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부 꼰대 과장의 이세계 라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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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천세은
작품등록일 :
2023.01.15 15:52
최근연재일 :
2024.03.1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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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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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39. 흑막 - 2

DUMMY

“난 데빌 위딘이다.”


짤막한 대답과 함께, 주변이 전부 환해졌다. 아무 것도 없는 듯한 공간이었지만, 주변이 점차 밝아오자, 하나 둘씩 그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마치 깔끔한 대학 강의실 같은 공간. 조금, 아니, 무척 당황스러운 부분이 있다면, 내가 강단에 서서 프리젠테이션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랄까.


“뭐, 뭐야?”

“그대는 어찌 그 이름을 아는가?”


강단 앞 책상 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무나도 익숙한 어흥선생의 목소리. 하지만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어흥선생과 너무나 다르게, 회색의 정장을 입은 채 의자에 앉아 있었다. 얼굴은 비록 어흥선생이었지만.


“어흥선생?”

“난 데빌 위딘. 그대는 내 질문에 대답해라. 어찌 그 이름을 아는가?”

“내 가족인데...”


내 대답은 회색의 어흥선생, 아니 데빌 위딘을 조금 곤란하게 만든 듯 했다.


“어흥선생에게 그대와 같은 헝제가 있다는 정보는 없다.”

“친형제는 아니지만, 우린 같은 집에 살고 같은 밭을 가는 사이라고.”

“어흥선생이 노동을 한다고? 재미있은 농담이군.”


그의 입가 주변으로 살짝이 퍼지는 비웃음. 데빌 위딘은 내 말은 전혀 믿지 않는 듯 했다.


“정말이라니까. 우린 채야와 함께 농사를 짓는다고.”

“헛소리. 어흥선생이 채야와 같이 일을 할 리 없다. 둘 사이는 상극과도 같으니까.”

“아닌데. 뭐, 따지고 보면 티격태격하는 부분이 없진 않지만.”


그는 여전히 내 말을 믿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럼 다른 걸 묻겠다. 그대는 누구인가?”

“나, 나 몰라? 나 현과장인데.”


내 정체를 들었지만, 전혀 반응이 없는 데빌 위딘. 이곳에 있는 덤프 파일들과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현과장이 이름인가?”

“아니, 현지인이 본명인데. 사람들은 현과장이라고 불러.”

“특이한 별명이군.”


이상하다. 어떻게 내 이름을 모를 수가 있는 것일까. 난 데빌 위딘의 관리자인데.


“저기, 내가 데빌 위딘의 관리자인데. 왜 내 이름을 모를 수 있어? 당신 정말 데빌 위딘 맞아?”

“무례하군. 난 데빌 위딘이다. 하지만 그대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대에게 관리자 권한을 준적도 없고.”


그의 말이 맞다면, 내가 가진 것은 이름뿐인 관리자 권한. 어쩌면 눈앞의 그가 이 사태를 전부 막아 줄 거대한 해결책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 밖에서 당신의 능력을 마음대로 쓰는 존재들이 있다고. 그런데 이렇게 가만히 있을 거야?”

“상관없다. 이 시스템은 그렇게 사용되기 위해 만들어졌으니까.”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그렇게 사용되기 위해 만들어졌다니.


“그 이야기, 자세하게 설명 좀.”

“그럼 위치를 바꿔야겠군.”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강단에 나타난 데빌 위딘. 난 이미 책상 앞에 앉아있었다. 도대체 이게 어찌 된 거지?


“뭐, 뭐야?”

“여긴 내가 만든 가상공간. 이 정도에 놀란다는 건, 확실히 이쪽 공간의 존재는 아닌 모양이군, 현과장.”


여전히 그는 날 모르는 눈치였다. 내 이름이 아닌, 나 현과장이란 존재 자체를.


“여긴 어흥선생이 만든 가상공간이다. 내면의 악마를 풀어 놓기 위한 공간. 그는 원더랜드의 모두가 이 공간 안에서 스트레스를 풀길 원했다.”

“그런 건 별로 알고 싶지 않은데...”


나도 모르게 속마음이 튀어나왔다. 사실, 저린 정보 따위는 알고 싶지도, 알 필요도 없었으니까.


“오래간만에 대화 상대가 왔는데 내가 그냥 넘어갈 거라 생각했나? 그냥 들어라, 현과장.”


뒤에 ~냥은 안 붙지만, 목소리나 그 태도는 완전히 어흥선생 판박이다.


“여긴 어흥선생이 만든 공간...”

“그건 이미 들었어. 다음 이야기.”


순간 그는 날 엄청나게 째려보았다. 그냥 말을 하고 싶었던 거 같은데. 뭐, 내가 알바는 아니니까.


“만드는 도중 문제가 생겼다. 서브 기능으로 넣은 「지식의 전달」 이 큰 말썽을 부리기 시작한 거였다.”

“영혼 문제? 그건 나도 알아.”


그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 마치 그가 입고 있는 회색빛 정장처럼.


“다 아는데 왜 물어 본 건가?”

“아니, 여길 마음대로 쓰는 존재들이 있다고. 그걸 설명해 줘야지.”

“여긴 그런 공간이라고 말했다. 마음대로 쓰라고 만든 공간이다.”

“그 존재들이 원더랜드를 파괴하려고 하는데도?”


난 그가 책임을 지고 사태를 막아 주길 간절히 기도했다. 하지만,


“그건 그들의 선택이지,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다.”

“원더랜드가 파괴되면 이곳도 온전하지 못할 거라고!”

“상관없다.”


그의 반응은 정말 냉정했다. 마치 알고도 묵인하는 것처럼.


“설마 알고도 가만히 있는 건 아니지?”


내 질문에 데빌 위딘은 가만히 있었다.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 채.


“지금 밖에 있는 어흥선생과 다른 원더랜드의 주인들은 원더랜드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는데, 그냥 그렇게 가만히 보고만 있을 거야?”

“그대는 이곳에 얼마나 많은 영혼이 들어와 있는지 아는가?”


내가 그 사실을 모를 리 없었다. 여기에는 수십 억 번의 리셋 때 사라져간 영혼들이 덤프파일이 되어 그대로 묻혀있는 곳이니까.


“원더랜드가 리셋 될 때마다 영혼들이 여기로 온 건 알고 있어. 그 중 일부는 내 머릿속에 있으니까.”

“기록으로는 일부가 아니다, 현과장. 대부분이지.”


데빌 위딘의 뒤에 있는 화이트보드에 무수히 많은 이름들이 주르륵 나타났다.


“그대가 가져간 영혼은, 원더랜드의 존속을 바란 영혼들이다.”


원더랜드의 존속을 바란 영혼들이라고? 모든 영혼들이 원더랜드가 파괴되는 걸 막고 싶어 하지는 않았다는 말인가?


“여기에 남은 영혼, 아니 덤프 파일들은 모두 원더랜드의 존속을 반대하는 존재들. 대다수의 존속파가 떠난 이상 멸망파가 활개를 치는 건 당연한 일이지.”

“묵인하는 주제에 참 많은 걸 말해 주네.”

“그대라 내 말벗이 되어준 것에 대한 작은 보상이다. 즐거웠으니까.”


이내 그는 작은 쪽지를 꺼내 내 앞에 내밀었다.


“그대의 존재는 데빌 위딘 안에 없었다. 셀 수 없을 정도의 리셋 속에서도 찾을 수 없었지. 그게 내가 그대를 모르는 이유이자 원인이다.”

“그럼 이 쪽지는 뭐야?”

“내가 주는 깜짝 선물. 난 어흥선생이 자신의 성격을 본 따서 만든 존재다. 성격이 유별나지.”

“짓궂긴 하지만 좋은 사람이라고, 어흥선생은.”


난 쪽지의 내용에 대한 감이 왔다. 분명 뒤통수를 얼얼할 정도로 충격이 있을 것이고, 그 충격만큼 내게 중요할 것이다. 난 서둘러 쪽지를 열어보려고 했다. 그런데,


“잠깐. 명심할 게 있다.”


내 손을 갑자기 붙잡는, 데빌 위딘. 명심할 것이라는 게 도대체 뭘까.


“뭘 명심해야 하는데?”

“지금부터의 미래는 정해진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대의 판단 한 번에 모든 것이 뒤바뀐다. 죽을 인간이 살고, 죽었던 인간이 살아 돌아올 수도 있다.”


죽었던 인간이 살아 돌아온다고? 이 사실이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


“산 사람이 죽지만 않는다면, 크게 문제 될 게 없잖아.”

“과연 그렇게 생각하는가? 그럼 그대의 행동을 절대 말리진 않겠다.”


이내 그는 잡고 있던 내 손을 그대로 놓아 주었다.

그래,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이 쪽지를 읽는다고 바뀔 것은 없었다.

그래, 이 때까지만 해도 난 그렇게 생각했었다.

이 생각이 바뀐 건, 쪽지의 첫머리를 읽자마자. 데빌 위딘을 만나기전, 루프의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현과장, 현과장은 자신의 선택에 후회 안 할 자신이 있냐, 멍?-


후회를 안 할 자신이 있냐고? 아니, 난 지금 무척이나 후회한다. 이 쪽지를 읽은 걸 후회하는 게 아니다. 얼마전 내 자신의 행동 전부가 후회된다.


-그럼 절대 마음 약해지지 말아라, 멍.-


아니, 이 사실을 알고 마음이 약해지지 말라고? 그게 말이 돼? 그게 말이 되냐고!


“이게 사실이야?”

“사실이다, 현과장. 이제 선택은 그대의 몫이다.”

“내 동료들 어디 있어? 은아는 어디 있어?”

“모두가 있어야 할 곳.”


있어야 할 곳이라면, 루프와 두 귀염둥이는 현실 세계로 돌아갔다는 뜻일 거다. 그럼 은아는?


“은아는?”

“그건 현과장이 나가서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


순간 눈앞이 검게 물들어갔다. 오감이 멀어지는 게 느껴졌다. 마치 죽음을 경험하는 것처럼.




“대답해! 은아 어딨어?!”

“은아? 은아가 누굴까나?”


침대에서 소리를 지르며 깨어나는 현과장. 그의 주변에는 많은 인물들이 옹기종이 모여 앉아있었다.


“일어났습니까? 일어났으면 호떡부터 구워주면 좋겠습니다만.”


여왕이 초롱한 눈동자로 현과장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현과장은 지금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다.


“은아를 찾아야해! 은아를 찾아야 한다고!”

“은아가 누굴까나? 은화는 아는데 은아는 모른다랄까나.”


채야의 목소리에서 작은 질투가 느껴졌다. 하지만, 현과장은 개의치 않았다. 지금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오직 은아뿐이었으니까.


“데빌 위딘이 밖에서 찾으라고 했어. 그럼 분명 은아가 현실로 나왔다는 이야기인데...”


현과장은 자신의 모든 신경을 집중해 생각을 이어갔다. 과연 데빌 위딘이 한 말의 뜻은 무엇일까. 은아가 어떻게 현실세계로 나올 수 있는 것일까.


“데빌 위딘 안에 있는 인격이 어떻게 하면 밖을 나올 수 있을까...”

“적당한 의체만 있으면 나올 수 있어요. 저처럼.”


현과장의 혼잣말에, 은근슬쩍 답하는 밀크나. 순간, 현과장은 머리가 번뜩였다. 그래, 그녀의 말대로 은아가 현실로 나올 가능성은 이 방법뿐이다. 그런데 어떻게 의체를 마련하지?


“그럼 의체는 어떻게 마련하지? 밀크나의 몸도 시간이 꽤 걸렸는데.”

“그건 모르겠는데요.”


밀크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데,


“잠깐, 나 무서운 생각이 들었는데요.”


불쑥 그들의 대화에 끼어드는 우유나. 그녀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마치 뭔가 끔찍한 생각이 떠오른 것만 같이.


“왜 그래, 우유나.”

“얼마 전에 데빌 위인에 내 이름으로 강원랜드에 메시지를 보냈거든요.”

“그게 어쨌는데?”

“그게...”


우유나의 목소리가 살며시 떨렸다. 현과장은 직감했다. 그녀가 알고 있는 사실이 결코 평범한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전투형 안드로이드 양산 계획서를 보냈어요. 밀크나를 만든 설계도면과 함께.”


모든 사실이 하나로 이어졌다. 데빌 위딘이 했던 말과 밀크나의 조언. 그리고 우유나에게 일어난 현실이.


“데빌 위딘 안의 존재들이 원더랜드를 멸망시키기 위해 우유나를 이용한 거 같은데.”


이미 데빌 위딘 안 존재들이 원더랜드에 적대감을 가지고 있는 건 확정된 사실. 사건의 진행으로 봐서, 그들은 세상 밖으로 나와 직접 멸망을 가져다 줄 것이 확실했다.


“빨리 막아야 해!”


현과장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런 그때, 갑자기 그를 막고 서는 채야. 그녀의 눈동자에 작은 진투가 일렁이고 있었다.


“그. 러. 니. 까. 은아가 누굴까나?!”


그런 그녀를 담담하게 바라보는 현과장. 그는 채야의 곁을 지나치며 나직이 입을 열었다.


“...내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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