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륜환생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새글

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최근연재일 :
2024.09.21 18:10
연재수 :
366 회
조회수 :
1,828,232
추천수 :
36,076
글자수 :
2,707,079

작성
24.08.19 18:10
조회
1,148
추천
40
글자
12쪽

임전(3)

DUMMY

※※※



“왜, 안갔어?”


나직한 소홍의 물음이다. 백연은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갈 자리가 아니니까.”


지금 이 순간, 상청각에서 벌어지고 있는 회의에 관한 말이었다. 무림맹과 구파를 포함한 정사의 수장들이 한곳에 모인 상황.


그야말로 언제 어디서도 보기 힘들 일이다. 하지만 모두가 모였다. 마교를 막기 위해서.


‘......묘하네.’


백연은 생각했다.


과거에 입에 담았던 곤륜파를 천하제일문(天下第一門)으로 키워내겠다는 다짐. 작금의 곤륜파가 아직 그런 위치에 오르지는 못했지만, 어째서인지 그 당시 상상했던 풍경만큼은 비슷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천하 각지에서 온 수많은 무인들. 구파의 수장들을 위시한 정파 무림의 거두들까지도.


다른 형태지만 비슷하게 현실이 되었다.


사방에서 무인들이 곤륜산을 향해 연일 몰려들고 산맥 위에 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이 이제는 이상하지 않다.


그 광경을 뇌리에 새기며 백연은 흐리게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는 중얼거렸다.


“처음부터 내가 그린 풍경은 이거였어.”


천하제일문을 이끄는 것은 백연 그 자신이 아니다. 한번도 그리 생각해본적도 없다. 그 자신은 평생을 오롯이 검으로 살았고, 검으로 살 것이다.


때문에 그는 언제나 생각했다. 곤륜파의 맨 앞에서 나아가는 것은 백연일지 몰라도, 그 중심에 서 있는 것은 장문인이어야 한다고.


지금 그가 운결에게 모든것을 맡기고 나와, 산맥 깊숙한 봉우리 한중간의 연무장에 걸터앉아 있는 이유는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무 위에 앉아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는 소홍을 향해 백연이 말했다.


“나는 전투에 강한 사람이지, 전쟁에 강한게 아니니까.”

“......차이가?”

“서초패왕(西楚霸王) 같은거지.”


그리 말해놓고 백연은 픽 웃어버렸다.


문득 암혼제의 말이 생각난 까닭이었다. 그를 보고 국사무쌍(國士無雙)의 반열에 오를 전신(戰神)이라고 했었던가.


‘크게 동의하지는 못하겠는데.’


그는 대국을 보는 사람이 아니었다. 천린이 무엇 때문에 그를 그리 평가했는지는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


신교가 대전을 일으켰을 당시, 검귀가 그가 이끄는 무인들은 모든 전장에서 교를 훼방놓았다. 전쟁이 심화될수록 검귀로 인해 신교가 본 피해가 어마어마했던 바.


단적으로 말해 검귀는 전장에서 불패(不敗)였다.


그가 홀로 무지막지하게 강해서 그랬던 것이 아니다. 당시 검귀는 초월의 벽도 뛰어넘지 못했던 무인이니까.


허나 적재적소에 치고 빠지는 움직임. 적의 약한 고리를 찾아 부수고 찢어내는 기동성과, 불리한 전장에서 발휘되는 검귀의 악착같은 싸움까지가 전부 합쳐져 그런 것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그것은 검귀 혼자의 공이 아니었다. 백연이 생각하는 검귀의 장점이자 능력은 하나였다. 싸움에서 승리를 이끌어내는 힘.


무위나 개개인의 강함과는 별개의 무언가. 의지에 가까운 무형의 악착같은 발악.


그것은 전장을 아우르고 전쟁을 통솔하는 통솔가, 전략가와는 거리가 멀다. 천린은 검귀를 회음후(淮陰侯) 한신(韓信)에 가까운 인물로 평가했을지 모르지만, 그 스스로는 그것이 자신의 역할이 아님을 잘 알고 있었다.


“나는 검(劍)이야.”


날카로운 검이지-하고 중얼거린 백연의 말에, 앞에 앉아있던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금에 이름을 새길 검이기도 하지요.”

“그리 말씀해주시니 감사하긴 합니다만.”

“이미 대종사입니다. 백연 대협께선.”


눈가에 검은 천을 두르고 앉아 태연히 공력을 풀었다가 거두기를 반복하고 있는 여인.


“천하 어디에도 그리 무공을 엮어내는 사람은 없습니다. 고금을 살펴봐야 할 일입니다.”

“과찬을. 무엇보다 아직 갈래가 적습니다. 일문의 무공으로는......”

“그거 아십니까? 본래 칠십이종절예는 칠십이종에 달하는 무공이 아니었다지요.”


화율이 담담히 말했다. 백연을 물끄러미 응시하는 시선이 침착했다.


“달마선사께서 만드신 뼈대를 기초 삼아 확장된 것이라고 하더군요. 대종사란 그런 것입니다. 거목(巨木)이 처음부터 거목일 수는 없으니, 씨앗을 심고, 뿌리를 깊이 내리도록 만드는 사람.”

“씨를 뿌리는 사람이라.”

“그 나무가 커져가는 과정에서 수많은 가지들을 뻗어내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역할입니다. 역사에 남을 일문(一門)이란 그런 과정을 통해서 탄생하는 것이지요.”


그리 말하고는 여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흐릿하게 일어나던 진기가 어느새 그녀의 몸 위로 켜켜이 갈무리 되어 있었다. 천천히 눈을 가리고 있던 검은 천을 풀어낸 화율.


“그런 거목의 새로운 뿌리를 엮어내는 것에 제가 일조할 수 있게 된 것도 영광이로군요.”


눈을 지그시 내리감은채 백연을 바라본다.


“허면 이제 제게 무엇이 궁금하신지 직접 듣고 싶습니다.”

“무례한 질문이 될 수 있겠습니다만, 당신은......”


백연이 화율을 바라보았다.


새외 천룡사의 비구니. 범상치 않은 의술과 더욱 범상치 않은 무공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녀가 맹인이라는 것은 누가봐도 명백한 사실.


그럼에도 백연은 그녀가 단 한번도 맹인이라고 느껴본 적이 없다.


그 방도를 알아야만 했다.


“어떤 세상을 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그래야만, 설향이 다시 일어설 수 있을테니까.


백연의 질문에 화율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 물을줄 알고 있었습니다. 설향이라는 분이 다친것을 안 뒤부터, 백연 대협께서 돌아오면 제게 무어라 물을지 생각했으니까요.”

“사저와 이미 만났다고 들었습니다만.”

“예. 상황도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많은 고민을 했지요.”


그녀가 손을 뻗는다. 화율의 손끝에서 뻗어나온 금빛 진기가 흐릿하게 허공을 물들이며 일렁인다.


“제가 세상을 인지하고 움직일 수 있는 근본적인 방도는 사문의 다라법왕공(多羅法王功)을 통한 것입니다.”

“천룡사의 무공이군요. 불문 무공인지......?”

“맞습니다. 소림의 것과는 꽤나 다른 패도적인 성정이 깃든 무공이지만, 근본은 법력에 기반을 두었지요.”


담담히 답하는 그녀의 손길을 따라 진기가 흔들린다. 그 손끝에서 백연은 무언가를 인지했다. 허공을 따라 번지는 수많은 파문의 잔영.


마치 잔잔한 수면 위에 비가 쏟아진다면 이리 될까. 수없이 많은 자그마한 파문들이 제각기 물결치며 원을 그려낸다.


“이게......”


천룡사의 무공.


새외의 무맥이다. 중원의 것과는 자연히 다를 수 밖에 없다. 백연의 눈에도 신비하게만 느껴지는 광경.


이 순간 허공을 따라 울리는 수많은 진기의 파문이 마치 수십개의 풍령이 동시에 울리는 것만 같다. 그속에서 퍼져나가는 울림이 실재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채는 데에는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그 광경을 보던 백연이 뇌까렸다.


“무공의 영향이라면, 그것을 전수받는 것은 불가할텐데요.”

“그렇지요. 사문의 그림자에서 벗어난지는 오래 되었으나......그렇다고 해도 무맥을 외인에게 전수하는 것은 큰 문제. 대협의 사저가 비구니가 되고자 할리도 없기에 무공의 전수는 무용한 가정입니다.”

“심법의 충돌도 있을테지요.”


천하 신공들도 여럿을 육신에 쑤셔박는 일은 불가능하다. 간혹가다 예외적인 한두개의 신공이나 가능할까.


무맥(武脈).


무공은 흐름이다. 하나의 줄기를 이어나가며 살을 불리는 것인데, 별안간 성질도, 깊이도 전혀 다른 무공을 가져다가 이어붙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특히 어떠한 무공을 배울때 가장 기초이자 뿌리가 되는 것이 심법.


처음 무공을 배울때 극도로 신중해질 수 밖에 없는 이유다. 때문에 낭인들 중에는 기본공만 익힌 사람도 꽤 있었다. 삼재는 어떤것에도 간섭하지 않는 기초중에 기초이기에.


살아가며 어떤 기연을 만날지 모르는 까닭인데, 실재로 기연을 눈앞에 두고도 스스로가 익혔던 무공과 충돌해 얻지 못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


그런것을 감수하고서라도 새로운 심법을 익히고자 하는 이들도 많으나, 십중팔구는 입마에 들기 마련.


수많은 무공을 익히고 새로운 신공들을 받아들인 백연조차 근간이 되는 기초심법은 언제나 하나로 고정이다.


운연동공.


나머지는 전부 운연동공으로 쌓아낸 진기를 다양하게 운용하는 무공들 뿐. 적양공과 현음공, 태청신공까지도 모두 그런 방면의 연장선상에 있을 따름이다.


때문에 백연은 설향이 다라법왕공을 익히지 못한다는 사실에 실망하지 않았다. 애시당초 화율이 그것만을 말하기 위해 저것을 보여줬을리가 없었기에.


그리고 그의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 있었기에.


“......울림.”


이 순간, 허공에 피어나는 진기의 파문들을 눈에 담으며 백연이 중얼거렸고.


“맞습니다. 다라법왕공은 중후한 법력을 통해 펼치는 무공이 특징이지요. 그리고 이것을 익힌 저는 어느날, 범종(梵鐘)이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깨달았습니다.”

“깨달았다......?”

“본래부터 법왕공을 통해 세상을 볼 수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공능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눈을 잃고, 절간에 앉아 범종이 울리는 소리만을 듣고 있던 그날.”


화율이 손을 뻗었다. 흐르는 듯한 파문이 백연의 얼굴 전체를 스치며 지나쳤다가, 다시 되돌아가는 것이 느껴진다. 찰나지간 사방을 휩쓰는 진기의 흐름이 지독할 정도로 조밀했다.


“저는 세상에 울림이 있다는 것을 알았지요.”


진기의 파문을 통한 울림. 그것을 모조리 인지하는 기감. 그리고 지독할 정도로 섬세한 진기를 다루는 기예.


“이것이 제가 세상을 보는 방법입니다.”


말과 함께 화율의 손바닥이 소년의 눈을 스치듯 가렸고, 다음 순간-


화아아악!


백연의 인지가 뒤집혔다. 찰나지간 모든것이 이지러진다. 흩어지는 세상의 풍경이, 진기의 파문으로 재구성되며 어둠 속에서 화려하게 움튼다. 마치 어두운 밤을 밝히며 튀어오르는 불꽃처럼.


극도로 짧은 순간 백연은 어둠 속에서 불꽃같은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


직후 화율의 손이 지나갔고, 삽시간에 세상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그와 함께 귓가에 화율의 침착한 음성이 내려앉았다.


“보였습니까?”


화율을 향해 시선을 돌린 백연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봤습니다.”

“제가 알려드릴 수 있는것은 이정도입니다. 하지만 이게 가능한 근본적인 이유는 역시 제가 익힌 무공 덕분이지요.”


그 말대로였다. 다라법왕공의 한없이 중후한 법력 진기는 독보적이었다. 자연지기와는 결코 섞여들지 않는 불문의 기파.


그 울림이 깊다. 때문에 기감으로 인지하기도 쉬우며, 진기의 파문을 통해 세상을 기감에 그려내는 것도 가능하다.


그와 더불어.


“......화율의 기감은 엄청나군요.”

“그렇습니까?”


이러한 파문을 전부 인지에 담아내는 것이 극도로 어렵다는 사실을 백연은 잘 알았다. 그 또한 특출난 감각을 지니고 있었지만, 방금 전의 경험은 놀라운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백연은 알고 있었다.


설향은 찰나지만 백연과 비슷한 수준의 자령안 경지에 도달했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압도적인 감각의 재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설향에게 이것을 감당해낼 자질은 있다. 백연은 그리 믿었다.


그렇다면 남는 문제는 하나.


“보여주어서 감사합니다. 완벽히 똑같이 따라할 수는 없겠군요. 운연동공의 진기는 자연지기에 가까운 바람이니.”


그리 말하는 백연의 입가에는 미소가 그려지고 있었다. 어느새 검을 뽑아든 채로였다.


“제 방식대로 한번 해보겠습니다.”

“그리 말할줄 알았습니다. 헌데, 무엇으로......?”


백연은 검파를 비틀어 쥐었다. 동시에 소년이 쥔 검날이 지잉-하는 울음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검(劍)으로.”


뇌까림과 동시에 백연이 한걸음을 내딛으며 검을 휘둘렀고.


“......!”


티없이 맑은 검명(劍鳴)이 음률처럼 허공을 물들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5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곤륜환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 임전(3) +5 24.08.19 1,149 40 12쪽
339 임전(2) +5 24.08.17 1,195 39 12쪽
338 임전 +6 24.08.16 1,222 38 14쪽
337 결집(4) +5 24.08.15 1,185 43 13쪽
336 결집(3) +6 24.08.14 1,247 42 13쪽
335 결집(2) +6 24.08.13 1,307 41 16쪽
334 결집 +5 24.08.12 1,318 38 14쪽
333 격랑(激浪)(6) +3 24.08.10 1,387 42 15쪽
332 격랑(激浪)(5) +6 24.08.09 1,387 38 14쪽
331 격랑(激浪)(4) +5 24.08.08 1,324 39 14쪽
330 격랑(激浪)(3) +4 24.08.07 1,383 39 15쪽
329 격랑(激浪)(2) +7 24.08.06 1,362 44 16쪽
328 격랑(激浪) +6 24.08.05 1,376 43 15쪽
327 별하늘이 지는 밤에(4) +6 24.08.03 1,428 44 12쪽
326 별하늘이 지는 밤에(3) +5 24.08.02 1,350 43 13쪽
325 별하늘이 지는 밤에(2) +6 24.08.01 1,435 44 17쪽
324 별하늘이 지는 밤에 +6 24.07.31 1,472 45 15쪽
323 용살(龍殺)의 검(4) +8 24.07.29 1,583 45 20쪽
322 용살(龍殺)의 검(3) +8 24.07.27 1,447 46 13쪽
321 용살(龍殺)의 검(2) +5 24.07.26 1,440 44 18쪽
320 용살(龍殺)의 검 +6 24.07.25 1,437 45 14쪽
319 초월(4) +5 24.07.24 1,445 42 13쪽
318 초월(3) +6 24.07.23 1,408 43 15쪽
317 초월(2) +7 24.07.22 1,492 40 14쪽
316 초월 +8 24.07.20 1,493 45 17쪽
315 용해곡(龍骸谷)(7) +7 24.07.18 1,575 47 17쪽
314 용해곡(龍骸谷)(6) +6 24.07.17 1,451 42 14쪽
313 용해곡(龍骸谷)(5) +6 24.07.16 1,430 43 14쪽
312 용해곡(龍骸谷)(4) +5 24.07.15 1,450 43 13쪽
311 용해곡(龍骸谷)(3) +6 24.07.13 1,584 48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