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피아니스트의 영혼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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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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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0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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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6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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랩소디 인 블루

DUMMY

오늘은 올해의 마지막 금요일.

모든 학생이 기다리고 있던 겨울방학이었다.

방학식은 점심을 먹기 전에 끝났고, 대부분 곧바로 집에 가거나, 친구와 놀거나 둘 중 하나였지만, 노헌은 지금···.


“이게 중학교야? 대학교야?”


난생처음 와보는 중학교 정문 앞에 서 있었다.


【이 학교도 오랜만이네···.】


아련하게 말하는 현묵.

이곳은 그가 졸업한 천예중학교였다.


“중학교랑 고등학교가 붙어 있다고 해도, 이건 너무 큰 거 아니에요?”


천예중, 고등학교.

우리나라 예술 천재들이 모인다는 최고의 명문 학교였다.

그래서 노헌이 이곳에 왜 왔냐 하면.


“아니, 자기가 초대해놓고 마중을 못 나온다고?!”


지금 막 그에게 문자를 보내온 장본인.

김준서의 초대장을 받고 온 것이었다.


【갑자기 못 나오겠대?】

“아, 네. 그래서 다른 사람 보냈다고 하긴 하는데···.”


노헌이 주변을 둘러봐도, 정문 앞은 수많은 인파가 모여있을 뿐이었다.

오늘 연주회에 참석하기 위해 온 친구나 가족들, 그리고 그들을 상대로 한탕 벌어보려고 온 꽃다발 장사꾼들이었다.


‘아니, 이렇게 많은 사람 속에서 어떻게 찾으라는 거야?’


심지어 천예중학교에는 아는 사람도 없었다.

일단 연주회장까진 혼자 가야 하나, 하고 정문에 들어서는 그 순간.


“아.”

“어.”


타이밍 좋게 마주친 한 사람.


“정하린?”


바로 그녀였다.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

“김준서가 오라고 해서 왔는데?”


노헌의 말이 끝나자, 무표정 속에서도 조금씩 흔들리는 그녀의 눈동자.

그 모습을 보고 그는 준서가 보낸 문자를 떠올렸다.


[갑자기 급한 일이 있어서, 마중은 못 나갈 것 같다. 그래도 나 대신 다른 애 보낼 테니까, 먼저 학교 구경 좀 하고 있어.]


여기서 칭하는 다른 애.

그게 아마 눈앞에 있는 그녀인 듯했다.


“설마, 김준서가 나 데리러 오라고 말 안 했어?”

“그냥, 정문 가보면 알 거라고···.”


하린 역시 앞뒤 사정없이 준서에게 부탁받았을 뿐이었다.


“정하린, 리허설이 좀 길어질 것 같아서 그러는데, 정문에 있는 내 친구 학교 구경 좀 시켜주면 안 되냐?”

“내가 왜?”

“부탁 들어주면, 이번 주말 약속 어떻게든 깨줄게.”

“그래서 친구가 누군데?”

“어, 가보면 알 거야.”


엄청난 보수에 이끌려서.


‘그 짜증 나는 약속 갈 바엔 이게 훨씬 낫지.’


부모님들끼리 강제로 만든 약속.

그것은 하린과 준서가 한 달에 한 번씩 단둘이 연주회를 보러 가야 하는 억지 데이트였다.


‘안 가면 또···.’


그렇게 안 좋은 기억이 떠오르려 할 때.


“일단 복잡하니까, 들어가자.”


노헌이 앞장서기 시작했다.


솔직히 하린은 준서가 그를 이곳에 초대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준서와 노헌은 콩쿨에서 겨우 2번 마주쳤을 뿐이었고, 친해질 사건 같은 건 전혀 없었다고 생각했기에.


‘그래도 부탁··· 받았으니까.’


약속을 깨준 값은 해야지 않겠는가.

하린은 앞장서는 노헌을 데리고 학교로 향했다.



♪♪♪



“와, 역시 큰 학교는 달라도 뭐가 다르네.”


노헌은 마치 동물원에 처음 오는 아이처럼 연신 두리번거렸다.


둘러보는 교실마다 신기한 악기들이 가득했고, 학교 시설도 그가 다녔던 곳과는 수준이 달랐다.


“여기는 바이올린 연습실이야.”


발걸음을 멈춘 하린이 가리키는 방향.

그곳을 바라보자, 악보 거치대와 바이올린이 수두룩한 교실이 있었다.


【우리 학교는 피아노 말고, 다른 악기를 전공하는 사람도 많거든.】


현묵의 설명에 의하면 이 학교에는 피아노 전공이 두 반, 바이올린이 두 반, 그리고 나머지 현악기, 관악기, 타악기 반이 각자 하나씩 있다고 했다.


“그럼, 오늘 연주회는 피아노만 치는 게 아니야?”

“응, 피아노 독주 무대도 있긴 한데, 모든 악기가 다 같이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무대도 있어.”


천예중학교의 연말 연주회는 곧 졸업하는 3학년들만 무대에 오른다고 그녀는 덧붙였다.


“그럼, 준서랑 너도 오늘 연주하는 거야?”

“연말 연주회 때 한 사람당 반드시 하나의 무대 이상에 오르는 게 우리 학교 규칙이야.”


노헌은 고개를 끄덕이곤, 계속해서 다른 교실을 소개해주는 하린의 설명을 들었다.

그렇게 교내 구경을 마치고, 연주회장으로 향하던 중.


“정하린이랑··· 어?”

“어! 쟤는 그때!”

“영상에 나왔던 걔잖아?”


복도에서 마주친 익숙한 무리.

그들은 바로 노헌이 처음으로 콩쿨 견학을 갔을 때, 하린을 참교육해달라고 한 천예중학교 학생들이었다.


노헌이 흘깃 옆을 보자, 평소보다 더 싸늘해진 하린의 무표정.

그러나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는지.


“뭐야, 설마 둘이 사귀는 사이였어?”

“역시 천재는 천재끼리 사귀는구나?”

“그런 줄도 모르고, 그때 참교육해달라고 했네.”


아니, 정정.

그들은 일부로 하린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것이었다.


“그냥 무시하고 가자.”


노골적인 비아냥에도 하린은 아무렇지 않게 발걸음을 옮겼다.

노헌도 마지못해 그녀를 따라갔지만, 여전히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는 영 거슬리기 짝이 없었다.


‘이재은은 혼자였지만, 쟤네는 여러 명이잖아!’


일방적인 따돌림.

순간 울컥했지만, 자신의 소매를 잡아끄는 하린의 행동에 노헌은 차마 아무 말 하지 못했다.


결국, 찝찝한 기분을 가지고 도착한 연주회장.

지금도 아무 말 없는 하린을 흘깃 쳐다보자, 그녀는 여전히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마치 이게 평소의 일상이었다는 듯이.


착잡한 마음에 무언가 위로를 해주고 싶었지만, 오히려 그게 더 상처를 들쑤시는 게 아닐까, 싶어 노헌은 열려던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럼, 들어가자.”


하린의 말에 따라 노헌은 인파에 섞여 연주회장에 들어갔다.


“아니, 여기 중학교 맞아?”


예상과 달리 거대한 연주회장.

자신의 학교 강당과는 비교조차 되지 못할 정도였다.


‘이 정도면 저번 콩쿨 나갔을 때랑 비슷할 정돈데?’


새삼스럽지만, 우리나라 최고의 예술학교라는 것이 느껴졌다.


“연주회장은 천예고등학교도 같이 쓰거든.”

“아하, 그렇구나.”


주위를 둘러보자, 관객석은 1, 2층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아직 연주회가 시작되지 않아선지, 무대는 암막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다.

그리고 서서히 사람들도 채워지는 관객석, 좋은 자리를 뺏길까 싶어, 두 사람은 서둘러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너는 여기 있어도 돼? 준비하러 가야 하는 거 아니야?”


갑자기 드는 의문.

모두가 한 번씩 무대에 올라야 한다면 하린도 지금쯤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고개를 젓는 그녀.


“나는 맨 마지막 순서거든. 그리고 김준서는 맨 앞 순서라서 끝나면 곧바로 우리 쪽으로 올 거야.”


연주회에서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맨 앞, 뒤 순서.

둘의 연주 실력은 학교에서도 알고 있는지, 그렇게 배치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이노헌, 너 전공하기로 한 거야?”

“응, 저번 콩쿨 나가보니까, 계속 피아노가 치고 싶더라.”

“·····그래?”


그러나, 하린의 반응은 꽤 미적지근했다.

분명 콩쿨 예선 때는 왜 전공 안 하냐고, 따졌었는데 말이다.

노헌은 이왕 솔직하게 물어보기로 했다.


“내 실력이 아직 기대에 못 미쳐?”


비록 그녀가 자신에게 사과하긴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발언에 대해서지, 연주를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러자.


“어··· 어? 아, 아니 그게 아니라―.”


갑자기 과거 이야기를 꺼낸 탓일까, 눈에 띄게 당황하는 하린.


“잠깐 다른 생각 해서 그런 거야. 진짜니까, 오해하지 마.”


그녀는 필사적으로 부정했다.

두 팔로 X를 그리면서까지.

항상 무표정인 그녀가 이러는 걸 봐선, 아마 진짜인 듯싶었다.


그렇게 대화를 마친 두 사람이 어색한 침묵을 지키고 있던 그때.


불이 꺼졌다.



♪♪♪



현묵은 마음이 굉장히 심란했다.

이곳 천예중학교는 그가 졸업한 모교.

그런 곳에서 이런 따돌림 따위가 생겼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분명 내가 다닐 때는···.’


자신의 중학교 시절을 되살려봤지만, 그의 기억에는 오직 화목했던 분위기만이 존재했다.


누군가의 재능을 시기하지 않고, 각자의 열정을 꽃피웠다.

힘들어하는 친구가 있을 땐 모두가 격려해주었고, 함께 해결법을 모색하였다.

간혹 실수하더라도, 대수롭지 않게 농담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위안 삼았다.


오히려 따돌림이라 한다면, 프랑스로 유학을 갔을 때가 더···.


‘아니, 그만 생각하자.’


그는 순간 떠오르는 기억을 털어버리곤, 다시 천예중학교에 초점을 맞췄다.


‘대체 뭐가 문제지?’


천예중학교를 구경하면서 현묵은 아는 얼굴들을 종종 마주치곤 했다.

그의 학창시절에도 계셨던 선생님들과 교실의 모습.

조금씩 변하기도 했지만, 그것들이 학생 간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한 명의 소녀.

정하린은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다.

자세한 사정까지는 현묵도 몰랐지만, 원인은 분명했다.

바로 그녀의 재능에 대한 질투라는 것을.


‘게다가 오래된 것 같았지?’


무덤덤한 하린의 반응은 이 따돌림이 최근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주었다.


‘대체 우리 학교가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냐고.’


하지만, 현묵의 그런 외침은 메아리가 되어 사라질 뿐이었다.



♪♪♪



“지금부터 천예중학교, 연말 연주회를 시작합니다!”


연주회장이 불이 꺼지고, 열리는 커튼.

그곳에서 눈 부신 빛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것은 바로 김준서.

피아노에 앉은 그를 중심으로 넓게 퍼져 있는 수많은 악기 연주자, 오케스트라였다.


연주의 시작을 알린 것은 클라리넷.

도대체 폐활량이 얼마나 되는 건지, 가슴을 떨리게 하는 섬세한 선율이 연주회장에 울려 퍼졌다.


그와 더불어 잔잔하게 흘러가는 관악기들의 향연.

그들의 소리가 줄었을 때, 클라리넷에서 트럼펫으로 선율이 넘어갔다.

그리고 시작되는 준서의 피아노.


오늘 역시도 왁스가 덕지덕지 묻은 포마드와 환한 빛에 반짝이는 금색 안경테.

조금씩 들려오는 타악기 소리와 함께 그의 손에서 피아노 선율이 끝나는 순간.


모든 악기의 소리가 회장을 가득 채웠다.


그것은 익숙한 멜로디.


【랩소디 인 블루.】



♪♪♪



어느 도시의 카페.

한 남자가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오늘은 조금 한가롭군.”


그렇게 말하며 신문을 펴는 순간, 걸려 온 전화.


“뭐라고? 알았어, 지금 가겠네.”


그는 당장 카페를 박차고 나와, 자신의 차에 시동을 걸었다.

다급한 엑셀.


메케한 매연을 내뿜으며 달려가는 자동차.

그러나 그의 마음과는 다르게 붉은색에서 변하지 않는 신호등.


“제발, 빨리 좀!”


남자가 간절히 바라자, 구원의 동아줄처럼 내려오는 초록빛.

순식간에 속력이 올라가는 자동차.


그 시각.


“왜 이렇게 급한 거야?”


저 멀리 사라져가는 자동차의 뒷모습을 보며 책을 읽는 한 남자.

그는 한 달 만에 되찾은 모처럼의 휴식을 만끽 중이었다.

도시 속 자연을 감상하고, 날아다니는 비둘기를 감상했다.


그러던 중, 그의 눈에 띈 것은 뛰어가는 중학생.


“급하게 가다가 넘어지진 말아라.”


한편, 그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넘어진 그녀.


“아, 진짜! 오늘은 왜 이렇게 풀리는 일이 없어!”


그녀는 더러워진 손바닥을 털며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곧 있으면 시작하는 학원.

물론 그 학원이 끝나면 또 다른 학원에 가야 했다.


국어, 수학, 영어.

단 세 개의 학원만 다닌 데도, 온몸이 모자랄 지경.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하지?”


애처롭게 울리는 그녀의 목소리.


그러게, 언제까지일까.

지금도 이곳 도시는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무수한 자동차의 경적과 시간에 맞춰 달리는 사람들.


달리지 않으면 따라잡을 수 없어서.

주변의 모두가 달리고 있으니까.

책임져야 할 것들이 많아서.


각자의 이유는 모두 다르지만, 지금도 도시는 달리고 있다.

꿈을 찾기 위해서, 무언가에 쫓겨서, 돌아가고 싶지 않아서.


사람들의 외침.

이 도시 안의 랩소디.



랩소디 인 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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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비밀 (수정) +4 23.06.25 90 6 11쪽
38 탑의 정상 +2 23.06.24 65 6 11쪽
37 선장과 선원 +2 23.06.21 68 6 11쪽
36 축제 +3 23.06.21 77 6 12쪽
35 밴드부 탈퇴? +3 23.06.18 78 8 11쪽
34 벚꽃이 흩날리던 밤 +3 23.06.16 89 8 11쪽
33 데이트 신청 +3 23.06.15 87 9 11쪽
32 쇼팽 콩쿨 +2 23.06.13 97 7 11쪽
31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요 +3 23.06.11 100 7 11쪽
30 나은과 나비 (2) +2 23.06.09 89 9 12쪽
29 나은과 나비 (1) +3 23.06.07 88 10 12쪽
28 재회 +2 23.06.06 98 7 12쪽
27 All in +2 23.06.05 104 8 12쪽
26 엇갈림 +2 23.06.04 118 8 12쪽
25 졸업식 +2 23.06.03 111 8 11쪽
24 김준서의 목적 +2 23.06.02 119 9 12쪽
23 피아니스트의 대답 +2 23.06.01 122 11 11쪽
22 소년의 답장 +2 23.05.31 135 10 11쪽
21 걱정이 너무 많아 +2 23.05.30 137 11 12쪽
20 독일에서의 만남 +2 23.05.29 151 9 12쪽
19 그거 거짓말이지? +2 23.05.28 154 11 11쪽
18 리나의 선생님 +2 23.05.27 147 12 12쪽
» 랩소디 인 블루 +2 23.05.26 174 10 12쪽
16 싸라기눈 +2 23.05.25 173 9 11쪽
15 기적 +2 23.05.24 186 11 12쪽
14 두 번의 사과 +2 23.05.23 184 10 12쪽
13 그래도 나는 +2 23.05.22 193 11 12쪽
12 이미 늦었어 +2 23.05.21 205 11 11쪽
11 여정의 끝 +3 23.05.20 223 13 11쪽
10 천재와 범재 +2 23.05.19 217 1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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