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파이어는 질병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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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청수사
작품등록일 :
2023.01.09 22:31
최근연재일 :
2023.12.08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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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19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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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 3 - 35 ] Transcriptional Genetic Code 전사 유전 암호 - 10

DUMMY

S01_Chapter 03. [ Termination of Transcription ] 전사의 종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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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 35 ] Transcriptional Genetic Code 전사 유전 암호 - 10




기이한 눈동자는 진정 낯설었다.


태어나서 본 적 없는 눈빛.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는 느낌.


처음부터 한혁의 존재가 나에게는 흥미로웠지만,


이질적으로 다가왔었는데,


그 허허롭던 분위기 때문일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더 했다.


저 눈은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


내가 아무리 나를 감추고, 꾸미고, 아닌 척해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날 것의 나를 그대로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물리적인 투시의 영역이 아니라,


영적인 관조의 영역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혁은 내가 갑자기 나타났어도, 그렇게 놀라지도 않았다.


잠시 눈빛이 이채(異彩)가 서리는 것 같더니, 원래대로 돌아갔다.


내가 묻는 안부에 그는 그냥 웃기만 했다.


내가 묻는 질문에 그는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검사가 필요하다는 내 말에 그는 웃기만 했다.


여기서 나가자는, 내가 데리고 나가겠다고 하면서,


그에게 다가가자, 그는 그제야 말을 했다.


그럴 필요 없다고.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은 바로 여기라면서.




그의 말이 납득도 안 되고, 인정할 수도 없는데,


왜 이해가 되는 것이었을까?


그를 존중하는 마음이 더 앞서서 그랬거니 생각했다.


복도에 간수들이 생각보다 자주 돌아다녀서,


몸을 종종 숨겨야 했는데,


내 모습을 보던 한혁이 어차피 자신을 데려가지 않기로 했으면,


취침 시간 이후에 다시 오라고 했다.


생각이 많아졌다.


과연 나는 한혁을 데려가지 않기로 했던가?


한혁이 가지 않겠다고 했던 것 같은데.


이대로 가도 되는 건가?


아니.


이대로 가야 하는 건가?


글쎄.


한혁은 눈을 감아버렸다.


나는 짧은 한 숨을 쉬고는 교도소 외부로 텔레포트 했다.




작은 창에서 내리 비추는 달빛은 침상에


정좌로 앉아 있던 한혁의 몸에 닿아 있었다.


마치 한혁이 자체 발광을 하는 것으로도 보였다.


혹은 하늘에서 한혁에게 축복을 내리고 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분명히 눈을 감고 있었는데, 나를 보고 있는 시선을 느꼈다.


그 시선은 마치 ‘전시안(全視眼)’처럼


나의 내, 외부는 물론이고,


나의 과거로부터 미래까지 모두 관조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낮에도 그랬다.


내가 입으로 말을 하고,


그에게 질문을 하는 일이 무의미하다고 느껴졌다.


그때 뭔가가 가슴 한 복판을 간질이기 시작했다.


그 무언가는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잠시 이질감을 느끼면서,


밀어내려는 시도를 본능적으로 해봤으나,


그 뭔가의 느낌이 정말 포근하고, 따뜻해서 밀어내고 싶지 않았다.


무언가가 점점 커질수록,


내 마음의 빗장도 점점 열리고 있었다.


그 무언가는 넓어지기 시작했는데,


곧 내 입을 지나 눈을 덮었고, 귀도 가렸다.


그렇게 점점 내 온 몸을 감싸 안았다.




한혁의 삶이 내 머릿속에 펼쳐지고 있었다.


그 길고 장대한 역사의 순간들,


단 하나의 존재가 걸어온 유구한 시간의 기억이


내 뇌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말로 표현할 수도 없고, 아니, 표현이 불가능했다.


찬란하고, 아름답지만, 시리도록 아픈 삶의 기억.


시간의 흐름.


감각적인 경험.


초감각적이며, 형이상학적인 개념들의 연속.


달콤했지만, 쓰고,


향기로웠지만, 악취가 배어 있고,


부드러웠지만, 거칠고 투박한 아이러니.


시간의 흐름도 잊은 채, 나를 온전히 맡겼다.




어느새 연속성이 끊긴 것을 느껴서,


눈을 떠 보았더니, 한혁의 침상에 누워서 잠들어 있었다.


벽 위쪽 작은 창에서 보이는 하늘색이


점점 보랏빛으로 변하는 것이 해가 뜰 시간인 것 같았다.


나는 외부로 텔레포트 했다.




매일 밤, 어둠 속에서 나는 한혁을 만났다.


매일 새로운 이야기 소재로 왕의 흥미를 끌었던 셰에라자드,


아라비안 나이트가 생각났다. 그렇게 7일이 지났다.




그날은 다른 날들과 달랐다.


느낌이 그랬다.


머리에 쌓이고 있는 게, 가장 오래된 기억, 경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뚝뚝 끊기도, 개연성도 떨어졌다.


감정의 변화도 그 낙차가 엄청났다.


그런 식이면 계속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순간, 마치 팽팽하게 양쪽에서 잡고 있던 실이


중간에서 딱 끊어진 것처럼, 한혁과의 연결이 뚝 끊어져버렸다.




잠시 의식이 끊긴 것 같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놀라서 바라본 한혁의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교도소의 작은 독방.


정좌를 취한 작은 체구에 완전한 백발 노인의 뒷모습.


노인의 규칙적인 호흡.


한쪽 벽면 위쪽에 나 있던 창을 통해 내리 쬐던 아침 햇살.


그 햇볕 사이로 보이는,


마치 성화(聖畵)의 한 장면처럼 성스러운 모습.




꿈에서 보았다.


기시감보다 원래부터 이렇게 될 일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느낌.


꿈에서는 몰랐었지만, 이제는 저 뒷모습이 누구인지도 알고 있었다.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그냥 틀어놓은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마구 흘러내렸다.


슬픔 혹은 기쁨, 좌절 혹은 희망, 체념 혹은 욕망 등등의 감정이


홍수처럼 터져 나와 가슴속을 가득 채워버렸다.

.

복잡한 감정의 혼돈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져갔지만,


몸의 반응은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것 외에는


의외로 별 다른 반응이 없었다.


그저 멍하니 한혁의 뒷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을 뿐.




몸을 돌려서 나를 바라보는 한혁의 표정은


그렇게 평온해 보일 수 없었다.


입가에 머문 그 작은 미소는


마치 모나리자의 그것을 닮은 것 같았다.


아니, 언젠가 탱화에서 보았던 연꽃을 든 석가모니의 미소와 닮았다.




한혁이 입으로 소리 없이 말했다.



고맙다.



그가 무엇을 고마워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폭포처럼 눈물을 흘리고 있으면서도, 나는 웃을 수 있었다.


그리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혁의 몸이 천천히 사라지고 있었다.


햇볕이 닿은 그의 몸과 옷이 조금씩 재가 되어 흩어졌다.


바람도 불지 않는데, 흩날리는 그의 몸 조각,


수많은 재의 흩날림이 꽃비 같다고 생각했다.




마침내 한혁이 모두 사라졌다.


내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결코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일렁이는 눈물 너머,


흐릿하게 보이던 한혁의 침상에는


익숙한 컨테이너 일곱 개가 놓여 있었다.

.

.

.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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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23 하윌라
    작성일
    24.02.11 09:50
    No. 1

    이런 글을 보며.....
    한 남자의 삶과 죽음을,
    그리고 그것을 알아가고 곁에서 지켜보는 모습을,
    시처럼, 사랑의 감정을 담은 영상처럼
    그려내어 주심에 감사합니다.
    한혁의 죽음에 전, 왜, 정소장의 사랑을 느끼는지
    모를 일입니다.

    찬성: 1 | 반대: 0

  • 작성자
    Lv.20 청수사
    작성일
    24.02.11 21:58
    No. 2

    윌라님, 감사합니다~!

    이제 곧 제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도 되는 날이 오겠네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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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 [ Shelterin ] Additional Journal 23.12.08 29 2 4쪽
138 [ TTAGGG ] 마치며. Dreaming Translation +2 23.12.08 86 1 1쪽
137 [ TAG ] Why not? 나는! +2 23.10.27 58 3 14쪽
136 [ 4 - 09 ] Apoptosis 예정된 죽음 Programmed Death - 06 +2 23.10.27 34 2 12쪽
135 [ 4 - 08 ] Apoptosis 예정된 죽음 Programmed Death - 05 +2 23.10.27 41 2 7쪽
134 [ 4 - 07 ] Apoptosis 예정된 죽음 Programmed Death - 04 +2 23.10.26 44 2 11쪽
133 [ 4 - 06 ] Apoptosis 예정된 죽음 Programmed Death - 03 +2 23.10.25 39 2 12쪽
132 [ 4 - 05 ] Apoptosis 예정된 죽음 Programmed Death - 02 +2 23.10.24 31 2 13쪽
131 [ 4 - 04 ] Apoptosis 예정된 죽음 Programmed Death - 01 +2 23.10.23 77 3 10쪽
130 [ 4 - 03 ] Complementary Strand 보완적인 가닥 - 03 +2 23.10.22 37 2 11쪽
129 [ 4 - 02 ] Complementary Strand 보완적인 가닥 - 02 +2 23.10.21 41 1 10쪽
128 [ 4 - 01 ] Complementary Strand 보완적인 가닥 - 01 +2 23.10.20 55 2 13쪽
» [ 3 - 35 ] Transcriptional Genetic Code 전사 유전 암호 - 10 +2 23.10.19 47 1 7쪽
126 [ 3 - 34 ] Transcriptional Genetic Code 전사 유전 암호 - 09 +2 23.10.18 35 1 9쪽
125 [ 3 - 33 ] Transcriptional Genetic Code 전사 유전 암호 - 08 +2 23.10.17 35 1 13쪽
124 [ 3 - 32 ] Transcriptional Genetic Code 전사 유전 암호 - 07 +2 23.10.16 41 1 11쪽
123 [ 3 - 31 ] Transcriptional Genetic Code 전사 유전 암호 - 06 +2 23.10.15 50 1 9쪽
122 [ 3 - 30 ] Transcriptional Genetic Code 전사 유전 암호 - 05 +2 23.10.14 33 1 14쪽
121 [ 3 - 29 ] Transcriptional Genetic Code 전사 유전 암호 - 04 +2 23.10.13 47 2 11쪽
120 [ 3 - 28 ] Transcriptional Genetic Code 전사 유전 암호 - 03 +2 23.10.12 49 2 10쪽
119 [ 3 - 27 ] Transcriptional Genetic Code 전사 유전 암호 - 02 +2 23.10.11 55 2 10쪽
118 [ 3 - 26 ] Transcriptional Genetic Code 전사 유전 암호 - 01 +2 23.10.10 59 3 12쪽
117 [ 3 - 25 ] New End 새로운 끝 – 05 +2 23.10.09 46 2 6쪽
116 [ 3 - 24 ] New End 새로운 끝 – 04 +2 23.10.08 66 2 11쪽
115 [ 3 - 23 ] New End 새로운 끝 – 03 +2 23.10.07 49 1 12쪽
114 [ 3 - 22 ] New End 새로운 끝 – 02 +2 23.10.06 49 3 11쪽
113 [ 3 - 21 ] New End 새로운 끝 - 01 +2 23.10.06 48 3 12쪽
112 [ 3 - 20 ] Hairpin Loop 머리핀 고리 - 06 +2 23.10.06 49 3 10쪽
111 [ 3 - 19 ] Hairpin Loop 머리핀 고리 - 05 +2 23.10.06 46 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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