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차, 청국
청 황제는 조선, 정확하게는 공충도의 ‘그것’이 뿌리는 쌍열산탄총과 그 탄약, 그리고 현재 기술로는 구현도 불가능하고 공략도 불가능한 전함에 깊은 우려를 보내고 있었다. 그것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현재 무기로는 어림도 없는 일.
“전국에 있는 모든 공인과 장인, 그리고 공학과 과학에 조예가 깊은 자들을 모아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최고의 대우를 해줄 터인즉!”
그렇게 해서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자들 중, 붉은 혁명에서 용케 숙청당하지 않고 살아남아 여기저기 숨어 지내던 장인들을 긁어모을 수 있었다. 그들을 모아 관청을 세우니, 이름하여 별기연구소(別技硏究所)였다.
그리고 그 연구소는 예산과 인원을 충실하게 받아 나름대로 성과를 올리고 있었다. 저번에 기계화 호랑이사냥꾼들이 노획하고 놀랐던 8연발 리볼버나 두꺼운 금속 탄피를 쓰게 만든 후장식 단발 소총등이 그것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청국군의 화력이 기존 화승총이나 수석총을 쓸 때보다 최소 5배 이상 올라갔기에, 황제는 나름 만족하고 있었다. 곧 별기연구소에는 엄청난 포상이 내려졌고, 그 포상 내역을 전국에 뿌려 더 많은 인재가 별기연구소에 들어오도록 하는 나름대로의 선전전도 이루어졌다.
그때까지는 좋았다.
공충도에 추가로 세뇌된 공작원을 보내기 위해 실시됬던 조선인 납치 계획이 틀어지고, 그 과정에서 조선이 공수전차와 그것을 수송할 수 있는 수송체계, 그리고 기관총을 완성해서 실전 배치했다고 생각한 황제는 별기연구소를 개같이 굴리기 시작했다.
청 황제는 미친 듯이 아랫것들을 갈구고 여기저기 구멍이 난 아이디어를 계속 주면서 결과물을 뽑아낼 것을 강요했다.
“부르셨나이까 폐하.”
“짐이 생각해 둔 새로운 무기가 있소.”
“어떠한 것이옵니까 폐하?”
“구상은 했는데 공돌이가 필요하오.”
순간, 그 공돌이가 된 신하는 좆된 것을 감지했다.
“...어떤 구상이옵니까?”
“비밀을 엄수하여야만 할 것이다. 어떠한 장갑(裝甲, Armor)이건 뚫을 수 있는 총에 관한 것인데...”
“신이 아둔하여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 것인지 모르겠나이다. 부디 가르침을 내려 주시옵소서.”
“그건 짐도 모르지.”
“.......”
순간 그 공돌이는 “네?”라고 반문할 뻔 했다. 그러나 그 말을 뱉은 자들이 대개 숙청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는 간신히 목구멍까지 차오른 반문을 삼킬 수 있었다.
“그래서 짐이 별기연구소를 세우고 예산을 무한히 퍼주고 있지 않은가. 사람이 모자란가? 그렇다면 얼마든지 뽑아라. 예산은 짐이 다 대줄 터인즉.”
그러면서 황제는 그림도 몇 장 그려서 건네주었다. 별기연구소의 공돌이들은 처음 보는 것이었으나, 그 형태는 대충 AK, RPG-7, C96과 같은 것이었고, 내부에 어떠한 것들이 들어가는지도 대충 그려진 것이었다.
문제는 개념만 전해줬을 뿐, 세부적인 것은 이제 공돌이들이 알아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니 시발 탄피 주조도 간신히 하고 있고, 공구 단조도 제대로 못해서 총열 깎기도 못해 돌돌 말아 두들겨 만드는 와중인데 그걸 위아래로 용접해서 붙이고 내부에 딱 맞는 가스활대를 만들어 용수철에 연결해서 저걸 재장전되도록 하라굽쇼?”
“배째라고 하십쇼. 때려 죽여도 못합니다 이건.”
“그러면 진짜 배 째실걸?”
“...시발.”
뒤숭숭한 분위기를 잡기 위해, 연구소장이 일단 뭐라도 해 보자고 말을 꺼냈다.
“그럼 일단 가능한 것부터 하니씩 만들어 올리고, 시간이라도 벌자.”
“가능한 것이라니요?”
“그 뭐냐..어떠한 장갑이건 뚫을 수 있는 총을 만들어 올리라고 하셨던데...”
“......그게 두 번째 그림입니까요?”
“이게 어떻게 총입니까?”
그들은 붓으로 괴발개발 그린 RPG-7을 보고 말했다.
“그럼 진짜 총으로 저 양놈들 배 장갑을 뚫을 수 있다고 생각하냐?”
“...존나게 큰 총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요?”
그렇게 해서 그들은 두 조로 나뉘어 한 팀은 RPG-7 그림을 보고 그것을 비슷하게 흉내내어 만들어보기 시작했고, 다른 한 조는 존나게 큰 총을 만들어보기 시작했다.
장갑을 뚫을 수 있는 총을 만드는 것은 차라리 쉬웠다. 모처럼 후장식 총기를 만들긴 했지만, 이번에 만드는 총은 화약을 있는대로 때려박을 물건이라 뒤쪽을 단단히 막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다시 뒤쪽이 막힌 전장식 총기로 돌아갔고, 대신 총신 자체를 포에 가까운 수준으로 두텁게 만들고 외부에 쇠판을 감아 보강해 터지지 않도록 했다.
“조선의 그 산탄총 내경이 어찌 된다고 했지?”
“반 촌(寸, 약 3cm)보다는 크고, 2/3촌보다는 약간 작소.”
“단일 탄체 철탄을 쓰면 대충 반 촌짜리 철판을 관통하는구나...”
어둠의 경로로 입수한 조선제 쌍열 산탄총을 바탕으로 관통력을 시험해 본 그들은, 그것을 참고삼아 총의 개발 방향을 잡아나갔다.
“연기 없는 화약의 위력이 월등하게 좋소. 같은 무게면 대충 2배의 위력을 내는 것 같소.”
“그렇다면 우리는 1촌짜리 탄자에 철심을 넣은 납탄으로 탄두 1/4근짜리(약 125g), 화약은 반 근을 넣고 쏘는 것으로 해 봅시다.”
관통력에 몰빵하기 위해 강선조차 파지 않은 그것은 탄자 무게를 4배, 화약 무게는 10배나 늘렸는데도 반 촌짜리 철판을 관통하는 것이 채 절반이 되지 않았다. 초고속 카메라라도 있으면 탄자가 철판에 닿는 순간, 깨지며 끝이 뭉툭해지는 머쉬루밍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겠으나, 그걸 알아차리기에는 마땅한 장비도, 기술도 없었다.
“철심의 무게와 형태를 바꾸어 보고, 통짜 철탄을 써 보거나 탄자의 모양을 바꿔보거나 합시다.”
그렇게 맨땅에 헤딩하며 사람을 갈아넣은지 40여일만에 드디어 1백여 보에서 한 치짜리 철판을 관통하는 총을 만들어내는데 성공한 그들은 한숨 돌렸다.
한편, 황제가 그려 준 개념도 중, AK나 C96은 손도 대지 못하고 대신 RPG-7을 재현해보는 다른 팀은 난항을 겪고 있었다.
“결국 진천뢰를 들고 쏘는 무기인데... 대완구에 끼워 쏘는 대신, 이 가늘디 가는 발사관에 끼우고 쏜다는 말씀 아닙니까?”
“그렇지.”
“대완구로 쏘더라도 포가 갈라져 사수와 아군을 잡는 일이 부지기수인데, 이렇게 얇은 관으로 이루어진 발사관에 역시 얇은 피만 씌운 화약덩어리를 쏴서 날리라는 말씀이십니까 지금?”
“까라면 까야지 어쩌겠는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자폭병기 ‘진양’을 여러 본 만들어 본 경험이 쌓여, 흑색화약을 추진체로 쓰는 로켓모터에 대한 노하우가 청국군에 있었다는 것이었다. 좀 무거운 폭죽을 쏘아 낸다는 느낌으로, 발사관은 튼튼한 쇠파이프를 쓰고 탄두는 긴 도화선을 달아 지연신관 효과를 내는 식으로 해서 마침내 무언가 만들어낼 수 있었다.
흑색화약 로켓을 추진체로 쓰고, 흑색화약이 가득 채워진 탄두를 쏘아내는 그것은 비록 성형작약탄과 같은 구조를 가진 것은 아니었으나, 보병이 들고 쏠 수 있는 폭발물이라는 것에 의의가 있었다. 개당 무게는 10근정도였고, 탄두 무게 1근에 추진체 무게 2근이라 보병이 혼자 들고 다니다가 쏠 수 있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RPG-7을 보고 만든 것이 판처파우스트 1의 조악한 복제품 정도가 된 셈이었다.
사거리는 30여보가 채 되지 않았으나, 황제는 일단 만족했다. 중일전쟁때 일본군은 창에다 성형작약탄을 매달아 직접 찌르거나 검으로 탱크를 베거나 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에 비하면 얼마나 진보한 무기체계란 말인가.
“장하다. 이렇게 단시간 안에 이러한 것들을 만들어 내다니. 역시 하고자 하는 인민의 의지야말로 그 무엇보다 강한 것 아닌가! 내 크게 상을 내릴 것이야.”
그렇게 만족한 황제는 바로 실사격 시험을 지시했다.
“...맙소사. 우린 이제 죽었다.”
사격을 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단지 한 발 쏴본 것이 다였다. 더구나 저렇게 얇은 화약 덩어리에 불을 붙여 발사하는 방식인 그것은 아차하면 자폭할 퀄리티였다.
“그래, 딱 한 발씩만 쏘면 된다. 설마 한발에 터지진 않겠지.”
그렇게 소장이 직접 사격을 하기로 했다.
“빡!”
경망스러운 소리와 함께 그 판처파우스트 짝퉁은 흰 연기를 남기며 날아갔고, 표적에 닿기 전에 터져 표적 주변을 흰 연기로 물들였다.
“조금 더 개량하면 쓸만하겠구나. 수고했느니라.”
어쨌거나 황제는 만족한 모양이었다. 소장도 흐르는 땀을 닦으며, 살아남은 것에 안도했다.
그렇게 별기연구소에 평화가 찾아오는 듯 했으나....
“탱크와 기관총을 상대할 교리를 만들어야 한다.”
“적이 하늘로 날아다닐지도 모르니 대공무기도 만들어야 한다.”
“개인이 휴대할 수 있는 화기, 2인 1조, 혹은 5인 1조로 도수운반이 가능한 무기체계들이어야 한다.”
“기한은 올해 안.”
다시 떨어진 황제의 명에 별기연구소는 다시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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