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100층 회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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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리
작품등록일 :
2022.12.12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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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28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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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20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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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DUMMY

10.


번쩍!

눈을 깜빡이자 하얗기만 하던 GM존은 멀어지고 다채로운 빛이 다가왔다.

하운드에게 된통 뜯기기라도 했는지 웬 시체 조각이 널브러진 한 골목길.

어디선가 풍겨나는 썩은 내에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차도윤은 짧게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하여간 성질 하난 급하다니까.”


쓰게 웃으며 뒤쪽으로 활짝 열린 오락실의 뒷문을 살펴볼 수 있었다.

카탈로그에서 원하는 아이템을 고르자마자 정신없이 이 자리로 이동된 그였다.

원래 있던 곳인 <코인 존>이 아닌, 오락실의 뒤편으로 이동된 이유는 래빗의 노골적인 의도!

더 이상 방해 말고 꺼지란 거다.


‘뭐 아슬아슬하게 세이프인가.’


차도윤은 한숨을 푹 내쉬며 손에 쥐었던 땀을 슥 닦았다.

어찌나 긴장을 했는지 아주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악바리 정신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차도윤은 그를 쫓아낸 GM 래빗의 다음 행보를 추측해봤다.


‘해커를 찾으려나.’


녀석을 얽매어놓은 영혼 계약은 일종의 프로그램과도 같다.

갑과 을이 존재하며, 두 영혼을 엮으면서 모종의 수식이 그 사이를 채운다.

그리고 수식은 대개의 을이 갑의 명을 어길 수조차 없는 이유가 된다.

을이 규칙을 어길 때마다 영혼 계약을 위해 짜놓은 수식이 대상의 정신을 갉아먹을 테니까.


‘대신 수식을 풀이할 줄만 안다면 을이라고 해도 멋대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겠지.’


당장 52층에 본체를 가진 녀석은 탑을 수소문해서라도 계약을 파기할 방법을 찾으려 할 거다.

변호사를 찾든, 전문 해커를 구하든, 무엇이든 녀석은 자신의 혼을 얽맨 불공정 계약을 지우려 하겠지.

그렇게 풀어낸 다음은?


‘날 죽이러 오겠지.’


탑의 규칙 때문에 당장 그를 죽이러 오진 못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놈은 만나게 된다.

탑을 오르고 또 오르다보면 녀석이 있는 52층에도 다다를 테니까.

그때가 되면 놈은 혈안이 된 채 차도윤의 목에 도끼를 찍으려 할 것이다.


“뭐 백날 풀어봐라. 그게 풀리나.”


GM 래빗의 혼을 엮어놓은 계약은 그의 역작이라 할 정도로 복잡한 수식을 가졌다.

그가 직접 고안해낸 수식은 물론이요, 결사대가 머리를 한데 모아 만든 최상급의 프로그램.

녀석이 탑의 상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게 아닌 이상······ 절대 풀어낼 수 없다.

설령 풀리더라도 뭐 어쩌겠는가.


‘다음에 놈을 만날 땐 내가 더 강해져 있을 텐데.’


생각을 정리하며 차도윤은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읽었다.


[특성 ‘용의주도한 도박사’를 습득했습니다.]

[확률 게임에 한해서 승률이 올라갑니다.]


우습지만 GM 래빗으로부터 무사히 살아돌아온 걸 인정이라도 해줬는지.

‘생존 특전’이 떠있었다.


“역시 여기에 있네요.”


한데 그 내용을 본격적으로 확인하기도 전에 차도윤을 향해 말을 걸어온 여자가 있었다.


“운이 좋았어요. 난 참 이런 데에만 운이 좋다니까?”

“당신은······.”

“만나서 반가워요. 전 한가을이라고 해요.”


어깨까지 닿는 중단발의 여자는 스스럼없이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차도윤은 그녀의 손을 가만히 바라만 봤다.

멋쩍을 법도 하지만 한가을은 자연스럽게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웠다.


“아까 다 봤어요. 퍼팩트 패링······ 정말 기가 막히던데요.”

“흐음.”

“그렇게 너무 수상하게 보진 마세요. 전 그냥 운이 좋은 사람이니까.”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운이 좋다고 말하는 것 치고는 걸치고 있는 옷차림은 지극히 평범했다.

오락실에서 구해봤자 무난하거나 혹은 쪽박을 찬 수준.

그 시선을 알아차렸는지 한가을이 머리를 긁저였다.


“제 운이 꼭 저한테만 적용되라는 법은 없잖아요.”

“무슨 뜻이죠?”

“이상하게도 제 운은 늘 옆 사람에게만 적용됩니다. 바로 지금처럼.”


영문을 모르겠다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차도윤은 문득 1회 차의 기억을 떠올렸다.

자신은 지독하게 불행한 주제에 가까운 사람에겐 미친 듯한 행운을 퍼주는 괴상한 헌터.

희귀 스킬 [운칠기삼]으로 한때 예언가라고도 불렸던 여자.


“어지간해선 이런 짓은 안 하는데······ 당신한테는 빚을 져두는 게 좋을 것 같네요.”


한가을은 차도윤을 향해 말했다.


“셀브란스 병원으로 가보세요. 후회하진 않을 거예요.”


*


별다른 대답도 듣지 않은 채 한가을은 휘적휘적 오락실로 돌아갔다.

어쩐지 래빗 녀석의 눈이 유난히 돌아간 것 같더니만.

[운칠기삼]의 헌터가 오락실에 상주하고 있었을 줄이야!


‘내가 아니더라도 래빗 녀석은 탈탈 털렸겠는데.’


오락실을 둘러보면 운이 좋았는지 대박을 낸 헌터 몇몇이 보였다.

근데 생각해보면 그 자체가 조금 이상했다.

신촌 오락실은, 말이야 운만 좋으면 유니크 아이템도 구할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1회 차에서 이 시기에 대박을 낸 헌터는 왜 한 명도 없었겠는가.

괜히 고인물이 이곳을 패스하고 던전을 전전하는 이유는 다 나와 있었다.


‘보이는 확률이야 2%라 쳐도 실질적으로는 0%에 가깝게 수렴하니까.’


신촌 오락실은 본래 그런 악랄한 장소였다.

[운칠기삼]의 헌터가 물을 흘려놔 대박 기운이 감돌 뿐이다.


‘나도 몇 개 돌려봐야 하나.’


차도윤은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운칠기삼]의 헌터의 행운을 나눠먹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래빗이 어찌 나올지 모른다.

안 그래도 5만 코인가량 뜯겨 지금쯤 제정신이 아닐 텐데.


“그나저나 셀브란스 병원이라.”


값비싼 아이템도 뜯어냈겠다, 가까운 대장간을 먼저 방문하려 했는데.


“찝찝하네. 정말 그 여자가 운칠기삼의 헌터라면······ 뭔가가 있다는 얘긴데.”


그것도 당장 그곳으로 가질 않는다면 후회할 만한 일이 벌어진다고 했다.


“······확인해봐야겠어.”


셀브란스 병원은 신촌역 경의중앙선과 거의 맞닿은 자리에 위치했다.

뛴다면 10분 안팎, 걸으면 15분!

그리 멀지도 않은데 굳이 확인조차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설령 한가을의 추측과 다르게 별 볼일이 없는 것들을 마주한다 해도 뭐 어떤가.

순서의 차이였지, 코인 상점이 존재하는 셀브란스 병원은 언젠가 들러야 한다.


‘이참에 히든 피스도 찾아야지.’


머릿속으로 셀브란스 병원에서 구할 수 있는 히든 피스가 촤르륵 나열됐다.

우선순위로 넣을 정도는 아니지만 구해둔다면 무조건 좋을 물건들이 떠올랐다.


“가만 보자.”


이참에 차도윤은 셀브란스 병원으로 향하는 내내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점검하기로 했다.

회귀 이후의 일을 철저히 생각하고 준비해뒀지만 늘 계획대로 움직이진 못할 것이다.

모든 이가 회귀자였고 모두가 계획했으며, 또한 모두가 경쟁자인 세계.

방금 전 한가을을 만나게 된 것처럼 변수는 너무나도 많다.

계획대로 움직이되 다소 유연할 필요가 있었다.


“슬슬 거점도 마련해야 하는데.”


사람인 이상 아예 쉬지도 않고 움직이기만 할 수는 없다.

지치면 쉬어줘야 하고 굶주리면 밥을 먹어야 한다.

멸망에 이른 세계에서 휴식을 취하려면 ‘안전 거점’이 필요했다.


“식량도 더 찾아야 해. 아이템도 놓칠 순 없고······ 또 챙겨야 할 스킬은 뭐가 있더라.”


곰곰이 고민을 잇던 차도윤은 이내 짧게 혀를 차는 걸로 상념을 접었다.

하나, 하나 따지고 들어간다면 그가 해야 할 일은 오만 가지로 늘어난다.

하물며 그 일 중 단 하나도 빠질 것 없이 응급인지라 우선 순위도 매기지 못한다.


‘구해야 할 사람, 지켜야 할 구역, 얻어야 할 히든 피스······ 전부 놓칠 수 없다.’


그렇기에 결사대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서울에서 회귀할 거다. 거점을 확보하는 걸 우선하도록 하지.」

「난 천안. 흠, 여긴 딱히 얻을 만 한 건 없어. 식량을 위주로 모아볼까 해.」

「수원도 서울에 비해 그리 풍족하진 않아. 생존자 구출을 우선으로 한다.」

「너네 서울은 특히 팀을 많이 나눠야 하는 거 알지? 적어도 도시 해방 시나리오가 활성화 되기 전엔 일을 끝내야 해.」


회귀 이후에 할 일을 도시 별, 그리고 역할 별로 나눠 수행하자고.

차도윤은 그중에서도 가장 특수한 임무를 맡고 있었다.


“셀브란스 병원에 들렀다가 대장간, 그리고 다음은 안산도시······ 으음?”


한편 차도윤이 반파된 도로를 가로질러 병원 근처에 도달했을 무렵이다.


“여기에 분명 놈이 있다고 했나?”


도로로 모여든 일련의 무리를 살펴본 차도윤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들이 누군지는 고민할 것도 없이 알 수 있었다.


“어머니에게 해가 되는 자다. 반드시 여기서 뿌리 째 뽑아야만 한다.”


느닷없이 어머니를 언급하며 살기를 풀풀 흘려대는 놈들은 정해져 있었으니까.


‘광신도.’


차도윤은 일단 소리를 죽인 채 상황을 파악하기로 했다.

도로를 장악한 놈들의 숫자는 약 서른은 족히 넘는다.

싸운다고 한다면 싸울 순 있겠지만······ 현명한 선택은 아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게 놈들의 전부라고 볼 수도 없었으니까.


‘서울의 광신도만 수천 명이야.’


회귀 이후 적당한 시간이 지난 오늘날··· 얼마나 모여들었을지 어찌 알겠는가.


“신도들을 모아라. 무슨 일이 있어도 그놈은 여기서 잡아야 한다.”

“어머니를 위해 목숨을 걸고 명을 수행하겠습니다.”


거기다 놈들의 대화를 엿들어보니 뭔가 꺼림칙한 낌새도 느껴졌다.

저들이 반드시 잡아야 한다고 언급하는 무언가가 있는 모양.

차도윤은 그 정체를 알고 있었다.


‘랭커겠지.’


거목을 잘라내는 것보다 새싹을 짓밟는 게 쉽다.

아직 자라나지 못한 상위 랭커를 죽이기엔 지금만한 적기는 없다.


“자애롭고 위대한 어머니시여, 저에게 신을 처단할 정의로운 힘을 허락하소서.”


돌연 광신도 중 한 놈이 무릎을 꿇고 기도를 읊었다.

녀석의 몸은 웬 새카만 힘이 깃들고 전신의 근육이 팽창했다.

모름지기 악마와 계약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특수한 신체 변형!


‘마인화?’


하지만 아직 층을 오르기도 전인 헌터들에겐 허락될 리가 없는 힘이다.

악마와의 계약은 적어도 10층은 넘겨야 시도할 수 있는 빌어먹을 권능이니까.


‘역시 이쪽도 유지된단 말이지.’


당연하다면 당연한 얘기였다. GM 래빗과의 계약이 유효하듯 놈들이 저지른 악마와의 계약 또한 여전할 테니까.


“······쯧.”


광신도의 부푼 몸 덩어리는 무저갱에서도 발푸스라 불리는 마물의 것이다.

발푸스로 변한 마인은 철근을 으깨고 바위마저 아스러트릴 괴력을 가지게 된다.


‘물론 나약한 신체로 저런 괴물의 힘을 받아들인다면 목숨이 위태로워지겠지만······.’


힘을 사용할 때마다 뼈 마디마디가 모조리 썩어 들어가고 말 것이다.

다발성 장기부전은 물론 그 힘을 과도하게 사용할 경우 심장이 터져 나간다.

애초에 죽음을 담보로 한 기술.


‘광신도가 그딴 걸 신경이나 쓰겠냐고.’


자살 테러마저도 거리낌 없이 감행하는 미친 작자들이다. 어디 제 목숨이 위험하다고 마인화를 두려워할까.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야.’


마인 놈들의 행보는 고작 자기 자신의 목숨을 갉아먹는 걸로 끝나질 않는다.


“크윽······ 오래 유지하긴 어렵겠군. 너 이쪽으로 와라.”

“어머니시여.”


눈에 광증이 돋은 마인 녀석이 냅다 다른 신도의 심장을 뜯어먹었다.

몸에 걸린 부하를 해소하기 위해 동료의 심장을 갈취하길 반복하는 것이다.

애초에 ‘발푸스’를 한 몸에 안착시키고자 또 다른 이의 심장을 파헤쳤을 터.


‘예나 지금이나 역겹기 그지없어.’


스스럼없이 심장을 내어준 성도를 내팽개친 마인은 온갖 의자나 책상으로 막아둔 병원의 입구를 단번에 무너트렸다.


“강지석. 그자는 반드시 잡아야 해. 신도들이여. 어머니를 위해 심장을 바쳐라.”

“명을 받들겠습니다.”


차도윤은 셀브란스 병원으로 진입하는 광신도를 살펴보며 침음을 삼켰다.


“이걸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운칠기삼]의 헌터, 한가을을 상기하던 차도윤은 광신도의 뒤를 따라 병원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주머니에 고이 모셔둔 5만 코인짜리 아이템을 상기하며 씨익 웃을 수 있었다.


“강지석······.”


이건 또 반가운 이름인지라.


작가의말

내일은 12시 15분에 연재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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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로또 맞은 건가 +2 22.12.29 3,015 74 13쪽
19 이걸 왜 놓치고 있던 건지 +1 22.12.28 3,059 70 12쪽
18 이건... 진짜 미친 짓이야 +3 22.12.27 3,154 64 13쪽
17 1분이면 됩니다 +1 22.12.26 3,191 72 13쪽
16 어차피 못 도망칩니다 +7 22.12.25 3,380 75 13쪽
15 원래 잔챙이는 그냥 무시하는 주의인데 +1 22.12.24 3,596 77 12쪽
14 너희들에게 악 감정은 없어 +1 22.12.24 3,740 79 12쪽
13 난이도가 아주 X같아졌거든 +2 22.12.23 3,889 87 12쪽
12 하여간 성질 급한 2회 차로군 +3 22.12.22 4,330 87 13쪽
11 이러니 내가 담배를 못 끊지 +2 22.12.21 4,402 95 12쪽
»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3 22.12.20 4,685 87 13쪽
9 난 욕심이 많은 편인데 +2 22.12.19 4,776 98 13쪽
8 어떤 미친 새끼야! +4 22.12.18 4,873 98 13쪽
7 일단 코인 재벌부터 되어볼까 +2 22.12.17 5,046 104 12쪽
6 애초에 급이 다른데 +4 22.12.16 5,100 96 13쪽
5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6 22.12.15 5,281 97 13쪽
4 침몰하는 배에 승선하는 취미는 없거든요 +2 22.12.14 5,606 105 13쪽
3 일이 술술 풀릴 리가 없지 +4 22.12.13 6,343 109 12쪽
2 모두 예상했던 일이다 +5 22.12.13 7,925 115 13쪽
1 두 번의 기회 +5 22.12.13 9,784 12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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