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각성의 주문이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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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유로비트
작품등록일 :
2023.02.04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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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09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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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4,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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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08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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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96. 왕이 되는 순간

DUMMY

순간적으로 베르의 머리가 회전을 멈췄다.


대체 무슨 일이지?


옆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향기? 이걸 대체 뭐라고 표현해야 하는 거지?


“오랜만입니다. 각성계의 여러분. 샤를로테가 인사드리죠.”


목소리부터 분위기, 모든 것이 바뀌었다. 심지어 반말로 대화하던 것마저 반 존대로 바뀌었다.


로테의 인사가 끝났지만 장내에서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마치 엊그제 뵌 것 같은 모습이로군요. 다시 뵈어 반갑습니다.”


가장 먼저 침묵을 깬 이는 리마였다.


로테는 고개를 끄덕여 화답했다.


베르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베르테르의 정신이 미쳐 날뛰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베르, 그러니까 지금의 진현우는 아무리 알베르트와 베르테르를 이어받았다 하더라도 로테에 대해서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특히 받아들여지지 못한 끝에 유명을 달리했던 베르테르에 대해서는 더욱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직접 마주친 로테의 모습은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차갑게만 들리던 그동안의 말투와 목소리가 마치 봄바람처럼 귓가를 스쳤다.


검은 눈은 깊지만 반짝였고 피부는 살짝 홍조를 띠고 있었지만 투명하고 하얀 피부에서 마치 은은한 빛을 비추는 것 같았다.


부드러운 분위기와 대조적으로 살짝 앞으로 내민 상체가 당당하고 도전적인 느낌을 주고 있었다.


“미...”


로테가 쳐다보자 베르는 바로 입을 닫았다.


자기도 모르게 욕을 입에 담을 뻔했다.


‘이게 말이 되나...?’


베르는 아이돌 활동을 하면서 연예계 사람들을 꽤나 만났다. 가깝게는 데스티니만 하더라도 1 티어 아이돌로 분류될 만큼 괜찮은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베르의 이상형은 단디였을 정도로.


거기다 그 외의 연예계 사람들의 외모도 장난이 아니었다. 아니, 멀리 갈 것도 없이 소라나 머콘만 하더라도 연예인에 걸맞은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달랐다.


그냥 옆에 있는데,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거기 있다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온몸의 신경세포가 그녀의 숨소리 하나하나를 다 듣고 있는 기분이었다.


“... 해서 알베르트는 결국 여기 있는 베르에게 왕위를 양위했지요.”


베르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사람들이 전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뭐지?


“베르, 각성계 왕으로서의 간단한 인사를...”


아니. 이런 거 얘기한 적 없었는데...


“어... 반갑습니다. 베르...입니다.”


다음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몇몇은 호기심으로, 몇몇은 의구심으로, 몇몇은 거의 감정조차 담지 않은 표정으로 베르를 쳐다보고 있었다.


“... 왕께서는 그게 원래의 모습인가요?”


누군가의 질문이었다.


원래의 모습이라는 게 무슨 의미지? 알베르트나 베르테르로 변신을 해야 한다는 의미일까?


베르는 말이 막히자 반사적으로 로테를 쳐다봤다.


순간 로테와 눈이 마주쳤다.


로테가 빙긋 웃었다.


아. 웃었네.


뭐라고 해야 할까.


음.


“... 이렇게 생겨서 죄송합니다.”


모두 다 멍한 얼굴이 되었다.


나 뭐라고 한 거지?


쿡.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로테는 고개를 살짝 돌리고 있었다.


가리고 있었지만 어깨는 살짝 들썩이고 목덜미는 살짝 붉은 기가 보였다.


로테가 웃음을 겨우 참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았다.


“...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아닙니다.”


상대방도 당황했는지 그냥 물러섰다.


리마는 신중하게 말했다.


“일단 베르 님께는 축하의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적어도 이 자리에 오셨다는 것은 스스로 각성계의 왕이라는 것을 받아들였다고 봐야겠지요.”


“그... 렇죠?”


베르는 답답했다.


나름 아이돌이자 잘 나가는 연예인 아닌가. 갑작스러운 인터뷰, 갑작스러운 상황들에 대한 대응은 질릴 만큼 많이 연습했다.


하지만 그게 지금 상황에서는 아무 도움이 안 되고 있었다.


단지 상황만의 문제가 아니라 정신이 반쯤 나가있는 기분이었다.


리마가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벤더는 오래전부터 왕과 의견을 같이 하는 세력이었습니다. 물론 여기서는 이전의 왕, 그러니까 알베르트 님의 이야기입니다만. 최소한 각성계와 현실계에 대해서는 왕의 의견을 가장 비슷하게 공유하던 게 저희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지요.”


“그랬다면 알베르트가 그대들과 상의하지 않았을까요?”


로테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그렇지 못한 내용을 말했다.


“... 그 점은 저희도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니면 자격이 안 되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죠.”


리마는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왕비께서는 여전하시군요.”


“저와 알베르트가 그대들의 도움을 받지 못한 것에 대한 원망 같은 것은 남아있지 않답니다.”


리마는 문득 이 자리가 그렇게 화기애애하게 가지는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지금은 베르가 왕입니다. 그에게 무례하지 않도록 주의하시라는 이야기입니다.”


베르는 로테의 따뜻한 말이 자신의 등을 받쳐주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베르는 로테에게 감사의 목례를 하면서 로테와 시선이 마주치자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재빠르게 돌렸다.


깊은 눈은 사람을 반짝이면서도 그 안으로 사람을 빨아들이는 듯한 깊은 흡인력이 있었다.


“저는 물론... 아무것도 모른 채로 왕이 되었습니다만, 아마도 제 안에는 알베르트와 베르테르가 쌓아온 모든 공과가 쌓여있을 겁니다. 저한테 너무 무거운 짐일지도 모르지만...”


베르는 자신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정신이 없었다.


“아마도 벤더에서 걱정하는 것은 현실계와 각성계의 공존 여부겠죠. 서로 다른 두 세계가 마주하고 있다는 것은 공존보다는 서로를 적대시하기가 더 쉬우니까요.”


자신은 그저 입을 뻐끔거리고 있는데 누군가 자신의 목구멍을 통해서 소리를 내고 있는 건 아닐까?


베르는 지금 자기 자신이 온전히 베르인지에 대해서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당장은 현실계에서는 명확하지 않은 정보를 토대로 각성계를 ‘건드려 볼 만한 대상’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물론 각성계의 왕인 제가 해놓은 짓이 있어서 쉽게 보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베르는 확실히 느꼈다. 이건 진현우로서의 베르 만의 느낌이 아니다. 자신의 지금의 언변은 아무리 봐도 그래비티의 막내, 각성자 아이돌 베르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였다.


“로테가 현실계의 왕을 맡았던 가장 큰 이유는 우리에게 믿을 사람이 그만큼 없었다는 증거겠죠. 그리고 지금도 우리는 믿을 사람이 없습니다.”


“알베르트...?”


로테 역시 베르의 말에서 조금씩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여전히 각성계의 왕은 현실계가 남아있기를 바랍니다. 현실계는 변화의 증거이자 동력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베르는 잠깐 로테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원하는 ‘끝’이 그 안에는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 멸망이 현실계에 있다고요?”


“우리처럼 영원의 존재에게는 만약에 무엇인가 있다면 있는 겁니다. 어떠한 인과에 의해서 생긴 게 아니라 말이죠.”


베르가 유창하게 말을 이었다.


“그런데 현실계는 다릅니다. 생각이 본질을 앞설 때가 종종 있죠. 비선형적이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죽음으로 인해서 발생하는 모든 것들은 일련의 멸망입니다.”


“... 그게 우리가 원하는 게 맞다고 볼 수 있겠소?”


“아니면 어쩔 건데요? 우리의 특징은 계속 달려야 한다는 겁니다. 잠시라도 멈춘다면 각성계의 불변은 당신들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끌어당길 것입니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자 누군가 말을 꺼냈다.


“그럼 ‘이번 왕’의 목적은 뭡니까?”


베르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그을음.


베르는 그를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있었지만 그때의 그을음은 악마로 보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와 상관없이 베르는 직관적으로 그를 알아보고 있었다.


아마도 알베르트나 베르테르가 알고 있는 거겠지.


“저의 목적은...”


베르는 잠시 뜸을 들였다.


밖에서는 전혀 알 수 없는 부분이었지만 베르는 이 질문을 받는 순간 다시 자신에게 마이크가 돌아온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지금껏 각성한 이래로 쭉 해온 고민이었다. 자신은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인가. 단지 살아남기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아니면 누군가가 나에게 맡긴 목적을 위해서?


“... 끊임없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리마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개념은... 현실계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뜻인 건가요?”


각성계에는 시간의 관념이 명확하게 없었다. 벌어지는 일들은 있지만 그것이 선형의 관계는 아니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 이 순간도 저에게는 ‘지금’이니까요.”


뭔가 대답을 하긴 했는데 본인에게도 그렇게 만족스럽지는 않았다.


“각성계의 왕...이라는 게 통치의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사실 알베르트가 알고 있던 것이었다.


“그저... 한없이 더 완벽한 개인이었을 뿐이죠. 그리고...”


뭔가 말하려던 베르가 멈췄다.


잠시 침묵이 이어지자 다들 조금씩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베르는 잠시 생각이 필요한 것 같군요. 적어도 우리가 적대적이지 않다는 것은 밝힌 것 같은데 어떤 다른 문제가 있을까요?”


로테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베르테르는 흘러가는 흐름을 선택으로 바꾼 자. 그가 왕이 되었다는 것은 조금은 더 선택지가 늘었다는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을 했습니다.”


그을음이었다.


“알베르트는 나름대로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가 보기에는 더 많은 변수와 선택지를 만들 수 있는 것이 베르테르였겠죠.”


그을음의 눈이 빛났다.


“그런데... 제가 기억하고 있는 베르테르의 모습을 찾기가 어렵군요. 알베르트는 베르테르에게 왕위를 양위한 것이 아니었나요?”


베르는 침묵에서 벗어나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베르테르에게 양위되었다는 뜻을 잘못 이해하셨군요.”


사실 베르도 방금 깨달았다.


“알베르트는 누구로부터 왕위를 양위받았나요?”


대답이 없었다.


“알베르트는 언제부터 왕이었나요? 알베르트가, 각성계의 다른 누구가 아니라 그가 왕이었던 이유를 다들 모르시는군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우리는 결과들입니다. 우리는 결정되어 있는 것들입니다. 알베르트는 왕이었습니다. 그건 누가 그를 왕으로 만든 것도, 그가 누구를 무찌르고 왕이 된 것도 아니죠. 그는 그냥 왕이었습니다. 이유는 사람들의 말처럼, 그가 가장 ‘완벽했기 때문’ 이겠죠.”


베르의 모습이 커져 보이는 것만 같았다.


“내가 왕이 된 것은 누가 만들어 준 것이 아니라, 내가 왕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지키고 있는 ‘가장 정적인 것’들이 과연 ‘가장 완벽한 것’과 같은 것인지에 대한 물음이겠죠.”


포기한 자.


그리고 포기를 통해서 선택한 자.


선택을 했지만 멸망을 가져온 자.


“각성계가 흔들리는 것은 왕의 문제가 아니죠. 여기가 중세시대 테마파크는 더욱 아니고 말이죠.”


또다시 깨달았다.


이건 각성계의 영향일까 아니면...


“각성계에 변화가 있다면 그것은 ‘신의 정의’가 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움직이고 있으며 그에 따라서 무너져 내린다고 봐야죠.”


누군가의 신음이 정적을 깼다.


“아마 다들 알고 있을 겁니다. 시간이 없는 세계에서 시간을 느끼는 것 같은 기분을... 이제 각성계와 현실계... 어느 쪽이 완벽을 가지고 있는 세계일까요?”


베르는 고개를 돌려 로테를 마주 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베르테르의 완벽은 그녀를 보는 순간 깨졌구나.


완벽한 아름다움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지만 그녀를 보는 순간 어떤 감정으로도 그녀를 표현할 수 없다는 것.


알베르트도 베르테르도.


베르는 로테의 두 눈을 들여다보았다.


로테의 숨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깊은 것만 같았던 그녀의 눈동자에 다양한 감정이 스친다.


당혹감, 걱정, 난처함, 그리고 약간의 흥분.


왜 이것들만으로도 완벽한 거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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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98. 워너비 아이돌 23.05.10 77 2 15쪽
98 97. 완벽의 기준 23.05.09 80 2 13쪽
» 96. 왕이 되는 순간 23.05.08 77 2 13쪽
96 95. 주문의 주인 23.05.07 79 2 14쪽
95 94. 조건 불만족 23.05.06 83 2 15쪽
94 93. 멸망의 조건 23.05.05 91 2 14쪽
93 92. 현실 적응 23.05.04 83 3 12쪽
92 91. 공과 업 23.05.03 92 2 13쪽
91 90. 비선형 역학 23.05.02 88 2 14쪽
90 89. 대답할 수 없는 질문 23.05.01 87 2 14쪽
89 88. 괴리 23.04.30 91 2 13쪽
88 87. 인과 23.04.29 83 2 13쪽
87 86. 운명의 이끌림 23.04.28 92 3 14쪽
86 85. 변한 것, 변하지 않은 것. 23.04.27 97 2 13쪽
85 84. 기억의 조각 23.04.26 101 3 13쪽
84 83. 셋 중의 하나 23.04.25 99 2 13쪽
83 82. 왕의 기억(3) 23.04.24 98 2 14쪽
82 81. 왕의 기억(2) 23.04.23 101 2 12쪽
81 80. 왕의 기억(1) 23.04.22 101 2 14쪽
80 79. 거래의 성립 +1 23.04.21 93 2 12쪽
79 78. 전쟁의 핵심 23.04.20 98 3 13쪽
78 77. 선전포고 23.04.19 100 3 13쪽
77 76. 돌고 돌아 제자리? 23.04.18 102 3 14쪽
76 75. 맹약의 대상자들 23.04.17 102 3 14쪽
75 74. 리셋 23.04.16 108 3 14쪽
74 73. 각성자 아이돌 23.04.15 111 3 14쪽
73 72. 인질 23.04.14 103 3 14쪽
72 71. 왕의 유산 +1 23.04.13 109 4 14쪽
71 70. 함정인가? 23.04.12 106 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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