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각성의 주문이 이상하다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완결

유로비트
작품등록일 :
2023.02.04 13:57
최근연재일 :
2023.07.09 12:54
연재수 :
154 회
조회수 :
23,355
추천수 :
472
글자수 :
944,177

작성
23.05.03 07:50
조회
91
추천
2
글자
13쪽

91. 공과 업

DUMMY

“... 티그?”


티그를 본 적 없는 헤일만이 약간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괜찮은 거죠?”


“... 호칭이 좀 이상한데. 나는 기억이 돌아온 상태라서.”


베르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지금은 그래비티의 베르니까요.”


“그러고 보니 데뷔 축하해. 페스도.”


“... 감사합니다.”


티그는 겉보기에는 크게 바뀐 게 없어 보였다.


“머콘의 말로는 몸이 좀 안 좋았다던데.”


“정신적인 부분이었지.”


“... 그건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 알베르트도 아닌데 뭐.”


그러고 보면 티그가 각성계에 인질로 남았던 동생이었다.


“이제 괜찮아. 그래서 얼굴도 볼 겸 들른 거고.”


“다행이네요.”


티그는 헤일을 보고 반갑게 손을 들어 보였다.


“... 헤일이라고 합니다.”


“알아.”


서로 어색한 상황이었다.


“어라우절로 왔으면 볼 사람이 더 많았을 텐데.”


“뭐 천천히 들르지. 머콘이 시킨 일도 있고.”


“무슨 일인데요?”


“사람 찾는 일.”


“어?”


베르가 깜짝 놀랐다.


“혹시 찾은 거예요? 동생을?”


“아마도.”


“로테가 좋아하겠네요.”


로테 이야기가 나오자 티그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로테랑은 사이가 별로였나?


“사실 공연장에 온 것도 찾아야 할 사람이 이 근처에 있기 때문이었어. 겸사겸사 해서 들렀지.”


“잘 왔어요.”


“... 베르테르.”


티그의 갑작스러운 호칭에 뭐라 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어느 정도 이야기는 들었어. 알베르트의 이야기까지. 어떻게 할 거야?”


“... 뭘요?”


“우리는 계속 ‘특별한 사람’이어야 하는 건가?”


“...”


베르는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냥... 그냥 편하게 지내면 안 되는 걸까?”


티그의 질문은 얼마 전까지 베르가 고민하던 그 질문이었다.


“그냥 지내다 보면 시간이 해결하지 않을까요?”


“... 그럴지도 모르지.”


그게 아니라는 걸 베르도 알고 있었다. 이미 쏟아진 물은 주워 담을 수 없었다. 시간은 그걸 해결해 주는 게 아니라 묻을 뿐이었다.


“... 아직 완전히 결정을 내린 건 아니라서 뭐라고 말은 못 하겠지만...”


베르가 티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티그의 눈동자는 흔들리고 있었지만 베르의 눈동자는 오히려 가라앉아 있었다.


“할 수 없는 걸 할 생각은 없어요. 할 수 있는 걸 해야죠.”


“... 지치고 힘들더라도 말이지?”


베르는 페스와 헤일을 돌아봤다.


“오늘 공연도 준비부터 공연까지 지치고 힘들었지만 그게 공연을 후회하게 만드는 건 아니니까요.”


“... 언젠가는 공연에 지치는 날이 오지 않을까?”


“그때쯤 할 수 없는 게 되는 거죠.”


“...”


티그는 말없이 잠시 베르를 바라봤다.


“... 그래. 지치지 전까지.”


티그가 나가고 나니 대기실 분위기가 약간 싱숭생숭했다.


페스가 침묵을 깼다.


“저게 스트루프를 고민하게 만든 부분이야.”


“뭘 말이야?”


“지금의 나는 아직 소모되지 않았거든.”


페스는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나는 아직 뭐든 해볼 수 있어. 하지만 이전의 기억이 누적된다면... 내 정신이 만약 저렇게 소모되어서 지쳐있다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


“그 점에서 베르 네가 대단하다고 생각해.”


페스가 베르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각성계의 왕, 거기다 그 이전의 삶까지 짊어졌어도 주저앉지 않는 네가 대단한 거야.”


지칠 대로 지친 알베르트의 영혼과 극단적인 베르테르의 영혼. 거기에 평범하고 소심하기 이를 데 없는 진현우의 영혼이라니.


듣고 보니 이 조합으로 잘도 버티고 있었다. 그래서 조금 흔들리고 있는 것 같았지만.


-----------------------------------


“...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백야는 어이가 없었다.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승률이 낮다고.”


“아니... 그게 아니라...”


백야는 ‘주’를 마주하고 있었다.


“어떻게 돌아오신 거죠?”


“돌아왔다고?”


주가 순간적으로 웃은 것 같았다.


“여전히 각성계를 모르면서 각성계를 떠도는 자여. 너는 각성계에서의 죽음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는 것 같군.”


“... 소멸이 아니었습니까?”


“소멸이라고?”


갑자기 주의 표정이 변했다.


“나름 재미있는 상대라고 생각했지만 너무 격이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군.”


백야는 자신이 뭔가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각성계의 모든 존재는 신의 일부다.”


“... 알고 있습니다.”


그것까지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각성계는 무시무시한 에너지의 집합체였다.


무한에 가까운 영역.


그리고 신에 근접한 영역.


“우리가 죽는다는 것은 그 공과 업을 잃는 것일 뿐이다.”


“... 그럼 약해질 뿐이라는 건가요?”


“그렇다. 각성계의 일부로서 오랜 기간 지냈으면서도 아무것도 모르는 자여.”


짜증 나는 말이었지만 모르고 있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럼 ‘주’의 영향력도... 약해진 겁니까?”


“그렇다고 봐야지. 하지만 나는 금방 되찾을 수 있다.”


주는 그냥 근거 없는 자신감을 보이는 것 같지 않았다. 뭐지?


“... 찾고 나면 각성계의 왕에게 복수하실 생각입니까?”


“복수라고?”


주는 갸우뚱했다.


“우리에겐 복수라는 감정은 없다. 오히려 공과 업을 더 많이 짊어졌기에 그가 각성계의 왕인 것일 뿐이지.”


“... 그럼 이겨도 좋을 게 없다는 이야긴가요?”


“지기 위한 전쟁을 하는 멍청이도 있던가?”


여전히 주의 화법은 사람 분통 터지게 하는 화법이었다.


“너도 공과 업을 느꼈을 텐데?”


느껴봤다고?


그 순간 백야의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게 있었다.


“... 간섭력!”


“그래. 간섭력이 공과 업이다.”


“하지만 스트루프가 없는 지금은 의미가 없는 거 아닙니까?”


“스트루프라...”


드물게 주가 생각에 잠겼다.


“나는 신의 의지를 이어가고 있지만 스트루프만큼은 신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짐작하기 어렵다.”


“그 스트루프를 통과하기 위해서 간섭력이 필요한 거 아니었습니까?”


“스트루프는 특수 조건에 가깝다.”


주의 눈이 빛났다.


“그 이상을 알기 위해서는 현실계와 각성계에 대해서 알아야 하는 부분이지.”


“... 놓치고 있는 부분이 있는 건가요?”


“그게 아니다. 처음에 현실계와 각성계가 어떤 관계로 만들어졌는지에 대한 이야기지.”


백야는 저절로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다만 그걸 네가 알 필요가 있는지는 모르겠군.”


“... 각성계의 왕과 중재를 해드릴 수도 있습니다.”


“중재 같은 건 필요 없다. 부딪혀 보면 알 일이니까.”


백야는 속으로 혀를 끌끌 찼다. 자칭 신에 가까운 인간이 이리도 전쟁을 입에 달고 살다니.


“현실계의 죽음이 각성계와 연관이 있는 거 아니었습니까?”


백야는 간신히 머릿속을 휘저어서 이야기를 짜냈다.


다행히도 주는 관심을 보였다.


“오호. 연결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너는 현실계에서 사람이 죽어서 각성계로 넘어가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있다고 말하려던 백야가 입을 다물었다. 자세히 생각해 보면 자신의 무리는 죽어서 각성계로 넘어온 것이 아니었다. 스트루프에 의한 것이었다.


“없을 수밖에 없다. 원래 현실계는 각성계의 거울세계에 가까우니까.”


“... 거울 세계요?”


“어리석은 자여. 너는 아직 각성계와 현실계의 진실을 들을 준비가 안 되어 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들려주도록 하지.”


백야는 주의 축객령에 하는 수 없이 물러나왔다.


“대체 뭔 소리지? 아니 그리고 주가 죽지도 않았으면...”


백야의 눈에 낯익은 이가 들어왔다.


“아니 정말로 다 부활하는 거야?”


“아. 백야로군.”


예전에 어라우절에 천사를 끌고 쳐들어갔던 사도였다.


“아. 이번엔 정말 수지 안 맞는 장사였지.”


“... 정말로 각성계의 왕에게 다 쓸린 건가?”


“... 창피하지만 그래.”


“그... 내가 아직 그런 상황이 안 되어 봐서 그러는데... 각성계에 죽음이 없다는 것이 사실인가?”


“죽음이 없다고? 누가 그래?”


“... 주께서 이야기했는데?”


“아. 그럼 좀 이야기가 다르지.”


뭐가 다르냐. 이놈아.


“이상한 표정 짓지 말고. 그게 아니라 주가 말하는 죽음의 의미가 좀 다르다는 말이야.”


“안 그래도 뭔지 이해도 잘 안 가는 선문답만 한참 하다가 빈손으로 나왔지.”


백야는 과장되게 빈손을 내보였다.


“저런. 나름대로 고생했군.”


“대체 공과 업을 빼앗겼다는 게 무슨 뜻이지?”


사도는 조금은 아쉬운 듯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우리는 모두 신에 가까워지고자 노력하는 존재들이지. 그리고 우리가 공과 업을 쌓을수록 신에 가까워진다. 그런데 그렇게 갈가리 찢기고 나면 공과 업을 뺏기는 거지.”


“음... 그걸 빼앗으면 뭐에 쓰는데?”


갑자기 사도가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공과 업이 많으면 무조건 신에 가까워진다. 그래서 우리가 공과 업을 쌓기 위해서 발버둥 치는 것이고.”


“... 그거 신이 되고 싶은 사람들 말고 다른 사람들한테는 별로 쓸모없는 거 아니야?”


“그렇긴 하지. 추측컨대 이번에 각성계의 왕이 공과 업을 빼앗은 이유는 신을 만나기 위해서다.”


“신을 만난다고?”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많은 공과 업이 필요할 리가 없지.”


각성계의 왕이... 그 얼빠진 신입 아니었나?


“그... 그럼 그 정도 공과 업을 먹었으면 신에 가까운 존재가 됐다는 건가? 안 그래도 강한 존재가 더 강해졌다는 거야?”


“음... 그건 좀 이야기가 다른데... 마구잡이로 공과 업을 쌓는다고 해서 강해지는 건 아니다.”


“그럼?”


“... 사실 나도 잘 몰라.”


“어?”


“그에 대해서 다루는 방법이 있었다는데 내가 들은 건 거기까지다. 나는 그만큼 공과 업을 쌓아본 적이 없어서 모르지.”


“그렇군...”


자리를 떠나려는 사도를 황급히 붙잡으며 백야가 물었다.


“잠깐! 잠깐만. 그럼 공과 업을 쌓으면 너도 ‘주’보다 더 신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이야기야?”


사도는 묘한 표정을 지었다.


“이론상으로는 그렇지만 그건 이뤄질 수 없는 일이지.”


“어째서?”


“너는 주가 어째서 저렇게 빨리 회복하는지 모르는 거로군. 그럼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다.”


백야는 뭔가 알 듯 말 듯 한 기분에 괜히 자신의 머리를 벅벅 긁었다.


-----------------------------------


“... 그래서 동생은 찾았나요?”


베르는 공연이 끝나고 사무실로 복귀했다. 당연하다는 듯이 설단의 사무실에 앉아있는 로테에게 물었다.


“아직.”


“티그는...”


말을 꺼내려던 베르는 막상 티그의 이름을 꺼내고 보니 말하기가 쉽지 않았다.


“좀 힘들어하는 것 같더군요.”


“... 가장 고생했었으니까.”


베르는 티그를 만나고 나니 조금 더 혼란스러워졌다.


알베르트의 각오도... 베르테르의 감정도... 그리고 진현우의 삶도 전부 다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알베르트의 염원은 무엇이었나. 자신은 그것을 들어줄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꼭 들어줘야 하는 것인가.


“솔직히 누적된 과거가 있다고 해서 그 과거를 위해서 사는 게 맞는지 잘 모르겠어요.”


꽤나 고민 끝에 나온 베르의 물음에 로테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 뭘요?”


“나는 시간의 흐름으로 250년... 그전까지 합친다면 정말 오랜 시간을 살았지.”


어떻게 봤을 때 누적된 양은 로테가 더 많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말에 동의해. 맹약이 아니었다면... 그때의 나의 어리석음이 아니었다면 지금 이렇게 되었을까 싶기도 하고...”


“... 후회하는 건가요?”


“후회를 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이미 영향을 준 ‘인과’는 후회로 바뀌는 게 없지.”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럼 로테는 어떻게 살고 싶어요? 지금부터라도 말이에요.”


로테가 베르를 바라보았다.


“내 삶의 목적은 이미 맹약으로 옮겨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내 각성의 주문이 이상하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99 98. 워너비 아이돌 23.05.10 76 2 15쪽
98 97. 완벽의 기준 23.05.09 80 2 13쪽
97 96. 왕이 되는 순간 23.05.08 76 2 13쪽
96 95. 주문의 주인 23.05.07 79 2 14쪽
95 94. 조건 불만족 23.05.06 83 2 15쪽
94 93. 멸망의 조건 23.05.05 91 2 14쪽
93 92. 현실 적응 23.05.04 83 3 12쪽
» 91. 공과 업 23.05.03 92 2 13쪽
91 90. 비선형 역학 23.05.02 88 2 14쪽
90 89. 대답할 수 없는 질문 23.05.01 87 2 14쪽
89 88. 괴리 23.04.30 91 2 13쪽
88 87. 인과 23.04.29 83 2 13쪽
87 86. 운명의 이끌림 23.04.28 91 3 14쪽
86 85. 변한 것, 변하지 않은 것. 23.04.27 97 2 13쪽
85 84. 기억의 조각 23.04.26 101 3 13쪽
84 83. 셋 중의 하나 23.04.25 99 2 13쪽
83 82. 왕의 기억(3) 23.04.24 98 2 14쪽
82 81. 왕의 기억(2) 23.04.23 100 2 12쪽
81 80. 왕의 기억(1) 23.04.22 101 2 14쪽
80 79. 거래의 성립 +1 23.04.21 93 2 12쪽
79 78. 전쟁의 핵심 23.04.20 98 3 13쪽
78 77. 선전포고 23.04.19 100 3 13쪽
77 76. 돌고 돌아 제자리? 23.04.18 102 3 14쪽
76 75. 맹약의 대상자들 23.04.17 102 3 14쪽
75 74. 리셋 23.04.16 108 3 14쪽
74 73. 각성자 아이돌 23.04.15 111 3 14쪽
73 72. 인질 23.04.14 103 3 14쪽
72 71. 왕의 유산 +1 23.04.13 109 4 14쪽
71 70. 함정인가? 23.04.12 106 3 14쪽
70 69. 각성자 게임 23.04.11 106 3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