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이산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지찬
작품등록일 :
2022.01.02 22:13
최근연재일 :
2022.07.11 13:55
연재수 :
8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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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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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02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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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글자
22쪽

12. 전투 ; 전설이 되다.

DUMMY

이제 죽고 사는 건 자신에게 달렸다고 생각한 이산은 놈들의 공세를 죠와 토니가 분산시키고 있는 동안 최대한 많은 적들을 죽여야 했다. 목덜미를 잡아 끌어온 시체를 자신의 옆에 바싹 붙여 둔 이산은 적들의 동향을 살폈다.


적들도 뜻밖의 기습에 많이 놀랐는지 잠시 숨을 돌린 후 이산쪽으로 네 명의 적들이 다가오고 죠와 토니쪽으로 각기 2명씩 재배치되고 있었다. 적들도 아군이 세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눈치챈 것 같았다. 대치상태가 길어지면 아군이 불리해진다. 당장 빌리가 위험해질 것이며, 탈레반의 증원군이라도 오면 끝장이었다. 적들을 끌어들여 흔든 후 빠른 시간내에 끝내야 살아나갈 희망이 커진다고 생각한 이산은 반사경을 비춰 적들의 시야를 방해하기 시작하였다.


이산의 반사경 공격에 놀란 적들의 총탄이 날아왔고, 이산은 반사경을 뺐다 비췄다 하며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적들의 신경을 건드렸다. 이산의 심리전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던 놈들이, 두 명은 이산을 계속해서 경계하고 다른 두 명이 양쪽으로 이산에게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었다. 자신의 총을 놓고 콜트를 꺼내 오른손에 쥔 후 이산은 옆에 두었던 시체를 오른쪽으로 옮긴 후 발로 밀어 굴릴 준비를 하고 반사경을 보니 두 놈이 약 30m전방에서 접근하고 있고, 두 놈은 뒤에서 자신을 노리며 엄호하고 있었다.


반사경을 왼쪽으로 옮긴 후 오른쪽 후방에서 자신을 노리는 적의 눈을 조준, 빛을 비추는 것과 동시에 오른발로 시체를 밀어 바위 오른쪽 밖으로 굴린 후 반대쪽으로 몸을 굴리며 왼쪽에서 접근하는 놈에게 먼저 연사로 두 발을 먹이고 연이어 오른쪽으로 오던 놈에게도 두 방을 쏜 후 다시 굴러 바위 뒤로 돌아오자, 이산이 굴렸던 시체와 이산이 권총으로 두 놈을 잡았던 자리가 벌집이 되었다. 정말 숨 한번 쉴 시간도 안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산에게는 좀 전의 광경이 마치 슬로우 비디오처럼 느껴졌다. 숨을 고를 틈도 없이 반사경을 보니 권총을 맞은 두 놈은 즉사한 것 같았고, 엄호조 2명은 놀란 듯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권총을 옆에 차고 자신의 총을 잡은 이산은 그제서야 숨을 고르며 자신의 앞에 남은 두 놈을 잡을 생각을 하였다.


시간이 없었다. 빌리도 빌리였지만 죠와 토니의 탄창이 비어 가고 있었다. 반사경을 자신의 왼쪽에 있는 적이 사격을 위해 얼굴을 드러낼 때 눈 부분을 비출 수 있도록 조절해 놓고 자신의 오른쪽 적을 향해 총알을 날렸다. 무리를 해서라도 한 놈을 먼저 잡기로 했다. 이산의 사격에 적도 응사를 하여 쌍방간 총격전이 이어지는 중에 잠시 몸을 빼 반사경을 보니 왼쪽을 노리는 적이 몸을 살며시 일으키려는 모습에 모른척하며 몸을 돌려 오른쪽 적에게 반격을 하였다. 다시 반사경을 보니 몸을 거의 일으킨 놈이 이쪽을 노려보며 총구를 자신이 사격을 하고 있는 곳으로 겨눈 채 다가오기 시작하였다.


반사경으로 놈의 눈을 가리려는게 안되었다. 숨을 고른 이산은 다시 점사로 2발을 엄호하고 있는 놈에게 쏘려는 순간 자신에게 다가오는 놈이 사격을 가해왔다. 잠시 몸을 돌려 피한 후 다시 사격을 하려는데 이번에는 엄호하고 있는 놈 에게서 총알이 날라왔다. 두 놈이 번갈아 쏘며 이산의 사격을 막으며 한 놈이 전진하고 있는 것이었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이대로면 전원 몰살당하게 된다는 생각에 이산은 호흡을 안정시키며 놈들의 사격패턴을 읽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한 놈이 삼 초 정도 쏘고, 하나, 둘 2초정도 후에 다른 놈이 쏘는 패턴이었다. 몇 번이고 시험해보며 반복해 확인해보니 거의 비슷한 호흡의 패턴으로 총을 쏴 오고 있었다. 놈들 자신조차도 잘 알지 못하는 저 호흡을 무너뜨리고 한 호흡 즉 1초정도만 더 확보할 수 있으면 승산이 있었다. 그리고 엄호조로 자신을 공격하는 놈은 자신보다 아래 내리막길의 움푹 패인 곳에 엎드려 있기에 사격 시 상탄이 많았으며 정확한 공격을 위해서는 머리가 많이 올라와야 했다.


일단 엄호하는 놈의 호흡을 깨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놈을 먼저 제거하고 엄호하는 놈은 그 다음이었다.


이산이 콜트를 꺼내 엎드려 있는 자신의 오른손을 뻗었을 때 잡기 편한 안전한 곳에 살며시 놓는 순간 이어폰에서 ‘윽’ ‘윽’하는 토니와 죠의 신음소리가 들리며, ‘철커덕’ 철커덕’하는 총알이 없는 빈약실을 때리는 공이 소리가 들렸다. 죠와 토니가 총에 맞았고, 탄창이 비었다는 신호였다.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리고 자시고 할 시간이 없었다.


이산이 숨어있는 놈에게 한방을 쏘자 좌측 옆에서 다가오는 놈이 바로 응사를 해왔다. 하나를 센 후 아래에 있는 놈이 머리를 숨기고 있는 웅덩이 끝부분의 흙을 겨냥해 점사연사로 두발을 쏘고 가슴 쪽으로 끌어올렸던 두다리로 박차며 오른손은 콜트를 잡고 총을 쥔 왼손으로 2~3m앞의 땅을 짚으며 공중에서 몸을 틀어 왼쪽에서 사격을 마치고 자동사격의 반동으로 위로 올라간 총을 잡아 내리려면서 뛰쳐나온 이산을 보고 놀란 얼굴과 가슴부위에 한방씩 두 방을 날리고 땅을 짚은 왼손에 힘을 주어 버티면서 아래 웅덩이에서 자신을 쏘려다 자신이 한 호흡 먼저 쏜 총탄의 돌먼지에 놀라 발사패턴을 놓친 후 콜트 총소리에 고개를 드는 놈의 얼굴에 마지막 한발 남은 권총의 탄알을 먹였다.


자신을 가로막고 있던 두 명의 탈레반을 제거한 이산은 총알이 떨어진 콜트를 놓으며 두 손으로 땅을 짚고 앞으로 두어바퀴 굴러 내려간 후 자세를 잡으며 죠와 토니의 총알이 떨어진 것을 눈치채고 조심스럽게 엄호를 받으며 죠와 토니에게 다가가는 놈들을 향해 자동연사로 2발씩을 쏘고, 다시 몸을 앞으로 던지는 순간 ‘퍽’ ‘퍽’하며 옆구리와 왼쪽 허벅지를 불꼬챙이가 쑤시고 지나가는 통증을 느꼈다. 멈추면 죽는 다는 생각으로 내리막을 구르고 또 굴렀다. ‘퍽’ ‘퍽’하며 땅을 치는 건지 자신을 몸을 관통하는 건지 생각할 여유도 없이 구르던 이산은 자신의 수류탄 공격과 총격에 죽은 시체에 걸려 멈췄다. 시체를 엄폐물 삼아 납작 엎드린 이산이 시체를 옆으로 눕혀 엄폐물의 높이를 높이려는 순간 시체에 ‘퍽’ ‘퍽’하며 총알 박히는 소리와 충격에 움찔거리는 시체를 머리로 지탱하며 반격을 위해 총을 들어올렸다.


옆으로 눕혀진 시체의 다리사이에 총구를 넣고 조준경으로 30m정도 앞에 있는 적을 보며 방아쇠를 당기는 순간 ‘철커덕’하며 공이가 빈약실을 때리는 소리가

마치 사형선고처럼 이산의 귀에 울렸다.


몸을 숨기고 이산에게 총을 쏘던 적들도 이산의 총에서 나온 총알 떨어진 소리를 듣고 잠시 주춤한 후 이산이 몸을 숨기고 있는 시체를 향해 총탄세례를 퍼부었다. 시체를 옆으로 세우고 T자 모양으로 숨어있던 이산은 머리 위 시체가 곧 걸레가 되가는 것을 느끼며 오른손을 아래로 내려 오른발 종아리에 차고 있던 대검을 집채로 꺼내 집과 분리해 대검을 오른손에 대검집은 왼손에 나눠 쥐었다.


한 놈이라도 더 죽일 것이다. 분명 자신의 죽음을 확인하려고 올 것이고, 기회는 올 것이다. 시체가 다행히 방탄조끼를 입고 있어 조금은 더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 남지 않았다. 놈들이 다가오며 쏘면 결국 시체와 자신은 벌집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산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지금도 몇 방 먹은 것 같은데, 몇 방 더 먹는게 뭐 대수겠냐? 라는 생각에 허탈한 웃음이 나온 것이다.


자신의 총에 총알이 남았다고 생각한 것이 실수였다. 총알을 아끼기 위해 자동연사가 아닌 반자동 연사와 점사를 주로 이용했는데 좀 전에 죠와 토니를 구하기 위해 급한 나머지 쏜 자동연사에서 총알이 더 나간 것이었다. 이제와 이런 생각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면서도 아쉬움에 안타까움이 머리를 스쳐갔다. 이제는 놈들도 자신에게 새 탄창이 없다는 걸 확신했으니 다가올 것이라 생각한 이산은 대검을 쥔 손에 힘을 주며 머리위에서 총알세례를 막아주고 있는 시체를 두손으로 등과 허리부분을 받쳤다.


그때였다.

'철커덕' 철커덕' 빈약실을 때리는 공이의 요란한 소리가 두 번 들렸다. 이산은 생각할 시간도 여유도 없이 뛰쳐 일어나 전력을 다해 가까이 있는 놈을 향하여 뛰었다. 만일 한 총에서 두 번 들린 소리면 이산은 즉사한다.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두 놈 다 총알이 없으면 탄창을 교체할 시간을 벌었고, 한 놈은 죽일 수 있었다. 뛰면서 보니 두 놈 다 총알만 떨어진 게 아니고 새 탄창도 없었고, 두 놈 다 주위에 떨어진 총을 주우려 하고 있었다.


“으아!!!”


일단 이산은 아랫배 깊숙한 곳에서부터 힘을 끌어올려 소리를 힘껏 질렀다. 총을 주우려던 두 놈은 이산의 벼락 같은 소리에 놀랐고, 특히 30m 떨어져 있던 놈은 이산이 고함을 지르며 대검을 들고 득달같이 뛰어오자 급한 마음에 총을 놓고 옆구리에 끼여 있던 날이 1m정도 되는 직도를 꺼내 들었다.


이산이 보니 앞의 놈은 급해서 칼을 꺼내 들고 있고, 약 60~70m정도 떨어진 뒷놈은 자신의 고함소리에 놀란 마음을 추스리며 급하게 총을 다시 찾으려 하고 있었다. 저놈이 총을 주우면 지금까지의 모든 사력들은 물거품이 된다 라는 절박함에 오른손의 대검을 거꾸로 날부터 잡고 전력을 다해 뛰는 힘까지 합해서 놈에게 던졌다. 던진 대검이 적에게 맞는지 확인할 틈도 없이 직도를 두손으로 들고 달려가는 자신을 베기 위해서 마주 달려오는 놈을 마주치게 되었다.


이산은 왼손의 대검집을, 칼을 꼽는 윗부분을 왼손바닥 안쪽으로 감싸 쥐고 대검 날이 들어가는 몸통 부분을 왼 팔뚝 부분에 힘주어 바짝 밀착시킨 뒤 놈이 오른쪽 머리위에서 사선으로 내리치는 직도를 왼 팔뚝에 붙여서, 잡은 대검집으로 비켜 막으며, 오른손으로 상대의 왼쪽 어깨를 잡아당긴 후 달려가던 힘을 더해 놈의 얼굴을 박았다.


‘쾅!’ ‘우지직!’ 하는 충돌음과 코뼈를 비롯한 안면의 뼈가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들리며 놈의 안면에서 피가튀며 이산의 얼굴을 적셨지만, 이산은 충격에 늘어져가는 놈을 대검집을 놓은 왼손으로도 놈의 오른쪽 어깨를 잡아 두손으로 당기며 다시 얼굴을 박았다.


'쾅' '쾅'


연달아 두 번을 박고 보니 놈은 얼굴뼈가 함몰되어 죽은 것 같았고, 이산의 얼굴은 피칠로 뒤덮혀 이마에서 흐르는 피로 시야가 보이질 않아 왼손으로 얼굴의 피를 닦아내었다.


이산이 놈을 손이 아닌 머리로 처리한 것은 혹시라도 자신이 던진 대검에 뒤쪽에 있는 적이 맞지 않거나 맞더라도 치명적이지 않아 총을 찾아 쏠 때 엄폐물로 쓰기위해 쓰러뜨리지 않고 자신을 가리게 하기위해 두손으로 어깨를 잡고 머리만을 박살낸 것이었다.


놈을 앞세우고 대검을 던진 놈을 찾아보니 다행히 대검이 놈의 어깨를 꿰뚫은 것 같았으나 놈은 여전히 비틀거리며 총을 찾고 있었고 거리는 30여미터 되는 것 같았다. 이산은 붙들고 있던 놈을 놓고 땅바닥에 떨어진 직도를 주운 후 바로 뛰었다. 5m, 10m정도 뛰었을까? 어깨에 대검을 꽂은 놈이 허리를 숙여 총을 잡으려 하는 모습을 보고 뛰어가던 속도를 이용해 두손으로 직도를 머리위로 올린 후, 총을 잡으려는 놈을 향해 있는 힘껏 던졌다. 놈을 향해 빙글빙글 돌며 날아가던 직도는 총을 집고 허리를 펴는 놈의 가슴에 ‘퍽’하는 소리와 함께 그대로 박혀 들어갔고, 총을 놓치며 놈은 뒤로 뻣뻣하게 넘어갔다.


넘어가는 적을 보고도 멈추지 않고 이산은 뛰었다. 총을 잡아야 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를 해야 살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직도를 가슴에 맞고 넘어간 놈이 놓친 총을 잡으려 뛰었고 곧 AK소총, 일명 칼라시니코프를 잡을 수 있었다. AK를 잡고 주위를 둘러본 이산은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탄창을 분리, 총알을 체크한 후 총 옆의 시체에서 새 탄창을 꺼내 챙겼다.


고개를 돌려보니 자신의 대검과 직도를 맞은 놈이 아직 죽지 않고 숨을 깔딱깔딱 쉬는게 곧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무전기를 찾아보려 고개를 돌리던 이산은 문득 자신의 대검과 총이 생각났다. 하나라도 없었으면 어찌됐을까? 하는 애착에 숨 넘어 가려 하는 놈에게 다가가 대검을 빼니 피가 솟구쳐 얼굴을 적셨으나 개의치 않고 대검에 묻은 피를 놈의 옷에 닦아 제거한 후, 무전기를 찾기 시작하였다. 무전기는 자신이 수류탄으로 죽인 놈들 주위에서 쉽게 찾았고, 다행히 수류탄 폭발에도 큰 손상은 없는 것 같아 어깨에 메고, 자신의 총과 대검집을 챙긴 후 죠와 토니에게 향했다.


이산이 수류탄으로 적들을 공격할 때부터 마지막 남은 놈을 직도로 쓰러뜨리는 좀 전의 장면 까지를 한장면도 놓치지 않고 낱낱이 본 죠와 토니는 자신들이 없앤 서너 명을 제외한 30명에 가까운 적들을 혼자서 전멸시킨 이산을 보며 전율과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저 사내는 죽음의 두려움 앞에서 망설이지도 않았고, 본인이 아닌 남인 죠와 토니, 자신들을 죽음에서 구해주기 위해 스스로의 목숨을 걸고 정말 처절하게 싸워, 마약에 취해 영혼이 마비되어 탈레반의 악마라고 불리는 탈레반 특수부대를 한 놈도 남김없이 모조리 죽인 것이다.


토니는 허리와 어깨, 허벅지 부위에서는 피를 흘리고 얼굴에는 피칠을 한 채 자신들을 보고 씨익 웃으며 올라오고 있는 이산을 보고 복받쳐오는 감정에 두 눈을 꼭 감고 두 손을 꽉 쥔 채 몸을 떨었다. 죠 역시도 온몸이 피투성이인 채로 무전기를 멘 채 자신들을 보고 웃으며 올라오는 이산을 보고 가슴이 메어오고 머리는 해머로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끼며 그냥 쳐다보고 만 있었다.


이산이 도착하자 갑자기 토니가 이산을 끌어안으며 울기 시작하였다. 토니는 아무말도 없이 이산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기만 했다. 고맙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아니 필요 없었다. 토니는 그냥 자기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있었다.


토니의 약간 격한 행동에 순간 당황한 이산이 곧 토니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등을 토닥토닥하며 죠를 보니 죠 역시도 눈이 붉어진 채로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참으려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죠와 눈이 마주친 이산이 피에 젖은 얼굴로 싱긋 웃자 이마에서 흘러나온 피로 콧잔등은 물론 이빨사이의 잇몸까지 피에 절어 있는 이산의 모습에 죠는 참고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며 다가와 이산과 토니를 한꺼번에 끌어안고 울었다.


두사람의 격해진 감정이 가라앉길 기다린 이산이 말했다.


“죠, 토니! 응급처치만 하고 빨리 여길 벗어나자고” 하며 둘의 어깨를 다독였다. 감정을 다소 추스린 두사람은 이산의 말뜻을 바로 알아듣고 “오케이” 라며 응답했다


토니는 이산이 가져온 무전기를 들고 본부로 무전을 치고, 죠는 위장막으로 감싸 놓았던 보디캠을 찾아왔다. 이산은 죠에게 “빌리에게 가서 상태를 확인하고 각자 최소한의 치료만 하고 떠나지” 하며 죠와 함께 위쪽 바위 뒤에 있는 빌리에게 갔다.


빌리의 안색은 창백하다 못해 파리하게 보였고, 빌리의 심장과 목기도를 확인하고 손목을 잡아 진맥을 한 이산은 조금은 안심하며 말했다.


“토니! 빌리가 아직은 잘 버티고 있는데 빨리 수혈하지 않으면 위험하니 서두르자”


“알았어, 산! 토니가 오면 바로 출발하자, 그런데 산도 응급치료 해야지”


“그래 말이야, 잊고 있었네, 죠 너도 빨리 총상을 치료해” 하며 두사람은 상처 부위를 소독하고 지혈제를 바른 후 압박붕대로 감았다.


무전을 하던 토니도 올라와 “아직도 이곳은 통신이 안돼, 빨리 이곳을 벗어나 다시 시도해야겠어”


죠가 “토니, 빨리 상처를 응급치료만 하고 가자”


“잠깐만, 금방 끝낼게” 하며 토니도 상처를 치료했다.


응급처치가 끝나자 이산이 말했다.


“죠! 내게 빌리를 조심해서 업혀주고 압박붕대로 나와 빌리를 잘 감싸줘”


“아냐! 산! 빌리는 내가 업고 갈게” 죠의 반대에 이산이 싱긋 웃으며


“괜찮아, 내가 업는 게 빌리에게도 좋아 나는 한국의 전통의학을 전공했어”라고 설득하자 죠가 미안해 하며 빌리를 이산의 등에 업히고 압박붕대로 두사람을 감싸 묶었다.


“죠! 대신 내 총을 부탁해” 라며 이산은 자신의 총을 죠에게 주고 자신은 AK를 잡고 빌리를 업은 채 앞장서 출발했다.


모두가 다리에 총상을 입었고, 이산은 축 늘어진 빌리를 업고 있어 행군은 느릴 수밖에 없었다. 죠와 토니는 이산이 사람 같아 보이지가 않았다. 삼십분도 채 되기전에 30여명과 목숨을 건 전투를 해 전원 죽이고, 그때 입은 총상만 세 군데 이상인 이산이 빌리를 업고 삼십 분 가까이 쉬지 않고 선두에서 사방을 경계하며 자신들을 이끄는 모습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정말 지독하다는 말로도 설명할 수 없는 사내였다 이산은!


10분정도 더 지났을까?


“토니 이곳에서 교신 시도해 보자” 라는 이산의 말에 다리의 통증에도 이산 때문에 말도 못했던 두사람은 쓰러지듯 주저앉으며 “오분 만 쉬고 할께”라는 토니의 말을 신호로 거친 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같이 쉴 줄 알았던 이산이 뒤쪽으로 다시 가더니 조준경을 꺼내 후방을 감시하는 게 아닌가?


토니와 죠는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본부와 교신을 시도하던 토니가 “됐다, 됐어 신호가 가고 있어” 라며 흥분된 소리를 억누르며 질렀고, 두사람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토니를 보았다.


“델타 브라보, 델타 브라보 여기는 찰리다 오버”


“찰리, 여기는 델타 브라보다 말하라” 본부가 나오자 토니는 지금까지의 상황과 피해정도를 짤막하게 말한 후 헬기 착륙위치를 설명하였고, 본부에서는 바로 응급헬기와 기동타격대를 보내 준다는 답신을 주었다. 도착시간까지 약 1시간정도 소요될 예정이니 몸을 잘 숨기고 있으라는 멘트도 덧붙여.


이제 한시간만 버티면 되었다. 물론 그때까지 적들에게 들키지 말아야 하지만 말이다. 일단 헬기 착륙장소로 이동해서 은폐할 곳을 찾기로 하고 다시 전진하기 시작하였다. 삼십여분을 걸어 예정된 곳에 도착한 일행은 남은 시간동안 숨어있을 곳을 찾았다. 헬기가 착륙할 곳을 100m가량 지나 급격하게 경사져 산으로 올라가는 중에 움푹 꺼진 곳을 발견한 일행은 자리를 잡고 쉬며 후방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조준경으로 후방을 살피던 이산은 추격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긴장을 약간 풀며 헬기 도착시간을 보니 10분정도 남은 것 같았다.


정말 긴 하루였다. 아니 정말 짧은 하루였다. 어제 헬기에서 내려 목표지점으로 이동, 매복 중 빌리가 총에 맞은 후부터 지금까지 시간이 얼마나 됐고 어떻게 지나갔는지 몰랐다. 생각나는 건 쏘고 또 쏘고 살기위해 몸부림치며 죽여야 했던 것 밖에 없었다.


문득 이산은 피곤해서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아무 생각없이 이곳에서 쓰러져 푹 자고 싶었다. 그때 옆에서 조준경으로 다른 방향을 감시하던 죠가 얼굴을 이산 쪽으로 돌리며 물었다.


“산! 산의 능력과 실력으로는 혼자서도 충분히 이곳을 벗어날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러질 않았지?”


글쎄! 왜일까? 왜 그렇게 아귀같이 미쳐 날뛰며 이들을 살리려고 했을까?


이산이 잠깐 고민하는 동안 죠의 물음을 들은 토니 역시 이산의 답을 듣고 싶었다. 이산과 자신들은 이제 만난지 한달도 안되었고 고향이나 국가는 물론 서로 언어소통도 자유롭지 못한데도 이산은 자신들을 위해 목숨을 걸었다. 무엇 때문인지 정말 궁금했다.


고개를 돌린 이산은 자신을 바라보는 죠와 토니를 보며 “컴 위드, 고우 위드”라 답하며 싱긋 웃었다. 미치겠다. 이 인간은 정말 나를 미치게 하는 사내다 라는 생각에 토니는 울컥하며 눈물이 나왔고, 죠는 가슴을 울린 충격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기만 했다.


“함께 왔으니, 함께 가야지”라는 이산의 말에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 하겠는가? 비록 이산의 영어가 표현은 틀렸지만 그 의미만은 영어의 올바른 표현보다 더 가슴을 울렸다.


죠는 문득 인간도 독이 있어 같은 인간을 중독시킬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며 자신이 이산에게 중독되고 있다는 기분 좋은 생각에 미소를 띄었다.


이렇듯 우연한 만남으로 시작된 이들의 인연의 끈이 굵어지며 질겨지고 있을 때 멀리서 헬기의 프로펠러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셋은 동시에 서로의 얼굴을 보며 안도의 웃음을 보였고, 곧 공격용 블랙호크 3대와 응급헬기 1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공격용 헬기에서 하강한 기동타격 대원들이 사주경계를 하는 동안 응급헬기가 착륙했고, 숨어있던 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산일행은 응급 헬기에서 내린 요원들의 부축을 받으며 헬기에 올랐다. 응급 요원에게 등에 업은 빌리를 넘기고 헬기에 올라 누운 이산은 헬기가 이륙하자 어제 저녁부터 지금까지의 일이 마치 꿈같고, 헬기의 프로펠러 소리가 그 어떤 세상의 자장가 보다 달콤하다는 걸 처음으로 느끼며 깊은 잠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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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16. 하얀 황금 22.04.29 2,541 61 10쪽
50 16. 하얀 황금 22.04.27 2,486 62 10쪽
49 16. 하얀 황금 22.04.25 2,569 62 10쪽
48 16. 하얀 황금 +2 22.04.22 2,636 64 8쪽
47 16. 하얀 황금 22.04.20 2,846 68 9쪽
46 15. 이어지는 인연과 이별 22.04.18 2,761 64 16쪽
45 15. 이어지는 인연과 이별 22.04.15 2,646 70 12쪽
44 15. 이어지는 인연과 이별 22.04.13 2,658 70 12쪽
43 15. 이어지는 인연과 이별 +2 22.04.11 2,704 61 11쪽
42 15. 이어지는 인연과 이별 22.04.08 2,748 65 10쪽
41 15. 이어지는 인연과 이별 +1 22.04.06 2,813 66 12쪽
40 15. 이어지는 인연과 이별 22.04.04 2,851 69 9쪽
39 15. 이어지는 인연과 이별 22.04.01 2,961 70 9쪽
38 14. 보상 그리고 깊어지는 인연들 +1 22.03.30 2,921 70 8쪽
37 14. 보상 그리고 깊어지는 인연들 +2 22.03.28 2,939 64 12쪽
36 14. 보상 그리고 깊어지는 인연들 22.03.25 3,052 71 12쪽
35 14. 보상 그리고 깊어지는 인연들 22.03.23 3,003 76 11쪽
34 14. 보상 그리고 깊어지는 인연들 22.03.21 3,112 77 15쪽
33 14. 보상 그리고 깊어지는 인연들 22.03.18 3,170 79 12쪽
32 14. 보상 그리고 깊어지는 인연들 22.03.16 3,256 71 13쪽
31 13. 회상 ; 꿈을 꾸다 22.03.14 3,114 63 11쪽
30 13. 회상 ; 꿈을 꾸다 22.03.11 3,044 74 11쪽
29 13. 회상 ; 꿈을 꾸다 22.03.09 3,107 69 10쪽
28 13. 회상 ; 꿈을 꾸다 +1 22.03.07 3,123 67 10쪽
27 13. 회상 ; 꿈을 꾸다 22.03.04 3,207 66 10쪽
» 12. 전투 ; 전설이 되다. 22.03.02 3,269 67 22쪽
25 12. 전투 ; 전설이 되다. 22.02.28 3,148 62 17쪽
24 12. 전투 ; 전설이 되다. 22.02.25 3,207 66 12쪽
23 11. 인연이 시작되다 ~ 12. 전투; 전설이 되다. 22.02.23 3,159 6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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