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족장의 딸, 에리나(4)
“...”
어떻게 알았을까?
사실 억지로 우는 척을 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소년이 자신을 신명나게 놀리자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맺히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 나는 바로 생각을 했다.
‘이거다! 이걸로 저놈의 면상을 한 대 갈겨줄 명분이 생기겠어!’
그렇게 생각하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이것은 절대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가녀린 여인이 갑자기 울기 시작하면 뭇 남성들은 당황하기 마련.
그 증거로 앞의 소년이 당황하는 것이 느껴졌다.
비록 바로 감정을 수습했지만 당황을 했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다.
이렇게 흘러가면 자신이 주도권을 잡으며 앞으로 자신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이렇게 예쁜 여자가 우는데 어느 남성이 울지 말라고 애를 쓰고 어영부영 하겠는가.
이 싸움은 이겼다.
그래
그렇게 생각했다.
그가 이런 말을 하기 전까진 말이다.
“연기 그만하고 찾아온 본론이나 말해보세요.”
그 말에 심장이 덜컹 주저앉는 것 같았다.
아니 내가 생각해도 흔히 사람들이 우는 것 같은 자연스러움이었다.
어떻게 연기라고 확신을 하는 거지?
말문이 막혀 말을 하지 못했다.
“다 티납니다. 연기를 못하시네요.”
아니 이게 다 티가 날 정도로 내가 발연기인가?
부족의 또래들이 어렸을 적에 괴롭히면 항상 먹히던 방법이었다.
그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잘못한 줄 알고 자신에게 함부로 못하고 있었다.
주도권을 확실히 잡았기 때문이었다.
“...”
쪽팔림이 몰려와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지금 상황은 최악이다.
어설프게 주도권을 잡아오려다 역으로 꽉 잡히고 말았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여기서 어떻게 자연스럽게 넘어가지?
우는 것까진 좋았으나 그가 알아차렸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넘어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흐음. 쪽팔려서 대답을 못하시는 건가요?”
앞의 소년이 약 올리는 어투로 말했다.
이제는 선택을 해야 한다.
이대로 말도 못하고 고개만 숙이고 있으면 죽도 밥도 되지 않는법!
고개를 들어 올리고 말을 한다.
“무슨 소리야? 연기라니! 너가 계속 괴롭혔으니 눈물이 나오는 거지!”
소년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신이 나서 많이 놀린 것은 사실이고 그로인해 눈물이 난 것도 사실이니 사과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소년이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했다.
되었다!
저 피도 눈물도 없는 녀석에게 사과를 받아냈다!
이제 내가 저 녀석에게 되갚아....
“그러나 눈물이 난 후로 연기를 한 것은 사실이잖습니까? 울어서 저에게 죄책감을 가지게 하려고 하셨습니까? 아니면 반격을 해보려 하셨습니까?”
갑자기 가슴에 비수를 꽂는 말들이 푹푹 박히기 시작했다.
에리나는 소년을 보면서 눈에 초점이 사라진 듯 멍하니 바라보았다.
소년은 자신을 보며 빙긋 웃었다.
“제 앞에서 머리로 싸움을 거시다니. 그 도전을 받아들이지요. 앞으로 어떻게 해드리면 되겠습니까?”
에리나는 급하게 정신을 차리며 말했다.
“아냐! 아니야! 그런 적 없어! 하지.. 마!”
고대의 신에게 버림을 받아 악마가 되었다는 존재가 혹시 저 녀석일까.
그의 주변에서 어둠의 아우라가 퍼지는 듯 했다.
조상들로부터 내려오는 전설에는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
마음을 못되게 품거나 행동으로 남에게 계속 피해를 입히면 고대의 악마가 찾아와 되갚아주고 온갖 시련을 주어 끊임없이 괴롭히며 자멸의 길로 가게 된다는.
갑자기 그 이야기가 떠오르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내 앞의 악마가 그 악마인 것일까?
“여전히 딴 생각을 하시는군요. 지금까지 잘 놀아줬으니 이제 말해보세요. 왜 저를 찾으셨는지.”
언젠가는 뒤통수를 때리고 말리라.
그리 다짐하며 소년에게 말했다.
“아버지께 들었어. 우리 부족하고 너네 전사들하고 같이 훈련을 한다면서?”
“전사가 아니라 기사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미래에 도움이 될 겁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우리는 현재 사람이 없어서 평가가 낮지만 기본적으로 강한 부족이라고.”
“그럼 저희를 이길 수 있습니까?”
“뭐?”
“부족의 전사들 중에서 저희를 이길 수 있냐는 말입니다. 강한 부족인 것은 알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처럼, 상대의 전력과 전술을 모르는 상태에서 전투를 치르시고 싶습니까?”
“아니 당신네와 왜 싸워야 해? 같은 편이라며?”
“같은 편 맞습니다. 방금 말한 것처럼 적의 전술을 모르면 의미가 없다는 뜻이었지요. 그리고 저희의 무예와 전술, 당신의 부족의 전술 등을 파악하지 못하면 같이 싸울 때 의미가 있습니까? 같은 전장에서 전투를 한다고 해도 손발이 맞아야 싸우는 법이고, 전술도 인식을 하고 있어야 효율이 나는 법이지 그렇지 않으면 그저 벌레들이 몰려오는 꼴입니다.”
“우리가 굳이 너네 전술을 써야 해? 우리는 강한 전사들이고 전술도 가지고 있다고! 너희의 도움이 없어도 우리는 강한 부족이야!”
에리나는 화가 난 채로 외쳤다.
자기네 전술을 사용하라고 강압적으로 말하는 어투라니!
이것은 자신의 부족을 모욕하는 말이 틀림없었다.
이 사항은 절대로 넘어가서는 안 되는 말이다.
“제가 언제 저희 전술을 쓰라 했습니까?”
“뭐? 너희의 무예와 전술을 파악하지 못하면 같이 싸울 때 의미가 없다며! 그게 그 뜻이지 뭐야!!”
“그러니까요. 저희의 무예와 전술을 파악하는 것이 저희의 전술을 쓰라는 의미입니까? 파악을 해 두면 써 먹을 데가 있다는 뜻이었지요.”
“그리고 못 들으셨습니까? 훈련은 젠카 부족과 저희에서 번갈아 가면서 훈련을 한다. 그러니까 후에 전투에서 합을 맞춰 싸우기 위해 서로의 무예를 확인하고 전술을 파악한다는 것이 이번 회의의 중요 내용이었습니다. 그걸 모르셨습니까?”
“또한 전투에서 꼭 당신들의 전술만 사용한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당신은 저희의 전술을 모릅니다. 저 또한 당신네 전술을 모르고요. 현재 저희는 이도 저도 아닌 오합지졸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부족과 저희가 힘을 합쳐야 효율이 더욱 오를 뿐이고요. 지금 정보원의 말에 의하면 다른 부족들이 젠카 부족을 치려고 회의를 자주 가진다고 하는데, 당신은 무슨 자신감으로 그런 발언을 하십니까?”
“...”
“저희는 기본적으로 도와주는 입장이어서 가만히 있었습니다만, 우리와 같이 훈련을 하는 것을 굳이 왜 해야 하냐고 물었습니까?”
“...”
“저희가 제공해드린 장비 없이 그 많은 병력 감당 가능하십니까? 아니면 저희 없이 그 부족들 감당 가능하십니까?”
“아니... 내 말은...”
“지금 당신이 했던 발언은 젠카 부족과 친분을 나누고 관계 형성을 좋게 하면서 저희도 이득을 볼 수 있는 것이었기에 대륙에 있는 가족들의 목숨이 얼마나 연명이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당신들 부족만을 위해 나섰던 저희 모두를 모욕하는 발언입니다!”
소년이 그렇게 외치자 그의 기세가 갑작스럽게 달아올랐다.
그의 살기가 넘치는 기세가 주변에 퍼져 하운의 집 안에는 공기가 부족한 듯 숨쉬기가 어려웠고 에리나의 얼굴은 점점 하얗게 질려가기 시작했다.
“저희가 도와주겠다고 해서 얕보거나 모욕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함부로 판단하지 마십시오. 그 판단으로 당신네 부족과 저희 사람들이 전투에서 몰살을 당할 수도 있고 아니면...”
“서로 길이 다르니 갈라설 수도 있으니까요.”
“무..뭐야?! 당신 협박하는 거야? 당신이 그럴 권한이라도 있는 줄 알아?! 나보다 어린 놈이 무슨 막말을 하는 거야?!!”
하운은 문으로 걸어가다 에리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말 함부로 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저는 대륙에서 권한을 일체 위임받은 사람 중 한명입니다. 나이가 어리다고 함부로 대하지 마세요. 경고입니다. 방금 그 발언은 당신 부족과 갈라서도 충분했으니까요.”
에리나는 그의 말에 자신이 한 말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가기 시작했다.
그가 과격하게 예시를 들었지만, 그는 자신들의 전술과 부족의 전술을 파악하지 못한다면 전투에서 큰 힘을 발휘할 수 없다고 말을 했다.
또한 자신도 젠카 부족의 전술을 모른다고 말을 하며 같이 훈련을 해야 한다고 말을 했다.
하지만 자신은 그의 발언이 과격해 제대로 생각하지 않고 그들과의 훈련이 필요 없고 전술을 굳이 써야하냐고 비난을 했다.
이 발언으로도 크게 죄를 지었다.
그러나 그 뒤가 더 심각했다.
화가 나 이성이 마비된 자신의 발언에 그가 자신들에게 모욕을 했다며 적개심을 드러냈다.
아니 적개심이 아니라 분노를 표출하였다.
평상시 그의 태도나 들려오는 말에 의하면 그가 화를 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했었다.
대륙이라는 곳에서도 마찬가지로.
또한 그가 어리다는 사실에 그가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조차 까먹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그를 비롯한 대륙인들은 자신의 부족에게 많은 이득을 주었고 그들이 현재 받은 이득은 거의 없다시피 적었다.
그들이 제공한 식량과 장비들로 삶의 질은 풍족해지고 전투력 또한 크게 상향이 되었다.
그들의 마을 공사를 위해 전사들이 도와줬다지만 그것은 그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었고 그들의 도움에 비하면 큰 도움조차 아니었다.
그가 한 말대로 우리 부족과 갈라서면 어떻게 하나
갑자기 온갖 공포와 자책감이 들기 시작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우리 부족 말고 다른 부족과 손을 잡아도 문제가 없었다.
또한 그들은 자신들에 대한 웬만한 정보를 다 알고 있었다.
그들이 손을 놓아버리면 다른 부족들이 쳐들어온다고 하면 막아낼 수 있을까.
온갖 상념에 에리나는 두 손으로 머리를 쥐고 자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나간 말은 흘러가는 강물과 같은 법.
주워 담을 수 없었다.
*
하운이 집 문을 박차고 나오니
집 밖에는 전사들이 긴장을 한 채로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과격해져 험한 말을 했고 어마어마한 살기를 표출했다.
게다가 안에 있는 여인은 족장의 하나 뿐인 딸이었다.
그녀에게 살기를 표출하자 주위의 전사들이 몰려들어 혹시라도 큰 일이 벌어졌을까 놀라 대기하고 있는 듯 했다.
자신이 한 말이 과격하기도 했고 협박을 하기도 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발언은 무책임하고 멀리 내다보지 못했으며 하물며 자신들에게 모욕적인 발언을 내뱉었다.
그래서 화가 나 홧김에 부족과 갈라설 수 있다고 발언을 했다.
사실 자신이 한 말대로 결정권이 있었으나 혼자 함부로 말을 해서는 안 되었다.
그가 결정권이 있는 것은 무력도 무력이지만 지혜가 다른 이들에 비해 남달랐고 결정적으로 페일 남작과 친분이 있었고 자신의 발언에 대해 그동안 입증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함부로 다른이들의 의견을 묻지도 않고 그러한 발언을 한 것은 도를 벗어난 발언이었다.
하아
이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루테인 경에게 어떻게 설명을 할지가 두려웠다.
그에게 혼이 날 것이 분명했다.
그가 화를 내면 무섭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었기에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은 현재 앞에 있는 이들에게 집중을 해야 했다.
그렇기에 하운은 앞으로 나가며 말을 했다.
“안의 여인은 아무런 이상 없으니 길을 비켜주세요.”
전사들은 그 말을 듣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몰랐다.
살기가 느껴졌으나 시간은 짧았고 부족 내에서 그녀를 해치면 전투가 발생한 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의 부족 내에서 살기를 표출한 자를 그냥 보내도 되는 것일까?
“길을 비켜 주거라.”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젠카 족장이 굳은 얼굴로 하운을 바라보며 말을 했다.
전사들은 족장의 말에 자리를 비켜주었다.
하운은 앞으로 걸어가 족장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실례했습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과격해 졌군요.”
족장은 심계가 깊은 사람이었다.
그가 보기에 하운은 함부로 행동하지 않는 사람이었고 언제나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나이는 어렸으나 사고방식은 어른들 못지않았고 그는 함부로 기세를 보일 만큼 어리석은 자도 아니었다.
특히 자신의 부족 안에서 말이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안에서 무슨 사달이 났던 것이다.
그것도 아주 큰 사달이.
안에 자신의 여식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에리나도 자신이 교육을 해서 마음이 넓고 사고도 깊은 편이며 영리한 아이였다.
하지만 하운에 비하면 많이 모자랐고 가끔씩 그녀는 자신의 나이에 맞게 행동을 하며 말이 함부로 나가는 경우가 있었다.
이를 토대로 생각을 해보았을 때 자신의 여식이 잘못을 했을 경우가 컸다.
족장은 한숨을 쉬며 생각했다.
‘이 소년이 그렇게 행동한 것은 그만한 화가 날 발언을 들었다는 것이겠지.’
그로인해 부족과 대륙인들과의 관계가 나빠지면 자신들의 손해였다.
저들은 도와주는 입장이었고 자신들은 다른 부족들이 회의를 가져 자신의 부족을 공격할 낌새를 알아차렸다.
이 와중에 그들과의 관계가 나빠지면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었다.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하는 와중에 고운 미성이 들려왔다.
“무례를 끼쳐 드린 점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지금은 감정이 복받쳐 올라 설명을 드리기에 무례를 끼칠 것 같아 감정을 추스르고 다시 찾아뵈어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하운은 그렇게 말을 하고는 다시 사과를 하며 자리를 떠났다.
족장은 떠나는 하운을 보고 하운의 집을 보며 미간을 주무르고는 집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
“아빠... 어떡해?”
딸로부터 모든 설명을 들었다.
하운의 발언이 조금 과하기는 했으나 그의 말에 잘못된 점은 없었다.
하운의 발언 사이사이에 부족과의 연계와 협동 등 협력을 위한 말이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딸은 그 발언을 미처 생각하지 못하고 자신들에게 전술을 강요하는 줄 알았다고 했다.
그리고 저들의 도움이 없어도 강한 부족이며 도움이 필요 없다고 말을 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듣자 머리가 하얘지기 시작했다.
현재 부족과 대륙인들의 정보원으로부터 들려온 소문은 부족들이 모여 회의를 여러 번 가진다.
의견이 쉽게 모이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심어둔 다른 부족의 정보원으로부터 들리는 말은 젠카 부족을 비롯한 자신들에게 붙지 않은 부족들을 손을 봐줄 예정이라고 했다.
이 상황에서 대륙인들에게 막말을 했으니 어떻게 오해를 풀어야 할까.
자신의 딸도 이성이 돌아왔는지 펑펑 울며 미안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 소년이 너무 화가 나 보여 사과조차 못했다고 한다.
자신이 보기에도 너무 화가 나 보였다.
그 와중에서 만약 전사들이 시비라도 걸었다면 그야 말로 갈라질 수밖에 없었다.
최악의 상황에서 그나마 다행인 점이었다.
족장은 우선 딸을 달래주며 조용히 타일렀다.
달래주는 것은 아비로서 당연한 일이었지만 족장으로서는 혼을 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에리나도 그것을 알고 있었는지 조용히 혼을 받아들였다.
족장은 딸에게 잠시 쉬고 있으라고 말을 하고 집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하운을 찾아가서 사과를 했다.
하운 역시 자신의 발언이 과격했고 죄송하다고 사과를 했다.
사과를 하며 그를 살펴본 결과 그는 말로만 그렇게 하였지 자신의 부족과 갈라설 생각이 없어보였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그들에게 모욕감을 주었던 것은 사실이었기에 그들에게 화를 풀 만한 무언가를 주어야 했다.
하지만 부족의 상황 상 그들의 지원으로 윤택한 삶을 이어나갈 수 있었고 그들에게 줄만한 것은 딱히 없었다.
그것이 족장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하운은 신경 쓰지 말라며 자신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라며 사과를 하며 말했다.
하지만 족장은 그 상황을 알고 있었기에 자신들을 배려해 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서로 사과를 한 뒤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다 하운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만간 에리나가 찾아올 걸세. 와서 사과를 하겠지만 만약에 그녀가 퉁명스럽거나 대충 사과를 하면 바로 나에게 말을 해주게. 단단히 혼을 내줄 터이니.”
“그럴 리는 없을 겁니다. 그녀는 보기와 달리 똑똑하니까요.”
그 말을 들은 족장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나가는 하운을 바라보았다.
하운이 나가고 난 뒤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보기와는 달리? 보기에는 멍청해 보인다는 것인가?’
딸 바보에게는 욕으로 들릴 발언이었지만
그가 보기에도 자신의 딸은 가끔 멍청했으니 맞는 말을 한 것이라며
그렇게 생각을 했다.
*
깊은 밤
하운은 잠자리에 들 준비를 했다.
족장과 대화를 나누고 나가다 루테인 경에게 끌려가 한 소리를 들었다.
아니 한 소리가 아니라 한 바가지를 들었다.
그도 에리나의 발언이 잘못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너라면 대화를 좋게 이어나갔을 것이라고 말을 했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그녀를 놀리다보니 말이 과격해지는 것을 참지 못했다.
누나를 놀리면 못쓰고 여자를 울리면 못쓰며 너의 발언으로 그녀가 화가 났으니 너의 잘못이 크다고 했다.
틀린 말이 없었다.
그렇기에 더욱 쓰게 다가왔다.
가슴이 아팠다.
자신도 어린아이인데
투정을 부리고 싶고 평범한 아이들처럼 생활을 하고 싶은데
주위에서 그렇게 못하게 방해를 하는 것 같았다.
이계에 떨어지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쳤다.
페일 남작에게 도움을 받고 살면서 눈치를 보지 않게 열심히 생활을 했다.
또래답지 않게 공부를 하며 온갖 서적이란 서적은 다 읽고 온갖 영지를 돌아다니며 많은 지식을 쌓았다.
아빠가 페일 남작을 도와 일을 하고 엄마와 이모가 사업을 구상할 때 자신만 노는 것 같아 일부로 데칼 경을 찾아가 제안을 했고 받아들여졌다.
평소에는 하영이를 신경 쓰면서 바쁜 부모님과 이모에게 투정도 부리며 놀러가자고 하고 싶었다.
그러나 한 참 바쁜 와중이었다.
자신의 소원은 가족과 편안한 나들이, 피크닉을 가서 평범한 아이처럼 애교도 부리고 장난도 치며 놀고 싶었다.
‘연화’의 사업이 잘 나가고 안정적으로 변했다.
피크닉을 가긴 했으나 제대로 즐기지는 못하였고 지르테 후작의 욕심이 남작 령에 퍼지기 시작했다.
엄마와 이모를 노리고 두 분께서 벌어들인 돈을 노렸다.
다행히 우리의 편이 생겨 그들을 막아주었다.
그런 와중에 마르타 섬을 발견했다.
이 섬은 왕국만큼 큰 섬이었다.
이곳은 대륙에서 아무도 모르기에 남작령의 사람들이 이주할 환경이 되었다.
또한 평야와 땅은 비옥했고 이 섬의 부족의 사람들은 많지는 않았다.
그러다 마음에 맞는 부족을 찾았다.
그들을 거의 공짜로 도와주는 듯 많은 도움을 주었다.
후에 땅을 비롯한 많은 부분의 이권을 넘겨받겠으나 현재로서는 지원을 퍼주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대륙에서, 가족의 품에서 떨어진 지 오래라 많은 그리움이 자신도 모르게 가슴에 쌓였다.
언제나 어른스러운 척, 심계가 깊은 것은 사실이었으나 티를 내지 않고 오직 후에 평안을 위해 달려왔다.
또한 외세의 위험에서 언제든지 가족을 지킬 수 있게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고 온 몸이 비명을 지르고 근육이 살려달라고 외칠 만큼 앞만 보고 달려왔다.
루테인 경이 그러다 골로 간다며 훈련 금지를 내렸다.
그러던 와중 또래의 소녀를 발견했다.
자신보다 누나였지만 대화를 나누며 놀리는 재미가 있었다.
그녀를 놀릴 때면 자신이 드디어 온갖 거품과 가죽을 둘러싼 것을 벗어내는 느낌이었다.
갑갑하던 자신에게 삶의 활력을 되찾아 주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녀를 놀려서는 안 되었다.
자신의 기분을 위해 그녀를 힘들게 했다.
알면서도 그만 두지를 못했다.
그만두면 자신이 무너져 내릴까봐 남을 힘들게 했다.
그러다 그녀를 화가 나게 만들었다.
대화가 과격해진 것은 자신의 잘못이었다.
‘우리를 이길 수 있냐’
그러한 발언은 그 부족을 무시하는 발언이었고 그녀를 무시하는 발언이었다.
해서는 안 되었다.
그러나 자신의 이성은 하지 말라고 했으나 그 말은 뇌를 거치지 않고 나왔다.
거기에서부터 시작이었다.
그녀가 화를 내었고 자신들을 모욕하였고 결국 나는 화가 나 그녀에게 해서는 안 될 말을 했다.
그녀는 착했고 예뻤다.
자신으로부터 그렇게 모욕을 당할 존재가 아니었다.
그녀는 화사한 빛이었고 자신은 시들어가는 꽃, 저물어가는 해와 같았다.
자신과는 전혀 다른 세상의 존재였다.
그것에 자신도 모르게 행동을 했다.
뒤늦게 후회를 했다.
결국 자신으로 인해 그녀에게 가슴 아픈 큰 비수를 내다 꽂았다.
모든 것이 내 탓이었다.
그녀는 여린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남들에게는 짐짓 강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 그녀는 자신을 자책하며 울고 있을 것이다.
자신에게 어떻게 사과를 해야 하는지 생각을 하며 풀이 죽어있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악의 시작과 끝은 나였다.
그녀가 그런 상황을 만든 것은 나였다.
복잡했다.
쉬고 싶다.
삶의 의욕이 없다.
이러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그녀에게 상처를 주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어린 아이임에도 어른인 척을 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이곳에 오는 것이 아니었는데.
배를 타는 것이 아니었는데.
엄마와 이모의 사업에 관여하는 것이 아니었는데.
온갖 공부를 하며 기대감을 주는 것이 아니었는데.
그리고
야구 경기장에 경기를 보러 가자고 조르는 것이 아니었는데.
온갖 후회가 밀려들어온다.
온갖 감정이 몰아친다.
온갖 상념이 떠오른다.
온갖 그리움이 사무친다.
두렵다.
이러다가 내 자신이 없어질 까봐.
두렵다..
이런 나를 주위 사람들이 싫어할까봐.
두렵다...
이런 나를...
사람들이 괴물로 볼까 봐...
하운은 침상에서 무릎을 굽혀 앉은 채
소리 없이 울었다.
- 작가의말
글을 쓰다가 한글 파일에 렉이 걸렸습니다. 그 순간 식은땀이 나더군요.
30분동안 작성한 4천자가 증발할까봐... 기다렸지만 풀리지 않았습니다.
저장은 평소 하지 않는 편이었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클릭을 했습니다.
프로그램 응답없음이 뜨며 닫기가 떴습니다.
눈을 감고 닫기를 눌렀습니다.
다시 한글파일을 누르니 직전에 썻던 글들이 뜨더라고요.
그 짧은 시간 희로애락을 느꼈습니다.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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