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하고 싶고 글쓰기 싫을때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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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29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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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8.10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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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12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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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을 망하며

DUMMY

“가자. 삼촌.”


레나의 손을 잡고 꿈속으로 들어갔다.


- 휘이잉


눈을 뜨니 아파트 옥상이었다.

어두운 밤.

주위를 둘러보니 한 남자가 옥상에서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다크서클이 짙은 남자였다.


“저기.”


레나는 보이지 않았지만, 일단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네...”


남자의 목소리는 참으로 침울했다.

듣고 있는 나마저 기분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지금, 죽으시려고 한 거죠?”


남자가 쓴 메모에는 단 한 마디가 적혀있었다.


죽고 싶다.


“네. 죽고 싶네요.”


완전 잠옷 차림을 한 남자는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쪽은 회사원인가 봐요.”


내 몸을 살피니 정장을 입고 있었다.

나를 바라본 남자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잠시 넋두리라도 들어주실래요?”

“그러죠. 뭐.”


어두운 하늘에 낀 검은 구름을 바라보며 남자는 말을 이어나갔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요? 저에게는 재능이 있는 줄 알았어요.”

“무슨 재능?”

“그냥, 어떤 걸 하는 평균 이상은 하니깐 무엇을 하든 먹고살겠구나 했는데...”


그때, 뒤에서 레나가 캔 맥주를 몰래 두고 갔다.


“드시죠.”

“좋네요.”


- 딸칵


차가운 공기 시원한 캔 맥주를 마시며 이내 이야기를 듣기 시작했다.


“공부를 못했어요. 그래도 1등급 한 번은 맞아보고 어느 정도 인서울은 할 줄 알았는데, 입시에 실패하고 지방대를 갔어요.”

“음..”

“우리 집에는 빛이 밝았기에 최대한 돈을 많이 벌어야 했죠. 그래서 선택한 건 파이터였어요.”

“파이터?”


헌터가 생긴 이후로 급격하게 사라진 스포츠 시장이다.


“그렇죠, 뭐 당신 몸에 비하면 별 볼 일 없겠지만, 그 당시 멋있었거든요.”

“뭐가요?”


남자는 다시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


“심장이 막 뛰지 않아요? 힘들고 지치고 포기하고 싶을 때, 케이지 속에는 혼자만 있으니까...”

“아... 그런가요?”

“그 순간의 태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 그리고 그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흘린 뜨거운 눈물들.”


나도 헌터를 하지 않았다면 뭘 할지 고민하던 때가 있었던 것 같다.


“그게 너무 멋있었어요. 나 또한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조금이라도 힘을 내고 나아가고 싶었죠.”

“멋있긴 하네요.”


남자는 내 얼굴을 살짝 보여 씩 웃었다.


“그런가요? 근데 포기했어요. 아니 도망쳤죠....”

“왜요?”

“재능도 없었지만, 저에게는 줏대가 없었어요.”

“흠..”

“누가 아들이 맞고 다니는 직업을 하겠다는데 쉽게 허락해주겠어요.”

“그렇긴 하죠.”


나 역시 헌터 일에 대해 부모님이 많이 걱정하시긴 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의미 없는 포기한 나날을 보내다가 빠져든 게 있죠.”

“뭐죠?”

“웹소설이요. 원래는 소설이었지만요.”


웹소설?

항상 웹툰만 보기에 읽어본 적 없는 유형의 책이었다.


“저는 그런 게 좋았어요. 주인공이 독식해서 강해지는 것도 좋고, 잔잔한 카페를 운영하면서 힐링하는 것도 좋고, 가끔은 완전 암울 한 걸 읽는 것도 좋거든요.”

“그렇군요.”

“그거 아세요?”

“뭘요?”


남자는 하늘에 떠 있는 별을 바라보며 말하고 싶은 것 같았지만, 구름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웹소설을 읽는 이유는 대리 만족 때문이에요.”

“대리만족?”

“이런 암울한 현실보다 행복한 주인공의 삶에 자기 자신을 투영시켜 만족감을 느끼게 하는 거죠.”

“오, 생각보다 심오하네요.”

“맞죠, 심오하죠.”


남자는 어느새 한 캔을 다 먹고 다른 맥주도 까기 시작했다.


“여러 번 웹소설을 끄적이면서 연재를 하다가 이번에 공모전을 나갔어요.”

“공모전은 작가의 등용문이긴 하죠.”

“수많은 작품이 나오더라고요. 센스 넘치는 제목과 엄청난 필력...”


남자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저 또한 열심히 써보기로 노력했죠. 그 결과 악성 댓글도 받아보고 격려 댓글도 받아보고 재밌었네요.”

“혹시 결과가?”


남자는 씩 웃으면서 이야기를 꺼냈다.


“당연히 습작 다 합쳐도 50만 자 정도밖에 안 쓴 녀석이 쉽게 성공할 것 같아요? 기성들도 힘들어하는 공모전인데...”

“그렇긴 하죠. 어떤 장르를 썼나요?”

“저는 원래는 주인공이 독식하는 이야기를 썼죠. 흔한 게임 빙의 물.”


헌터와 능력 그리고 압도적인 무력을 보여주는 소설은 언제나 인기가 있다.


“근데, 망했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힐링물을 써보려고 했죠.”

“오, 힐링 좋죠. 어떤 내용이에요.”


먼 산을 바라보며 남자는 말했다.


“은퇴한 헌터가 꼬마 아가씨를 만나서 꿈속에서 힐링하는 이야기요.”

“네?”


약간 당황했다.

마치 내 이야기를 쓴 것 같았다.


“뭐, 근데 망했어요.”

“왜요?”

“꼬마 아가씨의 정체를 너무 빨리 알려줬거든요.”

“뭔데요?”


만약 드래곤이라고 하면 어쩌면 내 이야기 아니 삶은 이 작가가 만든 소설이 아닐까?


“서큐버스.”

“네?”

“왜요. 꿈속에 들어간다고 했잖아요. 그곳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을 치유하고 에너지를 얻는 거예요.”


나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서큐버스가 어떤 종족인지 아세요?”

“알죠. 남자의 정기를 빨아먹는 종족인 거.”

“근데, 그걸 꼬마 아가씨로 설정하면...”


남자는 이번에 먹던 맥주도 단번에 마셨다.


“그렇죠. 제가 처음이라서 모르고 그렇게 써버렸죠.”

“그래도 고쳤나요?”

“수정은 했죠. 그러나, 떠나간 독자들은 돌아오지 않더라고요.”


이번에는 레나가 육포도 갖다 주었다.

옥상에서 이런 건 어디서 나는지.


“망한 것 같아요. 포기하고 싶고 새로운 장르를 쓰고 싶어요.”

“왜요?”


남자는 나를 바라보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저같이 아무 능력이 없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에요.”

“하, 몸도 건강해 보이는데, 아르바이트라도 하시죠.”


당장 우리 가게에 취업시킬까?


“말씀은 고맙지만, 저는 빛이 많아요.”

“하..”

“우리 아버지에게 차를 사주기로 하고 어서 돈 벌어서 효도 시키고 싶은데...”


한심했다.

고작 20살 초반으로 보이는 녀석이 뭘 그리 생각이 많은지.


“저는 잘 나가는 사람들처럼 욕심을 부리면 안 되는 걸까요? 행복해지고 싶다...”

“네?”

“제 친구들은 다 한국에서 3손가락 안에 드는 대학에 나오고 과외만 해도 우리 엄마가 뼈 빠지게 일하는 거랑 비슷하게 벌어요.”


어이가 없다.

그건 친구들이 노력한 거 아닌가?


“그렇죠. 제가 노력을 하지 않은 거죠. 어차피 대학은 이제 시작이니까...”

“그렇긴 하죠.”

“근데, 그래서 돈을 벌고 싶었어요. 최소한 우리 엄마가 나이도 이제 50을 넘어가는데 일을 하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한심한 놈.


“그럼, 일하시면 되잖아요.”

“그래서, 웹소설을 쓰고 있죠...”


남자는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한심한 거 맞아요. 그렇지만, 아무런 빽도 능력도 없는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게 글 쓰는 것뿐이에요.”

“그런가요?”

“힐링물을 쓰고 있으면 행복해요.”

“뭐가요?”

“마치 가상 속 인물이 아니라 직접 내 눈에 장면이 보이는 것 같고, 항상 나도 딸을 키우고 싶어지죠.”


흠,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딸이라니.


“저도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저 힘든데, 아무도 내 글을 봐주는 것 같지 않아요.”

“무관심이 힘들긴 하죠.”

“조회수 1000을 넘겨봤어요. 살면서 처음으로 세운 기록이죠.”

“오!”


나도 모르게 내 일처럼 눈동자가 커졌다.


“대박이네요.”

“그렇죠? 근데, 그게 끝이에요. 베스트에는커녕 점점 글은 망해가요.”

“왜 망해요?”

“애정이 식어가니까 점점 쓰기 싫어지더라고요.”


애정은 중요하다.

어찌 되었든 이 남자가 작품을 쓰게 만들 원동력이 될 테니까.


“그러면 접어요?”

“아니요.”

“다행이네요.”

“한번 이런 한탄하는 내용을 넣어보려고요.”

“네?”


당황했다.

힐링물에 무슨 작가가 한탄하고 있는 내용을 넣으면 누가 읽겠는가...


“어차피, 아무도 안 읽어요. 어쩌면 누군가가 읽어줄 수도 있죠. 그러나, 뭔가 다 거짓 같아요.”

“네? 거짓이요?”

“다 자기 글을 읽기 위해 댓글을 쓰는 것 같고 이벤트 때문에 추천과 선호작이 느는 것 같고...”


추천 선호작 그게 무언인지 잘 모르겠지만, 이 남자 상태가 그리 좋지 않다.


“근데, 이 작품을 쓰고 있어요.”

“왜요, 그러면 포기하는 게 더 나을 것 같은데?”

“저도 그 생각이지만, 유명한 작가들도 슬럼프지만 글을 썼거든요.”


한심하다.

마치 이무기가 아닌 뱀이 용이 되려고 일부러 개똥밭에서 구르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꾸역꾸역 써서 일단 15화까지 써보려고요.”

“아직 15화도 안 썼어요?”

“네네.”


고작 15화도 안 쓰고 이런 진지한 이야기를 꺼낸다는 말인가.


“그래서 쓰는 거죠. 다음번에는 이런 아픈 작품을 밞고 더 나은 작품을 쓰기 위해...”

“그래요. 일단 끝까지 가는 게 이기는 거죠.”

“맞긴 하죠. 근데, 제가 또 포기 할까 봐 두렵네요.”


어이없는 말에 다시 화가 날 뻔했다.


“저도, 헌터 은퇴하고 디저트 가게를 열면 무조건 행복할 거로 생각했는데, 아니에요. 힘들어요.”

“근데 왜 해요?”

“그래도 포기하고 싶지 않거든요. 제가 정한 목표니까...”


남자는 나를 존경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대단하네요. 저도 언젠가 제가 쓴 작품들을 보면서 웃는 날이 올까요?”

“모르죠.”


난 달콤한 말만 하는 기계가 아니다.

때론 잔인한 현실을 말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가요... 그래도 일단은 써야 할 것 같네요.”

“그렇죠. 그런 마음가짐이 중요하죠.”

“뭔가 등장인물이 제가 직접 위로의 말을 꺼낸 것 같네요.”

“네?”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어떤 사연이 더 있는지 궁금했지만, 뭐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일어나!”


눈을 뜨니 레나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면 어떻게 레나 손도 안 잡고!”

“뭐?”


그건 꿈이 아니었다는 말인가?

잘 모르겠지만, 슬픈 작가의 한탄이었던 것 같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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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모전을 망하며 22.10.12 30 0 10쪽
2 대학교 1학년 생활을 하며 22.09.21 25 0 4쪽
1 자서전입니다. 우리 부모님께 바칩니다. 22.04.29 66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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