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차, 영국 -2-
“차분기관의 제작은 잘 되어가시나요? 어머...엄청나게 크네요? 대충...3차 함수까지 계산 가능하게 만드신거죠?”
“크...노동자의 피와 땀이 서린 물건이군요 이것은.”
“이거...제대로 완성되면 자기장의 변화와 유도 기전력 사이 식을 검증하는데에 유용하게 쓸 수 있겠구만.”
러브레이스, 디킨스 그리고 패러데이가 차분기관 프로토타입을 보며 각자 감상을 이야기했다.
“내게 시간과 예산이 조금만 더 있었더라면...”
찰스 배비지가 아직 아픈 다리를 절뚝이며 그들을 맞이했다.
차분기관이란 일종의 기계식 계산기였다.
기계식 계산기의 원리 자체는 간단해서, 이미 파스칼이 덧셈과 뺄셈이 가능한 계산기를 만든 바 있었다. 톱니바퀴에 톱니 10개를 파고, 각각의 톱니에 숫자 0~9까지 대입한 후, 더하고 싶은 두 개의 숫자에 해당하는 톱니를 돌려 나오는 결과가 자릿수가 바뀔 경우 한 자릿수 위 숫자에 해당하는 톱니를 한 칸 돌려줄 수 있는 구조를 만들면 되는 것이었다.
뺄셈은 좀 복잡했다. 톱니를 역방향으로 돌리면 되는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자릿수를 내려야 할 경우 이번에는 아랫 자리의 숫자를 바꿀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그러면 간단한 뺄셈 계산기조차 구조가 너무 커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보수(complement)를 써서 뺄셈을 하는 기계를 만들게 되었다. 어차피 톱니에 써 있는 숫자는 0~9까지니까 4를 빼기 위해 뒤로 돌리는 것이나 앞으로 6칸을 돌리는 것이나 표시되는 숫자는 같으니 톱니의 진행 방향은 그대로 두고, 대신 자릿수를 옮겨 주는 기어를 한 칸 내리는 식으로 쓰는 것이었다.
곱셈의 경우 덧셈을 반복하는 것으로 구현할 수 있었다. 덧셈을 하기 위해 실린더를 한바퀴 돌리면 덧셈이 끝나는 식이고, 여러번 돌리면 곱셈을 계산할 수 있었다. 나눗셈 또한 뺄셈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계산할 수 있었다.
여기까지라면 그래도 지금 가지고 있는 재료와 기계공학 지식만으로도 구현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차분기관’이라는 이름답게, 그 이상을 계산하려 하면 기계 자체가 복잡해질 수 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찰스의 차분기관은 기본적으로 다행함수의 연산이 가능하도록 하는 물건이었다. 사칙연산만 가능한 기계식 계산기로 다항함수를 구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는 입력조차 어려웠다. 그래서 다항함수의 계산이라면 각 항의 계차(Δ1, Δ2....)를 구해 점화식을 만들고, 이것을 입력하여 복잡한 다항식의 계산 결과값을 알아낼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차분기관이었다.
영국군의 경우, 차분기관을 통해 곡사포의 탄도를 계산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고, 찰스의 보험계리사 일을 봤던 보험회사와 영국 상무부에서는 각종 예산안이나 보험 계리, 위험도 산정, 적절한 세율, 그 외의 오만 잡다한 계산식을 이 기계를 써서 계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꽤나 많은 예산을 주었다..고 생각했지만, 수십만개의 정밀한 톱니바퀴와 캠, 밸브, 체인, 크랭크 등등을 만드는 것에는 생각보다 엄청난 예산이 필요했다. 지금 대량 생산체계가 자리잡힌 곳은 기껏해야 방직공장 정도였고, 정밀한 소형 금속부품을 대량으로 찍어내는 수준까지는 산업계가 오지 못한 까닭이었다.
그래서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깎은 부품 7천개와 무게 1.5톤짜리 ‘작은’ 프로토타입이 먼저 완성되었다. 여섯자리 숫자를 입력 가능하고 3차함수까지 계산 가능한 모델이었다.
“일단 작동하는 것을 보여주실 수 있으신가요?”
“물론이네.”
찰스는 톱니를 돌려 숫자를 입력하고, 크랭크를 돌려 여섯자리 숫자의 3차 함수를 계산하기 시작했다. 크랭크가 한바퀴 돌 때마다 사람 키만한 톱니바퀴 뭉치들이 자릿수를 올려 받아가며 한번씩 ‘철컥’소리를 내었고, 대칭형으로 만들어져 있는 기계 부품들은 아름답게 물결치며 돌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이거 그냥 예술품으로 팔아도 되겠는데요.”
문과적 감성의 디킨스가 그 모습을 보며 영감을 얻는 동안, 차분기관은 연산을 마쳤는지 한쪽 구석에 연결되어 있는 종이 두루마리를 들어 숫자가 빽빽하게 적혀있는 타공기에 밀어넣었다. 그렇게 종이 위에는 긴 숫자가 한 줄 찍혀나왔다.
“그래도 이게 실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으니, 예산을 더 딸 수 있지 않을까요?”
“어제 이미 조인트를 까였으니, 추가 예산을 따 내는 것은 어렵지 싶소.”
이것을 만들기까지 정부에서 찰스에게 준 예산은 무려 1만 7천 파운드가 넘었다. 순전히 정부 예산만 들어간 것도 아니었다. 찰스는 여기에다 사비도 2만 파운드 가까이 부어 넣었다. 그러나 그 결과로 여섯자리 숫자를 입력 가능한 3차함수 계산기는 영국 정부의 입맛에 만족스럽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음식은 아무거나 잘 쳐먹으면서 차분기관 보는 것은 몹시 까다롭게 보는구만.”
“그야 영국인들인걸요.”
“신구빈법(New Poor Law)따위를 만들어 팔다리 멀쩡한 빈민들을 공장에 끌어다 병신될때까지 굴리는 자들 아닙니까. 돈에 영혼까지 팔아먹는 자들...”
“아니야, 돈은 중요하지... 나도 충분한 시간과 예산을 위해서라면 영혼이라도 팔 수 있겠네.”
“무슨 영혼까지 팔 생각을 하는가.”
“이것을 만들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거든.”
“어떤 것이죠?”
“생각하는 기계에 대한 것이네.”
차분기관은 다항함수를 계산할 수 있는 것이었고, 주 목적은 탄도 계산, 로그, 삼각함수 표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찰스는 차분기관을 실제로 만들고, 만드는 도중 개량해야 할 점을 생각하다 어떤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만약, 고정된 함수를 계산하는 기계가 아니라 중간중간에 서로 다른 공식과 데이터를 집어넣고, 다른 기계에 저장되어 있는 함수를 필요할 때 불러오거나 조건부 분기를 만들어 자동으로 계산할 수 있게 할 수 있다면 어떻겠는가?”
찰스는 한참 뒤에 나올 튜링 머신, 현대식 컴퓨터의 기본이 되는 개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개념은 재미있지만, 그게 지금 기술로 가능하겠는가?”
“차분기관도 예산 문제로 어려운거지 불가능한 것은 아니잖아요? 가능하면 재밌겠는데요. 이왕이면 반복 수행이나 if~else같은 조건문도 붙일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네요.”
“아~ 완벽히 이해했습니다!(이해못함)”
그렇게 그들은 한참 찰스의 아이디어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찰스는 당대의 천재들이라 할 수 있는 마이클 패러데이와 에이다 러브레이스와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아이디어를 좀 더 구체화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 대화가 오간 후에야, 찰스는 물어보았다.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아, 그렇지. 저 멀리 청나라보다 더더욱 극동 지역에 있는 조선이라는 나라가 있는데, 거기 Gong-chung province라는 곳이 그렇게 과학기술이 발전한 곳이라고 하더군.”
“Gong-chung province of Chosen? 처음 들어보는 곳인데...”
“자네가 여기 틀어박혀 이것과 씨름만 한 지도 벌써 몇 년이 지났으니까... 작년쯤부터 유명해진 곳이네.”
“작년?”
“왜 여왕님께서 즉위 5주년 기념으로 관함식을 하셨는데, 그때 관함식장이 뒤집어진 사건은 들어본 적 있지 않은가?”
“그렇지. 대단했다더군.”
“그것을 계기로 한 달에 한 번씩 조선과 이곳 사이에 연락선이 오가고 있네.”
“그런가...? 잠깐, 한 달에 한번이라니, 그 정도로 연락선이 많이 편성되어있는가? 인도도 그 정도 빈도로 연락선이 오고 가는 것으로 알고있는데.. 중요한 곳인가 보구만.”
“아니. 배는 딱 두 척이야.”
“...어디랬지? 청보다 더 극동?”
“그래.”
“그렇다면 보자...”
찰스는 잠시 암산을 해 보더니 말했다.
“최소한 20노트로 쉬지 않고 달려야 홍콩까지 한 달은 걸릴텐데, 그보다 더 멀다면서.”
“그렇지.”
“당장 가자.”
이번엔 패러데이가 놀라고 말았다.
“뭐?”
“그 정도 배를 만들 기술력이면 기계는 다 잘 만들겠지. 여기보다 못 살테니 물가도 쌀 것이고. 같은 예산이면 거기 가서 만드는 것이 더 싸고 빨리 만들지도 모르겠어.”
“거기 가서 차분기관을 완성하려는 것인가?”
“아니.”
“그럼?”
“해석기관(analytical engine)을 만들거야.”
“...여기서 차분기관도 완성하지 못했는데 괜찮겠는가?”
“차분기관을 여럿 묶어야 할 텐데, 여기서는 차분기관 한 대도 못 만들고 늙어죽겠어. 한달이면 간다면서? 자네도 가는가?”
“나도 가야지.”
“왜?”
“거기에 실험용이 아니라 실제 공장을 돌리는데 쓰이는 발전소가 들어섰다고 하더라고. 전기가 하는 일을 직접 볼 수 있다는데 어찌 가지 않겠나.”
“그럼 저도 가겠어요.”
“자네도? 자네는 남편과 아이가 있는 몸 아닌가?”
“다 같이 가자고 설득해봐야죠. 다녀올게요.”
넷 중 셋이 간다고 하니, 다들 디킨스에게로 시선이 쏠렸다.
“자네는 어쩌겠는가? 같이 갈텐가?”
디킨스의 현재 직업은 기자였으니, 가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사유서를 올리자, 편집장이 당장 다녀올 것을 명했다.
그렇게 네 명+그들의 식솔이 멀리 조선을 향하는 쾌속선에 올랐다.
오히려 승선은 쉬웠다.
조선쪽에서 그들을 찾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정확하게는 패러데이를 찾고 있던 것이었으나, 그와 함께 오는 사람들은 모두 잘 대접해 모시라는 명이 떨어져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그들은 돌아오기 힘든 길을 나서게 되었다.
- 작가의말
‘페퍼로니즘’님의 댓글에 아이디어를 얻어 ‘과학메카 공충 프로빈스’를 쓰게 되었습니다. 아이디어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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