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피아니스트의 영혼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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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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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5.10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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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8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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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거짓말이지?

DUMMY

‘우리 학교에 나 말고 한국에서 유학 온 애가 있었나?’


현묵은 그와 웬디가 다녔던 프랑스 학교를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가 재학하던 시절, 한국에서 온 유학생은 자신, 단 한 명뿐이었다.


‘진짜, 웬디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라고···?’


그는 도저히 믿기질 않았다.

누구에게나 빛나는 그녀가 자신을 좋아하는 이유가 대체 뭐가 있겠는가.


‘일단 진정하자, 만약 웬디가 나를 좋아한다고 가정했을 때··· 아니, 대체 언제부터 좋아한 거지?’


현묵이 그녀를 처음 본 건, 18살, 프랑스 학교에 막 유학 왔을 때였다.

이미 그때부터 웬디는 누구에게나 상냥했고, 누구보다 피아노를 잘 쳤다.

그에 비해 현묵은 적응도 잘하지 못했고, 조금씩 우울감에 사로잡혀 가고 있었다.


‘이거, 유학 오는 게 맞았을까?’


그런 심정으로 후회하고 있을 때, 웬디와 안면을 트게 된 건 한 콩쿨이었다.

그가 차마 참가 신청은 못 하고 견학만 했던 콩쿨.

그곳에서 그녀가 처음 말을 걸어왔다.


“안녕, 한국에서 온 현··· 묵?”

“어어? 맞아. 안녕.”


그 당시의 현묵은 영어도, 프랑스어도 서툴러 더 주눅이 들어 있었다.


“나는 208번인데, 너는 몇 번이야?”


웬디는 당연히 그가 콩쿨에 참가한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 오늘은 그냥 견학 온 거야.”


소심하게 기어들어 가는 그의 대답.

사실 웬디에게 있어 현묵의 첫인상은 좋았다고 볼 수는 없었다.


자신감도 없지, 어깨는 축 처져 있지, 관심을 가질 만한 부분은 한 군데도 없었다.

게다가 가끔 들려오는 소문에 의하면 그는 반에서 고립되어 있었다.


그저 안타까워서일까, 아니면 반사적으로 나온 친절일까, 웬디는 자신도 모르게 말하고 있었다.


“그럼 내 연주 잘 들어줘! 오늘은 너를 생각하며 칠게!”


그렇게 말하곤, 대기실로 향하는 그녀.

그 뒷모습을 보며 현묵은 당황스러웠다.


오늘 처음 말해본 사람을 생각하며 연주한다니.

그저 배려 차원의 말인 줄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무엇보다 따듯했던 웬디의 연주.

멀리서 들었을 뿐이지만, 유학을 오고 쌓였던 서러움이 조금이나마 아물었다.


“내 연주 어땠어?”


콩쿨이 끝나고, 우승 트로피를 보여주며 말하는 그녀.

현묵은 그런 웬디가 너무나도 빛나 보였다.

정말 태양 같은 사람이구나 하고.


그 순간.


“우리 내기하자.”


현묵은 자신도 모르게 내뱉고 있었다.


어째서일까, 그녀를 쫓아가다 보면 자신의 길이 보일 거 같아서일까?

무언가에 쫓기는 것보단 오히려 그녀를 쫓아가는 것이 마음이 편해서일 수도 있었다.


“내기? 좋지!”


그의 도전을 흔쾌히 받아준 웬디.

그날부터 현묵은 다시 노력하기 시작했다.

무언가에 쫓기는 수동적인 노력이 아니라 그녀를 쫓아가는 능동적인 노력을.


“졌네···.”


물론 내기에서 한 끗 차이로 졌지만 말이다.

우승을 차지한 건 웬디, 현묵은 그녀의 바로 옆에 서 있는 2등일 뿐이었다.

그렇게 현묵이 착잡한 마음으로 연주회장을 빠져나가려던 순간.


“다음 내기에선 뭐 걸까? 이번에는 음료수였으니까, 다음에는 햄버거?”

“다음?”

“에이, 설마 이걸로 끝내려고? 나 아직 먹고 싶은 거 많은데?”


다음 내기에도 자기가 이길 거라는 걸 확신하는 웬디.

어떻게 보면 현묵이 포기하지 않길 바라는 그녀의 배려였다.


“햄버거 받고 커피까지.”

“그렇게 나와야지!”


그 뒤로도 현묵과 웬디의 내기는 이어졌다.

둘은 나가는 콩쿨마다 1, 2등을 번갈아 가며 차지했고, 몇 년이 흘러 어느새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되어 있었다.


되돌아본다면 그녀가 있었기에 지금의 현묵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를 언제부터 좋아한 건데?’


과거를 쭉 훑어봤지만, 그는 지금도 전혀 감이 잡히질 않았다.

웬디와의 기억은 대부분 콩쿨과 관련이 있었고, 그중 제일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단연.


101전 51승 50패.


그녀와의 내기에서 자신이 한발 앞서 나가고 있다는 사실.

그것은 바로 현묵의 영혼이 빠져나가기 직전 참가했던 세계 3대 피아노 콩쿨, 퀸 엘리자베스 콩쿨에서 우승의 결과였다.


‘아, 비행깃값 웬디가 내기로 했었는데.’


참고로 퀸 엘리자베스 콩쿨 내기 상품은 웬디가 제안했던 ‘둘이 가기로 약속한 해외여행의 비행기티켓’이었다.


몸으로 돌아가기 전까지 절대 잊어버리지 말자, 다짐한 현묵은 다시 본론으로 돌아왔다.


-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한국인이라서 옛날부터 따로 공부했어.” -


웬디가 노헌에게 했던 말.

이것은 과거, 그녀가 현묵에겐 했던 말과 전혀 다른 것이었다.


‘분명 그때는 앞으로 한국 갈 일이 많아질 것 같아서라며?’


그래놓고, 지금 와서 말이 바뀌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현묵은 도저히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야 당연했다.

그는 25년째 모솔이었으니까.



♪♪♪



한편, 노헌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지금 선생님은 의식이 없으시니까···.’


현묵을 좋아하는 웬디에게 그의 이야기를 꺼내는 건 좋지 않아 보였다.

그런 침묵의 의미를 눈치챘는지, 웬디는 화제를 돌렸다.


“이름이 이노···헌 맞지?”

“아, 네 맞아요.”

“노헌이는 리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내내 들었던 단골 질문이었다.

리나와는 무슨 사이냐, 사실 몰래 사귀고 있는 건 아니냐, 둘 중 한 명은 분명 좋아하고 있을 거다. 등등.


하지만, 그때마다 노헌과 리나의 답은 똑같았다.


“그냥 가족 같은 친구일 뿐이에요.”


아무 사심 없는 순수한 우정이었다.

그러나 노헌의 대답을 듣고도 피식 웃는 웬디.


“혹시 가족 중에 아내도 포함되는 거 아니?”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친구예요, 친구.”

“농담이야~”


그러면서도 여전히 흥미진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덕분에 사라진 침묵.


“리나는 잘 지내요?”

“그럼~ 피아노도 얼마나 잘 치는데!”

“밥은 잘 먹고 다니고요?”

“어, 어? 노헌이 생각보다 엄마 같은 느낌이구나···.”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새 그녀가 운전하던 차는 한 건물 앞에서 멈춰섰다.


“도착했어!”


하차와 동시에 눈에 들어오는 유럽의 거리.

마치 영화에서 볼 법한 화려한 양식의 건물들이 일자로 세워져 있었다.


“여기가 일주일 동안 지낼 집이야.”


노헌은 웬디가 가리킨 건물을 바라보았다.


붉은 벽돌로 지어진 3층 빌라.

1층에는 고소한 향기가 흘러나오는 빵집이었고, 테라스가 튀어나온 위층이 그들이 지낼 집이었다.


짐들을 낑낑 들고 올라온 2층.


“생각보다 크네요?”


밖에서 본 것과는 다르게 내부는 꽤 넓었다.

방도 3개나 있었고, 부엌과 거실, 그리고 테라스까지.

게다가 우리나라에선 볼 수 없는 특유한 아득한 분위기는 이곳이 독일이라는 걸 깨닫게 했다.


‘그래도 다행히 신발은 안 신고 들어가도 되네.’


바닥에 카펫이 깔려 있어, 그냥 신고 들어가야 하나, 불안했지만, 웬디는 슬리퍼로 갈아신으면 된다고 설명해 주었다.


“이 방에서 짐 풀면 돼. 그리고 이건 내 연락처야~”


그 말을 끝으로 나가려는 그녀.

그러나 이내 무언가를 잊었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참고로 저기는 리나 방이니까, 들어가면 안 된다?”

“네···. 네?!”


갑작스러운 말에 늦어진 대답.

하지만, 이미 웬디의 모습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바로 옆 방이었어? 그래도 뭐, 상관없겠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리나니까.’


이내 침착한 마음을 되찾은 노헌은 서둘러 자신의 방에 짐을 풀기 시작했다.

일주일 동안 옷가지와 생활용품, 그리고 악보가 들어있는 파일까지.


그 후 곧바로 일어선 그는 자신과 리나의 방을 제외한 나머지 하나의 방을 들여다봤다.

그리고 그곳엔 예상대로.


“휴, 다행이다.”


커튼이 가려진 방 한쪽에 피아노가 자리 잡고 있었다.


아무리 리나를 보러온 것일지라도, 그녀도 그녀만의 스케줄이 있을 터, 그 시간 동안 피아노 연습을 하기 위해 악보를 챙겨온 것이었다.


혹시나 피아노가 없으면 어떡하나, 했지만, 쓸데없는 고민이었던 것 같다.


“그나저나, 선생님 언제까지 조용히 계실 거예요?”

【어, 어?】


노헌이 나지막이 부르자, 그제야 대답하는 현묵.


“그래서 웬디 누나랑은 무슨 사이예요?”

【으음, 친구긴 한데··· 좀 애매하네.】


원래는 웬디를 친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지금도 친구긴 했지만, 이렇게 그녀의 마음을 확인하니, 조금 마음이 어려웠다.


【아니, 웬디가 지금까지 나한테 좋아한다는 티를 낸 적이 없었단 말이야.】

“네? 그러기엔 선생님 때문에 한국어까지 배웠다고 하던데요?”

【옛날에 나한테는, 앞으로 한국 갈 일 많을 것 같아서 배운다고 했었어.】


한국 갈 일이 많을 것 같다···라.

노헌은 그 의미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다.


그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한 줄기 빛.


“아!”

【뭔지 알겠어?】


기대감이 가득한 현묵의 목소리에, 노헌은.


“전혀 모르겠는데요?”


그저 그 말밖에 할 수 없었다.


‘한국에 갈 일이 많아질 것 같다는 건, 아마 한국에서 연주회를 자주 열겠다는 뜻이겠지? 그런데 그게 선생님을 좋아한다는 거랑 뭐가 관련 있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여자의 마음은 전혀 모르겠네.】

“그러게요.”


둘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 뿐이었다.



♪♪♪



가볍게 피아노를 연습하고 나니, 어느덧 창밖은 해가 저물고 있었다.

시차 적응도 해야 하기에, 노헌은 지금이라도 닫힐 것만 같은 눈을 끔뻑거리고 있었다.


【안 돼, 노헌. 지금 자면 수면 패턴 바뀔 거야. 그리고 집주인 얼굴은 보고 자야지.】


노헌을 나무라는 현묵.

그가 말한 집주인은 이리나를 의미했다.


“알겠어요···.”


화장실에 들어간 노헌은 곧장 얼굴에 찬물을 끼얹었다.

어느 정도 되돌아온 정신, 그러나 여전히 비몽사몽 했다.


그 순간 들려온 목소리.


“노헌아, 잘 쉬고 있니?”


뒤를 돌아보자, 웬디가 차 키를 들고 서 있었다.


“리나 데리러 가자.”


그 말에 지친 몸을 이끌고 도착한 웬디의 자동차.

그것은 어느새 하나, 둘, 가로등이 켜진 베를린의 거리를 달리기 시작했다.


마치 다큐멘터리에 나올 법한 야경에 노헌은 피곤한 것도 잊어버리고 창밖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리나한테 들었는데, 노헌이는 피아노 친지 별로 안 됐다며?”

“아, 네.”


이제 피아노를 친 지, 3개월 정도 됐을까?

노헌이 그런 생각을 하던 그때.


“그거 거짓말이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네, 네?”

“나는 3층에서 지내고 있는데, 노헌이가 치는 피아노 소리가 들렸거든? 그런데 마치 오래전부터 친 것 같더라?”


점점 빨라지는 심장박동.

그녀에게서 등을 돌리고, 야경을 보고 있음에도 노헌의 눈은 세차게 흔들리고 있었다.


“아하하, 그냥 착각 아닐까요?”

“흐음, 정말?”


의심이 가득한 그녀의 목소리.

어쩐지 뒤통수가 따가웠지만, 노헌은 애써 무시했다.


“뭐, 그럴 수 있지!”


대수롭다는 듯 넘어가는 웬디의 말에 노헌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자―


“이따가 리나랑 있을 때 다시 물어봐야겠다!”


장난기 넘치는 그녀의 목소리.


【웬디는 한다면 진짜 해.】


비상사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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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밴드부 탈퇴? +3 23.06.18 80 8 11쪽
34 벚꽃이 흩날리던 밤 +3 23.06.16 90 8 11쪽
33 데이트 신청 +3 23.06.15 88 9 11쪽
32 쇼팽 콩쿨 +2 23.06.13 99 7 11쪽
31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요 +3 23.06.11 100 7 11쪽
30 나은과 나비 (2) +2 23.06.09 90 9 12쪽
29 나은과 나비 (1) +3 23.06.07 89 10 12쪽
28 재회 +2 23.06.06 99 7 12쪽
27 All in +2 23.06.05 105 8 12쪽
26 엇갈림 +2 23.06.04 119 8 12쪽
25 졸업식 +2 23.06.03 112 8 11쪽
24 김준서의 목적 +2 23.06.02 122 9 12쪽
23 피아니스트의 대답 +2 23.06.01 122 11 11쪽
22 소년의 답장 +2 23.05.31 136 10 11쪽
21 걱정이 너무 많아 +2 23.05.30 138 11 12쪽
20 독일에서의 만남 +2 23.05.29 151 9 12쪽
» 그거 거짓말이지? +2 23.05.28 155 11 11쪽
18 리나의 선생님 +2 23.05.27 147 12 12쪽
17 랩소디 인 블루 +2 23.05.26 174 10 12쪽
16 싸라기눈 +2 23.05.25 173 9 11쪽
15 기적 +2 23.05.24 186 11 12쪽
14 두 번의 사과 +2 23.05.23 184 10 12쪽
13 그래도 나는 +2 23.05.22 193 11 12쪽
12 이미 늦었어 +2 23.05.21 206 11 11쪽
11 여정의 끝 +3 23.05.20 223 13 11쪽
10 천재와 범재 +2 23.05.19 217 1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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