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각성의 주문이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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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유로비트
작품등록일 :
2023.02.04 13:57
최근연재일 :
2023.07.09 12:54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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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4,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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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27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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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85. 변한 것, 변하지 않은 것.

DUMMY

“신의 속성을 가장 잘 아는 자가 그런 말을 하는 것도 아이러니하군.”


“아아. 아주 잘 알고 있다. 어디에도 있고 어디에도 없지.”


“그런데도 ‘숫자’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건가?”


“못할 것도 없지.”


알베르트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어차피 ‘관측’과 ‘인지’에 달려있는 것일 테니까.”


잠시나마 침묵이 흘렀다.


“인간이 신을 인지하지도, 관찰하지도 못할 수준이라면 너는 존재하지 않는다.”


알베르트가 침착하게 말했다.


“그래서 너는 인간이 너에게 접근하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인간이 너와 닮기를 바라는 모순에 빠질 수밖에 없는 거지. 그리고 인간이 ‘수’나 ‘양’이 아닌, 그런 일부가 아닌 전체의 신을 느낄 수 있다고? 그럼 그가 신이겠지.”


“... 거기까지 왔는데 돌아가겠다고?”


“아쉽지만 내가 도달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하지만 그것이 다음의 누군가가 똑같을 것이라는 이야기는 아니지.”


신일 것이라 느껴지는 목소리가 말했다.


“알베르트여. 나는 너다.”


“억지로 나를 끌고 가려고 하지 마라. 나는 이미 거래를 제시했고, 소멸할 존재니까.”


“영원에 소멸은 없다.”


“그래서 소멸을 택하는 거다.”


알베르트의 목소리는 왠지 들떠있었다.


“완벽의 조각이자 영원의 일부로 태어났던 자. 하지만 나는 영원의 일부가 되기를 거부하겠다.”


“... 궤변이라는 걸 알면서도.”


“네가 시간이라는 도구로 관측을 묶어놓은 이상 거기를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으니까.”


정적이 흘렀다.


“... 거래는 성립됐다.”


“아니. 조건이 모두 충족이 되어야 거래가 성립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첫 번째 조건은 충족되었다고 해주지. 시간은 돌아갈 것이다. 네가 맺은 맹약들이 내가 돌리는 시간을 얼마나 피해 갈 수 있을지 한번 보도록 하지.”


신의 말에 알베르트는 온몸이 새하얗게 물드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


베르가 상념에서 깨어났을 때는 로테도, 머콘도 방 안에 없었다.


얻은 기억은 많았지만 그것이 명확하게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일단은... 각성계의 왕인 건가.”


알베르트가 넘겨준 것.


“그리고...”


로테는 현실계의 왕이었다.


알베르트와 로테가 할 수 없었던 것을 자신이 해야 한다고? 가장 이기적인 선택을 했던 자신에게 왜 이런 짐을 지우는 거지?


“... 그게 가장 이기적인 선택이라 이건가?”


알베르트는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다 말했다. 정말일까?


의무실을 나오니 어라우절 사무실은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더 활기가 넘치는 것 같았다.


이미 국제적 스타가 되어버린 데스티니가 복귀했고, 각성자 아이돌로 이름을 날린 그래비티가 있었다.


데스티니의 곡들은 장기간 빌보드에 체류 중이었고, 그래비티의 곡들은 아직 저번의 관심이 식지 않아서 순항 중이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는 거지?


베르는 순간적으로 혼란이 왔다.


지금 자신은 그래비티의 베르일까?


“몸은 좀 괜찮아요?”


지나가던 여직원이 물었다.


“아. 네. 뭐...”


직원이 스쳐 지나가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이 현실이 갖는 의미가 대체 뭐란 말인가.


거기다 이전 생의 베르테르가 경험했던 삶은 고작 근대로 접어들던 무렵이었다. 왜 그 시대로 돌리지 못하고 이런 시대까지 흘러온 것일까.


“... 변태.”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베르는 움찔 놀랐다.


“여직원 뒤태나 감상하고 다니다니...”


소라였다.


소라도 로테의 동생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지금 기억을 찾은 상태는 아니었다.


“아니 그런 거 아니거든.”


“뭐래. 시선이 딱 엉덩이만 쳐다보고 있던데.”


한동안 잠잠하다 싶더니...


왜 갑자기 시비를 거나 싶어서 소라를 쳐다본 베르는 소라의 얼굴에 스치는 불안감 같은 것을 읽을 수 있었다.


“이제 연예인인데 그런 거 조심해야 하는 거 아니야?”


“... 너는 언제 데뷔하냐?”


소라가 화난 것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야! 혼자 데뷔했다고 그런 말 하는 거야?”


베르는 소라의 과장된 행동의 뒷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왜? 뭐?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건데?”


소라는 베르가 빤히 쳐다보니까 약간 부끄럽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구나.


베르는 소라가 자신에게 의미 없는 농담을 주고받기를 바라는 이유를 알 것 만 같았다.


자신이 ‘진현우’의 베르가 변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그녀도 지금의 ‘소라’가 변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소라로 지내왔던 삶에 대한 미련일까?


베르는 자기도 모르게 소라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 머리를 쓰다듬었다.


“뭐... 뭐 하는 건데?!”


아. 실수.


소라는 당황해서 손을 쳐냈다.


“꼭 변할 필요 없어. 나도. 너도.”


그 말에 소라가 입을 다물었다.


“내가 각성계의 왕이든, 그래비티의 베르든, 아니면 네가 어라우절에서 만났던 어리바리한 연습생 진현우든... 지금 여기 있으니까.”


베르는 지금의 상황에서 어렴풋이 느껴지는 게 있었다. 셋 중 어느 베르인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지금 여기 있는 게 자신이었다.


“빨리 데뷔나 해라. 너도 우리가 뜰 때 덕을 좀 봐야지.”


“그런 거 필요 없거든?”


소라 자신은 모르겠지만 소라도 처음 들어왔을 때와 많이 바뀌었다. 그때의 그 대답도 잘 안 해주던 날카로운 여자애는 어느새 평범하고 투덜거리는 발랄한 여고생이 되어있었다.


베르는 다시 한번 손을 뻗어 소라의 머리를 헝클여주고는 자리를 떴다.


“야! 뭐 하는 짓이야!”


뒤에서 소라의 투덜거리는 소리에 베르는 슬그머니 웃음을 지었다.


-----------------------------------


“내가 누군지 기억이 났으니 왔겠죠?”


로테는 담담하게 말했다.


“물론입니다. 왕비여.”


리마는 로테를 마주 보고 나서 확신했다. 그녀는 분명히 각성계의 왕비였던 로테였다.


“분위기가 많이 바뀌셨군요.”


“어디까지 기억이 나시는 거죠?”


리마는 단번에 본론으로 들어가는 로테의 질문에 헛기침을 했다.


“서로 질문해야 할 것이 많은데... 천천히 이야기하시죠.”


“그대들이 궁금해할 것은 뻔하죠. 각성계의 왕은 돌아온 것인가.”


“...”


노회 한 벤데 일파의 수장이었지만 그는 자신이 이 대화의 주도권을 잡기 어려울 것이라고 깨달았다.


“그래서... 돌아왔습니까?”


로테는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 아니라고요?”


리마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렸다.


“릴리 일파를 혼자서 쓸어버리셨다는 것은 아니겠죠?”


“그건 왕이 한 것이 맞습니다.”


리마는 마치 예전 알베르트와 대화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부부는 닮는다더니 오랜 기간 같이 지내면서 영향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왕이 돌아오지 않았다면... 다시 어딘가로 갔다는 이야긴가요?”


“왕은 죽었습니다.”


리마의 표정이 일순 흐려졌다.


“... 그런 것 치고는 왕비님의 표정에 별 변화가 없는데요.”


“사실 죽은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겠죠.”


리마는 로테의 표정 뒤에 숨은 진실을 살펴보기 위해서 안간힘을 썼다.


“그럼 이제 각성계의 왕은...”


“양위되었습니다.”


“...!”


설마.


로테가 양위를 받은 것인가?


지금 로테가 보여주는 위압감과 존재감이라면 충분히 그러고 남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 현재의 왕은...”


“저희와 함께 있습니다.”


왕을 감출 생각은 없어 보였다.


“네. 감출 생각 없습니다.”


리마는 움찔했다.


왕비에게 생각을 읽는 특성 같은 게 있었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왕위는 양위되었고 대관식까지 할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각성계의 왕으로 다시 각성계를 찾아갈 생각입니다.”


로테의 애매한 말투에 리마는 왕이 누군지 아직 헷갈리고 있었다.


“왕비님이 왕위를 이어받으신 건가요?”


“아니오.”


로테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이야기했다.


“베르가 왕위를 이을 것입니다.”


“... 지금 농담하시는 겁니까?”


리마의 분노는 당연했다.


샤를로테와 알베르트.


그들은 서로를 로테와 베르라는 애칭으로 부르고는 했다. 그렇게 자주 듣다 보니 심지어 각성계의 벤더 일파를 비롯한 나머지 인원들 마저도 샤를로테를 로테라고 부르고 있었다.


로테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알베르트가 아닙니다.”


“그럼...?”


샤를로테가 베르라고 부르는 존재가 또 있단 말인가?


그 순간 최근 어라우절에 대해서 받았던 자료가 떠올랐다.


“설마 그 각성자 아이돌...?”


“네.”


리마는 당황했다.


“그자가 왕위를 양위받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보시는 지요?”


“당연히.”


리마는 답답해하고 있었지만 로테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각성계의 왕의 조건을 알고 있나요?”


로테가 리마에게 물었다.


“당연히...”


말하던 리마가 뒷말을 잇지 못했다.


자신이 알고 있던 왕은 처음부터 끝까지 알베르트뿐이었다. 알베르트는 왜 왕이 되었고 어떻게 왕이 된 것일까?


“신의 의지겠죠?”


“... 그렇습니다.”


“그리고 알베르트는 신의 의지를 거슬렀고요.”


“...”


리마는 동의하지 않았지만 반박하지도 않았다.


“알베르트는 베르테르에게 왕위를 양도했고, 신의 의지는 그걸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그 정도면 될까요?”


“... 그걸 어떻게 입증한다는 말입니까?”


“애초에 이 상황이 신의 의지와 알베르트의 약속이었으니까요.”


리마는 바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웠지만 왠지 로테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왕이... 신과 거래를 했다고요?”


“네.”


“그럼... 우리가 시간을 거슬러 온 것이 왕이 거래한 대가입니까?”


로테의 표정에 잠시 호기심이 스쳐 지나갔다.


“맞습니다.”


“... 왜 그런 짓을?”


“이대로 간다면 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을 위해서라고요?”


리마가 갸웃거렸다.


“이번에 ‘주’를 박살 낸 거 아니었습니까?”


“맞습니다.”


“... 적어도 주가 신의 충실한 종이라는 것을 모르는 자는 없을 텐데요.”


“그가 신의 모든 의지를 대변한다고 볼 순 없으니까요.”


리마의 머릿속에 약간의 혼란이 찾아왔다.


“... 어쨌든 베르가 왕위를 이어받았다는 것이죠?”


“그렇습니다.”


“그럼 각성계를 방문... 아니 각성계로 돌아오시기를 부탁드리겠습니다.”


로테가 웃었다.


“왕이 없으면 귀찮게 모시지 않아도 될 테니 고마워해도 될 것 같은데 왜 왕을 다시 찾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네요.”


“...”


“적어도 베르와 같이 찾아가겠다는 약속 정도는 드리겠습니다.”


“알겠습니다.”


리마는 복잡해진 머릿속으로 어라우절을 빠져나갔다.


-----------------------------------


“... 이게 진짜야?”


백야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아주 일방적으로 끝난 것 같은데?”


옆에 있던 남자가 ‘흔적’을 보면서 이야기했다.


“주가... 이렇게 쉽게 패배했다고?”


백야가 주와 알고 지내면서 느낀 것은 그가 확실히 ‘신’에 가깝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자신도 아마 그가 허용하지 않았다면 그의 존재감에 짓눌렸을 만큼.


“... 균형추가 무너졌군.”


옆의 남자도 씁쓸하게 말했다.


“어라우절이 다 모여도 주 하나를 감당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는데... 대체 누구지?”


“우리 쪽에 들어온 정보에 따르면 아마도 왕비와... 그 이외의 한 명인 것 같다.”


“왕비?”


“그래. 왕비.”


백야는 어리둥절했다.


“각성계의 왕이 있는 것은 그렇다고 치고... 왕비까지 있었다고?”


“... 너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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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98. 워너비 아이돌 23.05.10 77 2 15쪽
98 97. 완벽의 기준 23.05.09 80 2 13쪽
97 96. 왕이 되는 순간 23.05.08 77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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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94. 조건 불만족 23.05.06 83 2 15쪽
94 93. 멸망의 조건 23.05.05 91 2 14쪽
93 92. 현실 적응 23.05.04 83 3 12쪽
92 91. 공과 업 23.05.03 92 2 13쪽
91 90. 비선형 역학 23.05.02 88 2 14쪽
90 89. 대답할 수 없는 질문 23.05.01 87 2 14쪽
89 88. 괴리 23.04.30 92 2 13쪽
88 87. 인과 23.04.29 83 2 13쪽
87 86. 운명의 이끌림 23.04.28 92 3 14쪽
» 85. 변한 것, 변하지 않은 것. 23.04.27 98 2 13쪽
85 84. 기억의 조각 23.04.26 101 3 13쪽
84 83. 셋 중의 하나 23.04.25 99 2 13쪽
83 82. 왕의 기억(3) 23.04.24 99 2 14쪽
82 81. 왕의 기억(2) 23.04.23 101 2 12쪽
81 80. 왕의 기억(1) 23.04.22 101 2 14쪽
80 79. 거래의 성립 +1 23.04.21 93 2 12쪽
79 78. 전쟁의 핵심 23.04.20 98 3 13쪽
78 77. 선전포고 23.04.19 100 3 13쪽
77 76. 돌고 돌아 제자리? 23.04.18 102 3 14쪽
76 75. 맹약의 대상자들 23.04.17 102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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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73. 각성자 아이돌 23.04.15 111 3 14쪽
73 72. 인질 23.04.14 103 3 14쪽
72 71. 왕의 유산 +1 23.04.13 109 4 14쪽
71 70. 함정인가? 23.04.12 106 3 14쪽
70 69. 각성자 게임 23.04.11 106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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