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화 기습
“그러지! 감자 잘 받아.”
받기 편하게 천천히 던져 준 조금 전과는 달랐다.
감자가 고블린을 향해 쏜살같이 직구로 날았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놈이야!’
관건은 대량 살상 스킬인 녹색 안개를 쓰기 전에 고블린의 멱을 따는 것.
감자를 던진 손이 멈춤 없이 허리를 스쳐 고블린을 향해 쭉 뻗었다.
허리에서 섬광같이 뿌려진 투검이 극한의 속도로 허공을 갈랐다.
쌔애애액-
고블린이 팔을 뻗어내 얼굴로 날아든 감자를 받아 들었다.
척-
감자의 뒤에 숨어 날아든 투검이 고블린의 명치에 자루 끝까지 틀어박혔다.
푹-
쩍 벌어진 입 밖으로 침이 튀었다.
“케엑!”
‘심장을 노렸는데 그새 몸을 틀었군. 제기랄! 한방 기습으로 보내기는 글렀구만.’
재빠른 손놀림에 장착한 모든 투검이 연달아 날아가기 시작했다.
쉬쉬쉬쉬쉭-
왼손에 수북이 쌓아 놓았던 감자가 바닥으로 채 떨어지기도 전에 무수한 투검이 고블린의 앞으로 들이쳤다.
순간 바닥에서부터 녹색 색소가 첨가된 젤리같이 물컹거리는 투명한 방어막이 솟구쳤다.
퍽- 퍼버버벅- 퍼억-
뾰쪽한 투검이 솟아오른 방어막에 연달아 꽂혀 들었다.
방어막의 표면이 수면에 이는 물결처럼 출렁거렸다.
빛살처럼 날아든 투검은 탄력 넘치는 끈끈한 방어막을 뚫어 버릴 듯 계속 앞으로 나아가 고블린의 코앞까지 도달했다.
투검은 당장에라도 파문이 인 야들야들한 방어막을 꿰뚫어 버릴 듯했으나 끈끈이처럼 찐득하게 눌어붙은 점성에 추진력을 잃고 도로 당겨졌다.
옅은 녹색이 도는 투명한 방어막에 고블린의 흉측한 얼굴이 생생히 투과해 보였다.
가뜩이나 사나운 얼굴을 온통 일그러뜨린 채 뻐드렁니를 바득바득 갈며 절규하듯 외쳤다.
“으윽! 비겁한 놈! 으으윽! 배신자 새끼!”
‘녹색 안개를 쓰는 고블린이 둘이나 되지는 않을 터. 너야말로 인류의 배신자가 될 놈이야. 마족의 앞잡이 주제에 어디서!’
남구가 짐을 놓아둔 구석을 향해 신속히 손을 뻗었다.
거대한 참룡도가 검집에서 빠져나와 펼친 손바닥으로 자석에 이끌리듯 빛살처럼 날아들었다.
착- 후우웅-
낚아채자마자 손목을 돌려 엄청난 가속력을 원심력으로 상쇄했다.
참룡도를 휘돌리며 곧장 튀어 나가려던 발걸음을 급히 멈추었다.
‘응?’
깜짝 놀란 남구가 정면을 응시했다.
핏물이 꾸역꾸역 배어 나오는 복부를 양손으로 틀어막은 고블린도 남구와 똑같은 곳을 노려봤다.
중독되어 절명했던 여자가 남구와 고블린 사이에서 삐거덕삐거덕 일어섰다.
이내 검붉은 안광을 번뜩이며 고블린과 시선을 맞추었다.
“꺄아아아악!”
선혈이 뚝뚝 떨어지는 입을 한껏 벌리고 목청이 찢어져라 울부짖었다.
당황한 고블린의 눈동자가 남구를 힐끗 넘겨 보았다.
억울한 듯 악에 받친 듯 악다구니를 썼다.
“비열한 놈! 또 무슨 짓이야? 정말 더러운 사술이구나!”
‘오해야! 그렇다고 네 입으로 할 말은 아니지! 네가 쓰는 스킬도 만만치 않게 더럽단다.’
벽처럼 솟구쳐 올라 강력한 점성으로 투검들을 잔뜩 품어 안고 출렁거리는 방어막을 남구도 넘겨다보았다.
‘저건 껌이야 뭐야?’
남구의 눈동자가 탕 안에서 여자들과 같이 있는 예솔을 찾았다.
박도에 새겨진 선상을 따라 발광하는 검붉은 광채가 물속에서 은은하게 비춰 보였다.
‘역시 투명화 스킬은 다른 스킬과 중복 사용이 안 되는군.’
여자의 시체가 괴성을 지르며 곧장 고블린에게 달려들었다.
“꺄아아악!”
‘동선이 겹치겠군. 나까지 육탄전을 벌일 필요는 없겠지! 차라리 잘 됐어.’
게다가 고블린 주위에는 새어 들어온 녹색 안개가 짙게 깔려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남구의 입과 코에서 흘러나온 혈액이 하관에 감아놓은 붕대를 눅눅히 적시고 있었다.
남구는 표정 변화가 없었지만, 핵산을 휘돌려 썩어 들어가는 내부의 중독을 필사적으로 막고 있었다.
남구가 바닥에 참룡도를 박아 넣었다.
까앙-
칼자루를 놓자 돌바닥을 뚫고 꼿꼿하게 박혀 든 도신이 부르르 떨렸다.
양손을 뻗어 화로 옆에 놓아두었던 활과 화살집을 당겨왔다.
재빠르게 한 움큼 화살을 뽑아 들며 이동해 시야를 확보했다.
고블린의 쭉 찢어진 입이 주문을 외우듯 중얼거렸다.
곧 투검들을 머금은 녹색 벽이 물처럼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촤아악-
달려들던 시체의 발바닥이 끈적한 액체에 달라붙었다.
기를 쓰며 허우적거렸지만 엄청난 접착력에 제자리에서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수속성 마법사! 저건 쥐덫이냐? 수속성은 수속성인데 좀 변태적이군.’
고블린의 입은 쉬지 않고 무엇인가를 계속 중얼거렸다.
뻗어낸 손바닥에 녹색의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주먹만 하게 크기를 키운 물방울이 발이 붙어 꼼짝 못 하는 되살아난 시체를 향해 쏘아졌다.
슈우우웅-
가슴 정중앙에 직격한 물방울이 폭발을 일으켰다.
파앙-
가슴에 주먹만 한 구멍이 뻥 뚫렸지만, 여자의 시체는 붙어버린 발을 떼려 여전히 격렬하게 움직였다.
믿을 수 없다는 듯 고블린의 치뜬 눈동자가 흔들렸다.
달싹거리던 기다랗게 찢어진 입술이 열렸다.
“심, 심장이 날아갔는데 어떻게?”
남구의 눈동자도 촌각이나마 흔들렸다.
‘정말 대단한 놈이군. 고작 1년이 지났을 뿐인데 이 정도 위용이라니!’
꿰뚫린 가슴 정중앙에서부터 급속하게 부패가 일어났다.
부패해 녹아내린 살점이 흐물거리며 뚝뚝 떨어져 내렸다.
그러나 여자의 시체는 여전히 괴성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꺄아아아!”
‘저 녹색 물방울에 한 방이라도 맞는다면 살 방법이 없겠어. 고블린 메이지 중에서도 최상위 육체를 얻은 모양이군.’
남구가 재빠르게 화살을 메겨 시위를 당겼다.
순식간에 붉은 광선이 살대를 타고 떠올랐다.
퉁- 쒜에에에엑-
화살이 허공에 기다란 붉은 빛줄기를 그리며 날았다.
퍼억-
삽시에 또다시 생성된 녹색의 탄력 넘치는 방어막에 박혀 들었다.
화살의 추진력에 고무줄이 늘어나듯 찐득하게 늘어나던 방어막이 출렁거리며 곧 제 모습을 되찾았다.
화살이 부르르 떨며 갇혀버렸다.
‘하! 성능 한번 좋구나! 하지만! 점화!’
꽈아앙-
화염을 뿜어내며 폭발하자 젤리 같은 방어막이 덩이덩이 터져 나갔다.
쒜쒜쒜에에엑-
뻥 뚫린 방어막의 구멍으로 날린 화살들이 또다시 막혀버렸다.
퍼퍼퍽-
방어막은 물처럼 응집하며 금방 원래의 형태를 회복했고 휑하게 터져나간 부분을 통과하던 화살들을 찐득찐득 붙들고 놔주지 않았다.
‘젠장! 반응 속도 뭐야? 생각보다 더 만만치 않은 놈이야. 저 작은 몸으로 덩치들을 해치우고 여기까지 올만 해. 충분히!’
고블린의 입에서 신음이 연신 새어 나왔다.
“크으으!”
투검이 파고든 복부에서 심각한 출혈이 계속되었다.
붕대를 풀어낸 흉측한 얼굴에서도 식은땀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이러다간 이판사판 다 죽으라고 녹색 안개를 쓸 수도 있겠어. 이제 좀 뒈져라!’
파지지직-
시위에 걸린 화살에서 푸른 뇌전이 번쩍번쩍 요란을 떨었다.
점점 번쩍거리는 광채가 그 부피와 밝기를 더해갔다.
고블린이 파리해진 안색에도 불구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흥! 내 방어막은 절대 뚫리지 않아!”
‘그래, 희망을 놓지 마! 포기하지 마!’
고블린이 자포자기하는 순간 여자들이 떼죽음을 당할 수도 있었다.
글탄 궁술은 활과 관련된 기술을 구사할 때 언제든지 적용할 수 있는 패시브 스킬이다.
글탄 궁술이 녹아든 남구의 손끝에서 뇌전을 머금은 화살이 떠났다.
쐐애애애액-
넓은 면적으로 고블린의 전면을 가로막은 방어막을 화살이 바작바작 푸른 섬광을 일으키며 돌아들었다.
방어막을 스치듯 휘어져 목덜미로 향하던 전격 화살이 황급히 들어 올린 어깨에 틀어박혔다.
퍽- 빠지지지직-
“케아아아악!”
감전된 몸뚱이가 뻣뻣하게 굳은 채 부들부들 경련했다.
‘쉽게 안 죽는군. 반격의 기회를 주면 안 돼!’
남구의 공세가 숨 쉴 틈 없이 이어졌다.
쒜쒜쒜쒜쒜에에엑-
화살 한 발 한 발마다 글탄 궁술이 적용된 속사가 녹색 방어막을 피해 곡선을 그리며 고블린의 측면으로 무수히 날아들었다.
퍽- 퍼버버벅-
팔다리와 옆구리에 철제 화살촉이 깊숙이 파고들었다.
“케에엑!”
그러나 머리를 꿰뚫지는 못했다.
고블린은 감전된 상태에서도 필사적으로 머리를 감싸 쥐고 방어막에 바짝 붙어 주저앉았다.
고블린의 고통에 찬 비명이 외쳐짐과 동시에 여자의 시체가 짚단 넘어가듯 고꾸라졌다.
철퍼덕-
질펀하게 쏟아져 내린 끈끈이에 발이 묶여 있던 시체의 눈동자에서 검붉은 광채가 사그라들었다.
곧 또 다른 여자의 시체가 검붉은 눈동자를 희번덕거리며 서서히 일어섰다.
한 움큼 움켜쥐었던 화살을 모두 소모한 남구가 화살집을 향해 손을 뻗었다.
대여섯 개의 화살이 펼친 손바닥으로 날아 왔지만 낚아채지 못했다.
슈웅- 슈우우웅-
주먹만 한 녹색 물방울이 연달아 날아왔다.
측면에 온통 화살이 박힌 고블린이 주저앉은 채 방어막 너머로 스킬을 연신 날려 보냈다.
‘스쳐도 죽음이야!’
남구의 까만 눈동자에서 반득반득 광채가 터져 나왔다.
남구에게 직격한 물방울이 폭발을 일으키기는커녕 그대로 통과해 버렸다.
고블린이 부릅뜬 눈을 껌뻑거렸다.
엄청난 속도로 날아드는 물방울을 더욱 빠른 몸짓으로 회피하여 착시현상마저 일었다.
중력 제어를 두른 신체의 움직임은 잔상을 남기는 섬광과도 같았다.
“으으으!”
고블린은 뻐드렁니를 꽉 깨물고 사력을 다해 쉴 새 없이 녹색 물방울을 날려 댔다.
그러나 공격이 거듭될수록 핏발선 눈동자에 드리운 공포심만 짙어졌다.
카앙-
공포에 질린 고블린의 눈동자가 한껏 부릅떠졌다.
돌바닥에 박혀 있던 거대한 곡도가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흉흉한 푸른 광채를 뿜어내는 도를 휘돌리는 살벌한 모습이 보였다.
남구의 움직임은 눈으로 좇을 만한 속도가 아니었다.
도를 휘두르며 들이친다면 곧 목이 떨어질 것이 분명했다.
“으윽! 안 돼!”
즉시 공격을 거두고 예상되는 진입 궤적에 무작정 방어막을 띄워 올렸다.
하나가 아니었다.
고블린의 주위에 여러 개의 녹색 벽면이 무작위로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휴! 바로 들어갔으면 거미줄에 걸린 벌레 신세가 될 뻔했네! 바로 쟤처럼.’
새로 일으킨 여자의 시체가 달려들다 갑자기 솟구친 방어막에 달라붙어 버둥거렸다.
‘정말 접착력이 장난 아니군.’
거미줄에 걸린 것처럼 몸부림치던 시체가 축 늘어졌다.
곧 또 다른 여자의 시체가 들썩거렸다.
‘그러고 보니 널린 게 여자들 시체구만.’
촤아악-
솟구쳐 올랐던 방어막이 물처럼 변해 바닥에 쏟아졌다.
일어나 달려들던 시체가 끈적한 물기를 밟고 앞으로 고꾸라졌다.
이번에는 몸 전체가 바닥에 달라붙어 허둥거리지도 못했다.
물기가 없는 바닥에서 새로운 벽체가 솟아났다.
그리고는 또다시 액체가 되어 바닥으로 쏟아져 내렸다.
같은 작업을 부지런히 반복하고 있었다.
고블린은 피와 땀을 하염없이 주룩주룩 떨구며 인근에 온통 쥐덫과 거미줄을 설치했다.
마치 주변에 자신만의 성을 쌓는 것만 같았다.
‘아우! 집요한 자식! 마나통이 대체 얼마나 큰 거야? 하긴, 화살도 못 피하는 거 보니깐 근력은 영 꽝이더군. 으윽!’
남구의 미간이 씰긋씰긋 꿈틀거렸다.
표정 관리가 되지 않을 정도로 중독된 오장육부에 참기 힘든 극심한 통증이 밀려들었다.
고블린은 스텟이 편중되어 있었지만, 마법적 능력만큼은 대단했다.
지금 이 시기에 자신의 주변을 무수한 방어막으로 온통 도배해 버리는 상대를 만나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커억!”
남구의 하관을 둘둘 감은 붕대에서 검붉은 죽은 피가 흠뻑 배어 나왔다.
머리가 핑 돌았다.
게이지가 바닥날 때까지 사용한 중력 제어 때문만은 아니었다.
‘중독 증상이 점점 심해지는구나!’
신체 재생에 특화된 핵산이 부지런히 내부를 휘젓고 다녔지만, 중독 증상은 실시간으로 가속화되었다.
충혈된 눈동자에서도 눈물처럼 핏방울이 차올랐다.
고블린은 새어 들어온 녹색 안개가 깔린 지대에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영악한 놈!’
남구와 고블린 중 누가 먼저 죽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상황에 맞닥뜨렸다.
고블린이 연신 손가락을 움찔거렸다.
‘간질간질 한가 보지? 녹색 안개를 쓰고 싶어 미치겠니?’
여자를 얻지 못한다면 어차피 죽게 될 것을 알기에 필살기를 함부로 사용하지 못할 뿐이었다.
비록 여자들까지 모두 죽게 되겠지만 여차하면 언제든지 꺼내 들만한 녹색 안개라는 최후의 보루를 고블린 메이지는 가지고 있었다.
‘너만 히든카드가 있는 건 아니야.’
남구가 망설임 없이 힘껏 땅을 박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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