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혼자 100층 회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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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리
작품등록일 :
2022.12.12 09:23
최근연재일 :
2023.01.28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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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2.28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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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걸 왜 놓치고 있던 건지

DUMMY

19.


쿠구우우웅!


지축을 흔드는 소리에 백지현은 고개를 들었다.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흔들리는 바닥.

유리창은 깨져나갔고 벽은 쩌저적 갈라졌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모를 수가 없었다.


‘무너질 거야.’


남은 시간은 얼마나 될까?

10분? 5분? 1분?

입술을 짓씹은 그녀는 김석훈을 부축한 채 더욱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모래시계에서 모래가 거의 다 떨어진 것처럼 초조한 기분이 뒤따랐다.

사방에서 붕괴 징조가 일어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빨리 여길 빠져나가야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할 건 중간부터 김석훈이 의식을 되찾았다는 거겠지.


“······으음, 여긴?”


백지현은 눈을 깜빡이는 김석훈을 향해 말했다.


“걸을 수 있겠어요?”

“흠? 아, 백 선생······ 이게 대체 다 무슨.”

“설명할 시간이 없어요. 일단 여길 빠져나가야 해요.”


방금 눈앞으로 바닥의 한쪽이 무너지면서 커다란 싱크홀이 생겨났다.

상황을 직감한 김석훈도 더는 묻질 않고 그저 백지현의 부축을 받았다.

아쉽게도 김석훈은 아직 혼자 걸을 수 있을 정도로 몸이 온전한 건 아니었다.

차도윤의 조언을 따라 일찍 스킬을 중단했고, 딱 살아서 다행인 수준으로만 회복되었으니까.

겉의 상처는 회복되었어도 그의 안쪽의 뼈까지 완전히 붙질 못했으니까.


‘근데 그게 정답이었어. 만약 내가 무리해서 스킬을 더 운용했으면······.’


모르긴 몰라도 그녀는 의식을 잃고 쓰러졌을 거다.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게 어디 보통 일이던가?

평소보다 더 많은 힘을 써야했고 그 피로도도 장난이 아니다.

당장 백지현도 하루 밤을 꼬박 샌 것처럼 눈꺼풀이 무거웠다.

그나마 차도윤의 말을 따랐기에 이 정도로 그친 것이다.


“출구가 보여요!”


활기찬 김석훈의 말에 백지현은 생각을 정리했다.

그리고 호흡을 정돈하고 냅다 입을 열었다.


“봉원사로 올라가면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몸이 회복되는 대로 그쪽으로 가주세요.”

“응?”

“당신이라면 그들을 다른 캠프까지 지켜주실 수 있으시겠죠. 방해할 놈들도 더는 없을 테니 할 수 있을 겁니다. 아니, 해야만 하는 일이에요.”


속사포로 말을 뽑아낸 백지현은 김석훈을 돌아보았다.

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눈을 껌뻑이고 있었다.


“백 선생? 갑자기 지금 무슨 소리를······.”

“차도윤 씨가 아직 빠져나오지 못했어요.”

“뭐?”

“그를 두고 갈 수는 없어요.”


그러더니 냅다 출구 밖으로 김석훈을 밀어 내팽개쳤다.

환자에 불과한 그는 백지현의 힘을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바닥을 나뒹굴며 건물의 밖으로 밀려나간 그가 이쪽을 돌아보았다.


“백 선생···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하지만 백지현은 더 이상 그에게 시선을 두지 않았다.


“부탁합니다!”


빠르게 몸을 돌려 다시 건물 내부로 들어가고자 했다.

붕괴의 징조는 갈수록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불과 1초 후의 미래조차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백지현은 안으로 들어가야만 했다.

그건, 거의 본능이었다.


‘······살아있어야 해요.’


[새크리파이스]는 그녀의 성정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자신이 죽을지언정 다른 사람이 죽는 꼴은 볼 수 없었다.

그런 사람이기에 신이 내려준 은혜가 유달리 특별한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미친 짓인 지금의 선택은 어쩌면 당연했다.


쿠구구궁!


이윽고 뒤편에서 큰 소리와 함께 입구가 무너져 내렸다.

진퇴양난(進退兩難), 빠져나갈 유일한 통로가 없어졌을까.

백지현은 입술을 짓씹으며 다시 시선을 돌렸다.


“정말 내가 미쳤지.”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도 그녀는 계단을 올랐다.


*


마찬가지로 흔들리는 건물 위에선 차도윤은 힘겹게 숨을 내뱉었다.

들숨과 날숨엔 웬 유리조각이 박힌 듯 지난한 통증이 느껴졌다.


‘더럽게도 아프네.’


그가 꺼내어 쓴 마력 압축은 ‘검성’일 적에야 쓰던 기술이다.

아직 상태창엔 등록조차 되질 않은 미래의 스킬.

그렇다면 어떻게 그는, 등록되지 않은 스킬을 쓸 수 있었을까?

재밌게도 이건 꼼수나 편법 따위가 아니다.


‘쓸 수 있는 게 당연하니까.’


언제부터 인간이 스킬에 의존해서 살아왔을까.

검술 스킬을 가져야 검을 다룰 수 있나?

궁술 스킬이 있어야 활을 쏠 수 있던가?

아니다.

인간은 스킬이 없어도 검을 다뤄왔고, 일찍이 활을 당겨온 역사가 있다.

스킬은 어디까지나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 도구였지 그 전부가 될 수는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요령만 안다면 누구든 스킬을 쓸 수 있어.’


흔히 사람들은 이를 두고 ‘스킬 외 스킬’이라 불렀다.

아직 상태창에 등록되지 않은 스킬을 오직 실력으로 꺼내어 쓰는 일.


‘마력을 다룰 수 있고 원리만 안다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게 당연해.’


“크윽!”


차도윤은 순간이지만 아찔해진 정신을 겨우 붙들었다.

온몸의 뼈 마디마디가 전부 끊어진 기분이다.

특히 마력 고갈로 인한 두통은 갈수록 커져갔다.

확실히 ‘스킬 외 스킬’은 강력하지만 그 단점이 너무나도 큰 기술이다.


‘자칫하면 뒈지겠어.’


애초에 이론이나 경험이 빠삭한 회귀자들의 상태창으로 과거의 스킬이 등록되지 않은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준비가 안 됐으니까.’


빨리 달리는 방법을 안다고 해도 몸이 따라주질 않으면 소용이 없다.

요령을 안다고 한들 그 스킬을 마스터하는 것과 같을 수는 없는 일.

실질적으로 스킬을 자유자재로 다루려면, 헌터는 스킬의 반작용에도 자유로워야 한다.

‘불 저항력’이 없는 인간이 [파이어볼]을 꺼내어봤자 그 볼에 타죽기 쉬운 거다.


‘단련되지 못한 몸으로 마력 압축을 꺼내어 썼다가 엉망이 된 내 몸처럼······.’


스킬 카드처럼 아예 반작용까지 등급으로 나눠 제약을 건 게 아닌 한.

사용법을 알고 있어도 상태창에 그 스킬이 등록되지 않는 건 당연했다.



“쯧.”


짧게 혀를 찬 차도윤은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를 뒤적였다. 그곳에서 꺼낸 건 미증유의 기운을 흘리는 동그란 돌멩이였다.


[아이템 ‘최하급 마석’을 복용했습니다.]

[함유된 마력의 일부를 누적합니다.]


봉원사에서 멀지 않은 위치에 있는 찜질방엔 조금 소소한 히든 피스가 숨겨져 있다.

구태여 얻으려고 찾아다닐 필요는 없겠지만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유용한 물건.


‘깡패 놈들도 이걸 찾아 여길 아지트로 삼은 모양인데······.’


쓰게 웃으며 겨우 찾아낸 마석으로 일부 마력을 회복할 수 있었다.

터무니없어 적은 수치인지라 큰 효력은 없었다.

그가 평소에 가졌던 양의 발톱만도 못한 양!

최하급이란 명칭에 어울리는 효력이었다.


‘하지만······.’


차도윤은 최하급 마석으로부터 빨아들인 마력에 겨우 한숨을 내쉬었다.

일 할이라도 마력이 감돌고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고갈로 죽진 않는다.

마력이 0에 수렴할 때보다 1이라도 들어있는 게 회복력도 좋아진다.

완전히 회복하기까지 시간은 걸리겠지만 아무렴 메말라 뒈질 일은 없다.

차도윤은 숨을 몇 번이고 들이마셨다.


“문제는··· 내 몸보다 건물이 먼저 무너질 수 있다는 건데.”


차도윤은 자신의 기술과 발푸스가 휘두른 야생의 참격이 만들어낸 여파를 보았다.

안 그래도 위태롭던 건물에 마력이 폭풍처럼 휘몰아 쳐 부하가 걸리고 말았다.

머지않아 무너질 건 자명했다.

차도윤은 미간을 찌푸린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체력을 회복시킬 여유가 없었다.

인기척이 느껴진 건 그 즈음이다.


“······백지현 씨?”

“여, 역시 살아있었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당신이 왜 여기에 있어요?”


빠르게 도망쳤던 그녀가 헐레벌떡 달려와 차도윤의 앞에 서 있었다.


“왜 나가질 않고 여기에······.”


물으려던 중 차도윤은 입을 다무었다.

그녀로부터 솟구친 황금빛 기류가 그의 몸을 덮칠 기세였다.

이윽고 백지현의 눈을 보고도 의중을 모를 수는 없었다.

타인을 구하기 위해 제 목숨마저 초개처럼 내던지는 정체불명의 광기······.

[새크리파이스]를 보유한 백지현이었기에 두말 할 것도 없이 생각은 정리됐다.

거기다 당장 그녀가 여기에 왜 있는지 따위는 사실 중요하지도 않았다.

그는 창졸간에 검을 쥐었다.


“······뭐든 비켜요!”


동시에 그 자리로 날카로운 참격이 날아왔다.

황망한 눈을 뜬 백지현의 시선이 한쪽으로 향해 있었다.


“어머······니!”


필사의 일격을 맞고도 바퀴벌레처럼 죽지도 않고 살아남았는지 발푸스는 반송장이 된 채로 꼿꼿이 서있었다.


크아아악!


차도윤은 다 부러져 가던 검으로 놈의 손톱을 튕겨내었다.

그리고 한 번의 충돌로도 바로 알 수 있었다.

놈의 공격은 여전히 파괴적이나 그 정교함이 사라졌다는 걸.


‘이놈······.’


나아가 발푸스는 이미 죽음에 이르렀다는 것도.


‘하기야 그걸 맞고도 멀쩡할 리가 없지.’


제아무리 미완성인 몸으로 꺼내어 쓴 기술이래도 그건 검성의 기술이다.

죽을 위기를 감수해서라도 완성한 기술이 효력이 없다는 게 어디 가당키나 할까!

차도윤은 놈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오래 걸리진 않아.’


눈앞의 발푸스는 이른바 회광반조(回光返照)나 다름없는 현상을 겪고 있다.

해가 지기 직전에 일시적으로 햇살이 강하게 하늘을 비추는 현상이다.

이대로 조금 더 버텨준다면 녀석은 알아서 자멸한다.

본능이 남았다고 해도 이미 죽어버린 몸뚱이로 뭘 더 할 수 있을까.


‘문제는······.’


쿠구구구!


당장이라도 허물어질 것만 같은 건물이다.

녀석이 쓰러질 때까지 이 건물이 버티어줄까?

당장 1분도 보장할 수 없는 미래였다.

차도윤은 생각을 정리했다.


‘모든 걸 한 번에 끝내야 한다.’


폭주해버린 발푸스를 제압해야 한다.

느닷없이 이곳까지 들어온 백지현을 살려야만 한다.

무너지는 건물을 피해 바깥으로 가능한 한 빨리 도망쳐야 한다.

이 세 가지를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채채애앵!


발푸스의 공격을 겨우 튕겨내고 떨어지는 돌가루를 맞으면서도 차도윤은 골똘히 머리를 굴렸다.


‘백지현의 새크리파이스라면······.’


직접 눈으로 보질 못해 소문으로만 무성했던 [새크리파이스]의 힘은 확인했다.

명줄이 끊어졌던 김석훈을 되살렸고 일시적으로 발푸스의 공격마저 버텨냈다.

그 힘을 제대로 운용할 줄만 안다면 이 상황은 분명 뒤집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개를 저었다.


‘······확률이 너무 낮아.’


백지현의 천재성은 증명했어도 그게 언제 어디서든 활약할 수 있다고 보장하진 못한다.

그게 가능했더라면 전생의 그녀는 죽지 않고 오래오래 살아남았어야 정상이다.

그녀의 스킬 하나만 믿고 상황이 뒤집어지길 기대하는 건 어리석은 생각이다.

이건 배팅할 가치가 못 된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해.’


삽시간으로 흔들리는 상황에서 차도윤의 머릿속이 팽팽하게 돌아갔다.

찰나의 순간에 차도윤은 수십 가지의 가능성을 검토했고 또 폐기했다.

이 상황을 타개할 최고의 방법은······.


‘이걸 왜 놓치고 있던 건지.’


차도윤은 바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막상 떠올리고 나니 터무니없을 정도로 간단한 방법이 그의 손에 있었던 지라.


“백지현 씨.”


차도윤은 한쪽에서 균형을 잡느라 고생 중이던 백지현을 향해 입을 열었다.


“준비해요. 빠져나갈 겁니다.”


그리고 그를 향해 냅다 달려들던 한 마리의 ‘산송장’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사용할 스킬은 하나였다.


[스킬 ‘영혼 포식’을 발동합니다.]

[일정 수준 이하의 영혼을 포식합니다.]


오직 죽은 자의 몸에 한해서 사용할 수 있는 그가 가진 가장 희귀한 스킬.

이미 몸의 주인이 죽은 상태라면 발푸스에게도 충분히 적용 가능할 거라고 예상할 수 있는 기술.


“······음?”


발동과 동시에 눈앞으로 떠오르는 메시지를 읽어들이며 차도윤은 침음을 흘렸다.


[포식할 수 있는 영혼이 너무 많습니다.]

[목록을 불러오는 중입니다.]


전혀 상상도 못한 메시지가 떠올랐으므로.


작가의말

내일도 21시 15분에 연재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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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외상값은 이걸로 치르겠다던데요? 22.12.30 2,898 68 12쪽
20 로또 맞은 건가 +2 22.12.29 3,015 74 13쪽
» 이걸 왜 놓치고 있던 건지 +1 22.12.28 3,060 70 12쪽
18 이건... 진짜 미친 짓이야 +3 22.12.27 3,154 64 13쪽
17 1분이면 됩니다 +1 22.12.26 3,191 72 13쪽
16 어차피 못 도망칩니다 +7 22.12.25 3,380 75 13쪽
15 원래 잔챙이는 그냥 무시하는 주의인데 +1 22.12.24 3,597 77 12쪽
14 너희들에게 악 감정은 없어 +1 22.12.24 3,741 79 12쪽
13 난이도가 아주 X같아졌거든 +2 22.12.23 3,889 87 12쪽
12 하여간 성질 급한 2회 차로군 +3 22.12.22 4,331 87 13쪽
11 이러니 내가 담배를 못 끊지 +2 22.12.21 4,402 95 12쪽
10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3 22.12.20 4,685 87 13쪽
9 난 욕심이 많은 편인데 +2 22.12.19 4,776 98 13쪽
8 어떤 미친 새끼야! +4 22.12.18 4,873 98 13쪽
7 일단 코인 재벌부터 되어볼까 +2 22.12.17 5,046 104 12쪽
6 애초에 급이 다른데 +4 22.12.16 5,101 96 13쪽
5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6 22.12.15 5,282 97 13쪽
4 침몰하는 배에 승선하는 취미는 없거든요 +2 22.12.14 5,607 105 13쪽
3 일이 술술 풀릴 리가 없지 +4 22.12.13 6,344 109 12쪽
2 모두 예상했던 일이다 +5 22.12.13 7,926 115 13쪽
1 두 번의 기회 +5 22.12.13 9,785 12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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