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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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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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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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1화 천운

DUMMY

311화 천운


서두른 덕일까, 고리키 타다후사는 진화 작업이 모두 끝나기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광경을 직접 목격하게 된 타다후사는 전혀 다행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이, 이게 대체 무슨······.”


사방에서 연기와 불길이 솟으며 그것들을 잡으려고 사람들이 바삐 뛰어다니는 모습에 타다후사는 현기증을 느꼈다.


머리가 핑하니 돌며 위로 시선이 향하니 이 아래 소란과 자신은 관계가 없다고 하듯 말없이 푸른 하늘이 보였다.


그것에서 그쳤으면 그나마 나았으련만, 푸른 하늘에는 마츠쿠라 카츠이에가 목이 달아나는 광경이 비춰지기 시작했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은 타다후사가 그려낸 환영이었고 이어진 환영, 이미 목 베인 카츠이에가 타다후사로 변하는 모습 역시 그가 그려낸 것이었다.


“헉!?”

“주군, 괜찮으십니까!”


비틀거리며 말에서 떨어지려던 중 급히 가신 하나가 다가와서 도우니 타다후사는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휘휘 흔들었다.


세차게 흔들기를 수 차례 반복했으나 방금 그가 본 환영은 눈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아니, 그것만이 아니라 목에서 서늘함이며 허전함이 느껴지니 타다후사는 지금 자신이 살아있는지 확신을 품을 수가 없었다.


“주군, 명령을!”

“마츠쿠라의 애송이를 찾을까요?”


데리고 온 가신들이 명을 독촉하고 이 일의 근원이지 않나 싶은 이름을 슬쩍 입에 올렸다.


이걸 듣는 순간 타다후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 당장 이곳에 있는 조선인들을 도와서 불을 꺼라! 나는 소수만 데리고 이곳 장인 검상을 만나러 가겠다!”

“하!”

“거기 너, 너, 너! 주군을 호위해라!”


소수라고는 들었지만 그들이 모시는 사람을 덜렁 몇 명만 대동하고 가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타다후사의 측근이 지명한 이들은 하나 같이 휘하에 무사 여럿을 두고 있는 중간직들이었다.


그리고 눈치 좋게 측근의 의도를 알아챈 이들은 조용히 사람들을 모아서 타다후사를 따라 이동하기 시작했다.


타다후사도 그러한 정황은 알았지만 딱히 무어라고 할 생각은 없었다.


그 정도야 아랫것들이 신경 써서 할 일이니 그가 무어라 할 일이 아니며, 그럴 일이라도 해도 당장은 다른 일로 머리가 꽉 차서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끄응, 이거 상황을 알아야 하는데 말이야. 그래도 검상과 내 나름대로 안면을 다지고 있으니 잘 넘어갈 수 있······겠지?’


상황이 상황이니 덮거나 감추는 건 불가능하다.


조선에서 그럴 리가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그러니 타다후사는 이 일이 드러나는 것은 기정사실이되 적어도 자신에게 불똥이 덜 튀기를 바랐다.


아주 튀지 않는 걸 바라지는 않았다.


이번 일은 이미 그런 걸 바라기에는 너무나 불길이 거센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래도 그간 정이며 교분이 있으니 이상한 누명은 없겠거니 싶었다.


그러나 타다후사는 관청에서 검상 이만영을 보기 청하고 오래지 않아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지금 높은 분들이 와계시는지라 본인이 책임자가 아닙니다.”

“예? 누, 누가 와 계십니까?”

“조선에서는 외조 참의 영감께서 와계시고 또-.”


누군지는 몰라도 조선에서 더 높은 이가 왔다는 말에 타다후사는 다시 한번 현기증이 이는 걸 느꼈다.


그래도 여기서 조금 전과 같은 꼴을 보이면 죽도 밥도 되지 않기에 타다후사는 꾹 참고 귀를 기울였다.


“-청나라에서는 막부와 친선을 위해 방문하신 친왕 전하와 고관께서 와계십니다.”

“······어억.”


그리고 기울인 귀에 들어온 말을 이해한 순간 타다후사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걸 느끼며 낮은 비명과 함께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



“기절했다?”

“뭐, 단적으로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그거참.”


이만영이 찾아와 전한 말에 심기원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이것은 그저 겉치레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이미 저간 사정이며 이 난리가 어떻게 일어난 건지 꾸민 당사자에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치도 고생이 많아. 전에 들려서 보았을 때는 제법 공정하고 후하게 사람을 다스리고 있었는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 말이야.”

“고리키 공이 나라에서는 보기 드물 정도로 관대한 이라는 건 확실하지요.”

“그럼에도 이번 일에 그도 책임이 없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하면 참 사람 일이라는 게 알 수가 없어.”


그러나 안타까움은 안타까움이고 해야 할 일은 변하지 않으니 심기원은 재차 입을 열어 다른 것을 물었다.


“좀 어떤가?”

“소인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복잡하고 바깥에 마을 사람들을 이르시는 거라면 천운이라고 해야겠습니다.”

“천운?”


심기원이 되묻는 말에 이만영은 고개를 한 차례 끄덕인 후 입을 열었다.


“아무도 안 죽었으니 천운이지요.”

“허어, 그건 또 대단하군. 나는 아무리 그래도 이만한 난리니 누구 하나나 둘은 안타까운 일을 당하였을 거라도 생각했거늘.”

“······대신 부상자는 상당히 많습니다. 정말 아무도 죽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로 말입니다.”


낯빛을 딱딱하게 굳히며 이만영이 말을 덧붙이니 심기원 역시 얼굴에 그늘을 드리웠다.


“그래, 내 너무 쉽게 생각하고 말하였군.”

“영감께서는 어떠실지 모르나 저는 다시는 이러고 싶지 않습니다.”


이만영이 토로하는 말에 심기원은 무어라 대답하지 않고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


한참을 그러고 있던 심기원은 이내에 결정을 내렸는지 각오를 다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오늘 일을 그대로 공표하게. 죄인이고 병졸이고 관리고 가리지 않고 말이네.”

“그대로 말입니까?”

“단, 처음에 생각하였던 대로 한 가지는 가리고.”

“······죽은 것으로 해라, 그 말씀이시군요.”


다소 생각이 들게 하는 말이었으나 이만영은 그것이 그르다고 평할 수가 없었다.


이 일에서 악이라 할 자들을 꼽자면 당연히 이 궤계를 꾸민 이들이며 사람을 그저 믿는 것 하나로 죽이려고 한 이들이었다.


그러니 화살을 그들에게 돌리는 것은 옳으며 이상하다고 여기진 않으나 한편으로는 지금 심기원이 하는 말은 좋고 나쁨을 떠나서 누군가를 속임에는 변함이 없었다.


“속임도 속임 나름이지. 나는 이 일을 가리지 않고 상께 소상히 전후를 살펴 아뢰고 글로 올릴 것이네. 자네도 그러고 싶나?”

“도망한 사람이 이리로 왔다는 것은 변함이 없으나 죽으나 사나 다름이 없지 않습니까.”

“아니, 다르지. 죽었다고 하면 잠시 그 사람을 원망하나 사람들을 잊을 것이야. 하지만 살았다고 하면 어떻겠나? 멋대로 원망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어.”

“그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이만영이 회의적인 얼굴로 이르니 심기원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렇게 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입에 담긴 했으나 그도 확신은 없었던 탓이었다.


“······검상, 왜 낫다고 생각하는가?”


고심 끝에 열린 입에서 나오는 것은 물음이니 그 물음을 들은 이만영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너무 많은 사람을 속이게 됩니다.”

“많은 사람?”

“대화에서 좋은 자리를 얻고자, 우세하고자 죄인들이라고 하나 같은 조선 사람들을 속임이 그 첫째입니다. 그리고 일본 사람들을 속임이 둘째이며, 마지막으로 이는 청나라 사람들을 속임이기도 합니다.”

“허, 이렇게 자네 말을 들으니 많기도 하군그래.”


심기원이 하는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이만영은 다시 입을 열었다.


“천운은 여러 번 따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늘이 보우한 일에 삿된 일로 흐트리면 어떠한 후과가 있을지 두렵습니다.”

“하늘을 두려워하라?”

“사대부로서 당연히 그리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말을 옳은 말이나 그러면 우리는 이곳 일본 사람들이 배척하는 이들이며 불법하다 규정한 이들을 감싸서 이 나라 사람들을 죽인 셈이 되네.”


우려는 이해하나 이 일은 꼭 그런 것만은 아니라 여긴 이만영은 주저하며 입을 놀렸다.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우리네도 무뢰배 따위가 죽는 일로 슬퍼하는 백성이며 사대부는 없습니다.”

“그러나 타지인에게 동네 무뢰배가 죽으면 그건 외인이 이웃을 죽인 것이라 여기고 화내는 이들도 없지는 않지.”


심기원이 이르는 말에 이만영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모습에 심기원은 부드럽게 웃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나 나라고 그대의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네. 허면 이 일은 조금 달리 처리할 필요가 있겠군그래.”

“다르게 하신다면?”

“보국친왕 전하와 이번에 찾아온 이, 고리키 공에게 직접 말하여 다소 선후를 바꾸어 전하여 아주 거짓도 아니게 해야지.”

“그것이 가하겠습니까?”

“적당히 말을 맞추고 대가가 오가면야 어렵지 않지. 그리고 적어도 청나라는 몰라도 일본 쪽은 말 맞추기 편하다네.”


자신만만하게 말한 심기원은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특히나 이번 일은 우리에게 굳이 꾸미지 않아도 유리한 일이지.”

“참의 영감, 안에 계십니까?”


바깥에서 그를 찾는 소리에 심기원은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무슨 일인가?”

“청나라에서 영감을 찾고 있습니다.”

“그럴 때가 되긴 했지.”


잠시 저들과 이야기를 나누긴 했으나 그건 도적들을 잡은 이들과 하였을 뿐이었다.


시간이 일러 아직 깨지 않은 보국친왕 아이신기오로 예부슈며 예부 승정 하다나라 만다르한과는 아직 말을 논하지 않았다.


슬슬 불러서 이야기 하고자하는 것이 당연하다 여긴 심기원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이만영에게 일렀다.


“나는 친왕 전하와 예부 승정을 설득해서 그자, 시로타라고 했던 키리시탄이 본래 청나라에 섬기는 이라고 해달라고 청하지.”

“알겠습니다. 허면 저는 고리키 공께 적당히 말을 통하도록 해보겠습니다.”


만족스러운 대답에 심기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바깥으로 나서려고 하니 그 등 뒤로 이만영이 던진 질문이 들렸다.


“다만 영감, 이것만 하나 알려주십쇼.”

“무엇인가?”

“저는 도의에 따라 이러고 있습니다. 저라는 놈이 차마 그런 것에서 눈을 돌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헌데 영감께서는 어찌 이리도 복잡하고 힘들게 여기면서 이 일에 여러 번 손을 벌려주십니까?”

“하하하!”


이만영이 하는 말들을 다 들은 심기원은 돌연 크게 웃었다.


이에 이만영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보니 심기원은 돌연 웃음을 멈추고 고개만 돌려서 시선을 맞추었다.


“간단하지. 고작 키리시탄 하나 돕기 위해 이러는 게 아니니까.”

“그렇습니까?”

“그렇다네. 더 자세한 이야기며 속내를 알고 싶다면 조선에 돌아와서 날 찾아오게. 그때는 내 숨김 없이 다 일러주지. 하지만 지금은 이것이 내가 해줄 대답으로 끝이네.”

“그만하면 충분합니다.”


그저 선의가 아니라는 말에 이만영은 오히려 안심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잠시 일수를 세어본 이만영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슬슬 저도 이곳 일을 마치고 갈 시기이니 곧 뵐 수 있겠습니다.”


한번은 조선으로 돌아갈 때가 오고 있음을 이르니 심기원은 애매한 표정을 지었다.


뿐만 아니라 그 시선에는 안쓰러움이며 미안함이 섞이니 이만영은 저도 모르게 불길함을 느끼며 물었다.


“영감, 왜 그렇게 보십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닐세.”

“그게 아닌 거 같은데요?”

“커험, 어서 가봐야겠군. 친왕 전하를 기다리게 해서야 곤란하지 않겠나.”


심기원은 그렇게 말하며 부리나케 걸음을 옮기더니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을 흘렸다.


“그, 아직 확정된 일은 아니니 그렇게 곤란하게 여기지 말게나.”


아직 확정된 일은 아니다.


이 말이며 지금까지 한 대화의 흐름으로 인해 확정되면 자신에게 벌어질 일이 뭔지 얼추 그 윤곽을 잡은 이만영은 저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진짜로?”


물으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으니 그 물음은 공허하기 짝이 없었다.


작가의말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kkatnip님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후원하여 주신 기대에 응해 더욱 좋은 글을 쓰도록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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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2 331화 산이 높다 하여 보고만 있으면 오를 수 없다 +5 23.09.01 324 21 15쪽
331 330화 백가쟁명 +7 23.08.31 322 27 15쪽
330 329화 왈가왈부 +2 23.08.30 322 20 14쪽
329 328화 나누어 퍼진다 +5 23.08.29 319 21 15쪽
328 327화 천자와 황제 +3 23.08.28 342 24 14쪽
327 326화 크다고 하여 위에 있지 않다 +4 23.08.27 319 21 14쪽
326 325화 자만은 눈을 가린다 +2 23.08.26 305 21 12쪽
325 324화 사방과 교류하면 사방 소문이 들어온다 +1 23.08.25 311 19 12쪽
324 323화 번국과 이웃 +4 23.08.24 321 20 14쪽
323 322화 어울림과 편함은 별개다 +8 23.08.23 318 20 13쪽
322 321화 돌아온 시기 +6 23.08.22 344 19 12쪽
321 320화 피할 수 없다면 궁리해야 한다 +3 23.08.21 292 15 12쪽
320 319화 내방 +2 23.08.20 304 22 11쪽
319 318화 각각의 법도 +3 23.08.19 311 20 15쪽
318 317화 분노는 사람을 움직이게 한다 +3 23.08.18 314 23 13쪽
317 316화 배는 나아간다 +4 23.08.17 318 25 12쪽
316 315화 사람을 얻는 방법 +3 23.08.16 327 20 13쪽
315 314화 역린은 만지면 반드시 죽는다 +4 23.08.15 330 24 15쪽
314 313화 삼인성호 +3 23.08.14 328 24 15쪽
313 312화 책임을 효과적으로 지우는 법 +4 23.08.13 314 21 15쪽
» 311화 천운 +4 23.08.12 320 18 12쪽
311 310화 욕심의 끝 +4 23.08.11 322 20 13쪽
310 309화 미끼 +5 23.08.10 314 18 13쪽
309 308화 조짐 +2 23.08.09 320 22 14쪽
308 307화 일을 키우는 것도 방법이다 +4 23.08.08 311 18 12쪽
307 306화 벗어날 수 없는 신세 +3 23.08.07 324 24 12쪽
306 305화 증오는 멋대로 자란다 +3 23.08.06 284 20 12쪽
305 304화 변하는 것은 쉽지 않다 23.08.05 305 22 15쪽
304 303화 약자의 비애 +2 23.08.04 306 17 13쪽
303 302화 옛 땅과 새 땅 +3 23.08.03 333 2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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