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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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뤼포
작품등록일 :
2021.12.19 20:39
최근연재일 :
2024.09.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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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2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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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충성을 다 하겠슴다! (1)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지명, 상호, 단체, 사건 등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되고 창조된 허구입니다.




DUMMY

단풍 옷을 입었던 나무들이 낙엽을 떨어뜨리고 있다.

가을도 막바지다.

검정색 그랜저 한 대가 강원도 원주 시내로 접어들었다.

블랙 정장에 흰색 폴라티를 받쳐 입은 배바지 차림의 사내가 운전을 하고 있다.

깍두기 헤어스타일로 봐서 누가 봐도 조폭이다.

조수석에는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사내가 땅콩을 까서 입안에 털어 넣고 있다.

뿔테 안경을 쓰고 있지만, 날카로운 눈매까지 가릴 순 없다.

사내의 이름은 장문식.

인천 지역에서는 꽤나 유명한 건달이다.

뒷좌석에는 아네모네 사장 채연지가 앉아있다.

곱게 차려입고 화장까지 했다.

마치 부잣집 사모님이 나들이를 가는 모습 같다.


부우웅.


원주 시내를 달린 검정 그랜저가 원주교도소로 들어갔다.

아치형으로 세워져 있는 조형물 밑을 통과하며 장문식이 중얼거렸다.


“꿈이 있으면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는 개뿔.”


아치형 조형물에 적힌 문구다.


“누님만 혼자 다녀오셔.”


장문식과 똘마니는 주차장에 남았다.

큰형님과 형수님의 오붓한 시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함이다.

채연지가 쇠창살로 가로막힌 면회실에 앉아 누군가를 기다렸다.


철컹.


교도소 쪽의 철문이 열렸다.

풍채가 좋은 중년 남자가 면회실로 들어왔다.

매끈하게 면도한 각진 턱, 뭉툭한 코, 부리부리한 눈.

80년대 초반까지 인천지역을 주름잡던 폭력조직의 큰형님, 함민수다.

가슴에 박힌 명찰색깔은 노란색.

요시찰 대상에게 부착하는 명찰 색상이다.

함민수는 전라도 폭력조직의 인천진출을 열 명도 안 되는 인원으로 막아낸 바 있다.

당시 전국구 3대 조직에 버금가는 성세를 자랑하던 수원의 폭력조직과 1년 전쟁을 치루는 과정에서 검거돼 형을 살고 있다.

폭력조직 수괴로 수감 중이기 때문에 여전히 감시대상이다.

마치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온 아내에게 남편이 하는 것 같은 말투.


“왔는가?”


함민수가 걸걸한 목소리로 인사했다.


“아픈 데는 없어요?”

“왕년에 내가 딴 황소가 몇 마리이야. 새삼스레 그런 걸 물어?”


함민수는 소싯적에 씨름판에서 알아주던 인물이다.

타고난 완력과 체구로 씨름판에서 여러 차례 장원을 차지하기도 했다.


“당신 나이가 몇 인 줄 알아요? 내일 모레면 환갑이라구요.”

“나이 먹는 것도 서러운데, 반올림해서 나이를 들먹이는가?”

“산적처럼 수염 기르고 나오면 혼내려고 했는데, 보기 좋아요.”

“색시 만나러 오는데 제물포 넝마주이처럼 나와야 쓰겠어.”

“밥은 잘 나와요?”

“삼시 세끼 꼬박꼬박 챙겨 먹으니까 잔소리랑 말게. 아우들은 밥벌이는 하고 사나?”

“마누라랑 자식새끼 보다 꼬붕들부터 챙기는 거예요?”

“자네 얼굴 보니 좋아보이는구만 뭘. 나 말고 사내라도 생겼는가?”

“망측하게! 실없는 소리 말아요.”


부부는 오랜만에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채연지는 줄어가는 면회시간이 야속하기만 했다.


부우웅!


검정 그랜저가 원주교도소를 빠져나와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갔다.

채연지는 멀어지는 원주교도소를 돌아보며, 얼굴에 그늘을 드리웠다.

남편 함민수는 지난 84년에 범죄조직의 수괴로 검거되었다.

폭력조직 수괴로 20년 형의 중형을 선고 받았다.

한 차례 감형되어 총 12년을 살아야 했다.

출소까지는 까마득한 나날들이 남아있다.

앞으로 5~6년은 더 옥바라지를 해야 한다.


후우.


채연지의 입에서 절로 한숨이 새어나왔다.

옥바라지가 힘든 것은 아니다.

남편의 출소 후가 걱정이다.


“음악 틀어드려요?”

“관둬. 정신만 사나워.”

“거, 형수님 좋아하는 깐소넨가 뭔가 테이프 있는데. 야 함 틀어봐.”

“청승맞아. 그냥 조용히 인천까지 가.”


장문식은 단호하게 거절하는 채소연에게 더는 권하지 않았다.


“지호 학생은 잘 지낸데?”

“한동안 헤매는 것 같더니 검정고시 붙은 모양인 것 같드만요. 토요일하고 일요일에는 예식장에서 비디오를 찍어 판다고 하는데 뭔 짓거린지 모르겠네요. 걔는 왜요?”

“가게 매상 올리는 방법 같이 얘기해보자고 하더니 통 얼굴을 비치지 않네.”

“그랬어요?”

“그 학생 나중에 크게 될 거야.”

“미국부자라는 사람이 그 놈 팍팍 밀어주면 뭘 해도 성공하겠지요.”

“우리가 감히 올려다보지도 못할 인사들이 주목하는 학생이야. 그들이 눈이 삐어서 관심을 보이겠어?”

“딸을 구해줬으니 당연한 거 아니요? 나라도 내 딸래미 죽을 거 살려주면 불알만 빼고 콩팥이고 뭐고 다 떼 주겠수.”

“그냥 부자들은 그럴지도 모르지. 큰부자들은 안 그래. 큰부자들은 인재 욕심이 많아. 별 볼일 없으면 눈길도 주지 않는다고.”

“큰부자를 만나봤어야지 알지.....”

“때 되면 술 마시러 오겠지.”

“주로 주안에서 놀던데. 연하대까지 올까 모르겠네요.”

“나 눈 좀 붙일 테니까 인천 도착하면 깨워줘.”

“주무십시오! 형수님.”


채연지가 시트에 가녀린 몸을 파묻고, 눈을 감았다.

장문식이 안경을 벗어 슥슥 옷에 문질렀다.


씨익.


장문식의 나른한 표정에 입꼬리만 살짝 말려 올라갔다.

뭔가를 꾸미는 악동의 표정이다.


❉ ❉ ❉


가을시즌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있다.

가온웨딩은 매주 신신, 행복, 고려, 궁전 등 4개의 예식장에서 웨딩촬영을 진행했다.

비록 수수료를 떼 줘야 했지만, 예식장 제휴의 덕을 보는 것도 많았다.

따로 홍보를 하지 않았는데 상담건수도 부쩍 늘었다.

덩달아 예약률도 상승했다.

4개의 예식장에서 일감을 받다보니 손이 모자랐다.

예약이 쏟아져서 그런 것이 아니다.

촬영 스케줄이 겹치는 것이 문제다.

같은 날 같은 시간에 4곳에서 예식이 벌어질 때는 입시공부에 바쁜 박상은까지 불러서 촬영을 맡겼다.

12월을 앞두고 있는 현재도 주말만 되면 동인천과 주안을 정신없이 오가는 류지호다.


“선점효과는 충분히 본 거 같지?”


반신반의하던 사인방은 이제야 마음에 여유가 조금 생겼다.

헌데 류지호의 판단은 조금 달랐다.

가온웨딩을 따라하는 사진관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독립적인 웨딩비디오 업체는 아니다.

사진관이 고객의 요청을 받을 경우에 한해서 일종의 패키지로 비디오를 찍어줬다.

가격도 가온웨딩에 비해 저렴했다.

그런 만큼 웨딩비디오의 퀄리티가 상당히 떨어졌다.

그런데 일반 고객들의 입장에서는 큰 차이를 못 느끼는 것 같았다.

결혼식을 비디오로 찍은 것에 대한 신기함.

그런 점이 더욱 크게 다가오는 모양이다.


“빨리 서울로 진출해야 하는데....”


가온웨딩이 생각보다 일찍 토대를 갖춰가고 있다.

류지호는 슬쩍 욕심이 발동했다.

물론 서울에서도 가온웨딩을 따라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이미 대형 스튜디오에서는 웨딩비디오를 찍고 있었고.


“올해 서울 인구가 천만 찍는다고 했지 아마....?”


서울이 메가시티로 변모하고 있다.

내년에 서울로 진출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간단치 않은 문제가 있다.

자본.

서울은 인천의 예식장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보증금이 비싸다.

모든 수익을 재투자한다고 하더라도 강남의 예식장 한 곳과 제휴를 맺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정 안되면 내년에 인천에 제휴예식장을 줄여야지 별 수 있겠어? 서울은 무조건 진출해야 해.”

“뭐라고?”


류지호가 문가에서 들여온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박상우가 커피잔을 들고 서있다.


“선배님.”

“얀마! 언제까지 딱딱하게 선배님이라고 부를래? 형이라고 불러.”


박상우가 커피잔을 내밀며 타박을 늘어놨다.


“아, 예..... 형님.”


박상우가 편집 테이블 한편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비디오테이프들을 바라봤다.


“저것들 다 너 혼자 해야 되는 거냐?”

“그렇죠 뭐.”

“이번 가을에 니들 진짜 일 많이 했다.”

“저도 이 정도로 바쁠 줄은 예상 못했어요.”


처음 맞이하는 가을 시즌이다.

헌데 지난 봄 시즌에 비해 두 배가량 예약을 소화했다.

돌잔치와 환갑잔치까지 포함하면 매출이 3배나 껑충 뛰었다.


“되게 피곤해 보인다. 웬만하면 밤은 새지 마라.”

“이틀째 밤샘 중이라 죽을 거 같지만. 편집은 마치고 죽으려구요.”


류지호가 농담을 던지고, 커피를 후루룩 마셨다.


“차라리 외주를 주던지, 편집기사를 따로 구하던지.”


언젠가부터 류지호는 편집실 지박령이 되어 가고 있다.

집에 들어갈 시간도 없다.

사진관 구석에 마련한 야전침대에서 눈을 붙였다.

오전에 사진관에서 태권도장으로 출근했다.

낮에 편집실에 처박혀 홀로 편집을 하다가 저녁에는 영어회화 학원에 다녔다.

류지호는 절로 고개가 저어졌다.

가을 내내 혼자 고군분투 했던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버렸기 때문이다.

일감이 많은 외주업체 편집실은 원래 다 이렇다.

그리고 이런 일감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다.

곧 결혼 비수기가 찾아온다.

속된 말로 물들어 올 때 노 저어야 하는 법이다.


“앞날이 구만리 같은 녀석이.... 어린 나이에 하얗게 불태우고 말거야?”

“다음 주부터는 비수기잖아요.”

“....쯧.”

“그래도 좀 힘들긴 하네요.”


엄살이 아니다.

혼자 해야 할 업무가 너무 많았다.


“오늘은 그만 들어가서 쉬어.”


박상우가 류지호의 등을 떠밀었다.

류지호는 못 이기는 척 작업을 정리했다.


하암.


하품이 절로 나왔다.

주안에서 류지호의 집까지 걸어서 30분이다.

터벅터벅 걸음을 옮기는 내내 연신 하품이 나왔다.

그런데, 동네 근처 골목길로 접어들 때였다.


끼이익.


난데없이 류지호의 앞을 검정색 그랜저가 막아섰다.


덜컹!


그랜저 차문이 열렸다.

검은 양복에 흰색 폴라를 받쳐 입은 배바지 차림의 사내가 내렸다.

전형적인 조폭 패션이다.

그런데 사내의 외모는 조폭처럼 보이지 않았다.

갸름한 얼굴에 은테 안경을 쓰고 있다.

남자가 류지호에게 다가오며, 대뜸 명령했다.


“타라.”


쉰 목소리라 꽤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예?”

“얼른 타라고.”


순간 류지호는 조폭 사내를 치고 달아날까 고민했다.


“좋은 말 할 때 타.”

“왜 그러시는지.....”

“일단 타 봐. 뭐 때문에 그러는지 알려줄 테니까.”


류지호의 눈이 빠르게 차에 타고 있는 사내와 자신을 막아선 남자를 훑었다.

그리고 눈동자만 돌려 주변을 살폈다.

오늘따라 지나가는 행인이 없다.


“얼릉 타라고 새.....!.”


별안간 류지호의 발이 움직였다.


파박!


류지호의 돌려차기가 남자의 복부에 꽂혔다가 연이어 안면에 작렬했다.


털썩.


남자가 얼굴을 부여잡고 주저앉았다.

그 사이 류지호가 돌아서서 달리기 시작했다.

일단 사람이 북적거리는 대로변으로 가야 했다.

류지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대로변이 가까워지자 행인들이 눈에 뜨였다.

류지호는 버스정류장에 도착해서야 달리는 걸 멈췄다.


“헉헉.”


류지호는 무릎에 손을 얹고 허리를 숙여 가쁜 숨을 토해냈다.

정말 죽을힘을 다해 달렸다.

무엇 때문에.

왜 자신을 납치하려 하는 것인지.

당장은 알고 싶지도 않았다.

일단 잡혀가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조폭, 양아치, 깡패는 일단 가까이 하면 반드시 안 좋은 일이 생긴다.


끼익.


혹시 자신을 미행할까 싶어 바로 도착한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를 타고 일부러 부평까지 다녀왔다.

그런 후 막차시간에 맞춰서 판사진관으로 다시 돌아왔다.


“......!”


검정색 그랜저가 판사진관 앞에 턱하니 서있었다.

류지호는 슬금슬금 주안역 파출소 쪽으로 움직였다.

갑자기 그랜저에서 떡대들이 튀어나왔다.

놈들에게 들켜버린 것 같았다.


“돌아버리겠네!”


떡대들이 류지호의 앞과 뒤를 막아서며 천천히 다가왔다.

무엇 때문에 자신을 납치하려고 하는 지 알 수 없지만, 일단 놈들을 따라가야 할 것 같았다.

헌데.


뚜벅뚜벅.


야구모자를 깊이 눌러쓴 듬직한 체격의 남자 둘이 류지호의 뒤에서 나타났다.

나중에 나타난 남자 둘이 대뜸 류지호의 앞을 막아섰다.


“류지호 학생.”


새롭게 나타난 낯선 사내들이 자신의 이름을 정확히 알고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괜히 끼어들지 말고, 가만히 있어. 학생을 보호하려고 하는 거니까.”


조금 키가 작은 남자가 류지호에게 말했다.

야구모자 남자 둘과 떡대들이 대치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덜컹.


그랜저의 문이 열리고 떡대들의 두목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어~”

“어?”


류지호는 깜짝 놀랐다.

아는 얼굴이다.

아네모네 패싸움 사건 당시 채연지를 수행해 경찰서에 왔었던 남자.

또 박광렬의 아버지와 중재를 맡았던 조폭.

꽤 인상이 깊었던 남자다.

특히 뱀처럼 차갑고 싸늘했던 눈동자가.


“오랜만이다. 그치? X발라마.”

“......?”

“이야기 좀 하려고 했더니 그냥 들이받아 버리데? 어디서 못 된 것만 배워서는.... 하여간 요즘 애새끼들은...... 예의범절의 일이삼사가 없어.”


장문식이 나른한 어조로 말했다.

그의 눈은 야구모자 사내 둘에게 고정되어 떨어질 줄 몰랐다.

류지호가 황당함을 담아 성을 냈다.


“미리 연락을 하면 되잖습니까! 사람을 납치하려고 합니까?”

“전화번호를 몰라.”

“간판에 쓰여 있잖아요!”


류지호가 판&가온 스튜디오 옥외간판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귀찮아서 그랬어. 그건 됐고... 이치들은 뭐냐?”


장문식이 턱짓으로 야구모자 남자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들의 정체를 모르는 건 류지호도 마찬가지.


“학생, 신효정 변호사 알지?”

“......?”

“우린 학생을 보호하기 위해 고용된 사람이야.”


류지호는 긴장이 탁 하고 풀렸다.


“난 놈인 줄은 알았지만, 경호원까지 달고 다니네.”


장문식이 빈정거렸다.


“장부장님이라고 하셨죠? 저한테 용무가 있는 겁니까?”

“응.”

“뭡니까?”

“길바닥에서 이럴 게 아니고. 어디 다방에라도 들어가자.”


장문식이 따라오라는 듯 손을 까닥거리고 걸음을 옮겼다.

류지호는 멀거니 그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안 잡아먹어 새끼야. 얼른 따라 와.”

“저기 보이는 커피숍에 먼저 들어가 계십시오. 전 이분들과 이야기 좀 하고 들어가겠습니다.”


장문식이 쓰고 있던 안경을 코에 걸고는 야구모자 남자들을 슥 훑었다.

야구모자 남자들이 즉각 반격할 수 있는 자세를 취했다.


피식.


장문식이 다시 안경을 바로 하고는 입가에 미소를 띠웠다.

비웃음은 아니다.

묘하게 상대를 기분 나쁘게 만드는 미소랄까.

장문식이 돌아서서 휘적휘적 커피숍으로 걸어갔다.


“그러니까 두 분이 신변호사한테 고용된 상태라 이겁니까?”


키가 작은 야구모자 사내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언제부터였습니까?”

“몇 달 됐어.”

“근데 전 왜 몰랐습니까?”

“학생이 알 정도면 우리 경호는 실격이야.”

“파커가의 뜻입니까?”

“만년필 안 써, 우린 일반 모나미 볼펜을 주로 써.”


엉뚱한 대답이 나왔다.

파커 가문의 의지는 아닌 걸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신변호사가 오버했다는 거네.”

“뭐라고?”

“혼잣말이니까 신경 쓰지 마십시오. 두 분은 이제 어쩌실 겁니까. 저한테 걸렸는데.”

“뭘 어째. 대놓고 따라 다녀야겠지.”

“.......”

“학생은 정체가 뭐야?”


키가 큰 야구모자 사내가 물었다.


“저 따라다니면서 다 보셨을 거 아닙니까.”

“커피숍에 들어간 남자 보통내기가 아냐. 괜히 엮기면 피 본다.”

“명색이 경호원이라는 분들이 양아치에게 겁먹은 겁니까?”

“계약상에는 없던 내용이라 그래. 저 치 일반 양아치가 아니야.”

“그건 신변호사한테 따지십시오.”


류지호가 쌀쌀맞게 말하고 커피숍으로 향했다.

경호원들이 냉큼 그 뒤를 따랐다.

류지호와 장문식이 커피숍에 마주앉았다.

경호원 두 사람은 옆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도대체 이게 다 무슨 일인지 설명이 필요할 거 같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아네모네는 찾아왔어야지. 인간적으루다가.....”

“술집에서 패싸움이 나서 학교까지 자퇴했는데, 속편하게 술 마시러 다니겠습니까?”


류지호에 입에서 고운 말이 나오지 않았다.

겨우 아네모네에 찾아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납치를 할 생각을 하다니 기가 막혔다.


“그래도 그렇지 쟈샤~ 호적에 빨간 줄 갈 수 있는 거 형수님이 도와줬잖아. 의리 없이 입을 싹 닦아?”

“아네모네 아줌마가 시켰습니까?”

“그랬겠냐?”

“......”

“그냥 심심하기도 하고. 뭐든 길을 잘 들여야 되거든. 초장에.”


후우.


내심 안도감이 들면서도 류지호의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류지호는 끓어오르는 화를 애써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부장님은 아줌마하고 무슨 관계입니까?”

“가족 같은 사이야. 내가 모시는 분의 사모님이다.”

“한눈에 봐도 건달.... 아줌마 남편도 건달입니까?”

“거 말하는 싸가지.... 말 이쁘게 해라. 혼나기 전에.”


장문식의 들릴 듯 말 듯 읊조리는 말투는 묘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회칼을 들고 저런 말투로 협박을 하면 왠지 상대가 겁을 집어먹을 것도 같았다.


“만수동에서 살았냐?”

“만수동 근처도 안 갑니다.”

“중학교 때 좀 놀았나 봐?”

“왜 스카우트라도 하시려고요?”

“난 동생 함부로 안 들인다.”

“도대체 용건이란 게 뭡니까?”

“어떤 놈인지 얼굴 보러 왔어.”

“얼굴 봤으니까 됐죠? 그럼 이만...”

“명함 하나만 줘봐.”

“왜요?”

“앞으로 친절하게 전화 걸고 찾아오게.”


류지호가 명함을 한 장 꺼내 테이블에 놓았다.

장문식이 명함을 보며 물었다.


“슈팅 웨딩? 축구용품도 파냐?”

“결혼식 비디오 찍습니다.”

“결혼식을 비디오로 찍어서 파는 게 돈 좀 돼?”


묘하게 느물거리는 장문식이 계속해서 거슬리는 류지호다.


“건달들은 못합니다. 기술이 있어야 할 수 있습니다.”

“그거야. 기술 있는 놈들 데려다 굴리면 되는 거고... 실장이네?”

“부장님보다 제가 높습니다.”

“아주 안 지려고 꼬박꼬박 말대꾸는 잘해요 새끼가.....”

“아네모네 아줌마한테는 제가 조만간 찾아뵙는다고 전하십시오.”

“사업하는 데 애로사항 없냐? 괴롭히는 놈이나 손 볼 놈 있으면 말해. 아저씨가 깔끔하게 처리해 줄게. 저 치들은 그런 일은 못 할 걸.”

“술집에서 싸움질 하다가 경찰서에도 잡혀가고 자퇴까지 했는데, 더 이상 문제될 만한 일을 하겠습니까?”

“암튼 사업하다가 힘들게 하는 놈 있으면 언제든지 상담해라. 친절하게 응해줄게.”

“왜요 공구리 쳐서 인천 앞바다에 내다버리기라도 할 겁니까.”

“야~ 그런 방법도 있구나. X뺑이 치면서 야산에 땅 안파도 되겠네. 그런 건 어떻게 알았냐?”

“영화 보면 나옵니다.”

“무슨 영화?

“있습니다, 그런 게.”


아직은 조폭코미디에 오염되지 않은 청정한(?) 한국영화판이다.

한국영화는 재미없어서 안 보던 시절이고, 대부분의 충무로 영화는 맥락 없이 여배우를 벗기는 게 자연스러운 시절이다.


“볼 일 다 봤으면 전 일어납니다. 경호원 분들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우린 학생이 무사히 귀가해야 퇴근해.”

“지금처럼 경호원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어색하고.... 제가 뭐라고 불러야 합니까?”

“나는 박영규, 여기 이 친구는 최영민. 박 팀장, 최 대리라고 불러.”


키자 작은 사내가 박영규였고, 키가 큰 사내가 최영민이다.


“일단 저는 집으로 갈 겁니다. 따라오실 겁니까?”


끄덕.


경호원들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류지호는 두 사람을 데리고 커피숍을 나섰다.


“도대체 저 놈이 뭐 길래.... 경호원까지 다 붙여준다냐. 앵가니 해야지. 제 새끼도 저렇게 애지중지 안 하겠다. 제비 다리 고쳐준 흥부야 뭐야?”


홀로 남은 장문식이 중얼거렸다.


“양키들은 생명의 은인한테는 다 그러나?”


지나친 생각이 아니다.

가족을 구해준 보답치곤 과한 면이 없지 않았다.

장문식 수준에서 추측하는 것보다 복잡한 사연들이 얽혀 있었다.


작가의말

다음주부터는 주 6회 연재로 전환됩니다. 하루 한 회 오전에 연재 분이 올라올 예정입니다. 연참을 자주 할 예정이니 너무 섭섭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편안한 주말 되십시오. 월요일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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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이런 날도 오는구나... (2) +4 22.01.19 9,736 201 26쪽
57 이런 날도 오는구나... (1) +4 22.01.19 10,043 203 21쪽
56 Begin again. (4) +5 22.01.18 9,717 214 20쪽
55 Begin again. (3) +7 22.01.18 9,596 216 24쪽
54 Begin again. (2) +8 22.01.17 9,759 211 21쪽
53 Begin again. (1) +11 22.01.17 10,300 200 24쪽
52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6) +14 22.01.16 9,823 211 19쪽
51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5) +8 22.01.15 9,530 194 19쪽
50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4) +15 22.01.15 9,560 186 20쪽
49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3) +16 22.01.14 9,621 192 22쪽
48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2) +12 22.01.14 9,586 196 21쪽
47 절망 없이는 희망도 없다! (1) +6 22.01.13 9,859 194 21쪽
46 사업으로 성공할 자신 있어요! (3) +7 22.01.13 9,988 204 22쪽
45 사업으로 성공할 자신 있어요! (2) +20 22.01.12 10,195 204 24쪽
44 사업으로 성공할 자신 있어요! (1) +14 22.01.12 10,843 211 24쪽
43 Carpe diem... (4) +12 22.01.11 10,464 215 19쪽
42 Carpe diem... (3) +14 22.01.11 10,409 229 18쪽
41 Carpe diem... (2) +12 22.01.10 10,551 237 20쪽
40 Carpe diem... (1) +12 22.01.10 10,928 225 20쪽
39 얘는 혼자 어디 딴 세상이라도 살다 왔나? +8 22.01.09 10,993 240 20쪽
38 연풍(戀風). +12 22.01.08 11,020 232 17쪽
37 영화밥 먹고 살 팔자... (6) +7 22.01.08 10,820 225 22쪽
36 영화밥 먹고 살 팔자... (5) +9 22.01.07 10,563 235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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