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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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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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1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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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0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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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6화 벗어날 수 없는 신세

DUMMY

306화 벗어날 수 없는 신세


‘불란국 특유의 복색에 일본인치고는 체구가 제법 크지만 인상 자체는 일본 사람 그대로인 사내라.’


안으로 들어온 시로타의 행색을 살핀 이만영은 잠시 고민하다가 굳은 얼굴로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여기까지 왔나?”


여러 의미가 함축된 질문에 시로타가 낸 대답이며 보인 반응은 이런저런 대답을 상정하고 있던 이만영의 상상과는 좀 달랐다.


이만영은 시로타가 그저 간단한 사실만을 입에 담든 아니면 적당히 꾸미든 말을 아낄 거라고 여겼다.


김을수가 한 말에 의하면 이 자도 무언가 뒤가 구린 것이 분명하니, 함부로 입을 놀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나으리! 제발 살려주십쇼! 저, 저는 그저 가족들을 데리고 떠나고 싶었을 뿐입니다!”

“응? 응?”


대뜸 바닥에 엎드려 비니 이만영은 적지 않게 당황하며 저도 모르게 김을수를 보았다.


그러나 김을수라고 무언가 아는 바가 있을 리 만무하니 볼 수 있는 것은 그와 마찬가지로 당황한 얼굴뿐이었다.


그런 와중에 시로타는 말을 멈추지 않고 제 사정을 고했다.


“저, 저는 지난 민란 이래 입국이 금지된, 추방된 일본인입니다! 하지만 가족들은 여전히 이곳에 있으니, 사람 새끼로 태어나서 어찌 가족을 잊습니까? 그래서 언제고 돌아올 기회를 생각하던 중에 이번에 정말 좋은 기회가 있어서 발걸음한 것입니다!”


굉장히 솔직하게 사정을 고하는 말에 이만영은 혼란스러우면서도 그 이유를 공감했다.


“그래, 사람이 어찌 가족을 버리겠나. 내 그 심정은 이해하네.”


그러나 공감은 공감이고 현실은 현실이니, 이만영은 곧장 딱 잘라서 돕기 어렵다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밀입국이라니, 너무 위험한 방법을 골랐어. 나가는 일이라고 쉽지 않을 터, 미안하지만 나는 조선 사람으로 조선이며 우리나라 사람에게 위해가 가는 일은 할 수 없네.”

“저, 저는 밀입국한 게 아닙니다!”

“······자네, 방금 직접 쫓겨났다며?”


밀입국한 게 아니라는 말에 이해가 되지 않아 다시 물으니, 이만영은 돌아오는 대답에 저도 모르게 두통을 느끼며 이마를 짚었다.


“청나라 친왕 전하가 이번에 온 사신단, 그 사신단에 함께 왔습니다!”

“보국친왕 전하랑 함께 왔다고?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수 있긴 하군.”


뜬금없는 말에 이만영은 얼마 전에 서신으로 전해진 일을 기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이자가 어떻게 일본에 돌아오고 가족을 데리고 나가려는지 감이 잡힌 것이다.


“그리고 그 선단은 내 알기로 곧 이곳에 도착 예정이지. 그때 함께 타고 나갈 생각이었군?”

“예, 예.”

“후우.”


사정을 아니 이건 손을 내밀기도 그렇고 아니 내밀기도 그런 일이었다.


그러하여 고민하던 중 이만영은 아직 듣지 못한 일이 몇몇 있다는 걸 깨닫고 물었다.


“자네 가족들은 어디에 있나?”

“지금은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절에서 살고 있습니다. 저는 혹시나 배가 일찍 도착하였는가 살피러 온 것입니다.”

“그럼 습격은 왜 당했어? 내가 볼 때 그저 행상으로 보이는 게 다였을 거 같은데.”

“그, 그게······.”


습격당한 이유를 물으니 지금까지 말을 거리낌 없이 내던 시로타가 처음으로 망설이는 기색을 보였다.


이에 이만영은 캐어 묻고 싶은 것을 참으며 기다렸다.


거부감은 보이나 지금까지 한 말들로 미루어 보건대 시로타가 이미 모든 걸 털어놓을 생각으로 이 자리에 온 것이 분명해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만영의 이 생각은 제대로 맞아들었으니, 시로타는 불안함을 감추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저는······저는 전에 시마바라에서 일어난 민란에 아주 조금은 관련이 있습니다.”

“아주 조금 관련이 있다?”


민란과 거리를 두면서도 그 관련성이 아주 없지 않음을 뜻하는 말에 이만영은 고개를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이만영의 머리에 어느 단어가 떠오르니, 그는 시로타가 왜 이렇게 주저하고 두려워하며 말을 돌리는지 깨달았다.


“과연. 자네, 키리시탄이라고 하는 자들 중 하나군?”

“······예, 나으리.”


간신히 대답한 시로타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후미에, 라는 걸 알고 계십니까?”


처음 듣는 말에 이만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르네.”

“천주의 아들과 그 어머니를 그린 것입니다. 막부에서는 이것으로 저희에게 밟으라고 합니다. 저와 가족들은 난이 일어난 이래 숨어 살아서 당하지 않았지만 차마 할 수 없는 일이라 여럿이 끌려가서 죽었다고 들었습니다.”

“흐음.”


무슨 의도로 벌였는지 알 거 같은 일에 이만영은 복잡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유학자에게 경전을 밟으라고 하며 중에게 불상을 부수라는 말과 다르지 않군.’

“그런데 이곳으로 오던 중에 산길에서 버려진 후미에를 보았습니다.”

“버려졌다?”

“예. 제가 그렇게 생각했을 뿐이지만요.”


시로타는 그렇게 말하며 얼굴에 그늘을 드리웠으나 이내에 그 그늘을 떨쳐냈다.


그는 비록 이렇게 되었다고 한들 그가 한 일을 후회하진 않았다.


“진흙 속에서 아무렇게나 버려진 걸 보고 차마 내버려 둘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손을 대서 옮겼습니다. 그저 바로 세우고 닦기만 하고 떠나자,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천으로 닦고 있자니 그들이 나타났습니다.”

“낭인이라는 자들인가?”

“예. 그들은 곧장 저를 밀치고 죽이려고 했는데, 다행이도 같이 데리고 온 시로 덕에 살아서 도망칠 수 있었습니다.”

“시로?”


누군가 다른 사람이 희생되었나 싶어서 이만영은 안타까운 얼굴이 되었다.


그러나 이어진 말에 그는 잘못 생각하였음을 알았다.


“시로는 제가 떠나기 전에 사서 가족에게 맡긴 개입니다. 멀리 가는 저를 대신하여 남긴 녀석이죠.”


개를 생각하니 시로타는 조금 마음이 편해지는 걸 느껴미 말을 덧붙였다.


“몇 년이 지났는데 절 여전히 기억하며 따라주길래 작은 도움이라도 될까 싶어서 데리고 왔습니다.”

“도움이 되긴 했습니다. 개를 본 탓에 이 사람을 찾았으니 말입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김을수가 말을 보태니 이만영은 그 개가 참 기특하게 느껴졌다.


“훌륭한 충신이군.”

“좋은 가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로타가 대답하니 이만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키리시탄이라고 했지. 전에 있던 민란이며 자네들 존재는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도 알아보았네.”


불교나 도교와 같이 잡스럽다는 생각을 품기는 하나 한편으로는 그런 것에 의지해야 할 정도로 이곳이 개판이었다는 사실을 이만영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민란에 가담한 이가 모두 죽었다고 소문까지 죽는 것은 아니니, 전에 이곳을 다스렸던 마츠다이라 가문이 저질렀던 짓들은 정녕 듣기만 해도 눈살이 찌푸려지는 일들이었다.


“이곳 사람은 아니지만 키리시탄이고 그게 발각되어서 쫓겼다라. 그리고 자네를 죽이려는 건 그저 낭인들이고.”

“예. 저는 민란을 일으킨 사람들과는 그저 그들과 신앙을 공유할 뿐입니다. 본래도 저와 제 가족은 이곳이 아니라 시마바라 경계를 넘어 조금 가면 있는 마을에서 살았으니까요.”

“그렇단 말이지.”


얼추 상황이 이만영의 머릿속에서 그려지기 시작했다.


‘이 나라에 남아있으면 죽을 사람들인가.’


민란에 가담한 것은 아니나 키리시탄은 본디 민란 전에도 탄압당하던 이들이라 들은 바가 있었다.


물론 이만영은 도교와 같은 것들이 백성을 너무 심취하게 하면 그 폐해가 어떤지 알고 있으니 그것을 이상하다고 여기진 않았다.


하지만 도교든 불교든 아니면 회회교든 그걸 믿고 안다고 해서 항상 뒤집고 일어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다수 사람은 그저 그것을 믿고 의지하여 어려운 하루하루를 견디어 살아가고 있는 게 현실이니 이만영은 시로타며 그 가족들이 죽을 만한 사람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후우. 작금 일본 조정에서 내리는 처우가 그대들에게 가혹함은 나도 귀동냥으로 들어서 알고 있네. 그래서 떠나고자 함도 이해는 해.”

“그것만이 아닙니다. 뱃사람으로 천하를 돌아보니 알겠더군요.”


천하를 보고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말에 이만영은 흥미로운 얼굴로 되물었다.


“알았다? 무엇을 말인가?”

“여기서는 아무리 노력해도 쓸모가 없다는 현실입니다.”

“······.”


차마 무어라 대답하기 어려운 말이며, 대답을 미연에 차단하는 한이 서린 말이기도 했다.


그리고 시로타 역시 딱히 대답을 바란 것이 아닌지 아니면 한번 토해내니 멈추기 어려웠던지 계속해서 입을 움직였다.


“밑바닥이 힘든 건 어디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천하를 둘러보니 슬프게도 일본이 가장 벗어날 수 없는 나라였습니다. 지위도, 재산도 말입니다.”

“······벗어날 수 없다.”


밑바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지위도 재산도 달라지지 않는다.


시로타가 하는 말들을 곱씹은 이만영은 크게 충격을 받았다.


‘사람은 배워서 익히고 정진하면 나아갈 수 있고, 나아질 수 있다. 또한 응당 조선은 사대부의 나라며 양인이면 누구나 배워서 출사할 수 있다. 허나 지금 정말 그런가?’


지금까지야 안타까운 일이나 사실 반쯤은 남의 일이라고 여겼다.


헌데 말을 듣던 중 이만영은 이리 생각했다.


사람 사는 것이 힘든 것은 어디든 마찬가지다, 그렇게 말이다.


하지만 말을 되새길수록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이건, 이건 잘못되었어.”

“나으리, 부디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저와 제 가족들을 불쌍히 여겨서 도와주십쇼!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겠습니다!”


시로타가 이만영의 말에 이때다 싶어서 머리를 바짝 바닥에 대며 외쳤다.


이에 이만영은 복잡한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고민 어린 얼굴로 그렇게 보고 있자니 바깥에서 이만영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검상 나으리, 전령이 왔습니다. 참의 심기원 영감께서 보내셨답니다.”

“응?”


생각지도 못한 말에 이만영은 멍한 얼굴을 했다가 저 말이 품고 있는 사실이며 현실을 떠올렸다.


동시에 정신이 번쩍 들며 내면에 있던 저울이 한쪽으로 크게 기운 이만영은 바깥을 향해서 급히 외쳤다.


“잠시 기다리라고 해라!”

“예, 나으리.”


외쳐서 잠시 만남을 미룬 이만영은 진중한 얼굴로 시로타를 내려다보았다.


“시로타라고 했지.”

“그렇습니다.”

“나는 방금까지 자네를 도울지 말지 심히 고민하고 있었고, 동정적이지만 조선에 이게 좋은 일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네.”

“이해합니다.”


씁쓸함이 담긴 말에 이만영은 안타까움을 눈으로 드러내며 말을 이었다.


“헌데 지금 알았네. 이건 내가 결정할 수 없는 일이야.”

“예?”

“나는 이곳에서 제일 높으나, 조금 있으면 당분간은 아랫사람이 되지. 책임자가 아닌 자가 어찌 판별하겠나. 그저 나는 자네의 이야기를 소상히 전하여 은혜를 얻도록 돕는 게 전부네.”


이만영이 하는 말들을 듣던 중 시로타 역시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이곳에 곧 올 이들이 있다는 것은 그 역시 알고 있었으니 말이다.


“다만 덕분에 나는 내려놓고 생각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대를 위해 돕자고 하겠네. 그러니 이후에는 내가 아니라 참의 영감께 간청하게.”


고작 이것인가 하고 시로타가 생각하는 것도 잠시, 이어진 말은 놀라웠다.


“그때는 나도 자네 옆에서 함께 엎드려서 간청하겠네.”


작가의말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kkatnip, Ssoon님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후원하여 주신 기대에 응해 더욱 좋은 글을 쓰도록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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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 331화 산이 높다 하여 보고만 있으면 오를 수 없다 +5 23.09.01 325 21 15쪽
331 330화 백가쟁명 +7 23.08.31 322 27 15쪽
330 329화 왈가왈부 +2 23.08.30 323 20 14쪽
329 328화 나누어 퍼진다 +5 23.08.29 320 21 15쪽
328 327화 천자와 황제 +3 23.08.28 342 24 14쪽
327 326화 크다고 하여 위에 있지 않다 +4 23.08.27 320 21 14쪽
326 325화 자만은 눈을 가린다 +2 23.08.26 305 21 12쪽
325 324화 사방과 교류하면 사방 소문이 들어온다 +1 23.08.25 312 19 12쪽
324 323화 번국과 이웃 +4 23.08.24 323 20 14쪽
323 322화 어울림과 편함은 별개다 +8 23.08.23 319 20 13쪽
322 321화 돌아온 시기 +6 23.08.22 344 19 12쪽
321 320화 피할 수 없다면 궁리해야 한다 +3 23.08.21 294 15 12쪽
320 319화 내방 +2 23.08.20 305 22 11쪽
319 318화 각각의 법도 +3 23.08.19 312 20 15쪽
318 317화 분노는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3 23.08.18 315 23 13쪽
317 316화 배는 나아간다 +4 23.08.17 319 25 12쪽
316 315화 사람을 얻는 방법 +3 23.08.16 327 20 13쪽
315 314화 역린은 만지면 반드시 죽는다 +4 23.08.15 332 24 15쪽
314 313화 삼인성호 +3 23.08.14 329 24 15쪽
313 312화 책임을 효과적으로 지우는 법 +4 23.08.13 316 21 15쪽
312 311화 천운 +4 23.08.12 321 18 12쪽
311 310화 욕심의 끝 +4 23.08.11 322 20 13쪽
310 309화 미끼 +5 23.08.10 316 18 13쪽
309 308화 조짐 +2 23.08.09 320 22 14쪽
308 307화 일을 키우는 것도 방법이다 +4 23.08.08 313 18 12쪽
» 306화 벗어날 수 없는 신세 +3 23.08.07 326 24 12쪽
306 305화 증오는 멋대로 자란다 +3 23.08.06 284 20 12쪽
305 304화 변하는 것은 쉽지 않다 23.08.05 305 22 15쪽
304 303화 약자의 비애 +2 23.08.04 307 17 13쪽
303 302화 옛 땅과 새 땅 +3 23.08.03 334 2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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