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부 꼰대 과장의 이세계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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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세은
작품등록일 :
2023.01.15 15:52
최근연재일 :
2024.03.1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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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1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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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30. 비장의 김치 - 3

DUMMY

“난 지금 무척 바쁩니다만.”


바쁘다는 말이 무색하게, 그녀의 몸은 이미 채야의 집 거실에 와 있었다. 그것도 양 손 가득 호떡을 쥔 채로.


“나도 바쁩니다만. 호떡 그만 먹고 나 좀 도와줘.”


현과장은 그녀의 손에서 호떡을 빼앗더니, 조심스레 김치통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가 오늘 담근 백김치가 담긴 바로 그 통이었다.


“이게 뭡니까만?”

“백김치. 이거 살얼음이 살짝 낄 정도로만 얼려줘.”

“김치를 얼리라는 말입니까?”


현과장의 부탁에 여왕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렸다. 지금까지 김치를 얼렸었던 적이 있었던가. 아니, 단연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김치를 얼리라니.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 김치를 먹는 새로운 방법인 걸까?


“저, 정말 얼리라는 말입니까만?”

“완전히 말고, 살짝, 아주 사알짝! 살얼음이 보일랑 말랑 하는 그 정도로.”


현과장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자신감. 의문점이 한 두군 대가 아니었지만, 우선은 그의 말을 듣기로 했다. 그의 손에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호떡이 쥐어져 있었으니까.


“그, 그럼 합니다만. 그대신 호떡은 반드시 돌려줘야 합니다만!”

“딱 알맞게 해주면 저녁 후에 따끈한 호떡 만들어 줄게.”

“정말입니까?! 그말 취소하면 안 됩니다만!”


여왕은 현과장의 말에, 온 신경을 집중해 손끝에 냉기를 집중했다. 이윽고 김치통의 위로 살포시 냉기가 내려앉고. 모두의 시선도 김치통 위로 쏠렸다.


“이제 다 됐습니다만.”


여왕의 말에, 현과장은 김치통을 열어보았다. 역시나 그녀의 말 대로 백김치의 국물 위로 살짝, 그것도 아주 살짝 살얼음이 껴있었다.


“딱 좋은데. 이제 하나만 만들면 되는군.”

“하나? 뭘 만들어야 한다는 거야? 빨리 말해, 현기증 나니까!”


갓패치는 두 눈을 부라리며 현과장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백김치만큼이나 중요한 거야.”


잔뜩 목소리를 내리깔며 그를 바라보는 현과장. 그의 눈빛에서 이루어 말할 수 없는 기대감이 느껴졌다. 도대체 뭘 하려는 걸까.


“채야, 오늘은 비빔국수를 먹자!”

“비빔국수? 밥이 아니라? 그냥 면을 먹자라는 걸까나?”


채야는 그의 말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 걸까. 슬그머니 고개를 기울였다. 하지만, 현과장은 너무나 단호했다. 뭔가 꿍꿍이가 있는 듯이.


“내 말 한번 믿어 봐. 이거 정말 맛있단 말이야.”


맛있다는 말에, 제일 먼저 반응한 사람은 바로 어흥선생. 지금까지 현과장이 맛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 음식에서 단 한 번이라도 실망을 해본 적이 있었던가. 아니, 없었다. 이런 그의 경험이 보증하고 있었다. 현과장이 말한 음식은 전부 옳다고.


“난 현과장을 믿는다냥!”


음식은 전혀 할 줄 모르는 주제에 참 당당하다.

그런데 이 근본 없는 당당함에 신뢰감을 얻은 것일까. 채야의 기울어졌던 고개가 점점 원상태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냥 밥 먹기 전 애피타이저라고 생각하겠다랄까나.”

“아니다냥! 이건 애피타이저 따위가 아니다냥! 결코 맛이 없을 리 없다냥!”


어흥선생은 현과장보다도 더 강하게 마치 목숨이라도 걸렸다는 듯이 주장했다. 아니, 그러다가 조금이라도 기대에 어긋나면 어쩌려고 저러는 걸까.


“아, 알았다랄까나. 그럼 준비 하겠다랄까나.”


그의 기세에 눌려 그만 고개를 끄덕여버린 채야. 그녀는 이내 부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바로 그때, 현과장의 발밑에서 찰랑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김치통 쪽에서.


“이거 정말 달콤 짭짜름하다능!”

“맛, 좋음!”


이미 김치통 앞에 앉아 야금야금 백김치를 먹고 있는 두 귀염둥이, 키토와 리코. 그들의 얼굴 가득 미소가 피어있었다.


“아이고! 아직 아니라니까, 키토님, 리코님. 아직 김치가 익지 않아서 맛이 안 들었어. 우리 다음에 먹자, 응?”

“그래도 맛있다능! 정말 맛있다능!”

“맛! 좋음! 정말! 좋음!”


두 귀염둥이는 고개를 저으면서 다시금 새하얀 김치 조각을 집어 들었다. 아삭. 아삭. 귓가로 들려오는 김치 씹히는 소리. 그 아삭거림에 모두의 입가에 군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하, 하나만 먹어볼까냥?”

“그럴까? 하나만 딱 하나만 먹어 볼까?”


궁금증과 식욕을 참지 못하고 다가오는 어흥선생과 갓패치. 하지만 이내 그들의 발걸음은 붉은 바자의 사내에 의해 저지되고야 말았다.


“나도 먹고 싶다냥! 현과장 길을 비켜라냥!”

“제정신이야? 제정신이냐고!”


두 사람이 목청 높여 현과장에게 따졌지만, 그는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지금은 그냥 먹기 좀 애매하다니까! 오늘은 비빔국수의 힘을 빌려야 한다고. 잔소리 말고 가서 앉아있어. 국수 나오면 그때 먹어. 알았지?”


오히려 그들의 등을 밀어, 김치통으로부터 떨어뜨리는 현과장. 비록 김치통으로부터 멀어진 갓패치와 어흥선생이었지만, 그들의 눈빛은 결코 포기한 듯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렇게 현과장과 두 먹보의 기싸움이 막 펼쳐지려던 바로 그때,


“국수 만들었다랄까나. 상 준비 좀 해줬으면 좋겠다랄까나.”


부엌 안쪽에서 들려오는 채야의 목소리. 긴장감이 짙어지던 거실에 한줄기 빛과도 같았다.


“내가 간다냥!”

“제정신이야? 내가, 내가 간다!”


어흥선생과 갓패치는 그 누구보다 빠르게 부엌으로 달려갔다. 이윽고 그들의 손에 들려 나오는 푸짐한 양의 비빔국수. 싱싱한 야채 고명과 알맞게 익은 계란. 그리고 은은하게 빛나는 붉은 빛깔은, 거실 모두의 군침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빨리 앉아라냥! 이게 있어야 백김치를 먹을 수 있다냥!”

“나, 나도 먹을 겁니다만!”


그 붉은 색깔에 현혹 된 모양인지, 황급히 달려와 비빔국수 한 그릇을 낚아채는 여왕. 비단 그녀뿐만이 아니라, 루프도 그리고 키토와 리코도 각각 한 그릇씩 받아 들었다.


“자, 미리 밑밥 좀 깔자. 누누이 말했지만, 이 김치는 이틀 이상 숙성 시켜야 맛이 난다고. 나 미리 말했다.”


현과장이 모두를 향해 변명 아닌 변명을 꺼내 놓았지만 단 한 사람도 듣지 않았다. 그들의 온 신경은 오직 백김치와 비빔국수만을 향할 뿐이었다.


“잘 먹겠다냥!”


어흥선생을 필두로, 비빔국수와 백김치를 향해 전투적인 모습을 보이는 가족들. 입술이 붉어지려하면, 새하얀 백김치가 들어가 다시금 입술을 맑게 만들었다.

거실 여기저기서 들리는 면발 넘어가는 소리와 아삭한 배추 씹히는 소리. 목소리는커녕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지만, 음식이 목 뒤로 넘어가는 소리는 정말 찰지게 들려왔다.


“어, 어때?”


현과장은 내심 걱정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백김치를 만든 당일, 곧바로 먹어본 적 없었던 현과장. 그래서 일까, 현과장은 약간 낮은 자세를 취했었다. 김치 마이스터라는 명성에 걸맞지 않게.


“무, 무지 시원하다냥!”

“깔끔하기도 하다랄까나. 김치가 이렇게 개운하다니, 믿을 수 없다랄까나.”


어흥선생과 채야는 감탄하며 백김치를 바라보았다. 이미 완벽히 비워진 두 사람의 그릇. 이번 김치도 합격점인 것 같았다. 그런데,


“뭔가... 뭔가 좀 안 맞아... 뭘까?”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진지한 목소리를 내어 놓는 단 한 사람, 갓패치. 그의 얼굴은 진지함을 넘어서 고민에 차 있는 듯 했다.


“아, 안 맞아?”


김치 마이스터의 자존심이 우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래,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았어야 했다. 갓패치가 아무리 생떼를 부리더라도 김치의 맛을 위해선, 김치를 맛보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과감하게 거절했어야 했다.


“내 불찰이야. 내가 자만했었어.”


현과장은 그 자리에 무릎을 꿇으며 털썩 주저 앉았다. 그런데,


“아니야, 아니야. 이렇게 먹는 게 맞을 거 같단 말이야.”


그의 말을 전혀 듣고 있지 않았던 갓패치. 그는 무언가 깨달았다는 듯 백김치 국물을 비빔국수 안에 쓰윽 부어 넣기 시작했다.


“지금 뭘 하는 거냥!”

“백김치를 모독하는 거랄까나!”


채야와 어흥선생이 말릴 틈도 없이 상황은 이미 끝나버렸다. 이 안타까운 상황에 모두들 혀를 끌끌 찼다. 비빔국수 안에 백김치 국물이라니. 이게 가당키나 한 조합이란 말인가.


“잠깐. 동작 그만.”


아니나 다를까. 현과장이 정색하며 갓패치에게 다가갔다. 무척이나 매서운 눈빛을 쏘아내면서.


“제정신이야? 왜 먹는데 방해하지?”


하지만 갓패치도 결코 물러서지 않는 상황. 둘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거 누구한테 배운 거야?”

“배우긴? 현과장은 먹는 걸 누구한테 배웠나? 이건 본능이야.”

“본능... 이라고?”


본능이라는 말에, 현과장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더니, 그대로 땅을 내려치는 현과장. 그의 모습에서 원통함과 분함이 강하게 느껴졌다.


“이런 걸 단지 본능으로... 도대체 저 인간은...”

“왜, 왜 그러냥?”


어흥선생은 살며시 다가와 현과장 곁에 섰다. 갓패치가 보인 모습이 그렇게 예의에 어긋난 것일까. 아니면 현과장이 살던 나라에서는 불법이기라도 한 것일까. 어흥선생은 궁금증이 머릿속에 번져서 미칠 지경이었다.


“갓패치는 괴물이야. 저런걸 혼자 깨우치다니.”


어흥선생의 물음에 곧바로 대답한 현과장은, 이내 비빔국수에 백김치 국물을 넣어 어흥선생에게 내밀었다.


“이걸 왜 주냥?”

“먹어 봐. 먹어 보면 알아.”


현과장의 권유대로 국물담긴 비빔국수를 먹어보는 어흥선생. 국수를 한 젓가락 입에 넣자, 조금 전 비빔국수와 다른 신세계가 입안에 펼쳐졌다.

시원하고 상큼한 국물이 달콤한 면발과 어우러져 환상적인 하모니를 연주했다. 거기에 살며시 느껴지는 짭조름함. 단짠단짠의 궁극적 복합체. 아니 왜 현과장은 이 사실을 알고도 숨긴 것일까. 그냥 비빔국수와 백김치를 먹은 어흥선생은 이 상황이 억울할 정도였다. 아니, 이렇게 맛있어도 되는 거야?


“왜 말 안 했냥! 왜 말 안 한 거냥!”

“이건 비장의 카드였다고. 혹시나 모두 맛이 없다고 하면, 이걸 알려 주려했는데...”


어흥선생의 반응에 궁금증이 도진 채야도, 국수에 백김치 국물을 넣어 한입 먹어보았다. 말할 필요도 없이, 김치 국물이 어울어진 국수에 황홀하게 빠진 채야. 헛웃음이 절로 났다.


“그냥 국물인데. 그냥 국물일 뿐인데... 이해가 안 된다랄까나.”


그녀가 이해가 되지 않는 건 비단 두 조합뿐이 아니었다. 쉴 새 없이 젓가락질을 하는 그녀의 손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멈추고 싶지만 도저히 멈춰지지 않는 손과 입. 마치 중독되는 것만 같았다. 시원하고 새콤달콤 짭쪼름한 백김치의 국물에.


두 사람의 반응에 너나 할 것 없이 그 레시피를 따라하는 가족들. 후회하는 사람은 그 어느 누구도 없었다.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행복해 하며 저녁 식사를 마친 현과장과 가족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가는 듯이 보였다.




“이대로 넘어가기엔 너무 위험하다. 그래서 난 모두에게 제안한다.”


거대한 원탁 앞에 서서 근엄한 목소리로 이야기하던 아담은, 결의에 찬 눈빛으로 주변을 바라보았다. 바로 곁에 앉아있는 켄지와 정 반대에 앉아있는 라니. 그리고 주변으로 여러 인물들이 앉아있었다.


“나 아담은 신의 위원회에게 「원더랜드 제거」를 제안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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