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말에 투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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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자아 아카데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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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05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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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8.24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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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 오영국 점장(2)

DUMMY

나는 종말에 투자했다

30화 / 성주, 오영국 점장(2)




나는 텅 빈 방 안에 앉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내 몸은 어느 빌라 안이었지만, 내 정신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 언데드 하수인 ‘던전 쥐’가 <감각 공유>를 발동합니다!

* 언데드 하수인 ‘던전 쥐’의 시야를 공유받습니다.

* 언데드 하수인 ‘던전 쥐’의 청각을 공유받습니다.


“멈춰봐, 제리.”


제리와 레미를 T마트 안으로 잠입시킨 뒤, 녀석들과 감각을 동화 중이었다.


“오케이, 계속 가.”


큰 건물인 만큼, 환풍구도 널찍해서 오고 가기가 편했다.

그렇게 십 분 정도가 지나자, 대충 상황 파악이 끝났다.


일단 마트 주차장 부근에서 ‘운명의 제단’ 하나가 확인됐다.


생김새를 보아하니, 드워프 초월자 『금강석 망치를 쥔 건축가』의 제단이었다.


지금까지 등장한 쓰레기 같은 초월자들과 비견하면, 아주 선한 축에 속하는 초월자다.

필멸자 시절에 제 종족에 닥친 재앙을 막기 위해서 ‘방주’ 건설에 일생을 쏟은 전력이 있는 만큼, 화신에게 우호적인 초월자였다.

그리고 생존자들을 도우려고도 하고.


그런데 문제는.


“갑자기 오크라······.”


오크를 생포해서 정신 지배할 수 있는 스킬을 쓰는 사람이 함께 있다는 것이었다.


“두 초월자는 물과 기름이니까, 손을 잡았을 리는 없고.”


답은 간단했다.

나랑 만난 적도 없으면서 나에게 현상금을 건 『검은 엄니의 선봉장』,

그 녀석의 화신이겠지.

아마도 내가 한 방 먹였던 『가장 작은 노예왕』과 손을 잡은 걸 테고.


스토리가 대충 그려진다.

악당들이 뭉치고 있다는 거지?


어쨌든, 내부 상황을 파악했으니 움직일 차례였다.


나는 제리와 레미를 구석진 곳에 대기 시킨 뒤, 눈을 떴다.


그리고 방문을 열었다.

밖에는 최수아와 박지훈이 대기 중이었다.


“얘들아, 너희가 불쌍한 연기 좀 해줘야겠는데.”


* * * * *


3대의 트럭이 떠나간 뒤, T마트 안은 짙은 고요에 잠겼다.


“······.”


점장, 오영국은 자신의 뒤에 서 있던 직원들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생과 사를 함께했던 동료가, 모르는 이들에게 강제로 끌려갔다.

그 말도 안 되는 상황 앞에서 그는 지켜보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무력감 이전에, 면목이 없었다.


“점장님······.”


멈춰 선 에스컬레이터를 터벅터벅 걸어 올라가 3층 점장 사무실로 들어갔다.


“하······.”


머리를 움켜쥐다가 이마를 책상에 찍었다.

그리고 찰나의 순간, 자신에 대해서 돌아보았다.


‘나는······ 뭐지? 내가 뭘 할 수 있는 거야?’


갑자기 찾아온 재앙 속에서 그저 사람들과 함께 살고자 발버둥 쳤다.

하지만 언제나 그에게 책임이라는 무게는 벅찼고, 곧 무너질 것만 같았고, 결국 이렇게 한계에 봉착해버렸다.


‘······힘을, 빌려야만 했어.’


오영국에게 처음으로 손을 내민 건, 초월자 『금강석 망치를 쥔 건축가』.

그 존재는 힘─기프트(Gift)를 내어주기에 앞서 강력하게 경고했었다.

아주 버거운 대가가 있을 것이라고······.


“내가 오만했지······.”


대가를 지불하는 건 당연하다고 여기고는 초월자의 손을 덥석 붙잡고 말았다.


‘하지만, 이렇게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무거울 줄이야······.’


그래서 우연히 찾아온 무법자들과 손을 맞잡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손을 맞잡은 게 아니라 강제적으로 잡힌 것 같았지만······.


- 초월자 『금강석 망치를 쥔 건축가』가 당신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위로라······.’


저 정체불명의 존재는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조차도 할 수 있는 게 없는지, 해결 방안을 제시해주진 않았다.


오영국이 그 시스템 메시지를 바라보며 냉소를 머금고 있자, 초월자가 직접 목소리를 내었다.


진언(眞言).


하지만 그의 진언은, 견디기 힘들 정도로 무겁지 않았다.


「······나의 화신 오영국, 나는 너에게 이미 경고했다. 대가가 무거울 것을.」


“나는······ 당신과의 계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고요.”


계약 조건은 ‘성채’를 지정하고 수호하는 것.

그리고 성채를 정의하는 조건을, 초월자 『금강석 망치를 쥔 건축가』는 ‘사람들’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런데 방금, 그 사람들을 강제로 빼앗기지 않았던가?

이대로 화신의 지위를 박탈당해도 오영국은 할 말이 없었다.


「버텨라. 굳건한 기둥처럼, 몇 개의 벽이 허물어지더라도.」


“······.”


「나의 기프트란 그런 것이다. 폭풍우에 견디고, 보수를 거듭하면서 쌓아 올리는. 무너지지만 않는다면 끝내 거대한 성채가 된다. 그렇게 영겁의 시간을 이어가면 역사에 기록될 것이다.」


참 멋들어진 말이었다.

그러나 역사를 조금이라도 배웠다면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살아남은 성은, 몇 개 없다는 것을.


「네가 나의 제단에 접촉하여 계약을 시도했을 때, 나는 네가 튜토리얼에서 무슨 경험을 했는지 살펴볼 수 있었다. 그리고 확신했다. 네가 내 축성(築城)의 거중기가 되어줄 수 있다는 걸. 너는 가능성이 있는 존재다.」


이어서.


- 3번째 화신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화신 퀘스트]

- 이름 : 역경에도 흔들리지 않는 기둥

- 내용 : 단 한 명의 희생자 없이 [2차 수성 퀘스트]를 클리어하시오.

- 보상 : 선금 2,000 골드, 완료 시 5,000 골드


“어, 선금 골드······ 응원입니까?”


초월자, 『금강석 망치를 쥔 건축가』가 대체 누구인지, 어떤 존재인지는 오영국이 알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인간적으로 오영국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다는 건 느껴졌다.


「내가 해줄 수 있는 조언은 하나다. 버텨라, 언젠가 책임과 인내로 완전히 무너질 때까지.」


계속되는 조언에, 오영국은 어느새 가슴 속 어딘가가 열리는 기분을 느꼈다.


책임감과 인내심, 그건 오영국이 가진 몇 안 되는 능력 중 하나였다.

수많은 직원을 이끌어야 하는 리더로서, 그리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도······ 끝내 버텨서 먼 곳에 떨어져 있는 가족들도 찾으러 나서야 하기에.


“그래요, 그럼 한 번······ 버텨보겠습니다.”


다시금 버텨보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렸고, 이내 문이 열리며 여자 한 명이 들어섰다.

오영국의 부하직원인 박희연 주임이었다.

그녀는 울상이었다. 방금, 그녀의 입사 동기가 괴한들에게 막무가내로 끌려갔기 때문일 터였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저, 점장님······ 그 사람들이 빨리 오시라고······.”


우습게도, 묘한 자신감을 되찾았던 오영국은 그 한마디를 듣는 순간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그 사람들이라면, 오크를 부리는 깡패들.


그 녹색 괴물들의 흉악한 모습과 거대한 도끼날이 떠오르자······.


‘두렵다.’


어쩌면 이미, 이 성의 주인이 바뀐 것인지도 몰랐다.


* * * * *


오영국은 박희연 주임을 따라 내려갔다.


“박 주임, 혹시 무슨 일인지 알아?”

“잘 모르겠어요. 1층에서 물품 보관함을 둘러보더니, 점장님을 모셔 오래서요······.”

“설마, 그 잠겨 있는 20번 칸 때문인가?”


이내 그들은 매장 1층, 후문 쪽에 도착했다.

후문은 온갖 가구들로 바리케이드를 쌓아둔 상태였다. 그중 하나는 철제 물품 보관함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 보관함 앞에, 조폭 둘이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오크 두 마리가 서 있었다.


인간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크고, 고릴라처럼 근육질인 몬스터.

오영국은 바짝 움츠러들었다.

저런 것을 앞에 두고, 어떻게 당당해질 수 있단 말인가?


“어, 아저씨. 일로 좀 와봐.”


두 조폭 중, 한 명이 오영국을 보며 손짓했다. 무례한 행동이었지만, 오영국은 고분고분하게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박태민이 두고 간 이들의 리더 격인 김민섭이었기에.


“예······ 무슨 일이신지요.”

“왜 혼자 어디 짱박혀 있는 거야?”

“예?”

“앞으로 어디 숨어 있지 말고, 다 같이 있자고. 위험하잖아.”


대놓고 감시하겠다는 의미였다.

오영국은 고개를 푹 숙이며 대답했다.


“아, 예······.”

“그리고 이거, 뭔지 알고 있지?”


그가 엄지로 자신의 뒤를 가리켰다.


철제 물품 보관함, 그 하단을 이루고 있는 가장 큰 보관함 5개 중 하나가 사슬에 채워져 있었다.

그것도 일반적인 철 사슬도 아닌, 반투명한 황금색 사슬로.

누가 봐도 특별한 게 들어있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는 모양새였다.


물론, 오영국도 진즉에 보관함을 발견했었다.

튜토리얼 전까지만 해도 평범했던 보관함이, 튜토리얼이 끝난 후 갑자기 저리 변했으니 관심이 안 갈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보관함에 손을 가져다 대면······.


- 해당 아이템에 접근 권한이 없습니다.


따위의 시스템 메시지만 출력될 뿐. 무슨 수를 써도 열리지 않았다.


“······그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흠······ 아저씨, 구라치다 걸리면 일 복잡해지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지?”

“아니, 정말입니다. 저희도 어제 발견했는데, 열려고 해도 안 열립니다.”


오영국이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말했다.

그러자 김민섭이 비릿하게 웃으면서 보관함을 툭 쳤다.


“그러면 내가 열어봐도 되는 거지? 내가 열면 내 거다?”

“아, 예······ 저도 뭐가 들어있는지 몰라서요.”

“어이, 뭉치야.”


오크 한 마리가 성큼성큼 보관함 앞에 다가서더니, 도끼를 들어 올렸다.


쾅──! 쾅──!


건물 안을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철과 철이 부딪히는 소리.

그러나 되려 오크가 지쳐 숨을 헐떡일 때까지 20번 보관함은 멀쩡했다.

흠집 하나라도 날 법한데, 도끼로 내려치기 전 그대로였다.


“시발, 이거 대체 뭐야?”


김민섭도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보관함을 쳐다봤다.


그때.


“─형님!”


김민섭의 부하 하나가 달려왔다.

머리를 빽빽 민 스킨 헤드였다.

그리고 그 뒤로 오영국의 직원들도 같이 달려오고 있었다.


“왜, 뭐야.”

“밖에, 누가 나타났습니다.”


오영국도 의아한 표정으로 직원들을 바라보자, 직원들이 대답했다.


“그게······ 웬 사람들이 정문 쪽으로 다가와서, 문을 열어달라고 하고 있어요. 아마도 다른 튜토리얼 지역의 생존자들 같은데요.”


하, 김민섭이 콧방귀를 뀌었다.


“어이, 점장 아저씨.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어?”

“······튜토리얼이 시작되기 전 빼고는, 예, 처음입니다.”

“하긴, 전부 튜토리얼도 못 깨고 헤매고 있을 텐데.”


김민섭이 오크들을 끌고 정문을 향했다.


정문 입구에 도착한 김민섭은 부하의 말대로 사람들이 주차장에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인원은 대략 이십여 명 정도.

몇몇이 손을 흔드는 게 SOS 요청으로 보였다.


“음, 꼴 보면 튜토리얼에서 보스 몬스터도 못 잡고 5일 버틴 애들 같은데.”

“그럼 완전 좆밥들 아닙니까?”

“그래도 골드는 좀 있을 테고······ 그 노예상 애새끼한테 팔아먹으면 짭짭하겠네, 개꿀.”


김민섭은 이게 웬 횡재냐는 듯이, 손가락을 튕겼다.


“아저씨, 정문 열어요.”

“······예?”

“저 사람들 안 불쌍해? 받아줘야지.”


능글맞게 웃으며 말하는 김민섭.

오영국은 방금 대화를 듣지 못했지만, 김민섭이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는 정도는 알 수 있었다.


“······아, 예. 그러죠.”


애초에 김민섭이 그리 말하지 않아도 오영국은 정문을 열 생각이기도 했다.


오영국이 정문을 열기 위해 앞으로 나서자, 김민섭이 말을 이었다.


“그래도 밥은 많이 주지 말고, 한군데 모아서 감시하고, 무기는 전부 수거하고.”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발을 돌리려다가, 무언가 생각났는지 제 부하를 향해 손짓했다.


“야, 혹시나 그 현상 수배범 새끼가 있는지, 얼굴 확인하고. 뭐, 해골 같은 거 안 데리고 다니는 거 보면 아닌 것 같지만, 혹시 모르잖아?”


* * * * *


오영국은 그렇게 폐쇄해놨던 정문을 열었다.


불안한 기색으로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

그들 중에서 도끼를 든 한 노인이 앞으로 나와서 말했다.


“받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는 이 근처 아파트에서 왔습니다.”

“······튜토리얼에서 살아남으신 건가요?”

“예, 겨우 살았네요. 오늘 밤은 또 어떻게 넘기나 걱정했는데, 덕분에 한시름 놨습니다.”


오영국은 생존자들을 살폈다. 대다수가 노약자들이었다.

근육질의 거구가 한 명 보였지만, 저런 사람 한 명 있다고 생존 가능성이 늘어나는 건 아니었다.

계속 밖에서 지냈다면, 얼마 못 버텼을 것이 분명했다.


“저희도 넉넉지 않지만······ 그래도, 내일까지는 안전할 겁니다.”


- 다음 웨이브까지 남은 시간 : 122시간 16분.


이 시간이 다 지나가면, 또 한 번 몬스터 웨이브가 닥친다.

그때도 저 무법자 놈들이 자신들을 구해줄 것인지, 솔직히 오영국은 확신할 수 없었다.

저들은 분명 강했지만, 제 잇속만 챙기려고 한다는 걸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눈치챌 수 있었다.


그때, 조폭 둘이 다가왔다.

오크는 숨겨뒀는지 보이지 않았다.


“자, 방금 들어온 사람들. 싹 다 얼굴 들어봐요.”

“말 안 들으면 죽일 수도 있어요.”


생존자 무리를 위협하는 조폭들. 죽여버린다는 말에 조금 훈훈해졌던 분위기가 급격하게 식었다.

이윽고 사람들이 조용해지자, 그들은 한 명 한 명 얼굴을 살피기 시작했다.


“······없는 것 같은데요, 형님?”

“하긴, 그 정도 되는 놈이 난민처럼 애처롭게 기어들어 오겠어?”

“그런데 솔직히, 그딴 멸치 새끼들이 우리 퉁퉁이랑 뭉치 같은 진성 헬창한테 상대가 될 것 같지도 않네요.”


낄낄거리던 두 남자는 곧 굳은 얼굴로 생존자 무리를 향해 말했다.


“자, 무기 싹 다 꺼내서 여기 통에다가 넣는다, 실시!”

“빨리빨리 하자─ 밥 먹어야지!”


생존자 무리가 웅성거렸고, 특히 방금 오영국과 인사를 나눴던 노인이 난처한 기색으로 오영국을 바라봤다.


“······.”


오영국은, 이번에도 아무 말 할 수 없었다.


.

.

.


1층 창고 안, 오영국이 새로 온 사람들에게 줄 이불을 꺼내고 있었다.


“자, 이게 마지막이야.”


직원들은 아무런 대답 없이 모포를 들고 나갔다.

동료가 끌려간 충격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한 상태인 듯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살아남자고 의기투합했던 이들이거늘······ 한순간에 모든 게 무너지고 있었다.


“하······.”


직원들이 다 나간 뒤에야 한숨을 내쉰 오영국은, 뒷정리하고 불을 껐다.


이윽고 그가 창고를 나가려는 순간······.


토도도도─


작은 흰색 물체가 창고 안쪽에서 움직이는 게 아닌가?


‘뭐지?’


쥐 같은 게 있으면 큰일이었다. 안 그래도 부족한 식량을 갉아먹기라도 한다면······.

혹시나 해서 다시 불을 켠 오영국은 잠시 뒤, 고개를 갸웃했다.


“응?”


선반 위에 웬 종잇조각이 놓여 있었다.

몇 번 접은 것이었는데, 방금 올려둔 건지 흔들거리고 있었다.


왠지 불길함이 들었지만······ 오영국은 그쪽으로 다가가서, 종이를 집어 들고 펼쳐봤다.


“헙!”


그리고 입을 틀어막을 수밖에 없었다.


- 점장님, 3층 비품 창고로 몰래 오세요. 저희 탈출해서 숨어들어왔어요.


이건······ 몇 시간 전에 강제로 끌려갔던 직원들이 남긴 메모가 분명했다.


급히 창고에서 나오자, 사람들이 한쪽에 모여있는 게 보였다.

조폭들은 그들을 감시하듯이 소파를 가져다 놓고 앉아 있었다.


“······.”


은근슬쩍 에스컬레이터 쪽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우리 점장 아저씨는 또 어디를 가세요. 내가 아까 말한 거 까먹었어요?”


소파에 앉아 있던 김민섭이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오영국을 보고 있었다.

순간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지만, 오영국은 최대한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두고 온 물건이 있어서, 금방 가지고 오겠습니다.”


김민섭이 오영국의 눈동자를 똑바로 바라봤다.


“······.”


오영국은 차마 그 눈동자를 마주 보지 못하고 시선을 깔았다.

그러자 김민섭이 피식 웃었다.


“조심하세요. 이제 혼자 큰 방 쓸 시기 아닌 거 알잖아?”

“······압니다. 금방 가져오겠습니다.”

“점장 아저씨, 조심해. 나 눈치 빨라.”

“예······.”


정말 다행히도, 직원들이 탈출했다는 건 아직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었다.

오영국은 비품 창고에 도착한 뒤 곧장 문을 잠갔다. 그리고 불을 켰다.


탁─


아무도 없었다.


“······?”


느껴지는 건 한 줄기의 바람뿐이었다.


‘······바람?’


그의 시선에 창문이 들어왔다. 분명 단단히 잠가두었던 창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아니, 으스러져 있었다고 하는 게 옳은 듯했는데, 강제로 뜯은 흔적이 역력했다.

게다가 창틀 주변에는 꼭 발톱 자국 같은 게 남아 있었고.


또 한 가지 의문은, 여기가 말이 3층이지 마트의 층고가 높아 족히 7m는 되는 높이라는 것이다.

발을 디딜 곳도 없어서 창문을 뜯어내기도 힘들 텐데, 도대체 누가······.


오영국은 천천히 창문을 향해 다가가며 말했다.


“이 대리······ 김 주임······ 너희야?”


하지만 대답은 없었고.


창문에 다다른 순간, 등 뒤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놀라서 고개를 돌리자······.


“쉿─”


웬 남자가 서 있었다.


“속여서 미안합니다. 그렇게 안 하면 안 오실 것 같아서.”


오영국은 이 남자를 본 적이 있었다.


“다, 당신은······.”


다름 아닌, 박태민이 건넸던 ‘현상 수배지’를 통해서.

3명의 초월자가 현상금을 내걸었다는, 흉악한 존재.


“아, 내가 누군지 알겠나 보네요.”

“······.”

“그렇다면 대화가 더 쉽겠습니다.”

“그게 무슨 마, 말씀입니까?”


남자가 다가왔고, 오영국은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계속 뒤로 물러날 순 없었다. 이보다 뒤는 창밖이니까.


“제가 음······ 거래를 제안하고 싶은데요.”


오영국은 당황스러웠다.

요 며칠 그 ‘거래’라는 것에 대한 폭력적인 대가를, 뼈저리게 체감했기 때문이다.


“죄, 죄송하지만······ 저는, 거래 같은, 그러니까, 드릴 게 없는데······.”


그러자 남자가 고개를 내저었다.


“그쪽 말고요.”


그가 검지를 펼쳐서 위를 가리킨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제안이 날아들었다.


“그쪽의 초월자와 거래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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