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병! 빌어먹을 헌터들이 다 내 뒤로 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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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르블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1:14
최근연재일 :
2023.09.19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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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01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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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화 지하요새 잠입(3)

DUMMY

바닥에 흐르고 있던 회로판의 세 곳을 더 제거한 후에야 시스템은 작동을 멈췄다.


동시에 갑작스럽게 어두워진 공간.


비르지니의 뒤에 서 있던 술사의 손바닥에서 불꽃이 타올라 주변을 밝혔다.

사실 광장과 연결되는 양쪽 터널의 벽에 박혀있는 야광석 덕택에 원래는 그다지 어둡다고 느끼진 않았던 터였다.

하지만 대낮같이 밝았던 광장이 한순간 어둠에 휩싸이자 순간 당황한 비르지니.

그런 그녀를 댄이 빤히 바라보았다.


“많이 힘들었던 거냐?”


손등으로 눈물을 문지르는 비르지니를 보는 댄의 눈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그녀의 실력이라면 그다지 힘든 일은 아닐 거라 예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타 헌터들과 협력이 아닌 혼자서 생경한 일을 맡아야 한다는 것이 큰 부담이 되었을 수도 있는 터.


“절대 아니에요.”


그녀가 손을 내저었다.


“그냥, 도움이 돼 드린다는 게 넘 기뻐서...”


얼굴에 홍조를 띠면서 그녀가 말끝을 얼버무렸다.


이런 느낌이었다.

극도로 위태로운 상황에 누군가에게 자신의 생명을 온전히 맡길 수 있다는 것.

그럼에도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함과 안전함을 느낀다는 것.


‘한국의 헌터로 살다가 죽는다면 정말 행복한 일일 거야.’

살아있었을 때 둘의 대화 중에 쿤이 한 말 이었다.

그때는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던 비르지니였다.

물론 자신도 신념을 가지고 이번 원정에 지원했고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다 죽어도 후회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밝게 웃으며 죽는 것이 행복한 일이라고 말하던 쿤.


그런 쿤을 보면서 그 당시에는 그저 아무 말 하지 않고 겸연쩍은 웃음만 지었었다.

하지만 이제 확실히 알겠다.

그녀가 목숨을 건 전투에서 느꼈을 터무니 없는 행복감을.

온몸에 가득한 감동의 기쁨을.


“완전히 분리시켰습니다.”


그런 그녀의 뒤에서 들려오는 검은 망토 사내의 목소리.


“알겠습니다.”


그와 시선을 나눈 댄. 다시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괜찮으면 이제 출발할까? 다른 팀들이 먼저 와서 우리를 기다릴 것 같은데.”

“...네. 오빠!”

그녀의 오빠라는 말에 댄이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씨익 웃음을 흘렸다.

몸을 돌린 그가 앞장서서 다시 터널 안쪽으로 발을 옮기기 시작했다.


“근데 여긴 왜 파괴한 거예요?”


부지런히 걸음을 옮겨 댄을 따라잡으며 비르지니가 입을 열었다.


“이곳 말고 다른 길로 피해 갔으면 더 편했을 텐데. 일부러 그 시스템을 제거하면서 고생할 필요가 있었나 싶어서요.”


그녀의 말에 어깨너머로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던 댄이 미소를 흘렸다.


“놈들 기지의 경동맥을 끊어놓은 거다.”

“...네에?”

“외부 전체에서 끌어오는 에너지가 그곳을 통해서 요새 안으로 유입되는 거거든. 그곳의 연결 회로를 끊어놨으니 요새 안은 더 이상 에너지를 얻을 방법이 없어졌지.”

“그럼 적들은 지금 완전히 뒤집어졌겠는데요?”

“곧 이리로 엄청나게 몰려올 거다.”


댄의 말에 그녀가 아랫입술을 짓씹었다.

그렇다면, 이제 정말로 시작이다. 아니, 끝으로 가는 마지막 길목일 터.


“절대로 눈에 띌 수 없도록 입구를 마법 장막으로 완전하게 봉해 놓은 데다가, 혹시 뚫리더라도 침입자를 기습하도록 거대곤충들을 가둬놓고 사육하고 있었지?”

“......”

“통로도 네 갈래로 나누어 길을 잃게 하고, 운 좋게 시스템에 닿는다고 해도 딴에는 완벽하게 침입자들을 제거할 수 있는 장치까지 모두 설치해놓았는데 파괴되었다는 건...”

“엄청난 대군이 몰려왔다고 생각하겠군요? 섀도우베일족에서요.”

“아마 그렇겠지?”

“그럼 정말 엄청나게 떼거지로 몰려올 텐데, 우리만으로 가능할까요?”

“당연히 안 되지.”

“...예..예에?”


너무도 당연하다는 댄의 말투와 표정에 비르지니의 두 눈이 똥그래졌다.


“그럼 어떻게 해요?”

“어떻게 하긴... 몰래 우회해서 적진의 심장까지 돌파해야지.”

“놈들 눈 피해서 우회하는 길도 알고 있어요?”

“뭐, 대충은...?”

“.....!”


감탄스러운 표정으로 댄의 뒷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던 비르지니.

신에게서 받는 미션 덕에 이미 댄은 적의 요새뿐만 아닌 모든 세부사항들을 촘촘히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리가 없다.


네뷸로리안 종족 기지의 입구를 통과하며 완료한 스물아홉 번째 미션.

에너지원을 공급하는 회로를 파괴함으로써 서른 번째 미션을 완수한 댄이었다.

그것으로 인해 받은 보상은 각각 10초 동안 루트 (적의 발을 묶어놓기)와 패럴라이징( 적의 신체를 마비시키기).


이제 서른한 번째로 ‘우회하여 놈들의 심장으로 진입할 것’ 이라는 미션을 받으며 고대 시대부터 이 요새 지하에 미로처럼 얽히고설킨 통로의 실체를 알게 된 터.


절대로 가능하지 않은 일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는 댄을 보며 비르지니가 경외심을 갖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늦었네?”


이미 약속 지점에 와서 대기 중이던 다른 헌터들 앞에 서 있던 제니스.

댄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그런 그녀의 오른쪽 어깨 위에 앉아 눈을 감고 마치 잠이라도 자고 있는 듯 보이는 고양이.


“어려운 일 없었지?”

“식은 죽 먹기였지 뭐. 도끼날 간신히 피한 놈들 저세상 보내주는 일만 조금 하니 끝나던걸?”


양어깨를 으쓱해 보이면서 그녀가 손을 저어보였다.


“이제 어디로 가지?”

한쪽에 서 있던 쌤. 여유로운 표정으로 댄에게 물었다.


그 질문에 모든 헌터들의 눈동자가 댄에게 쏠렸다.


“곧, 이리 놈들이 몰려올 거다. 그러기 전에 우리는 모두 저쪽으로 간다.”


댄이 손가락으로 터널의 오른쪽 벽 아랫부분을 가리켰다.

그의 말에 미간을 좁힌 제니스와 제이크.


“거기에 비밀통로가 있나 보군?”


씨익 웃음을 흘린 쌤. 댄이 가리킨 벽으로 다가가 무릎을 굽히고 쪼그리고 앉았다.

벽돌처럼 쌓여있는 바위틈새를 살피던 그가 고개를 돌렸다.


“...있다. 입구.”


허공에 손을 들어 올려 얇은 세검을 꺼낸 쌤.

바위 사이의 틈새에 뾰족한 검날을 끼워놓기 전 댄을 돌아보았다.


“얼른 열고 가자. 놈들 들이닥치기 전에.”


댄의 말에 그가 손에 쥐고 있던 검날을 앞으로 슬며시 밀었다.


쿠구구구구!


귀를 긁는 소음과 함께 벽의 아래쪽이 벌어졌다.

성인 한 명이 간신히 통과할 수 있을 만한 크기의 좁은 터널.

손에 쥔 세검을 구멍 안에 던져 놓은 쌤이 머리를 그 안으로 집어넣었다.


“다음엔 내가 가지.”


앞으로 나선 제이크. 묵직하게 부풀어 오른 양 어깨를 틈새에 비벼대며 힘들게 구멍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어느새 모두 빠져나간 통로를 확인한 댄.

오감을 최대로 끌어올린 그가 물밀듯 밀려오는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확인했다.




* * *




한참을 어둡고 좁은 통로 안을 기었다.

거의 백여 미터는 지났을 듯했다.


콜록 콜록


숨을 내쉴 때마다 통로 안에 쌓여있던 흙먼지가 날렸다.

눈에 보이는 것도 없어, 손끝으로 더듬으며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던 제니스의 시야가 조금씩 밝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빠져나온 곳.

버려진 탄광의 내부와 같다.


아니 어찌보면 서울 근교에 있는 아공간과 흡사한 모습.

천장에 매달린 거대한 종유석의 뾰족한 끝에서 물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리드미컬하다.


주위를 돌아보는 그녀의 등 뒤로 계속해서 헌터들이 힘들게 빠져나오고 있다.


마침내, 그의 뒤에서 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두 자신의 무기를 점검해.”


돌아본 그녀의 시야에 허공에 손을 뻗는 댄의 모습이 들어왔다.


“이 길은 어디로 가는 거야?”

“요새 심장부.”


허공에 있는 자신의 인벤토리에서 둥근 마석 구슬을 꺼내며 댄이 대답했다.


“수백 년 전에 폐쇄된 지름길이다. 바닥이 거칠고 경도 높은 암석도 많은데다 이 위에 지랄맞은 늪지 때문에 사용하지 않게 되었지.”

“....아!”


그런 그녀를 흘끗 본 댄. 다시 헌터들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모두 내게서 구슬을 받아가라. 마석 구슬 사용법은 간단하다. 손에 쥐고 있다가 던지는 순간에 자신의 마력을 완전히 쏟아붓는다. 그러면 지면이나 대상에 닿는 순간 폭탄처럼 폭발한다. 재고가 많이 있으니 원하는 만큼 받아서 자신의 인벤토리에 넣어 놓을 것. 놈들을 상대할 때 요긴하게 쓸 수 있다.”

“그럼 진작에 많이 돌리지 그랬어?”


마치 책망하듯 제니스가 댄을 보며 눈을 흘겼다.


“체내 마나 에너지 소모가 심해서 두세 개만 사용해도 피곤함을 느끼게 돼. 아주 위험한 상황에서만 사용하고, 밀폐된 곳에서 잘못 사용했다가는 자칫 자신이 못 빠져나올 수도 있다는 것도 인지하고 있어야 하고.”

“그럼 가능한 외부에서 사용해야 하겠네?”


한 움큼의 마석 구슬을 인벤토리에 넣어 둔 제이크. 하나를 집어들고 요리조리 둘러본다.


“이곳을 빠져나가면 커다란 원형의 야외 정원이 나온다. 바로 그곳의 지하가 놈들의 심장이야.”

“그럼 그 야외 정원에서 쓰라는 거야?”

“...그래.”


어두운 표정으로 변한 댄. 무거운 어조로 대답했다.


“많은 놈들이 에너지원 서키트 쪽으로 몰려갔지만, 여전히 중심부에는 많은 놈들이 남아있다. 놈들과 전면전을 피할 순 없다. 모두 단단히 마음먹고 반드시 살아남아라.”


댄에게서 마석 구슬을 받아 챙긴 헌터들.

앞에서 부지런히 발을 옮기는 댄의 뒤를 따라 동굴 안에서 다시 행진을 시작했다.


그런 헌터들의 표정은 굳어있었지만, 반드시 승리하고 살아남겠다는 의지를 모두 가슴에 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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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112화 지하요새 잠입(4) +1 23.09.04 111 5 11쪽
» 111화 지하요새 잠입(3) +1 23.09.01 105 5 10쪽
111 110화 지하요새 잠입(2) +1 23.08.31 108 5 10쪽
110 109화 지하요새 잠입(1) +1 23.08.30 120 4 10쪽
109 108화 흑마법 연구소(18) +1 23.08.29 118 4 10쪽
108 107화 흑마법 연구소(17) +2 23.08.28 121 4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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