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 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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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찬
작품등록일 :
2022.01.02 22:13
최근연재일 :
2022.07.11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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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25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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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보상 그리고 깊어지는 인연들

DUMMY

빌리의 제안에 저녁식사를 마치고 병원 야외 휴게 탁자에 커피를 한잔 씩 놓고 앉은 네 사람은 이번 모임의 제안자인 빌리를 쳐다보았고, 그들의 시선을 느낀 빌리는 잠시 어두워지는 하늘을 보며 생각을 가다듬는 것 같더니 입을 열었다.


“우리가 만난지는 불과 한달 남짓 된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은 평생가도 못 겪을 일을 함께 겪었네. 물론 우리가 군인이라서 그런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달라. 내가 의식이 회복되고 나서 토니가 가져다 준 노트북으로 우리 동영상을 보고 정말 태어나서 처음으로 너무 많이 울었고, 밤을 새워 많은 생각을 했어."


“나는 누구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이미 나는 한번 죽어 지금껏 그냥 아무 생각과 계획없이 살아왔던 빌리는 죽었고, 이산이 선물로 준 새로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후후’ 하며 자조적인 웃음을 지은 빌리는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결심했어, 새로운 삶은 새로운 사람들과 새롭게 살기로 그래서 이런 자리를 제안하게 됐어. 나는 오아이오주 핸콕에서 태어났어” 라며 빌리는 자신의 불우했던 성장과정과 엄마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해킹하다 꼬리를 잡혀 감방대신 군을 선택했고 국방부 직속 해킹 및 도청 전문팀에 있다가 여기로 파견된 이야기와 자신의 정신적 결함까지도 담담하게 털어놓으며 긴 이야기를 마쳤다.


빌리의 솔직한 개인사를 듣던 이산도 놀랐지만 죠와 토니는 너무 놀라 이야기를 듣는 내내 빌리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였다. 지금까지 2년 가까이 같은 내무반에서 먹고 자고 작전도 같이 나가고 했지만 개인에 대한 이야기는 서로 묻지 않는 게 미국인들의 예의이고 생각이었다. 그래서 서로는 스스로가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이상 묻지도 이야기하지도 않고 지냈다.


특히 빌리는 자신들과는 많이 달랐다. 같이 부대끼며 생활은 했지만 넘으면 싫어하는 자신만의 선이 확실하게 있어서 죠와 토니가 그 선을 지켜주며 지내왔었다. 그런데 그런 것에 대한 이유를 빌리 이야기를 들으면서 알 수 있게 되었다.


“내 이야기에서 느꼈겠지만 나는 많이 부족하고 힘든 스타일이야, 하지만 나도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는 한가지는 가지고 있어. 내가 해커들 사이에서는 전설로 불리는 조로이거든”


빌리가 조로라는 말에 토니는 깜짝 놀라며


“그럼 국방부 해킹사건의 주범이 빌리 너였어?”


빌리가 피식 웃으며


“그래, 그것 때문에 내가 여기있게 된거야”


빌리와 토니의 대화에 죠는 빌리의 실력을 이해하게 되었지만 이산은 그냥 ‘빌리가 대단한 컴퓨터 전문가인가 보구나’ 라는 짐작밖에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내가 도움을 주고 싶고 평생을 같이 살아 갈 사람으로 이산을 선택했어, 아니 이제부터는 이산이 아니고 캡틴이야 내 마음속의 영원한 보스이고”


빌리의 갑작스러운 선언에 어안이 벙벙해진 이산은 잠시 당혹해하며 도대체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일단 손사레를 치며


“빌리, 그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나는 그럴 자격도 능력도 없어”라며 말리려는데


“왜? 캡틴은 내가 부족하거나 싫어?”하는 빌리의 실망한 듯한 반응에 이번엔 손사레 정도가 아닌 손을 마구 저으며


"빌리! 무슨 소리야. 빌리가 부족한 게 아니고 내가 부족하다는 거고 내가 빌리를 싫어 하다니 말도 되지 않는 소리 하지마"라고 펄쩍 뛰자


"그럼 됐어, 캡틴의 보스로써의 능력과실력은 물론 마음까지도 충분히 알고 있으니 이제 나는 캡틴이랑 평생을 같이 할거야. 캡틴이 내 유일한 가족이니까”


빌리의 말에 또 반박하려던 이산은 빌리가 자신을 유일한 가족이라고 하자 순간 가슴이 먹먹 해지고 뭔가 올라와 아무 말없이 빌리를 쳐다보기만 했다. 가족이란다, 그것도 유일한, 가족 빌리의 마음을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다. 이산이 아무 말 못하고 빌리를 멍하니 바라보는 동안, 토니와 죠도 빌리가 던져 준 충격에 자신들만의 생각에 빠져들어 갔다.


네 사람 중 빌리 만이 담담하며 편안한 눈빛으로 이산을 보고 있고 나머지 세사람은 허공에 초점을 맞추고 자신만의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멍한 상태로 있었던 무거운 침묵을 깨며 토니가 입을 열었다


"나는 이태리계 아버지와 브라질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 났어, 어려서는 아버지가 멋지고 최고인줄 알았지. 맨날 멋진 양복에 비싼 구두, 집에 오는 친구분들도 그랬으니까. LA 인근 산타모니카에 있는 작지만 멋진 집에서 파티도 자주하고 즐거운 나날들이 계속됐으니까 그럴 만도 했지. 그러다 8살정도에 아버지가 죽었어. 이태리 갱단들의 이권다툼 총격전에서 사망한 거야. 그때서야 아버지가 이태리 마피아 조직원이었다는 걸 알았고, 단란하고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우리 집은 일순간에 사라져 버리더군, 내 어머니란 사람은 나를 아버지 사촌동생집에 맡기고 어디론가 가버려 나타나질 않더군. 나중에 커서 들은 소식인데 브라질로 가서 브라질 남자와 재혼해서 살고 있다고 하더군, 후후."


"삼촌집에서 나는 천덕꾸러기였어. 아버지가 살아 계신 때는 그렇게 친절하고 살갑게 대하더니 아버지가 돌아가시니 안면을 싹 바꾸더군. 그래서 더이상 있기도 싫고 버틸 수도 없어서 그 집을 나와 카톨릭에서 운영하는 보육원으로 갔지, 그때가 10살때 였을 거야, 그곳에서 참 많이 싸웠어 처음엔 작은 덩치라 일방적으로 맞는 편이었지, 그래도 지기 싫은 성격에 안되면 돌이나 몽둥이를 들고 끝까지 악착같이 달려들어 어떻게 든 끝장을 보았지, 그래서 독종이란 별명도 얻었고, 그러다 청소년을 위한 운동프로그램을 알게되어 참가하여 정말 열심히 했지, 그런데 그곳에서 사귄 친구들이랑 어울리다 보니 거리의 꼬마 싸움꾼이 되어 있었고 몇번의 사고 끝에 유치장 신세도 좀 지고 했지, 그런데도 정신을 못 차리고 유치장을 나오면 다시 무리에 휩쓸려 대마초에 소매치기, 도둑질까지 하게 되었는데 내가 빠진 날 무리 중 서너놈이 도둑질을 하다가 들키니 강도로 변했는데, 하필 그 세탁소 주인이 해병대 출신이어서 총에 한명이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나머지도 총상을 입었지. 그 주인도 총상을 입었고, 그 얘기를 듣고 정신이 버쩍 나더군, 이대로 살면 나도 언젠가는 총을 맞고 죽던지 아닌 감방에서 썩던지, 그런데 거기에 계속 있으면 그 무리에서 벗어나기가 힘들 것 같더군, 내가 대장이었으니까. 그래서 군에 입대했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지”


토니의 긴 얘기가 끝나고 모두가 토니를 보고 있을 때


"빌리는 가족이 없고 나는 가족에게 버림받았지. 그래서 가족이 되자는 빌리의 말이 마음에 와 닿으면서도 좀전까지는 두렵게 생각되었어. 또 버림 받을까봐, 그런데 이미 나를, 아니 우리를 버려도 될 상황에서 이산은 우리를 버리질 않고 자신의 목숨을 버리려 했다는 걸 깨달았어. 난 이산과 빌리의 가족이 될 거야, 그래서 평생 둘의 옆에 있을 거야, 이게 내 마음이야"


토니가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의 결심을 털어놓자, 이산은 빌리가 얘기했을 때와는 다르게 아무 말도 없이 토니의 얼굴을 보고 있었고, 죠 역시도 말없이 토니를 보다가, 뭔가 결심이 선 듯 숨을 가다듬으며 천천히 있을 뗐다


“나는 아이티 출신 밀입국자 아버지와 아프리카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어. 미국의 모든 밀입국자들이 그러하겠지만 가난한 나라에서 온 흑인 밀입국자는 더더욱 설자리가 없어 음지로 들어갈 수밖에 없어, 아버지도 음지의 직업을 찾아야 했고 커다란 덩치와 엄청난 힘 그리고 싸움실력 덕분에 플로리다 마이애미 클럽의 보디가드가 될 수 있었지. 그런데 그 클럽이 워낙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곳이라 다들 클럽가드를 안 하려고 해 아버지 같은 불법체류자에게까지 기회가 온 거였어. 어머니 말씀이 아버지는 정말 성실 하신 분이셨다고 하더군, 나와 우리 어머니뿐만 아니라 아이티에 있는 가족들을 위해 낮에는 육체노동을 하시고 저녁부터 새벽까지 클럽가드를 하루도 빠짐없이 하셨다고 하더군, 그런데 내가 다섯살 되던 해 클럽에서 마약파티를 벌이던 놈들끼리 시비가 붙었고 이를 말리시던 아버지께서 약에 취한 놈의 총에 돌아가셨지.”


아버지 생각에 목이 메이는지 잠시 숨을 고르고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그런데 클럽, 그 개새끼들이 경찰과 짜고 사건을 유야무야시켰다고 하더군, 마약파티를 하던 놈들이 그 지역에서 힘깨나 쓰던 놈들의 자식들이었고, 아버지는 밀입국자 흑인이었으니 사건을 없었던 걸로 하기에 너무 좋았던 거지, 어머니에게 나중에 들어보니 3만불을 주면서 플로리다를 떠나라고 협박까지 했다더군”


타는 가슴을 식히려는 지 남은 커피를 마신 죠의 손에서 컵이 우그러지고 있었다.


"믿고 의지할 만한 사람들이라고는 전부 불법체류자고 흑인들 밖에 없었던 어머니는 결국 5살 어린 아들인 나까지 위험해질까 걱정되어, 결국 그곳을 떠나 뉴욕 할렘으로 올 수밖에 없었대"


죠의 가슴 아픈 얘기를 듣는 모두는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그럼에도 당할 수 밖에 없는 힘없는 사람들의 한계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아는 사람 하나 없이 5살짜리 꼬마를 데리고 할렘으로 온 어머니는 뉴욕의 살인적인 물가에 지니고 오셨던 몇만 불을 집세와 생활비 등으로 얼마 안가 다 날리시고 뼈빠지는 고생을 하셨지. 투잡은 기본이고 하루에 쓰리잡까지 하셔야 근근이 버틸 수 있었지. 그런데도 어머니는 나를 할렘의 나쁜 친구들에게서 보호하기 위해서 어려서부터 지역 어린이 프로그램에 등록을 시켜 주셔서 운동을 배울 수 있었고, 덕분에 나는 할렘의 검은 유혹에서 이겨낼 수 있었지. 그리고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신체와 운동신경덕에 13살때부터 길거리 싸움이든 정식 경기 든 또래보다 2~3살 위에까지 모조리 눕혀 소문이 나기 시작했고, 유혹의 손길이 뻗어 오더군. 싸워서 이기기만 하니 도박 격투기에 참가하지 않겠냐고? 처음엔 단호하게 거절했지 어머니가 아시면 큰일날 일이니까 거절을 했는데 끈질기더군, 체육관은 물론 학교 앞에까지 찾아와서 물고 늘어지는데 나중에는 선불까지 제시하더군. 그렇게 계속 거절하기를 2년 정도된 15살에 어머니가 결국 병으로 쓰러지셨지. 그동안 무리하셨던 게 화근 이였지. 그래서 돈이 필요했고 결국은 격투도박에 뛰어들게 되었어."


"후후, 그런데 정말 웃기더군, 싸워서 이기는 건 분명 난데 돈은 깡패새끼들이 나보다 훨씬 많이 벌더군. 물론 나도 그 돈으로 어머니 병원비와 집세 등 생활비를 감당하긴 했지만 내가 버는 돈과 그 놈들이 버는 돈의 차이가 어마어마했지. 거기에다 내가 한번도 패하지 않고 이기니까 나중에는 내 파이트 머니가 줄더군, 승률이 낮아서 돈이 안된다는 핑계로. 그러다 내가 격투도박을 한다는 걸 아시게 된 어머니가 병원을 나오시겠다고 하시더군. 아들놈 잘못되게 하느니 본인이 돌아가시겠다고. 그래서 어머니에게 맹세했지 다시는 격투도박 안 하겠다고, 그리고 간신히 어머니를 다시 병원에 입원시키고 나니 앞이 막막하더군. 모아 놓은 돈은 얼마 없는데 어머니 병원비는 감당이 안되고, 그런 와중에 군에 입대하면 돈도 돈이지만 병원비 혜택이 있다 길래 자원했고, 돈이 필요해 여기에 오게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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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13. 회상 ; 꿈을 꾸다 22.03.04 3,207 66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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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12. 전투 ; 전설이 되다. 22.02.28 3,148 62 17쪽
24 12. 전투 ; 전설이 되다. 22.02.25 3,207 6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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