의 경기는 나쁘지 않았다.

88올림픽을 기점으로 소득이 늘어나자 국민들의 소비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제조업 위주로 돌아가던 경제가 서비스업으로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20~30대 젊은층에서 고급문화와 서구적인 생활양식의 욕구가 마구 분출하기 시작하는 것도 이 즈음이다.


“아네모네 갈 때, 나도 함께 가자.”

“넌 왜?”

“바늘 가는 데 실 가고 바람 가는 데 구름 가는 거 아니겠어.”

“너와 내가? 언제부터?”

“시끄럽고! 암튼 날짜 잡아.”


혼자 조용히 다녀오려던 계획은 황재정의 개입으로 변경되었다.

사인방 전부가 따라나섰다.


❉ ❉ ❉


“소주방은 카페나 일식집 같이 깨끗한 분위기에 일반 주점의 메뉴를 결합시킨 신종 주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요 고객층은 대학생과 20대에서 30대중반까지고, 주점에 비해 여성들끼리 오는 경우가 많을 거라고 예상 됩니다. 분위기도 일반 주점처럼 시끌벅적하지 않고 조용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가이바시라 대합구이 같은 로바다야키 메뉴와 두부김치 도토리묵 등 주점의 메뉴를 다 팔고, 가격은 로바다야키의 60~70%선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대학가 주점보다는 조금 비쌀 겁니다.”


아네모네 술집에서 류지호가 채연지를 비롯해 장문식과 똘마니 하나, 사인방을 앞에 두고 소주방에 대해 브리핑했다.

똘마니는 지난 번 집 근처에서 류지호에게 기습을 당했던 은테안경의 사내다.

이름은 강현도.

나름 대학까지 졸업한 먹물 깨나 든 조폭이다.


“주류는 간판상품인 레몬소주 사과소주 체리소주 등 소주칵테일이 되겠고, 한 주전자를 3천 원 선에서 팔면 될 것 같은데, 그건 사장님이 더 잘 아실 테니 알아서 판단하시면 됩니다. 병맥주는 카페 가격과 비슷하게 잡으면 될 겁니다. 베리나인 골드, 삼바25, 런던 드라이진, 캡틴 큐, 나폴레온도 팔면 좋을 것 같긴 한데, 직장인이 아닌 대학생들에게는 조금 부담스러울지도 모릅니다. 그건 나중에 프랜차이즈가 돼서 신포동이나 부평으로 진출하면 생각해 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강현도가 장문식에게 바짝 다가서서 수군댔다.


“쟤 혹시 서울대 다닙니까?”

“얼마 전 검정고시 땄다더라.”

“고삐리 맞습니까? 한 삼년 꿇었습니까?”

“아니라니까.”

“무슨 고삐리가 로바다야키 메뉴를 다 알고, 국산 양주를 꿰고 있습니까? 그리고 신종 주점 사업기획까지 한답니까?”

“날라리였으니까 양주도 마셔봤겠지. 원래 똑똑한 놈이래. 신포고에서 전교에서 놀았다고 하더라.”


류지호가 냉수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한마디로 분위기를 많이 가리는 젊은이들의 취향과 빈약한 호주머니 사정을 적절하게 결합시킨 형태라 할 수 있습니다. 과일소주는 주스, 토닉워터 등 대여섯 가지의 첨가물을 넣어 소주 특유의 쓴 맛을 희석시키고, 알코올농도를 10%선으로 떨어뜨린 한국형 칵테일입니다. 이런 희석된 소주는 이미 팔아보셔서 아시겠지만 여성 손님들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서 다방에서 만나 저녁 먹고 다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술 마시러 가는 과정을 소주방이라는 한자리에서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대학생이나 젊은 샐러리맨들에게 경제적일 것이라 예상합니다.”


본래 소주방은 대략 94년도 3월부터 유행한다.

서울의 신촌에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한 소주방은 다음 해에는 다른 대학가나 동숭동, 압구정동 등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곳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급속히 확산된다.

한 때 Y대 앞의 경우 어림잡아 30~40곳의 소주방이 영업을 하기도 한다.


펑!


맥주병 따는 소리가 들려왔다.

실내의 모든 시선이 소리가 들린 곳으로 향했다.

고우찬이 맥주를 컵에 따르고 있었다.


“분위기 파악 쫌! 우찬아~”

“지호 목이 칼칼할까봐..... 너도 한 잔 줘?”


고우찬이 맥주가 가득 담긴 컵을 들어 보이며 황재정에게 말했다.


“대갈빡, 맥주 좀 테이블에 깔아봐라.”


장문식이 강현도에게 명령했다.


후다닥.


강현도가 주방으로 달려갔다.

사업설명회에서 회식으로 돌변하는 분위기다.

류지호는 내버려뒀다.

자신이 해줄 이야기는 얼추 다 해줬기 때문이다.

주방으로 들어갔던 강현도가 맥주와 마른안주를 챙겨왔다.

잠시 번잡스러운 분위기가 가라앉기를 기다리던 류지호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음악도 깐소네 같은 것 말고 대학생들이 듣고 싶은 걸로 바꿔 보세요. 가요보다 팝을 트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여성 손님이 주로 찾는 초저녁 시간에 뮤직비디오도 틀고요. 신포동 칼집에서 비디오 트는 거 아세요?”


분위기가 술자리로 변질되자, 류지호의 말투도 부드러워졌다.


“칼집?”

“신포동 골목에 칼국수 파는 음식점이 모여 있는데, 거기는 하루 종일 비디오를 틀어줘요.”

“그럼 나도 비디오를 틀어야 할까?”

“영화 말고, 뮤직비디오를 틀어야죠.”

“......?”

“아직 MTV를 틀어주는 방송이 없을 거예요.”


미국의 MTV는 1995년부터 한국 케이블 방송 M채널에서 하루 3시간씩 방송을 시작한다.

아직 먼 이야기다.


“청계천에서 뮤직비디오 테이프를 구할 수 있어요. 아니면 심지 같은 음악감상실에 문의해 봐도 되고요. 그건 저기 부장님이 쉽게 구해올 수 있을 겁니다. 실내도 모던하고 깔끔한 인테리어로 바꾸고, 한쪽에서 외국 뮤직비디오를 틀어주는 거죠. 올해 88올림픽이 성공적으로 끝이 나서 외국문화에 목말라 있던 젊은층의 욕구가 터져 나와요. 현 대통령은 그런 요구를 일정부분 들어줄 거고요.”


잠시 말을 끊은 류지호가 맥주를 한 모금 마셨다.

눈치를 보던 고우찬도 자신의 앞에 놓인 맥주를 마셨다.


“일단 아네모네부터 확 바꿔보죠.”

“어떻게?”

“혹시 인테리어 바꿀 자금이 있을까요?”

“싹 갈아엎게?”

“나중에 제가 잡지 몇 권 가져와 볼게요. 그것 보면서 함께 고민 해봐요.”

“알겠어.”

“사장님, 혹시 서울에 있는 호텔 레스토랑 가보셨어요?“


채연지가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줄 알았다.

지난 대화로 류지호는 많은 걸 유추할 수 있었다.

채연지의 남편이라는 사람이 건달세계에서도 꽤 잘나갔던 인물임을 알 수 있었다.

이 당시 강남에서 잘 나가는 일부 조폭들을 빼고, 일반 조폭들은 정말 가난했다.

조폭은 외제차를 몰고 다닌다?

다 거짓말이다.

가장 비싼 국산중형차 각 그랜저를 몰고 다니는 조폭조차 보증금 500만원, 월세 20만 원짜리에서 산다.

그것도 여러 명이 합숙을 하는 형태다.

조폭 생활이란 것이 돈은 쥐뿔도 없으면서, 씀씀이만 크다.

채연지가 운영했던 룸싸롱은 한때 남동공단의 어지간한 중소기업 1년 매출에 육박하는 수입을 올렸다고 한다.

많은 부분 외상이었지만.


“어디 가봤어요?”

“서라벌, 라마다, 로타 정도?”


88올림픽 전까지 서울에는 고급객실이 턱없이 부족했다.

때문에 강남을 중심으로 스위스그랜드, 라마다 르네상스, 로타 등 많은 호텔들이 들어섰다.

그 전까지는 강북의 서라벌이나 워커리지 같은 호텔이 유명했다.


“조명이 은은한 유럽스타일의 아늑하게 꾸며진 곳도 있지만, 밝고 조금 가벼워 보이는 모던한 느낌이 드는 곳도 있어요. 호텔까지 안가더라도 월미도나 신포동에 젊은 사람들 가는 카페도 그런 분위기를 내는 곳이 몇 곳 있고요.”


장문식이 강현도가 따라주는 술을 받아 마시며 물었다.


“대갈빡, 넌 어떻게 생각 하냐?“

“허무맹랑한 거 같기도 하고, 일리가 있기도 하고 그러네요.”

“이 새끼야, 고삐리도 저렇게 청산유수로 아주 깔끔하게 술술 이야기 하는데, 명문대 나왔다는 놈이 말하는 꼬라지가 뭐 그리 싱거워?”

“전 이과라서 사업이나 경영 이런 건 모릅니다.”

“그럼 대학은 어떻게 붙었냐? 컨닝 했냐?”

“그때는 문과과목은 죽어라 외웠죠. 지금은 다 까먹었지만.”


쓸데없는 대화로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이다.

잠시 두 사람의 만담에게 모였던 시선이 다시 류지호에게 향했다.


“안주도 바꿔야 될 거에요. 얼핏 화려해 보이는 종합선물 세트보다 몇 가지로 특화를 시켜보세요. 카나페와 김치찌개는 어울리지 않잖아요. 메뉴판도 칼라로 바꾸고 사진도 넣고요. 여자는 과일소주, 남자는 오이소주. 그렇게 밀면 좋을 것 같아요.”

“거, 자슥이... 똑 부러지네. 엄청 똑똑해.”


강현도가 혀를 내둘렀다.

정확히 이야기 하면 똑똑한 것이 아니라 미래를 알고 있는 거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건 화장실이에요.”


88올림픽을 계기로 공중화장실이 많이 생겼다.

하지만 여전히 질서의식이 떨어지고 관리가 잘되지 않아 위생상 문제가 많았다.

장문식이 류지호의 빈 컵에 맥주를 따라주며 물었다.


“넌 그런 거 다 어떻게 생각한 거냐?”

“신문배달하면서 매일 신문 한 부를 꼬박꼬박 읽기 시작했습니다. 영문잡지도 구해서 보고 있고.”

“왜 형수님이 난놈이라고 칭찬했는지 이제 알겠네..... 자식이, 비명횡사만 하지 않으면 나중에 뭐가 되도 되겠어.”


장문식이 맥주를 홀짝거리며 중얼거렸다.


“제 이야기는 여기까지. 프랜차이즈 창업은 그때 남부경찰서에 저와 우찬이 도움 준 변호사하고 상의해 보세요. 브랜드 상표권하고 소주칵테일의 특허 같은 부분은 저도 잘 몰라요.”


설명을 마친 류지호가 맥주를 꿀꺽꿀꺽 시원하게 들이켰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채연지가 장문식을 향해 입을 뗐다.


“장 부장.“


채연지의 얼굴이 달라졌다.

살짝 올랐던 취기는 어디로 갔는지 순식간에 증발했다.


“예, 형수님.”

“희정이 가게로 동생들 모이라고 해.”


낮게 깔리는 채연지의 목소리.

그녀는 마치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한 것 같았다.


“마담 누님들이요?”

“한 명도 빠짐없이.”

“줄리아 누님은 좀 힘들 텐데 말이죠.”


갑작스런 결정에 장문식은 당황했다.


“암 진단 받았다고 당장 죽는 것도 아니잖아.”

“대갈빡. 형수님 말씀 들었지?”


벌떡.


강현도가 몸을 일으켜 채연지에게 허리를 깊숙이 숙이고 몸을 돌렸다.

이내 아네모네를 빠져나갔다.

잠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야, 일루 와 봐라. 형이 술 한 잔 따라 주께.”


류지호가 장문석의 테이블로 걸어가 맞은편에 앉아 컵을 내밀었다.


“앞으로 형이라고 불러.”

“부장님, 저 명함만 실장으로 팠지 실질적으로 사장입니다.”

“그래서 뭐? 형아우 하기 싫어?”

“예.”

“내가 안 무섭냐?”

“진짜 건달 맞습니까? 살벌했다가 능글맞았다가 무슨 건달이 종잡을 수가 없어요?”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 시켜줘?”


장문식이 갑자기 웃통을 벗어 재꼈다.

배와 옆구리 쪽에 상처가 보였다.


“봐. 이거!”

“맹장 수술 자국 아닙니까?”

“잘 봐봐. 여기 배에 난 상처 이건 칼로 그은 거고... 칼빵은 이렇게 작아. 가까이 와서 봐봐.”


장문식이 상처를 손가락으로 콕 찍어 보이며 말했다.


“건달하고 양아치하고 차이가 뭔 줄 아냐?”


고우찬이 불쑥 대화에 끼어들었다.


“뭔데요?”

"건달은 사람을 딱 죽지 않게 칼을 쓰는 방법도 가르치지만, 양아치는 그렇지 않아. 조폭들이 실제 칼부림 나는 사건 일으킬 때 제대로 싸우면 사람 안 죽어. 목이나 심장 비슷한 부위에 칼빵 놓으면 나중에 재판 받을 때 살인미수가 바로 붙거든. 우리가 그걸 모르지 않는데 양아치처럼 회칼을 막 쑤시지 않지. 그래서 대부분 허벅지, 심하면 아킬레스건 자르는 거야. 조직 없는 양아치는 그런 게 없기 때문에 더 위험해.“


고우찬이 ‘그렇구나‘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황재정이 고우찬의 등짝을 손바닥으로 치며 말했다.


“고개 끄덕이지 마! 저런 거 배워서 뭐 하게!”


류지호가 뜬금없이 걸 물었다.


“혹시 검찰이나 경찰에 폭력조직원으로 관리대상에 들어가 있습니까?”

“그건 왜?“

“혹시 삼청교육대 갔다 왔습니까?”

“안 갔다.”

“그것과 비슷한 일이 벌어질 겁니다.”

“뭔 개소리야?”

“혹시 슬롯머신 도박장 합니까?”

“안 해.”

“주로 하는 사업이 뭡니까?”

“그건 알아서 뭐하게.”

“말하기 싫으면 관두세요.”

“뭐 땜에 그러는데?”


류지호는 장문식을 무시하고, 자신의 빈 컵에 맥주를 따랐다.


“궁금해 뒈질 거 같잖아. 뭔데? 왜? 협조 좀 해라.”

“지금 그 분위기가 협박이지 협조요청입니까?”

“네가 잘 몰라서 그러는가 본데. 이 형 아주 무서운 사람이야.”

“그런 거로 보이긴 합니다.”

“공손해라. 혼나기 전에.”


장문식은 겉으로는 위협하는 것처럼 말을 하고 있다.

자신에게 겁먹지 않고, 꼬박꼬박 말대답을 한다.

어린 녀석이 제법 배짱이 두둑하니 귀엽게 느껴졌다.

류지호와 대화하는 것이 재미가 있었다.


“알았어, 새꺄. 연예 사업한다. 여자장사 말고, 연예인 데리고 하는 사업. 무도장 영업부장도 겸하면서. 됐냐?”


1970~90년대에는 조폭과 연예인 관계가 밀접했다.

매스미디어가 발달이 안 되어 있기 때문에 연예인의 가장 큰 수입이 밤무대 출연이었다.

당연히 조폭이 관련 이권을 쥐고 흔들었다.

연예계와 공생관계가 생길 수밖에.

때문에 연예인 매니저들 중 주먹 출신이 많았다.

그러나 2000년대로 넘어가면 조폭과 연예인의 관계가 달라진다.

연예기획자 중 조폭 출신이 오래 남아있긴 하다.

다만 조폭이어서가 아니라 그 일을 잘 하다보니까 남아있게 된다.

2000년대 중반에만 가도 조폭이 연예기획사 하면 망하는 것은 거의 확정적이다.

주먹구구식이고, 강압적인 방법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환경이 조성되기 때문이다.


“곧 치안본부에서 5대 사회악의 특별단속을 실시할 거랍니다. 대검찰청에 민생치안문제를 전담하는 강력부를 신설할거고요. 인신매매범이나 마약사범이 주요 대상이지만 조폭도 무조건 잡아들일 겁니다. 하이라이트는 아마 대통령의 범죄와의 전쟁 선포가 될 겁니다.”

“지금도 검찰이나 경찰은 우릴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데? 뭘 새삼스럽게....”

“사이즈가 달라요 사이즈가. 대통령이 직접 TV에 나와 범죄자와 폭력에 대한 전쟁을 선포할 겁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박통도 그랬고, 전통도 그랬습니다. 지금이 민주정부입니까? 군부독재정권하고 다를 게 없어요. 뭔가 자신들에게 불리한 사고가 나면 뭐로 덮겠습니까. 연예인 대마초 피운 거요? 그걸로 못 덮으면요. 제일 만만한 게 조폭 때려잡고, 치안이 안정됐다고 선전하는 겁니다. 검찰과 경찰은 실적 쌓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니까 눈에 불을 켜고 평소보다 더욱 열심히 검거하게 되고. 심지어 만만하고 얼빵한 사람들은 멋도 모르고 범죄자로 낙인 찍혀 감옥 가고. 암튼 험한 꼴 당하지 않으려면 빨리 합법적인 사업으로 갈아타세요. 이미 관리대상이라면 소용없겠지만.”

“연예인들 데리고 하는 사업도 합법적인데?”

“당장 부장님이 밤무대 가수들하고 쓴 계약서 들고 경찰서 한 번 가볼까요? 경찰이 뭐라고 하나? 그리고 조폭들 주수입원이 밤무대 이권이라는 걸 모르는 검경이 어디 있습니까? 대통령이 나서면 검찰하고 경찰에 뒷배가 든든해도 소용없습니다. 그 사람들이 제일 먼저 부장님 식구들 죄다 팔찌 채울 겁니다.”

“무슨 사업을 해야 되는데?”

“저야 모르죠. 학교 가서 나라에서 주는 밥 먹기 싫으면 양지로 나오는 게 좋을 겁니다.”


말을 마친 류지호가 친구들의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류지호는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조폭 사업까지 컨설팅 해야 되냐?’


조폭이나 사업가나 철저하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단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방식이 다를 뿐이다.

류지호가 앞으로 영화사업을 해나가면서 명예로운 일만 하게 될까.

천만에 말씀이다.

엔터테인먼트 쪽은 2000년대 전문분야로 자리 잡기 까지 온갖 잡놈들이 판치던 분야다.

물론 그들과 엮이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충무로에서 일을 하다보면 꽤 높은 확률로 잡놈들과 엮일 수밖에 없다.

대신 더러운 일을 처리해줄 손이 필요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몰랐다.

류지호는 장문식과의 관계를 잠정적으로 설정했다.

신효정과 마찬가지로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관계.

물론 조폭세계에서 발을 뺀다는 전제가 붙지만.


“잠깐 저 좀 봐요.”

“또 무슨 선무당 놀이하려고?”


류지호가 장문식을 주방으로 이끌었다.


“혹시 개인적으로 잘 아는 흥신소 있습니까?”

“누구 후다 딸 일 있냐?”

“저 따라 다니는 경호원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알아보고 싶습니다.”


현재는 전문 경호업체가 있는 시대가 아니다.

신효정이 붙여준 경호원이 군에서 사고를 쳤다거나 정신적인 문제는 없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흥신소까지 갈 필요 없어. 이 형 선에서 알아봐 줄게.”

“경력 같은 건 알아볼 필요 없습니다. CSR(전투 스트레스 반응)나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는 없는지. 도박이나 마약에 빠져있지는 않은지. 거액의 빚을 지고 있는지. 그 같은 것들 위주로 알아봐 주세요. 조사비는 충분히 챙겨줄게요.”

“씨에스 뭐? 피티 뭐시기는 또 뭐냐?”

“아까 나간 대갈빡이란 사람이 무슨 말인지 알겁니다.”

“뒤통수 칠까봐 그래?”

“부장님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등을 맞길 수 있습니까?”

“그런 거냐?”

“가족들도 경호원들이 붙어있습니다."

"알았다. 그 치들 배꼽에 낀 떼까지 탈탈 후벼 파 줄게.”

“더럽게... 말 좀 이쁘게 하세요!”


장문식이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줬다.

대략적인 사업 브리핑 자리를 마친 류지호는 집 근처 공중전화에서 신효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장문식이란 사람과 그가 속한 조직에 대해 알아봐 주세요.”

- 조폭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압니다. 사람의 인연이란 것이 어떻게 엮기고 풀어질지 누가 알겠습니까. 사전에 대비할 수밖에.”

- ......

“자꾸 어려운 부탁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 아니에요. 인천지검에 근무하는 연수원 동기들 통하면 금방 알아볼 수 있어요.

“감사합니다.”


장문식에게 경호원에 대해 알아봐달라고 했던 것처럼 신효정에게는 장문식과 그가 속한 조직에 대해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만약 조금이라도 꺼려지는 것이 있다면 그들과의 관계를 끊어버릴 작정이다.

홍 관장에게 부탁한다면 훨씬 믿을만한 사람을 소개시켜 줄 터.

류지호로서는 굳이 찜찜함을 떠안고 갈 이유가 없었다.


작가의말

즐겁고 행복한 하루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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