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병! 빌어먹을 헌터들이 다 내 뒤로 숨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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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르블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1:14
최근연재일 :
2023.09.19 22:21
연재수 :
12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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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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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6
글자수 :
694,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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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15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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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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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121화 희생

DUMMY

우르르르르르릉!!


대제사장 테즈마라가 달려오고 있는 방향의 뒤편에 있던 높은 산이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최고봉의 오른쪽 산등성이 위에 얹혀있던 거대한 바위가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산마루 한쪽도 한순간 아래로 무너져내린다.


‘산사태...’


갑작스레 찾아온 재난에 댄이 눈을 가늘게 뜨고 먼 지평선을 살폈다.

예상보다 이틀 정도 빠르게 닥쳐온 재앙.

하지만 이 모든 것도 신의 의도인 것.


최고까지 끌어올린 그의 감각 속, 위험신호가 이곳저곳에서 발견되기 시작했다.


네뷸로리안 병력과 전투가 길어져 테즈마라의 발목이 잡힌 것이 아니었다.

니힐러스 행성의 종말이 계산했던 것보다 좀 더 일찍 당겨졌을 뿐.

그리고 그것을 알아챈 그녀가 발빠르게 여러 가지 행동을 취하느라 늦어진 것 뿐.


“제이크! 비르지니 좀 등에 업어라. 지구로 돌아간다!”


뜻밖의 말에, 가늘게 뜨고 산사태를 응시하던 그가 댄을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대제사장은 어떻게 하고?”

“지금 그까짓게 문제가 아냐. 더 큰 게 온다!”


마치 고함을 치듯 큰 소리로 말하는 댄의 목소리에 바위에 기대고 있던 쌤이 몸을 일으켰다. 그 뒤에 쪼그리고 앉아있던 비르지니도 놀라 두 팔을 땅에 짚고 일어났다. 그런 그녀의 똥그래진 눈이 댄을 빤히 주시한다.


“행성이 곧 폭발해!”

“.,...뭐어?”


쿠쿠쿠쿠쿵!!


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지축이 흔들렸다.

동시에 삼백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 땅이 갈라지며 시뻘건 마그마가 공중으로 솟구쳐올랐다.


우르르르 쾅!

콰르르르!


댄의 시야 맞은편에 있던 거대한 산봉우리의 정상이 거대한 입을 벌렸다.


꽈꽈꽈꽝!!


어마어마한 양의 시뻘건 용암을 수백 미터 상공까지 토해낸 거산(巨山).

곧이어, 뜨거운 용암을 주위로 마구 뱉어내기 시작했다.


“제이크. 서둘러라! 쌤! 제이크를 따라가!”


어깨 너머로 외친 댄. 손을 허공 속으로 집어넣었다.

밖으로 빠져나온 그의 손에 쥐어있는 건 붉은 빛을 반짝이는 둥근 마석.


“이 마석을 쥐고 마법진으로 올라가. 서울 근교 아공간으로 이동시켜줄 거야.”

“....너는?”

“난 여기서 테즈마라를 기다린다.”


마석을 제이크의 손에 건넨 댄.

짐짓 여유로운 표정으로 제이크와 쌤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럼 나도 여기 남겠다. 쌤이 비르지니를 데리고 돌아가라.”

“나도 여기 남는다.”

“저도 남겠어요. 보잘 것은 없겠지만 틀림없이 도움이 될 거예요.”


죽음의 문턱에 있는 걸 잘 알면서도 마치 아무것도 아닌 일을 벌이는 것처럼 똘망똘망한 눈동자들이 댄을 응시하고 있다.


그런 그들을 돌아보면서 고개를 저은 댄, 슬며시 고개를 떨구었다.

다시 고개를 든 그의 두 눈동자는 붉게 물들어있다.


“이곳으로 오면서 모두에게 약속했다. 위험하면 내 뒤로 숨으라고! 하지만 나는 아무도 구해내지 못했다.”


후회와 회한, 그리고 모멸감이 점철된 댄의 눈빛.


“댄 오빠!”


별안간 소리높여 댄을 부른 비르지니.

입꼬리를 실룩거리더니 급기야 눈물이 터지고야 말았다.


“왜 이렇게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어? 오빠가 그렇게 잘났어?”


마치 악다구니를 쓰는 듯한 그녀의 말투에 댄뿐만 아니라 쌤과 제이크도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나, 이래 봬도 프랑스에서 넘버원이야. 킥복싱이고 레슬링이고 한 주먹 한다는 놈들도 다 내 손에 때려눕히고 여기까지 올라와서 이곳에 온 거라고! 나! 프랑스 헌터협회를 대표해서 내 목숨 초개같이 버리고 지구 구하겠다고 지원한 거야. 여기까지 와서 다른 사람 등 뒤에 숨는다는 게 가당키나 해?”

“......”

“댄 오빠는 우리를 정말 동료라고 생각이나 하고 있었던 거야? 냇가에 내놓은 아이처럼 위험에 처할까 봐 목숨 걸고 돌봐야 할 짐 덩어리로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니고?”


마치 표범의 눈과 같이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댄을 노려본 비르지니.

마치 상처받았다는 표정으로 댄에게서 고개를 돌려 먼 산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게 아니라....”


마치 목이 메었던 것처럼 말을 꺼내는 댄의 목소리는 꽉 막혀있었다.


“너희 모두 내 말 잘 들어줬으면 좋겠다. 그런 의도로 너희에게 돌아가라는 게 아냐. 이 이후로도 너희밖에 내가 믿을만한 헌터들이 없어서 그래.”

“......”

“좀 전에 마법진을 통해서 지구 아공간으로 넘어간 그 한 마리 괴조의 행선지가 프랑스라면 어떻게 할 거냐?”


진지한 어조로 댄이 비르지니의 두 눈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아니면...”


다시 고개를 돌려 제이크와 쌤을 돌아본 댄. 두 눈동자 속에 깊은 어두움이 깔려있다.


“그곳이 한국이나 미국이라면, 그래서 너희들이 지금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동안에 수만 수십만의 사람들이 목숨을 잃게 된다면?”


그의 말에 한순간 움찔한 세 사람. 입을 꾹 다물고 댄의 다음 말을 기다리듯 그의 입을 주시하고 있다.


하지만 댄은 이미 알고 있었다. 괴조가 찾아간 행선지를.

그저 그들을 지구로 안전하게 돌려보낼 핑계를 댄 것일 뿐.

어차피 이곳에서는 그들이 더 할 일도 없다.


머리를 굴리지 않아도 괴조의 목적지는 한곳밖엔 없다.


바로, 일본의 후쿠시마.


지구상에서 가장 오염된 지역.

그 덕으로 괴조와 다른 괴생물체들이 가장 오랫동안 생존할 수 있는 지구상 유일한 곳.

그곳 근처의 호수나 강에 운반해간 화학물질을 풀어 넣고 생존의 시간을 가장 손쉽게 연장할 것이다.


물론, 그 화학물질은 공포 그 자체.

삼사일이면 반경 250킬로 이내의 지역은 영원히 죽음의 영토가 될 것이다.

후쿠오카에서 도쿄는 물론 그 아래 지역까지 모두 포함되는 실로 무시무시한 화학물질이 아닐 수 없다.

또한 300킬로 내의 육지는 물론이고 물속에서도 살아있는 지구생명체는 제로(0) 에 근접할 터.

그런 환경 속에서 니힐러스 행성에서 살아가는 괴식물과 동물이 하나씩 출현한다.


“지금 당장은 서울 근교로 연결되는 아공간으로 이동 가능한 마력 구슬밖엔 없다. 그러니 부지런히 돌아가서 블레어 국장에게 보고해. 그리고 국장의 지시를 따라라.”

“......”

“한시가 급한 것 몰라? 지구 시민들 목숨이 너희들 손에 달렸다고!”

“아! 알겠어.”

“씰비에게 치료받는 즉시 괴조가 나타난 곳으로 출발해라. 지금 당장은 지구에 남은 헌터들 중에 괴조를 없앨 수 있는 헌터가 없어. 너희들이 유일한 희망이다.”


등 뒤에 비르지니를 들쳐업은 제이크가 굳은 얼굴로 댄을 돌아보았다.


“절대 죽지 마라. 돌아와서 내 앞에 서라. 난 네 등 뒤만 지킬 테니.”

“아르수스 요리 해 놓고 기다려라. 네 특제 소스 듬뿍 발라서...”

“...오빠.”


제이크의 등에 업힌 채 비르지니가 댄에게 손을 내밀었다.


“서울 헌터센터에서 보자.”

“....응!”


그녀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댄에게 등을 돌린 제이크가 언덕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댄. 나는 여기서 너와...”

“엄마를 부탁한다. 쌤.”

“......”

“사직동에 혼자 계셔. 친어머니라고 생각하고 모셔줄 거라 믿는다. 꼭 부탁해.”


간절함에 북받친 댄의 표정을 쌤은 읽을 수 있었다.

차마 거절할 수 없는 그의 부탁. 오른팔을 잃은 그가 댄을 위해 정말로 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일 수도 있을 터.


“알았다.”


창을 허공에 집어넣은 쌤.

댄을 끌어안고 왼팔을 그의 등 뒤로 두르는 그의 두 눈에 뜨거운 눈물이 배어나왔다.


그런 그들의 등 뒤에서 또 한차례 우르르 땅이 울렸다.


퍼퍼펑!!


주위 이곳저곳에서 갈라진 틈으로 시뻘건 마그마가 거대분수처럼 쏟아져나왔다.

대기는 순식간에 열기로 가득하고 흙먼지와 뿌연 재가 허공으로 비산한다.


언덕 위로 사라진 쌤의 뒤를 바라보던 댄이 몸을 돌렸다.

시뻘건 용암의 불바다로 변한 그의 시야.


예전 네뷸로리안 전진기지에서 신의 병사를 소환할 때 새까맣게 몰려오던 거대곤충들.

이번에 신의 병사를 소환할 때, 요새에 진입할 때 보았던 그 많던 거대곤충들이 몰려오지 않았다.


그놈들조차도 이미 이런 전조를 알았던 것.

어차피 이 행성에서 이곳보다 더 안전한 곳이 어디 있으랴마는 그래도 조금이라도 생명을 더 연장할 수 있는 곳으로 미리 이동한 것이 틀림없었다.


대제사장 테즈마라도 네뷸로리안 정예병들과 접전 중에 혹은 그 전에, 이런 종말이 갑자기 찾아올 걸 확실하게 감지했을 것이다.

그리곤, 급하게 자신의 요새로 돌아가 중앙 건물 지하에 지구의 복사판 세상에서 살아가던 아이들을 어떻게든 옮겨놓았을 것이다.


그런데 어디로?


아무리 생각해봐도 한 군데밖에 없다.

바로 아공간이다.

아공간 안이라도 지구의 환경과는 다르다.

마나의 효용을 보이지 않는 인간이 아공간 안으로 들어왔을 때 고작해야 십여 분 생존하지 않았던가?


설마!

혹시라도 지구상 외딴곳과 접한 아공간이 있는 것인가?

지구의 헌터 시스템에 등록되어있지 않은 아공간도 틀림없이 꽤 있을 터.

그중 현재 지구의 환경과 닮은 아공간이 존재한다면...

아니 혹시라도 놈들이 아공간 하나를 정해놓고 그런 환경을 만들어 놓았다면...

그리고 누군가가 이곳의 아공간을 통해 지구로 이동한 후 지구 쪽에서 그 아공간을 개방한다면?

처음 얼마 동안만이라도 지구의 지형에서 살아가는 방법만 가르쳐 준다면?


놈들의 후손들은 지구인들도 모르는 사이에 그 어딘가에서 자신들만의 영역을 구축할 것이다.




쿠르르 쿵!


다시 한번 지축이 흔들리듯 지면에 발바닥을 대고 서 있기가 힘들 정도로 지형 전체가 마구 흔들렸다.

잿빛 먼지가 시야를 마치 안개처럼 가렸다.


그리고 그 속을 뚫고 댄의 앞에 누군가의 그림자가 홀연히 나타났다.


“테즈마라.”


헝클어진 은빛 머리카락.

머리카락부터 높은 콧날까지 어둡게 가리고 있는 베일을 뚫고 댄을 사납게 노려보고 있는 대제사장.

목 아래로 두른 검은 망토 위를 뒤덮은 거무스름한 마나의 빛이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리고 있다. 그런 그녀의 손에 쥔 작은 검 날의 끝에서도 검은 마력의 불꽃이 터져 나온다.


“지구 인간 주제에 정말 징글징글하게 오래 버티고 살아있구나.”

“너보다는 오래 살 거다.”


댄의 말에 그녀가 입꼬리를 말고 비웃음을 날렸다.


“과연 그럴까?”

“이 행성이 사라지면 도대체 어디에서 생존할 수 있을까? 지구에 도착한 괴조가 줄 수 있는 영향은 겨우 네 코딱지만큼인데.”

“걱정도 팔자로구나.”


여유로운 표정으로 그녀가 손에 쥐고 있던 검에 힘을 주었다.


“..흐음?”


댄의 눈앞에서 작은 단검의 길이가 부쩍부쩍 늘어나기 시작했다.

마치 손오공의 여의봉이 늘어나듯 한쪽은 바닥을 뚫고 들어가고 다른 한쪽은 허공 위로 치솟는다.


“네가 아공간에 집어넣은 네 족속의 애새끼들이 살아남을 거라 생각하나?”

“......”


그의 말에 한순간 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꽉 다문 입꼬리에 파르르 떨리는 경련을 댄은 놓치지 않았다.


“그 애새끼들은 그 안에서 굶어 뒈질 것이다. 자신들의 요망한 제사장의 뱀의 혓바닥 때문에!”

“...이이이이이!”


이빨을 짓씹은 대제사장.

늘어난 검을 허공으로 번쩍 들었다.

한가운데 손잡이를 두고 양쪽으로 길게 뻗은 검날의 끝에서 흙빛의 번개가 터져나갔다.


다음 순간,

허공에서 댄의 머리 위로 후드득 번개가 내리쳤다.

땅속까지 파고 들어간 엄청난 충격.

폭발하는 충격파에 터져나가는 대기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른다.

창졸간 마치 분화구처럼 뚫려버린 지층 위로 흙먼지와 바위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나를 찾고 있나?”


굳은 얼굴로 정면을 뚫어질 듯 주시하는 그녀의 귓가에 들려온 사내의 목소리.


“네놈이 그렇게 쉽게 죽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이제부터 시작이지.”


제사장이 손에 쥔 거대한 검을 가볍게 머리 위로 올렸다.

성인 남자 팔뚝 두께의 검 손잡이를 한 손에 쥐고 빙글빙글 돌리는 그녀.

시간을 오래 끌 여유는 없다.


부지런히 놈을 없애고 아공간을 통해 지구로 가야 한다.

자신이 지구상에서 생존할 수 있는 시간은 대략 3개월.

그것도 마력을 가득 채운 채 건강한 신체로 지낼 때 이야기다.

그동안에 아이들에게 지구에서 살아갈 기반을 닦아주어야 한다.

지구인은 사용할 수 없는 마력을 사용해 살상 무기를 제조하고 점점 더 영토를 넓혀나간다.

그러면 4-5년 후엔 지구의 대부분은 자신 후손들의 손아귀에 있을 것이다.


괴조는 후쿠오카라는 곳으로 간다.

지구의 모든 시선이 그곳으로 집중할 것이다.

하지만 그사이 그들은 쿠바의 옆 버뮤다 해협에 숨겨진 섬으로 숨어든다.

짙은 안개와 거센 물살, 여간해선 지구인들이 접근할 수 없는 최적의 보금자리가 될 것이다.


순간 그녀 발밑의 땅이 훅 꺼졌다.

가볍게 허공에 날아오른 대제사장. 터져 오르는 시뻘건 마그마를 피해 사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일순 그녀의 뒤 허공에 시퍼런 창날이 가득 펼쳐졌다.


“가랏!!”


허공을 찢으며 사내를 향해 쇄도하는 수백의 창날.

날갯짓하던 사내가 자신의 앞에 손을 휘돌리자 노오란 방패가 형태를 이룬다.


“네놈이 그럴 줄 알고!”


어느새 그의 뒤와 양옆에서도 한꺼번에 생성된 창날.

허공 전체 사방을 촘촘하게 채우면서 사내를 향해 날카로운 날 끝을 세우고 있다.


“네놈이 어디로 숨는지 좀 보자!”


그녀의 펼쳐졌던 손이 허공에서 ‘탁’ 스냅을 하자,


파파파파파파파파파파파파팍!!


사내를 중심으로 날카롭고 거대한 창날들이 무시무시한 파공음을 일으키며 창졸간 몰아쳤다.

빈틈은커녕 창날과 창날이 맞부딪쳐 울리는 날카로운 소리가 천둥처럼 터졌다.

곧이어 맹렬한 폭풍이 주위를 휘몰아친다.

바늘 끝과 같이 살을 에는 풍압 속에 잘게 부러진 예리한 창 날의 파편이 허공을 찢고 소용돌이쳤다.


날개를 가볍게 접고 그녀가 언덕길로 향하는 입구에 내려앉았다.

아까운 마력을 더 이상 낭비할 계획 따위는 없다.

지구와 같이 원시적인 행성에서는 마나를 생성하기도 거의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허어?”


걸음을 옮기기 전 흘끗 돌아본 그녀의 시야에 사내의 모습이 들어왔다.

온몸이 누더기가 되어 죽어있기는커녕 작은 상처 하나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저 놈은....!”


바짝 독이 올라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대제사장.

네뷸리시어스 신의 미션을 수행하며 보상으로 받은 ‘위기 시 1회 무적’의 특권을 때맞춰 사용했다는 것을 알 리 없었다.


“고작 그게 다냐?”


뻔뻔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올리고 씩 웃음을 날리는 지구 사내를 보던 대제사장.

한순간 조바심과 흥분을 가라앉혔다.

분명 힘을 들이지 않고 놈을 스스로 자멸하도록 몰아갈 방법도 있을 터.

여전히 침착해 보이는 사내를 도발할 생각을 떠올렸다.


“네 뒤에 지구 인간들은 모두 어디로 간 거냐?”

“지구로 돌아갔다.”


비열한 눈빛에 비웃음이 그녀의 입가에 가득 흘렀다.


“활 들고 있던 두 년 말이다. 너와 똑같이 생겨서 무기는 죄다 내던지던 놈은 어디 있지? 이도 들고 빨빨거리던 다른 놈은 또 어딨고?”


그녀가 조소의 어조로 물었다.

그 말에 댄의 표정이 한순간 얼어붙었다.


“그 년놈들은 모두 네가 죽였다. 모두 네 말만 잘 들으면 살아서 돌아갈 수 있다고 살살 꼬드겨서 이곳까지 데리고 왔겠지.”

“......”

“어디인지도 모를 이곳으로 끌고 와서 모두 네가 객사를 시킨 거다. 지구에서는 그래도 한가닥 하는 것들이었을 텐데 말야. 너만 없었더라면 그것들의 미래가 얼마나 반짝거리고 행복했을지 알고 있나?”


이를 악문 사내의 두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양손에 움켜쥔 시뻘건 빛을 발하는 창을 쥔 팔에서 툭툭거리며 마치 근육이 끊어지는 듯한 소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단순한 놈.’


입꼬리를 올린 그녀가 사내의 다음 행동을 지켜보기 위해 느긋하게 긴 검을 땅에 세웠다.


순간,


파슈우웃!


날개를 쫙 펼친 인간 사내가 골짜기 위로 날아 올라갔다.


“저놈이!”


당황한 대제사장. 바닥을 박차고 뛰어올라 날개를 펼쳤다.

사라진 사내의 뒤를 어렵지 않게 그녀가 따라잡았다.


“네놈이 뛰어야 벼룩이고 날아야 하루살이지.”


폭포 뒤의 동굴 속에 내려앉아 바로 뒤에서 날개를 퍼득이는 대제사장을 돌아본 댄.


“이야아아아아아!!”


체내의 온 힘을 그러모아 창의 끝에 모았다.

그런 댄을 바라보는 그녀의 표정은 한없이 여유롭다.

마치 ‘네 힘이 얼마나 강한지 한번 맞아보자’라는 표정.


댄의 손에 쥐어있는 붉은 창의 날 끝에 시퍼런 마력이 응집된 채 끓어올랐다.

마치 엄청난 폭발 직전까지 꾹꾹 눌러 압축된 마탄이 그 끝에 걸려있는 듯 푸른 연기마저 한순간 피어올랐다.


그런 그를 빤히 바라보던 대제사장마저도 눈빛에 이채가 돌 정도.

하지만 그 정도 화력을 담은 공격을 받는다 해도 자신에게 돌아올 영향은 미미하다.

니힐러스에서 그녀가 두려워한 유일한 존재는 이클립시아.

아무것도 모르고 섀도우베일 종족 대신 그녀를 없애준 모자란 인간 생명체들.

그리고 테즈마라는 확신하고 있었다.

그녀를 없앤 것은 이 보잘것없는 지구 사내가 아니라 그 뒤에 버티고 있던 네뷸로리안 족의 신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제 이 지구 사내의 등 뒤엔 신은커녕 누군가의 그림자도 없다.

이제 이 사내는 그 신으로부터 버려졌다는 이야기.


온몸의 기운이란 기운은 모두 뽑아낸 지구 사내.

얼굴마저 새파랗게 질려있다.


‘그냥 놔두면 알아서 자폭하겠군.’


슬며시 비웃음을 흘린 그녀가 입을 열었다.


“어서 공격하려므나. 네 그 보잘것없는 힘이 내게 티끌만큼이나 상처를 줄줄 아느냐. 내가 아닌 다른 것이라면 몰라도....”


말을 뱉어낸 그녀의 얼굴이 한순간 시퍼렇게 질렸다.


“...서..설마..네 놈이....”


당황한 그녀가 어떤 행동을 취하기 전이었다.

사내의 창 날 끝에 짓눌려있던 마력이 한 곳을 향해 터져나갔다.


꽈콰콰콰 쾅!!


세상이 멸망하는 듯 울리는 굉음과 함께 댄의 뒤 고대 마법진이 그려져 있던 벽이 터져나갔다.

고대 7인의 마법사들이 철벽으로 세워 만들어 놓은 마법진.

제사장의 힘으로도 지울 수 없도록 만들어진 강력한 주문이 걸린 마법진.

그런 마법진이 수천, 수만의 빛 조각이 되어 허공으로 흩뿌려졌다.


무너져내린 바위의 파편이 새까맣게 시야를 가리고 온몸을 강타했다.


“이...이 죽일 놈이!!”


분노로 주먹을 불끈 쥔 대제사장의 울그락불그락한 표정을 보며 댄이 입꼬리를 올리고 비웃음을 날렸다.


“네 종족 어린 새끼들은 네가 죽였다. 네 손으로 아공간에 집어넣어 굶어죽인 거야. 나와 약속만 지켰더라도 행복하게 미래가 보장되었을 네 그 후손들 말이다!”


뻣뻣하게 굳은 표정으로 댄의 말을 듣던 대제사장.

뜻밖에도 표정을 부드럽게 하고 댄을 바라보며 코웃음을 쳤다.


“마법진이 여기 하나인 줄 아느냐?”

“......”

“이곳에서 200킬로 떨어진 곳에 또 하나가 있다. 지반도 튼튼하고 이 행성에서 가장 오랫동안 버틸만한 곳이지.”

“......”

“10분! 10분이면 난 그곳에 도착한다. 그 하찮은 마법진하나 파괴하느라고 네 몸 구석구석 남아있던 힘을 몽땅 쏟아부은 네 놈은 이제 나를 어떻게 막을 것이냐?”


여유로운 웃음을 지으며 멍한 표정의 댄을 빤히 바라보던 대제사장.

손가락을 까딱거린 후 동굴의 밖을 향해 몸을 돌렸다.


“신이시여..........!”


그녀의 등 뒤, 댄의 입에서 터져 나온 기함.

흘끗 돌아보는 테즈마라의 시야에 허공에 대고 커다란 원을 그리는 사내의 손가락이 들어왔다.


“...푸웃!”


비웃음을 날리며 다시 고개를 돌린 그녀.


“...허억!”

노오란 빛을 발하는 커다란 구체의 안에 자신이 갇혔다는 것을 순간 알게 되었다.

손에 들린 칼을 그녀가 강하게 휘둘렀다.


- 푸르르르


작은 상처 하나조차도 줄 수 없는 신의 결계. 순간 그것을 깨달은 그녀가 몸을 돌려 사내를 노려보았다.


“네 이노오오옴!!”


손을 내민 그녀가 똑같이 구체안에 갇혀있는 댄의 목을 쥐었다.


“당장 결계를 풀어라!!”


그녀의 손아귀에서 얼굴이 파랗게 변하면서도 사내는 웃고 있었다.

그런 사내가 손을 허공에 뻗었다.


-후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두둑!


입을 벌린 허공 안에서 끊임없이 쏟아져 내리는 마석 구슬.

한순간 바닥을 덮은 구슬들이 순식간에 가슴까지 올라왔다.


“사이...조케... 가치..가ㅈ.”


그녀의 손아귀에서 목뼈가 부러졌음에도 사내의 입 밖으로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저..세상..으ㄹ...”


그의 손에 쥐어있던 작은 마석 구슬 하나에서 푸른 불꽃이 번쩍였다.


꽈과과과과과과과과광!!!!


마치 벌집과 같이 겹겹이 촘촘한 신의 노오란 결계 안에서 한순간 폭발이 일어났다.

그리고 다음 순간,

시커멓고 붉은 핏덩이가 그 내부의 벽 전체를 물들였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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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32 베르겐
    작성일
    23.09.15 15:26
    No. 1

    후쿠시마가 언급되서 더 흥미로웠습니다.
    미래 디스토피아.. 걱정입니다.
    작가님 재밌게 읽었습니다.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2 mj*****
    작성일
    23.09.15 16:27
    No. 2

    설마 주인공인 댄이 죽는건 아니겠죠? ㅜㅜ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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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 휴재공지(7월 25일-27일) +4 23.07.25 42 0 -
공지 소설의 제목을 변경하였습니다. +1 23.06.08 101 0 -
공지 연재 시간 : 매일 낮 12시~ 1시 사이입니다. 23.05.16 119 0 -
124 마지막화 - 또 다른 시작 +3 23.09.19 146 9 22쪽
123 122화 회귀 +1 23.09.18 105 5 13쪽
» 121화 희생 +2 23.09.15 113 4 21쪽
121 120화 배신(4) +1 23.09.14 109 4 14쪽
120 119화 배신(3) +1 23.09.13 110 5 12쪽
119 118화 배신(2) +1 23.09.12 107 4 12쪽
118 117화 배신(1) +1 23.09.11 115 4 10쪽
117 116화 이클립시아(3) +1 23.09.08 108 5 11쪽
116 115화 이클립시아(2) +1 23.09.07 108 4 11쪽
115 114화 이클립시아(1) +1 23.09.06 109 4 10쪽
114 113화 지하요새 잠입(5) +1 23.09.05 103 4 11쪽
113 112화 지하요새 잠입(4) +1 23.09.04 111 5 11쪽
112 111화 지하요새 잠입(3) +1 23.09.01 105 5 10쪽
111 110화 지하요새 잠입(2) +1 23.08.31 109 5 10쪽
110 109화 지하요새 잠입(1) +1 23.08.30 121 4 10쪽
109 108화 흑마법 연구소(18) +1 23.08.29 118 4 10쪽
108 107화 흑마법 연구소(17) +2 23.08.28 121 4 13쪽
107 106화 흑마법 연구소(16) +1 23.08.27 125 5 10쪽
106 105화 흑마법 연구소(15) +2 23.08.26 123 4 10쪽
105 104화 흑마법 연구소(14) +1 23.08.25 124 5 10쪽
104 103화 흑마법 연구소(13) +1 23.08.24 126 4 10쪽
103 102화 흑마법 연구소(12) +1 23.08.23 128 4 10쪽
102 101화 흑마법 연구소(11) +1 23.08.18 124 5 10쪽
101 100화 흑마법 연구소(10) +1 23.08.17 130 4 10쪽
100 99화 흑마법 연구소(9) +1 23.08.16 162 5 10쪽
99 98화 흑마법 연구소(8) +1 23.08.14 134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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